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2008.06.24 00:24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받기 원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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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받기 원하시는가?

 - 십일조와 헌금의 성경적 원리-

이 글은 진리침례교회 주일 오후 새신자 기초성경공부 반에서 가르친 것을 요약한 것입니다. 주일학교 성경공부를 하는 마음으로 주제를 공부할 수 있도록 가급적 구어체 그대로 기록했습니다.

 

오늘은 십일조와 헌금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헌금 문제, 특히 십일조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와 기독교인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대한민국에 천만명의 기독교인이 있다고 하는데 성경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또 주님께서 언제 오시는 지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도 매우 적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헌금과 십일조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또 실제로 많은 교회들에서 헌금과 십일조를 아주 강조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십일조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먼저 십일조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십일조라는 말이 성경에 나오는 걸까요? 십일조가 성경에 나오는 말인가요? 구약 성경 여러 곳에 십일조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 신약 성경은 어떨까요? 신약성경에도 십일조라는 말이 나올까요? 신약성경에도 십일조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신약 교회의 성도들도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십일조를 하면 안된다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이제부터 성경은 이것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십일조에 대한 가장 유명한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말라기 3장을 펴보세요. 8절부터 보겠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강도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의 것을 강도질하였나이까? 하나니 너희가 십일조와 헌물에서 강도질하였느니라. 너희가 저주로 저주를 받았나니 너희 곧 이 온 민족이 내 것을 강도질하였도다.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와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의 창들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되 그것을 받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8-10) 저는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기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 십일조 안내는 도둑놈들아!”하고 소리치는 목사님도 본적이 있어요.

 

이 말씀을 자세히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 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요. 그리고 반대로 십일조를 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분명히 성경적인 것이지요. 또 십일조는 물질적인 축복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앞서 공부했던 것처럼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고, 또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교회와 유대인을 나눠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 전에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이지요. 구약성경에 약속된 물질적인 축복은 대부분 유대인들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약속된 물질적인 축복은 조건부 축복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막대한 물질로서 축복을 해 주시고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지키지 않으면 물질적인 축복은 고사하고 그들을 세계 각국으로 흩어버리신다고 말씀하셨죠.

 

그래서 말라기 3장의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이 아닌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라기 3장에 의해서 그리스도인들도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교리로 가르치는 사람은 말씀을 제대로 나눠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며 따라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될 수도 없습니다.

 

구약성경에 나온 십일조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교리적으로 적용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은 십일조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도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을까요? 신약성경에는 십일조라는 말이 8번 나옵니다. 마태복음 23:23, 누가복음 11:42, 18:12, 히브리서 7:5,6,8,9(9절에서는  두 번 나옴), 이렇게 8번 나오지요. 벌써 눈치 채셨겠지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그리고 히브리서에서만 십일조 얘기가 나온다는 게 좀 이상하지요? 요한복음이나 바울서신에 십일조라는 말이 나와서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십일조를 하는 의무를 지게하셨느니라”는 식으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면 좋아할 분들이 많을 텐데요.

 

우리는 구약성경에서는 율법아래 있는 유대인들이 십일조를 반드시 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임을 말라기 3장을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반드시 십일조를 해야 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뒤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신약성경에 기록된 십일조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23:23을 보겠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도다.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여러분 중에 혹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있으세요? 이 말씀은 비록 신약성경에 나오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이 말씀이 기록된 것은 분명히 신약성경이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기 전이므로 교리적으로는 구약성경에 속하는 문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1:42에서도 방금 마태복음과 비슷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누가복음 18:11을 볼까요? 누가복음 18장을 펴서 먼저 9절부터 보겠습니다. “또 그분께서 자기가 의롭다고 스스로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어떤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다른 하나는 세리더라. 바리새인은 서서 자기 홀로 이렇게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들 곧 착취하고 불의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더욱이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이 의롭게 되어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다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역시 바리새인에 대한 말씀인데요. 여기서는 특이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을 지키고 십일조를 냈습니다. 하나님께 내세울 것이 많았죠. 오늘날로 치면 십일조도 하고 새벽기도도 나가고 큐티도 하고 성가대도 하는 그런 사람이었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을 의롭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편 세리는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십일조도 내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바리새인은 분명히 이 세리와 자기가 같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세리는 율법에 기록된 십일조를 내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세리는 하나님께 면목이 없었지요. 그래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도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세리를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히브리서에서는 십일조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볼까요? 히브리서 7장을 펴보세요. 5절부터 보겠습니다. “진실로 레위의 아들들 중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자기 형제인 그 백성이 아브라함의 허리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율법에 따라 그들에게서 십일조를 취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혈통이 그들로부터 나온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아브라함에게서 십분의 일을 받고 약속들을 가진 그를 축복하였느니라. 낮은 자가 더 나은 자에게서 축복을 받는다는 것에는 결코 모순이 없느니라. 또 여기서는 죽는 사람들이 십일조를 받으나 저기서는 살아 있다고 증언을 얻는 이가 받느니라. 또한 나는 십일조를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 안에서 십일조를 바쳤다고 말할 수 있나니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만났을 때에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느니라.”(히7:5-10)

 

히브리서 7장의 문맥을 보시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1절부터 4절까지 보면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십일조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고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니라. 그가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하였으며 아브라함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또한 살렘 왕이니 곧 화평의 왕이라. 그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혈통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오직 하나님의 아들과 같이 되어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이제 이 사람이 얼마나 위대한가 깊이 생각해보라. 심지어 족장 아브라함도 노획물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히브리서의 문맥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신약성경의 문맥이 아닙니다. 구약성경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하면서 십일조라는 말이 나온 것이지요. 그래서 비록 신약성경에 십일조라는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모두 구약성경의 문맥이지 그리스도인들과 관련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히브리서 7장의 문맥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방금 살펴본 것처럼 5절에 보면 레위의 아들들 중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받은 자들이 백성들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의하면 십일조는 결국 제사장이 받는 것입니다.

 

십일조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민수기 18:24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십일조 곧 그들이 주께 거제 헌물로 드리는 것을 내가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 상속하게 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상속 재산을 갖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민수기 18장에 의하면 십일조는 레위 지파가 나머지 열 한 지파로부터 받게 됩니다.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레위 지파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특별히 구별된 지파입니다. 그래서 다른 지파들은 다 땅을 상속받았지만 레위지파는 상속받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레위 지파는 다른 지파에서 바치는 십일조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레위 지파는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기 위해서 십일조를 받았던 것입니다.

 

앞에서 본 것과 같이 히브리서 7장에 의하면 레위 지파만 십일조를 받은 것이 아니라 멜기세덱이라는 인물도 십일조를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십일조가 비록 신약성경 바울서신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율법 전에 있던 것이므로 율법 이후인 교회 시대에도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십일조는 율법 이전, 율법 아래, 그리고 율법 이후인 교회 시대에도 모두 해당되는 교리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억측에 불과합니다. 율법이전에 아브라함에게 십일조를 받았던 멜기세덱의 직분을 잘 보세요. 3절에서 그의 직분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멜기세덱의 직분은 제사장입니다. 창세기 14:18에서도 멜기세덱을 가르켜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사장으로서 십일조를 받은 것입니다.

 

또한 율법 이전의 멜기세덱이 십일조를 받은 것과 율법 아래의 레위인들이 십일조를 받은 것은 그 방법에 있어서 차이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단 한번만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정기적으로 십일조를 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레위인들에게 정기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신명기 14:22을 보세요. “너는 해마다 밭에서 나는 네 씨의 모든 소출에서 반드시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율법에 기록하기를 매 해마다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의 개신교회들은 어떻죠? 매 달 십일조를 내라고 하지요. 이건 신약성경적인 것도 아니고 구약성경적인 것도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매 해 십일조를 드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매 해 마다 드리는 십일조는 제사장 지파인 레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27을 보세요. “네 성문 안에 있는 레위 사람은 너와 함께 나누는 몫이나 상속 재산이 없는 자니 너는 그를 저버리지 말지니라.” 매 해 드리는 십일조는 제사장 지파인 레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아래 28절을 보시면 또 다른 종류의 십일조가 있습니다. “너는 삼 년이 끝날 때에 그 해 소출의 십일조를 다 가져다가 네 성문 안에 저축하여 (너와 함께 나누는 몫이나 상속 재산이 없는) 레위 사람과 네 성문 안에 거하는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가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네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 삼년 마다 바치는 십일조는 레위인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또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십일조는 매 달 내는 것이 아니라 일년에 한번 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월급을 받는 직장인들이 아니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소출은 일년에 한번 거두기 때문입니다. 봄에는 씨를 뿌리지 수확하지는 않기 때문에 십일조를 낼 것도 없었던 것이지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십일조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유대인들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온 십일조가 요즘 개신교회에서 내는 십일조와 다른 점은 또 있습니다. 성경의 십일조는 제사장들이 받게 됩니다. 제사장들이 십일조를 받지 못하면 먹고 살 길이 없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수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내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신 것입니다.

 

자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질문을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제사장은 누구입니까? 우리 교회의 제사장은 목사님이죠? 그런가요? 우리 교회의 제사장은 목사님인가요? 카톨릭 교회에서 제사장은 누구죠? 거기서는 신부가 제사장이죠. 신부를 다른 말로 하면 사제라고 하죠. 우리말로는 사제라고 하지만 영어로는 프리스트(priest), 즉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카톨릭 교회에서는 사제들이 제사장이 됩니다. 그럼 우리 교회에서는 누가 제사장이죠?

 

마틴 루터가 카톨릭교회에 항의 할 때 제시한 세가지 핵심적인 주장 중에 하나가 바로 “만인제사장”아닙니까? 만인제사장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누구나 다 제사장이 될 수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나 다 제사장이라는 말 아닙니까? 카톨릭에서는 사제나 신부가 제사장일지 몰라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교회에서는 목사가 제사장이 아닙니다. 카톨릭에서 신부들이나 사제들과 같은 성직자들만이 제사장이라고 하는 것은 명백하게 니콜라파의 행위이며 주님께서 매우 가증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여러분이 바로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백성과 하나님, 즉 한쪽과 다른 한쪽을 중재해주는 중재자 아닙니까? 우리는 어느 누구의 중재 없이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직접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로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9을 보세요.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 십일조는 제사장에게 바치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에 의하면 신약시대에는 누가 제사장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인 것입니다. 목사님만 그리스도인인 것이 아니지요. 십일조는 제사장을 위한 것인데 모두 제사장이니 십일조를 바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신약 시대에는 거듭난 그리스도인 모두 제사장이기 때문에 교리적으로 더 이상 십일조가 없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정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목사님들도 있어요. 교인 중에 누가 십일조를 안내나 그 명단을 살펴보고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정죄하는 것이지요. 또 교회 뒤에 큰 도표를 만들어놓고 “누가누가 십일조를 잘 내나” 막대그래프를 그리는 교회도 본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종교심을 자극해서 돈을 많이 내게 하겠다는 생각이지요. 우리가 성경대로 믿지 않는다면 그러한 비성경적인 것에 미혹되어 거기에 종노릇하게 됩니다. 교회다니지 않는 남편 몰래 부인이 십일조를 내다가 가정이 파탄나는 경우도 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믿는다면 우리는 참으로 진리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2. 헌금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이제는 헌금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헌금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전에 다니던 장로교회에서는 집사가 되면 3천만원에서 5천만원 사이의 액수를 헌금했고 장로가 되면 5천만원에서 1억원 사이의 액수를 헌금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여러 면에 있어서 간증을 잃었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돈 문제입니다. 기독교를 싫어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그들이 교회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항상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돈, 헌금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말인즉, 헌금 종류가 왜이리 많냐는 것입니다. 무슨 헌금, 무슨 헌금하면서 웬 헌금 종류가 그렇게 많냐는 것이죠. 그게 다 사람들한테서 돈을 뺏기 위한 장사 수단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 가 보면 아주 헌금 봉투도 빨주노초파남보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교회는 돈만 밝히는 사기꾼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예배시간에 그 주에 십일조를 낸 사람의 명단을 불러주기도 하거나 아니면 주보 뒤에 십일조 한 사람의 명단이 올라가기도 합니다. 또 예배 시간에 헌금한 사람의 명단을 불러주는 교회도 있습니다. 헌금한 사람의 이름뿐만 아니라 그 금액도 함께 불러 주는데요. 예를 들면 무슨 성도님 십만원, 무슨 집사님 이십만원 이런 식으로 예배 도중에 헌금 액수를 일일이 불러주더라구요.

 

한번은 어떤 교회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에서도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헌금 액수와 헌금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는 시간을 갖는데, 많은 액수의 헌금을 한 사람은 떳떳하게 예배에 임하는데 적은 액수의 헌금을 한 사람들은 마음이 불편했데요. 그래서 목사님한테 건의를 했데요. 액수는 부르지 말고 이름만 부르자고. 그랬더니 다음주에 목사님이 헌금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데 목사님은 그 금액을 아니깐 적은 액수를 헌금한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목소리에 힘도 없고 표정도 어둡다가, “누구 누구 성도님 헌금 하셨네요.” 이런 식으로요. 많은 액수를 헌금한 사람의 이름을 부를 때에는 표정도 밝아지고 힘찬 목소리로 “누구 누구 성도님 헌금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박수 한 번 치겠습니다.” 이랬데요.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국 교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매우 씁씁합니다.

 

여러분 일반 개신교회의 목사님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목사님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설교예요. 주일 설교를 오전 오후로 해야하지, 수요예배 설교도 해야지, 금요철야 설교도 있죠. 새벽기도 설교는 여섯 개나 해야하죠. 일반 교회 목사님들은 설교를 가장 골치거리로 여기거든요. 그 부담이 너무 커서요. 그래서 어디서 설교자료 공짜로 얻을 수 없나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설교 다음으로 목사님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출석교인입니다. 왜냐하면 출석교인에 따라서 헌금이 걷히는 액수가 다르거든요. 그래서 신학교 동창 친구들끼리 만나면 대부분 목사니까 서로 너네 교회는 몇 명이나 모이냐, 헌금은 한 달에 얼마나 걷히냐, 이런 것에 주로 관심을 갖습니다. 불행하게도 배교한 라오디게아 시대의 교회에서 목회하는 많은 수의 목사들 마음에는 바른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같은 주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더 많은 헌금을 걷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헌금의 원칙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7을 보세요. “저마다 자기 마음 속에 정한대로 낼 것이요, 마지 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우리 헌금할 때 기억해야 할 첫번째 원칙은 그 액수를 자신의 마음 속에 정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자기 마음 속에 정한대로 헌금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제가 앞에서 십일조가 신약 성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깐 어떤 분들은 “아, 이제 십일조 안내도 되는구나, 와 해방이다.” 하시는 분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십일조를 하셨던 분들은 “아니 그럼 내가 비성경적인 짓을 한 건가?”하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십일조를 내셨다면 잘 하신 일입니다. 결국 십일조나 무엇이나 다 헌금 아닙니까? 십일조 따로 헌금 따로가 아니지요. 헌금을 내면서 자기가 번 돈의 십분의 일을 내면 십일조인 것이지요. 성경은 저마다 자기 마음 속에 정한대로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가 매달 내는 헌금의 액수를 수입의 십분의 일로 정하셨으면 그렇게 내세요. 헌금의 액수를 수입의 십분의 이로 정하셨으면 그렇게 하세요. 헌금의 액수를 수입의 이십분의 일로 정하셨으면 그렇게 하세요. 저마다 자기 마음 속에 정한대로 내면 됩니다. 오분의 일이든 십분의 일이든 이십분의 일이든 자기 마음 속에 정한대로 내면 됩니다. 단, 억지로 하지 마시고 즐거이 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바로 앞 절인 9:6을 보세요. “다만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이것이니 곧 인색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인색하게 거둘 것이요, 후하게 뿌리는 자는 또한 후하게 거두리라는 것이라.” 여러분이 정한대로 하시되 인색하게 헌금하지 마시고 후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십일조와 같은 어떤 정해진 액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색하거나 후한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십만원이라는 헌금이 어떤 사람에게는 인색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실 겁니다. 헌금은 여러분이 마음 속에 인색하지 않게 내면 되는 것입니다.

 

헌금을 할 때 명심해야 할 또 다른 원칙은 고린도후서 8:12에 있습니다. “먼저 자원하는 마음만 있으면 사람이 가진 대로 주께서 받으실 것이요, 그가 갖지 아니한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여러분이 가진 것 중에서 여러분이 정한 액수를 떼서 헌금하시면 됩니다. 없는 돈을 빌려서 내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을 뿐더러 그것은 성경적인 방법으로 헌금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개신교회에서 하는 작정헌금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지도 않은 돈을 앞으로 내겠다는 것은 불필요한 약속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 중에서 내면 되는 것이지 앞으로 가지게 될 것에서 내는 것이 아닙니다.

 

헌금에 대한 또 다른 원칙은 고린도전서 16:2에 있습니다. “주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자기 곁에 모아 두어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형통하게 하신 대로, 즉 나에게 주신 것에서 헌금을 하면 됩니다. 또 우리의 헌금은 주의 첫날에 교회로 모여서 걷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절에서 3절을 보시면 헌금을 교회에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헌금은 자신이 속한 지역교회에 해야 합니다. 지역교회에 헌금을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위해서 선택하신 기관이 바로 지역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지역교회에 모인 헌금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됩니다. 먼저 교회의 전담 사역자들을 위해서 사용됩니다. 고린도전서 9:13-14을 보세요. “거룩한 것들에 관하여 섬기는 자들이 성전에 속한 것들로 사는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제단에서 섬기는 자들이 제단과 함께 헌물에 참여하는 자들임을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살 것을 정하셨느니라.” 교회에서 전임으로 사역하는 형제들에게 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모은 헌금을 사용해야 합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자비량 선교를 했고 실제로 자비량 사역을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사역비를 감당할 수 있다면 사역비를 주는 것이 당연합니다. 디모데전서 6:17-18에서도 같은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두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되 특별히 말씀과 교리에 수고하는 이들에게 그리할지니라. 성경 기록이 이르기를, 너는 곡식을 밟는 소의 입에 마개를 씌우지 말라, 하고 또, 일꾼이 자기 품삯을 받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느니라. ”

 

지역교회에 성도들이 낸 헌금은 지역교회가 모일 수 있는 건물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사람이 모이기 위해서는 장소가 필요하고 장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헌금은 장소를 유지하는 비용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이 밖에도 성도들이 낸 헌금은 교회 내의 지체들을 위한 구제 비용으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는 그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헌금에 대한 또 다른 좋은 말씀이 사도행전 20:35에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되 곧 너희가 마땅히 이렇게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지원하고 또 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즉,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도다,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였느니라.” 주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된 일인가요? 저는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이 더 복된 일인거 같은데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내가 돈을 다른 사람에게 줍니다. 이게 복됩니까? 아니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습니다. 이게 복됩니까?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주는 것보다는 받는 것이 더 복된 거 같아요. 만약 하나님이 아니라 제가 성경의 저자라면 “받는 것이 주는 것보다 더 복되도다.” 이렇게 기록했을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이 이상하더라구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고?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항상 주시는 분이 누구죠? 악인과 의인에게 해를 비춰 주시는 분이 누구죠? 악인과 의인에게 비를 내려 주시는 분이 누구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시고 원하는 자들은 값없이 구원해 주시는 분이 누구죠? 주는 분이 누구죠? 바로 하나님이신거죠. 하나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되도다.”라고 말씀해 놓고 자신이 복된 자의 자리에 앉으신 겁니다. 우리가 받기보다 주기를 즐겨한다면 우리도 하나님처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하는 것은 복된 일이죠. 하나님처럼 하는 것이 바로 경건(Godly)입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서 무엇을 받기 원하시는가?

우리는 십일조와 헌금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이 시대의 배교한 라오디케아 교회는 돈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주님께서도 경고하고 계시죠. 요한계시록 3:17을 보세요. “이는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내가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면서 네 가련한 것과 비참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주님의 말씀대로 이 시대의 교회들은 헌금에 열을 올려서 물질은 많이 쌓았지만 결국 영적으로는 빈곤하고 심하게 병들어 있습니다.

 

헌금을 많이 걷으려고 설교할 때마다 헌금 헌금, 십일조 십일조 하는 설교자를 보면 참으로 답답합니다. 결국 교회가 돈을 밝히고 목사가 돈을 밝히니깐 하나님의 진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것이지요. 우리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주머니나 노리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돈에는 조금도 관심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부요하신 분이시고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인데 우리가 가진 몇 푼 돈에 관심이 있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와! 이번 주에는 헌금이 진짜 많이 걷혔네!”하고 기뻐하실까요?

 

고린도후서 8:5을 보세요. “그들은 우리가 바라던 것과 달리 이 일을 행하되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우리가 헌금을 드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을 먼저 주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자신을 주님께 전혀 드리지 않으면서 돈만 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라고 생각한다면 성경의 하나님을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갑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지갑이 수표로 가득차거나 우리의 헌금 봉투가 고액권으로 가득 차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차고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차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오전 예배 시간에 헌금을 하셨죠? 아마 대부분이 다 헌금을 하셨을 거예요. 여러분은 오늘 헌금 하기 전에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셨습니까? 헌금하기 전에, 돈보다 먼저 마음을 주님께 드리시나요? 하나님께서 빧빧한 고액권보다 더 기뻐하시고 받기 원하시는 것이 바로 여러분의 마음 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세요. 여러분의 시간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세요. 십일조를 내고 헌금을 내는 것이 무슨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십일조와 많은 헌금을 낸다 할지라도 마음과 시간을 주님께 바치지 않는다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로마서 12:1을 보세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저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약성경의 율법인 십일조를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바로 제사장이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이 뭐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희생물을 드리는 일이 제사장의 일 아닙니까? 우리는 무엇을 희생물로 드리죠? 바로 우리 자신을 살아있는 희생물로 드려야 하는 거죠.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희생물로 드리셨나요? 여러분은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내어 드리셨나요? 자신을 먼저 주님께 내어 드리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헌금을 낸다 할지라도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4. 맺는 말

이제 정리하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유대인들에게 명령한 십일조를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해서 십일조를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며 비성경적인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이 자신의 수입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셨다면 잘하신 일입니다. 십분의 일이 아닌 오분의 일을 드리기로 하셨다면 그것도 잘 하신 일입니다. 이십분의 일을 드리기로 하셨다면 그것도 잘 하신 일입니다. 여러분이 각자 마음에 정하신 대로 하나님께 드리세요. 그러나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먼저 드리세요. 왜냐하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은 치르고 사신 것으로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여러분은 자신이 사용한 돈에 대해서, 자신이 사용한 시간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몸을 어디에 내어 주었는지에 대해서 하나님께 설명해야 합니다. 의의 도구로 자신을 내어 드린 사람은 칭찬을 받을 것이고 불의의 도구로 자신을 내어드린 사람은 준엄한 책망을 받고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서게 될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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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식 2008.06.27 11:10

    감사합니다..
    잘 요약되어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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