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2.05.11 11:28

마가복음 12:28-31 강해 - 가장 큰 명령

조회 수 6367 추천 수 0 댓글 0
Atachment
첨부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가장 큰 명령(앞).JPG

 

마가복음 12:28-31 강해

가장 큰 명령

James W. Knox 지음 / 이우진 옮김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복과 도움을 받으시기 원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기쁨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을 보겠습니다. 서기관들 중에서 한 사람이 그들이 함께 논쟁하는 것을 듣고는 그분께서 그들에게 잘 대답하신 줄 알고 나아와 그분께 여쭙되, 모든 명령 중에서 첫째 명령은 무엇이니이까?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모든 명령 중에서 첫째 명령은,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니라. 이것이 첫째 명령이니라. 둘째 명령은 곧 이것과 같으니,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이것들보다 더 큰 다른 명령은 없느니라, 하시매( 12:28-31)

성경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자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에 대해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누구와 교제를 나눠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교회로 모여야 하고 경배해야 하고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아내를 대하고 남편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명령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하나님의 많은 명령들이 있지만,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면 무엇이 가장 큰 명령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큰 명령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 명령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것보다 더 큰 명령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시대의 성경대로 믿는 교회들은 구령에 대해 강조를 합니다.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합니다. 물질을 드리고 주님을 섬기고 수고하는 것에 대해 강조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좋은 것이고 성경에 나온 것들이며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들입니다. 저는 이러한 것을 하는 게 나쁘다고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구령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복음을 전하고 물질을 드리고 주님을 섬기는 것은 모두 필요하고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면 가장 큰 명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훌륭한 설교자와 그리스도인들, 교회들,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가장 훌륭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얘기는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교회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심지어 어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이런 얘기가 비성경적이고 잘못된 얘기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이 말이 잘못된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잘못된 말씀을 하신 게 됩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잘못된 것을 말씀하신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믿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가장 큰 명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마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정리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마가복음을 인용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하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마가복음 12장의 말씀은 구약성경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합니다. 마가복음 12장의 말씀은 율법에 대한 것인데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율법이 교리적으로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마가복음 12장의 말씀도 교리적으로는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스라엘에만 해당되는 것이고 교회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인데 마가복음 12장의 말씀은 율법에 대한 것이므로 교회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세대주의나 시대 구분에 대해 설교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신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4) 이것은 율법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만 하시는 말씀도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새롭게 하신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새롭게 하신, 구약의 율법과 상관없는 명령은 무엇입니까? 내가 새 명령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바로 입니다.

주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명령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핑계를 댑니다. 다른 사람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니까, 자기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잘 대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잘 하지 않고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도 잘 대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주신 새 명령은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게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신 새 명령은 그것을 능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신 새로운 명령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킹제임스성경에 기록된 무오한 말씀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35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세대주의를 정확히 공부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시 읽겠습니다. “너희가 복음을 전하고 구령을 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제가 또 잘못 읽었습니다. “너희가 킹제임스성경을 믿으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역시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35)

주님의 말씀에 의하면 제자의 표시는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단지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예수님께서 저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제가 죄를 지어도 예수님께서는 저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제가 맡은 일을 다 하지 못해도 예수님께서는 저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제가 사랑을 받기에 합당치 못한 존재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저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저는 잘못을 저지를 때가 많습니다. 끔찍한 잘못을 저지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저를 사랑해 주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되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 주셨던 것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로마서 13장을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든지 어떤 것도 빚지지 말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성취하였느니라.( 13:8)

저는 여러분에게 무엇인가 빚을 졌습니다. 여러분도 저에게 빚진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저는 은사주의자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저는 후천년주의자들에게도 빚을 졌습니다. 저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도 빚을 졌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에게 어떤 빚을 졌는지 아십니까? 저는 예수님께서 저에게 주셨던 것과 같은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저는 빚을 진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빚을 진 사람입니다.

계속해서 9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간음하지 말라 이것은 명령입니다. 너는 살인하지 말라 이것도 명령입니다. 너는 도둑질하지 말라, 너는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너는 탐내지 말라, 한 것과 어떤 다른 명령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이 말씀 안에 간략하게 들어 있느니라.(9)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0) 10절은 사랑의 정의입니다. 이것은 이방인들의 사도였던 사도 바울에게 주신 신약 교회를 향한 말씀입니다. 구약 성도들이나 유대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신약교회는 세워졌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신약 성도들인 우리 교회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고 계신 게 바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상처 입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나쁜 태도를 갖지 않고 그가 잘못되기를 바라지 않고 그에게 잘못을 행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사랑은 자기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게 바로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행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의 모든 것을 성령님께 내어드려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를 원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을 모두 지키기 원합니다. 저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명령과 교리와 계명과 기준과 가르침을 모두 따르고 순종하고 지키기 원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과 명령을 온전히 지키기 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명령을 지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좌절하고 맙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자신과 함께 멍에를 메면 어렵지 않고 가볍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가지만 하면 성경에 나온 수천 개의 명령을 지킨 것으로 쳐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만 지키면 모든 것을 다 지킨 것으로 인정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좋은 거래입니다. 단 하나의 명령을 지키면 모든 명령을 지킨 것으로 인정해 주시겠다니 얼마나 좋은 거래입니까? 한 가지만 지키면 모든 것을 지킨 것으로 간주해 주시는 명령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제안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모든 명령을 평생 지키든지 아니면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명령을 지킨 것으로 간주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명령을 지킬 수 없습니다. 신약 성경이나 바울 서신에 기록된 모든 명령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킨 것과 정확히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명령이고 모든 명령과 율법의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정죄를 받지도 않습니다. 새달이나 안식일이나 유월절을 지키지 않아도 되고 정결한 짐승이나 부정한 짐승에 대한 말씀도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부르심을 받아 자유에 이르렀으나 오직 자유를 육신을 위한 기회로 쓰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라. 온 율법은 이것 즉,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한 말씀 안에서 성취되었느니라.”( 5:13-14) 사도 바울은 지금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고 거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네 번이나 걸쳐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무시한다면 감히 자신을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너희가 서로 물고 삼킬진대 너희가 서로에게 소멸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15-16)

저는 죄에 묶여 있습니다.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미움과 질투와 험담과 불친절과 비방의 죄에 묶여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저의 결박을 푸셨고 저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자유롭게 되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질투하고 험담하고 비방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주님께서 대속해 주셨으니 이제 마음대로 죄짓고 살자고 하는 게 바로 라오디게아 시대의 성도들입니다.

성령님의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에서 성령님께서 우리를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롭게 하시고 죄로부터 결박을 풀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신 것은 우리가 마음껏 죄를 지으라는 게 아니라 더 이상은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지적하고 있는 죄는 바로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 죄입니다.

만일 제가 구원받지 못했다면 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서 5장은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런 핑계를 댈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주님은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16: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교회를 파괴시킬 수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악한 영들과 더러운 영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막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교회를 망칠 수 있는지 아십니까? 우리가 마귀와 싸우지 않고 우리끼리 싸우면 교회가 파괴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른 것으로 파괴되는 게 아니라 서로 사랑하지 않음으로 파괴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에 동의하든 말든 이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사탄으로 인해 망하는 게 아니라 서로 물고 뜯고 싸움으로 망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자신이 성경대로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자신들이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이 바로 성령 충만한 증거라고 합니다. 물론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 말고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또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멸시하는 자는 사람을 멸시하지 아니하고 우리에게 또한 자신의 거룩한 영을 주신 하나님을 멸시하느니라. 그러나 형제의 사랑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서로 사랑할 것을 너희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느니라.(살전 4:8-9)

성령님께서 믿는 사람 안에 들어오시면 무엇을 하시는지 아십니까? 성령님께서는 그 사람을 봉인해 주십니다. 거룩하게 해 주십니다. 보호해 주십니다. 영적 할례를 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는 다른 형제를 사랑하게 해 주십니다. 성령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서로 사랑할 것을 너희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느니라. 성령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멸시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십니다. 비록 그가 성경을 잘 모르고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를 멸시하거나 무시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도록 가르치십니다.

형제들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분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의하면 하나님께 배운 사람의 표시는 단순히 성경 지식이 많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단순히 말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셋째 하늘에 앉아서 우리에게 나는 너희를 사랑한단다.”라고 말씀만 하신 게 아닙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찾아오셨으며, 죄를 대속해 주시고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도와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사랑하시기 원하십니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바른 성경을 전하고 바른 진리를 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가장 큰 명령이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듣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며 악의를 품고 너희를 다루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또 네 뺨을 치는 자에게 다른 뺨도 내주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가 네 덧옷도 가져가는 것을 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모든 자에게 주고 네 물건들을 빼앗는 자에게 다시 달라고 하지 말며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그들에게 그와 같이 하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면 무슨 감사를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너희에게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면 무슨 감사를 받겠느냐? 죄인들도 바로 그 일을 하느니라. 너희가 어떤 자들에게 받기를 바라며 빌려 주면 무슨 감사를 받겠느냐? 죄인들도 준 만큼 다시 받으려고 죄인들에게 빌려 주느니라. 오직 너희는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 주라. 그리하면 너희 보상이 클 것이요, 또 너희가 가장 높으신 이의 아이들이 되리니 그분께서는 감사하지 아니하는 자와 악한 자에게 친절하시니라.”( 6:27-35)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가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구원의 영원한 보장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도 되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자신이 받은 구원이 영원하다는 사실도 믿습니다. 그런데 그는 방언을 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돈을 훔쳐도 됩니까?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 완전하다는 사실을 믿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 한 두 단어가 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람을 욕하고 저주하고 비웃고 무시하고 비방해도 되는 것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와 같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지 않고 진리를 거부하는 악한 자들에게도 친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도 자비로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은혜로우십니다. 하나님을 팔아먹는 사람들에게도 복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와 정확히 같은 것을 믿는 사람만을 사랑하고 교제를 나누고 친절을 베풉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습니다. 성경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제가 이렇게 믿는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저는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킹제임스성경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사람을 제가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사람을 대속해 주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구원을 의심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잘못된 것을 믿고 성경의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올바른 사람은 없습니다. 100% 바른 것만을 믿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 다 바른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은혜와 인도를 구할 때 주님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우리에게 저주를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잘못된 실행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을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주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바입니다.

복음서에서 최초로 기도라는 말이 나온 것을 보면, 자신에게 잘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악의를 품고 너희를 다루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5:44)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된다는 것, 성경을 믿는 다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성경을 믿는 사람은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에게 불친절하게 대해도 된다는 말씀은 성경에 없습니다. 자신과 믿음이 다르다고 해서 적대시하거나 증오하거나 악담을 퍼부어도 된다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성경을 믿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최소한 자신이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면 그래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전서 1장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성령을 통해 진리에 순종함으로 너희 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 없이 형제들을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순수한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다시 태어난 것은 썩을 씨에서 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에서 난 것이니 살아 있고 영원히 거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니라.”(벧전 1:22-23)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기 때문에 성경 변개 문제는 심각한 것이라고 합니다. 전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썩지 아니하고 영원히 거하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님으로부터 진리의 말씀을 배웠다는 증거는 바로 다른 형제들을 사랑함으로 드러납니다. 성령님으로부터 진리의 말씀을 배웠다는 증거는 성경지식의 많음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형제를 사랑함에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을 믿으며 진리의 지식을 많이 알고 있다고 해도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킹제임스성경은, 만일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 믿음의 결과는 다른 형제를 사랑함으로 드러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일 여러분에게 사람이 구원받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으면 무엇이라고 답하시겠습니까? 아마 여러분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답할 것입니다. 맞습니다. 행위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형제가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믿음을 통해 은혜로 받는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든지 형제가 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형제가 되었다면 그가 세대주의를 이해하지 못해도 제 형제입니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분하지 못해도 그는 제 형제입니다.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몰라도 그는 제 형제입니다. 어느 교회가 바른 교회인지 몰라도 그는 제 형제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되는 것은 성경 지식에 달린 게 아니라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에 달린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우리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사랑합니다. 우리와 같은 것을 믿는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요한일서를 통해 하신 말씀은 그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지 묻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지 댈 수 있는 핑계는 많습니다. 저 사람은 구원받기는 했지만 킹제임스성경을 믿지 않고, 저 사람은 구원받기는 했지만 세대주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저 사람은 구원받기는 했지만 방언을 하고 등.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른 성경을 사용하고 바른 교리를 믿는 사람들만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형제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같은 교리를 믿는 형제들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형제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번 주에 성경을 읽다가 전에는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구원받은 지 거의 사십 년이 되었지만 전에는 성경을 읽으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제가 내일 어떤 사람을 만나서 형제님, 혹시 성경에 이런 게 나오는 걸 알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서 그에게 제가 새롭게 발견한 것을 보여주었더니 그 사람은 글쎄요, 그게 그 말이 아닌 거 같은데요.” 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니요, 형제님 잘 보세요. 이거 엄청난 거예요.”하면서 다시 성경을 보여주는데도 그는 글쎄요. 아무리 봐도 그게 그 말이 아닌 거 같은데요.” 라고 합니다. 일이 여기까지 진행되면 성경대로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내가 발견한 진리를 보지 못하는 사람을 조롱하고 모욕하고 비방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가 모른다는 이유로 그렇게 합니다. 그 사람이 성경의 진리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조롱하고 모욕하고 비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한 짓은 세상의 죄인들도 하는 짓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할 만한 형제들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훌륭한 형제들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형제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의견에 동의하는 형제들뿐만 아니라 동의하지 않는 형제들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에게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사랑해 주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와 같이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므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 안에 거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언제가 우리는 모두 이 말씀을 하신 분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어느 한 가지 명령이 다른 모든 명령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셨다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우리에게 어떤 질문을 가장 먼저 하실지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을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즉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에게서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 4:7)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증오는 누구에게 속한 것일까요? 하나님께 속한 것은 아닙니다. 불친절은 누구에게 속한 것일까요? 하나님께 속한 것은 아닙니다. 냉대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는 제가 다른 형제들에게 불친절하고 그들을 증오하고 비방하고 모욕하도록 인도하지는 않으십니다. 성령님께서는 그 누구도 그렇게 인도하신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렇게 인도하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8) 이것은 어려운 말씀입니다. 성경은 구령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십일조를 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사 우리가 그분을 통해 살게 하셨은즉 이것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향해 나타났느니라.(9)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10)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보기 원하시는 사랑도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십니까?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고 바른 교회에 다니고 바른 성경을 보고 바른 교리를 믿고 바른 실행을 한는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면 가장 바른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이것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고 불러서도 안 되고 우리 교회를 성경대로 믿는 교회라고 불러서도 안 됩니다.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교회는 어떤 교회라 해도 성경대로 믿는 교회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게 성경에 나온 가장 큰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에 비하면 다른 모든 명령은 보조적인 명령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어느 때나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전하게 되었느니라.”(11-12)

제가 처음 구원받았을 때 저는 성경에 나온 모든 것을 믿고 일부를 실행하는 교회에 다녔습니다. 우리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구령을 하고 심방을 하고 전도지를 돌리고 설교를 하고 다른 교회의 형제들과 교제를 나눴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것을 실행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복음을 전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그들이 타락했다고 정죄했습니다. 전도지를 돌리지 않는 형제를 보면 우리는 그가 주님을 부끄러워하고 영적으로 어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정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 교회에 초대를 받고 온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면서 사랑에 대해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가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하면서 그런 주제를 선정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오늘 살펴본 것과 같은 구절들을 보여줬습니다. 그러자 성경의 모든 말씀을 믿는다고 자부하던 우리 형제 중 한 형제가 일어나서 그 설교자는 타협자라고 비난했습니다. 다른 모든 것보다 사랑을 강조하는 것은 진리를 포기하는 것이고 타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영원한 보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미워하신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른 교리를 믿지 않는 사람은 미워하신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른 교리를 믿지 않는 형제는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바르게 믿지 못하는 형제를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지키는 작은 명령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과 다툽니다. 언젠가 제가 우리 교회에 설교하러 왔던 그 형제를 다시 만난다면 저는 그에게 사과를 하고 도움이 되는 말씀을 전해주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큰 명령에 대해서 요한일서 4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니 자기가 본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찌 자기가 보지 못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리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자기 형제를 사랑하라는 이 명령을 우리가 그분께 받았느니라.(요일 4:20-21) 이것은 성령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데 실패했습니다. 문제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믿는다고 하는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도 지키고 있지 않는 명령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명령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주님께 회계보고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으로 행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보고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았는지 해명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남편이나 아내나 아이들이나 부모나 직장 상사나 목사나 집사나 애완동물이나 이웃이나 친구 때문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못했다고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오직 예수님과 여러분만 있을 것이며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여러분에 대해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이 삶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이 세상에서 몇 가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가면 우리가 포기한 그것들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요약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면 가장 큰 명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2장에서 예수님은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정리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주셨습니다( 13:34). 주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은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는 증거입니다( 13:35).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13:8-10).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명령을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킨 것과 정확히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의 핵심사항입니다( 5:13-14).

마귀는 교회를 파괴시킬 수 없습니다( 16:18). 교회를 망치는 것은 거짓 교리가 아니라 형제들 간에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5:15-16).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배운 사람이 아닙니다(살전 4:8-9).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 배운 사람의 표시는 단순히 성경 지식이 많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잘못하는 사람들, 오류에 빠진 사람들도 사랑하는 게 하나님의 뜻입니다( 6:27-35). 복음서에서 최초로 기도라는 말이 나온 것을 보면 자신에게 잘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5:4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의견에 동의하는 형제들뿐만 아니라 동의하지 않는 형제들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요일 3:14).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요일 4:7-12).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면 가장 바른 일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요일 4:20-21). 만일 우리가 이러한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이것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라고 불러서도 안 되고 우리 교회를 성경대로 믿는 교회라고 불러서도 안 됩니다.

 

Ps.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소책자로 출간되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3 강해 추천합니다. 담임목사 01.13 5977
62 강해 신약성경개요-01 복음서 서론 2 이우진 07.22 8030
61 강해 로마서 8:28 강해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 이우진 10.19 15291
60 강해 제2회 성경강연회-로마서 총정리 이우진 06.08 4460
» 강해 마가복음 12:28-31 강해 - 가장 큰 명령 이우진 05.11 6367
58 강해 로마서 12:1-2 강해 - 합당한 섬김 이우진 07.10 5577
57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1월1일-7일) 이우진 12.28 5213
56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2(1월8일-14일) 이우진 01.05 6682
55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3(1월 15일-21일) 이우진 01.14 4255
54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4(1월 22일-28일) 이우진 01.26 4685
53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5(1월 29일-2월4일) 이우진 01.26 4856
52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6(2월 5일-11일) 이우진 02.08 5755
51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7(2월 12일-18일) 이우진 02.08 4630
50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8(2월 19일-25일) 이우진 02.23 4105
49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9(2월 26일-3월 3일) 이우진 02.23 4433
48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0(3월 4일-10일) 이우진 02.23 4156
47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1(3월 11일-17일) 이우진 03.11 5198
46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2(3월 18일-24일) 이우진 03.11 4302
45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3(3월 25일-31일) 이우진 03.28 3793
44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4(4월 1일-7일) 이우진 03.28 355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 4 Next
/ 4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