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2010.10.13 01:51

복음증거1-일어나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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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일어나 가라

Arise and Go

James W. Knox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과의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Witnessing 시리즈 중 Arise and Go의 내용을 요약 및 정리 것입니다.

 

1. 사도행전 2장에서 믿는자들이 성령을 받고 나서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제자들의 증거로 약 3천명 가량이 구원받게 됩니다( 2:41). 성경은 이들이 믿고 구원받자 마자 바로 교회에 더해지게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이때 구원받은 3천명의 사람들이 매년 한명씩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면 일년 후에는 구원받은 사람이 6천명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6천명이 다시 일년에 한명씩만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면 둘째 해에는 구원 받은 사람이 만 2천명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2천명의 구원 받은 사람들이 다시 일년에 한 사람씩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면 셋째 해에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2 4천명으로 늘어납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이 일년에 한명씩만 구령한다면 29년 내에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30년이 채 되기도 전에 온 세상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2.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일년에 한명씩만 구령을 한다면 내년에는 전체 믿는 사람의 수가 두배로 늘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일년에 한명에게만 복음을 전해서 구원 받게 할 수 있다면 구원 받은 사람의 수는 계속 그렇게 배로 증가하게 됩니다.

 

3. 저는 낚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낚시대는 무엇이 좋은지, 릴이나 미끼는 무엇을 써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가만히 앉아서 물고기가 미끼를 물기를 기다리는 것도 못합니다. 물고기를 잡는게 목적이라면 물에 다이나마이트를 던져서 한꺼번에 잡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냥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사냥을 즐기는 사람들은 이른 새벽에 일어나 산속을 헤메며 사냥감을 찾아 나섭니다. 때로는 몇 시간씩 산속을 헤메기도 합니다. 저는 낚시나 사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흥미도 없습니다.

 

4. 제가 낚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일년동안 매일 낚시를 하러 나간다면 언젠가는 물고기를 한 마리 잡게 됩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아마 다른 낚시꾼들처럼 많은 물고기를 잡거나 대어를 낚지도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잘못된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일년동안 매일 낚시를 간다면 분명히 한 마리는 잡게 될 것입니다.

 

5. 저는 여러분이 얼마나 신학적인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고 성경을 잘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성경을 잘 모르고 신학적인 지식이 전무하다 할지라도 일년동안 매일 복음을 전하러 나가면 한 사람 정도는 실수로 구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6. 여러분 중에는 낮선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 할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물건을 가고 팔거나 관공서에 가면 항상 낮선 사람과 이야기를 합니다. 여자들끼는 옷이 참 예쁘네요.”, “귀걸이가 예뻐요.”같은 말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도 잘 하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매일 낮선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으며 따라서 낮선 사람과 대화를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7. 여러분은 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할 때 낮선 사람에게 프라스틱으로 된 카드를 주면서 얘기합니다. “여기있습니다. 이것으로 계산하겠습니다.” 낮선 점원에게 돈을 지불하면서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구매하려고 하면서도 낮선 점원과 대화하는 것이 두려워서 돈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세종대왕이 그려진 종이를 낮선 사람에게 내미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구원자에 대해 증거하고 있는 종이를 내미는 것은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과 날씨나 전쟁이나 정치, 스포츠 얘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워 합니다. 우리가 다른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처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해야 합니다.

 

8. 먼저 로마서 10:8-11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이 있어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느니라, 하였으니 곧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또 성경 기록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니

 

9.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서 9절과 10절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11절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는 다는 부분은 좋아하지만 그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은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1] 자신은 부끄러움을 잘 타서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9절과 10절을 할 수 있으면 11절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시인하는 것을 할 수 있으면 그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도 할 수 있습니다.

 

10. 계속해서 10절부터 보시겠습니다. 이는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 모든 사람 위에 계신 같은 주께서 자신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제부터 핵심적인 부분이 나옵니다. 그런즉 그들이 자기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어찌 부르리요?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분을 부르지 않습니다. 다음 절도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자기들이 듣지 못한 분을 어찌 믿으리요? 이것도 당연한 얘기입니다.

 

11. 선포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여기서 선포자(preacher)”라고 하는 것에 주목해 보세요. 성경은 목사(pastor)”라고 하지 않습니다. “복음증거자(evangelist)”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전임사역자(full time christian worker)”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선포자라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은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12. 여러분은 성경에서 선포(preaching)”[2]라고 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성경에 의하면 선포(preaching)”란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선포는 설교단에 서서 믿는 자들에게 성경을 강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포는 누군가에게 예수님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13.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우연히 예수님을 알게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스스로 예수님을 찾아 나서지 않습니다. 그들이 와서 복음을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믿는 사람 중에 누군가 그들에게 가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굳이 자신이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특정한 일을 특정한 방법으로 하시려고 정하셨습니다.

 

14. 하나님께서는 황소와 염소의 피로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 카톨릭의 성사를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를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의 피를 통해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셨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15. 하나님께서는 밤하늘에 별들로 복음을 수놓아 사람들이 보고 구원받을 수 있게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모두 강제로 복음을 믿게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방법은 주님을 알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주님을 알 수 있는지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16. 저는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는 인간을 구원하실 수 없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3]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구원의 방법입니다.

 

17. 이번 시간에는 구원받은 세 사람을 살펴볼텐데 한 사람은 흑인이고 다른 사람은 백인이고 마지막 사람은 동양인입니다. 우리가 살펴 볼 첫 사람은 흑인으로 이디오피아 사람입니다. 이디오피아는 아프리카 대륙에 있습니다. 이 아프리카 사람은 매우 신실한 종교인이었습니다. 그는 대단히 종교적이었습니다.

 

18. 사도행전 8:27을 보세요. 빌립이 일어나 가는데, 보라, 이디오피아 사람 곧 이디오피아 여왕 간다게 밑에서 그녀의 모든 국고를 맡아 큰 권세를 가진 내시가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이 사람은 직장에 휴가를 내서 여행을 간 것입니다. 그런데 플로리다로 놀러 가거나 미키 마우스를 보러 간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특별히 시간을 내서 하나님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이 사람은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은 휴가를 내서 성경공부를 하러 가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프리카 사람은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고국을 떠나 먼 지역까지 찾아갔습니다.

 

19. 이 사람은 병거를 타고 먼 길을 갔습니다. 그는 비행기를 타고 간게 아닙니다. 그는 에어컨이 나오는 편안한 좌석에 앉아서 여행할 수 있는 차를 탄 것도 아닙니다. 그는 병거를 타고 아프리카의 시내 사막을 건너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러 갔습니다. 이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20. 계속해서 28절을 보겠습니다. 돌아가면서 자기 병거에 앉아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그는 여행을 하면서 쓸데없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쓸데없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면서 여행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성경을 읽으면서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알렉산더 스코비가 녹음한 킹제임스성경 카세트를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른 장소에서 하나님을 경배했고 성경을 읽고 있었습       니다.

 

21. 32절을 보세요. 그가 읽은 성경 기록은 이 부분이니 곧, 그가 도살장으로 가는 양같이 끌려갔으며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양같이 자기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것은 이사야 53장입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구절입니다. 이 아프리카 사람은 바른 하나님을 바른 도시에서 경배했고 바른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22. 33-34절을 보세요. 그가 굴욕을 당하며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밝히 드러내리요? 이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을 당하였기 때문이로다, 였더라. 내시가 빌립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원하노니 대언자는 누구를 가리키며 이것을 말하느냐? 자기를 가리키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을 가리키느냐? 하매 제 말을 들어보세요. 이 사람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경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대륙을 가로질러 올 만큼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그것도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을 말씀하고 있는 이사야 53장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빌립에게 자신이 읽고 있는 것의 의미를 전혀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3. 여러분, 잘 들어 보세요. 만약 하나님을 믿는 어떤 사람이 경배하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가면서 구약 성경 이사야 53장을 읽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찾지 못했다면, 여러분의 이웃도 예수님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친척도 예수님을 찾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여러분의 직장 동료나 학교 친구도 예수님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이 아프리카 사람이 예수님을 찾지 못했다면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누구도 예수님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24. 이제 다시 사도행전 8:26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밑 줄을 그으면서 성경을 읽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밑 줄을 그어야 할 부분이 나옵니다.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 남쪽으로 나아가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 하였는데 그곳은 사막이니라. 밑 줄을 그어야 할 부분은 일어나가라(Arise, and go)”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음 절에 무엇이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보겠습니다. 이 부분도 밑 줄을 치세요. 일어나 가는데(arose and went)( 8:27)

 

25. 하나님께서는 일어나 가라고 말씀하셨고 성경은 빌립이 일어나 가는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갔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성경을 읽으며 병거를 타고 가는 이디오피아 사람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26. 29절부터 보겠습니다. 그때에 성령께서 빌립에게 이르시되, 가까이 가서 이 병거에 합류하라, 하시거늘 빌립이 거기로 내시에게로 달려가 그가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이르되, 그대가 읽는 것을 깨닫느냐? 하매 내시가 이르되, 누가 나를 지도해 주지 않으면 어그때에 성령께서 빌립에게 이르시되, 가까이 가서 이 병거에 합류하라, 하시거늘 빌립이 거기로 내시에게로 달려가 그가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이르되 찌 내가 깨달을 수 있으리요? 하고 빌립이 올라와 자기와 같이 앉을 것을 청하니라. 내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부분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씻기시려고 피를 흘리는 부분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죄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53:5)라는 부분을 읽고 있었습니다. 빌립이 그에게 그대가 읽는 것을 깨닫느냐?라고 묻자 내시는 누가 나를 지도해 주지 않으면 어찌 내가 깨달을 수 있으리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의 주위에 있는 사람도 이 내시와 별로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여러분과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도 이와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이웃도 이와 비슷합니다. 교회에는 다니지만 예수님을 찾지 못했고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선량하고 신실한 사람같지만 예수님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27. 계속해서 35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빌립이 자기도 바쁜 관계로 그냥 자기 길을 가버리더라.” “이에 빌립이 선한 삶을 살면서 내시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고 애쓰더라.” “이에 빌립이 다음 주에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꼭 나오라고 하더라.” 아닙니다. 성경은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에 빌립이 입을 열어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복음 증거입니다. 멋지게 살면서 얼굴에 미소만 가득담고 있으면 누군가가 와서 자신도 거듭나고 싶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 증거가 아닙니다.

 

28. 이에 빌립이 입을 열어 바로 그 성경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에게 예수님을 선포하니라(preached).” 잘 보세요. 여기에는 교회도 없고 청중도 없고 설교단도 없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해 주는 것이 바로 선포(preaching)”입니다. “선포(preaching)”가 무엇인지 아세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선포(preaching)”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복음을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4]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여러분은 복음 선포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29. “이에 빌립이 입을 열어 바로 그 성경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에게 침례교회를 선포하니라.” “지역교회를 선포하니라.” “근본주의를 선포하니라.”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선포하니라.” 여러분은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무엇을 하셨는지도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복음을 증거할만큼 충분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30. 그들이 계속해서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매 내시가 이르되, 보라, 여기에 물이 있으니 무엇이 내가 침례 받는 것을 방해하리요? 하매(36) 만일 빌립 NIV를 보고 있었다면 대답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5] 빌립이 이르되,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믿으면 받을 수 있느니라, 하니 내시가 응답하여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노라, 하니라. 그가 명령하여 병거를 멈추게 한 뒤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 속으로 내려가니 빌립이 내시에게 침례를 주니라.(37-38)

 

31. 이디오피아 내시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경배를 했지만 예수님은 모르고 있었습니다. 성지순례를 하고 성경을 읽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경에서 구원에 관해 말씀하고 있는 부분을 읽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예수님을 아는 사람에게 일어나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일어나 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을 모르던 사람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이 입을 열어 얘기해 주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흑인이 구원받은 이야기 입니다.

 

32. 이제 백인이 구원받은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0:1-2을 보세요.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어떤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탈리아 부대라 하는 부대의 백부장이더라. 그는 독실한 사람이요 자기의 온 집과 함께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백성에게 구제물을 많이 주고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33. 이 사람도 역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독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독실한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는 자신만 하나님을 두려워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의 온 가족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녀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도록 키웠습니다. 그는 구제물을 많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구제물을 많이 주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여러분의 기도 생활은 어떻습니까?

 

34. 사도행전 10장에 나온 고넬료는 분명히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항상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구원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처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저는 하나님을 믿는데요.”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고넬료와 같은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35. 3-6절까지 보겠습니다. 하루는 아홉시쯤 되어 그가 환상 중에 하나님의 천사가 자기에게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는 것을 분명히 보매 그가 그를 바라보고 두려워하여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하니 그가 그에게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올라와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었은즉 지금 사람들을 욥바로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부르라. 그가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와 함께 묵고 있는데 그의 집은 바닷가에 있느니라. 네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그가 네게 말하여 주리라, 하더라. 왜 천사가 복음을 직접 전해주지 않았을까요? 지금 이 시대에서 천사들은 복음을 전하도록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살펴보기를 갈망하고 있습니다(벧전 1:12). 천사는 고넬료를 도와줄 수 없었습니다. 만일 천사가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들은 복음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복음을 간절히 듣기 원하는 고넬료에게 천사가 한 말은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부르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36. 19절로 가겠습니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세 사람이 너를 찾으니 그러므로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고 그들과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라. 여기에 밑줄을 그어야 할 부분이 다시 나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일어나가라(Arise…and go)” 주님께서 빌립에게 하셨던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일어나 가라였습니다. 성경은 베드로가 그들과 함께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 빌립은 갔습니다. 주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 베드로도 갔습니다.

 

39. 21절부터 보겠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고넬료가 자기에게 보낸 사람들에게 내려가 이르되, 보라,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까닭으로 왔느냐? 하니 그들이 이르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로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온 유대 민족 가운데서 좋은 평판을 얻고 있는데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한 천사 편에 경고를 받고 사람을 보내 당신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당신의 말씀을 들으려 하나이다, 하매 여러분이 없는 곳에서 여러분의 아랫 사람이 여러분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베드로가 있던 곳은 고넬료의 집으로부터 먼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은 그에 대해서 무슨 말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는 무슨 말이든 합니다. 그러나 고넬료는 그가 없는 곳에서도 좋은 증거를 들을만큼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40. 당신을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당신의 말씀을 들으려 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로마서 10장에서 말씀하던 것입니다( 10:14).

 

41. 이에 베드로가 그들을 불러들여 묵게 하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떠나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그와 함께 가니라. 그 다음 날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니라. 고넬료가 자기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함께 부르고 그들을 기다리더라.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그를 맞이하며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거늘(23-25) 이탈리아 사람이 첫째 교황을 보고 어떻게 하는지 보세요.[6] 베드로가 그를 일으키며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는(26) 만일 베드로가 정말 첫째 교황이라면 그의 후계자들은 모두 그를 본받아야 합니다.[7]

 

42. 이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모인 사람들에게 무엇을 했는지 보겠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34) 베드로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전한 것입니다(39-40). 44절에서는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들이 베드로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43. 사도행전 10장에 나온 백인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아는 어떤 사람(베드로)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고넬료)에게 가서 예수님이 누구시며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질문을 하겠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아이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키우고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았던 사람이 예수님을 찾지 못하고 구원 받지 못했다면 여러분의 동네에 사는 모든 사람들도 예수님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이런 사람이 스스로 예수님을 찾을 수 없었다면 여러분이 어울리는 모든 사람들도 스스로 예수님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가서 입을 열어 예수님에 대해 말해 줘야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44. 주님께서 빌립에게 가라고 하셨고 빌립이 그 말씀대로 가서 입을 열어 복음을 증거했을 때 누군가 구원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가라고 하셨고 베드로가 그 말씀대로 가서 입을 열어 복음을 증거했을 때 누군가 구원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라고 하실 때 우리가 가서 입을 열어 복음을 증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세요? 누군가 구원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빌립과 베드로와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같은 복음을 전파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똑같습니다. 지금만 악한 세상이 아니라 그때도 악한 세상이었습니다.

 

45. 세상이 너무 사악해서 더 이상 복음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갑자기 사악해 진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오래전부터 사악했습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 전에는 똑같이 사악한 사람이었습니다. 똑같이 부정했습니다. 똑같이 더러웠습니다. 똑같이 소망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신 것처럼 여러분의 이웃과 직장 동료도 구원해 주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단순히 좋은 직장인의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동료들이 자동으로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입을 열어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46. 이제 사도행전 9장에 나오는 동양인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람은 셈족에 속한 사람으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의 눈을 치셨습니다.

 

47. 그가 떨며 심히 놀라 이르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도시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하시니라.(6) 만일 여러분이 하늘로부터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할지라도 누군가로부터 다시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면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다 하더라도 누군가로부터 다시 복음을 전해 들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48. 다마스커스에 아나니야라 하는 어떤 제자가 있더라. 주께서 환상 중에 그에게 이르시되, 아나니야야, 하시거늘 그가 이르되, 보소서,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곧은 거리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 하는 다소 사람을 찾으라. 보라, 그가 기도하고 있느니라.(10-11) 주님께서 아나니야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일어나가서(Arise and go)” 주님께서 빌립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일어나 가라.”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일어나 가라.”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요? 주님께서 너는 집에서 쉬고 목사가 대신 가게 하라.”라고 하실까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일어나 가라.”고 하실 겁니다. 여러분이 일어나 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바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49.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곧은 거리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사울이라 하는 다소 사람을 찾으라. 보라, 그가 기도하고 있느니라. 그가 환상 중에 아나니야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 자기에게 안수하여 시력을 받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11-12)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셔서 베드로를 부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베드로가 메시지를 듣기도 전에 사람들에게 그가 올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야가 아직 메시지를 듣기도 전에 사울에게 그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저의 이웃들에게 여기 앉아 있으라. 그러면 제임스 낙스가 올 것이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실까요? 과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이웃들에게 여기 앉아 있으라. 그러면 누구 누구가 올 것이니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실까요?

 

50. 하나님께서는 빌립과 베드로와 아나니야가 가라는 명령에 순종해서 갈 것을 확신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누가 올 것이니 그에게 들으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 교회에서도 일어난다면 우리 교회도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런 일이 우리 교회에서 일어난다면 우리 교회도 부흥할 수 있을 것입니다.

 

51. 이에 아나니야가 응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해 내가 많은 사람에게 들었는데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많은 악을 행하였다 하더이다. 여기서도 그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수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길로 가라. 그는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해 내가 택한 그릇이니라. 그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얼마나 큰일들로 반드시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13-16) 이제 다시 밑줄을 칠 준비를 하세요. 아나니야가 자기 길로 가서 주님께서는 일어나 가라.”고 하셨고 아나니야는 그 말씀대로 일어나서 갔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어나 가라.”고 하셨고 빌립은 일어나서 갔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어나 가라.”고 하셨고 베드로는 일어나서 갔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가서 예수님을 증거했을 때 마다 주님께서는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인생에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52. 15절에서 주님께서는 아나니야에게 네 길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나니야의 길이 바로 하나님의 길이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길이 바로 하나님의 길이었습니다. 빌립의 길이 바로 하나님의 길이었습니다.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세요? 우리의 길과 하나님의 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두 길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53. 만일 여러분이 낚시를 좋아한다면 고기를 잡으로 가는 길이 멀고 험하다고 해서 포기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낚시를 가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하면 실망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낚시를 그만두는 낚시꾼은 없습니다. 사냥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냥을 나가서 짐승을 한 마리도 잡지 못한다면 실망이 크겠지만 그렇다고 사냥을 포기하는 사냥꾼은 없습니다. 쇼핑을 갔는데 살게 아무것도 없어서 빈 손으로 왔다고 해서 다시는 쇼핑을 가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한동안은 쇼핑을 가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다시 쇼핑을 가게 됩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즐기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습니다. 계획했던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일을 그만두지는 않습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졌다고 해도 다음에 또 다시 같은 팀을 응원합니다.

 

54. 우리가 나눠주는 전도지 중에 상당수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거나 길에 버려집니다. 우리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복음을 증거할 때 많은 경우에 거절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수천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가라고 명령하셨기에 우리는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다보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하실 것입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기고 교회에 더해지는 사람도 생길 것입니다.

 

55. 우리가 일년에 한 사람씩 구령한다면 십년이면 열사람이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구령한 한 사람이 또 일년에 한 사람씩 구령한다면, 또 그 사람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일년에 한 사람씩 구령한다면 결국 수백 수천 명이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56.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지금 우리 인생에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100년 후에도 중요한 것일까요? 우리가 지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많은 시간을 쓰는 일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도 과연 중요한 것일까요? 100년 후에 우리가 몇 평짜리 집에 살았었는지가 과연 중요한 일일까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가 몇 평짜리 집에 살았었는지가 과연 중요한 일일까요? 얼마나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직장에 다녔는지가 정말 중요한 일일까요?

 

57. 제가 확실한 것을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어린양의 임재 앞에서 황금길을 걸을 때에는 여러분의 자녀가 학교에서 무슨 상을 받든지 무슨 대학에 가든지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것은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100년 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00년 후에는 여러분이 누구를 예수님께로 인도했느냐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는 것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영원히 감사하며 찬양할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주님을 경배할 것이고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거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58.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16:15) 우리가 일어나 가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면 내년에 우리 교회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59.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무엇인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1977 2월부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는 주일 학교 수업을 인도하거나 기도회를 인도하거나 주일 설교를 하면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즐겁고 기쁜마음으로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주님께서 영적인 복으로 채워주셨습니다.

 

60. 제가 처음으로 거리에서 복음을 증거했을 때의 일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곳은 남부의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은행의 고위 간부였습니다. 제가 마을의 중심 거리에서 손에 성경을 들고 처음으로 거리 설교를 했을 때 제 아버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차 안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차 안에서 거리 설교를 하는 저를 보시면 몹시 부끄러워하셨습니다. 그때로부터 20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는 제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여주셨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제 아버지는 딜랜드로 이사를 와서 지난 10년 동안 매일 아침 교회로 와서 성경과 제가 쓴 책들과 테잎을 포장해서 전 세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10년 전부터 계속 저를 도와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61. 제가 두번째로 거리 설교를 했을 때에는 고급 승용차가 옆에 와 섰는데 그 안에는 마을에 있는 성당의 신부가 타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이전에 성경적이고 복음적이며 반칼톨릭적인 메시지를 들어봤는지 모르지만 그날 오후에는 확실하게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단지 2분간만 정차했다 떠났는데 저는 그 2분동안 제가 전할 수 있는 모든 메시지를 담아 설교했습니다. 이것은 1977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62. 우리 교회에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복음을 전하다가 두번으로 늘렸고 다시 네번으로 횟수를 늘렸습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게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나갔는데 그렇게 억지로 나갈때마다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이것을 하기 원하지 않습니다. 물론 제가 자원하는 마음으로 나가야 하며 복음을 기쁜 마음으로 전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이 원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죄송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께 솔직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복음을 전하러 나갈때는 즐거운 마음보다는 괴로운 마음이었지만 막상 거리에서 설교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릴때는 기쁨이 충만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63. 여러분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면 복음을 전하고 전도지를 나눠주고 거리에서 설교를 한다면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실 것이고 기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64.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여러분 중에는 낙심하여 마음이 침체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들에게 치료책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복음을 증거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십시오. 교회에 불만이 많고 교회에 와도 더 이상 즐겁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도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면 교회 생활에 다시 활력을 찾게 될 것이고 불만이 사라질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께서는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복을 주실 것입니다.

 

65.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구령[8]하라는 명령을 하신 게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구령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면 우리는 대부분 실패할 것입니다. 항상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을 증거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복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순종만 한다면 전혀 실패하지 않고 수행할 수 있는 명령입니다. 복음 증거는 우리가 아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지만 항상 다른 사람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해 줄 수는 있습니다.

 

66. 나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선한 것으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마귀가 아이들을 먼저 채가기 전에 우리가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67. 여러분이 왜 하늘나라에서 아무런 상을 못받게 되는지 아세요? 다른 것에 관심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이 세상에 관한 것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사람들을 구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만 한다면 여러분도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빌립은 일어나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나니야도 일어나서 갔습니다. 베드로도 일어나 가서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1] 11절의 “Whosoever believeth on him shall not be ashamed.”는 우리말 흠정역 성경처럼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번역할 수도 있지만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리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제임스 낙스 형제는 후자의 의미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역주

[2] 영어 단어 “preaching”을 우리말로는 보통 설교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보면 “preaching”은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성경을 강론하는 것은 “preaching”이라기 보다는 “sermon”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역주

[3]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고전 1:18,21)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어리석다는 것은 복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선포를 가르킵니다. 복음은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입니다.-역주

[4] 흔히 하나님께 목사로 부름받았다는 말을 설교자로 부름받았다(called to preach)”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자면 구원받은 모든 사람이 “preaching”을 하도록 부름받은 것입니다.-역주

[5] 37절이 NIV에는 없습니다. 개역성경이나 개역개정판도 마찬가지입니다.-역주

[6] 고넬료는 이탈리아 부대 소속의 이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10:1). 로마 카톨릭은 베드로를 첫째 교황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것은 성경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전혀 근거가 없는 주장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카톨릭의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말하기 위해 그들의 주장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역주

[7] 베드로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경배를 받으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역주

[8] 구령(Soul winning), 말 그대로 혼을 이겨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을 예수님께로 이겨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16:15).-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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