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09.12 04:41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39(9월 22일-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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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39

9월 22일-28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922

요셉과 보디발7

 

11절에서 요셉이 처한 상황은 매우 위급합니다. 그가 그곳에 간 것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유혹을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12).

음행을 피하라(고전 6:18)는 명령이 주어지기 수 천년 전에 요셉은 이 명령에 유의했습니다. 그는 그의 순결을 버리는 그의 옷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옛 말에 조롱 당한 여인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했는데(13-15)….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큰 괴로움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그녀는 외치면서 거짓말을 해댔습니다(14-15, 8:44). 사탄의 일꾼은 당신을 소유할 수 없을 경우 당신을 망치려 들 것입니다.

첫 번째 공격이 실패하면 또 다른 시도가 있을 겁니다(12-19). 정신차리고 깨어 있으시기 바랍니다.

선한 사람이 순전함을 지닌 채 최선을 다해 올바르게 행하고 악을 멀리하는 삶을 살았건만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인해 사람들에게 악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사악한 남녀의 손에 부당하게 고통을 당하는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요셉은 거짓 고소를 당했습니다. 이 역시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운명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26:59-60).

보디발은 진노했습니다(19).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늘 그러하듯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본 적이 아닙니다. 그는 신뢰받아서는 안 되는 자는 신뢰한 반면 정직한 사람은 믿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39장에서 요셉은 잘못한 것이 없었으나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올바르게 행한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다.” 라고 약속해 주는 성경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도 많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말입니다.

 

 

923

창세기 39장에서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요셉

 

우리는 지금부터 고난 당하시는 구원자의 명백한 예표로서 요셉을 보여주는 구절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아무런 변명도 안 했습니다. 이사야서 53:7에 우리 주님과 관련된 예언이 나와 있고 그 예언은 마태복음 24:12-14에서 성취되고 있음을 확인해 보세요.

당신에게 행해지는 온갖 루머와 비방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모든 잘못을 다 바로 잡고 모든 거짓말을 다 바로 잡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요셉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하셨듯이 하나님을 조용히 신뢰하면서 진리가 들어날 때까지 그러한 고난을 감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손을 만드신 분의 손이 그러했듯이( 27:2, 34:19) 요셉의 손들도 묶였습니다(20).

요셉은 감옥에 내던져졌습니다(20). 마찬가지로 인간은 자유롭게 하시고자 오신분( 8:32)께서도 감옥에 갇히셨습니다( 53:8).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에 대해 거부당한 뒤(26) 이방인들의 손에 의해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메시아께서도 그리하셨습니다( 4:26-27).

요셉과 예수님 둘 다 간수의 존경을 받았습니다(21, 23:47). 그러나 주께서 요셉과 함께 계시고(21) 참으로 이상한 상황에서 이상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군요.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씀이라고 생각되지 않으시는지요? 모든 일이 잘 되어 갈 때 주님의 임재하심을 기뻐하는 것은 쉽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어두운 순간에도 그리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임재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그 순간에도 우리를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신 분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복을 주십니다(21-23). 요셉은 어디를 가든지 높은 지우를 얻었습니다.

22절에서 우리는 구원자의 매우 분명한 예표를 요셉에게서 봅니다. 감옥에 있던 모든 죄수들을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라는 말씀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믿고 죽은 모든 자들, 즉 소망의 갇힌 자들은 그리스도께 맡겨졌습니다. 그분은 살아있는 자들은 물론 죽은 자들의 주님이십니다( 14:9). 그분은 이들 모두를 마지막 날들에 일으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6:39).

그들이 거기서 무슨 일을 하든지 그가 다 그 일을 행하였더라.” 이 또한 그리스도께 그대로 (영적 상황에서) 적용됩니다. 그분을 섬기면서 그분의 자녀들이 행하는 모든 것은 사실 그분이 행하시는 것입니다( 3:21). 이들의 일은 하나님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며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2:13).

끝으로 우리는 앞을 내다볼 수 있다고 부주의하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창세기 39장을 통해 경고하고자 합니다. 창세기 37장의 쓰라린 장면을 보고 난 후 이 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 거야.”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요. 그런데 실상은 상태가 더 악화되었습니다.

요셉은 처음에 아버지의 집에서 구덩이로, 그 다음에는 구덩이에서 노예상인에게로, 그리고 다시 노예로 팔렸습니다. 이 불쌍한 소년의 비극은 거기에서 끝나야만 했지만 그는 거짓 고소를 당해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요셉은 단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해와 달과 별들과 이삭이 요셉에게 절하는 그 꿈을 기억하십니까? 요셉은 그 꿈을 잊지 않았지요.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신 것에 대한 신뢰가 그로 하여금 모든 시련을 다 극복하게 해준 것입니다.

이 상황 역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는 모습이지요. 히브리서 12:2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과 요셉이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12:2)

 

 

924

또 다른 꿈( 40)

 

이번 장에서 우리는 파라오의 잔 맡은 자와 빵 굽는 자의 꿈을 요셉이 해석해 주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 잔 맡은 자를 통해 후일 요셉이 파라오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사건은 요셉의 생애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인류에게 주어진 두 종류의 운명을 예시해준다는 면에서 이 꿈은 우리에게 영적인 교훈이 됩니다.

1-4: 요셉은 섬김을 통해 높은 곳으로 올라갑니다. 그는 어떤 곳에서든지 늘 높여집니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요구하거나 기대한 적은 없습니다. 그는 그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애를 썼고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었을 때 그의 앞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18:16).

5-8: 요셉은 뾰루퉁 할 수 있었고 화를 내거나 불만을 토로하거나 아니면 낙담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섬기고자 했습니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밝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님을 신뢰하였고 심지어 그래야만 할 그 어떤 이유도 없는 것처럼 보였을 때도 그리했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말씀을 선포하면서 지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내어주고 모든 수고를 했고 그런 상황에서 기회를 얻어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애를 썼습니다.

9-11: 포도송이를 짜서 잔에 담아드리는 주스를 새포도즙(new wine)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발효된 술이 아닙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만드신 (가나 혼인잔치) 포도쥬스이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14-25, 23: 사람에게서 도움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 죄수들은 요셉에게서 얻을 것을 얻어내자 곧 그를 잊고 말았습니다. 보상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 외의 다른 어떤 것도 확실한 보장을 하지 못합니다.

 

 

925

해석

 

해석이란 상황을 바라보는 능력이며 그것을 적절히 이해하는 능력입니다. 성경의 일부를 해석한다는 것은 그 의미를 올바르게 확정하는 능력입니다.

창세기 40:8해석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 아니니이까?” 라고 묻고 있으며 이에 대한 답변은 지극히 당연히 그렇다입니다.

인생과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 몇 가지 기본적인 진리를 제시합니다.

1. 사람은 사실을 직시한다면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네가 혹시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주께서 이르시지 않은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니( 18:21)

2.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계시하십니다. 은밀한 일들은 주 우리 하나님께 속하거니와 계시된 그 일들은 영원토록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하나니 이것은 우리가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9:29) 주의 은밀한 일이 그분을 두려워하는 자들과 함께하나니 그분께서 자신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25:14)

3. 믿음이 없는 자에게는 그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또 그 책을 학식 없는 자에게 건네주며 이르기를, 원하건대 이것을 읽으라, 하면 그가 이르기를, 나는 학식이 없다, 하리로다. 그러므로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자기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자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고 그들이 사람들의 훈계로 가르침을 받아 나를 두려워하는도다. 그런즉, 보라, 내가 이 백성 가운데서 놀라운 일 행하기를 시작하리니 곧 놀라운 일과 이적이니라. 그들의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가 없어지고 그들의 분별 있는 자들의 지각이 숨겨지리라, 하셨느니라.( 29:12-14)

4. 주께서는 어린 아기들에게 진리를 계시하십니다. 수년간의 공식적인 훈련이 필요한 것이 아니고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시각에 예수님께서 영 안에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오 하늘과 땅의 주 되시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셨음을 감사하나이다. 과연 그러하옵나이다. 아버지여, 그것이 아버지 보시기에 매우 좋았나이다.( 10:21)

5. 주께서는 젖을 뗀 자들에게 진리를 계시하십니다. 좀 더 성장했다고 단순한 믿음을 잃어버리면 지식을 얻는 열쇠를 잃게 됩니다. 반면 성숙하더라도 말씀에 대한 확신을 결코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분께서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시려는가? 그분께서 누구에게 교리를 깨닫게 하시려는가? 젖을 떼고 젖가슴에서 물러난 자들에게로다.( 28:9)

6. 주께서는 선포할 자들에게 계시하십니다. 분명히 주 하나님은 자신의 은밀한 일을 자신의 종 대언자들에게 계시하지 아니하고는 아무것도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3:7) 사실을 수집만 하는 자들에게는 통찰력이 부족하거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알려주시는 것은 선포하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통찰력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7. 교육과 타고난 능력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배우는 것도 훈련을 받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런 것들은 크게 유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교육은 시간과 돈의 낭비입니다. 아무리 교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도 믿음의 결핍을 보완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나로 말하건대 그분께서 이 은밀한 일을 내게 계시하신 것은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내게 더 많이 있는 어떤 지혜 때문이 아니니이다. 다만 이 일은 왕께 그 해석을 알리어 왕으로 하여금 왕의 마음의 생각들을 알게 할 자들을 위한 것이니이다.( 2:30)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 그것들을 수행하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해 수행하였음이 그들에게 계시되었는데 그것들은 곧 복음을 선포한 자들이 하늘에서 보내신 성령님과 더불어 이제 너희에게 전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갈망하는 것이니라.(벧전 1:12)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벧후 1:20)

 

 

926

창세기 40장의 예표1

 

이 일들 뒤에(1) 이 구절은 복음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예시 해주는 이야기가 끝난 후 적정한 시기에 이 말씀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지요.

잔 맡은 자(1) 이 직책은 왕의 음료수 잔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이집트왕 이 구절에서는 이 왕은 하늘의 왕이신 분을 예표 합니다.

실수를 범하매(1) 잔 맡은 자와 빵 굽는 자는 왕을 불쾌하게 했습니다(혹은 왕을 불쾌하게 하매-역주). 마찬가지로 모든 죄인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했고 이에 그분의 진노와 분노를 자아냈었지요.

자기들의 주(1) 비록 이들이 지위를 잃고, 감옥에 갇히고 왕의 정죄 하에 있기는 했어도 왕은 여전히 그들의 주입니다. 타락한 인간과 주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두의 주님이십니다( 10:36, 4:1). 모든 사람이 언젠가 그리 고백할 것입니다( 2:10-11) 그분은 타락한 세상을 위한 화목제물(화해 헌물)이십니다(요일 2:1-2). 그분은 모든 사람의 구원자이십니다(딤전 4:10). 그분의 거짓 교사와 거짓 대언 자들을 위해서도 값을 치르셨습니다(벧후 2:1). 타락한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16:31).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주님이십니다.

파라오가노하고(2)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죄인에게 매일 노하고 계십니다(7:7). 아들을 믿지 않는 모든 자들 위에 하나님의 진노가 놓여있습니다(3:36) 또한 회개치 않는 자도 진노의 날에 자신을 위해 진노를 쌓고 있는 것입니다(2:5). 그 죄목은 나와 있지 않으나 왕은 그것에 대해 불쾌해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자 않았는데!” 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잘못은 변명하려 들지만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불쾌해하시는 것은 다 죄입니다.

 

 

927

창세기 40장의 예표2

 

자기 직무 수행자들 중의 두 사람에게(2) 두 사람 모두 왕을 불쾌하게 했고 둘 다 왕의 진노 하에 있었습니다. 아무런 차이가 없었지요. 둘 다 같은 곳에 있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본래 다 진노의 자녀였습니다(2:3).

그들을 감옥에 두었는데(3) 하나님께서도 모든 사람을 불신 하에 가두어 두셨습니다(11:32). 우리가 육신 안에 있는 동안에는 우리는 죄와 사망 안에 갇혀있고 하나님으로부터는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권능에 의해 포로가 된 것입니다.

호위대장의 집안에(3) 이것은 보디발의 집인 것 같은데 감옥 옆에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요셉은 자신이 처음 일하던 곳 그리고 시험 받은 그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늘의 왕좌를 떠나 육신의 몸이라는 감옥으로 오셨으나 그는 자신의 원래 지위에서 멀리 계시지 않았습니다( 16:32, 3:13).

요셉을 묶어 둔 곳(3) 투옥된 두 사람들에게 이보다 복되고 의미 있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죄인들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입고 우리가운데 거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이 죄와 사망의 세상에서 주님은 인간으로서 사셨으며 그분은 요셉처럼 죄가 없었고 벌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감옥에 갇히셨습니다. 우리는 그분께로 결코 갈 수가 없었기에 그분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호위 대장(4) 사람이 바뀌지 않았다면 이 사람은 보디발이었을 겁니다. 마약 보디발이 맞다면, 그는 요셉에 대한 자기 아내의 고소를 믿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를 풀어 주는 것이 겁이 났을 겁니다.

요셉에게 명하며 그들과 함께 있도록 하매(4)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과 함께 있도록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속박 가운데 죄를 짓고 구원자를 알지도 못했는데도 그분은 우리의 일상적 영적 필요를 위래 가까이서 섬기고 계셨던 겁니다. 그분의 해와 비가 우리 위에 있었고( 5:45), 그분의 선하심은 우리를 회개로 이끌고 계셨습니다( 2:4).

그가 그들을 섬기더라.”(4) 죄 없는 요셉이 이집트 감옥에서 두 죄수를 섬기고 있는 모습이 경이롭군요. 사람의 아들께서 섬김을 받으시지 않고 섬기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더욱 경이롭지요( 20:28). 그분은 섬기는 자로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22:27).

그들이 한 동안 감금되어 있더라.”(4) 이처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죄인은 한동안 자기의 육신의 감옥 안에 거하게 됩니다. 믿는 자로 보자면 그는 회심 때까지 죄라는 감옥 안에 계속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모세로부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율법의 감옥에 있었고 모든 사람은 죽음 후로부터 심판 때까지 무덤이라는 감옥 속에 있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속박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바 모두는 구속 받고, 해방되고, 구출될 필요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이와 같은 구출을 성취하실 권능이 있습니다. 이러므로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들을 해방시키고자 오신 것입니다( 4:18).

그들이 꿈을 꾸되(5) 이 두 죄수에게 각각 계시가 주어집니다. 이처럼 주께서도 모든 사람에게 진리를 허락하셨고( 1:18-24) 복음 또한 모든 죄인에게 똑같이 선포되었습니다. 인종, 종교, 국적은 문제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죄를 범했고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두를 위해 죽으셔서 이 모두가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각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각각의 꿈을 꾸었더라.”(5) 그 누가 누구를 앞서지 않았습니다. 계시는 각자에게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이처럼 복음도 모두에게 동일하게 선포되었습니다. 개인에 따라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더 부담을 갖고 있을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영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모두에게 동일하게 계시하도록 명하고 계십니다.

 

 

928

창세기 40장의 예표3

 

각각의 꿈 해석대로 각 사람이 꿈을 꾸었더라.”(5) 한 사람의 꿈과 다른 한 사람의 꿈은 정확히 반대로 해석됩니다. 이처럼 복음도 회개하는 자에게는 생명을, 그리고 불신자에게는 사망을 선고합니다.

감옥에 묶여있던 복음은 육신과 죄, 혹은 율법의 속박 하에 묶인 자들에게 왔으며 이들에게 왕의 자유와 의도를 말해주어 이끌어 내게 됩니다.

아침에 요셉이 그들에게 들어가 구원자는 죄인들의 친구로서 오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하나님 앞으로 데리고 간다는 계획을 들고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정한 의도를 알게 됩니다.

그들을 보았는데(5) 이에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그를 사랑하사( 10:21) 그분은 모든 인간의 마음을 들여다 보시며 모든 사람을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슬퍼하므로(6) 복음은 심판의 사실과 회개의 필요를 선포하는바 처음 이 소식을 듣게 되면 인간은 슬퍼합니다. 이 때는 그들에게 이 복음을 해석해줄 친구가 필요한데 이 역할은 주 예수님을 대표하는 성령님께서 담당하시게 됩니다.

파라오의 직무수행자들(7) 이 표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어 이 땅에서 책임 맡은 지위에 놓인 모든 인간들에게 다 해당됩니다.

자기 주인의 집에 감금되어 자기와 함께 있던 이란 말씀은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서 우리하고 함께 계셨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여기서 요셉이 이들의 연약함의 감정을 다루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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