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9
2월 26일-3월 3일
James W. Knox 지음 2월 26일 두 홍수(2) 베드로서신에 나오는 홍수 베드로후서 3-4절에 나오는 비웃는 자들은 “모든 것이 창조의 시작 이후부터 있었던 것 같이 그대로 계속 된다”는 거짓 주장을 붙들고 있다는 이유로 책망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창조의 시작이라고 했으니 당연히 창세기 베드로후서 베드로후서에서 하고 있는 경고는 어떤 세상이 그 첫 번째 홍수 때 멸망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땅이 아니고 땅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 체계를 말합니다(삼상 2월 27일 두 홍수(3) 시간의 경계 밖에 있던 사람들 욥기 22장은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8절을 보면 “강한 자(the mighty man)”가 나오는데 “그는 땅을 소유하였으며” 그곳에 살고 있던 “존귀한 자(the honorable man)”와 대결하였습니다(욥 이 강한 자는 깊은 어둠 가운데 있었으며 넘치는 물로 덮여 있었습니다(욥 15-16절에는 “때가 되기도 전에 끊어진 사악한 자”에 대해 말하고 있는 바 이는 창세기 노아의 홍수 이후에는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방주에서 걸어 나와 정화된 지구(Earth)에서 다시 채우기(replenish)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욥기 22장의 홍수에서 남은 자들은 불이 소멸시켰습니다(20절). 욥기의 이 구절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시간 이전의 인종은 그들의 세상을 혼돈의 어두움으로 남겨놓은 홍수에 의해 끊어져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아담 이전에 인류(오늘날 우리와 같은)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신약과 구약에서 모두 천사들은 “사람(인간)”과 같은 존재로서 언급되고 있음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 드리고자 하는 것뿐입니다. 2월 28일 두 홍수(4) 사탄의 타락 우리는 많은 시간을 들여 사탄의 타락을 독자들에게 묘사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바 이는 그 내용이 이사야서 14장과 에스겔서 28장에 잘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본문은 한때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과 가장 복된 관계를 유지하면서 죄 없이 살았던 한 피조물의 신원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타락했을 때 한 무리의 천사들을 대동했다는 사실 또한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두 곳에서 분명치 않은 것은 루시퍼의 반역과 타락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 발생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에 대해 창세기 1장의 침묵이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주의 깊게 살펴봅시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1절) “빛이 있으라.”(첫째 날), 창조는 없고 허락만 있음(3절) 궁창의 형성(둘째 날), 창조는 없음(6절) 물들을 모음, 그리고 식물 생명을 나타나게 하심(셋째 날), 창조는 없음(9-12절) 해, 달, 그리고 별들이 창조됨(넷째 날, 14-18절) 바다 생명과 새들이 창조됨(다섯째 날, 20-22절) 육지 생명과 사람이 창조됨(여섯째 날, 24-27절) 이를 바탕으로(창세기 1장에서 침묵하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둘 것) 아담 이전 시대에 있었던 타락의 시점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보면 그룹들, 스랍들, 천사들, 천사장, 정사 및 권능 등의 창조에 관한 기록이 없습니다. 창세기 2월 29일 두 홍수(5) 깊음의 샘들과 하늘의 창들 창세기의 홍수 기록에 따르면 하늘의 창들을 통해 깊음의 샘들로부터 물이 쏟아지고, 흘러내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창 첫째, 창세기 앞서 살펴보았듯이, 창세기 이로써 온 창조의 세계를 비추실 수 있는 주님의 영광이 오늘날은 보이지 않게 되고(계 “깊음”, 혹은 “큰 깊음”으로 알려진 이 엄청난 양의 물 덩어리는 하나님의 왕좌 밑에 놓여있습니다(창 창세기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1. 하나님의 왕좌 아래에는 물이 있다. 2. 이 물은 단단하므로 그 위에 건물을 세울 수 있다. 3. 이 물이 바로 지금 땅 위에 있는 물의 원천이다. 4. 이 물은 한때 땅을 뒤덮었었다. 5. 이 물이 노아의 홍수의 원천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땅에 물을 공급하고자 보내진 이 물의 일부는 다시 홍수를 일으키지 못하도록 금지 당했기 때문이다. 6. 따라서 노아의 날에 있었던 홍수는 이 큰 깊음에서 온 것이 틀림없었다. 7. 따라서 노아의 홍수는 지구를 덮은 두 번째 홍수가 되어야만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 이 깊음을 통과하여 하늘로 가게 되며 주님과 함께 주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사 51:10-11). 3월 1일 두 홍수(6) 땅을 다시 채우라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셨습니다.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다시) 채우라”(replenish, 다시 채우라로 번역 가능함) 이 말씀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땅에 있었으나 이들은 다 사라져버렸으니 그들을 대체할 수 있도록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에스겔과 이사야의 시대에도 장터에 사람들이 가득하였다가 텅 비게 되자 다시스의 배들과 시돈의 상인들이 그 장터를 다시 채우려고 왔었습니다(겔 27:25, 사 사실 성경에서 “replenish”라는 단어가 사용될 때마다 이 단어는 한때 꽉 차 있었다가 텅 비어버린 것을 다시 채워 넣을 때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 아담의 날에 있었던 사건과 노아의 날의 홍수를 비교함으로 많은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 바 이 진리를 거부하려면 두 홍수에 대해 편협한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replenish(다시 채우라)”의 분명한 정의를 제외하고 나머지 사실들에만 동의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아 이전에 누군가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노아는 그들을 대체하고자 이곳에 남게 되었습니다. 아담 이전에 누군가가 이곳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그들을 대체하기 위해 이곳에 놓여진 것입니다. 따라서 공룡과 매머드 그리고 앵무조개 화석의 두개골 조각 등이 수천 억년 전 것이라고 한다 할지라도 저에게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면 정말 보고 싶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렇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모든 인간은 노아를 통해 아담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들의 죄 값을 치루고자 죽으셨습니다. 이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받아들이는지 아닌지에 따라 각각 하늘에서, 혹은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3월 2일 두 홍수(7) 어두움 창세기 창세기 사무엘상 이사야서 주 예수님께서 하신 엄중한 경고를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왕국의 자손들은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날 것이요,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이에 왕이 종들에게 이르되, 그의 손발을 묶고 그를 데려다가 바깥 어둠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너희는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둠 속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5:30)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신약 서신서에서도 어둠은 항상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상태나 사탄의 권능, 그리고 그의 사역자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어둠에 관한 마지막 구절은 계시록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창세기 성경기록에는 온 땅이 어둠에 파묻힌 경우가 세 번 나옵니다. 첫째는 사탄의 반역(창 1장)이고, 둘째는 예수님께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였고(4복음서), 그리고 셋째는 심판이 대환난에 임할 때입니다(마 24장, 요엘 2장 등). 3월 3일 두 홍수(8) 마지막 묵상 창세기 “내가 땅을 보니, 보라,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하늘들을 보니 그것들에는 빛이 없었고”(렘 “내가 산들을 보니, 보라, 산들이 떨며 모든 작은 산들도 가볍게 움직였고 내가 보니, 보라, 사람이 없었으며 하늘들의 모든 새들이 도망갔고”(렘 “내가 보니, 보라, 열매를 많이 내던 곳이 광야가 되었으며 그곳의 모든 도시들이 주 앞에서 그분의 맹렬한 분노로 말미암아 무너졌도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온 땅이 황폐할 터이나 내가 완전히 끝을 내지는 아니할 것이며”(렘 “이로 인하여 땅이 애곡하고 위에 있는 하늘들이 검게 되리라. 내가 그것을 말하였고 그것을 작정하였으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며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렘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예레미야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 있을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재림에 관한 이야기라면 성경 진술의 일부가 거짓이 되고 맙니다. 환난의 끝 무렵, 즉 주님의 재림 때 “아무 사람도 없다(there was no man)”는 말은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 양과 염소 민족들, 신약 교회의 성도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상당수의 사람들이 야곱의 고난 때 살아남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사람이 없던 때는 단 두 번 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만약 예레미야서의 구절들이 아담 이전의 인종에 대한 언급이라면 우리는 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 많은 도시, 기념비, 그리고 문명들 중 노아의 아들들의 역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의 놀라운 유적들에 대해 쉽게 설명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구절이 창세기와 연관된 구절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단서는 “열매를 많이 내던 곳”이라는 표현입니다. 만약 아담이 이 곳을 다시 채워야 할 책임을 맡게 되었다면 그는 다산(열매를 많이 냄) 할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합당치 않은 과학과 합당치 않은 성경 해석 사이에는 많은 모순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참된 과학과 건전한 성경의 해석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습니다. 진리는 항상 진리와 일치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