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03.28 19:13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3(3월 25일-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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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3

3월 25일-31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3월 25일

그 땅에 기근이 있었으므로( 12:10)

 

약속의 땅에서의 기근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입니다.

가나안은 그 땅의 비옥함에 있어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지역입니다. 명기 11:11-12에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가서 소유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흡수하는 땅이요, 또 주 네 하나님께서 보살피시는 땅이니 한 해의 시작부터 끝까지 주 네 하나님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샘물도, 호수도 강도, 지속적인 강우도 없는 곳이기에 이 땅은 주께서 복을 주시면 젖과 꿀이 흐를 것이나 복을 주시지 않으면 메마른 광야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분을 신뢰하기를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이 이집트에 거주하고 있을 때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신명기 11: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들어가서 소유할 땅은 너희가 나온 이집트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네가 씨를 뿌린 뒤에 채소밭에 물을 대듯 네 발로 물을 대었거니와 이집트에서는 관개를 통해 농업용수를 통제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저와 제 아내는 이스라엘 북부로부터 최 남단 국경 부분까지 차를 타고 가면서 그 황폐함에 크게 놀랐었습니다. 땅은 딱딱하고 바위투성이었고 나무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곳을 자신의 땅으로 택하신 것 말고는 전혀 관심을 끌만한 곳이 못 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 곳이 과거 젖과 꿀이 흘렀고 나중 꽃이 피어나는 곳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때(주님의 약속이니), 우리는 여호와의 지혜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약속의 땅은 약속을 주신 분이 없다면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축복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아브라함도, 그리고 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하나님의 시험을 치른 것입니다. 때가 악하고 힘들 때 여러분은 그분께서 부르신 그곳에 그대로 머무시렵니까? 기근이 덮칠 때 그때에도 여러분은 그분의 뜻 안에 그대로 머물고자 하십니까?

 

 

3월 26일

롯의 분리

 

1. 부는 다툼을 가져왔습니다.

(1) 아브라함과 롯 사이에 가 다툼을 가져왔습니다(5-6).

(2) 세상이 보기에도 분명히 그랬습니다(7).

(3) 형제간에 화평하자고 청했습니다(8).

(4) 겸손히 타협은 했지만 그래도 분리는 발생하고 맙니다(9).

 

2. 은밀한 욕심

(1) 롯이 기꺼이 먼저 선택을 합니다(10).

(2) 장로에게 복종하는데 실패했습니다(벧전 5:5, 13:17, 5:22, 딤전 5:17).

(3) 보는 것으로 택했습니다(10a, 믿음으로가 아니었음-역주).

(4) 그는 이집트처럼 풍요를 보았으나 그 결과는 보지 못했습니다( 1:14-15, 딤전 6:5-11).

(5) 그는 이집트에서 나왔으나 이집트는 그에게서 나오지 않았습니다(10).

 

3. 안전하기에는 너무 가까이 갔음

(1) 그 길을 향해 장막을 쳤습니다(12).

(2) 나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13).

(3) 그곳으로 이주해 갔습니다(14:12).

 

4. 서서히 떠내려간

(1) 세상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4:4).

(2) 세상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요일 2:15-17).

(3) 세상과 일치하게 되었습니다( 12:2).

(4) 세상은 심판을 받았습니다(고전 11:32).

 

 

3월 27일

아브라함과 롯에 대한 소고

 

조금씩 조금씩 우리는 해안으로부터 떠밀려 갑니다. 롯이 소돔 방향으로 떠나가기 시작했을 때 그가 결국은 술이 취해 근친상간을 저지르고 말 것인지를 롯에게 물어보았더라면 그는 그 생각만으로도 끔찍해 했을 것입니다. 너무도 적은 사람들만이 잘못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길을 택한 것이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롯은 자신의 부르심을 따르지 않고 아브라함의 부르심을 따랐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의 행적을 허우적대며 따라가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세워본 적이 없습니다. 간접적인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롯은 하나님과 걸은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과 걸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시험에 실패하여 이집트로 갔을 때 롯은 무너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그의 눈이 아브라함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세상적이 될 수 있다면 자신도 능히 그럴 수 있다고 추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그리스도인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기를 바라시지 그 일에 실패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설교자나 집사나 교회 지체가 죄에 빠져 어떤 사람이 주님을 거부하거나 올바른 길을 포기할 핑계거리를 제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실수는 롯의 실패에 동력을 제공했습니다. 물론 롯의 실패는 롯 자신의 책임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행동이 약한 형제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죄의 이기심은 많은 다양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실 그 죄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맙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를 본으로 삼아 기대고 있는지를, 우리가 그들 밑에 받치고 있는 받침대를 치우고 날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됩니다. 자신이 존경하던 그리스도인이 세상 길로 가버렸을 때 자신의 신앙생활이 망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롯과 같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 모두 참된 본이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도우시기를 구합니다.

 

 

3월 28일

1차 세계대전 롯의 구출( 14)

 

이 시대는 전쟁의 시대입니다( 24:6).

이 시대는 정욕의 시대입니다( 4:1-4).

롯의 보화는 잘못된 곳에 있었습니다( 6:19-21, 5:1-6, 13:22-23, 딤전 6:9).

 

이 장에서 우리는 마지막 날에 있게 될 유대인 남은 자들에 대한 놀라운 예언적 통찰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그리스도의 예표이며 롯은 대환난기간중의 유대인을 예표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궁지에 처했음을 보게 됩니다(13).

비록 롯이 잘못되었으나 그는 사랑하는 친족입니다(14).

아브라함은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롯을 구출코자 합니다(14).

 

아브라함은 밤에 왔습니다. 이로써 환난 끝에 대한 성경적 예표가 성취되었습니다(14).

아브라함은 용감한 승리를 얻게 됩니다(15, 28:1).

그것은 완전한 승리였습니다(16).

모든 것은 회복되었고 되찾게 되었습니다.”(16)

 

롯과 동맹을 맺었던 민족들이 아브라함을 경배하러 옵니다(17).

왕국의 음식을 주목해 보십시오(18).

 

아브라함은 하늘과 땅의 소유자로서 축복을 받았습니다(19).

하나님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20).

 

 

3월 29일

창세기 14장의 예표는 계속됩니다

 

 

아브라함이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모습은 다음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1. 그는 자신이 구출한 자들의 친족이었습니다.

2. 그는 자신의 형제의 해방을 책임졌습니다.

3. 그는 악의 세력들에게서 노획물을 획득했습니다.

4. 그의 종들은 자신의 집에서 난 자들이었습니다.

5. 구출할 가치는 없었으나 사랑했기에 구출했습니다.

6. 그는 신속히 구출에 임했습니다.

7. 그는 자신이 치를 대가를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8. 그는 구원하기 위해 고통을 겪었습니다.

9. 그는 세상적 이득을 거부했습니다.

10. 그는 구출된 자()로부터 아무런 감사도 받지 않았습니다.

11. 그것은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3월 30일

멜기세덱과 예수님( 14:17-20, 6:20-28)

 

멜기세덱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엄청난 양의 추측이 있습니다. 몇몇 논지는 건전하기도 하지만 나머지는 그저 근거 없는 공상에 불과합니다. 멜기세덱은 정확히 성경이 그러하다고 말씀하고 있는 바로 그분이라는 것이 저의 확신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다른 여러 사람들처럼) 그 역시 그리스도의 예표는 될 수 있겠지만 그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라는 성경적 증거는 없습니다.

예수님과 멜기세덱을 비교해보면 우리는 다음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1. 두 사람 다 이상하고, 기적적인 조상을 갖고 있습니다.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다는 말은 멜기세덱의 족보기록과 관련된 것입니다.

2. 두 사람 다 의의 왕이요 화평의 왕이라고 불립니다. 그런데 이들 칭호는 다음 성경 기록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21:4-5, 2:8, 7:13-14, 2:2, 18:37, 19:14-15, 17:14, 19:16).

3. 두 사람 다 제사장이었습니다( 110:4). 우리 주님께서는 항상 살아 계셔서 아버지의 오른편에서 우리의 위대한 대제사장으로서 섬기고 계십니다.

4. 두 사람 다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복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3월 31일

모든 것의 십분의 일( 14:20)

 

이 내용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매우 흥미롭습니다.

1. 이 말씀을 보면 십일조는 율법의 일부가 아니라 율법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2. 십일조는 처음부터 요구사항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바친 헌물이었습니다.

3.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수백 번은 읽었을 것임) 늘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다는 확신이 없습니다. 문법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대명사)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십 분의 일을 준 것으로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22-24절에서 아브라함은 소돔 왕으로부터 아무것도 취하지 않았으며, 롯의 제물은 롯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16). 그렇다면 승리의 모든 노획물은 멜기세덱에게 드려졌다는 것이 됩니다. 이 경우 우리는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멜기세덱에게 주었고 멜기세덱은 그 중 십분의 일을 돌려 준 셈입니다.

4. ! 그러나 성경이 성경을 스스로 해석하도록 놔 두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곳이 여기 있습니다. 히브리서 7:1-2을 보십시오.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니라. 그가 왕들을 살육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만나 그를 축복하였으며 아브라함도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첫째로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또한 살렘 왕이니 곧 화평의 왕이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주는 만큼 하나님께 드렸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만큼 우리 자신에게 주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제 생각에는 우리 중 많은 사람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심이 갑니다.

설교자들이 십일조에 대해 성도들을 몰아세우는 만큼만 하나님의 산하심에 대해 설교 시간을 할애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교회는 재정이 넉넉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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