교리
2015.03.12 01:11

성경과 지질학-21 다니엘서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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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지질학

Gaines R. Johnson 지음 / 이우진 옮김

 

21장 다니엘서 해설


 


오늘날 사람들은 구약과 신약에 나온 예언이 모두 과거 성경 시대에 성취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아직도 성경 시대에 살고 있다는 놀라운 진리를 잡는데 실패하고 있다. 성경 시대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아직 이 세상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이 성경에는 미리 예언되어 있다. 신약과 구약에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이 있다.


성경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우리가 마지막 이라고 부르는 미래에 대해 다루고 있다. 따라서 당신은 현재 성경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기 3:14에서 불타는 가시덤불 속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스스로 계신 분께서는 지금도 계시며 지금도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과 성령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사악한 사탄의 영은 현대인들의 귀에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더냐?”고 속삭이고 있다( 3:1).


대언자들과 사도들이 오래 전에 이 세상을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기록들은 기록한 직후와 동일하게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 만일 당신이 정말로 성경을 믿는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와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처음( 1:1)부터 마지막의 시작까지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구약성경에는 창세기 1장에 나온 간극 외에 또 다른 간극이 나온다. 이 간극은 바로 교회 시대이다. 기간은 초림과 재림 사이로 대략 2000년이다. 이 간극은 구약성경의 예언 안에 감추어져 있으나 신약성경을 통해 계시되었으며 볼 수 있게 되었다,


클라렌스 라킨은 구약성경 시대의 대언자들은 산의 꼭대기(십자가 사전, 주의 날, 최후의 심판 등)는 볼 있으나 꼭대기 사이에 있는 골짜기인 교회 시대에 관한 예언은 볼 수 없는 것으로 적절하게 설명했다. 


예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골짜기에서 살고 있다. 이제 곧 다른 꼭대기인 적그리스도의 등장, 주의 날 등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택하신 백성인 유대인들을 다루시는 것을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국가가 된 것은 성경 시대의 마지막 때의 기준이 되었지만, 나는 1979년에 이란의 혁명이 고대 페르시아가 정치적인 형태로 돌아온 마지막 때의 기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란의 혁명은 이슬람 근본주의가 서구에 맞서는 지수곡선을 그리며 성장하는데 영감을 주었다. 이것은 성난 바람이 되어 중동을 빠르게 휩쓸며 거대한 이슬람 세계를 형성했다. 이슬람 세계는 이란이 소란스럽게 서구의 강한 세력을 모욕하는 것을 보고 재빠르게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그 뒤에 발생한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 알 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의의 성장과 2001 9 11일에 뉴욕 공격과 걸프 전쟁과 아프카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의 전쟁 등은 모두 직간접적으로 중대한 사건을 촉발시켰다. 이란은 페르시아이며, 다니엘서에 예언된 대로 이란이 세계의 한 축으로 등장하며 세계적인 위협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다니엘서의 예언적 봉인은 우리의 눈 앞에서 열릴 것이다. 교회 시대는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은 현재의 이라크와 이란과 시리아와 쿠웨이트와 아프카니스탄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략 B.C. 500년 경에 제국은 현제의 터키와 팔레스타인과 북이집트와 리디아에 의해 점령되었었다.


성경의 역사에서 페르시아 제국은 이스라엘의 포로기와 관련이 있는데, 우리가 곧 지적하겠지만, 종말의 시작에 있을 미래의 예언과도 관련이 있다( 10:14).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슬람이 전세계적인 테러 위협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란이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위 버리려고 위협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수 천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똑 같은 땅에 다시 돌아온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것들은 그 어느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계시록에 기록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을 성취하고자 무대를 준비한 것일 뿐이다.


옛 페르시아 제국에서 이스라엘이 포로로 있을 때 대언자 다니엘은 자신의 백성과 예루살렘에 관해 마지막 때에 있을 일에 관해 많은 환상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그러한 것들이 마지막 때가지 봉인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오 다니엘아, 너는 끝이 임하는 때까지 그 말씀들을 닫아 두고 그 책을 봉인하라. 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달음질하고 지식이 증가하리라.( 12:4)


그가 이르되, 다니엘아, 네 길로 가라. 주께서 끝이 임하는 때까지 그 말씀들을 닫아 두고 봉인하셨느니라.( 12:9)


다니엘서에 예언된 페르시아에 대한 예언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강가에 선 숫양에 대한 환상을 살펴봐야 한다.


내가 환상 속에서 보았노라. 그것을 볼 때에 내가 엘람 지방의 수산 궁에 있었는데 내가 환상 속에서 보며 울래 강가에 있었노라.( 8:2)


다니엘이 이 환상을 받았을 때 그는 이란의 남서쪽에 있었다. 이 환상의 초점은 페르시아이다.


그때에 내가 눈을 들어 보니, 보라, 강 앞에 두 뿔 가진 숫양 한 마리가 서 있는데 그 두 뿔이 길더라. 그러나 한 뿔이 다른 뿔보다 길었고 그 긴 것은 나중에 났더라. 내가 보니 그 숫양이 서쪽과 북쪽과 남쪽을 향하여 밀어붙이므로 어떤 짐승도 그 앞에 서지 못하였고 그의 손에서 능히 건져 낼 자가 없었으므로 그가 자기 뜻대로 행하며 크게 되었더라. 내가 깊이 생각할 때에, 보라, 숫염소 한 마리가 서쪽에서 나와 온 지면에 다니며 몸을 땅에 대지 아니하더라. 그 염소의 두 눈 사이에는 두드러진 뿔이 있더라. 그가 두 뿔 달린 숫양 곧 내가 강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그 양에게로 가되 힘차게 격노하며 그에게로 달려가더라. 내가 보니 그가 그 숫양에게 가까이 가서 그에게 성을 내며 흥분하고 그 숫양을 쳐서 그의 두 뿔을 꺾었으나 그 숫양에게는 그 앞에 설 힘이 없었으므로 그가 그 숫양을 땅바닥에 내던지고 짓밟았더라. 그 숫양을 그의 손에서 능히 건져 낼 자가 없었더라.( 8:3-7)


성경은 계속해서 이 예언에 있는 숫양과 숫염소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이르되, 보라, 내가 그 격노의 마지막 끝에 있을 일을 네게 알려 주리니 이는 정해진 때에 그 끝이 임할 것이기 때문이라. 네가 본 두 뿔 달린 숫양은 메대와 페르시아의 왕들이요, 거친 숫염소는 그리스의 왕이며 그의 두 눈 사이의 큰 뿔은 첫째 왕이니라.( 8:19-21)


먼저, 주님께서는 이것이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임을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서 주 하나님께서는 숫양의 두 뿔이 메데와 페르시아의 왕이라고 신원을 밝혀 주셨으며 이들의 지역은 터키의 동쪽과 이라크에서 이란까지이다. (이 지역은 시리아와 아프카니스탄을 감싸고 있기도 하다.) 이 왕들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중의성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고대의 메데와 페르시아 땅은 현재의 어느 지역인지 정확하게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이란이 이 지역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정치적인 면을 보자면, 시리아는 현재 이란과 함께 이스라엘에 맞서고 있다. 터키는 이스라엘과 동맹이기는 하지만 이란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라큰 미군이 철수하고 난 이후에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이란의 영향력아래로 들어가고 있다. 게다가 여기에는 이라크의 북쪽과 이란의 서쪽, 터키의 동쪽과 시리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쿠르드족 문제도 있다. 간략하게 말하자면 이 전 지역이 불안정하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는 앞으로 불확실한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


그리스 왕은 지금의 터키 서쪽 사람들을 가리킨다. 특히 그리스와 메케도니아 지역일 것이다. 아니면 유럽과 서방세계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 예언에 의하면 숫염소는 숫양을 공격하고 제국을 부술 것이다. 그 결과 현대의 유럽이 아직 완전히 부활하지 못한 이 동방 제국을 떨어뜨릴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다니엘서의 예언이 이미 인류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다는 해석과 상충된다. 역사학파(무천년주의자들)의 지지자들은 이 환상이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했을 떼 성취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성경이 정말 그런 해석을 지지하고 있을까? 숫염소가 서쪽에서 오는 것을 주목해 보라. 물론 이것은 알렉산더 대왕이 한 것과 같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군대는 진군한 모든 곳을 밟았다. 하지만 예언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알렉산더의 군대는 예언을 성취하지 못했다. 따라서 예언이 문자적으로 성취되기 위해서는 항공기에 의한 공격이 있어야만 한다. 예언이 설명하고 있는 것은 대규모 공수부대의 공격과 항공기에 의한 공격으로 현대전에 대한 묘사로 보인다. (제트기, 폭격기에 의한 폭탄 투하, 공수부대, 공중과 해상에서의 크루즈미사일 공격 등) 낙하산을 타고 오거나 해병대가 상륙하기 전에 공격하는 군대의 발이 직접 땅에 닿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언이 성취되기 전에 살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우리는 예언의 봉인이 풀어져 우리 눈에 드러나기 직전에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과 그 결말이 어떻게 될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숫양은 일어날 것이며 크게 성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의 두 뿔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특히 이라크와 시리아와 터키는 아직 완전히 이란에 합류하지 않았다. 이란과 터키는 이슬람 국가이기는 하지만 아랍 국가는 아니라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이스마엘 족속의 후손들과는 다른 사람들이다.


터키는 계시록에 나온 일곱 교회가 있던 소아시아의 일부이다. 이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보이는가?


계시록 1-3장에 나온 일곱 교회는 모두 터키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스와 터키 사이에 있는 에게해는 서쪽의 기독교라고 불리는 세력과 동쪽의 이슬람 세력을 지정학적으로 나누고 있다. 사도 요한은 환상을 받을 때 소아시아 본토의 서쪽에 있는 에게해에 있는 밧모라고 하는 섬에 있었다. (현재 이 섬은 그리스의 영향아래 있다.)


다니엘의 환상은 요한의 환상을 보완하고 있다. 중동은 미래에 계시록에서 일어날 일이 초점이 맞춰져 있는 지역이다.


이 모든 일들은 계시록에 나온 열 뿔, 즉 열 왕이 등장하기 전에 일어나게 됨을 주목하라. 예언의 마지막 문장의 단어들을 주목해 보라.


거친 숫염소는 그리스의 왕이며 그의 두 눈 사이의 큰 뿔은 첫째 왕이니라.( 8:21)


숫양(고대 메대 페르시아 지역의 왕들)에 대한 공격을 이끄는 왕은 이 부활한 제국을 깨고 정복할 것이며 자신을 그 다음 통치자로 세울 것이다. 그는 계시록에 나오는 열 명의 왕들 중 첫째가 될 것이다(7:24, 17:13). 나머지 왕들은 유럽이 아닌 중동 지역에 있는 국가들의 왕들이다.


이것들은 모두 단지 마지막 때의 예언, 이스라엘 민족, 야곱의 고난의 때(30)에 관한 배경의 열쇠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예루살렘은 지정학적 궁극의 중심이 될 것이며 성전 산은 기폭제가 될 것이다.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있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중대한 사건의 전조일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적그리스도가 반드시 먼저 와서 예언의 무대에 등장할 것이다.


이 인물이 언제 예언의 무대에 등장할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계시록에서 요한은 버가모에 있는 일곱 교회 중 한 교회에게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라고 했다(2:12-17). 적그리스도는 사탄의 성육신인바, 버가모는 이 죄의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세우는 곳일 것이다. 성경은 그가 본격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곳이 어디인지는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곳은 바로 예루살렘일 것이다. 제 삼 성전은 아직 예루살렘에 세워지지 않았다.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그는 대적하는 자요, 또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보이느니라.(살후 2:3-4)


성경 신자들은 이러한 일들이 모두 일어나게 될 것이며 믿지 않는 유대 민족이 예루살렘에 있는 산에 성전을 세우고 다시 성전 경배를 시작할 것을 알고 있다. 이 성전은 반드시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드러내기 전에,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그의 그의 군대를 멸하시기 전에 세워질 것이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수십 년에 걸친 유혈폭력 사태를 생각해 보라.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의 성전을 둘러싼 참호들과 예루살렘의 최후의 상태를 생각해 보라. 이 예언이 성취되도록 하는 지정학적 연속적인 사건들의 규모를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이루어질 것이다. 문자적인 성전이 세워질 것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영원한 수도로 선포한다. 아랍도 예루살렘을 원한다. 이러한 수평선에 타협점이 있을까?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지에 관한 한 가지 열쇠를 다니엘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래에 예루살렘에 성전이 세워지고 나면 이전에 체결된 언약에 관한 예언이 성취될 것이다. 참조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하리니 그가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하며 또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하여 심지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황폐하게 할 것이요, 작정된 그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 하니라.( 9:27)


그때에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자기 땅으로 돌아가며 자기 마음속으로 거룩한 언약을 대적하고 공적을 세우며 자기 땅으로 돌아가리라.( 11:28)


이는 깃딤의 배들이 와서 그를 칠 것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그가 근심하며 돌아가서 격노하여 거룩한 언약을 대적하리라. 그가 이와 같이 행하며 심지어 돌아가서 그 거룩한 언약을 저버리는 자들에 대한 정보를 얻을 것이요,( 11:30)


또 그가 그 언약을 대적하려고 사악하게 행하는 자들을 아첨하는 말로 부패시킬 터이나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공적을 세우리라.( 11:32)


이 구절들은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어떤 계약이 있을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예루살렘과 성전에 관한 것일 수 있다. 양측이 다 성전이 있는 산을 이용하는 것을 담고 있을 수도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성전을 건축하고 거기서 자유롭게 경배를 드리며 아랍인들도 그 옆에 있는 알 악사 사원에서 자유롭게 경배를 드릴 것이다. 서로가 상대방의 종교를 존중할 것이다. 믿기지 않는가? 대환난 중 성전에 산에 관해 계시록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보라.


내가 막대기 같은 갈대를 받으매 천사가 서서 이르기를,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밖에 있는 뜰은 내버려 두고 측량하지 말라.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셨은즉 그들이 거룩한 도시를 마흔두 동안 발로 짓밟으리라.( 11:1-2)


이스라엘과 아랍은 피를 나눈 친척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둘은 모두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한쪽은 이삭을 통해 다른 쪽은 이스마엘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들은 모두 구약성경의 전통에 뿌리를 둔 신앙을 가지고 있다. 물론 메시아의 계보는 이삭과 야곱(히브리인들)의 혈통을 통해 이어졌다. 정치적으로 이들은 둘 다 이란을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


성경의 교리적인 면에 있어서 유대인들과 아랍인들은 하나 이상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즉 하나님께서 주 예수라는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사실을 부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이것이 적그리스도의 그 영이니라. 그것에 관하여는 그것이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그것이 지금 이미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3)


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느니라. 이런 자가 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요이 1:7)


성경의 권위에 기초해서 보면 오늘날 주류 유대인들과 무슬림들의 믿음은 적그리스도의 영의 통제아래 있다(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부활을 부인하는 기독교 종파들과 이단들도 마찬가지이다). 유대인들과 무슬림들과 구원받지 못한 온 세상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이러한 공통점(예수님의 피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닌 행위와 종교를 통한 구원)을 가지고 적그리스도의 영 아래로 모여 연합할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모두 예루살렘을 거룩한 도시로 여긴다. 계시록에는 예루살렘의 미래(재림 전)에 관한 예언이 있다. 마지막 때에 예루살렘은 이 악한 세상에서 대단한 도시가 될 것이다. 상업적, 정치적인 능력이 있는, 전세계의 종교적인 중심지가 될 것이다. 이곳은 종교 지도자들이 있는 부패한 곳이 될 것이며(과거에 바리새인들과 산헤드린이 있었던 것처첨),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의로운 자들을 핍박할 것이다. 예루살렘과 세상의 죄는 주 하나님께서 일어서시어 그곳으로 대언자들을 보내시고 회개를 선포하게 하시며 하늘의 왕국이 가까이에 왔다는 침례자 요한과 엘리야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실 것이다(17:10-11, 9:11-12). 이들은 모두 그 도시의 통치자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그들의 죽은 몸이 그 큰 도시의 거리에 놓이리라. 그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과 이집트라고 하며 그곳은 또한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11:8)


성경에 의하면 미래의 예루살렘은 소돔과 이집트 같다. 이러한 점은 그들의 타락의 정도와 얼마나 큰 심판을 받게 될지를 보여준다.


구약성경의 예언을 보면 예루살렘과 같은 도시는 여인으로 비유되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분노하시는지 보여준다.


시온이 자기 손을 펴나 그녀를 위로할 자가 없도다. 주께서 야곱에 관하여 명령하사 그의 대적들이 그를 에워싸게 하셨으므로 예루살렘이 그들 가운데서 생리하는 여인같이 되었도다.( 1:17)


기독교 근본주의와 전통적인 개신교 학파의 해석은 로마 가톨릭 교회와 교황은 마지막 때에 권력을 잡을 것이며 로마가 바로 계시록에 나온 짐승을 탄 여자라고 믿는다.


그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놀라느냐? 내가 그 여자의 신비와 그녀를 나르는 짐승 곧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짐승의 신비를 네게 말하여 주리라. 네가 본 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앞으로 바닥없는 구덩이에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라.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세상의 창건 이후로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여전히 있는 그 짐승을 보고 놀라리라. 여기에 지혜 있는 생각이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그 여자가 앉아 있는 일곱 산이라.( 17:7-9)


로마는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있는 도시이므로 그들은 이 본문을 로마 가톨릭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로마가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17:5) 라고 믿는다. 또 다음의 구절들도 이러한 입장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또 그가 내게 이르되, 네가 본 물들 곧 음녀가 앉아 있는 물들은 백성들과 무리들과 민족들과 언어들이니라.( 17:15)


또 네가 본 그 여자는 땅의 왕들 위에 군림하는 저 큰 도시니라, 하더라.( 17:18)


그들은 가톨릭 교회가 이 세상의 많은 국가들에서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바티칸은 이탈리아에서 독립한 국가이며 세계 각국에 대사들을 파견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사실이다. 다만 계시록에서 말씀하시는 짐승 위에 탄 여자를 로마라고 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분별한 것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로마는 일곱 언덕 위에 있는 도시이다. 하지만 로마뿐만 아니라 이스탄불이나 예루살렘도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계시록에서 초점을 맞추는 도시는 로마가 아니라 예루살렘이다.


그들의 죽은 몸이 그 큰 도시의 거리에 놓이리라. 그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과 이집트라고 하며 그곳은 또한 우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11:8)


그리고 성경은 이곳이 바빌론 창녀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 큰 도시가 세 조각으로 갈라지고 민족들의 도시들도 무너지며 또 큰 바빌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되어 그분께서 그녀에게 자신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즙 잔을 주시니라.( 16:19)


그녀의 이마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17:5)


성경은 로마가 아닌 예루살렘이 계시록에서 말씀하시는 창녀라고 한다.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은 미래에 거짓 평화의 도시가 될 것이다. 그곳은 고대 바빌론 제국처럼 권력의 중심이 될 것이며 구약시대에 수없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더 창녀짓을 할 것이다. 미래에 이스라엘은 민주적인 정부를 버리고 신정국가가 될 것이며 왕들과 이 세상의 왕들에 의해 통치될 것이다. 독자는 이러한 주장이 놀랍고 믿기 힘들 것이다. 예루살렘은 거룩한 땅의 중심이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젠가 통치하실 곳이다. 하지만 그분은 먼저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자신을 거부하고 도시 밖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린 이 도시에 복수하실 것이다.


예루살렘이 계시록에서 말씀하시는 여자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부인할 수 없는 다음의 진리를 생각해보라.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창녀들의 어미인 바빌론이 거룩한 피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대언자들과 성도들과 땅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사람의 피가 그녀 안에서 발견되었느니라, 하더라.( 18:24)


성경에 의하면 예루살렘 시만이 이러한 말씀에 부합하는 도시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반드시 걸어야 하리니 대언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을 수는 없느니라.( 13:33)


이 구절들은 여자의 정체를 폭로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사실을 말씀하셨으며 대언자이신 예수님 자신도 예루살렘에서 죽으셨다. 당신이 성경을 탐구한다면 주 하나님의 모든 진실한 대언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대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보낸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자기 새끼들을 자기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얼마나 자주 네 자녀들을 함께 모으려 하였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13:34)


독자 중에는 이러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직 이스라엘을 다루시는 것을 완전히 끝내신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로운 것으로 여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에 대해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그것은 곧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이를 때까지 일부가 눈머는 일이 이스라엘에게 생긴다는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이것은 기록된바, 시온에서 구출자가 나와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돌이키리니 내가 그들의 죄들을 제거할 때에 이것이 그들을 향한 내 언약이니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에 관하여는 그들이 너희로 인해 원수 된 자들이지만 선택에 대하여는 그들이 조상들로 인해 사랑받는 자들이니 하나님의 선물들과 부르심에는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느니라.( 11:25-29)


하나님께서 유대인들 중 남은 자들을 구원하시기 전에 그들은 반드시 먼저 회개해야 하며 눈이 열려야 한다. 미래에 예루살렘에 닥칠 일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다(2:4, 3:5).


다니엘서에는 당신이 반드시 연구해야 할 중요한 예언이 있다.


주께서 네 백성과 네 거룩한 도시에게 칠십 이레를 정하셨나니 이것은 범법을 그치고 죄들을 끝내며 불법에 대하여 화해를 이루고 영존하는 의를 가져오며 환상과 대언을 봉인하고 또 지극히 거룩하신 이에게 기름을 붓고자 함이라.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지니라. 즉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아가는 때로부터 통치자 메시아에 이르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으리니 심지어 곤란한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될 것이며 육십이 이레 뒤에 메시아가 끊어질 터이나 자기를 위한 것은 아니니라. 장차 임할 통치자의 백성이 그 도시와 그 성소를 파괴하려니와 그것의 끝에는 홍수가 있을 것이며 또 그 전쟁이 끝날 때까지 황폐하게 하는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많은 사람과 한 이레 동안 언약을 확정하리니 그가 그 이레의 한중간에 희생물과 봉헌물을 그치게 하며 또 가증한 것들로 뒤덮기 위하여 심지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그것을 황폐하게 할 것이요, 작정된 그것이 그 황폐한 곳에 쏟아지리라, 하니라.( 9:24-27)


여기서는 두 명의 통치자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메시아 통치자(이것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킹제임스성경에는 대문자 P로 되어 있다)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통치자도 있을 것이다. 이 자는 예수님이 아닌 적그리스도이다(킹제임스성경에는 소문자 p로 되어 있다. ). 문맥은 미래의 예루살렘에 관한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우리가 앞에서 다룬, 유대인들과 아랍인들 사이의 언약에 대한 언급도 있다.


70이레는 칠 년이 일흔 번 있는 것으로 490년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다루시기로 정하신 햇수의 합이다. 이것은 바빌론 포로기를 포함한 과거와 미래에 왕들 중의 왕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포함하고 있다. 다니엘의 70이레가 시작된지 대략 2400이 지났지만 아직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 시기 중에 교회가 존재한다. 다만 예언의 시계가 교회 시대에는 멈춰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알고 깨달을지니라. 즉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이 나아가는 때로부터 통치자 메시아에 이르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있으리니 심지어 곤란한 때에 거리와 성벽이 다시 건축될 것이며(9:25)


이 독특한 예언을 조사하면서 나는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건축하라는 명령을 누가 주었으며 언제 주어졌는지는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정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부분을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이 책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지만 내가 깨달은 것은 나누고자 한다.


나는 이 시기를 컴퓨터로 계산해 보았다. 위 구절에 의하면 메시아 통치자(예수님)가 올 때까지 69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70주에서 한 주 모자른 69주이다. 그런데 다음 문맥에서 62주 후에 메시아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끊어질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것은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7주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는가?


다시 말하자면, 문맥은 서로 다른 두 가지를 말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메시아 통치자 때까지 69주라고 하고, 다른 한 편에서는 메시아가 끊어질 때(십자가)까지 62주라고 한다. 나는 이것이 서로 다른 사건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7(49)가 대환난인 마지막 한 주(7) 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49년이 교회시대의 처음과 마지막의 과도기적인 시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보다 나은 생각은 메시아 통치자가 오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부를 모으시는 교회의 휴거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 다음에는 마지막 주(7)의 시작으로 바로 연결된다. 왕이 실제로 왕관을 받을 때까지는 통치자(Prince)이기 때문에 이 주장은 좀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49년이 숫양의 환상과 열 왕 중 첫째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유대인들이 성전을 재건하는 것과 49년이 시작되는 것이 관련이 있을까?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아들도 알지 못하며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너희는 주의하라. 깨어 기도하라. 그때가 언제인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아들은 마치 자기 집을 떠나 멀리 여행을 할 때에 자기 종들에게 권위를 주어 각 사람에게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는 어떤 사람과 같나니( 13:32-34)


이방인의 충만함이 거의 이르렀고 주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큰 시험과 형벌의 때가 주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대환난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회개하도록 하실 것이다. 성경은 페르시아 제국의 부활이 종말의 시작임을 말하고 있다. 숫양은 자신의 영향력을 북쪽과 남쪽과 서쪽으로 뻗게 할 것이며, 마지막 때가 오기 전에 중동에는 더 많은 전쟁과 다툼이 있을 것이다.


뉴스에서는 이란이 핵을 소유하고자 하는 것을 점점 더 많이 다루고 있다. 이란은 핵폭탄을 제조할 것인가? 그것을 사용하게 될 것인가? 이스라엘은 그것을 막기 위해 공격할 것인가? 서방 주요 세력(미국과 유럽)은 경제 제제를 통해 이란이 핵을 포기하도록 압력을 주고 있다. 이란과 교역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은 그러한 경제 제제에 저항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강경 이슬람노선인 이란 정부는 이스라엘을 제거하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고 있으며 핵무기 제조를 포기하려 하지 않고 있다. 외교적인 노력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중동과 서양 문명의 핵전쟁은 다가오고 있다.


결론을 지으면서 한 가지만 생각해 보자. 계시록에서, 요한이 하늘로 들림 받아 올라간 후(많은 사람들이 요한이 들림 받아 올라간 것을 교회의 휴거의 모형으로 본다)에 장면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는다.


내가 보매 어린양께서 그 봉인들 중의 하나를 여시더라. 그때에 내가 들으니 네 짐승 중의 하나가 천둥소리 같은 소리로 이르되, 와서 보라, 하더라.( 6:1)


요한은 이 세상에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천둥소리와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요한이 들은 것은 핵폭탄이 폭발하는 소리였을까?


다니엘서는 열려있는 책이다. 읽으라!


독자가 성경을 탐구하고 바르게 나누어 기록된 그대로 이해하게 되기를 기도드린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성경을 신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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