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02.23 09:47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9(2월 26일-3월 3일)

조회 수 4433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9

2월 26일-3월 3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226일

두 홍수(2)

베드로서신에 나오는 홍수

 

베드로후서 3:3-13까지는 그리스도인들끼리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성경의 여러 부분들 중 하나입니다. 어떤 분들은 그 구절들이 노아의 홍수에 관한 것이라고 하고 또 다른 분들은 그것이 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홍수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4절에 나오는 비웃는 자들은 모든 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부터 있었던 것 같이 그대로 계속 된다는 거짓 주장을 붙들고 있다는 이유로 책망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창조의 시작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창세기 1:1에 대한 언급일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때지금사이 그 어느 순간엔가 만물의 질서에 엄청난 재앙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5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땅보다 훨씬 더 큰 그 무엇을 잠기게 한 홍수를 보내셨음을 알게 됩니다. 7절을 보면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한때 홍수로 뒤덮혔던 하늘들과 땅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세계적 규모로 온 땅을 뒤덮었습니다. 그러나 이 홍수는 하늘들을 물에 떠내려 가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후서에서 말씀하시는 홍수는 창세기 7장의 홍수보다 훨씬 큰 규모였다는 말입니다.

베드로후서에서 하고 있는 경고는 어떤 세상이 그 첫 번째 홍수 때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땅이 아니고 땅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 체계를 말합니다(삼상 2:8). 베드로후서는 그 홍수를 앞으로 있게 될 하늘들과 땅의 멸망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이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은 이전의 홍수가 멸망시켰던 것과 달리 불살라져서 원소가 해체될 것이고 뒤이어 새 하늘과 새 땅이(10-12) 형성될 것입니다. 따라서 첫 번째 하늘과 땅을 삼켜버린 베드로후서의 홍수는 다름아닌 창세기 1:2의 홍수인 것입니다. 그때 세상은 물로 멸망했다면( 1:2), 현 세상은 불로 멸망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2 27일

두 홍수(3)

시간의 경계 밖에 있던 사람들

 

욥기 22장은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8절을 보면 강한 자(the mighty man)”가 나오는데 그는 땅을 소유하였으며 그곳에 살고 있던 존귀한 자(the honorable man)”와 대결하였습니다( 22:8). 예수님께서는 그 강한 자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알려주셨으며(사탄, 12:26-29), 그 존귀한 자는 자기 아내와 함께 죽기 위해 자신의 혼을 포기한 그 남자 아담이었습니다(딤전 2:14).

이 강한 자는 깊은 어둠 가운데 있었으며 넘치는 물로 덮여 있었습니다( 22:11). 그는 하늘과 별들과 구름들이 있는 높은 곳에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22:12-14). 이것을 사탄의 반역과 타락을 다루고 있는 이사야서 13:12-14을 비교해 보십시오.

15-16절에는 때가 되기도 전에 끊어진 사악한 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 바 이는 창세기 1:5 이전에 일어난 것입니다. (때가 되기도 전이라는 표현은 영어 “out of time”을 번역한 것으로 시간의 경계 밖에서, 즉 시간이 시작되기 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역주) 그런데 16절에서 이 끊어짐은 홍수에 대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홍수는 창세기 7장이 아닌 창세기 1장의 홍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노아의 홍수는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일어났는지가 다 나와 있으니 시간의 경계 밖이 될 수 없습니다. 특히 16절과 20절에서 사용된 끊어졌다(cut down)”는 표현은 정확하게 이사야서 14:12과 맞아 떨어 지므로 루시퍼의 반역과 타락을 언급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는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방주에서 걸어 나와 정화된 지구(Earth)에서 다시 채우기(replenish)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욥기 22장의 홍수에서 남은 자들은 불이 소멸시켰습니다(20).

욥기의 이 구절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시간 이전의 인종은 그들의 세상을 혼돈의 어두움으로 남겨놓은 홍수에 의해 끊어져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담 이전에 인류(오늘날 우리와 같은)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신약과 구약에서 모두 천사들은 사람(인간)”과 같은 존재로서 언급되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드리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2 28일

두 홍수(4)

사탄의 타락

 

우리는 많은 시간을 들여 사탄의 타락을 독자들에게 묘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바 이는 그 내용이 이사야서 14장과 에스겔서 28장에 잘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본문은 한때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과 가장 복된 관계를 유지하면서 죄 없이 살았던 한 피조물의 신원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타락했을 때 한 무리의 천사들을 대동했다는 사실 또한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두 곳에서 분명치 않은 것은 루시퍼의 반역과 타락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 발생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에 대해 창세기 1장의 침묵이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봅시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1)

빛이 있으라.”(첫째 날), 창조는 없고 허락만 있음(3)

궁창의 형성(둘째 날), 창조는 없음(6)

물들을 모음, 그리고 식물 생명을 나타나게 하심(셋째 날), 창조는 없음(9-12)

, , 그리고 별들이 창조됨(넷째 날, 14-18)

바다 생명과 새들이 창조됨(다섯째 날, 20-22)

육지 생명과 사람이 창조됨(여섯째 날, 24-27)

 

이를 바탕으로(창세기 1장에서 침묵하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둘 것) 아담 이전 시대에 있었던 타락의 시점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보면 그룹들, 스랍들, 천사들, 천사장, 정사 및 권능 등의 창조에 관한 기록이 없습니다. 창세기 1:3과 그 이후의 구절들은 이들의 창조기록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들 영적 존재들은 창세기 1장의 실제적인 6일 창조 이전에 창조되었음이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2 29일

두 홍수(5)

깊음의 샘들과 하늘의 창들

 

창세기의 홍수 기록에 따르면 하늘의 창들을 통해 깊음의 샘들로부터 물이 쏟아지고, 흘러내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7:11). 이에 대해 이것은 하늘에서 내린 비가 지하에서 솓구친 물과 합쳐져서 땅덩어리를 잠기게 했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거짓 주장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창세기 7:11이 말씀하는 큰 깊음은 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 밖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창세기 7:12은 이 두 가지 원천(하늘의 창들, 깊음의 샘들)으로부터 물들이 비의 형태로 지구에 도달했다고 말씀합니다. 둘째, 창세기 8:3은 홍수가 끝나자 그 물들은 땅(지구)을 떠나 되돌아 갔다고 말씀합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창세기 1:3-4에서 하나님께서는 베드로후서에 나오는 그 홍수의 물들을 취하사 그것들은 단단한 형태로(firm-ament) 만드셨고 그 결과 그것은 아래에 있는 창조세계와 셋째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분리시키는 유리바다가 되었습니다( 4:6, 15:2, 고전 13:12). 이 바다는 지금은 단단한 얼음으로 되어 있으며( 38:30) 거울처럼 작용하여 위로는 모든 것이 빛이요 아래로는 모든 것이 어둠이 됩니다( 37:18, 26:7).

이로써 온 창조의 세계를 비추실 수 있는 주님의 영광이 오늘날은 보이지 않게 되고( 21:23), 결국은 해와 별들을 만드셔야만 하신 것입니다( 1:14-18).

깊음”, 혹은 큰 깊음으로 알려진 이 엄청난 양의 물 덩어리는 하나님의 왕좌 밑에 놓여있습니다( 1:2, 49:25, 33:13). 이에 대해 잠언 8장에서 성령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놀랍다고 하겠습니다. 깊음의 샘들은 땅의 기초가 세워지기 전에 이미 있었으며 단단하게 되었고(28), 땅을 뒤덮지 말라는 칙령을 하나님께서 이 깊음에게 내리셨습니다(29). 이 잠언 8장의 구절들은 창세기 1:2 이외에는 해당 구절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창세기 1:2은 시편 104편에서 충분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늘들을 펼치셨고(2), 이것들을 자신을 덮고 있던 빛을 가리기 위한 휘장으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의 방들은 물들 속에 그 들보들을 얹으셨습니다(6). 주의 꾸짖으심에 물들의 일부는 산들을 따라 오르고 땅의 골짜기들과 샘들에 이르러 그분께서 물이 흐르는 코스로 정하신 곳들을 채워줍니다(7-11). 또한 주님께서는 이 물들이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명령하셨습니다(9).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1. 하나님의 왕좌 아래에는 물이 있다.

2. 이 물은 단단하므로 그 위에 건물을 세울 수 있다.

3. 이 물이 바로 지금 땅 위에 있는 물의 원천이다.

4. 이 물은 한때 땅을 뒤덮었었다.

5. 이 물이 노아의 홍수의 원천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땅에 물을 공급하고자 보내진 이 물의 일부는 다시 홍수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금지 당했기 때문이다.

6. 따라서 노아의 날에 있었던 홍수는 이 큰 깊음에서 온 것이 틀림없었다.

7. 따라서 노아의 홍수는 지구를 덮은 두 번째 홍수가 되어야만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 이 깊음을 통과하여 하늘로 가게 되며 주님과 함께 주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51:10-11).

 

 

3 1일

두 홍수(6)

땅을 다시 채우라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셨습니다.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replenish, 다시 채우라로 번역 가능함) 이 말씀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땅에 있었으나 이들은 다 사라져버렸으니 그들을 대체할 수 있도록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에스겔과 이사야의 시대에도 장터에 사람들이 가득하였다가 텅 비게 되자 다시스의 배들과 시돈의 상인들이 그 장터를 다시 채우려고 왔었습니다( 27:25, 23:2).

사실 성경에서 “replenish”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마다 이 단어는 한때 꽉 차 있었다가 텅 비어버린 것을 다시 채워 넣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1:28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땅 위에서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하시니라.”는 이 말씀을 대할 때 우리는 두 가지를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여기서 “replenish”라는 단어는 성경의 다른 모든 곳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뜻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아담의 임무가 땅을 다시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혹은 둘째로 현대 성서들이 “replenish”“fill(채우라)”로 바꾸어 놓은 것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교리체계에 맞추기 위해 성경을 개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원하는 우리는 아담과 노아를 비교해 보면서 많은 빛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담의 날에 있었던 사건과 노아의 날의 홍수를 비교함으로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 바 이 진리를 거부하려면 두 홍수에 대해 편협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replenish(다시 채우라)”의 분명한 정의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실들에만 동의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아 이전에 누군가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노아는 그들을 대체하고자 이곳에 남게 되었습니다. 아담 이전에 누군가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그들을 대체하기 위해 이곳에 놓여진 것입니다.

따라서 공룡과 매머드 그리고 앵무조개 화석의 두개골 조각 등이 수천 억년 전 것이라고 한다 할지라도 저에게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정말 보고 싶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렇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모든 인간은 노아를 통해 아담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의 죄 값을 치루고자 죽으셨습니다. 이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는지 아닌지에 따라 각각 하늘에서, 혹은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3 2일

두 홍수(7)

어두움

 

창세기 1:1 1:3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것을 가장 강력하고 분명하게 증언하는 것은 어둠이 깊음 위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 66권 모두를 찾아보십시오. 어둠과 관련된 부분을 보시면 항상 심판, 혹은 심판의 결과와 관련된 내용이 있을 겁니다.

창세기 15:12에서 아브라함은 큰 어두움의 두려움을 체험하게 됩니다. 모세가 악한 파라오와 대적하여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이집트 온 땅에 짙은 어둠이 있었습니다( 10:22). 신명기 28:29에서는 이스라엘이 죄를 지으면 어둠 속에서 더듬는 것 같이 한낮에도 더듬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사무엘상 2:9에서 볼 수 있듯이 어둠은 사망과 심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성도들의 발을 지키실 터인즉 사악한 자들은 어둠 속에서 잠잠하게 되리니 이는 아무도 힘으로 이기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로다.”(삼상 2:9) 욥기 10:21-22절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돌아오지 못할 곳 즉 어둠과 사망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소서. 어둠의 땅은 어둠 그 자체와 같으며 사망의 그늘진 땅은 어떤 질서도 없고 거기서는 빛이 어둠같으니이다.” 시편 143:3과 잠언 20:20도 이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20, 8:22, 9:2, 29:18, 42:7, 60:2 등에서는 어둠이 대환난의 특징으로 등장합니다. 예레미야로부터 스가랴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언자들은 이 땅에 다가올 끔찍한 심판을 묘사할 때 어둠이라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하신 엄중한 경고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왕국의 자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날 것이요,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8:12)

이에 왕이 종들에게 이르되, 그의 손발을 묶고 그를 데려다가 바깥 어둠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22:13)

너희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둠 속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25:30)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3:19)

신약 서신서에서도 어둠은 항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상태나 사탄의 권능, 그리고 그의 사역자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어둠에 관한 마지막 구절은 계시록 16:10-11입니다. 다섯째 천사가 자기 병을 짐승의 자리에 쏟아 부으매 그의 왕국이 어둠으로 가득하고 그들이 아픔으로 인하여 자기 혀를 깨물며 또 자기의 아픔과 헌 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모독하고 자기 행실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창세기 1:2의 어두움이 우주의 첫 번째 질서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둠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항상 죄의 결과 혹은 삯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늘도 빛입니다. 구원은 죄인을 그분의 놀라운 빛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그 높고 높으신 그분께서 어둠으로부터 시작하신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어둠을 가져온 무엇인가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성경기록에는 온 땅이 어둠에 파묻힌 경우가 세 번 나옵니다. 첫째는 사탄의 반역( 1)이고, 둘째는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였고(4복음서), 그리고 셋째는 심판이 대환난에 임할 때입니다( 24, 요엘 2장 등).

 

 

3 3일

두 홍수(8)

마지막 묵상

 

창세기 1:2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성경 구절들을 세심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땅은 형체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 움직이시니라.”

내가 땅을 보니, 보라,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하늘들을 보니 그것들에는 빛이 없었고( 4:23) 이 구절들을 읽고 창세기 1:2과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눈치채지 못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비어있고 형태가 없고 어둠이 있는 모습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첫 번째 장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내가 산들을 보니, 보라, 산들이 떨며 모든 작은 산들도 가볍게 움직였고 내가 보니, 보라, 사람이 없었으며 하늘들의 모든 새들이 도망갔고( 4:24-25) 이 말씀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무도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모든 사람이 다 멸망 당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도망간 새들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홍수가 한번뿐일 경우 창세기 1:20 이전 혹은 이후의 사건일 것이고 만약 홍수가 두 번 있었다면 그보다 훨씬 더 오래 전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보니, 보라, 열매를 많이 내던 곳이 광야가 되었으며 그곳의 모든 도시들이 주 앞에서 그분의 맹렬한 분노로 말미암아 무너졌도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온 땅이 황폐할 터이나 내가 완전히 끝을 내지는 아니할 것이며( 4:26-27) 여기서 우리는 이 재앙이 있기 전에 누군가가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무너진 도시들이 있었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땅이 애곡하고 위에 있는 하늘들이 검게 되리라. 내가 그것을 말하였고 그것을 작정하였으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며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4:29) 이 심판은 땅과 그 거주자에게만 임한 것이 아니고 위에 있는 하늘들 마저 검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당한 이유가 없이 심판하실 리가 없습니다. 분명 하늘들에서 그분의 진노를 야기시킨 그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예레미야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재림에 관한 이야기라면 성경 진술의 일부가 거짓이 되고 맙니다. 환난의 끝 무렵, 즉 주님의 재림 때 아무 사람도 없다(there was no man)”는 말은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 양과 염소 민족들, 신약 교회의 성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상당수의 사람들이 야곱의 고난 때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없던 때는 단 두 번 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1:1이 첫 번째입니다. 그런데 이 때는 사람이 존재한 적이 없었으므로 도시들이 있었을 수가 없었습니다. 두 번째는 창세기 1:2입니다. 이 때는 어떤 인종이 있었으나 멸망 당하고 말았기에 더 이상 사람이 없었습니다.

만약 예레미야서의 구절들이 아담 이전의 인종에 대한 언급이라면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많은 도시, 기념비, 그리고 문명들 중 노아의 아들들의 역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의 놀라운 유적들에 대해 쉽게 설명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구절이 창세기와 연관된 구절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단서는 열매를 많이 내던 곳이라는 표현입니다. 만약 아담이 이 곳을 다시 채워야 할 책임을 맡게 되었다면 그는 다산(열매를 많이 냄) 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1:28 말씀과 일치함에 주목할 것.-역주)

 

합당치 않은 과학과 합당치 않은 성경 해석 사이에는 많은 모순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과학과 건전한 성경의 해석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진리는 항상 진리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3 강해 추천합니다. 담임목사 01.13 5974
62 강해 신약성경개요-01 복음서 서론 2 이우진 07.22 8028
61 강해 로마서 8:28 강해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 이우진 10.19 15175
60 강해 제2회 성경강연회-로마서 총정리 이우진 06.08 4460
59 강해 마가복음 12:28-31 강해 - 가장 큰 명령 이우진 05.11 6359
58 강해 로마서 12:1-2 강해 - 합당한 섬김 이우진 07.10 5576
57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1월1일-7일) 이우진 12.28 5213
56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2(1월8일-14일) 이우진 01.05 6682
55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3(1월 15일-21일) 이우진 01.14 4255
54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4(1월 22일-28일) 이우진 01.26 4685
53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5(1월 29일-2월4일) 이우진 01.26 4856
52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6(2월 5일-11일) 이우진 02.08 5755
51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7(2월 12일-18일) 이우진 02.08 4629
50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8(2월 19일-25일) 이우진 02.23 4105
»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9(2월 26일-3월 3일) 이우진 02.23 4433
48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0(3월 4일-10일) 이우진 02.23 4156
47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1(3월 11일-17일) 이우진 03.11 5198
46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2(3월 18일-24일) 이우진 03.11 4302
45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3(3월 25일-31일) 이우진 03.28 3793
44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4(4월 1일-7일) 이우진 03.28 355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 4 Next
/ 4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