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70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장 구원의 영원한 보장과 하나님의 약속2

Eternal Security

James W. Knox 지음 / 우진 옮김

 

이 과의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Eternal Security를 요약 및 정리 것입니다.

 

1. 요한복음 10장을 보겠습니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10:27) 어떤 사람은 자신이 검은 양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염소인 것보다는 낫습니다. 비록 검은 색이더라도 양이고 하나님의 가족에 속하는 게 낫습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이 나를 따르느니라.” 라고 하신 것에 주목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만일 그들이 나를 따르면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양들이 주님을 따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주님을 따르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지 고민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흉내 낸다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3. 계속해서 28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요한복음 10장의 문맥은 조건을 달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양이 되며 자동적으로 그분을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내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그들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요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양들이 무엇인가를 하면 영원한 생명을 준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계속해서 주님을 따르면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을 믿고 양이 된 사람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입니다.

 

4. 또 아무도 내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리라.”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님의 손에서 뛰어 나가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혹은 주님의 손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참 여러 가지를 걱정하면서 살아갑니다.

 

5.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닭이 빨리 달린다고 해서 깃털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만일 닭이 달린다고 해서 깃털이 빠진다면 잡고 나서 손질을 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깃털은 닭의 신체조직입니다. 깃털도 닭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깃털이 몸통으로부터 스스로 분리하여 떨어져 나갈 수는 없습니다.

 

6. 우리는 하나님의 손안에서 뛰어 내리거나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의 일부분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려면 누군가가 우리를 강제로 떼어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모든 것보다 크시매 아무도 내 아버지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느니라.”( 10:29)

 

7. “아무도 빼앗을 수는 없지만 스스로 떨어져 나갈 수는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봤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괴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내 아버지의 손에서 그들을 빼앗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무도에는 모든 사람이 포함됩니다.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아무도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서 우리를 떼어낼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8. 이제 히브리서를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히브리서에 기록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는 그 반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약성경에서 가장 강력하게 증언하고 있는 책입니다.

 

9. 먼저 히브리서 7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 7:25)

 

10. 히브리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나서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이것은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해 주실까요?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 해 주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하늘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 중보 해 주시는 주님께서 계시는데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11. 주님께서는 항상 살아 계시며 우리를 위해 중보 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지금 하고 계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무엇인가를 창조하고 계신 것도 아니고 무엇인가의 값을 치르고 계신 것도 아니며 성경을 기록하고 계신 것도 아니고 천년왕국에서 통치하고 계신 것도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서 밤낮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지금 주님께서 하고 계신 일입니다. 다른 일을 하시는 것도 아니고 쉬시는 것도 아니고 오직 우리에게만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고 계십니다.

 

12.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 해 주신다면 누가 그것을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자백하지 않은 죄가 방해가 될까요? 우리가 죄를 자백하기도 전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셨습니다.[1] 자백하지 않은 죄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지위를 바꾸지는 못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자백하지 않은 죄가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죄를 자백하지 않은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자백하지 않은 죄로 인해 우리의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지위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13. 예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입니까? 주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입니까? 우리가 의롭지 않고 신실하지 않을 때에도 주님은 의롭고 신실하신 분입니까? 계속해서 26절을 보겠습니다. 이러한 대제사장께서는 우리에게 합당한 분이셨으니 곧 그분은 거룩하시고 해가 없으시고 더러움이 없으시고 죄인들로부터 분리되시고 하늘들보다 더 높이 되셨느니라.”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끊임없이 우리를 위해 중보 해 주고 계십니다.

 

14. 그분께서는 저 대제사장들과 같이 먼저 자기의 죄들로 인하여 날마다 희생물을 드리고 그 다음에 백성의 죄들로 인하여 희생물을 드릴 필요가 없으시니 이는 그분께서 친히 자신을 드리실 때에 이 일을 단 한 번에 행하셨기 때문이라.”(27)

 

15. 이 구절의 뒷부분을 주목해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왜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중보 해 주시는 것입니까? 왜 중보만 해 주실뿐 다시 희생물을 드리지는 않으시는 겁니까? 그 이유를 아십니까? 자신을 드리신 단 한 번의 희생으로 모든 죗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대제사장이시지만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다시 희생물을 드리지는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 아버지께 자신이 이미 드린 희생물에 대해 상기시켜 드릴 뿐입니다.

 

16.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저는 아버지와 교제를 나누는 게 좋기는 하지만 또 누군가 죄를 지었으니 죗값을 대신 치러주러 다녀 와야 하겠습니다.” 라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한 번 더 죽으러 다시 가겠습니다.” “또 다른 희생물을 드리고 오겠습니다.” 우리가 다시 죄를 짓는다고 해서 주님께서 다시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오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대신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중보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다시 구원해 주시는 게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17.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치러주셨다면 우리가 다시 죄를 짓는다고 해서 구원을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미 그 죄에 대한 값도 치러주셨기 때문입니다.

 

18. 우리는 한번 받은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죄나 누구라 할지라도 우리의 구원을 빼앗을 수 없으며 우리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기에 충분히 선한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 갈 만큼 선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기에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려가는 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달린 일입니다.

 

19. 히브리서 9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막 곧 이 건물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더 완전한 성막을 통해 오셔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 9:11-12) 주님께서는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셨고 두 번 다시 들어가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치르신 한번의 희생으로 모든 죗값을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20.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 여러분은 구속 받았습니까? 여러분이 받은 구속의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영원합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구속 받았다면 영원한 구속을 받은 것입니다. 저는 영원한 구속을 받았기 때문에 구속 받지 않은 상태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저를 값을 주고 사셨기에 저는 주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영원히 주님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구속[2]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21.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히브리서가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그러한 것을 교리로 가르치는지 모르지만 히브리서는 그러한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22. 계속해서 13절을 보겠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와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육체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얼마나 더 많이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13-14) 저는 영원하신 성령님께서 보증하시는 영원한 구속을 받았습니다.

 

23.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분께서는 새 상속 언약의 중재자이시니 이것은 첫 상속 언약 아래 있던 범죄들을 구속하시려고 죽으심으로써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영원한 상속 유업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15) 저는 영원하신 성령님께서 보증하시는 영원한 구속을 받았고 영원한 상속 유업의 약속도 받았습니다. 따라서 제가 구원을 잃어버리지나 않을지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24. 히브리서 10장을 보겠습니다. 율법은 다가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는 가지고 있으나 그 일들의 형상 그 자체는 아니므로 그들이 해마다 계속해서 드린 그런 희생물들로는 거기로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완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그랬더라면 경배하는 자들이 한 번에 깨끗하게 되어 더 이상 죄들을 의식하지 아니하였을 터이므로 그것들을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10:1-2)

 

25.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은 왜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희생물을 드린 것입니까? 사람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이 드린 희생물이 완전한 것이었다면 그들은 반복적으로 희생물을 드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26.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 희생물들에는 해마다 죄들을 다시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함이 불가능하니라.”(3-4) 히브리서는 분명하게 구약 시대에 드리던 희생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7. 계속해서 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이르시되, 희생물과 헌물은 주께서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 죄로 인한 번제 헌물과 희생물들은 주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5-6) 성경은 황소와 염소 같은 희생물은 결코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희생물들은 절대로 인간을 완전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8.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에 대해 기록된 바와 같이)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 하였나이다, 하시느니라. 위에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희생물과 헌물과 번제 헌물과 죄로 인한 헌물은 주께서 원치도 아니하시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시나이다, 하셨는데 그것들은 율법에 따라 드리는 것이라.”(7-8)

 

29. 황소와 염소 같은 희생물들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3:17) 나를 보내신 분께서 나와 함께 계시는도다. 내가 항상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 그것들을 행하므로 그분께서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시니라.”( 8:29)

 

30. 그 뒤에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내가 주의 뜻을 행하러 오나이다, 하셨으니 그분께서 첫째 것을 제거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9) 첫째 것과 둘째 것은 모두 희생물을 의미합니다. 첫째 것은 황소와 염소이며 둘째 것은 주님의 몸입니다. 황소와 염소로 드리던 제사를 주님의 몸과 피가 대신한 것입니다.

 

31. 바로 이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영원히 드려짐을 통해 우리가 거룩히 구별되었노라.”(10) 단 한 번 영원히(once for all)” 라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우리는 모두 죄를 지었습니다. 항상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죗값을 치러주셨다고 찬양하는 이유입니다.

 

32. 제사장마다 날마다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희생물들을 드리되 그것들은 결코 죄들을 제거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이 사람은 죄들로 인해 한 희생물을 영원히 드리신 뒤에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사 그 이후부터 자기 원수들이 자기 발받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느니라. 그분께서는 거룩히 구별된 자들을 단 한 번의 헌물로 영원토록 완전하게 하셨느니라.”(11-14)

 

33. 우리는 영원히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거룩하게 구별되었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용서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단 한 번의 희생으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34. 여러분 중에는 제가 왜 어떤 사람들에 대해 비평적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방금 읽은 본문은 영광스러운 복음의 진리가 아닙니까? 성경은 명백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단 한번의 희생으로 우리의 모든 죗값이 치러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독교에서 가장 큰 분파를 이루고 있다는 사람들이 매주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며 다시 희생을 치르게 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또 다른 희생제사(미사)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신성모독적인 말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은 복음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고 다시 피를 흘리게 하겠다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복음을 완전히 거부하는 것입니다.

 

35. 이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도 전해 준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님께서 배반당하신 바로 그 밤에 빵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신 뒤에 그것을 떼시고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긴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시고 저녁 식사 뒤에 또 그와 같은 방법으로 잔을 집으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상속 언약이니 너희가 그것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것을 행하라, 하셨느니라. 이는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분께서 오실 때까지 보이기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이 빵과 이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가 있으리로다. 오직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뒤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실지니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를 위하여 정죄를 먹고 마시느니라.”(고전 11:23-29)

 

36. 예수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대속 외에 또 다른 대속이 필요하다는 것은 복음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영원히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는 대속을 하셨습니다. 그런대로 다른 희생물이 또 필요하고 다른 대속이 또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복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매주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사제가 나쁜 사람입니까, 아니면 이러한 진리를 알려주는 사람이 나쁜 사람입니까?

 

37. 어떤 사람들은 다른 종교에 대해 나쁘게 말하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어떻게 진리를 알 수 있겠습니까? 사제가 진리를 말해줄까요? 매주 헛되이 반복하는 무슨 신경이 진리를 알게 해 줄까요?

 

38.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진리를 말해 주어야 합니다. 사제가 떼는 빵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과자 조각에 불과합니다. 사제가 떼는 빵이 예수님이 아니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매주 희생을 치르지 않으실 것입니다. 따라서 그 빵 조각은 예수님이 아닙니다. 이렇게 당연한 얘기를 하는데도 우리를 보고 다른 종교를 나쁘게 얘기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39. 예수님께서는 결코 다시 희생을 치르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모든 사람의 모든 죗값을 모두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어야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만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죗값은 모두 치러졌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하거나 혹은 하지 않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기도 전에 이미 여러분의 죗값은 모두 치러졌습니다.

 

40. 사람들이 선을 행하게 하기 위해 그들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협박하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이고 무익한 것입니다. 선을 행하는 가장 강한 동기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그분의 구원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1. 히브리서 13장을 보겠습니다. 너희의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3:5)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42.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께서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노라.”(6) 만일 우리가 어떤 죄를 짓던지 아니면 선한 일을 하지 못한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시고 우리를 버리신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담대하지 못할 것이며 두려움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43. 우리는 서로 다른 일을 합니다. 잘 할 수 있는 것도 다를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일을 잘한다면 여러분의 부모님이나 혹은 학교 선생님이나 누군가 여러분을 격려해 주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잘 하기 위해서는 무수한 연습을 해야 합니다. 단 한번만 해보고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랜 연습을 통해 잘하게 되고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44. 그런데 처음 시도해 보는 사람이 실패할 것을 걱정해서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격려가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실수 할 수 있고 처음부터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격려를 받아야 두려움 없이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45. 여러분이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글자를 읽고 책을 읽는 것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와 공놀이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아버지가 던지는 공을 내가 받지 못하면 아버지가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몸이 굳어서 공을 제대로 받지도 못할 것입니다. 책을 읽는데 한 글자라도 틀리게 읽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책을 읽는 것을 배울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하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여러분이 그 일을 처음 할 때에는 실수를 하는 것을 누군가 용납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그 일을 잘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6.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아이가 글을 배워서 처음으로 책을 읽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는 발음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틀리게 읽습니다. 그러나 좋은 교사라면 한 글자를 틀리게 읽었다고 해서 아이를 바로 중지시키고 집에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좋은 교사는 계속 격려하면서 아이가 제대로 읽을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해서 시도하도록 할 것입니다. “틀려도 괜찮으니 다시 읽어 보렴.” 그렇지 않겠습니까?

 

47.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까? 한번의 죄라도 지으면 바로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결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48. 만일 여러분이 단 하나의 죄라도 지으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어디도 가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단 한번만 잘못해도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단 한번의 잘못으로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면 아무도 주님을 위해 무엇도 하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49. 복음을 전하다가 잘못된 예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성경을 잘 모르면 잘못 전할 수도 있습니다. 만일 단 한번의 죄나 잘못으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면 아무도 복음을 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잘못 행하고 죄를 짓더라도 주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한번 잘못하고 죄를 지었다고 해서 모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50. 저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전에 잘못했다고 해서 낙심하지 않고 다시 시도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린 자녀가 무엇인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아이가 다시 시도해 보도록 격려해줄 것입니다.

 

51. 하나님께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담대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예수님을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실수를 하거나 잘 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죄를 지어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결코 내쫓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52. 주님은 아버지로서 여러분을 책망하실 수도 있으십니다. 주님(Lord)이시기 때문에 훈련을 시키실 수도 있습니다. 선생님(Master)으로서 우리를 바로잡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싫어하시거나 쫓아내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53. 구원의 영원한 보장, 즉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라는 진리는 우리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줍니다. 이 위대한 진리는 우리를 막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합니다. 저는 죄를 짓고 싶지 않습니다. 실패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는 주님을 바르게 따라가기 원합니다. 그러나 제가 죄를 짓고 실패하고 주님을 바르게 따르지 못한다고 해서 주님께서 저의 구원을 빼앗아 가시거나 내쫓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주님과 한편이고 주님의 가족이며 주님의 몸이고 여전히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54. 저는 자기는 후회할만한 일을 한 적이 전혀 없다고 하는 사람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정직하지 못한 사람일 뿐입니다. 저는 많은 일을 후회합니다. 제가 주님을 위해 했던 일들도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더 잘했어야 했습니다. 더 나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과거를 돌이켜 보면 후회할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과거에도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지금도 은혜를 베풀어 주고 계십니다. 과거에 많이 부족했을 때에도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알고 있는 대로 행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내를 가지고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55. 여러분은 초등학생과 대학생을 비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으로서의 온전함이 있고 대학생은 대학생으로서의 온전함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잘못하면 어쩌나 걱정하지 말고 여러분이 지금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나중에 여러분이 영적으로 성장하면 지금 했던 일이 한없이 부족하고 어쩌면 부끄러워 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사도 바울에게 요구하셨던 것을 요구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56. 주님께서는 누가 자신의 7살짜리 자녀이며, 27살짜리 자녀인지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자신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죄를 마음대로 지으라는 자격증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마음껏 섬길 수 있는 자유입니다. 주님을 위해 일하십시오.

 


[1] 물론 죄를 자백할 필요도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지 않아도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모두 치러주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자백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백하기도 전에 이미 죄 문제가 모두 해결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지위에 대한 것이고 그럼에도 우리가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상태에 대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저자의 <세대주의 재고찰> “7장 지위와 상태를 참고하기 바랍니다.-역주

[2]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구속은 값을 치르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역주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8 양육 대조적인 두 교회 김수광 05.01 99
57 양육 누가 만들었느냐? 김수광 04.18 61
56 양육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work o... 김수광 12.08 123
55 양육 너는 내게 대답할지니라 김수광 12.27 137
54 양육 내가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김수광 07.30 4027
53 양육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 김수광 04.02 58
52 양육 날 수 세는 것을 가르치소서 김수광 01.02 303
51 양육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할까 김수광 01.19 67
50 양육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가 김수광 05.14 60
49 양육 깨어 정신을 차리자 김수광 03.21 94
48 양육 깨어 있으라 김수광 12.15 100
47 양육 기도하시는 예수님 김수광 03.07 55
46 양육 기도는 최고의 사역  김수광 02.25 221
45 양육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으면 김수광 05.02 70
44 양육 그리스도의 생활원리 김수광 05.24 116
43 양육 구원의 영원한 보장-제8장 은혜와 행위2 이우진 01.29 4329
42 양육 구원의 영원한 보장-제7장 은혜와 행위1 이우진 01.25 4032
41 양육 구원의 영원한 보장-제6장 구원의 목적2 이우진 01.15 3715
40 양육 구원의 영원한 보장-제5장 구원의 목적1 이우진 01.08 4072
39 양육 구원의 영원한 보장-제4장 혼의 구원과 몸의... 이우진 01.01 5865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 9 Next
/ 9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