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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1 19:57

이교도들은 어떻게 되는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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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들은 어떻게 되는가?

What About The Heathen?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에 대한 성경적 답변

James W. Knox 지음 / 우진 옮김

 

Part 2/2

 

둘째,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빛(light)을 받았다.

로마서 1장과 시편 19편은 요한복음 1장과 마찬가지로 이것을 증언하고 있다.

먼저 요한복음 1:9-10을 주의 깊게 살펴보자. 그 빛은 참 빛(true Light)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고 여기서 말씀하시고 있는 참 빛(true Light), 대문자로 시작하는 빛(Light)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이 명백하다.

모든 사람이 다 킹제임스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복음을 제대로 전하는 좋은 교회가 있는 동네에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가지고 있다.

심판의 날에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빛을 가지고 무엇을 했는지 판단하실 것이다.

이 빛(light)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성경은 이 빛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다. 로마서 1:18-20을 보자.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아니한 것과 불의를 대적하여 하늘로부터 계시되었나니 모든 사람들이 붙잡고 있는 진리는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분명히 드러내 보여주셨다. 그것이 무엇인가?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21a)

당신은 이 세상과 모든 것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가리기 위해 마귀가 얼마나 열심히 여러 가지 이론들을 만들어 내는지 그 이유를 아는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계시다는 사실을 계시해 주셨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 깊이 자리잡은 이러한 계시()를 지워버리기 위해서는 교육(특히 진화론 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다.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21b) 만들어진 것을 보면 그것을 만든 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째서 그런가? 누군가 그러한 논리를 인간의 마음속에 넣어놨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만들어진 것을 보고 그것을 만든 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결과는 무엇인가? 그러한 분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서 겸손해져서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이 정도의 빛은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종교가 이러한 빛을 가려 버릴 수도 있고 학교 교육이나 책이나 어떤 이론이 이러한 빛을 가려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며 당신을 만드셨고 당신은 그분 앞에서 회계 보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로마서 1장은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진리를 계시하고 있다.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여기서 말하는 신격은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자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다)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21,22) 어느 누구도 무신론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불가지론자로 태어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큰 복을 받고 태어난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부모님이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치는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분명 큰 축복이다.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는 좋은 교회가 있는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있다. 그런 교회가 없다고 해도 라디오나 인터넷을 통해 좋은 설교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도 큰 축복이다. 나를 탓하지 말라.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영적인 면에 있어서 아라비아나 파키스탄이나 네팔이나 몽고나 중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보다 훨씬 유리한 상황에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태어나는 어떤 사람도 자신을 창조한 창조자가 계시다는 사실을 모른 채 태어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빛을 비춰주시고 그러한 생각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

그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시다.

당신은 그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기준이 된다.

성경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정죄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타락한 인간은 대자연의 어머니나 우주진운(宇宙塵雲)이나 빅뱅이나 거인들이나 외계인이나 신들이나 여신들은 믿지만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는 전능하신 창조자는 믿지 않는다. 형상이나 철학이나 네안데르탈인이나 토르나 부처나 우주적인 힘이나 점술이나 새국제역본(NIV)이나 다이아몬드는 믿지만 온 세상을 만드신 전능하신 분은 믿지 않는다. 그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을 믿는다.

당신은 왜 사람들이 성경의 하나님을 제외한 모든 것을 용납하는지 아는가? 헤라클레스에게는 회계 보고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제우스에게는 회계 보고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릴리스(여자 악령)에게는 회계 보고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자연의 어머니에게는 회계 보고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산타 크로스에게는 회계 보고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제외한 어떠한 신도 인간에게 회계 보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참되고 유일한 신인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자신 앞에 세우시고 물으실 것이다. “왜 너는 내 앞으로 겸손하게 나아와 회개하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자신들의 행위가 악한( 3:16-21) 죄악 된 인간은 회개를 요구하는 하나님을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다른 신으로 대체해 버린 것이다.

사람이 왜 정죄를 받는가? 로마서의 길[1]을 거부했기 때문이 아니다. 신약성경을 조금 읽어 보다기 집어 던졌기 때문도 아니다. 주위에 좋은 교회가 있는데 다니지 않았기 때문도 아니다. 사람들이 정죄를 받는 이유는 자신들의 창조자인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 서는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핑계도 댈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빛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빛은 사람들에게 다음의 사실을 알려주었다. “하나님이 계신다. 너는 그분께 회계 보고를 해야 한다.” 만일 사람이 이러한 사실을 거부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거부하실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진리를 증언하는 빛에 대해 시편 19:1-6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낮은 낮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보이니 그것들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말이나 언어가 없도다. 그것들의 줄이 온 땅에 두루 나갔고 그것들의 말들이 세상 끝까지 이르렀도다. 그분께서 해를 위하여 하늘들 안에 장막을 세우셨으므로 해는 자기 침소에서 나오는 신랑 같고 경주하려는 힘센 자 같이 기뻐하는도다. 해가 하늘 끝에서부터 나아가며 그것의 순환 회로는 하늘 끝들에까지 이르나니 해의 열기에서 숨을 것이 없도다.

우리는 현대인들은 잘 맞춘 정장을 입고 에어컨이 있는 집에서 TV 앞에 앉은 문명화된 사람들인 반면 이교도들은 원시인들 같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만일 성경이 사실이라면 (물론 나는 성경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노아의 시대에 홍수가 있기 전에는 인간의 수명이 칠팔백 년, 혹은 구백 년 까지도 되었다. 성경은 그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천막에 거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칠백 년 동안 천막에 살면서 밤에 무엇을 했을까? 라디오도 없고 TV도 없고 비디오도 없다. 사람은 밤에 별을 보고 혜성을 보고 은하계를 봤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은하수를 보면서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시다고 생각했다. 페르시아인들은 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거기에 계시다고 생각했다. 바빌론이나 북아메리카나 유럽의 고지대에 사는 사람들이나 남미의 고지대에 살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아는가? 그들은 밤하늘을 보면서 저 높은 곳에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믿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스스로 계몽되었고 많은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무인비행선을 우주로 보내고 달에 가서 사진을 찍어온 다음 이렇게 말한다. “불행하게도 달에 생명체가 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연구비가 더 필요하다.” 그렇게 연구비를 더 타내서 화성으로 무인 우주선을 보내고 나서 다시 같은 말을 반복한다. “거기에도 생명체가 없다.” 이런 방식으로 연구비를 계속 타내고 무인 우주선을 금성이나 목성이나 해왕성이나 명왕성 같은 더 먼 곳으로 보낸다.

과거에는 자동차나 전자레인지나 세탁기나 대학교나 유치원이나 케이블방송이나 식료품점이나 하수도나 고등학교나 나사(NASA)나 카툰네트워크나 여자 농구팀이나 유엔(UN)이나 코털제거기 같은 문명화된 기구들이 없었지만 사람들은 밤하늘에 있는 별들을 보면서 저 위에는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성경과 성경학교와 라디오를 통한 설교와 서점에 쌓여있는 성경들과 교회와 모텔에 비치된 성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하나님은 한번도 행방불명 된 적이 없다.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느냐는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죄에 있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거부한다면 그 이유는 자명하다. 계속해서 죄짓고 살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존재하는지 증거를 찾지 못해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빛을 받아들이라. 그러면 당신은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우주에는 나보다 더 큰 분이 존재하시는 구나! 이 우주의 중심이 되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그분이구나!”

어떤 사람은 덥다고 불평한다. 적도 한 가운데는 훨씬 더 덥다. 춥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북극이나 남극은 훨씬 더 춥다.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 그보다 훨씬 극한 상황이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충분히 크지 않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다면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분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을 것이다. 사람 보다 훨씬 더 크고 위대한 분께서 존재하신다. 주님께서는 인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나는 너희들에게 두 증인을 주었다. 하나는 너희 내면에 있는 양심이며 다른 하나는 너희 외부에 있는 모든 창조물이다. 만일 너희가 두 증인의 증언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않으면 내가 다른 무엇을 줄지라도 너희는 그것도 거부할 것이다.”

 

셋째, 요한복음 3장과 10장과 로마서 1장을 보자. 만일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빛을 받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해 핑계를 댈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정죄하시는 근거는 무엇인가?

다시 요한복음 3:18-21을 보자.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는 악을 행하는 자마다 자기 행위를 책망 받을까 염려하여 빛을 미워하고 또 빛으로 나오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자는 빛으로 나오나니 이것은 자기 행위와 또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자는…” 진리를 행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진리를 행하는 자가 알고 있는 진리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진리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분을 믿어야 한다. 또 다른 어떤 진리를 알고 있을까? 그 하나님께서 창조자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사실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자세히 보자. 그러나 진리를 행하는 자는 빛(light)으로 나오나니…” 여기서 빛(light)은 소문자로 시작하는 것이 보이는가? 본문에서 말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신 양심과 자연의 증거를 받아들인 사람, 즉 그것을 믿는 사람이 복음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갑자기 예수님을 믿는다는 게 아니다. 아무리 양심이 있고 온 세상을 보고 그것을 창조하신 분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 해도 들어본 적도 없는 복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은 빛으로 나아온다는 것이다. 성경은 계속해서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 행위와 또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빛을 비춰 주셔도 자신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그 빛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사람도 있다.

목사님, 하지만 저는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목사님,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믿습니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나도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복음이 전해진 지역이든 이교 사상이 판치는 지역이든, 누구도 믿음이 없이는 예수님께로 나아올 수 없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빛에 대한 적절한 반응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11:6)

이제 요한복음 10장을 보기 바란다.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그리스도인들도 삼위일체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을 망각해 버릴 때가 있다는 건 우스운 일이다. 요한복음 10:30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나는 당신에게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보여주겠다. “만약 그가 복음을 들어보았다면…” 이라든지 만일 이런 상황이었다면…”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뉴기니의 밀림에 사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속에 비춰 주신 빛(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진리)을 거부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만일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그분이 존재하신다는 진리의 빛을 비춰 주셨는데 당신이 그 진리를 거부한다면,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도 당신은 하나님을 보고 저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칠 것이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진리의 빛으로 조명을 받았는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받은 빛을 거부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불 호수에 던져버리시는 것은 정당한 행위이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신성(Godhead, 아버지 하나님, 말씀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이다.

우리가 로마서 1장에서 읽은 것을 다시 주의 깊게 살펴보자. 이교도들은 선교사들이 전한 복음을 거부했기 때문에 정죄 받는 게 아니다. 이교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빛, 그들이 태어날 때부터 받았던 그 빛을 거부했기 때문에 정죄를 받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좋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시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니라. 나는 이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나님의 아들은 고사하고 하나님도 있지 않은데! 우리는 하나님 같은 건 믿지 않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다른 진리도 믿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화론이 마귀의 걸작품이라는 이유이다. 하나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믿음(창조에 대한 믿음)을 제거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은 자동으로 믿지 않을 것이다.

로마서 1장의 말씀을 다시 보자. 그들이 하나님을 알되 그분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하며 오히려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became)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became)( 1:21) 하나님을 알되라는 표현을 주목해 보자. 어느 누구도 진리의 빛 없이 어둠 속에서 태어난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은 진리의 빛을 받았다. 그런데 진리의 빛을 거부하면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이다. 자기들의 상상 속에서 허망해지고 또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사람은 진리를 모르는 어두운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 어두워지는 것은 진리의 빛을 거부한 이후이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 사람들은 잘못된 것을 선언해서 어리석은 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마땅히 선언해야 할 진리는 무엇인가? 자신들이 아닌 하나님께서 지혜로우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어느 누구도 어리석은 사람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거부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된 것이다. 시편 53:1은 어리석음이라는 단어를 정의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하였도다. 인간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거지고 태어난다. 인간이 어리석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거부한 이후이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롭다고 선언하나 어리석은 자가 되어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것들과 같은 형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22-23) “목사님, 그런데 밀림에 사는 이 부족들은 새의 신을 믿고 자연을 신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다. 그런데 미국에 사는 사람들은 마돈나와 브리트니 스페어스와 뉴욕 양키스와 운동선수와 언론이 영웅으로 띄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섬기고 있다. 하나님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섬기고 있다! 왜인지 아는가? 그 형상과 돌멩이와 우상과 영화배우와 운동선수는 아무도 자신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은 왜 사람이 정죄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것이든,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 대한 것이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이든,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것이든,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것이든, 하나님에 대한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싫은 것이며 원하지 않는 것이며 거부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므로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신들의 마음을 드러내 보여주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정죄하시고 불 호수로 던져 넣으시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 밝은 면도 있을까? 물론이다. 예레미야서 29장과 로마서 1장과 요한복음 1장을 보자. 나는 당신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겠다. 우리가 살펴보는 말씀을 읽고 당신 스스로에게 답해보기 바란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주께서는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17세기 후반이나 18세기 초반의 빌라델비아 교회 기간 중에 있던 근대 선교운동이 이상하지 않은가? 복음이 전해지기 시작한지 1800년이나 되었는데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조나단 고포스(Jonathan Goforth)나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나 윌리엄 케리(William Carey)나 존 패톤(John Paton)이나 다른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중국과 인도와 세계 곳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200년이 지난 지금도 선교사들을 기다리는 곳이 있다는 게 이상지 않은가? 사도행전 2장의 일이 있은지 2,000년이나 지났는데도 뉴 트라이브 미션(New Tribes Mission)”같은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단체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이러한 선교사들의 수고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선교사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참으로 이상하다.

예레미야서 29:13을 보자. 또 너희가 너희 마음을 다하여 나를 찾으면 나를 찾고 나를 만나리라. 당신은 하나님께서 어디로 선교사를 보내는지 아는가?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받아들이고 더 많은 빛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당신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어느 집으로 인도하시는지 아는가? 주님께서는 고넬료처럼 진리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사는 집으로 복음전도자를 인도하신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기 바란다. 만일 성경이 사실이라면,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받아들이고 그 빛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주님께서 더 많은 빛을 주신다. 더 많은 빛을 받아들인 사람에게는 더욱 많은 빛을 주신다. 그렇다면 그렇게 빛을 받아들인 사람이 한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고 죽으면 어떻게 될까?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받아들인 사람이 한번도 성경을 읽어보지 못한 채 죽으면 어떻게 될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큰 흰 왕좌 심판석에서 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실 것이다.[2]

로마서 1:17을 보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된다. 성경은 사람이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여주신 것을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시고, 그러면 그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믿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보여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믿음이 믿음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으면 아들 하나님도 믿는다. 불신은 불신으로 인도한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은 아들 하나님도 거부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은 정죄하시고 어떤 사람은 용서하시는 행위를 정당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의 빛을 받았든지 상관없이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빛에 보인 태도로 그들을 대하신 것이다. 믿음에는 용서로 대답하시고 불신에는 정죄로 대답하신 것뿐이다.

다시 요한복음 1:15-16을 보자. 요한이 그분에 대해 증언하며 외쳐 이르되, 내가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분이 나보다 앞서신 것은 그분께서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라, 하며 언급한 분이 곧 이분이라, 하니라. 우리가 다 그분의 충만하심에서 받았으매 은혜를 대체하는 은혜니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받아들이면 주님께서는 더 많은 은혜를 주실 것이다. 믿음이 믿음으로 인도하고 은혜가 은혜로 인도한다.

구약성경은 메시아가 오실 것이고 그 메시아에 앞서 선두주자(forerunner)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당신은 메시아와 선두주자에 대한 예언을 믿은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침례인 요한이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을 때 그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요한 앞으로 나아와서 침례를 받았다. 그들은 선두주자를 받아들이고 그가 선포하는 말씀을 믿었던 것이다.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침례인 요한은 자신의 말을 믿고 구약성경을 믿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선두주자에 불과하다. 메시아께서 오신다. 보라. 저분이다. 저분이 바로 메시아시다!” 세상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성경은 침례인 요한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첫째 빛을 받아들이고 믿은 사람들은 둘째 빛도 믿는다. 그리고 셋째 빛도 믿는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침례인 요한을 싫어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빛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사는 누구든 의롭고 정당하게 심판하실 것이다.

 

문제는 밀림에 사는 사람이 아니다. 문제는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할 것이냐 이다. “예수님에 대해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 그렇다면 여전히 자신들의 종교와 자기의(self-righteousness)그래도 나는 옆집 사람보다는 훨씬 낫지.”라는 교만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셔야 할까? 복음에 대해서도 다 들어보았고 하나님과 그분의 심판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지 않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는 당신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셔야 할까?

이교도들은 어디로 가는가? 내가 아는 사람은 점심이 되면 식당에 간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 14:12) 당신은 하나님께 나아와 용서를 구한 적이 있는가? 만일 당신이 그런 적이 없다면 당신은 어떤 오지나 밀림에 사는 그 누구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있는 것이다. 당신이 더 많은 빛을 받았을 수록 나중에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해야 할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미국 같은 문명 국가에 사는 사람들은 더 많은 빛을 받았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을 것인가?

당신은 예수님을 믿은 적이 있는가?

당신은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아직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이교도들이 걱정 되는가?

당신은 그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선교사들을 지원하고 있는가?

당신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선교사로 갈 마음이 있는가?

  


[1] 로마서의 길(Romans Road)은 로마서에 나온 복음을 담고 있는 구절들을 의미한다.-역주

[2] 이것은 큰 흰 왕좌 심판석에서 구원의 기회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지 않은 사람은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므로 하나님의 아들(a son of God)이 되지는 못하지만 지옥에 가지는 않는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받아들인 사람은 비록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을지라도 불 호수에 던져지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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