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2012.01.08 18:07

구원의 영원한 보장-제5장 구원의 목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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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구원의 목적1

Eternal Security

James W. Knox 지음 / 우진 옮김

 

이 과의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Eternal Security를 요약 및 정리 것입니다.

 

1. 우리는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는 교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구원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불안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을 잃어버릴 게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 성경을 자신의 구미에 맞게 재단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가르쳐야 배우는 사람들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거듭난 경험을 전혀 찾을 수 없다면 구원의 영원한 보장의 교리 안에서 안식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오직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영원한 안전을 보장 받기는커녕 순간적인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3.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온전히 믿는다면 자신의 구원을 의심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였다면 구원받은 것이고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입니다. 자신의 느낌에 구원을 잃어버렸던지 혹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염려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입니다.

 

4. 고린도전서 6장을 보겠습니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할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속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자나 간음하는 자나 여성화된 남자나 남자와 더불어 자신을 욕되게 하는 남자나(고전 6:9) 이 말씀은 단순한 제안이나 권면이 아닙니다. 여기서 속지 말라고 한 것은 명령입니다.

 

5.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도둑질하는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욕하는 자나 착취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 같은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너희가 우리 하나님의 영을 통해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씻기고 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10-11)

 

6. 여기서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너희 중에있었으나거룩히 구별되어 의롭게 되었느니라.” 교린도교회의 성도들은 그들의 상태와는 상관없이 모두 거룩히 구별되었고 의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원받고 의롭게 된 사람들 중에 계속해서 우상숭배를 하거나 간음하거나 도둑질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술취하거나 욕하거나 착취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그러한 짓을 한다면 아무도 그 사람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짓을 하는 사람을 보면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이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지 의아하게 여길 것입니다.

 

7. 세상은 그리스도인들을 무시하는 거 같지만 죄를 짓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비난을 합니다. 세상도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어떠해야 한다는 자신들의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을 것을 권하면 자신이 하고 있는 어떤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될 까봐 거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8. 어떤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삶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주장해도 그의 삶이 그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아무도 그가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9. 에베소서 2장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2:8-9) 우리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어떠한 사람도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10. 계속해서 10절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10)

 

11. 많은 사람들이 에베소서 2:8-9을 읽고 멈춰버립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춰버리면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주심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들을 하며 그 가운데 걷게 하시는 게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12. 구원은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누구도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면 안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선한 행위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결과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13.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기를 원하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며 걷기는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아무런 선행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구원받고 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4. 선한 행위를 해야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주님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하지만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왜 자신에게는 일어나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15. 저는 지금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죄도 범하지 않고 완벽하게 산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 속에는 주님을 위해 선하게 살고자 하는 열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주님을 위해 살기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나서 단 한번의 죄도 지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구원받고 나서는 영원한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지옥에 가던 말던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구원받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16.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날 때는 아담에 속한 본성과 본능과 열망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아담의 본능과 거기에 속한 정욕이 무엇인지 따로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그러한 것을 배우지 않아도 우리 자신이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연적인 출생(첫째 출생)의 결과입니다. 아담의 혈통을 따라 태어난 사람은 타락한 본성과 죄악의 욕망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17. 그렇다면 하나님의 본성을 갖고 둘째 출생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담의 자손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담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는 사람이 의와 거룩함과 하나님을 추구한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육신적인 출생이 육신적인 열망을 갖게 하는 것처럼 영적인 출생도 영적인 열망을 갖게 합니다.

 

18. 저는 궁금합니다. 육신적인 출생을 한 사람은 육신적인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출생을 했다고 하면서 어떻게 영적인 열망은 전혀 없는 것일까요?

 

19. 여러분은 구원받았습니까? 무엇을 위해 구원받았습니까? 성경은 단 한번도 구원의 목적이 하늘나라에 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처럼 되기 위해 구원받은 것입니다.

 

20. 아이는 자라면서 부모를 닮게 됩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닮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닮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렇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그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난 결과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지 오 년이나, 십 년이나, 이십 년이 지났는데도 전혀 그리스도를 닮은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21. 저는 이상한 그리스도인들을 많이 봤습니다. 술을 엄청나게 마셔대면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아내 몰래 바람을 피면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외간 남자를 집으로 불러들이면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세금을 떼어 먹으면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사장 몰래 돈을 빼돌리면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용하든 이러한 사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22. 디도서 2장을 보겠습니다.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2:11) 여러분은 어떻게 구원받았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23.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13) 우리는 구원받고 나서 주님을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중간에 읽지 않은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12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주님을 만나게만 해 주시는 게 아닙니다. 그 사이에 빠진 게 있습니다. 12절이 바로 그것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12)

 

24. 저는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휴거 되어 주님을 만날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한 그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주님을 만날 것을 고대하게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 은혜는 우리를 가르칩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날 때까지 이 은혜가 가르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경건하게 살아야 하고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거부해야 하고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줍니다.

 

25. 학생이라고 하면서도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면 이상한 사람일 것입니다. 학생이라고 하면서 교사가 누구인지 모르고 무엇을 배우는지도 모른다면 이상한 학생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성경도 전혀 읽지 않고 기도도 전혀 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상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을 부인하지도 않고 육신의 욕망을 이기고 승리한 적도 없고 이 세상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도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26. 이런 이야기를 하면 구원은 은혜로 받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구원은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우리를 구원하는 데까지만 인도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단순히 우리를 구원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가르치고 훈육합니다.

 

27. 오늘날 대형교회들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만 급급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가르칩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원만 받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28. 계속해서 14절을 보겠습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으로부터 친히 우리를 구속하시고 정결하게 하사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는 백성 곧 자신을 위한 특별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4) 14절은 구원의 목적을 보여주는 구절입니다.

 

29. 제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선행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저를 구원하셨는지 아십니까? 제가 선한 행위에 열심을 내고 전적으로 자신을 드려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구원하셨습니다.

 

30. 거짓말하고 사기 치고 가족을 학대하고 나쁜 짓이나 하라고 구원하신 게 아닙니다. 그러한 짓을 하는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고, 구원받고 나서도 여전히 그러한 짓을 하는 사람의 구원도 취소되지 않지만 그것이 구원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게 하기 위해 구원해 주신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구원받고 나서도 엉망 진창으로 살았지만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고 간증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그것도 간증일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간증은 아닌 게 분명합니다. 성경에는 그런 간증은 없습니다. 저는 지금 구원받은 사람은 완벽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31.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선한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도 문제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는 것도 문제일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신은 성령을 대적하여 욕심을 부리고 성령은 육신을 대적하나니 이 둘이 서로 반대가 되므로 너희가 원하는 것들을 너희가 능히 하지 못하느니라.(5:16-17)

 

32. 계속해서 다음 구절을 읽기 전에 저는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구원받기 전부터 짓던 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구원받고 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더 이상 그 죄를 짓지 않게 하고 그 죄의 욕망과 싸우는 무엇인가가 있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그러한 경험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33. 구원받은 척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구원받은 사람인양 가장하고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아무런 유익도 없는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 때 구원받은 척해도 실제로 죽어서 지옥에 간다면 그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34. 제가 구원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즐기던 죄를 지으려고 하니 제 자신이 한없이 비참하게 여겨졌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러웠고 다시는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제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저의 육신의 정욕과 전쟁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육신과 싸움을 시작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새사람입니다. 그 새사람이 옛사람과 싸움을 시작한 것입니다. 예전에는 옛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옛사람의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옛사람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입니다.

 

35. 내적 갈등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받았다는 가장 큰 증거입니다. 전혀 갈등이 없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계속해서 죄를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복음도 전혀 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야 지옥에 가든 말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면 그런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36. 성령님께서 내주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단 한번도 들지 않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그 안에 계시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에 무관심할 수 있을까요?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안에 들어와 계시면서 계속 선한 일을 위해 살도록 독려하십니다.열심을 내라. 내가 네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했노라. 너희 몸을 선한 일에 사용하는 도구로 내어 주어라.”

 

37. 구원받은 사람의 안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은 서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영과 육이 서로를 대적하여 다투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8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이것들이라.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증오와 불화와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또한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 같이 이것들에 대하여 미리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런 것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18-23)

 

38. 다음 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24)

 

39. 한 사람이 자신은 그리스도께 속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묻습니다. “복음을 전하시나요?” 그러자 그는 저는 그럴 필요를 못 느끼겠는데요.”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언제 그런 느낌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40. 계속해서 느낌이나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은 성령님의 통제아래 있지 않은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이나 정욕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원받은 사람도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정욕이 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자신의 삶을 주관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그러한 것이 있기 때문에 육신과 싸우는 것입니다.

 

41. 저는 지금 계속해서 죄를 짓는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성경이 죄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물리치고 육신에 대해 승리를 거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을 죄에 내어주거나 용납하거나 정당화하거나 그 통제아래 둔다면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42. 그리스도인은 항상 죄를 거절하고 죄에 대해 완전한 승리를 거둔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무엇을 추구하고 있고 어디로 향하느냐가 문제입니다. 비록 때로는 죄에게 패배할지라도 끊임없이 죄와 싸우려 하고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려 하는 마음이 있는지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43. 현대의 기독교는 심하게 변질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전에 짓던 죄를 모두 벗어버리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 죄를 정당화하면서 즐길 수 있을지에 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기 이전과 똑같이 살아가면서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승리도 없고 투쟁도 없이 그저 그리스도인이라고만 불리기 원하는 것입니다.

 

44. 이 시대의 교회는 어떻게 하면 세상을 닮아갈까 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 카페를 차려놓기도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쉽게 올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교회 내에 술집을 차리지 않은 것이 다행일 지경입니다. 아마 나중에는 불신자들을 위한 술집 교회가 등장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설교도 듣고 술도 마시라고 광고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45.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구원은 은혜로 받습니다. 감사하게도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감사하게도 행위로 구원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결과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과 삶은 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죄와 세상을 향하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으로 재설정됩니다. 그래서 죄는 멀리하려 하고 하나님을 추구하게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이러한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고 실제로 일어납니다.

 

46.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과 삶은 변화됩니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새롭게 하게 된다는 게 문제의 핵심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즐기고 관심을 가지던 것들이 있습니다. 영화배우나 가수나 스포츠나 게임이나 특정한 취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받고 나서도 계속해서 그런 것들에만 관심을 갖는다면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47. 구원받는 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성경을 읽고 싶어하지도 않고 예수님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하지도 않고 기도하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입니까?

 

48. 구원받았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49. 주일 학교 선생님이 알려주는 예수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수 있고, 어머니가 들려주는 예수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수도 있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예수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통해 들은 예수님이 아닌 직접 예수님을 만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경험이 있어야 구원받은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그분에 대해 큰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50. 부모님을 따라 좋은 교회에 다니면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든지, 혹은 좋은 그리스도인 부모님 밑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분명히 큰 복입니다. 그러한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 비하면 엄청난 복을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잘못하면 큰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부모님이 그리스도인이니까, 또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성경대로 믿는 좋은 교회니까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자신도 그리스도인이며 구원을 받았고 따라서 무슨 짓을 해도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엄마랑 아빠가 가지고 하니까 교회에 나와서 크리스챤 문화를 즐길 뿐입니다.

 

51.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성인이 되고 운전면허증을 취득하고 부모님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자신만의 오디오를 구입하고 TV를 구입하고 원하는 것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게 되면 세상으로 떠나버리고 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없고 거듭난 적도 없고 구원받은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52. 구원받은 사람이 계속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는 것처럼 안타까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는 것을 그만두고 자신이 받은 영원한 구원 안에서 안식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부모가 그리스도인이고 자신이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자신도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것은 더 안타까운 일입니다.

 

53.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면 더 이상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다면 아무리 부모님이 그리스도인이고 자신도 교회에 다닌 지 오래되었다 할지라도 반드시 구원받아야 합니다. 두 경우 모두 위험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54. 만일 진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죄 가운데 거하며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려고만 한다면 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과 자신의 삶이 다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어떤 사람인지 혹은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교회에 다니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혼과 삶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죄를 짓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앙 생활을 엉터리로 하는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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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양육 새 출발에 앞서 김수광 12.31 26
70 양육 복음증거5-우물가의 여인 이우진 12.12 3483
69 양육 복음증거4-베드로와 고넬료 이우진 12.04 3628
68 양육 복음증거3-빌립과 내시 이우진 11.27 4255
67 양육 복음증거2-씨뿌리는 자의 비유 이우진 11.20 4253
66 양육 복음증거1-일어나 가라 이우진 10.13 3246
65 양육 반드시 해야만(must) 하는 것들 김수광 01.14 22
64 양육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 김수광 04.30 159
63 양육 믿음의 경주 김수광 06.27 147
62 양육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 김수광 11.13 89
61 양육 만남 그리고 변화 김수광 08.30 29
60 양육 마음의 허리를 동이자 김수광 04.30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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