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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교회-교회사 요약정리1

by 이우진 posted Aug 19,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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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교회3.jpg

일곱 교회

The Church Age

Part 1/2

 

James W. Knox 지음 / 김영균 옮김

 

이 내용은 James W. Knox의 책, The Book of Revelation의 Book One, Chapter Two – The Chutch Age부분을 번역한 것입니다.

 

1장 교회 시대 개관

계시록 2,3장에서 일곱 교회에게 전달된 메시지는 당시(제1세기)의 특정 교회들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도 시대로부터 그리스도의 몸이 휴거되는 때까지의 교회의 역사의 흐름을 예언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견해에 대해 논란이 많기는 하나 우리는 여러 이유들로 인해 그 견해가 옳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 이유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일곱 교회가 교회사를 예언적으로 보여주는 이유들

(1)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2:29)라는 훈계의 말씀은 이 메시지의 대상이 단지 편지를 수신하게 될 특정 지역교회를 넘어섬을 보여준다.

(2)     “성령께서 교회들(churches)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라는 표현 속에서 이 편지의 수신자인 해당 교회만이 이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 교회를 수신자로 해서 쓰여진 편지지만 모든 교회들(churches)에게 적용된다고 하겠다.

(3)     지상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게 될 모든 기간에 관한 예언을 다루고 있는 책(계시록)에서 교회에 관한 예언이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4)     만약 계시록에서 교회에 관한 예언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계시록 2, 3장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계시록 3장 이후부터는 교회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5)     성경 전체에 걸쳐 일곱이라고 하는 숫자는 뭔가에 대해 완전한 진술을 하고 했음을 보여준다. 일곱은 성경의 “전형적인 숫자들” 중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일곱은 완전함, 충만함, 완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일곱 교회는 교회 시대 전체를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6)     이 메시지 속에 상징적인 그 무엇이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은 채로 당시 지역교회들에 그처럼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계시록은 너무도 간결하고 압축된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는바 심지어는 천년왕국에 대해서 1장만을 할애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는 1장도 채 되지 못한다. 책 전체의 1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이 두 장(2,3장)이 1세기경에 있었던 작은 교회들에게만 적용되고 그 이상은 아니라는 것은 합리적인 생각이 못 된다.

(7)     이 메시지는 성경 중 가장 상징적인 책속에 들어 있음을 염두에 두자.

(8)     에베소서와 갈라디아서에 대해 아무도 이 서신들이 다지 그 두 교회에만 해당되고 교회 시대 전체에 걸쳐 존재하게 될 신약 시대의 모든 교회들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9)     그 당시 그 지역에는 적어도 세 교회가 더 있었다. 골로새 교회(골1:2), 히에라폴리스 교회(골4:13), 드로아 교회(행20:6-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교회들은 아무 서신도 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일곱 교회는 각 교회의 전형적 특징으로 인해 선정된 “대표성”을 띤 교회임이 틀림없다.

(10) 무엇보다도 이 메시지들은 교회 역사의 정확한 모습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 순서마저 정확하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견해를 지지해 준다. 이 서신들의 메시지와 교회사에 등장하는 교회들을 비교해 보면 우연아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1) 어떤 분들은 우리가 교회들을 예언적으로 보는 것은 “지금 있는 것들”(계1:19)을 취하여 “이후에 있을 것들”(계1:19)의 영역으로 들여보내는 것이 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회는 한 몸으로 요한은 물론 일곱 교회들도 이 몸의 일부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오순절에 시작된 교회는 휴거 때까지 계속 이어져 나간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2. 일곱 교회에게 보내진 서신은 4중 적용이 가능하다.

(1)    지역적 적용 - 편지를 수신하게 될 지역 교회

(2)    개인적 적용 - 개개성도를 각자 안에 존재하는 악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해 줌

(3)    훈계적 적용 - 어느 시대 어느 교회든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영적 상태를 점검해 볼 수 있게 해 줌

(4)    예언적 적용- 교회의 영적인 역사가 일곱 시대에 걸쳐 점진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지를 예시함

 

3. 일곱 교회에 보낸 서신들의 구조

또한 이 서신들은 독특한 구조를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유념해야 만 한다. 각 편지에서 주님께서는 수신하는 각 교회의 도덕적, 영적 상태에 적합한 모습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로써 특정한 잘못에 대한 그리스도의 태도와 입장이 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1)    서신의 첫 부분에서는 칭찬 받은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주님께서 금 등잔대 가운데서 걷고 계신 것은(2:1) 단지 악한 것을 주목하고자 함만은 아니다. 주님은 우선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에 대해 주목하고 계신다.

(2)    그 다음으로 흠이 될 만한 것들을 지적하고 책망하고 있다. 진리의 하나 님께서는 교회 안에 있는 불법을 간과하시거나 덮으시지 않는다.

(3)    뒤이어 권면과 약속의 말씀들이 이어진다. 특히 이것들은 이기는 자들에게 해당된다. 이기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은 여전히 열악한 가운데서 순종의 길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4. 일곱 교회의 역사적 시기

일곱 교회들에게 전달된 메시지들은 두 번에 걸친 환상 사이에 주어져 있다. 그 첫 번째는 1장에서 일곱 등잔대 가운데 서 계시는 그리스도의 환상이며 두 번째는 4장에서 왕좌 주위에 서 있는 스물네 장로들의 환상이다. 이 두 번째 환상은 영광스럽게 된 교회가 주님과 함께 하늘에 있는 모습이다. 이 두 번째 환상에 뒤이어 곧바로 환란은 시작되고 그 내용이 계시록에 쭉 전개되고 있다.

따라서 일곱 교회에 보내어진 서신은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신 때로부터 그분의 교회가 영광 받는 때까지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일곱 교회에 보내어진 메시지가 다루고 있는 역사적 시기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에베소 교회 시대 - 사도시대

(2)    서머나 교회 시대 - 로마 제국이 교회를 박해함.

(3)    버가모 교회 시대 - 로마 제국이 교회를 받아들임.

(4)    두아디랴 교회 시대 - 로마 제국이 교회를 통제함.

* 결과물 : 로마 카톨릭 교회.

(5)    사데 교회 시대 - 로마 교회로부터 교회가 벗어남.

(6)    빌라델비아 교회 시대 - 근대 선교운동.

(7)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 - 미지근한 대형교회.

* 결과물 : 죽은 개신 교회.

 

2장 예언적으로 본 일곱 교회 시대

1. 에베소 교회 시대

첫 번째 서신은 에베소에 있는 교회(2:1-7)에게 보내졌다. 에베소란 “바람직한” 이란 의미를 갖고 있으며 실로 이 교회가 그러했다. (주: 일부 사람들은 지역 교회들이 그곳에 세워지기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도시들의 이름으로부터 영적인 적용을 끄집어내는 것에 대해 반대할지 모르겠다. 이에 대해 우리의 답변은 이러하다. (1)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끝을 알고 계시며, (2) 그분께서는 다른 도시들에 세워진 지역 교회들에 편지를 보내실 수 있었지만 그리하지 아니하셨다.)

주님 손에 별들이 놓여있는 바 이는 사역자들이 그분의 직접적인 통제하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 교회는 일했고, 수고했으며, 인내를 했고, 거짓 교리를 거부했고, 사람들의 주장을 시험했으며,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것들을 미워했다. 실로 이들의 수고와 인내는 두 번이나 언급되고 있다. 이 교회는 거짓 사도들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사도는 표적으로 주어진 은사들(방언, 해석, 치유-막16:17-18, 고후12:12)로 특징 지워진다. 이 당시 이러한 은사들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나면 이 교회는 그런 자를 드높이는 대신에 시험코자 하였다.

그런 자랑을 늘어놓는 자가 아픈 사람을 고칠 수 없거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언어로 말하지 못하거나, 독을 먹고 살아남지 못 한다면 이 교회는 이런 자를 그에게 합당한 칭호 즉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다.

이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들 간에 구분을 짓고자 하는 자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 중 아무도 그 누구 위에 권위를 행사치 않도록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마20:25-28), 칭호를 획득하고 지위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이 교회해 침투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니골라당의 교리를 붙들고 있는 자들을 미워하신다고 하셨다.(계2:6. 이분이 성경의 하나님이시다.) 많은 주석가들이 이들은 어떤 니콜라스(Nicholas)라는 자를 추종하는 이단 종파라고 하지만 이런 주장을 뒷받침 할만한 그 어떤 역사적 증거도 없다. 이 주장은 본 구절과 2:15절로부터 유추해낸 순전한 추측에 불과하다.

우리가 계시록의 상징적 기록 방식 및 구조와 조화를 이루면서 성경 자체를 잘 들여다보면 이 구절에 대한 조명을 얻을 수 있다.

니골라”란 “니코”(niko)와 “라오스”(laos)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로 백성(평신도로 알려져 있음)을 정복 혹은 이기는 자라는 뜻이다. 이로써 우리는 이미 교회 시대 초기 때부터 제사장 제도의 조짐이 있었으며 목사 혹은 장로를 수평적 형제 관계와 만인 제사장 제도(계1:6,마23:8, 벧전2:9)로부터 분리해내어 성직 계급으로 구분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소위성경의 잃어버린 책들” 혹은 신약의 외경들은 니골라 교리를 정당화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이래내우스(Ireneus), 져스틴마터(Justin Martyr) 그리고 이그나티우스(Ignatius)와 같은 교부들 역시 이런 짓을 하고 말았다.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분하는 교리를 실행하는 자들은, 오늘날에도 자신들은 “부르심”을 받았다고 주장함으로써 모든 믿는 자들은 부름 받지 않은 것처럼(롬8:28-30) 내세우면서 형제들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은 실행을 가장 강력한 어조로 비난하고 계신다(계2:6, 15).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분의 말씀은 거부되었고 역사적으로 성경적 기독교의 부패는 제사장 제도의 침투로 인한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제도 없이는 오늘날 교황 제도는 불가능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가 그와 같은 거짓교리를 용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칭찬 하셨다.

에베소교회에 대한 주님의 책망은, 주님께서 칭찬하셨던 그들의 일에 대한 열심이 지나쳐 결국 그들의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주께서는 그들의 빛이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셨다. 그들의 일에 대한 열심은 칭찬의 대상이었으나 그럼에도 주께서는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하여 다시금 주님과의 사랑에 빠지도록 하라고 요구하셨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 중 얼마나 많은 분들이 거짓 교리와 싸우는 법을 배웠고 주님을 위해 인내하며 수고하는 것을 배웠으나 내적으로는 기도와 성경 읽기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리고 교회 예배가 너무도 짧아 아쉬웠던 때가 벌써 지나가 버린 그런 사람들인지 스스로 생각해보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첫 사랑과 에베소교회의 희미해진 사랑을 데살로니가 1:3과 계시록 2:2 을 비교해 보면서 살펴보자.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눈앞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끊임없이 기억하기 때문이니”(살전 1:3)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또 네가 사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못함을 아노니 네가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하는 자들임을 알아내었으며”(계 2:2)

(1)    너희의 믿음의 행위와 - 네 행위와(믿음이 언급되지 않고 있음.)

(2)    사랑의 수고와 - 수고와(사랑이 언급되지 않고 있음.)

(3)    소망의 인내를 - 인내와(소망이 언급되지 않고 있음.)

 

혹시 우리의 외적인 섬김은 여전하나 내적 사랑은 식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회개를 요구하신다.

이 교회에 대해 주님께서는 이들이 주님의 말씀에 마음을 기울인다면 낙원에 있는 생명의 나무에서 먹을 수 있다고 약속하셨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교회는 회개하지 아니하였고 그들의 등잔대는 옮겨져 버렸다. 그리고 현재는 회교도들이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다.

이 교회는 A.D. 34-170년경에 존재했던 초기 교회에 해당되며 우리가 설정한 169년은 서머나에서 폴리캅이 순교한 시점으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해이다. (주: 일곱 교회가 교회 시대를 대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주석가들 사이에도 이들 연도에 관해서는 서로 의견이 다르다. 성경 안에서는 홍수 이전 시대와 홍수 이후 시대 혹은 그리스도 이전 시대와 이후 시대 등과 같이 시대 구분이 확실하지만 성경 바깥에서는 시대 구분을 정확히 할 수는 없다.)

 

2. 서머나 교회 시대

두 번째 교회는 서머나(2:8-11) 교회이다. 이 도시의 이름은 “몰약”을 뜻하며 아라비아와 동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식물에서 채취하는 수지인데 강하고 상쾌한 냄새를 내뿜는다. 이것은 시체의 방부 처리에 사용되며 향기를 내뿜기 위해서는 부숴야 한다.

몰약(myrrh) 이란 이름은 아라비아어인 미라(mirra)에서 나온 것으로 그 의미는 쓰다는 뜻이다. 이는 이 수지의 맛이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서머나는 박해 받은 교회였다. 교회가 첫 사랑을 버렸으니(에베소 교회) 징계가 뒤따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서머나).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은 이교도 로마제국 하에서 부서진 주님의 백성이 살던 시기에 해당된다. 이때 달콤한 순교의 향기는 하늘로 올라갔던 것이다. 이 고통의 시기는 대략 150년간 지속 되었다.

물론 많은 성도들과 사도들도 A.D. 70년까지 로마 제국에 의해 고난을 당하기는 하였지만 이 서머나 시기의 고난은 로마 제국이 정책적으로 박해를 가했다는 사실로 특징 지워진다는 의미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초기 교회시대에 클라우디우스(Claudius) 와 네로(Nero) 황제의 행동은 주로 자신들이 처한 정치 상황에서 비롯되었으니 이는 당시 그 지역의 상황에 대한 황제들의 반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반면 서머나 시대에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에 심각할 정도로 침투했고 이에 기독교를 “무신론적” 종교(당시 기독교는 신의 형상이 없는 유일한 종교였음- 역자 주)를 규정짓고 선동자로 취급 받고 있던 믿는 자들을 박해하기 위해 대대적인 조치들이 취해졌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시민의 권리가 모두 박탈되었고 재산권이나 심지어는 생존권마저 거부당한바 이것이 당시의 국가의 시책이었던 것이다. 국가의 법령에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재산을 빼앗겼고, 고문을 당했으며, 추방당했고 불태워졌으며 혹은 원형 경기장에서 야수들에게 내던져짐으로 사람들의 여흥거리로 전락하였다.

라오디게아 시대와는 대조적으로 서머나 시대의 교회는 가난으로 얼룩지어져 있었으나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부자였다.

그들에게는 고난이 약속되어졌으며 이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그들에게 들려온 메시지였다. 마귀로부터 박해와 감옥에 갇히는 일이 일어날 것이나 이는 그들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10배나 강한 환란이 있겠으나 끝까지 신실하라는 권면이 주어졌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배워야 할 너무나 소중한 교훈이 아닌가! 주님께서는 고난을 미리 내다보셨으나 이를 제거하시지 않으셨다. 교회가 직면할 어려움들을 미리 내다보신 주님은 이 세상의 흐름을 그들에게 유리하게 바뀌어 놓는 대신 오히려 그들로 그 어려움들을 직면하기 위해 그들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라고 훈계하셨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런 종류의 성경적 기독교가 거의 사라진 채 목격되고 있지 않다.

이들에게 주어진 약속은 이생에서의 안락이나 축복이나 구출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이겨내는 동안 둘째 사망이 결코 그들을 해칠 수 없음(마10:28)을 깊이 명심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이 서머나 시대로부터 고귀한 순교자의 군대가 하늘의 현관문을 통과하여 생명의 왕관을 받기 위해 행진했던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어야 할 간증 중에는 로마에서 117년 화령당한 이그나티우그, 156년 로마에서 목 베임 당한 져스틴, 169년 서머나에서 화형당한 폴리캅, 프랑스의 노예 소녀 블란디아. 그리고 북 아프리카의 퍼페튜아와 그녀의 동료들이 겪은 일들이 들어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놀랍다기보다 너무도 도전을 주는 이야기로 우리 모두에게 열심과 헌신을 촉구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겠다. A.D. 200년경 터틀리안은 “순교자들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 라고 기록했다.

이 교회에 대해서는바로잡으라는” 말씀이 전혀 없다. 그들의 고난이 그들을 정결하게 했음이 틀림없다. 주님께서는 주의 이름을 모독하는 거짓 유대인들에 대해 언급하셨고 이들이 사탄과 손잡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서머나 교회 성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망이 없으셨다.

이 교회는 역사적으로 디오클레티안(Diocletian) 황제(170-312 A.D.) 때까지의 로마의 통치자들에 의한 주님의 몸에 대한 박해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312년이라는 시점은 콘스탄탄 황제의 소위 “회심” 이라고 알려진 사건에 근거해서 택한 것이다.

 

3. 버가모 교회 시대

세 번째 서신을 받은 교회는 퍼가모에 있었다(2:12-17). 페르가뭄(pergamum) 이라는 단어는 어원적으로 볼 때 두 가지 방식으로 해석 된다. 제이 리치(J. Ritchie)는 “높음” 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반면 뉴베리(Newbery)는 첫 번째로는 “승진” 이라는 뜻을, 그리고 두 번째로는 “실제적 결혼” 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이는 결혼을 의미하는 가모스(gamos)와 “최대한으로 이동된 무엇”을 의미하는 퍼(per)라는 접두사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이 교회는 가시적 교회가 콘스탄틴 황제의 칙령에 의해 세속 권력을 장악하게 될 정도로 높아진 교회 시대를 대표한다. 이 시대에 교회는 세상과 결혼했거나 최소한 연합을 이루게 되어 교회의 영적인 능력과 영향력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맞바꾸고 말았다.

버가모 교회는 교회와 국가의 연합을 대표하는 바 이는 하나님께 매우 불쾌한 일이었다(약 4:4). 또한 이 시기에 교황제도와 그 사탄적인 도그마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교회에는 발람의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다. 이 교리는 민수기 22-25장에서 엿볼 수 있는데, 영적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사악하고 불경건한 자들과 연합하도록 독려했던 것이다. 이러한 연합은 그 지도자들의 재정적인 이득을 위해 추진되었다. 이러한 연합에 가담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말았다. 교회의 역사에도 이와 같은 일이 발생했다. 로마 왕궁에서 도망쳐 온 젊은 콘스탄틴은 군대에 의해 황제로 추앙받게 된다. 그는 영국에서 배를 타고 항해를 해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십자가의 군기 아래 로마 근처의 밀비움(Milvium) 다리에서 막센 티우스(Maxentius)를 정복하였다.

콘스탄탄은 이전 황제들 시대에 제정되었던 기독교 박해 칙령들을 폐지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제국의 높은 지위에 올려놓았다. 이와 같은 황제의 후원은 기독교의 부패를 가져홨고 교회와 국가 간의 이 거룩치 못한 결혼 관계가 시작되어 결국은 교회가 지니고 있던 특징은 사라져 버렸고 간증은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버가모 교회에는 또한 니골라당의 교리를 붙들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앞서 보았듯이 사도시대의 교회는 이 교리를 미워했으나 버가모 교회 시대에 와서는 평신도에 대한 성직자 계급의 군림이 확고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섞인다면 교회와 세상에 모두 이익이 된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용납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저항하는 몇몇 개인들이 있었겠지만 대중은 이러한 거짓 교사들에 대해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에베소 교회 때만 해도 이런 자들을 시험해 보고 미워했었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그런데 퍼가모 시대에는 악한 교사들이 용납되고 악한 실행이 범람했다. 나쁜 교리는 항상 나쁜 실행을 낳는 법이다.

버가모는 사탄의 자리가 있는 곳이었다(계2:13). 이는 이 세상신이 그곳에 거하고 있음을 뜻한다. 이로써 우리는 교회가 순례자로서의 모습을 잃게 되었고 세상은 교회를 박해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세상과 교회가 서로 연합했는데 박해할 그 무엇이 남아 있겠는가? 이 시대로부터 교회는 전반적인 의미에서 하늘에 속한 존재로서의 특성을 잃고 지구상에서 교회 역사 전체를 통해 다시는 회복되지 못한다. 더 나아가 결국 교회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중을 교화하고 세속적 이익을 늘리는 수단일 뿐이라는 인식을 주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칭찬할 만한 그 무언가가 여전히 남아 있었으니 이 교회는 그분의 이름과 그분에 대한 믿음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름이란 성경에서 한 인격체의 본질의 표현이며 따라서 그분의 이름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제시하고 있다. “나의 믿음”(계2:13)은 성육신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관한 기독교의 진리의 틀을 말한다.

비록 교회 전반은 세상에 터를 잡고 하늘에 속한 모습을 포기하고 말았으나, 그래도 아직은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진리를 붙들고 있었고 근본적인 교리들을 부인하는 데까지 타락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계2:13).

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기독교의 진리들을 왜곡시키려는 시도들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안주의(Arianism), 주님의 인성을 공격하는 아폴리나리안주의(Appollinarianism) 그리고 우리 주님을 두 인격체로 만들어 버리는 네스토리안주의(Nestorianism)등이 4세기경에 발흥했다. 교회는 여러 번에 걸친 공회를 통해 이러한 이단들을 정리했고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진리들을 고수했으며 진리를 포기하기보다는 목숨을 내려놓기까지 싸우기도 했다. 이러한 순교자들 가운데 대표로 안디바가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서머나 교회가 사탄의 종교에 저항하기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목숨을 희생물로 바쳤던 반면에 퍼가모 시대에는 순교가 너무도 드물어 안디바라는 순교자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대다수가 순교했던 초대 교회와는 달리 안디바는 예외적인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굳게 붙들고 예수님의 믿음을 자신들의 믿음으로 선포했으나, 세상에 대항하는 성경적 입장은 거의 고수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버가모 교회에 보낸 서신은 312~606년 사이에 해당되며 이때 교황 제도가 시작되었고, 로마는 사탄의 자리로서 자신의 입지를 굳게 하여 결국 교회사 전체에 걸쳐 그 “위상”을 드높이게 된다. 606년이라는 해는 로마의 감독인 보니파스(Boniface)가 “세계의 감독”(Universal Bishop)으로 인정되어 최초의 교황이 되었던 해였기에 선택되었다고 할 수 있다.

 

4. 두아디라 교회 시대

네 번째 교회는 두아디라 교회이다(계2:18~29). 이 이름은 두 단어의 합성어에서 나온 것으로 “희생, 혹은 희생의 향기”라는 뜻을 가진 단어와 “계속해서 나아가는”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가 합해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지속되는 희생을 갖게 된다.

국제 표준 성경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이름은 두아(Thya)라는 성에서 따온 것으로 18,19세기의 몇몇 작가들은 “고향의 향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시대의 교회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이 이름은 매우 적절한 셈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번 죄들로 인한 영원한 희생을 드리셨고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셨다(히10:12). 그러나 교황은 “거룩한 희생 미사”를 명분으로 해서 성찬식에 쓰이는 빵(host)을 이용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계속해서 희생을 드리신다라는 교리를 발명해 냈다. 이로써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로마의 제단 위에서 계속해서 희생물로 바침으로 고통을 가하고 있다. 

두아리라 교회에 보낸 메시지를 교황권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대에 해당 된다. 이 교회는 상당히 많은 좋은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했고, 구제에 힘썼으며, 섬겼고 신실하였으며 그들 중 참된 성도들은 인내심이 많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아 이 교회는 이세벨이라는 그 여자(계2:20)의 통제하에 놓여 있었다. 최초의 이세벨은 이방의 페니키아 출신 여왕으로 왕좌를 찬탈하였고, 바알을 숭배했으며 제사장 민족을 지배했고, 재산과 땅을 바치지 않은 사람들을 살해했으며, 하나님의 참된 대언자를 죽이려고 했다(왕상18,19장). 이세벨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나약하고 가장 악한 왕들 중의 한 사람과 결혼한 이교도 여인이었다. 그녀는 왕좌 뒤에서 권력을 휘둘렀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기 위해 세속 권력을 사용한 성경의 최초의 예는 이세벨과 연관이 있다고 하겠다. 그녀는 제사장이 이끄는 이방 종교를 국가의 종교로 삼았고 이로써 이스라엘을 우상들과 부도덕으로 가득 채웠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 여인의 이름을 교회를 괴롭히고 있던 여인에게 붙여주신 것이다.

콘스탄틴의 통치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로마는 교회와 관련된 모든 것들의 중심지로 떠올랐고 이에 암흑 시대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름뿐인 교회 안에 부패와 사악함이 너무도 극심한지라 불신자였던 역사가 기본(Gibbon)은 “교회의 역사는 지옥의 연대기”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교회가 이방 종교의 온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교도들의 축제는 기독교 축제가 되었고 이교도들의 신들은 기독교의 성자들이 되었으며 이방 종교의 의식들은 기독교의 의식으로 새롭게 태어났고 이방 종교의 제사장들과 여사제들은 교회의 공식적인 종들이 되었다.

이 여자는 음행을 일삼는 자로 이 여자가 큰 환란 속에 던져지게 될 때 그녀와 함께 간음하던 자들도 그 운명을 함께하게 된다. 또한 그녀의 자녀들은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계2:20-23).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환란을 피하게 되는 반면 그 여자(that woman)의 자녀들은 피하지 못할 것이다.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믿음” 의 신실한 아들 혹은 딸이 되는 것이 주로 강조되었는데 이 믿음은 “거룩한 어머니 교회” 의 도그마와 교리가 되어버렸다.

이 시기에 소위 “하나의 참되고 사도적인 교회”가 주장하는 도그마의 일부로서 많은 이교적 미신들이 도입되었다.

 

(1)   610년 로마의 감독에게 최초로 교황(Pope)이란 칭호가 주어졌음.

(2)   709년 교황의 발에 입 맞추는 의식이 시작됨.

(3)   750년 교황의 정치권력이 시작됨.

(4)   788년 형상들과 유품에 대한 경배가 승인됨.

(5)   850년 성수 (Holy water)가 승인됨.

(6)   890년 성 요셉에 대한 숭앙이 시작됨.

(7)   995년 죽은 성자의 시성이 시작됨.

(8)   1090년 은둔자 베드로에 의해 로사리오(염주)가 도입됨.

(9)   1184년 베로나(Verona) 공회에 의해 이단에 대한 종교 재판이 제정됨.

(10)   1190년 면죄부 판매가 시작됨.

(11)   1215년 교황 이노센트 3세에 의해 화체설이 교리로 선포됨.

(12)   1215년 교황 이노센트 3세에 의해 사제에게 하는 고해성사가 교리로 선포됨.

(13)   1220년 성병(host)을 찬미하는 것이 교리로 선포됨.

(14)   1229년 교회가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발렌시아(Valencia) 공회에서 성경을 금지도서 목록에 포함시킴.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이 교회의 전 시스템이 구축된 기초가 된 것은 그 악명 높고 신성모독적인 미사로 알려진 지속적인 회생제사 제도로 이는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을 부인하는 것이다. 미사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규범은 11세기에 제정되었다.

이 시기는 또한 십자군 전쟁의 시기로 로마 카톨릭 교회는 칼과 전쟁을 통해 성지를 정복하고자 시도했다. 교황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고문하고 살해했던 종교 재판 역시 이 시기의 산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에 회개할 여지를 주셨으며 이기간은 다른 여섯 개의 교회사 기간 중 가장 길었다. 그런데도 이 여자는 회개하지 아니하였다(21절). 이로써 “로마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 는 속담이 생겨난 것이다.

이 시기는 세속사가들로부터도 “암흑 시대”로 평가 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두려웠던 시기를 “사탄의 깊은 곳”(계2:24절) 이라고 부르셨다.

이 기간에도 얼마간의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다. 그 당시 사정으로 이들에 대한 그 어떤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하겠다. 이들 대부분은 살해 당했고 이들의 기록들은 불타 버렸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폭스(Fox)의 순교사 (가능하다면 편집되지 않은 8권 전체)를 반드시 읽어야 하며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누가 하나님을 위해 서 있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공부를 원한다면 밀러(Miller)의 교회사를 권한다.

두아디라 교회 시기는 606-1517년에 해당된다. 마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예배당 문에다 95개 조항을 못 박은 사건이 일어난 해가 1517년 10월 31일이었으며 이 날은 교회 역사의 전환점이 아닐 수가 없다고 하겠다.

 

5. 사데 교회 시대

계시록 3장은 사데에 있는 교회에게 보내어진 메시지로 시작된다.(3:1-6) 문헌에 따르면 이 사데라는 이름은 “남은 자” “도피한 자” 혹은 “기쁨의 통치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앞서 언급한 그 여자의 수중에서 도피한, 자신의 백성의 남은 자들의 마음을 채워주실 기쁨의 통치자께서 계신다.

주님께서는 에베소 교회에 보내신 방식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사데 교회에 편지를 보내고 계신 것에 주목하라. 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주님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들고서 그 가운데 거닐고 계신 모습으로 등장하셨다. 사데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주님은 일곱 교회를 가진 분으로 묘사되고 있다(계3:1). 이 말씀에 따르면 사데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기는 하나(가진 분) 그분의 통제하에 있지 않다(가운데 거닐고 계시지 않은)는 것을 암시 받게 된다.

이 교회는 이름은 살았으나 실제로는 죽어 있다. 이교회는 교회의 기초와 교회의 교리와 실행의 성경적 기초가 무엇인지를 기억 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이는 주께서 주신 모든 것이 이 교회 안에 죽어 있기 때문이었다(계3:2).

우리는 종교 개혁이 로마 카톨릭과의 단절이 아닌 로마 제국과의 단절에 불과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록 교황의 통치권이 약화되기는 했으나 로마 교회의 많은 거짓 교리들은 그대로 남았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의 행위의 완전함을 찾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계3:2). 사실 거의 모든 종교 개혁자들이 유아 세례(침례)라는 로마 카톨릭 이단 교리를 붙들었다. 이들 중 대다수는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것이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는 수단이라는 거짓 교리를 붙들었다. 또한 거의 모든 개혁자들이 국가 교회라는 괴물 같은 사상을 지지하고 널리 전파하고자 했다.

많은 사람들이 로마와 결별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내세웠으나 사실 진실로 구원 받은 사람은 매우 적었다. 이처럼 이 교회는 이름은 있으나 실제로는 죽어 있었던 것이다. 구원은 로마 카톨릭 교회 안에서도 개신교 안에서도 찾아 볼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사역 안에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교회가 이름만 살아있다고 하셨다. 어쩌다가 정금이 빛을 잃고 말았는가! 독일에서의 종교 개혁이 통치자들의 군사력에 의지하게 되자마자 그 활력은 멈추고 말았으며 오늘날까지도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로마 카틀릭 신자로 남아있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은 종교 개혁의 기미도 보이지 못했다. 위클리프의 영국, 낙스의 스코틀랜드 혹은 루터의 독일은 지금 어디 있단 말인가? 안타깝게도 죽어 있는 개신교는 자신의 조상(개혁자들)의 이름에만 매달려 있을 뿐 자신의 하나님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종교 개혁의 초기에는 하나님의 영의 강력하신 역사가 있었고 모든 사람에게 성경이 회복됨은 물론 이신칭의 (믿음으로 의롭게 됨) 교리가 전파되었었다. 이는 강력한 진리의 증거였었다. 그러나 로마의 압제하에 신음하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이 개혁 운동과 연합했을 뿐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가 미워서 종교 개혁에 동참했던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정통이라는 명성을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생명이 없이 죽어 있게 되었다. 이로써 처음에는 성령님의 인도 하에 강력의 진리의 증거로 특징 지워졌던 개혁 운동이 사람들의 주도하에 로마의 독재와 학정에 대항하는 항의 집단(Protestant)이 되고 만 셈이다.

이 항의는 로마의 적대감을 불러왔다. 이에 대항키 위해 항의자들(Protestants)은 로마와의 투쟁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고자 세상의 보호하에 머물게 되었다. 이로써 세상을 지배하고자 했던 로마 카톨릭의 체계와는 달리 개신교회는 세상의 보호를 구했고 결국은 세상에 의해 지배 당하고 만다. 이 최종 결과가 사데 교회의 모습인 셈이다. (미국은 이 모든 과정을 잘 보여주는 훌륭한 예가 아닐 수 없다. 식민지 시대의 미국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극수수의 성경 신자들이 칼빈주의 국가 교회에 의해 훼방 받고 박해 받은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박해로부터 권리장전이 나왔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기타 여러 법률이 제정 되었다. 부패한 정부와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제정한 법률에 의해 제공된 보호(종교의 자유)로 말미암아, 교회는 향후 교회의 안전과 복지에 대해 정부를 신뢰하게 되고 만다. 20세기 말부터 발흥한 교회의 정치 참여는 “우리의 조상들의 미국”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역이 아니라 물질적 평안을 지키고자 하는 교회 회원들의 “사역”인 것이다.)

이 시기에 믿음을 지키고 세상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참된 성도들은 각 민족의 언어로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성경은 로마의 제사장들의 손에서 해방되었던 것이다.

사데 교회는 1520-1750년까지의 시기에 해당된다. 물론 이 시기가 정확히 언제까지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18세기 전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개신교단의 시스템으로부터 사람들을 불러내셔서 위대한 필라델피아시대의 부흥을 시작하고자 이들을 사용하셨던 것이다.

 

6.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

여섯번째 교회는 필라델피아에 있었던 교회였다(계3:7-13). 이 단어의 의미는 “형제 사랑” 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다른 사람을 위해 내려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는바(요일 3:16), 이 시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런 사랑을 실천하였다. 이 교회 앞에는 열린 문이 놓여 있었고 이들의 손에는 킹 제임스 흠정역 성경이 들려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 시기는 요한 웨슬리, 죠지 휫필드, 요나단 에드워즈, 남부의 군목들, 피터 카트라이트. 그리고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위대한 부흥이 있었던 때였다.

이 시기는 모라비안, 플리머스 형제단 그리고 복음을 들고 해외로 나간 스코틀랜드 및 웨일즈의 수백 명의 남녀들이 위대한 선교 사역을 펼쳤던 시기였다. 허드슨 테일러, 아도리람 져드슨, 윌리엄 케리, 존 페튼, 그리고 수천 명의 동일한 믿음을 소유했던 일꾼들이 해외에서 혼들을 얻어냈다.

하버드, 예일 및 프린스톤 등과 같은 위대한 교육기관들이 젊은 남녀들을 기독교 믿음의 교리를 가르치고자 세워졌었다. 영국의 브리스톨에서는 죠지 뮬러가 고아원을 세워 하나님을 위해 어린아이들을 훈련시켰다.

이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아무런 책망을 받지 않았다. 이들은 형제를 사랑했고, 하나님을 거룩하고 참되신 분으로 인정하였으며, 교황의 손에서 열쇠를 취해(계3:7-8, 사22:22) 교회의 참된 머리이신 분께 되돌려 드렸다.

이 교회는 그분의 말씀을 지켰다(계3:10).

이교회는 성경 말씀에 순종했고 이 말씀을 전 세계로 퍼뜨렸다.

이교회는 은혜 대신 행위를 강조하는 유다주의자들에 의해 방해를 받았으나 주님께서는 이들 거짓 교사들로 하여금 주님의 참된 교회의 발 앞에 와서 경배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계3:9). 이러한 권능은 사도 시대 이래로 찾아 볼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존중한 교회 안에서 얼마나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는지에 대해 이해하고 싶다면 우리는 이 시대의 선교사들의 삶과 사역을 읽어 보아야 한다.

이 시기 미국에서 일어난 대 각성운동은 전 세계에서 재연되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형제 사랑을 지닌 교회에 의해 회심했던 것이다.

이 위대한 열린 문 교회 시기는 1750-1881년까지였다. 영국에서 변개된 개역본(Revised Version)이 발행되던 해에 부흥은 저물기 시작했고 라오디게아시대의 음침한 동녘이 터오고 있었다.

 

7.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

마지막 교회는 라오디게아 교회로 그 이름의 의미는 사람의 권리를 뜻한다. 이 이름부터가 벌써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입으로만 믿음을 고백하는 자들로 가득 차 하나님을 자신의 종으로 만들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개정하고 수정하는 자로서 자신을 내세웠고 인간을 드높이려는 선생들을 많이 쌓아 두었다.

이 교회는 영적으로는 미지근하고, 물질적으로는 풍요하며, 도덕적으로는 가난하기 짝이 없다. 이 교회는 인권, 여권, 소수의 권리, 동성애자들의 권리, 그리고 제3세계의 자기 결정 권리를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또한 여자와, 동성애자와 그리고 위험한 자들을 목사로 임명하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성경에서 예수님의 피를 제거하고, 찬송가에서 예수님이 남성이심을 없애고, 강단에서 회개의 교리와 거룩한 삶의 기준과 단정한 옷차림과 순결한 언어 생활을 제거하고자 한다.

이 교회는 수백만 달러가 들어가는 건물을 짓고도 세상의 기근을 끝내자는 교황의 주장에 동조하는 교회이기도 하다.

이 교회는 포르노 영화에 대해 언론을 비판하면서도 10대를 모아 밤샘 파티를 여는 교회다. 이 교회는 세상의 헤어스타일과 목소리 형태화 춤추는 소녀들과 리듬을 택하고서는 그것을 두고 현대식 예배라고 부른다.

이 교회는 거리설교와 킹 제임스 성경을 증오심을 품은 채 정죄하면서 소위 “하나됨”과 교회 일치 운동은 환영한다.

이 교회에서는 여자들이 짧은 바지(무릎 위)와 스포츠에 가까운 머리를 하고 남자들은 향수, 귀고리 그리고 파마를 하고 다니면서도 소위 “가정적 가치”에 대해 강조하는 라디오 심리학자들에게 헌금을 보낸다.

라오디게아 시대에는 노만 필, 로버트 슐러, 제시 잭슨, 루스 카터, 힐러리 클린턴, 에이미 그랜트, 돌리 파튼 그리고 러시 림바우 등이 그리스도인으로 간주되는 반면, 깨끗한 삶을 사는 근본주의 목사들은 “증오를 불러일으키는 자들”로 분류된다.

이 교회 시대에서는 카톨릭 사제, 감독교회(성공회) 주교, 감리교 목사 그리고 침례교 사역자들이 낙태 시술 병원 앞에서 함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는 함께 맥주를 마시러 간다.

이 교회는 하나님을 “병”이 나게 만드는 교회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입에서 이 교회를 토해 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계시록 3:20이 주님을 영접하라는 초청에 자주 사용되고 있으나, 실은 마지막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 바깥에 계시고 문은 그분에게 닫혀 있어, 그분께서 그 누군가가 자신을 들어오도록 해 줄지 알아보고자 교회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말씀이다. 주님께서는 교회 전체가 주님을 환영할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고 계시며 다만 독보리들 중 알곡 몇 사람들과 교제를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계실 뿐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로마 카톨릭(두아디라)과 개신교(사데)가 거대한 종교 제도를 이룩해 놓은 양상을 띠고 있다. 필라델피아는 하나님의 영께서 주장하시는 도덕적 정통 운동 안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필라델피아와 라오디게아를 대조시켜 비교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울지 모른다. 이 두 교회는 마지막 날들에 존재하고 있는 도덕 운동을 대표하고 있다. 필라델피아는 에베소 교회가 교회 시대 초기에 집합적으로 대표하고 있던 그 도덕적 가치를 회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라오디게아는 에베소 교회 시대의 도덕적 가치를 포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 필라델피아의 특징을 지닌 자들은 주님께서 오실 때 들림 받게 될 것이며 라오디게아에 속한 자들은 그분의 입에서 토해내침을 당하게 될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데리러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지상에는 더 이상의 큰 부흥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