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02.08 08:51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6(2월 5일-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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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5

2월 5일-11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2 5일

가인과 이스라엘 민족의 비교

 

우리는 성경기록을 통해 가인과 이스라엘 민족의 유사한 점을 적어도 20가지 정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1. 가인과 이스라엘 민족은 둘 다 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4:2, 13:15).

2. 둘 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헌물을 거부하였습니다( 1:11).

3. 둘 다 자신들이 선택한 희생물을 바쳤습니다( 9).

4. 둘 다 자기 의를 고집한 죄를 지었습니다( 10: 3).

5. 둘 다 하나님께 헌물을 거절 당했습니다( 13: 39).

6. 가인이 자기 동생을 다스리는 것은 하나님께 받은 특권이었으며( 4:7) 이스라엘 또한 민족들의 우두머리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28:13).

7. 둘 다 앞서 언급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에 그들의 지위와 특권을 상실해야 했습니다( 9:14).

8. 둘 다 살인자가 되었고 시기가 그 원인이었습니다( 5:36).

9. 하나님께서는 둘 다에게 그 범죄에 대해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2:22-23).

10. 하나님께서는 이들 둘 다에게 피의 증언이 그들을 대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7:23).

11. 이들은 둘 다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저주를 받았습니다( 24:9).

12. 이 저주 중 한가지는 그들에게 땅이 열매를 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4:12, 26:34-35).

13. 그리하여 둘 다 방랑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28:65).

14. 가인은 자기가 받을 벌이 너무 크다고 주장했고 이스라엘 역시 언젠가 그와 같은 고백을 할 것입니다( 12:10).

15. 가인은 죄의 결과 내 쫓겼습니다( 4:14). 이스라엘 또한 약속의 땅에서 내 쫓겼습니다.

16. 하나님께서 이들의 죄 때문에 얼굴을 숨기셨습니다( 1:9).

17. 그들이 죄를 지은 이래 모든 사람의 손이 그들을 대적했습니다( 28:66).

18.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표시를 하셨습니다. 유대인도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다 알아 볼 수 있습니다.

19. 가인을 죽인 자나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들은 엄중한 형벌을 당을 것입니다( 12:3).

20. 가인은 도시 생활을 확립했고( 4:17), 이스라엘인들도 오늘날까지 대도시에 몰려 살고 있습니다.

 

 

2 6일

이것은 아담의 세대들에 관한 책이라.”( 5:1)

 

성경에는 비슷한 타이틀을 지닌 두 권의 책이 나옵니다. 하나는 아담의 세대들에 관한 책이고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대에 관한 책입니다. 전자는 구약성경의 첫 부분에 나오고 또 하나는 신약성경의 첫 번째 구절에 등장합니다. 첫 번째 책을 읽어 가노라면 그리고 그가 죽더라라는 표현이 반복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어떤 자는 조금 더 살고 또 어떤 자는 다른 자들 보다 상당한 업적을 쌓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에녹을 제외하고는 아담의 아들들 모두에게 동일한 사망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책을 보면 낳고는 있는데 죽으니라는 없습니다. 출생은 있으나 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자는 선하게 살았고 또 어떤 자들은 부끄러운 인생을 살았는지 모르지만 어째든 이 명단에는 사망의 기록이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첫째 아버지인 아담으로부터 그들을 분리시켰기 때문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되리라.”(고전 15:22) 아담을 통해 태어난 자는 다 죽습니다. 반면 그리스도를 통해 태어난 자는 다 영원히 삽니다.

당신이 한 번 밖에 태어난 적이 없다면 영원한 생명을 소망할 수 없습니다. 아담으로부터는 오직 육체적 생명을 얻을 뿐이나 이 생명은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두 번째, 즉 영적 출생을 한적이 있다면 당신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너희는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2 7일

아담으로부터인가, 유인원으로부터인가?

 

알파인 인터네셔널(The Alpine International)이라는 곳에서 그 어딘가에 있는 섬에서 열린 학회를 열었는데 그곳에서 모든 관심 있는 분들에게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회의는 유인원들이 모여 개최한 것임.-역주)

 

1. 인간들이 우리(유인원)와의 관련성을 입증하고자 꾸준히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음으로 인해, 그리고

 

2. 우리(유인원)는 이 문제를 특별히 숙고하고 진지하게 연구하였기에, 그리고

 

3. 우리(유인원)들 중 몇이 인간들이 발행하는 일간지를 읽고 살인과 이혼과 온갖 스캔들 같은 현상은 우리 종족의 그 어떤 전통과도 연관 지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4. 우리(유인원)은 댄스 홀을 방문하여 그 안에 있는 몇몇을 목격한 바 우리의 과거 행적과는 전혀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5. 우리(유인원)는 당신들(인간)의 일간지의 주말 판에 나오는 오락섹션을 분석해 보았는데 우리 과거의 자료에는 그와 같은 종류가 전혀 없음이 판명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6. 우리(유인원)은 당신들(인간)의 전쟁터를 방문해 보았고 잔인한 학살 모습을 확인한 바 정말 믿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여 우리 종족이나 우리의 서식처인 정글 그 어디에서도 그런 비극에 대해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이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의 하는 바 입니다.

 

우리는 인간과의 친족관계의 가능성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바이며 이를 주장한다면 우리 종족과 부족에게 적당한 이유 없는 모욕으로 간주할 것이며 전혀 증거가 없음을 확인하며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결의 하는 바 입니다. 우리는 유능한 변호사를 선임하여 우리 종족을 대변해서 미국인들 앞에 본 사건을 제시하고 만약 그 거칠고 절반쯤 구워진 인종(흑인을 말하는 것 같음역주)이 일말의 정의감이라도 갖고 있다면 그 종족과 우리 종족을 연관 짖지 말 것을 요구 할 것이며 적어도 인류의 스캔들이 줄어들 때 까지는 결코 그리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담음과 같이 결의 하는 바 입니다.

우리 유인원 족은 인간이 자신들의 지위를 우리보다 더 높이든지 혹은 낮추든지 간에 더 이상 우리와 자신들을 엮지 않을 때까지 인류와의 모든 외교관계를 이에 완전히 단절하고자 하는 바 입니다.

 

모든 유인원들이 서명하였음,

 

옥스퍼드대학교의 세이시(Sayce)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구약 및 신약 성경의 말씀들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는 오늘날 무지와 엉성한 지식의 표식이라고 할 수 있다.”

 

 

2 8일

셋의 전 생애는 구백 십 이년 이였으며 그가 죽으니라.”( 5:8)

 

창세기 5장의 출생과 사망 기록에는 주목해야 할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에노스, 에녹, 그리고 노아이며, 이 세 사람은 영적인 생명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에노스를 통해 우리는 구원을 보게 됩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 하였더라.”(4:26) 이 내용은 이미 잘 알려진 로마서 10:9-10에 나오는 구원의 요건과 일치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마음속의 갈망과 더불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에녹을 통해 우리는 교제를 볼 수 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걷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므로 그가 있지 아니하더라.”( 5:24)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목적은 인간을 회복시켜 하나님과 교제토록 하기 위함입니다. 에녹은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한 셈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이 구원이 담고 있는 진리를 문자적으로 그대로 수용해 보면 또 다른 적용 가능한 원칙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의 신자가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면 자아는 더 이상 있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임재가 너무도 분명해서 더 이상 인간은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노아를 통해 우리는 섬김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과 걷게 되고, 같이 걷다 보면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셋의 노년에서는 그 어떤 발명품이나, 예술이나, 문명도 찾아볼 수 없음을 주목하십시오.

가인의 노선은 주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물론 예외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예술분야와 인문학 쪽에 종사하는 자들은 가장 극렬하게 성경적 진리와 도덕에 반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현상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거의 모든 문화와 시대에 걸쳐 입증된 사실입니다.

 

 

29일

그리고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걸으니라.”( 5:22)

 

함께 걸었다는 표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걸음의 여러 측면들이 성경에 강조되어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1. 앞에서 걸으라.”( 17:1)는 말씀은 진지함을 의미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눈이 항상 우리 위에 있어 우리가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 어떤 식으로 그 길을 걷는지를 살펴보고 계심을 인식하라는 말입니다.

 

2. 주 네 하나님을 따라 걸으라.”( 13:4)는 말씀은 순종과 신뢰를 의미합니다. 그분께서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발자취를 신실하게 따르고자 합니까? 그분께서 코스를 정하셨습니다. 그분의 길이 완전하다고 확신하는 가운데 그 코스에 그대로 머물러야 하지 않을까요?

 

3. 그분 안에서 걸으라.”( 2:6)는 말씀은 그분과의 놀라운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분께서 내게 너무 가까이 계셔서 나는 내 옆에서 그분을 볼 수도 없고 내 앞에서도 내 뒤에서도 볼 수 없습니다. “영광의 소망이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란 말은 신약성경의 교리입니다. 제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제 발 위에 서 있곤 했습니다. 제 손을 잡고 제가 걷기 시작하면 깔깔대며 웃곤 했습니다. 큰 걸음을 걸었다가 작은 걸음을 걸었다가 멈췄다가 갑자기 돌아서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때는 제가 어디로 가든 아이들 또한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분 안에서 걷는다는 의미입니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교제에 관한 믿음입니다. 이 교제야말로 인생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에녹은 자기 아들이 태어나기까지는 하나님과 걷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선물인 이 작은 생명이 그의 인생을 확 바꾸어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의 삶을 사는 계기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그때 이래로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30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에녹은 꿈속에서 사는 감상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생애에는 악과 대적해야 하는 어려운 순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14,15). 가인의 노선을 따르는 자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을 선포해야 했습니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녹은 끝까지 진실했고 중도에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에녹의 믿음의 삶은 하늘에서 맞게 된 완전한 교제에 초대되어 보상을 받게 됩니다. 한 걸음 내 딛을 때 그의 발은 땅 위를 걷고 있었는데 그 다음 걸음을 내 딛으니 하늘 위에서 걷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우리 또한 동일한 약속을 믿었습니다(살전 4:13-18).

 

유다서는 에녹을 아담으로부터 일곱 번째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옛 인류를 향해 갖고 계셨던 그 목적들이 완성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을 데려가시고 노아와 다시 새롭게 시작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2 10일

창세기 5장에 관한 마지막 묵상

 

하나님께서그들의 이름을 아담이라 부르시니라.”(2) 남편과 아내가 된 남녀는 한 육체가 됨으로써 동일한 이름을 지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과 그분의 교회도 고린도전서 12:12에서 그리스도라고 불립니다. 우리도 한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5:30-32).

그리고 그가 그의 이름을 아라 부르며 이르되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하리라.”(29) 저는 구원받은 이래로 노아를 위로자라고 부르거나 언급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위로라는 말은 단지 노아가 선포한 말을 믿고 그의 권고로부터 많은 유익을 얻은 사람들 중에서 살아서 방주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들 옛 성도들은 그 누군가가 진리를 위해 여전히 굳게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기뻐했을 것입니다. 물론 믿는 자들을 보존한 자로서 노아는 위로자이신 분과 당연히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만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는 뭔가 더 통찰력 있는 관찰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전혀 근거 없는 진화론에 대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아마 더 이상 진화론을 언급할 가치가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날들이 지질학적 시대라고 인정하고 대략 적게 잡아 이 날이 5백만 년이라고 칩시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의 음력을 기준으로 해서 1년을 360일로 계산해 보겠습니다.

아담이 백삼십 년을 살며 자기 모양대로 자기 형상에 따라 아들을 낳아…”(3) 우리가 훌륭한 과학자와 학생이 되려면 우리의 주장이 일관성이 있어야 하기에 다윈의 날의 길이인 5백만 년을 360으로 곱하고 다시 아담이 셋을 낳을 때까지의 130년을 곱하면 셋은 아버지가 2,340,000,000,000살이 되었을 때 태어난 셈입니다. 허허허!

이제 우리는 다윈의 탐험선 “Beagle에게 작별을 고하고자 합니다.

 

 

2 11일

예수님과 노아의 방주

 

우리는 노아가 지은 방주가 어떤 면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주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방주와 예수님은 둘 다 인류가 멸망을 당하기에 앞서 피난처로서 하나님께서 제공하셨습니다( 6:13-14, 3:8).

 

2. 이 둘은 다 하나님에 의해 계시된 피할 길로 비밀이 아니었습니다(고후 4:6).

 

3. 방주는 땅에서 자란 살아있는 식물로 만들어졌으며 인간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같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6:14, 53:2).

 

4. 그 살아있는 식물은 피신처를 예비하기 위해 잘려져 죽어야만 했습니다. 노아는 나무에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 나무는 죽어야만 했고 잘려야만 했으며 필요한 곳에 못박혀야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생명 또한 구해질 수 없습니다. 그분의 육체는 찢겼고 그 손과 발은 십자가에 못박힌바 곧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9:26).

 

5. 방주는 겉 모습이 멋지지 않았습니다. 방주는 바라보거나 사진을 찍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53:2).

 

6. 둘 다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였습니다. 래프팅(뗏목타기), 산꼭대기도, 잠수함도, 홍수에서 인간을 구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 어떤 종교도, 체험도, 침례도, 그 무엇도 인간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4:12).

 

7. 비록 많은 사람들이 거부하긴 했지만 모두가 그 안으로 들어가도록 초청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7:1, 11:28).

 

8. 그런데 구원받은 유일한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자들이었습니다.

 

9. 방주에는 문이 하나뿐이었습니다. 그처럼 많은 화물을 실어야 할 그 엄청나게 큰 배에 들어가는 입구가 하나뿐이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오직 한 문으로 들어오라는 초청이었습니다( 10:9).

 

10. 그 문은 옆(구리)에 있었습니다( 19:34).

 

11. 방주는 봉인되었고 안전했습니다. 밖에 칠한 역청은 외부로부터 파괴 물질이 침투하는 것을 막았고, 안에 칠한 역청은 내부에 있는 그 어떤 작고 약한 창조물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지켜주었습니다( 6:14). 일단 모든 생물이 방주 안으로 들어가자 주님께서 문을 닫으셨습니다( 7:16, 8:38).

 

12. 방주는 3층으로 되어 있으며 이는 인간 구원의 3중 과정을 보여줍니다. 주 예수님을 신뢰한 자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원을 받고( 5:8-10), , , 몸이 구원을 받습니다(살전 5:23).

 

13. 창문은 3층에 있었습니다. 만약 2층이나 1층에 있었더라면 이 세상에서 오직 사망과 파멸만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문은 위쪽에 있었고 이는 하늘을 바라보도록 함이었습니다( 3:2).

 

14.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주에 이르던지, 거기에는 모두를 위한 장소가 있었습니다( 14:2).

 

15. 이 항해를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방주 안에 있었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들이 방주 안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19).

 

16. 방주는 온갖 바람과 비와 파도와 맞부딛쳤지만 방주 안에 있는 자들은 물 한 방울도 맞지 않았고 그들의 얼굴에 바람 한 점 맞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의 온갖 진노를 다 받으셨습니다.

 

17.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히브리 달력을 바꾸어 유월절이 매년 첫째 달에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래는 유월절이 제7 14일이었습니다. 방주는 7 17일 안전하게 멈추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유월절 날 십자가에 달리신 후 사흘 후에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습니다. – 심판과 홍수가 다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8:4, 12:2).

 

18. 동물들 간에 평화와 조화가 있었음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동물들은 싸우지 않았고 서로 사이 좋게 지냈으니까요.) 방주 바깥에 있을 때, 그들은 서로 물고 뜯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안에 들어오는 자들의 삶의 방식을 바꾸십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처럼 변화되지 않았던가요?)

 

하나님의 경륜과 관련해서 다음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19. 심판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있을 때 방주 안에 있는 자들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쏟아진 진노를 피하기 위해 땅으로부터 들려 올려졌습니다.

 

20. 이 들려 올려진 자들은 심판이 끝나자 다시 땅으로 돌아왔습니다.

 

21. 방주에 타고 있었던 자들은 정화된 창조세계로 걸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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