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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묻는질문

  • Q: 술문제에 대해서
    A:

    Q 질문

    성경은 술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A 답변

    성경은 기본적으로 술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아래를 참고하세요.

     

    E 설명

    참고로 이 글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글임을 밝힙니다. 즉 성경이 그냥 이 세상의 책과 똑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글은 아무런 소용도, 쓸모도 없는 무의미한 글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교리(교리는 가르침이라는 뜻이며 특별한 주제에 대한 진리입니다)에 대한 무지로 인해서 잘못된 것을 가르치는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술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유독 한국 기독교만 술을 금지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한국과 동일하게 교회에서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성경과 술에 대한 이야기 중 매우 잘못된 것중 하나가 바로 예수님이 술을 드셨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 문제도 논쟁을 하자면 끝이 없기에 일단 여기서는 두가지 포인트만 잡아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먼저 성경이 술에 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관련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 번역과 관련된 이야기인데, 바로 그 유명한 에베소서 5:18의 문제입니다.

     

    한글개역성경은 이것을 "술취하지 말라"고 번역했지만 영어의 be not drunk with wine "술취하지 말라"가 아니라 "술마시지 말라"입니다. 이렇게 바르게 번역이 되어야 나머지 술에 대한 성경 구절들과 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I. 먼저 성경이 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하는지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술마시는 것의 해악성에 대해서 강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술의 해악성에 대한 진리는 성경에 너무나도 명백하고 빈번하게 제시되어 있으므로 아무도 성경의 경고를 무시하거나 피해가지 못할 것입니다. 다음에 제시된 55개의 성경구절들은 모두 술의 해악성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1. 창세기 9:20-27 성경에서 처음으로 구별되었던 사람이 술을 마심으로 인해서 그 아들의 범죄를 유발하게 되었습니다.

    2. 창세기 19:30-38 술을 마심으로 인해서 롯은 딸들과 동침하게 되었습니다.

    3. 레위기 10:8-11 주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동안 술이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4. 민수기 6:3 나사르 사람(나실인)은 주님께 서원을 한 후에 술이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5. 신명기 21:20 술을 마시는 것은 고집이 세고 반항하며 순종치 않는 행위와 동일한 것입니다.

    6. 사사기 13:4,7,14 삼손의 어머니는 주님의 천사로부터 술이나 독주를 마시지 말도록 명령받았습니다.

    7. 사무엘상 25:36-38 주님께서는 어리석고 악하며 술을 즐기던 사람인 나발을 쳐서 죽이셨습니다.

    8. 사무엘하 11:13 다윗은 우리야로 하여금 독주를 마시게 해서 죽음의 덧에 걸려 들게 했습니다.

    9. 사무엘하 13:28-29 암논은 술을 마시고 나서 자신의 형제인 압살롬의 종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10. 열앙기상 16:8-10 이스라엘의 왕인 엘라가 술을 마시고 취했을 때 그의 대장중 한 명이 그를 대적해서 그를 죽였습니다.

    11. 열왕기상 20:13-21 시리아의 왕인 벤하닷과 서른 두 명의 왕들이 장막에서 술을 마시고 취하였다가 적은 수의 이스라엘 군대 앞에서 패해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12. 에스더 1:5-22 아하수에로 왕은 일주일간에 걸치 파티와 술취함으로 인해서 왕비인 와스디를 사람들 앞에 불러내어서 자랑하려 하였으며 결국에는 이 일로 인해서 왕비를 폐위시키고 말았습니다.

    13. 잠언 20:1 술은 조롱하는 것이고 독주는 날뛰게 하는 것이므로 현명한 사람은 그것들에 속지 않습니다.

    14. 잠언 21:17, 23:21 술을 마시면 결국 가난하게 됩니다.

    15. 잠언 23:29-30 독주를 마시면 슬퍼하게 되고 재앙을 받게 되고 다투게 되며 재잘거리게 되고 까닭없이 상처를 입게 되며 눈이 붉게 됩니다.

    16. 잠언 23:21 술취하는 사람은 결국 가난하게 될 것입니다.

    17. 잠언 23:32 술은 결국 사람을 뱀같이 물 것이며 독사같이 쏠 것입니다.

    18. 잠언 23:33 술을 마심으로 사람의 마음은 불결해 지면 불결한 마음을 품게 합니다.

    19. 잠언 23:34 술을 마심으로 위험에 처하게 되고 사고를 당하게 되며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게 됩니다.

    20. 잠언 23:35 술을 마시면 몸의 감각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 다시 술을 찾게 되어 알코올 중독자가 됩니다.

    21. 잠언 31:4-5 국가를 경영하는 자들은 술을 멀리해야 합니다.

    22. 전도서 2:3 전도서의 기자는 자신이 독주를 마음껏 마셨으나 그것은 결국 헛된 일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전도서 2:11, 12:8)

    23. 전도서 10:17 성경은 몸의 건강을 위해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일을 멀리하는 지도자가 인도하는 나라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4. 이사야 5:11-12 성경은 독주를 마시는 자들에게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25. 이사야 5:22 성경은 술취하는 자들에게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26. 이사야 22:13 술취함은 육신적인 생활로 인도합니다.

    27. 이사야 28:1 성경은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에게 저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28. 이사야 28:3 하나님께서는 술취한 자들을 발 밑에 짓밟히게 하셨습니다.

    29. 이사야 28:7 대언자들과 제사장들이 술을 마심으로 인해서 영적인 w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30. 이사야 56:12  술을 마시는 사람은 술주정뱅이 동료를 만나게 되며 자신의 죄가 결코 발각되지 않으리라는 헛된 희망을 갖게 됩니다.

    31. 예레미야 35:5-8 술마시기를 거절했던 레갑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32. 다니엘 1:5-8 왕의 술을 마시기를 거절했던 다니엘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33. 다니엘 5:1-2 자신이 술을 마시고 다른 사람도 술을 마시게 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과 다른 사람 모두 하나님께 죄를 짓게 만드는 것입니다.

    34. 다니엘 5:3 술마시는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35. 다니엘 3:25-28 술마시는 행위는 도덕적인 타락을 가져오며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36. 호세아 4:10-11 술을 마시는 것과 행음하는 것은 함께 일어나는 일입니다.

    37. 호세아 7:5 술을 마시는 자는 병에만 걸리는 것이 아나라 비웃는 자가 됩니다.

    38. 요엘 3:3 성경은 술을 마시기 위해서 젊은 여인을 파는 자들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39. 아모스 4:1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궁핍한 자들을 짓밟는 자들은 술을 마시는 자들입니다.

    40. 아모스 6:3-6 술을 마시는 악하고 게으른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41. 하박국 2:5 거만한 마음은 술취함으로 인해서 생기게 됩니다.

    42. 하박국 2:15 다른 사람이 술을 마시도록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43. 하박국 2:16 술을 마시면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44. 마태복음 24:48-51 술취하게 되면 결코 깨어 있을 수 없습니다.

    45. 누가복음 1:15 여자가 낳은 자중 가장 큰 자인 침례인 요한은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46. 누가복음 12:45 그리스도께서는 술취함에 대해서 경고하셨습니다.

    47. 누가복음 21:34 술을 마시는 것으로 인해서 사람은 심판의 날을 준비하지 못하게 됩니다.

    48. 로마서 13:13 모든 사람이 술취하거나 흥청거리지 말고 정직하게 행해야 합니다.

    49. 로마서 14:21 그리스도인은 형제가 실족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술을 마시면 말아야 합니다.

    50. 고린도전서 5:11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술취하는 자들과 함께 하지 말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51. 고린도전서 6:10  술취하는 자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전파에는 술에 대한 경고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52. 고린도전서 11:21 주님의 만찬은 술취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53. 갈라디아서 5:21 술취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게 됩니다.

    54. 에베소서 5:18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이 술을 마시지 말고 성령으로 충만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55. 디모데전서 3:3,8 교회의 인도자들은 술을 마셔서는 안됩니다.

     

    성경에는 술마시는 사람들이나 장면이 등장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하는 모범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술마시는 행위에 대해 반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술마시는 행위를 용납하거나 술취하는 자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세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술취함으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러한 술취함으로부터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지켜야 합니다.

     

    II. 이제는 에베소서 5:18의 문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의 출처는 http://moogi.new21.org/ 이며 김용묵 형제의 글입니다).

    be drunk

    "마시다"란 뜻입니다. 이 표현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레위기 11:34가 뜻을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그런 그릇으로 마시는(that may be drunk in) 모든 음료도 부정할 것이며

     

    따라서 엡 5:18 “And be not drunk with wine”술 취하지 말라가 아니라, 아예 (포도주)을 마시지 말라로 번역해야 합니다.

    be drunken, have been drunken

    be drunk와는 달리 언제나 "술 취한"이란 뜻입니다. 성경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술 취한 장면(노아)에서도 쓰였고, 제사장 엘리*가 한나가 술에 취한 줄 알았다고 진술할 때도 쓰였습니다. (9:21, 삼상1:13, 삼상1:14, 삼상1:15, 29:9, 49:26, 3:11, 12:45, 2:15, 고전11:21, 살전 5:7, 17:6 참고)

    drunken (형용사, 명사)

    역시 한 치의 예외 없이 술 취한이란 뜻입니다. 쉽죠? (12:25, 107:27, 19:14, 51:21, 23:9, 1:10, 24:49 참고)

    have drunk/drunken

    자동사로 쓰였든, 뒤에 목적어가 붙었든 of가 붙었든, 성경에서 have가 붙은 완료형은 drunk, drunken 공히 언제나 "그냥 마시다"입니다. 술이든 물이든 그냥 마신 겁니다. 성경에서 굉장히 자주 나오는 표현입니다.

     

    wine이 목적으로 붙었다면, 상황에 따라 포도주나 포도즙으로 나눠서 번역하게 됩니다.

     

    have drunk : 29:6, 15:19, 3:7, 삼상1:9, 삼상30:12, 왕상13:22, 왕상13:23, 왕하6:23, 왕하19:24, 5:1, 37:25, 51:17, 34:18, 5:23, 1:16, 5:39, 13:26

    have drunken : 삼상1:15, 51:17, 49:12, 51:7, 5:4, 17:8

    , 이 원칙에 따르면 요 2:10은 어떻게 번역될까요?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즙을 내고 사람들이 충분히 마신 뒤에(have well drunk) 덜 좋은 것을 내거늘 ...”

     

    처음에는 좋은 포도주를 내었다가 사람들이 슬슬 "취하고" 나면 나쁜 술을 내는 게 아닙니다. 그냥 충분히 마신 뒤에입니다!!

     

    예수님은 절대로 사탄 마귀의 도구인 술을 만드는 이적을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be) make (목적) drunk/drunken (with)

    make가 앞에 나오면 drunk, drunken 공히, 술이든 무엇이든지에 "취하다", 또는 "취하게 하다"로 번역됩니다. 다윗이 우리야를 술취하게 해서 집에 돌려보냈다고 할 때도 이 표현이 쓰였습니다.

     

    make drunk : 32:42, 삼하11:13, 63:6, 51:57

    make drunken  : 48:26, 51:7, 51:39, 3:15, 2:15

     

    drink oneself drunk

    이것도 열왕기상에서만 두 번 나오는 특이한 표현인데 "()취하다"입니다. drink와 대조되어 뜻이 명확합니다. (왕상16:9, 왕상20:16)

     

    * * * * * *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drunk make drink가 앞에 와서 분사 형태로 쓰일 때만 '취하다'이고 나머지는 '마시다'입니다. drunken have가 와서 완료 형태로 쓰일 때만 '마시다'이고 나머지는 '취하다'입니다.

     

    술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을 구할 때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 Q: 지옥에 관해서
    A:

    Q 질문

    1. 베드로전서 3:19과 4:6의 의미는 무엇인지요?

    벧전3:19-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으니

    벧전4:6-이런 까닭에 죽어 있는 자들에게도 복음이 선포되었나니

                 이것은 그들이 육신으로는 사람들을 따라 심팡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2. 죽은 후에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지요?

    3. 예수님이 지옥에 가신 의미는 무엇인지요?

     

    A 답변

    1. 설명 참조

    2. 죽은 이후에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3.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E 설명

    1. 베드로전서 3:19과 4:6은 상당히 유사하지만 서로 다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단 3:19에서는 “선포”하고 있지만 그것이 복음이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4:6에서는 복음을 선포하였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4:6의 죽은 자들은 3:19의 감옥에 있는 영들이 아닙니다. 또한 4:6은 3:19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3:19의 영들은 사람의 영이 아닙니다. 성경은 천사를 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히 1:7,13). 이들은 노아의 날에 죄를 지은 천사들로 창세기 6:2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이었습니다(벧전 3:20. 창 6:2). 이들 죄지은 영들은 큰 심판의 날이 이르기까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유6). 성경에서는 이 감옥을 지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벧전 2:4).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기 전의 지하세계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그 중 두 부분은 지옥에 속한 곳이며 한 부분은 지옥과 마주 대하고 있으나 지옥에 속하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지옥의 두 부분 중 한 곳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지옥입니다. 그리고 지옥의 다른 한 부분은 바로 영들이 갇히는 감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계시록 20:1에서는 끝없이 깊은 구렁이라고 부릅니다. 이곳은 베드로전서 3:19과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지옥과 마주 대하고 있는 곳은 아브라함의 품이라고 불리는 낙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에 죽은 모든 구원받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즉 정리하면 한쪽에는 지옥이 있고 반대 편에는 낙원이 있으면 그 사이에 끝없이 깊은 구렁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과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여 거기서 몇을 구원하셨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낙원에 가셔서 구원받은 구약 성도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고(요 5:25) 그들을 데리고 셋째 하늘로 올라가신 것입니다(엡 4:8).

     

    2. 성경은 죽음 이후의 기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이후에는 심판과 형벌이 있습니다(히 9:27). 구원이 영원한 것처럼 형벌도 영원합니다.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고통이 영원 무궁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계20:10).

     

    3. 예수님이 지옥에 가신 것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그의 몸은 삼일간 무덤에 있었으며(마 12:40, 눅 23:51-55), 그의 영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갔고(눅 23:46, 성령이 아닌 인간의 영을 말하는 것임), 혼은 땅의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엡 4:9) 죄에 대한 헌물로서(사 53:10) 지옥에 가서 우리의 죄를 그곳에 던지셨습니다. 그리고 지옥에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선포하신 후에(벧전 3:19) 낙원에 가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데리고 셋째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엡 4:8).

     

    부족한 답변이지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Q: 이혼과 재혼에 관해서
    A:

    Q 질문

    1. 성경에서는 이혼한 사람들에 대해 어떠한 관점으로 보는지 (죄의 측면, 이혼한 사람과 재혼한 배우자에 대한 성경적 관점)

    2. 위 사람이 어떠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재혼이나 혹은 독신의 선택에 있어서) 성경에 근거해 알고 싶고

    3. 율법적인 것과 우리의 삶에서 현실적인 선택(율법을 모두 지키고 살지는 않으므로)의 문제에 관한 것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A 답변

    1. 성경은 기본적으로 이혼을 반대합니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 이혼이 죄일 수도 있고 죄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 이혼한 사람이 재혼을 하든지 혼자 살든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입니다.

    3. 그리스도인은 율법이나 율법적인 것에 메여 살 필요가 없습니다.

     

    E 설명

    1.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반대하십니다. “그런즉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육체이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거늘”(마 19:6) 이것이 성경의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이혼이 허용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이혼이 허용되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배우자의 간음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 외에 다른 이유로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며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자는 간음하느니라, 하시니라.”(마 19:9)

     

    성경은 상대방 배우자가 음행을 했을 경우 이혼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명백합니다. 음행의 이유 외에 다른 이유로 이혼한 사람이 재혼을 하면 그것은 간음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 부부의 이혼 사유로 간음 외에는 다른 것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상대방 배우자가 간음을 했다면 이혼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라면 이혼하는 것이 잘못하는 것이 아니며 죄를 짓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잘 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간음한 배우자와 이혼하는 것이 “잘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잘”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상대방을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만일 아내나 남편이 간음을 했는데 용서를 구한다면 용서를 해 주는 것이 잘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간음한 상대방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이혼하십시오. 그것이 잘 하는 일은 아니지만 가능한 일이며 죄를 짓는 일도 아닙니다.

     

    (2) 배우자의 유기

    “그러나 믿지 않는 자가 떠나거든 떠나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그런 경우에 속박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에 이르도록 우리를 부르셨느니라.”(고전 7:15)

     

    부부 중 한 사람이 다른 한 쪽을 떠난다면 이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는 “배우자의 유기”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이러한 경우에 이혼이 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인 부부들에게 헤어지고 싶은 사람과 마음대로 헤어질 수 있다고 하는 말씀은 아닙니다. 이것은 구원받지 않은 한쪽 배우자가 떠나가 버리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 그리스도인이 어떠한 이유를 들어 다른 한 쪽을 떠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배우자의 간음과 유기가 성경에서는 말씀하시는 “가능한” 이혼 사유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유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이혼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위의 경우는 이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 이혼을 “해라”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령하노니 명령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주시니라. 아내는 자기 남편을 떠나지 말라. 그러나 그녀가 떠나거든 결혼하지 말고 지내든지 아니면 자기 남편과 화해하라. 또한 남편도 자기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전 7:10-11)

     

    성경에는 간음과 유기 외에 다른 이혼 사유가 없습니다. 이 외의 이유를 들어 이혼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것이며 죄를 짓는 것입니다.

     

    2. 성경은 이혼한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방금 살펴본 구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령하노니 명령하는 이는 내가 아니라 주시니라. 아내는 자기 남편을 떠나지 말라. 그러나 그녀가 떠나거든 결혼하지 말고 지내든지 아니면 자기 남편과 화해하라. 또한 남편도 자기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전 7:10-11)

     

    성경은 이혼한 부부가 다시 합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것이라면 아예 결혼하지 말라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소위 “유책 배우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부부가 이혼하는 데에 한쪽만 잘못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한쪽이 “결정적인 잘못”(간음이나 유기)을 저지르는 경우는 흔한 일입니다. 결정적인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유책 배우자”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재혼을 하지 말고 지내든지 아니면 자신의 배우자(유책 배우자가 아닌 사람)에게 돌아가야 합니다. 유책 배우자가 아닌 사람은 이런 권고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상대방의 잘못으로 혼인이 파탄난 경우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롭게 재혼할 수 있습니다. “네가 아내에게 매여 있느냐? 벗어나려 하지 말라. 네가 아내에게서 놓여 있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장가를 가도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며 처녀가 시집을 가도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들에게는 육신 안에 고난이 있으리라. 오직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고전 7:27-28)  “아내는 자기 남편이 살아 있을 동안에 법에 의해 매여 있으되 자기 남편이 죽으면 자유롭게 되어 자기가 원하는 자에게 시집갈 수 있거니와 오직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전 7:39)

     

    3. 율법은 영적이고 선한 것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그것을 지킬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율법적인 것을 지키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율법으로 구원받지 않은 것처럼(갈 2:16, 3:10-11, 5:4-7) 율법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관계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다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기 위하여 항상 그것들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저주받은 자니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눈앞에서는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느니라.”(갈 3:10-11)

     

    그리스도인의 마음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롬 5:5).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하려고 할 때 율법이 동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혹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자유가 있으므로 죄가 아닌 것에 한에서는 자유롭게 선택 할 수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가 다 유익을 주는 것은 아님이 분명합니다. 죄는 아니지만 전혀 유익하지 않은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게 행하되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쪽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젠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서 우리가 한 선택에 대해서 주님께 회계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롬 14:10, 고후 5:10).

     

    부족한 답변이지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Q: 여호수아 2장과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라합이 동일 인물인가요?
    A:

    Q 질문

    여호수아 2장에 나오는 창녀 라합이 마태복음 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언급되는 라합과 동일 인물인가요? 동일 인물이라면 증거가 되는 말씀이 있는지요? 답변 부탁드립니다.

     

    A 답변

    동일인물일 가능성도 있지만 성경에는 명확한 증거구절이 없으므로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E 설명

    여호수아와 마태복음에 나온 라합에 대해서는 두 가지로 견해가 나뉩니다.

     

    (1) 동일 인물일 것이다

    가장 전통적인 견해입니다. 여호수아에 나오는 창녀라합이 주님의 조상으로 언급되는 라합과 일치하는 인물이라는 견해는 수많은 기독교 저술가들뿐만 아니라 유대인 작가들의 견해이기도 합니다.[1] 라합이 창녀였으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계보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견해는 지금도 가장 전통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2] 이 견해에 따르면 그녀는 창녀였으나(수 2:1,3, 6:17-25) 믿음으로 정탐꾼들을 도왔으며(히 11:31) 의롭게 되었습니다(약 2:25).

     

    (2) 다른 인물일 것이다

    우리말로는 모두 “라합”이라고 번역되었지만 킹제임스성경 여호수아 2:1에서는 “Rahab”이라고 되어 있고 마태복음 1:5에서는 “Rachab”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는 구약과 신약에서 동일 인물 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의 철자가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가장 대표적인 예로 “이사야”를 들 수 있음). 그러나 이름이 다른 것으로 보아 일단 다른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서 2:25과 히브리서 11:31에서 라합을 언급하는 경우 “Rahab”이라고 하여 구약성경의 표기를 따랐습니다. 이 두 구절은 명백하게 여호수아 2장의 라합을 가르키는 경우입니다. 반면에 마태복음에서 보아스의 어머니 라합에 대해서 언급할 때는 전술한 바와 같이 “Rachab”이라고 하여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의 경우와는 다른 철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둘 때 신약성경의 저자(성령님)는 여호수아에 나오는 창녀 라합과 보아스의 어머니 라합이 서로 다른 인물임을 말씀하고 있는듯 합니다.

     

    두 라합이 서로 다른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또다른 이유는 두 인물이 살았던 연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리고성 정복이 BC 1401년이고 이때 여호수아의 나이가 대략 30세 쯤이라고 하고 재판관기의 시작을 이로부터 40년 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룻기를 재판관기의 어디쯤 놔야할지 입니다. 만일 룻기를 재판관기의 시작부분에 놓는다면 창녀 라합이 보아스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의 재판관은 에훗이 될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보아스가 룻과 결혼할 당시 보아스의 나이는 80대라고 추측할 수 있는데 룻기를 읽어보면 이러한 주장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만일 룻기가 재판관 에훗 시대가 아닌 재판관 기드온 시대라면(기드온 시대는 여리고 정복으로부터 대략 240년 정도 이후임) 여호수아 2장의 라합과 마태복음 1장의 라합은 같은 사람일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연대를 인용할 때 언급하는 제임스 어셔에 따르면 룻기는 세번째 재판관인 삼갈(삿 3:31)의 때와 같은 시기이며 이것은 여리고성 정복으로부터 대략 180년이후가 됩니다.[3] 이렇게 되면 역시 두 인물은 다른 일물이라는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3) 결론

    여호수아 2장과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라합이 동일 인물일 것이라는 확실한 성경적인 증거가 없습니다.[4] 또한 연대에 대한 것도 완벽히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위의 두 가지 견해 중 어느 것이 맞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답변이지만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1] Lockyer, Herbert, All the Women of the Bible, Zondervan, 1967, p131

    [2] Ironside, H.A., An Ironside Expository Commentary Matthew, Kregel, 2005, p12, J. Vernon McGee, Thru the Bible Vol. IV, Thomas Nelson Publishers, 1983, p9, 이 외에도 올리버 그린 등 보수적인 학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은 모두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합니다.

    [3] Heaton, Paul E., Ruth A Story of Devotion, Virtue and Love, Morris Publishing, 1995, pp94-95

    [4] Ruckman, Peter S., The Book of Matthew, Pensacola Bible Institute, 1970, p3

  • Q: 누가복음 7:19의 침례 요한의 질문에 관해서
    A:

    Q 질문

    침례요한은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심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는데, 왜 누가복음 7:19에 나오는 질문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답변

    아마도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E 설명

    “요한이 자기 제자들 중에서 두 사람을 불러 그들을 예수님께 보내며 이르되, 선생님이 오실 그분이오니이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눅 7:19) 저도 지금까지 이 구절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침례인 요한도 다른 유대인들과 같이 메시야로서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에 침례를 줄때는 알아봤는데 나중에 의심에 빠진 것이 아닌가 추측하는 것입니다. 즉 왕국을 회복할 메시야를 바랐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때 사역은 당시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이스라엘을 회복할 메시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게다가 침례인 요한은 감옥에 갇혀서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 되었을 것이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의심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도 때로는 위축되고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한(혹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의심이 일어날 때가 있지요. 엘리야도 나약해져 도망칠 때가 있었듯이 말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주석가들의 설명입니다(Wiersbe, Warren W., The Bible Exposition Commentary, 2001, p196, 다른 주석가들의 견해도 이와 비슷함).

     

    개인적인 견해를 말씀드리면, 결과론적으로 보았을 때 누가복음 7:19의 질문으로 인해 예수님께서 바로 그 그리스도가 맞다는 것이 한번 더 증거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침례인 요한의 사역은 예수님께서 그 그리스도이심을 세상에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감옥에 갇혀서 까지 제자들을 통해 질문을 함으로 주님께서 자신에 대해서 증거하시는 답변을 다른 여러 사람들과 특히 성경을 읽는 독자들까지 듣게 한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께서 보통의 경우에는 바로 직접적인 답변을 주시는데 반해 누가복음 7:19의 질문에는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답변을 주십니다. 즉 구약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그리스도가 바로 자신이심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예언과 예수님을 통한 그 성취는 당시 질문을 하던 요한의 두 제자 외에 다른 유대인들도 모두 알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을 종합해서 볼 때 요한의 질문으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한번 더 증거한 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답변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Q: 토요일 외의 안식일에 관해서
    A:

    Q 질문

    성경에서 익히 알고 있는 7일째 되는 일반적인 안식일이 있습니다. 이것 외에 다른 안식일도 있는지요?

     

    A 답변

    예 그렇습니다. 7일째 있는 안식일(토요일) 외에 다른 특별한 안식일도 있습니다.

     

    E 설명

    특별한 안식일은 기본적으로 절기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관련해서 살펴보면, 주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드려졌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의 유월절이라는 절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유대인들의 달력으로 첫째달 14일이 바로 유월절입니다(레 23:5). 그리고 다음날이 무교절입니다. 그런데 무교절은 하루가 아닌 7일입니다(레 23:6). 무교절(7일)의 첫째날과 마지막 날에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레 23:7,8). 즉 이 날은 안식일인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에는 일주일의 7일째되는 날(토요일)로서의 안식일 외에 명절과 관련한 특별 안식일이 나옵니다.

     

    부족한 답변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 Q: 예수님이 돌아가신 요일에 관해서
    A:

    Q 질문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에 대해서 대부분 금요일에 돌아가셔서 주일날에 부활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따져보니 틀립니다. 예수님께서 수요일에 돌아가셨다고 추정해보는데 이에 대한 생각이 타당한지 여쭙고 싶습니다.

     

    A 답변

    예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요일에 돌아가셨습니다.

     

    E 설명

    신약성경 복음서 여러 곳에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three days and three nights)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마 12:4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시간은 수요일 오전 9시경이며 돌아가신 시간은 오후 3시입니다. 이후로 삼일 밤(three nights)을 더하면 목요일 저녁, 금요일 저녁, 토요일 저녁이 됩니다. 또 삼일 낮(three days)을 더하면 목요일 오전, 금요일 오전, 토요일 오전이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주의 첫날인 토요일 저녁 6시(창 1:5,8,13 참조, 유대인들의 하루 개념은 “아침->저녁”이 아닌 “저녁->아침”임을 생각할 것)에 무덤에서 나오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수요일이 끝나기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일요일이 시작될 때 부활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최소한 3일이후(After three days)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27:63, 막 8:31). 그러면 사흘(삼일밤낮)-목,금,토요일을 지하세계에 계셨던 것이 되며 성경의 설명과 부합합니다.

     

    부족한 답변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 Q: 결혼에 대해서
    A:

    Q 질문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남녀간의 육체관계가 혼인의 시작인것인지요?

     

    A 답변

    , 그렇습니다.

     

    E 설명

    성경적인 원칙은 남녀가 육체적인 관계를 맺으면 결혼한 것입니다. 다만, 모든 법칙이 그렇듯이 여기에도 예외가 있습니다.

     

    먼저 성경에 나온 첫번째 결혼을 통해서 성경적 결혼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서 나온 첫번째 결혼은 창세기 2장에 나온 아담과 이브의 결혼입니다. 우리 민법에 따르면 혼인신고를 하여야 비로서 법적인 부부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민법 제812조). 그러나 창세기 2장에는 혼인신고도 없고 결혼식도 없지만 아담과 이브가 부부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성경은 남녀가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안다(know)”라고 표현을 합니다(창 4:1; 마 1:25 참조). 그래서 혼인신고나 결혼식이 없어도 남녀가 동침함으로 부부로 맺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원칙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도 존재합니다. 즉 모든 남녀의 육체관계가 결혼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들어 처녀가 강간을 당했다면 비록 강간범과 육체적인 관계를 맺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혼이 아닌 것입니다(신 22:23-29). 신명기 22장에서는 처녀가 강간당했을 경우, 처녀가 자신을 강간한 사람과 함께 살기 원하면 그녀를 강간한 남자는 처녀의 아버지에게 은 오십 세겔을 주고 그 처녀를 아내로 삼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처녀가 원하지 않을 경우는 그 남자는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강간 당한 처녀가 자신을 강간한 남자와 부부가 되는 것을 원할 경우 성경은 그것을 결혼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술한 바와같이 처녀가 원하지 않을 경우 남자는 죽임을 당합니다. 즉 육체적인 결합을 결혼으로 인정하면서 경우에 따라서는 예외도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또 다른 예외는 창녀와의 육체적인 결합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창녀와 결합하는 것이 한 육체를 이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6:16). 그러나 이것을 정상적인 혼인관계라고 보지 않고 음행(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간음)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고전 6장의 문맥을 참고). 즉, 창녀와 결합하는 것은, 남자가 혼인한 경우에는 간음하는 것이고, 혼인하지 않은 경우에는 음행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창녀와의 육체적인 결합이 주님 앞에서 합당한 혼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고린도전서 6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성경적인 의미에서의 결혼은 남녀가 육체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다만 정당한 국가의 권위를 따른다는 의미에서 혼인신고를 하고(혼인신고는 부부관계를 보호하는 것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다른 사람들에게 부부임을 공개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결혼 예식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결혼 예식은 성경적인 것임,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생각해 볼 것, 단 사정이 있어서 결혼 예식을 치르지 못하는 것이 죄는 아님).

     

    부족한 답변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형제님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Q: 부모에게 순종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A:

    Q 질문

    6:1 에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의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골3:20에서 자녀들아, 모든 일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주를 매우 기쁘게 하느니라.

    성경에 여러 말씀 가운데에서 "주 안에서"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주안에서"라는 조건적인 표현이 등장하다가... 골로새서에서는 "모든 일"이라는 구절이 등장합니다. 위 말씀들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저는 솔직히 전에 주안에서는 주님의 말씀과 관련한 내용에 대한 것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일이라는 구절에서는 부모님말씀이라면 무조건적 순종이라는 의미도 포함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질문을 올립니다. 좋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행하시는 형제님 되시길 바랍니다.

     

    A 답변

    부모가 구원받았던지 구원받지 않았던지 상관없이 자녀들은 모든 일에 순종해야합니다. 단,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을 시킨다면 두 경우 모두 순종할 수 없을 것입니다.

     

    E 설명

    에베소서 6:1의 문맥은 뒤의 6장 나머지와 더불어 앞의 5장의 연장선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5장에서 아내와 남편, 6장에서는 자녀와 부모들에 대한 권고가 나옵니다. 지금 말씀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은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아내들과 남편들, 그리고 구원받은 자녀들과 부모들에게 권고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녀들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부모의 권위아래 복종해야 합니다.

     

    골로새서의 구절도 3장의 문맥을 살펴보면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의 권면대상도 구원받은 아내들과 남편들, 자녀들과 아버지들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자녀는 구원받은 부모에게 주 안에서 모든 일에 있어서 순종해야 합니다.

     

    다만 부모가 구원받지 않았을 경우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하는가를 문제삼을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답해야 한다면, 부모가 구원받지 않은 경우에라도 자녀들은 모든 일에 순종하는 것이 옳다고 답하겠습니다.

     

    그러면 혹자는 “구원받지 않은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을 시켜도 순종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반문에는 같은 식으로 재반문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을 시켜도 순종해야 하는가?” 답변은 “그렇지 않다”일 것입니다. 부모가 구원을 받았던지 받지 않았던지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것을 시킨다면 순종할 수 없겠지요(왕상 15:12-14를 참조해 보세요). 그러나 마찬가지로 부모가 구원을 받았던지 받지 않았던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지 않는 것을 시킨다면 모든 일에 있어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느 책이나 종교보다 더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이 네게 주는 땅에서 네 날들이 길리라.”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0:12의 말씀을 유대인들에게는 돌판에 기록해 주셨고 이방인들에게는 마음판에 기록해 주셨습니다(롬 2:14-15).

     

    부족한 답변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우리 주님의 풍성하신 은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 Q: 형제라는 호칭에 대해서
    A:

    Q 질문

    교회에서 서로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것은 바른 것인가요?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교회들에서는 서로 형제자매라고 호칭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목사님께도 형제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이 바른 것인가요?

     

    A 답변

    , 그리스도인은 서로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적인 일입니다.

     

    E 설명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부르는 가장 아름다운 호칭은 형제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한 몸을 이룬 지체들끼리는 서로 형제라고 부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과 서신서를 읽어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가 모두 다 한 형제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불리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한 분 곧 그리스도이니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 23:8)

     

    그래서 베드로도 바울을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인 줄로 여기라. 심지어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자기가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벧후 3:15)

     

    심지어 주님께서도 자신을 믿는 자들을 형제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요 20:17)

     

    온 세상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형제라고 부르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서로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일입니다. “거룩히 구별하시는 분과 거룩히 구별된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났으니 이러한 까닭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히 2:1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시고 또 형제로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Q: 하늘에 있는 처소에 대해서
    A:

    Q 질문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1. 요한복음 14:2에 나오는 “거할 곳”과 고린도후서 5:1에 나오는 “영원한 집”은 같은 것 인가요?

    2. 변화된 몸을 입은 성도도 집에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나요? 재림 이전에 성도들이 죽으면 가는 하늘나라의 집과 재림 이후 천년왕국때 거할 집이 차이가 있는지요?

     

    A 답변

    1. 같은 것이 아닙니다.

    2. 집이 필요할 것입니다. 재림 이전의 하늘나라와 천년왕국때 그리스도인들이 거할 곳은 차이가 있습니다.

     

    E 설명

    1. 요한복음 14:2에서 말씀하시는 집은 사람이 들어가 거할 수 있는 물질적이고 실제적인 집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고린도후서 5:1의 “영원한 집”은 죽은 성도들의 몸을 대체할 “무엇”을 의미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의 문맥을 보시면 이것이 하늘이나 땅에 있는 실제적인 집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5:1에서 말하는 “장막”은 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벧후 1:13, 빌 1:21-23 참조). 2절 이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5:1에서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은 몸을 대신할 “무엇”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재림 전에는, 구원받은 성도라 할지라도 들림받을 때 몸의 변화를 받기 전에는 몸이 없는 상태로 하늘나라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피터 럭크만의 견해에 따르면 이때 몸을 대신할 무엇인가를 받는 것일 수 있습니다(럭크만의 고린도후서 5:1 주석 참조). 아니면 들림받을 때 우리의 몸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처럼 변화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고전 15:51-53 참조).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늘에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신 것을 보면 집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재림 전까지 하늘에 가서 거할 집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요 14:2). 변화된 몸을 입은 성도들에게 왜 집이 필요한지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죽음이후에 우리가 갈 곳이나, 주님의 재림 이후에 우리가 살게 될 곳은 영적인 장소가 아니라 실제적인 장소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천년왕국은 물질적으로 눈에 보이게 하나님에 의해서 지상에 세워질 실제적인 왕국입니다. 새예루살렘도 실제적인 도시입니다. 실제적인 도시라면 그 안에 집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받게될 몸도 실제적인 몸입니다(고전 15:51, 요 21장 참조). 따라서 “실제적인 몸”(변화된 몸)을 입은 성도가 “실제적인 집”에 거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재림 이전에 성도가 죽으면 셋째 하늘로 올라가서 몸의 구속이 이루어 지기까지 기다리게 됩니다. 반면에 천년왕국때에는 셋째 하늘에 있는 곳으로 가지 않고 지상에 거하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게될 것입니다(눅 19:11-27, 계 1:6, 2:26-27 참조).

     

    부족한 답변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주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Q: 예수 그리스도의 왕의 퇴위식과 하나님의 복음에 대해서
    A:

    Q 질문

    질문은 두 가지입니다.

    1. 고린도전서 15:27-28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퇴위식에 대한 것인가요?

    2.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은혜의 복음은 같은 복음인가요?

     

    A 답변

    1.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2. 같은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E 설명

    1. 고린도전서 15:24-28에 대한 클라렌스 라킨의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20장에서 천년왕국이 등장합니다(계 20:1-2). 그리고 천년왕국이 끝나고 백보좌 심판이 열리게 됩니다(계 20:11-15). 따라서 계시록 21-22장의 왕국은 천년왕국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킨은 천년왕국과 계시록 21-22장의 왕국을 분리해서 보며 서로 다른 왕국으로 생각합니다. 라킨은 새하늘과 새땅이 펼쳐지는 계시록 21-22장의 왕국을 “완벽한 왕국”으로 여깁니다. 이사야 66:22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하늘과 새땅에도 여전히 남아있게 되고, 신명기 7:9에 의하면 그들은 천대까지 존속할 것입니다. 따라서 한 세대를 33년으로 봤을 때 천대는 33,000년이 되겠지요. 그리고 나서 33,000년이 지나면 “완벽한 왕국”이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분이신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돌아가며 영원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라킨의 견해입니다.

     

    이에 반해 피터 럭크만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25절은 천년왕국에 대한 설명입니다(계 20:1-9). 26절은 백보좌 심판에 대한 설명입니다(계 20:10). 27절도 백보좌 심판입니다(빌 2:9-10). 28절은 백보좌 심판 후에 대한 설명입니다(계 21:1). 계시록에서는 어린양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에 걸쳐서 나오는데 3번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계 21:9,14,17). 그 후에는 아버지와 어린양이 동격으로 표현됩니다(계 21:22,23, 22:1,3). 어린양과 아버지를 표현하면서 왕좌를 단수로 표현하는 것에 주목하십시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즉 요 1:1-1의 “처음(태초)”로 돌아가시는 상황이라고 보면됩니다. 요약하면 천년왕국이 끝나고 백보좌 심판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아닌 한분으로서의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돌아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삼위일체 자체가 이해하기 쉬운 주제가 아니지요. 여기까지가 럭크만의 견해입니다(고린도전서 주석 15장 주석 부분 참조하세요. 말씀보존학회 출간 한글번역서에는 이부분 설명이 빠져있지만 영어로된 원서에는 이부분 설명이 있습니다).

    이 두 견해 이외에 다른 성경적인 견해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2.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롬 1:1)”, “그리스도의 복음(고전 9:12)”, “화평의 복음(엡 6:15)” 등의 여러 명칭으로 불립니다. 이 복음이 무엇으로 불리든 간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왕국과 관련이 있습니다(요 4:24, 눅 17:20-21, 롬 14:17).

     

    부족한 설명이나마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형제님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 Q: 집사에 대해서
    A:

    Q 질문

    질문은 집사에 대한 두 가지입니다.

    1. 사도행전 6:3에서 일곱사람을 선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이 집사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들은 집사가 아니라 일곱명의 신실한 형제나 성도가 아닐까 합니다.

    2. 디모데전서 3:12에서는 집사가 한 아내의 남편이며 자녀들과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결혼하여 아내가 있을지라도 자녀가 없다면 집사의 자격이 없는 것인지요?

     

    A 답변

    1. 사도행전 6장의 일곱사람들은 집사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2. 디모데전서 3장에 어느정도 부합한다면 자녀가 없을지라도 집사의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E 설명

    1. 지역교회를 섬기기 위해서 안수하여 세우는 직분은 목사와 집사로 볼 수 있습니다(딤전 5:22, 빌 1:1, 행 6:6). 사도행전 6장의 형제들도 안수받은 것으로 봐서 목사나 집사라고 할 수 있는데, 기도와 말씀의 사역외의 교회일을 맡는 직분인 걸로 봐서는 집사라고 보는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신약교회의 신비에 대한 것은 에베소서 3장에 의하면 사도 바울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사도들에게 교회에 대한 계시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교회가 존재했던 것처럼, 집사에 대한 온전한 계시가 나중에 사도 바울에게 주어졌다 할지라도 집사라는 직분이 먼저 존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2. 디모데전서 3장에 나온 집사의 자격은 “이상적인”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사실은 디모데전서 3장에서 “집사의 자격” 앞에 언급한 “목사의 자격”부터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3절에 “(감독은) 오직 인내하며 말다툼하지 아니하며 탐욕을 부리지 아니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목사가 단 한번이라도 말다툼을 하게 된다면 목사의 직을 그만 두어야 하는 것일까요? 디도서 1장에서도 감독의 자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독은) 오직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며…” 단 한번이라도 손님 대접하기를 좋아하지 않은적이 있다면 감독의 자리에서 바로 물러나야 할까요?

     

    디모데전서와 디도서에 나온 목사와 집사의 자격은 “목사와 집사는 이러해야 한다”는 이상적인 지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의 모든 항목을 만족하는 목사를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목사와 집사의 직을 맡은 형제들은 디모데전서 3장과 디도서 1장의 말씀에 자신을 비춰보고 주님 앞에 합당한 자세와 마음을 갖도록 항상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부족한 답변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는 형제님에게 주님의 은혜가 더욱 풍성히 넘치기를 바랍니다.

     

  • Q: 마태복음 25:13에 대해서
    A:

    Q 질문

    마태복음 25장의 문맥은 환란과 재림사이인데 13절에서는 휴거에 관한 말씀으로 보입니다. 13절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답변 

    마태복음 25:13 환난성도들과 그들의 휴거에 대한 말씀입니다.

     

    E 설명

    마태복음 25장은 환란에 대한 말씀이며 특히 25:1-13은 재림이 가까이에 이른 문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이 교회가 아닌 것은 단수인 “처녀”가 아니라 복수인 “처녀들”이라는 것을 봐서 알 수 있습니다(마 25:1, 고후 11:2). 교회 시대가 끝나고 신부인 교회가 들림받는 것처럼(고전 15:51, 살전 4:16-17) 환란이 끝날 때 환란을 통과한 성도들이 들림을 받게 됩니다.

     

    환란성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죽음과 기근으로부터 보호받게 됩니다(계 7:1-4 참조). 이들은 마태복음 25:6의 처녀들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14:1-3을 보면 처녀들(환난 성도들)이 환란이 끝날 무렵(계 14:6-11 문맥 참조)에 하늘에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환란이 끝날 무렵 들림(휴거)을 받았기 때문에 위치가 이동한 것입니다.

     

    환란성도들의 휴거의 때는 환란이 끝날 무렵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언제 들림받는지 대략적인 때와 시기를 알 수 있으나 정확한 날과 시간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그 날도 그 시각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 25:13).

     

    부족한 답변이나마 궁금하신 것에 도움이 되었길 원합니다. 주님께서 형제님을 더욱 놀라운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 Q: 성전환, 인공수정, 미혼모에 대해서
    A:

    Q 질문

    1. 성전환 한 사람이 상속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원래의 성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가?

    2. 인공수정은 죄인가?

    3. 미혼인 여자가 아이만 갖는 것은 잘못인가?

    4. 살인죄, 성전환, 싱글맘과 사기죄, 도둑질 중 어느 것이 더 큰 죄인가?

     

    A 답변

    1. 회개하고 모든 것을 정상으로 되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2. 죄가 아닐 것입니다.

    3. 경우에 따라서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4. 하나님 앞에서는 큰 죄와 작은 죄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E 설명

    1. 성전환자들과 상속에 대해서

    첫번째 질문은 두가지로 나눠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성전환자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나”(고전 6:9-11) 하나님께서 주신 원래의 성을 버리고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서 다른 성으로 바꾸는 것은 분명히 죄입니다. 이 시대는 “죄”를 단순히 “질병”이라고 부름으로 죄를 정당화 하는 시대입니다. 성전환을 하려는 것은 다른 성을 경험해보고자 하는 욕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원래의 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죄를 짓고나서 필요한 것은 회개하는 것이지 정당화하고 변명하는 것은 죄만 더 키울 뿐입니다.

     

    성경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회개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7:10). 회개에는 거짓된 회개와 참된 회개가 있습니다. 것짓된 회개는 단순히 근심하는 것인데 반해 참된 회개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면, 마음과 생각과 생활을 바꾸게 됩니다. 진정한 회개란 단순히 마음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가던 길을 바꾸고 방향 자체를 바꾸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훔쳤다면 단순히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회개가 끝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잃은 그 사람에게 돈을 돌려주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즉 진정한 회개란 이전으로 되돌리는 행위가 수반되어야 하며,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 최대한 노력해 보는 일이 필요합니다(마 5:23-24).

     

    마찬가지로 성전환을 했고 구원받고 나서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다시 되돌릴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수술상의 어려움은 주님께 맡기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그분의 길을 걷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주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제 상속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상속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후에 천년왕국에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상속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나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자나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욕하는 자나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 너희 가운데 이 같은 자들이 있었으나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겨지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고전 6:9-11) 여기서는 상속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즉 이들은 모두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을 일삼는 자나 부정한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결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왕국에서 아무 상속 유업도 받지 못하느니라. 아무도 헛된 말들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나녀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과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라. 너희가 한 때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걸으라.”(엡 :5:5-8) 에베소서의 문맥도 마찬가지로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천년왕국에서 결코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천년왕국에서 상속을 받으려면 반드시 거듭나야만 합니다. 사람은 거듭나면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사람이 물에서 나고 또 성령에게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즉 거듭나는 순간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게 되며 천년왕국때 하나님의 왕국을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요 3:3)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죄를 짓는 다면 상속을 받지 못하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죄를 지으면 천년왕국에서 상속받을 수 없게 됩니다.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이것들이라.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증오와 불화와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또한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 같이 이것들에 대하여 미리 말하노니 그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갈 5:19-21)

     

    이것은 동성연애자들이나 성전환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거저, 값없이, 무료로 받지만 상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께로부터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 3:24) 상속은 오직 자신을 의의 도구로 내어드려 주님을 섬길 때에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이라도 죄를 지은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상속을 받을 수없는가 하는 의문이 들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주님께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주님께서는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

     

    2. 인공수정에 대해서

    태를 열고 닫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창세기 12장 참고). 문제는 하나님께서 의사(현대의학 포함)를 통해서도 일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사에 대해서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을 의사에 빗대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온전한 자들에게는 의사가 필요없으나 병든 자들에게는 필요하니라.”(마 9”12)

     

    인공수정도 하나님께서 막으시면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잠 16:9). 인공수정이든 무엇이든 먼저 주님의 뜻을 구하고 인도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공수정의 문제는 앞에서 제시한 판단순서를 따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인공수정에 대해서 직접적인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므로 교회사의 예를 찾아볼 필요가 있지만 이전에는 인공수정의 기술이 없었으므로 교회사에서도 지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상식과 양심의 시험만이 남았습니다. 인공수정이라 할지라도 믿음으로 그것을 할 수 있다면 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인공수정을 하는 순간 주님께서 다시 오실지라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면 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에서 나지 아니하는 것은 죄니라.”(롬 14:23)

     

    3. 미혼모(싱글맘)에 대해서

    이것은 경우에 따라서 잘못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생각해 보기 전에 먼저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협력자를 만들리라, 하시니라.”(창 2:18) “말씀하시기를, 이런 까닭에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하신 것을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마 19:5)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22-32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의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모든 가정이 주님께서 의도하신 것처럼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을 간직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무지와 불순종으로 인해서 가정이 깨어지는 일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었거나 자신의 잘못이 아닌 상대방의 잘못으로 인하여 이혼을 하고 혼자 되어 자녀를 키우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혹은 혼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녀를 낳게 되었다 하더라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면 혼자라도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에 문제는 없지만 누구나 예상하듯이 어려움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녀를 낳아 홀로 기르겠다는 것은 지극히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 돌이킬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왜 굳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가족의 틀을 벗어나 어려움 속으로 뛰어 들어가야만 할까요?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을까요?

     

    4. 큰 죄와 작은 죄에 대해서

    성경에는 큰 명령이 있고 그보다 작은 명령이 있습니다(마 22:38). 이와 같이 성경에 의하면 큰 죄가 있고 작은 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심판때에 큰 죄를 지은 사람들은 작은 죄를 지은 사람들보다 더 큰 정죄를 받게 됩니다(마 23:14).

     

    그러나 큰죄는 피해야 되고 작은 죄는 어느 정도 용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큰 죄와 작은 죄를 모두 피해야 합니다. 사실이 이러할진데 굳이 큰 죄와 작은 죄를 나누고 죄의 크기에 따라 순서를 정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법에서 떠날지어다.”(딤후 2:19)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부족한 답변이지만 자매님께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Q: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세가지 원칙
    A:

    그리스도인이 어떤 문제에 대해서 판단하기 위해서는 세가지 기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 성경

    (2) 믿음의 선배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나? --> 교회사

    (3) 이것은 이성과 상식과 양심에 부합하는가? --> 상식

     

    그리스도인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성경이 명확하게 말씀하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논쟁을 하거나 다른 답변을 찾아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믿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되지 않은 문제들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계시가 다 기록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요 21:25). 그러나 성경에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것들은 모두 기록되어 있습니다(마 4:4).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믿음의 선배들이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성경에서 나오지 않은 문제는 교회사에서 그 예를 찾아보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교회사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없다면 이성과 상식과 양심에 물으면 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을 믿음으로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변할 수 있다면 죄가 아닌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에서 나지 아니하는 것은 죄니라.”(롬 14:23)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이것을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죄를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그러므로 이와 같이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 관하여 하나님께 회계 보고를 하리라.”(롬 14:10,12)

     

    그러므로 어떤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결정해야 할 때, “성경-->교회사-->상식”의 순서로 생각해 본다면 주님께 죄를 짓지 않고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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