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7
4월 22일-28일
James W. Knox 지음
4월 22일
하갈 3
“사래가…하갈을 데려다가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주어”(
“그녀가 수태하니”(
“당신이 기뻐하는 대로”(
“그녀의 손 밑에서 복종하라.”(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게 하여”(
4월 23일
창세기 16장
고찰
16장에서 입증된 영적
생활의 원칙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옛 본성이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깊이 있는 가르침을 받은
성도 역시 시험과 나약함과 상존하는 육신적 성향 등으로부터 면제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또한 인생을 사는 동안 별별 위험스러운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며칠간, 몇 주간, 그리고 몇 달간은 특별한 일 없이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느닷없이 특별한 시험 거리가 생겨 우리를 죄를 몰고 가게 됩니다.
시험은
자주,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생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큰 시험이 자기 인생에 있어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왔습니다. 오늘날도 자주 이런 일이 생깁니다. 사탄은 가장 거룩한 관계와 가장 친밀한 관계를 사용해서 죄를 가져옵니다. 우리는
이러한 계략에 대해 무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 장에서 너무도 자주 발생하는 ‘잘못된 결합’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훌륭한 동기와 잘못된 행동의 연합입니다. 사래의
동기는 의심할 바 없이 좋은 것이었으며 아브라함 역시 같은 식으로 동기부여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명백히 잘못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간에 목적은 수간을 정당화시킬 수 없습니다. 오늘날 실수나 비성경적 실행이나 심지어는 배교마저도 “오, 그것은 선의로 한 것이잖아.” 라는 변명으로 그냥 덮어버리는 것이
관행화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악의를 가지고 행동한 사람 못지 않게 선의를 가지고 행한 사람도 큰 손상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해치려는 운전자와 운전을 할 줄 모르는 운전자는 동기는 달라도 결국
같은 재앙을 가져옵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가져오고자 한 것은 선한 동기에서 비롯되었으나 정해진 규례대로 행하지 않은 결과 큰 비극이 발생했음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4월 24일
“죄의 여파는 길게 간다”
어떤
죄들은 그 여파가 매우 길게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든 죄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 앞에서 가증한
것이지만 어떤 죄들은 다른 죄들보다 더 크고 오래도록 고통을 가져옵니다. 아담의 타락을 제외하고는 아마도
아브라함이 하갈과 밀회를 갖은 것 만큼 인류에게 큰 해를 가져온 행동도 없을 듯 싶습니다.
회교(이슬람교)의 존재는 실로 아브라함의 잘못된 발걸음 때문에 기인합니다. 모하메드 이전의 모든 구원받지 못한 혼들과 이스마엘인들이 흘린 피, 그리고
모하메드 시대 이래로 지금까지의 수 백만 명의 혼들의 명망은 이 한 가지 실수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보자면 기독교의 가장 치명적인 대적자인 이슬람은 아브라함의 자녀의 씨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은 아직도 맹렬하게 대적하고 있는 중입니다.
주의
천사가 약속하기를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게 하여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그는 들사람이 될 것이요, 그의 손이 모든 사람을 대적하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대적할 것이라.”(
“그가 자기의 모든 형제들 앞에 거하리라.” 이 말씀대로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멸시하는
이복형제들과 공존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가 될 것이 분명한 그런 일들을 멈추게 하시거나 막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다음 사실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하갈도 방황하다가
사막에서 아이와 함께 죽도록 허락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찾아내셔서 보존하셨습니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평생 불순종과 자아추구는 위험스럽고 고통스러운 것임을 상기하도록 하시려고 육신에 뿌린 씨들이 번성하도록 하실지도 모릅니다.
4월 25일
“하나님을 기다림”
이번에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기다려야 할 필요성에 대해 깊이 상고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버지가 되는 것은
옳은 일이었습니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자기와 자기 아내는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나이를 지나버렸음을 보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뭔가 비정상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의향이셨다면 벌써 그 일이 성취되었을 거라는 논리전개야말로
많은 사람을 실수로 이끄는 주범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며 하나님의 방식은 때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을 요구합니다.
믿음과 인내가 결합되는 것(히
아마도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살고 있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라면 사라의 시험이 가져올
위험을 충분히 감지해 낼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실수로부터 지켜지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여 친밀한 교제를 하면서 말씀 속에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임재에 가까이 가도록 기도하고 깨어 있는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공적을 세우리라.”(단
어쩌면
대다수의 우리처럼 아브라함도 자기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혼동했을지도 모릅니다. 언제 행동하고
언제 기다려야 되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 언제 움직이고 언제 머물러야 하는지를 지시해 주는
구름기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다른 말씀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말씀 중 단 하나라도 어기도록 하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동기로 죄를 지어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 경우도 그 어떤 선이 그 결과로 나오지 않습니다(롬
4월 26일
새롭게 되고 확장된 언약(창
1. 많은 민족들의 조상(4-6절)
그의
이름이 바뀌었음
(1) 아브람: 높은 아비
(2) 아브라함: 민족들의 아비
2. 그의 후손과의 언약
3. 영존하는 언약(7절)
4. 영존하는 소유가 된 가나안 땅(8절)
5. 언약의 표적: 할례
(1) 언약이 씨와 관계
있음을 상기시켜줌
(2) 육신의 무익함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표적임
(3) 전가된 의가 먼저
왔고, 뒤이어 외적인 표적 혹은 인(seal)이 뒤따름
6. 일곱 번에 걸친 “내가
하리라(I wills)”
(1) 이곳에서
(2) 출애굽기
(3) 이사야 14장
(4) 이사야 65장
7. 할례
은혜가
참된 열매를 맺기 전에 육신은 끊어져야(베어져야) 함
4월 27일
이삭의 출생과 예수님
1. 둘 다 약속된 씨였음(창
2. 둘 다 아들이었음(사
3. 두 경우 모두 약속과 성취 사이에 긴 기간이 있었음(창
4. 두 사람의 어머니가 가능성에 의문을 품었음(창
5. 두 어머니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답변했음(창
6. 두 아들 모두 출생 전에 확정된 이름을 받았음(창
7. 두 소년 모두 정해진 때에 태어났음(창
8. 두 출생 모두 기적이 요구되었음(사
9. 두 출생 모두 아버지들의 기쁨이 되었음(창
우리는
이 사실에 입각해서 구약성경 전체가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을 미리 내다보고 있다는 사실(계
4월 28일
비준된 언약
하나님께서는
1.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2. 그의 마음이 주 앞에
신실함을 보셨고
3. 그와 언약을 체결하셨습니다.
갈대아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데리고 나오신 것은 그의 부르심이요, 그의 이름을 바꾸신 것은 언약이 봉인 될 때였습니다.
택하심은 12장에 기록되어 있고, 신실함은
12-16장에 나와 있으며, 17장에서는 언약이 체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