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2009.11.14 20:45

칼빈주의-제1장 전적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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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W. 낙스의 칼빈주의 강의

1장 전적 타락

 

이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강의 Calvinism Part 1의 내용을 요약 및 정리한 것입니다. 음성 파일을 듣고 번역한 것이라서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곳을 지적해 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Kjv74@hanmail.net

 

1. 먼저 로마서 10:9을 보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잘 아시는 구절입니다. 13절까지 보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또 성경 기록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그분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니 이는 유대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라. 모든 사람 위에 계신 같은 주께서 자신을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2. 우리는 오늘부터 칼빈주의에 대해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존 칼빈은 극단적인 운명론을 공부한 로마 카톨릭 교회의 사제였습니다. 그는 역시 로마 카톨릭 사제였던 제롬으로부터 극단적인 운명론을 배웠습니다. 제롬은 420년경에 살던 구원받지 못한 카톨릭 사제였습니다. 제롬은 모든 사람들은 창세 전에 이미 죽어서 하늘나라나 지옥에 갈 것이 정해져 있다고 믿고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3. 제롬에 의하면 이미 구원받을지 지옥에 갈지가 태어나기도 전에 정해졌으므로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해서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롬에 의하면 하늘나라로 가기로 예정되어 있다면 무엇을 하든지 하늘나라에 갈 것이며 지옥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다면 무엇을 하든지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구원받기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예정되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는 죽은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4.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을 일반적으로 “칼빈주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제롬주의”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칼빈이 만든 체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제롬의 사상을 그대로 전수받아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이 사상을 널리 전한 것뿐입니다. 칼빈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로마의 교황이 통치하는 방식으로 통치를 했습니다. 여기서 칼빈이 한 말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의 분명한 교리를 확실히 하다 보면, 우리는 영원하고 불변하는 계획에 의해 하나님께서는 누가 구원을 받을지와 누가 정죄를 받을지 결정해 놓으셨음을 알 수 있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마저도 영원한 계획에 의한 것이다.”

 

5. 칼빈이 한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풀이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칼빈은 죄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존 칼빈은 모든 강간과 살인과 아동학대와 범죄가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 속에 있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그런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자유입니다만 저는 그런 하나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은 원하지 않습니다.

 

6. 칼빈의 교리는 5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보통 이것을 “튤립(TULIP)”이라고 부릅니다. 칼빈주의 5대 강령은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무조건적인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제한된 속죄(Limited Atonement)”, “저항할 수 없는 은혜(Irresistible Grace)”, 그리고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간략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7. “전적 타락”은 여러분이 너무나도 타락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선택”은 좀 괜찮아 보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제한된 속죄”는 예수님께서는 오직 구원받을 사람들만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은혜”는 여러분이 이것을 원하든지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 여러분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견인”은 창세 전에 이미 구원받기로 예정되었다면 어떠한 것에도 상관없이 결국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입니다.

 

8.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이 칼빈주의를 간략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어떤 칼빈주의자도 자신들의 교리를 이렇게 간략히 정리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믿는 교리를 간략히 정리하면 자기들의 믿음의 정체가 금방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교리는 요약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충분히 요약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경대로 우리의 죄들로 인해서 죽으셨고 묻히셨으며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지만 믿지 않으면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지옥에 가게 됩니다.

 

9. 우리는 우리가 믿는 바에 대해서 숨기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거창한 용어로 포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들킬 것을 염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믿는 것을 거창한 용어로 치장해서 사람들이 그것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개혁주의 신학”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개혁자들의 신학”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제롬의 “로마카톨릭 결정주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고 주장합니다. 훌륭해 보이지만 문제는 그러한 용어가 결코 성경에 등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주권”이나 “주권적인 하나님”은 결코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서로 같은 것을 믿는 사람들끼리 동질감을 느끼게 하도록 고안된 용어에 지나지 않습니다.

 

10. 지난 30~40년 동안 미국에서 많은 침례교회들이 칼빈주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는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자신들이 각성하여 기도와 복음증거를 열심히 하기보다, 모든 원인을 하나님 탓으로 돌리는 것이 훨씬 더 쉽습니다. 사람들이 구원받지 않는 것은 결국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죽지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구원받지 않는 것은 그들이 선택된 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뜻일진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위해서 기도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증거하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습니다. 칼빈주의가 사실이라면 거리에 나가서 힘들게 복음을 증거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칼빈주의는 주님 안에서 수고하는 지체들의 손길을 멈추게 하는 교리입니다.

 

11. 이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전적 타락”입니다. 에드윈 팔머의 글을 인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드윈 팔머는 칼빈주의자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교과서를 집필한 유명한 칼빈주의 신학자입니다. 많은 칼빈주의자들이 팔머의 책으로 신학 대학에서 칼빈주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에드윈 팔머는 새국제역본(NIV)의 번역자 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예정론은 성경의 가르침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칼빈주의의 대표적인 선생이 잘못된 역본의 번역자인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예정론을 믿는다면 성경에 무엇이라고 써 있든간에 하늘나라에 갈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고 지옥에 갈 사람은 지옥에 갑니다.

 

12. 팔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죄와 허물로 완전히 죽어 있다. 단지 병들고 부상 당한 것이 아니다. 인간은 병들고 부상 당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전적으로 죽어 있다. 인간은 구원받지 못한 채, 거듭나지 못한 채, 영적으로는 완전히 사망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 주시고 영적으로 살리시기 전까지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다. 그리고 이제 거듭나게 되면 처음으로, 예수님께로 돌아설 수 있게 되며 자신의 죄로 인해 슬퍼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할 수 있게 된다.”

 

13. 잘 들어보세요. 칼빈주의자의 정신 세계에 따르면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사실이란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구원받았음을 입증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다는 사실은, 여러분이 이미 구원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이미 소유하고 있음을 여러분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 전부터 예정되어 있음을 입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주장을 들으면 참 이상한 주장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성경을 공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4. 만일 여러분이 칼빈주의자이거나 칼빈주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예정된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존 칼빈은 제롬의 교리를 공부한 로마 카톨릭 사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있어서 언약이란 한 사람의 개인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고 사제가 주는 유아 세례에 의해 아기가 선택받은 가정에서 태어났음을 확증하는 것이며, 따라서 아기는 선택받은 아기가 됩니다. 특이한 점은 어떠한 칼빈주의자도 자신들의 아기가 창세 전부터 지옥에 가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믿는 자들은 없다는 것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아이들은 으레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다고 바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아이들의 선택받았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유아 세례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생후 8일째 아기의 할례를 유아 세례에 접목한 것입니다.

 

15.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먼저 구원을 받고 나서 주님을 부르게 된다는 주장이 성경의 지지를 받는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읽어보겠습니다. 로마서 10장 입니다. 9절부터 보시겠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 혹시 이렇게 기록된 성경 가지고 계신 분 있으신가요? 성경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하지 않고 구원을 받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입니다. 성경적으로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믿는 것이 먼저입니까, 구원받는 것이 먼저입니까?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먼저입니까, 구원받는 것이 먼저입니까?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과 칼빈이 말하는 것이 서로 다를 때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성경을 믿는 사람입니까, 장로교인입니까? 성경을 믿는 사람입니까, 개혁주의자입니까? 어느 것이 되시겠습니까?

 

16. 우리는 선교와 전도지와 복음전파를 위해서 많은 돈을 사용하지만 매우 적은 사람들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미 구원받을 사람과 지옥에 갈 사람이 정해져 있다면 도대체 왜 선교와 복음 전파에 돈을 들이는 것입니까? 인간의 구원이 하나님의 “무조건 적인 선택”과 “저항할 수 없는 은혜”에 의한 것이라면 복음을 전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런데 이런 질문을 칼빈주의를 믿는 목사에게 하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도록 이미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참 우스운 일입니다.

 

17. 만일 여러분이 실수로 칼빈주의자의 아이를 자동차로 치면 그 칼빈주의자는 어떻게 할까요? 모든 것을 창세 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찬양을 드릴까요, 아니면 여러분을 고소할까요? 십중팔구 고소할 겁니다. 어떠한 칼빈주의자도 “하나님, 이 사람이 저의 아이를 차로 친 것도 모두 주님의 영원한 계획과 주권적인 섭리에 의한 것이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지는 않을 겁니다. 칼빈주의자들은 예정론을 오직 자신들의 구원에만 적용합니다.

 

18.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17절을 보세요. 17절부터 보시면서 거꾸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오느니라.” 무엇이 먼저 입니까? 믿음입니까, 말씀을 들음입니까? 순서 상으로도 말씀을 들음이 먼저이고 그 말씀을 믿는 것이 다음입니다. 이제 15절을 보시겠습니다. 보내어지지 아니하였으면 그들이 어찌 선포하리요?” 무엇이 먼저입니까? 보내어지는 것이 먼저입니까, 선포하는 것이 먼저입니까? 먼저 보내어지고 나서 선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14절의 끝부분을 보시겠습니다. 선포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무엇이 먼저입니까? 듣는 것입니까, 선포하는 것입니까? 선포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제 14절의 앞부분을 보세요. 그런즉 그들이 자기들이 믿지 아니한 분을 어찌 부르리요?” 무엇이 먼저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듣는 것이 먼저입니까, 아니면 주님을 부르는 것이 먼저입니까? 전파하는 것을 듣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기들이 듣지 못한 분을 어찌 믿으리요?” 듣는 것이 먼저 입니까, 믿는 것이 먼저입니까? 믿는 것이 먼저 입니다. 13절을 보세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19. 잘 보세요. 어떤 사람이 말씀을 가지고 있고 그 말씀을 전파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이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의 문맥이 의미하는 바입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칼빈주의자들은 우리가 헬라어를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물론 칼빈주의자들도 헬라어를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칼빈주의자들이 성경적인 논쟁에서 밀리면 항상 헬라어를 들고 나오는 것은 여러분을 혼란시키기 위함일 뿐입니다. 헬라어가 무엇이라고 되어 있든 상관없이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은 그대로입니다.

 

20. 어떤 칼빈주의자는 로마서 10장의 문맥이 유대인들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1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 복음에 순종하지는 아니하였나니 이사야가 이르기를,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느니라.” 1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18절도 보세요.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못하였느냐? 참으로 들었은즉, 그것들의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것들의 말이 세상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세상 끝까지 전파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말씀을 듣고 믿고 믿음을 실행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구원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1. 예전에 제가 즐겨 듣던 라디오 설교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8시부터 8시 반까지 설교하던 그 설교자는 어떠한 형태로든 죄를 하나라도 지으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주장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1964년에 구원받은 이래로 단 한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자신이 “실수”를 저지를때도 있었지만 그게 죄는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실수도 분명히 죄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설교자 다음 설교자는 칼빈주의 5대 강령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방송국에서 그 칼빈주의 설교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뭐하시는 건가요?” “설교하러 왔습니다.” “뭐하러 설교하러 오셨나요.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면 어차피 바뀌는 것이 전혀 없을 텐데요.”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면 힘들게 아침에 일어나서 설교하러 올 필요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어떻게 하건 이미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정해졌고 주권에 의해서 그 예정이 실현된다면 무엇을 설교하든 사람들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22. 사도행전 16장을 보세요. 22절부터 보시겠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매 죄수들이 그들의 말을 듣더니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감옥의 기초가 흔들리고 즉시 문들이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결박이 풀리니라. 감옥의 간수가 잠에서 깨어 감옥 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로 생각하여 칼을 빼서 자결하려 하거늘 바울이 큰 소리로 외치며 이르되, 네 몸을 해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그때에 간수가 등불을 요청하며 뛰어 들어가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와서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그들이 이르되, 너희가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느니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건 칼빈의 생각일 뿐이지요. 사도 바울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이미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 이렇게 말했나요? 아닙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채찍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자기의 온 가족이 즉시 침례를 받은 뒤에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이르러 그들에게 음식을 차려 주며 자기의 온 집과 함께 하나님을 믿고 기뻐하니라.”(행 16:33-34)

 

23.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칼빈주의자들이 “전적 타락”교리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인간은 완전히 타락해서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할 수도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시기 전에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주님께 요청했습니다(눅 23:42). 이디오피아 내시도 비록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빌립이 오기 전에 성경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그의 집에 보내실 때까지 하나님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에 있던 사람은 사도 바울이 오기 전에 이미 하나님을 찾고 있었고 바울에게 와서 도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백부장이 먼저 주님께 요청했나요, 아니면 주님께서 요청하기도 전에 먼저 백부장을 도와 주셨나요? 예수님께서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나사로의 무덤으로 오셨나요, 아니면 마리아와 마르다가 요청한 후에 오셨나요? 보시는 것처럼 칼빈이 가르친 “전적 타락”이라는 교리는 성경의 지지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24. 저는 교회에 다니지도 않고 성경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절망 가운데 빠진 채 자신은 선택된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엉망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칼빈주의 운명론은 정말 끔찍한 교리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 자신은 지옥에 가기로 정해진 사람일거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것보다 더 끔찍한 것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도 않았고 믿은 적도 없으며 성경을 읽어본 적도 없고 생의 단 한 순간도 회개를 해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부모가 교회에 다니고 자신의 목사나 신부가 유아 세례를 주었기 때문에 자신은 선택받은 가정에서 태어난 선택받은 사람이고 따라서 ‘나는 적어도 하늘나라는 가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무슬림도 아니고 힌두교도도 아닙니다. 성경을 믿고 가르친다는 사람이 엉터리 교리를 가르치니까 엉터리로 구원받은 사람이 생기는 겁니다. 이것은 저를 매우 화나게 합니다. 여러분은 화가 나지 않으세요? 이런 엉터리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화가 나지 않으면 무엇에 화가 나세요? 이런 엉터리 교리가 횡행하는 것에 화가 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에 화가 나세요?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이런 것보다 더 화가 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집값이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주식이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뭐가 어쨌다는 건가요?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해요. 왜냐하면 누군가 교회에서 제대로 된 것을 가르치지 않고 거짓 교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분노할 만한 일 아닌가요?

 

25. 요한복음 1장을 보세요. 6절부터 보세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더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이것은 그 빛에 대해 증언하여 모든 사람이 자기를 통해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그 빛이 아니요 그 빛에 대해 증언하도록 보내어진 자더라. 그 빛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되 세상이 그분을 알지 못하였고 그분께서 자기 백성에게 오시매 그분의 백성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나 (순서를 잘 보세요) 그분을 받아들인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 주님께서는 구원해 주실 겁니다. 그러나 먼저 믿어야만 합니다. 만일 믿지 않으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선택된”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먼저 구원받고 나중에 믿는 방법은 없어요.

 

26. 제가 아는 어떤 침례교회는 자신들이 점점 칼빈주의에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는 말하기를,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불러도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부르는 것은 행위인데 구원은 행위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구원받기 전에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구원받은게 아닌데, 왜냐하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믿음, 즉 자신이 할 수 있는 행위에 기대는 것이고 행위로 구원받을 수는 없고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에 따라서 믿고 구원받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성경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을 겁니다. 그의 잘못된 교리를 성경으로 바로잡아 주려고 하니 그 목사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다른 목사에게 그런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설교단에서 그런 거짓 교리를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27. 요한복음 6:27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위해 수고하지 말고 (잘 보세요) 영존하는 생명에 이르도록 항상 있는 그 양식을 위해 수고하라. 그것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리니 그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봉인하셨느니라, 하시니라.” 지금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수고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제가 하늘나라에 갈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할지 아세요? 저는 그러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까지 구했을 겁니다. 성경을 공부하면서 확신을 가질 때까지 계속 읽고 공부했을 겁니다. 단지 제가 예정된 자이기를 희망하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28. 여러분은 언제 성경을 제대로 배우게 되는지 아세요? 단지 교실에 앉아서만은 성경을 온전히 배울 수 없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하고 증거할 때 성경을 제대로 배울 수 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증거하기 전에는 그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고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어떻게 논박하는지도 몰랐습니다. 만일 칼빈주의자들이 옳다면 거리에 나가서 복음을 전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만일 그들이 옳다면 집집마다 방문해서 복음을 증거할 필요가 전혀 없어요. 전도지를 나눠주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에 대해서 논쟁할 필요도 전혀 없어요. 만일 칼빈주의가 옳다면 복음을 증거하느라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은 쓸데없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의 주장이 옳고 저는 선택된 자가 아니라면 어떨까요? 저는 주님께 구원해 달라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쓸모없는 일이겠지요.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겠지요. 그러나 그것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 되고 맙니다. 칼빈주의가 옳다면 믿어 봐야 소용없는 일이 됩니다.

 

29. 그러나 주님께서는 영존하는 생명을 위해서 수고하면 그것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8절도 보시겠습니다. 그때에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리이까? 하매” 주님의 답변을 들어보세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너희가 구원받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일을 해야 한다. 무슨 일인지 아느냐? 바로 믿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믿는 것도 일입니다. 바로 구원받게 하는 일입니다.

 

30. 칼빈은 인간은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 있고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기 때문에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아왔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이미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하나님께 나아온 자체로 하나님께 나아오기 전에 이미 자신이 구원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칼빈의 주장은 여러분이 선택된 자라면 아직 믿지 않아도 이미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예정되고 선택된 자라면 여러분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31. 이사야 55장을 보세요. 1절부터 보세요. 오 목마른 모든 자들아, 너희는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참으로 와서 돈도 내지 말고 값도 치르지 말며 포도즙과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빵이 아닌 것을 위해 돈을 허비하느냐? 또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느냐? 내 말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일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으며 너희 혼이 기름진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 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와 영존하는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긍휼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세 번에 걸쳐서 “오라”고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칼빈은 사람이 너무 타락해서 하나님의 초청에 응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이 마르면 와서 물을 마시라고 하십니다. 생명을 원하면 와서 얻으라고 하십니다.

 

32. 6절을 보세요. 너희는 주를 만날 만한 때에 그분을 찾으라. 그분께서 가까이 계실 때에 그분을 부르라.” 만일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그냥 농담을 하시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놓고 장난하시는 걸까요? 아니면 정말 인간이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걸까요? 사악한 자는 자기 길을 버리고 불의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그를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분께서 풍성하게 용서하시리라.”(사 55:7)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악 가운데 죽어 있던 죄인을 용서해 주실까요? 그러한 죄인들에게 긍휼을 베푸실까요? 이미 다 용서해 놓으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셨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길을 버리고 주님께 오면 그렇게 해 주시겠다는 겁니다.

 

33. 저는 선교에 헌신하고 자녀들을 훌륭한 복음 전도자로 양육한 형제를 알고 있습니다. 만일 칼빈주의가 옳다면 그 사람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일 겁니다. 만일 칼빈주의가 옳다며 왜 자식들을 복음 전도자로 키워서 그들의 인생을 낭비하게 하는 겁니까? 만일 어떤 사람들이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고 다른 사람들은 지옥에 가기로 이미 정해졌다면 왜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하는 겁니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막 16: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아세요? 그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복음도 듣기 전에 먼저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선포자가 없는데 복음을 들은 것도 아닙니다. 복음 증거자가 없이 구원받게 된 것도 아닙니다. 복음도 없이 구원받은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없이 구원받은 게 아니에요

 

34. 계시록 22장을 보세요. 삼위일체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말씀하시나요? 아니에요. 하나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말씀하신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착각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성경 구절과 여러분의 상상력과, 여러분이 주님으로부터 특정 말씀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아멘”입니다. 계시록 22:21에 있어요.

 

35.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20절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분명하지요? 이것이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에요. 요한의 화답을 보면 이것이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입니다.

 

36. 이제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을 보겠습니다. 18절을 보세요. 내가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다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대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도시와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자신의 말씀에 아무것도 더하지도 말고 거기서 빼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 성경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성경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그대로 두라고 엄중한 경고를 하신 것이지요.

 

37. 이제 성령님의 마지막 말씀을 보겠습니다. 17절을 보세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이것은 이사야 55장을 인용하신 것이지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원하는 자?)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 하시더라.” 성령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마지막 말씀은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강제로 구원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라고 초청하시는 겁니다. 성령님의 말씀은 “내가 강제로 구원할 수는 없는 일이니 원하는 자는 와서 준비된 영원한 생명을 받고 구원을 받으라. 오겠느냐?”고 하시는 겁니다. “네가 믿지 않으면 아직 구원받은 것이 아니니라. 구원받기를 원하느냐?” 성령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마지막 호소는 원하는 자는 자신의 의지를 사용해서 하나님께 나아와 주님께서 해 주신 일을 믿고 구원을 값없이 받으라는 것입니다.

 

38. “전적 타락”이라는 교리는 “전적으로 타락한 교리”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성령님께서는 이제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떠나시려고 합니다. 사회자가 성령님께 마이크를 넘기면서 마지막으로 질문을 합니다. “성령님,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하실 말씀이 없으신가요?” 그러자 성령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할 말이 있노라.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와서 값없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 만일 여러분이 원하는대도 불구하고 예정된 자가 아니라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면 “오라”는 성령님의 초청은 얼마나 끔찍한 농담이겠습니까? 이건 완전 사람을 가지고 노는 것이잖아요. 예정되지도 않고 선택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와서 구원을 받으라”고 하는 것은 완전 놀리는 것 아닌가요? 감옥에서, 병원에서, 직장에서, 거리에서, 집집마다 방문하면서 여러분이 사람을 만난다면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을 입술을 통해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무엇일까요? “오라”는 것입니다. “와서 값없이 거저 구원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와서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 성령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39.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전적으로 타락한 것이 아니에요. 타락하기는 했지만 전적으로 타락한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어요.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하지 않았습니다.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생명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책임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종교 생활을 하거나 교회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안에서 생명의 길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자신을 정죄하고 이대로 살면 안 된다고 경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원받고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종교를 찾고 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사람은 허물과 죄 가운데 죽어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전적으로 타락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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