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11.28 00:27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50(12월 8일-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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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50

12월 8일-14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128

유다 5

 

11절에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유다에 관한 예언 속에 명백히 나타나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앞서 주님의 두 번 오심(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에서 이번에는 우리를 천년왕국으로 이끌고 갑니다. 그가 자기의 어린 수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자기의 나귀 새끼를 좋은 포도나무에 매리니 그가 자기 옷을 포도즙에 빨며 자기 의복을 포도의 피에 빨았도다. 그의 눈은 포도즙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49:11-12)

이 말씀은 유다가 얻게 될 권능, 혹은 번영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두 구절에 나타난 주제는 포도주와 젖으로 상징되는 풍성함입니다. 포도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그는 어린 수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심지어 최상급 포도나무에 매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나귀를 포도나무에 묶지 않는 바 이는 나귀가 나무를 망쳐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포도나무가 지척에 널려 있다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나귀와 포도나무에 대한 언급은 이 때가 화평의 시절임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나귀는 평안하게 사용되는 이동수간이고 포도나무를 가꾸는 것은 화평한 시기에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습은 다가오는 왕국시대에 모든 이스라엘이 누리게 될 상황입니다(왕상 4:25, 4:4).

옷을 포도즙에 빨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라면 남아도는 포도즙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충분히 알 것입니다. 이집트에서 기근 가운데 살면서 아버지로부터 그와 같은 약속을 들었을 때 유다는 얼마나 놀라와 했을지요.

유다의 눈과 이에서는 찬란한 건강과 풍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유다의 자손이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으로 향했을 당시 그들은 그곳이 젖과 꿀이 흐리는 곳이라는 약속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점탕꾼들이 가나안 땅을 둘러보고 돌아올 때 그들은 포도송이가 너무 커서 두 남자가 매고 와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오늘날 이 땅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 민족의 불신이 가져온 슬픈 현실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유다 지파에 속한 한 분께서 언젠가 다시 돌아오실 때 그 땅은 다시 한번 풍요로움을 되찾을 것이고 백성들은 그 열매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129

모임(모여듬)

 

유다에 관한 예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벽히 성취됨을 살펴보았으니 이번에는 그에게 백성이 모이리로다(49:10) 라는 말씀을 상고해 보십시다. 이 말씀은 사람들이(남녀노소) 그리스도에게로 여섯 번에 걸쳐 모여들 것에 대한 언급입니다.

첫째, 주님의 지상사역 동안 누군가가 그분께로 왔다라는 언급이 4복음서에15번 등장합니다. 제자들, 큰 무리, 장로들, 바리새인들, 병자들, 심지어는 전 마을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듣거나 그분을 만지거나 혹은 치유 받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둘째, 십자가 앞으로 모여듬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곧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 12:32) 이 말씀은 무리들이 빌라도의 법정과 갈보리 산에 몰려들었을 때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그 날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날 이래로 모든 사람들이 성령님에 의해 모여 들었고 십자가 아래에서 그들의 죄로 인해 죽으신 구원자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교회를 불러내신 것을 생각해 봅니다. 멀리 흩어지고 오랜 동안 분열되어 살아오던 이 땅의 사람들 중 믿는 자들이 모여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살아 있는 몸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15:14).

넷째, 마을과 지방, 그리고 큰 도시, 가정, 감옥, 큰 예배당, 그리고 자그마한 예배처에서 피로 씻음 받은 자들이 모여들어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합니다( 18:20).

다섯째, 우리는 주님께서 믿는 남은 자들을 자신에게로 모으실 때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될 것을 바라봅니다( 40-48, 11:24-28).

끝으로 이방민족들도 회심하게 될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이들 또한 주님께로 모이게 될 것입니다( 15:17, 1:1-11).

그분께서는 이 모든 일을 이루실 자격이 있으십니다.

 

 

1210

스불론

 

야곱은 4번째 아들 유다에 대한 언급한 후 10번째 스불론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유다 지파로부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오셨으며 이 주님은 지상 생애 30년 간 어린 아이와 목수로서의 삶을 바로 이 스불론 지파의 지역에서 사셨기에 먼저 언급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에는 스불론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습니다. 다만 언급된 몇 구절을 통해 그 지파는 존경 받을만한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5:18, 대상 12:33, 40).

야곱의 예언은 주로 이 지파의 거주지에 관해 말씀합니다. 후일 모세가 예언할 때 이 지파와 관련되어 바다(나감)와 시온()이 언급되었습니다( 33:18-19).

스불론 지파는 선원과 상인이 되었습니다. 땅을 분배할 때 그들에게 할당된 지역은( 19:10-11) 후일 갈릴리로 알려진 지역에 해당됩니다( 4:15).

이 정열적이고 가업에 능한 사람들은 여러 민족들과 무역을 했고 이 활동성은 후일 복음 사역을 미리 보여줍니다. 열 두 제자들 중 11명이 이 지역 출신이며 가롯 유다 만이 예외입니다. 우리의 구원자와 왕(유다)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묘사하신 후 이 구속자를 민족들에게 전파할 사람들에 대해 언급하고 계신 성령님의 적절한 간섭이 엿보인다고 하겠습니다.

항구로서의 스불론은 요셉과 마리아가 이집트로 돌아 나온 후부터 정착한 곳입니다. 주님은 사역을 시작하신 이후에도 갈릴리에 자주 가셨고 그곳을 안식을 위한 항구로 여기셨습니다( 7:1).

 

 

1211

잇사갈

 

창세기 49:14-15의 예언을 추적하기는 어려운바 이는 잇사갈 지파에 관한 언급이 아주 적기 때문입니다. 아마 성경에서 열 두 지파 중 가장 적게 언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두 짐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은 나귀로 언급됩니다. 그는 또한 아름다운 그 땅에서 안식하기를 갈망했으며 종으로서 공세를 많이 부담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나귀가 짐을 나르는 존중 받는 짐승이었습니다. 잇사갈은 한 민족의 진정한 힘을 대변하고, 어두운 곳에서 수고하며, 손으로 노동하고, 어깨로 짐을 매고 일하여 다른 사람들을 부요하게 합니다. 이들은 일이 끝난 후 조용히 안식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수고에도 만족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런 다수의 사람들이 없다면 그 어떤 나라도 가난과 궁핍을 딛고 일어설 수 없습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나귀를 탔습니다( 10:4, 12:14). 이들은 그 짐승이 아니라면 먼지 위를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생각지 못한 채 그 짐승의 천한 지위를 인해 그 짐승을 자주 멸시합니다.

솔로몬의 시대까지는 이스라엘에는 말이 없었습니다. 이는 ㅇ 민족이 다른 민족들처럼( 20:7) 병거를 신뢰하지 않는 독특한 백성이 되기 위해 말을 기르는 것을 금했기 때문입니다( 17:16).

잇사갈 지파는 인구가 늘어났습니다( 20:25, 대상 7:5). 또한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셨고( 9:9), 그분의 군대 또한 재림 때 그러할 것입니다( 5:10).

상업의 세계에서처럼 주님의 사역에서도 동일한 형상이 발생하는바 이는 짐을 지고 나르는 자들은 거의 인정이나 칭찬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잇사갈은 영원에 있어 모든 지파들 중 가장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1212

1

 

하나님의 말씀에 친숙한 사람들은 단 지파에 관한 성경의 암울한 예언들을 읽을 때( 49:16-18, 33:22) 움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뱀들과 사자들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 누가 이를 두고 동산에서의 옛 뱀( 3)과 우리의 대적 마귀(벧전 5:8)를 생각지 않겠습니까? 이 지파에 대해서는 나쁜 예언이 주어집니다.

성경에서 첫 번째 언급될 때도 하녀 빌하로부터의 출생이었습니다 물론 입자처럼 잘못된 시작을 극복한 예가 있으나 이것은 예외이지 일반적인 원칙이 아닙니다. 이 지파에 관한 두 번째 언급도 빌하의 아들들의 나쁜 행실입니다( 37:2). 그리고 창세기 46장에서 야곱의 아들들의 명단에서 단의 아들들의 이름은 빠져있습니다(46:23, 단과 후심만 언급됨). 민수기 26:42에서도 동일한 현상을 보게 되는바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생명의 책에서 누군가의 이름은 지워질 것이라는 경고를 떠올리게 해 줍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역대기상 2장과 10장의 족보와 계시록 7장의 증인 명단에서 단이 빠져있는 사실에서 확정됩니다.

가끔씩 성령님께서 이 지파에 대해 언급하실 때는 뒷부분이나 끝부분에서 하십니다. 예를 들면, 광야에서 단은 진영의 후방에 배치됩니다( 10:23). 땅을 분배할 때도 마지막 순서였는데 실상은 나머지 지파들이 남긴 것을 받은 셈입니다. 역대기상 27:16-22 명단에서도 꼴찌입니다.

야곱의 예언에서도 단은 자기 백성을 심판할 것이라고 합니다. 삼손의 부모들은 단 지파였고(19:41, 13:2), 비록 그들의 아들이 뱀과 사자의 특징을 둘 다 지녔기는 했지만 창세기 49:18의 구원과 관련된 언급은 죄의 사람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 예언들로 볼 때 죄의 사람(적그리스도)은 단 지파에서 일어날 것 같습니다.

 

 

1213

2

 

우리가 사사기에서 단 지파의 역사를 공부해 보면 우리는 환란 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려고 일어나게 될 거짓종교가 어떻게 도입되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며 동시에 A.D. 400년경이래 인류를 뒤엎은 가짜 기독교의 추악한 모습을 관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사기17장에는 미가라 하는 자가 어머니의 돈을 훔친 사건이 나옵니다. 어머니가 화가 난 것을 알고 그는 돈을 돌려주었고 이에 어머니는 그를 복 받은 소년이라고 부르면서 주님께 은을 바쳤는데 그녀는 그것을 그의 아들에게 주어 부어 만든 형상을 만들게 합니다. 도둑과 저주하는 여인이 우상을 만들고는 자신들은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생각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면 아마 개신교에서 자라난 사람이 틀림없을 겁니다. 이미 오래 전에 미가는 신들의 집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의 아들들 중 하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봉헌했습니다. 어느 날 레위 사람 하나가 지나가자 미가는 자신의 신앙을 업그레이드 시키고자 그 사람을 고용하고는 아들을 대신해 가족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신성모독적인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서도 그는 이제 주께서 내게 선을 베푸실 줄 내가 아노라.”고 했습니다. 그는 다만 이를 바란 것이 아니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못 믿는 사람은 아마 전도를 별로 안 하는 사람일 겁니다.

사사기 18장에서 단 지파 몇 사람이 우상들을 섬기고 있던 제사장(6)으로부터 긍정적인 메시지를 얻고자 그 집 앞에 서게 됩니다. 그 종교 시스템에 반한 이들은 모든 신들과 제사장마저 탈취하기로 합니다. 그 제사장이 불평하자, 그들은 한 가족보다 훨씬 큰 한 지파를 사역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알려주자 그 제사장이 마음속으로 기뻐합니다(20). 그들은 라이스에 이르러 그곳의 거주민들을 도륙하고는 그 도시의 이름을 단이라 변경하고 부어 만든 형상들을 그곳에 세우고 자신들의 제사장을 입명합니다. 이와 같은 배교에 빠져든 이단 지파는 결코 회복지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어 만든 형상과 제사장들(사제)이 연관되는 것을 볼 때에는 그 종교는 뱀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1214

3

 

앞서 살펴본 대로 단 지파의 미래는 성령님에 의해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새끼가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33:22). 사자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이 놓여 있습니다. 첫째는 유다에 관한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성취되는 것이고 둘째는 사탄에 관한 언급입니다. 바산이라는 용어가 단의 사자는 후자임을 암시해 주는 바 이는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죽으실 때 그분을 대적하는 바산의 황소들이(22:12) 그 분을 둘러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창세기의 예언은 훨씬 강력합니다. 단을 길가의 뱀이요 행로의 독사로서 말발굽을 물어 말탄자가 뒤로 떨어지게 한다고 했습니다. 발꿈치를 문다는 것과 함께 뱀에 대한 언급은 우리로 하여금 창세기 3장을 주목하게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마귀가 주 예수님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번 공격은 그분이 말을 타고 있을 때 가해집니다. 이로써 이 부분은 갈보리 저 넘어 예수님의 재림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군요(19).

내가 주의 구원을 기다렸나이다.”(49:18) 라는 말씀을 상고해 봅시다. 이 말씀 역시 주님의 재림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62:11과 누가복음 2:30-32을 잘 숙고 해 보세요. 보라, 주께서 세상 끝에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시온의 딸에게 말하기를, 보라, 네 구원이 임하느니라. 보라, 그분의 보상이 그분께 있고 그분의 일이 그분 앞에 있느니라, 하라, 하셨느니라.(62:11)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온데 그것은 주께서 모든 백성들의 얼굴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인들을 밝히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매( 2:30-32)

따라서 이 예언은(49:18) 흰 말 타신 그분을 향해 일격을 가하려고 준비된 적그리스도에 대한 언급인 것 같습니다. 즉 이 땅에 구원을 가져 오시는 그날에 그분을 쓰러뜨리려는 시도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오 주여라는 표현은 문제될 것 없습니다. 빌립보서 2:10-11에 따르면 그 날에는 모두가 예수님을 주님이라 시인한다고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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