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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w and Rightly Dividing The Word Reconsidered

세대주의 재고찰

James W. Knox 지음 / 조동훈 옮김

 

5장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육신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 세상의 죄들을 위해 죽으시고(딤전 3:16) 동일한 육신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1, 스가랴 14). 또한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적 구절들의 차이점을 구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충만한 때가 이르러( 4:4), 창조주(벧전 4:19)께서 육신의 모습을 입으시고 베들레헴의 한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그분의 이름을 예수( 1:31)라 불렀고 그분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33년 반을 이 세상에서 사셨다. 그분은 죽은 지 사흘 뒤에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셨다.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보이시고 40일이 지난 후에( 1:3), 하나님 아버지 오른편(12:2)으로 올라가셨다( 1:9-11).

다음 구절은 그분이 하늘로 돌아가심을 묘사하고 있다. 그분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시더라. 그분께서 그들을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위로 올려져서 하늘로 들어가시니라. 그들이 그분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성전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송하니라. 아멘.”( 24:50-53).[1]

사도행전 1:9-11에서 이 사건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을 진술하고 있다. 이것들을 말씀하신 뒤에 그분께서 그들이 보는 동안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분을 받아들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더라. 그분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똑바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보라, 흰옷 입은 두 남자가 그들 곁에 서며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올리브산 위에 서 계셨던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하늘로 들려 올려지셨다. 그리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 모습은 생생히 보여졌으며 훗날에는 반대로 주님께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부활한 모습으로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오실 것이며 사람들은 그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술이다. 성경은 주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단순히 말하지 않고 본 그대로 오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주님의 오심은 주님의 가심과 같을 것이다. 주님의 돌아오심은 주님의 떠남과 같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다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지는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첫 번째 오셨던 것과는 다르게 재림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인간의 어머니를 통해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영적인 모습으로 오시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비유적으로 오시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어떤 사회적 운동이나 혁명 혹은 부흥의 지도자로 오시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 안에 거하는 형태로 오시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지상에 계셨을 때 입고 있던 그 육신의 모습 그대로 문자적으로 재림하실 것이다.

우리가 자주 살펴보지 않는 스가랴서를 통해서 이 진리를 알 수 있다. 그분의 발이 예루살렘 앞 동쪽에 있는 올리브 산 위에 설 것이요.”( 14:4) 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곡하듯 그를 위하여 애곡하며( 12:10) 또 사람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두 손에 있는 이 상처들은 무엇이냐?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들은 내가 내 친구들의 집에서 입은 상처들이라, 하리라.”( 13:6)[2]

주님의 승천을 말하고 있는 세 개의 성경구절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도행전 7:55에서 스데반이 설교하고 있으며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스데반이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똑바로 하늘을(사도행전 1장과 비교해 보자) 우러러보며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보고.”

따라서 예수님이 어디로 가셨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주님은 걸어서 동굴 속에 숨으신 것이 아니다. 주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승천했다는 사실을 믿도록 환상을 통해 현혹한 것도 아니다. 주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몰래 가신 것도 아니다. 스데반은 하늘을 쳐다봤고 예수님께서는 거기에 계셨던 것이다.

히브리서 1:1-3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지나간 때에는 여러 시대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언자들을 통하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 자체의 정확한 형상이시며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시는 이 아들께서는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후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오른편의 왕좌로 돌아가셨다.

골로새서 3:1은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났거든 위에 있는 그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약교회 시대에는 셋째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른편에 앉아 계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만 한다.

다음은 디도서 2:11-13에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자.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 우리를 가르치시되 경건치 아니한 것과 세상에 속한 정욕들을 우리가 거부하고 이 현 세상에서 맑은 정신을 가지고 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 , 주님은 현 세상에서 떠나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이 가신 장소를 정확히 알고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앉아 계신 곳과 무엇을 하시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과 주님이 오시는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다. 여러분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다시 오심이 사도행전 2장에 나온 오순절 성령님의 임하심으로 성취되었다고 믿는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로 없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 14:18) 그러나 삼위일체의 교리를 기억하면서 요한복음 14:16을 보자. 내가 아버지께 구할 터인즉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여기서 우리는 다른 위로자가 존재함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님은 동일한 위로자혹은 내가 위로자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다른 위로자를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6:7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위로자께서 너희에게 오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내가 떠나면 내가 그분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여기서 우리는 그 위로자가 예수님이 아님을 명백히 알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아버지, 말씀 그리고 성령님을 믿고 이 세 분이 한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이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10:30)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과 같느니라.”( 14:9) 그리고 주님은 내가 너희를 위로 없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오리라( 14:18) 말씀하셨고 성령님을 보내셨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내가 다시 오리라고 말씀하신 이유와 천사들도 이 동일한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 1:11)이라고 말한 이유도 알게 된다. 오순절에 있었던 성령님의 강림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성취가 아님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오심의 방법이 다르다. 오순절에 오신 것은 성령님이지 육신이 아니다.

둘째, 성령님이 오셨고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의 육신 안으로 거하셨다. 그것은 올리브 산 위에 서 계셨고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주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셋째,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을 통해 성경의 기록자들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수 없이 언급했고 이것은 항상 미래의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 오순절 사건 이후 신약성경을 기록한 그 누구도 오순절 사건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의 성취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넷째,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예언한 그 어떤 사건들도 그 날을 오순절이라고 규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약속들을 살펴보면 이 사건들의 그 어떤 것들도 사도행전 2장에서 묘사된 오순절 날에 발생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재림을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들을 살펴보면 그 어떤 사건들도 사도행전 2장에 나오지 않았고 오순절 이후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형제들아, 잠자는 자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것은 너희가 아무 소망 없는 다른 사람들 같이 슬퍼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일어나셨음을 믿을진대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도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데려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결코 잠자는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3-16) 이 사건은 오순절에 일어나지 않았다. 오순절에는 죽은 자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1-53) 이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그 뒤에 살아서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들 속으로 채여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이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빌립보서 3:20-21을 살펴보자.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하늘에 있으며 거기로부터 또한 우리가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때 사용하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게 만드시리라.” 다락방에 숨어 있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서 말씀을 선포한 것은 그들이 명백히 변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몸이 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오순절에 타락한 육신의 몸을 벗어버리고 썩지 않는 영광된 몸으로 변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 날들의 환난 뒤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자기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들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가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 24:29-30). 이 말씀은 문자적으로 미래에 성취될 것이다.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하여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로다. 아멘.”( 1:7)

명백히 이것들 가운데 그 어떤 것도 사도행전 2장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눈이 주님을 보지 못했으며 해와 달이 어두워지지 않았다. 이 땅의 모든 지파가 주님으로 인해 슬퍼하고 애곡하지도 않았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사람들은 성령님의 강림을 예수님의 재림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유주의 집단과 장로교 교단에서 가르치는 또 다른 주장은 죄인의 회심이 예수님의 재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주장 뒤에는 몇 가지 논리가 존재한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성전이 되는 신자들의 몸 안으로 들어와 거주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과의 소망이시니라.”( 1:27)

우리는 이 진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의 한 부분을 다른 진리를 부정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죄인의 회심은 주님의 오심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 반대가 사실이다. 첫째, 회개는 예수님이 죄인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예수님께 오는 것이다. 다음 구절들을 살펴보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11:28)

그러나 너희는 생명을 얻기 위해 내게 오기를 원치 아니하는도다.”( 5:40)

마지막 날 곧 명절의 그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7: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6:37)

구원은 예수님께서 죄인에게 오시는 게 아니라 죄인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이다.[3]

이러한 허무맹랑한 이론에 반대하는 둘째 이유는 우리가 앞에서 반박했던 논리와 동일하다. 예수님의 재림과 연관된 사건들 가운데 어떤 것도 죄인이 거듭났을 경우에 일어난 것은 없다. 한 사람이 거듭난 순간에 영광스런 몸을 입는다면 어느 누구도 그 구원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구원받는 순간 주님을 만나러 공중으로 들려 올라간다면 어느 누구도 간증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한 혼이 구원받을 때마다 해와 달이 어두워진다고 상상해 보자.

죄인의 회심을 주님의 재림과 관련 짓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발생할 것이라는 사건들에 대한 모든 주장을 무시하거나 반대로 설명해야 한다.

주님의 재림을 엉터리로 해석하는 것을 지지해 주는 것처럼 보이는 한 두 개의 성경구절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의 무게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셋째 잘못된 주장은 그리스도인의 죽음이 주님의 재림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성경적인 가스펠송과 설교 중에 이런 오류를 은연중에 전파하는 자들이 있다.

요한복음 21:21-24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이 사람은 무엇을 하리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머물 것을 내가 원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그때에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이 말씀이 형제들 사이에 널리 퍼졌으나 예수님은 그에게,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내가 올 때까지 그가 머물 것을 내가 원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셨더라. 이것들을 증언하고 이것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주님의 죽으심과 오심이 같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주님께서는 제자 중 한 사람의 죽음과 자신의 지상 재림에 대한 차이를 분명히 구별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주님께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 가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들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도록 유도하지 않는다. “내가 막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주님께서 나를 위해 오신다.” 성경적 관점은 내가 죽으려고 하는 순간에 나는 이 세상을 떠나서 주님께서 계신 곳으로 간다.” 라는 의미이다. 죽음은 주님의 오심이 아니다. 믿는 신자가 그분을 만나러 가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면, 빌립보서 1:23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기를 바라며 내가 둘 사이에 끼어 있느니라. 그것이 훨씬 더 좋으나.”

디모데후서 4:6에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제 내가 내 자신을 헌물로 드릴 준비가 되었고 나의 떠날 때가 가까이 이르렀도다.” 바울이 떠나고 있는 것이지 예수님이 오고 계신 것이 아니다.

고린도후서 5:8에서도 동일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말하노니 우리가 확신에 차서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살아서 남은 자들(살전 4) 조차도 예수님이 오실 것을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만나기 위해 휴거 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

스데반이 나는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을 본다.”고 말하지 않았음을 기억하라.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르되, 보라, 하늘들이 열리고 사람의 아들이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내가 보노라, 하매.”( 7:56) 예수님께서는 스데반이 있던 장소로 오시기 위해 움직이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스데반이 오기를 기다리셨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이 아니라 스데반이 주님께 가는 것이었다.[4]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약속되었던 그 어떤 사건도 그리스도인이 죽을 때 일어나지 않는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또 다른 주장은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을 파괴한 시점을 예수님의 재림과 연관시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것을 가지고 추측한 것으로 보인다. 주님께서 성벽을 무너뜨리고 성전을 허물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분의 재림을 의미하신 것이다. 이 사건들은 로마가 예루살렘을 공격했던 A.D. 70년경에 부분적으로 일어나기는 했다.

예언되었던 것 중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그것을 예언의 성취로 볼 수는 없다. 이런 일들에 대해서 제자들이 혼돈스러웠던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예수님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4:1-3을 보자. 예수님께서 성전을 떠나서 가실 때에 그분의 제자들이 성전의 건물들을 보여 드리려고 그분께 나아오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아니하느냐?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서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지 아니하고 다 무너지리라, 하시니라. 그분께서 올리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은밀히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에게 말씀해 주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들이 있으리이까? 또 주께서 오시는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리이까? 하니.”

여기서 사람들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 여기에 두 가지 서로 다른 질문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2,000년에 걸쳐 이 질문들 사이에 있는 것이다.

해는 어두워지고 달빛은 피로 물들며 별들은 사라질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하늘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 모습은 A.D. 70년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1-3장과 22장을 살펴보자. 우리가 읽으려고 하는 단어들은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 20년이 지나서 감옥에 있던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다. 그 도시는 A.D. 70년에 파괴되었다. 요한은 A.D. 90년에 밧모섬에서 계시록을 기록하고 있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왕좌 앞에 계신 일곱 영과.”( 1:4)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1:7)

다만 너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붙잡으라.”( 2:25)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3:11)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대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더라.”(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22:12)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22:20)

예루살렘이 파괴된 후 20년이 지나서 기록된 계시록에서 7번에 걸쳐 성령님께서 요한을 통해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A.D.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이 파괴된 사건이 주님의 재림을 성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거짓 주장은 기독교의 전파가 그리스도의 재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를 잘못 해석한 사람들이 가르치는 교리이다. 그들은 복음 전파를 통해 교회가 지상의 왕국을 확장하며, 주님께서는 교회를 통해 왕국을 통치하신다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주장에서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런 시각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보다는 오히려 인본주의적인 프로그램을 통해서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왕국의 점진적인 전파를 가르치기보다는 주님께서 갑작스럽게 다시 오시는 순간 그분의 권능으로 자신의 왕국을 이루실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가 방금 계시록에서 읽은 구절은 다음의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마태복음 24:27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번개가 동쪽에서 나서 서쪽까지 번쩍이는 것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36-50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오직 노아의 날들과 같이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알지 못하였나니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시각에 너희 주가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 (주님의 오심은 갑작스럽고 즉각적이며 속도가 빠르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너희가 생각하지 않는 시각에 사람의 아들이 오느니라. 그가 그를 기다리지 않는 날 그가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와서…”

주님의 다시 오심은 빠르고 실수가 없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질서를 갑작스럽게 그리고 완전히 뒤바꿔 놓을 것이다. 20세기에 이 왕국을 이루려는 교회의 실패를 통해 우리는 이런 시각을 가진 대부분의 그룹들이 예정론을 수용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해 그들은 자신들의 실패를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후서 3:10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

계시록 3:3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고 들었는지 기억하고 굳게 붙잡아 회개하라. 그런즉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네게 이르리니 내가 어느 시각에 네게 이를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이 모든 성경구절들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교회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순간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의 확대가 왕국을 도래케 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박은 예수님의 오심이 지상에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판하러 오신다고 한다는 점에 있다.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고 말할 그때에 아이 밴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것 같이 갑작스런 파멸이 그들에게 임하나니 그들이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2-3)

괴로움을 당하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께는 의로운 일인즉 주 예수님께서 자신의 강력한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사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타오르는 불로 징벌하실 때에 그리하시리라. 그들은 주의 앞과 그분의 권능의 영광에서 떠나 영존하는 파멸로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 날에 그분께서 오셔서 자신의 성도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믿는 모든 자들 가운데서 칭송을 받으시리니 (이는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너희 가운데서 믿었기 때문이라.)”(살후 1:7-10)

이 날은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결코 행복한 날이 아니다.

말라기 4:1-2에서는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보라, 화덕같이 불태우는 날이 임하나니 참으로 교만한 자와 악하게 행하는 자가 다 지푸라기가 되리라. 다가오는 그 날이 그들을 불태우고 그들에게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그러나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너희에게는 의의 해가 자기 날개들 안에 병 고치는 능력을 가지고 떠오르리니 너희가 나아가서 외양간의 송아지같이 자라리라.”

교회가 왕국을 도래케 한다는 주장은, 복음전파의 결과로 온 세상이 회심하고 나서야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 더해서 인류가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1,000년 동안 복종하고 나서야 주님께서 재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정신 나간 주장이다. 성경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의 세상은 사악함이 절정에 이른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것은 노아의 날과 같고 롯의 날과 같다. 누가복음 17:26-32, 창세기 6:5-7, 창세기13:13, 누가복음 18:8, 누가복음 21:25-27 그리고 다른 성경구절들에서 예수님의 재림 때 세상의 환경은 죄로 가득한 상태임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성경은 또한 이 세상 전체가 회심할 것이라는 그 어떤 가능성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지 않다. 가라지와 누룩, 씨가 떨어진 세 가지의 나쁜 토양, 큰 나무 가지 위에 거하는 새들, 이 모든 것들은 실패를 의미하고 있다. 마태복음 13:36-50, 25:1-10, 디모데전서 4:1-2, 디모데후서 3:1-9, 4:1-4 그리고 유다서에서 이것을 경고하고 있다.

로마서 1:5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믿음에 순종하게 하려고 우리가 은혜와 사도직을 받았나니.” 만일 모든 민족이 이미 회심했다면 왜 복음전파자가 필요하겠는가?

우리는 로마서 11:14을 통해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받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어찌하든지 내 살붙이인 그들을 자극하여 경쟁하게 함으로 그들 가운데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9:22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 것은 어찌하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 사도는 모든 사람이 아닌 몇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계시록 5:9의 말씀은 다음과 같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께서 그 책을 취하시고 그 책의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시나이다.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주의 피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구속하사 하나님께 드리셨으며.” 예수님께서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을 회심시키신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족속과 언어와 백성 가운데서 몇 사람들을 회심시키신 것이다.

 



[1] 현대어 성서에서는 하늘 위로 올려진다라는 부분과 그들이 예수님을 경배한다라는 부분을 누락시키고 있다.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경배뿐만 아니라 아버지 오른편에 올라가셨다는 내용을 강탈하는 것이다. 이런 성서들(예를 들어 NIV NASV)의 독자는 예수님이 제자들로부터 떠나셨을 때 어디로 가셨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받으실 때 하신 말씀을 기억해 보기 바란다. 너는 네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그분께 경배하라는 구절을 삭제한 소위 성경이라 일컬어지는 책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중요한 문장을 제거한 것이다.

[2] 보다 자세한 내용은 저자의 <스가랴 주석>을 참고하라.

[3] 물론 죄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후에는 죄인이 예수님께 나아와야 구원받을 수 있다.-역주

[4]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위해 서 계시며 스데반의 설교에 유대인들이 회심하기를 기다렸다는 몇 몇 사람들의 주장은 어리석은 것이다. 첫째, 이 주장에 대한 성경적 근거나 암시가 전혀 없다. 둘째,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자들이 회심하려고 했다는 그 어떤 조짐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스테반을 죽이려고 했다. 셋째, 초림과 재림 사이에 교회시대가 존재하지 않고 초림 후에 바로 유대인의 회심, 주님의 재림 그리고 왕국의 확립이 이루어졌다면 모든 왕국의 비유들은 거짓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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