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ESIS
A COMMENTARY ON THE FIRST THREE VERSES IN THE BIBLE
(The Gap Theory)
창세기
제7장 하나님의 아들들
창세기
“이는 하늘들을 창조하신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친히 땅을 조성하고 만들고 견고하게 하였으되 땅을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고 거주하게끔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천지를 누가 살든 살 수 있게끔 거주가 가능하게 조성하셨다. 그런데 누가 거기 거주했다는 말인가? 에스겔서의 내용을 믿는 사람이라면, “기름부음 받은 덮는 그룹”인 루시퍼가 타락하기 전 시절에 두로라는 영적 도시가 있었으며 루시퍼가 바로 그 도시를 다스렸다는 사실을 안다. 이 도시에는 딸들(겔 26:6), 사람들(겔 26:11), 집(겔 26:12), 악기(겔 26:13), 바다의 통치자(겔 26:16), 배 타는 사람들(겔 26:17), 지혜로운 자들(겔 27:8), 선장(겔 27:8), 노인(겔 27:9), 군인(겔 27:10), 상인(겔 27:13) 등이 다 거주하고 있었다. 특히 에스겔서 27:13을 보면 야반, 두발, 메섹이라는 이름까지 거론되어 있으며, 이들은 사람과 놋 그릇을 거래한 상인이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담 이전에 지구상에 살았던 피조물에 대한 언급을 성경에서 확인했다. 그럼, 이에 대한 또 다른 증거를 역시 성경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창세기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께서 아시느니라, 하니”
이로부터 우리는 인류의 타락 이전에 신(소문자 god)들이라 불리는 존재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브 역시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뱀이 그들에 대해 언급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들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그저 무생물인 새긴 형상 따위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마귀가 신들을 거론하며 이브를 유혹한 것은 이브 역시 신들의 존재에 대해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브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까? 그 상황을 각색해 본다. “이브야, 저길 봐. 저 신들을 보라구. 아주 지혜도 많고 능력도 많아. 게다가 저들은 선과 악을 모두 알고 있어. 너도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니? 너는 무지하고 한계가 있어. 왜냐하면 오로지 선밖에는 모르거든. 하나님은 너에게서 뭔가를 감추고 있단 말야. 그게 뭔지 알고 싶지 않니?” 그래서 이브는 속았고 죄로 인해 타락했다.
그런데 또 궁금증이 생긴다. 이미 창세기 두 장 전에서 멸망 당한 존재들을 이브는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 정답은, 이들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일부는 파멸했으나 일부는 여전히 살아 남았다. 우리는 그 잔당들에 대해 예수님, 다니엘, 그리고 사도 바울이 무어라 증언하는지를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그 전에 우리는 시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이 피조물들과 땅의 심판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시편 82:1이다. “하나님께서 강한 자들의 회중 안에 서시며 신들 가운데서 심판하시는도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강한 자들의 회중”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을 “신들”이라 부른다. 이로부터 우리는 세 가지 정보를 얻는다. 첫째, 신들이라 불리는 존재 그 자체이다. 둘째, 이들은 회중이라 불릴 정도로 다수라는 점이다. 셋째, 그들은 강력하다는 것이다.
다음 2절을 보자. “너희가 부당하게 재판하며 사악한 자들의 외모(persons)를 존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셀라.” 우리는 그들이 person이라고 불리며, 또 사악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사악한 자”가 단순히 관형적인 표현이 아니라 마귀 그 자체를 일컫는 데 한 번 쓰였다.
“그 뒤에 저 사악한 자가 드러나리니 주께서 자신의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하시고 친히 오실 때의 그 광채로 그를 멸하시리라.”(살후
그러니, “사악한 자들의 외모”라 함은 ‘악’ 그 자체인 인격체 마귀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존재에 대한 언급임을 알 수 있다. 2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부당함을 항변하고 있다. 사악한 자들의 person을 하나님께서 존중하시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잠시 유보하고 계신 것일 뿐이다.
그럼, 5절로 가기로 한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달으려 하지도 아니하여.” 그들은 일종의 무지에 빠져 있다. 그들은 “어둠 속에 다니니.”
‘어둠’이라는 단어는 창세기
그런데도 이 당연한 성경 교리를 고의로 부정하려는 신성모독적인 무리가 있다. 미국 창조론 연구회에서 펴낸 신앙 서적 <찬양의 날들>(Days of Praise)의 저자도 그런 ‘사악한 자들’ 중 하나이다.
“창세기
독자 여러분, 이 사람들의 견해가 맞다면, 하나님은 이사야서 45:7에서 어둠을 악에다가 대응시키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구절에서 빛은 평안과도 대응한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재앙도 창조하나니 나 주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사 45:7)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어둠의 창조를 예레미야서 4장의 “맹렬한 진노”와 연관지어 언급하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또 고린도후서
“이는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기 때문이니라.”
여기서 빛은 우리가 거듭날 때 마음 속에서 얻은 지식을 상징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구절의 앞부분은 창세기
다시 시편 82:5로 돌아오기로 한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달으려 하지도 아니하여 어둠 속에 다니니 땅의 모든 기초가 궤도를 벗어났도다.”
우리는 땅의 기초에 대해서 욥기 38:4를 통해 알게 된다.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그리고 7절에도 다시 언급된다.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땅의 모든 기초”가 “궤도를 벗어나게” 만든 존재는 바로 루시퍼와 신들이었다. 그리고 땅의 “티끌을 벗겨 내어 바위의 꼭대기같이 되게끔”(겔 26:4) 하나님을 격동시킨 존재 역시 루시퍼와 신들이었다. 그리고 “바다의 바닥들이 나타나고 세상의 기초들이 드러나게” 만든 존재 역시 루시퍼와 신들이었다(삼하
그럼, 시편 82편으로 되돌아와 6절을 보자.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너희는 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들이라, 하였으나”
신들은 그 구체적인 정체가 무엇이든지 간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 혹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 행위를 나타낸다.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렸고, 예수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으로 단순한 독자 외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독생자(begotten)라고 불렸다.
따라서 시편 82편의 문맥은 어둠의 창조, 땅에 대한 심판,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죽는 날이다.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세워서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소리지르던”(욥 38:7) 세상(시대)의 얘기이다.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그들은 곁에 있었다. 또한 훗날 땅의 모든 기초들이 궤도를 벗어나게 된 것도 그들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시편 82:7으로 가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들”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사람들같이 죽을 것이요, 통치자들 중의 하나같이 넘어지리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직유법이란 “같이”나 “처럼”을 이용한 비교를 말한다. 서로 다른 두 개체를 비교하는데, 여기서는 모두 인격체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들”이 “사람처럼” 죽게 될 것이라는 진술이다. 다시 말해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사람과 일치하는 면모를 갖는다는 뜻이다.
심판만 없었다면 이들은 계속해서 영원히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죽는 것처럼 사람이 아닌 너희들도 죽으리라.”
다음은 시편 82:8을 보자. “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땅을 심판하소서.” 이 구절과 창세기
시편 82편의 가르침에 대한 증거는 성경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요한복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바,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들을 신들이라 하셨으며 또 성경 기록은 폐하지 못할진대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히 구별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것을 가지고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모독한다 하느냐?”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에게 반문하고 계신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은 것에 대해 신성모독이라고 그분을 고소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 또는 신들이라는 명칭은 하나님 자신도 쓰신 명칭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가당착에 빠진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성경 구절은 시편 82편이다.
시편 86:8을 보면 다윗은 신들의 존재를 알고 그들과 하나님을 비교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있다. “오 주여, 신들 가운데 주와 같은 이가 없사오며 주께서 행하신 일들과 같은 일들도 없나이다.” 신들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이 없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를 증언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들보다 더 높음을 찬양한 것이다.
시편 97:7, 9도 같은 경우이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신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명령까지 한다. 또한 주님에 대해서는 모든 신들보다 훨씬 더 높임 받으실 분이라고 언급된다.
“새긴 형상들을 섬기는 자들과 우상들을 자랑하는 자들은 다 당황하리니 모든 신들아, 너희는 그분께 경배할지어다…이는, 주여, 주께서 온 땅보다 높으시므로 모든 신들보다 훨씬 더 높임을 받으셨음이니이다.”
끝으로, 사도 바울 또한 신들의 존재에 대해 알았다. 고린도전서
성경은 하나님(God) 외에 다른 존재가 없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신들(gods)도 많고 주들도 많다고 말한다.
이들의 정체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예수님이 그들을 신들이라고 부르셨고, 바울이 신들이라고 불렀으며, 다윗과 기타 시편 기자가 신들이라고 불렀다. 더구나 시편 82편에서는 그들이 신들이라는 명칭뿐만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라고도 불렸으며 창세기 6장과 욥기 1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도 불리지 않았는가.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성경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성경이 말하는 이들의 다른 속성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욥기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한다고 했다. 욥기의 “높이 있는 자들을 심판하시나니”와 대조해 보라. 그뿐만 아니라 에베소서에서도 어둠은 어김없이 부정적인 뜻이라는 것을 주목하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
시편 96:4-5를 보면 신들은 우상이라고 불린다. 또한 이 모든 신들은 하늘들을 창조하지 못했으나 주님은 창조하셨음이 부각된다.
“이는 주께서 위대하시므로 크게 찬양할 것임이라. 그분은 모든 신들보다 두려워할 분이시니 이는 민족들의 모든 신들은 우상이나 주는 하늘들을 만드셨음이로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새 왕이 산당(대하
역대기하
그러니 배도한 이스라엘 민족이 산당에서 숭배한 가나안의 우상들이란, 역대기하
“그들이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지 아니하고 마귀들에게 드렸으니 곧 자기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너희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신들, 새로이 일어난 새로운 신들에게 드렸노라.” (시편 106:37-38, 레위기
이 존재들에 대해 마땅히 다루어야 할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그들의 거주지이다. 그들은 어디에서 사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데 도움을 줄 성경 구절이 세 군데 있다. 먼저 다니엘서
“왕이 요구하시는 것은 드문 일이니이다.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여 줄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신들은 육체를 가진 생명체들이 사는 지표면에서 살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들의 서식처가 “아닌” 곳이 어디인지는 하나 알게 됐다. 그럼, 다음으로 역대기상
“네가 어디에서 걷든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으며 땅 속에(in) 있는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었노라. 또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한 처소를 정하여 그들을 심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 처소에 거하여 다시는 움직이지 아니하게 하며 또 사악한 자손들로 하여금 다시는 처음과 같이 그들을 피폐하게 하지 못하게 하리니.”
지표면이 아니라 지구 안, 즉 지하에 사는 ‘위대한 자’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들은 지하에서 거주한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일부는 그렇게 산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 이제
“곧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네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섬기자, 할지라도” (‘주위’는 백성을 받는 게 아니라 신을 받는다)
이들은 최초의 지구에서 살다가 마귀 슬하에서 자신의 길을 부패시킨 존재들이다. 물론 이런 영적 존재들 가운데에는 마귀와 함께 죄로 타락하지 않은 존재도 있었으며, 루시퍼를 제외한 나머지 네 그룹, 스랍, 그리고 천사들이 그 예이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창
그 후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루시퍼)은 교만해져 하나님의 왕좌를 찬탈할 음모를 꾸몄다(사 14장, 겔 28장). 하나님은 그를 리워야단(욥 41장, 사 27장)으로 형체를 바꾸고 하늘에서 쫓아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구를 홍수로 파멸하시고(렘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 운행하셨느니라.”(창
지구는 황량한 폐허가 되었다. 비어 있고, 그 안에 사는 존재들도 없다. 땅의 기초가 드러나고 궤도에서 어긋났으며, 깜깜한 어둠에 휩싸였다. 어둠을 모르던 세상은 끝장이 났고 하나님의 빛은 이제 있지 않다. 이 상태는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잃어버린 상태와도 같다.
성경은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나니” 라고 말한다. 우리는 과거에 잃어버린 자였고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이” 지냈다. 우리는 삶에 목적도 소망도 없으며, 왜 사는지 특별한 이유도 없던 무의미한 존재였다. 하지만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창세기
하나님은 우리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셨다. 이는 죄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세기
3절의 빛은 일시적이며 영원하지 못한 빛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빛이기는 하나 하나님 그 자신이신 참된 빛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성경은 시편 74:16에서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니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라고 증언한다. 아멘.
하나님께서 이제 세상에 직접적인 빛을 주시지는 않고 있으나, 하나님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패턴은 남겨 주셨다. 우리는 그분의 완전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유일무이한 피를 믿음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진노로부터 건짐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딛
제8장 반론에 답하여
다음은 창세기
반론 1. 요한복음 |
하나님께서 요한복음 8장에서 사탄의 특성에 대해 말씀하실 때, 특정한 시제 구분이 없는 영원을 기준으로 뒀다는 암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 본문을 보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바리새인들을 상대로, 과거에 일어난 일을 분명하게 과거 시제로 말씀하고 계신다. 또한 마귀가 현재 가지고 있는 성품에 대해서는 현재 시제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시간이 있기도 전부터 계셨지만, 마귀는 그런 영원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고린도전서 2장이 제시하는 성경 공부 방법을 따라서 영적인 말씀을 성령님이 가르치시는 영적 말씀으로 대조해 보고 그 결과를 정직하게 따르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성경이 스스로 정의하는 “처음”이라는 시기가 바로 사탄이 살인자이기 시작한 때임을 즉시 수긍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과 하나님에 대해서 정직하지 못하며, 이 구절에 드러난 성경의 간단한 진리조차도 믿지 못하는 상태이다.
반론 2. 창세기 |
필자는 창세기
그렇다. 이 구절은 어떤 사건의 발생도 다루지 않는다는 건 맞다. 모든 사건들은 2절보다 전에 이미 일어나 버렸기 때문이다. 2절은 단지 심판 후의 상태만을 평이하게 묘사한 것일 뿐이지 심판 그 자체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서
그뿐만 아니라 반대자도 역시 시인한 것처럼, 창세기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제임스 1세 시대의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결코 실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킹제임스성경은 완벽하다. 당신이 성경을 믿는다면 성경이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임을 역시 알 것이다. 그런데도 원어 운운하면서 “이런 의미가 아니다, 가끔은 이렇게 번역되기도 했을지라도…”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영감 받은 말씀에 대한 믿음이 아직 부족함을 보이는 것일 뿐이다. 또한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반론 3. ‘형태’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단순히 ‘형태 없음’ 그 자체일 뿐이지, 특별히 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
창세기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행할지니라.” 라고 명령한다. 무엇의 형태(form)라 함은 그 사물의 모양, 구조, 의미, 존재 따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 형태가 없다는 것은 품위 있는 상태도 아니며 질서 있는 상태도 아니다. 필자는 그 단어가 히브리어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나, 킹제임스성경의 언어인 영어로는 분명히 안다.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만이 그 주변을 감싸고 또 “깊음의 표면 위에” 있게 된 것이다.
반론 4. 창세기 |
창세기
그 반면 1-2절은 우리가 알다시피 ‘날’이 있기 전에, ‘날’이라는 단어가 정의조차 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어둠’이란 단어를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어둠이란 좋지 않은 것임을 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느니라.” 2절은 어둠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지만, 어둠의 창조에 대해서는 창세기 1장에 나오지 않는다. 그에 대해서는 이사야서 45:7과 예레미야서 4장에 나온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창세기
반론 5. 로마서 |
로마서
성경에 따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그런데 필자가 묻고 싶은 게 있다. 이 세상이란 어느 세상을 말하는가? 히브리서
그렇다. 아담은 지금 ‘이 세상’에 죄를 가져다 온 최초의 인물인 건 맞다. 그러나 그는 어느 세상에다가도 전부 죄를 가져다 온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세상은 창세기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
‘세상’이 단수가 아닌 복수임을 주목하라. 이때의 ‘세상’이란 지구라는 행성이나 지구에 사는 거주민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일정한 기간,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조성된 시간의 기간들을 뜻한다.
이는 히브리서 11장의 문맥을 보면 명확해진다. 11장은 “바라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시작하는데(1절), 이 구절은 시간-공간-물질의 연속체의 창조에 대해 언급하는 3절과도 관련이 있다.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 그렇게 시작한 히브리서 11장은 여러 다른 기간들에 살았던 성경의 인물들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하고서 이렇게 결론을 짓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마련하사.” 이 마지막 구절이 언급하는 것은 영원한 미래로, 바로 필자와 같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맞이할 영원한 미래이다.
자, 여기까지 오면서 영원의 세계에 대해 언급된 표현이 무엇이 있나 보자. 1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고, 3절에는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가 있다. 5절에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 10절에는 “이는 그가 하나님께서 건축하고 만드신 도시 곧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음이라.” 16절에는 “그들이 이제는 더 좋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속한 것이라…이는 그분께서 친히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예비하셨음이라.” 또 27절을 보자. “이는 그가 보이지 아니하시는 이를 보는 것같이 하여 견디어 냈기 때문이며” 그리고 끝으로 40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마련하사.”이다.
그러니 히브리서
이제 다시 3절로 돌아간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이 부분은 모든 시대들을 일컫는 말이다. 3절 후반부의 ‘보이는 것’이 바로 현 시대에 대한 시작을 가리킨다.) “…보이는 것들은(보이는 것이란 이 시대에 존재하는 일시적인 것들을 말한다.)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창세기
다음으로는 상호 참조 구절인 히브리서
히브리서 1장을 살펴보면 먼저 첫 세상, 혹은 첫 시대에 대한 설명을 접한다. 2절에서는 모든 세상들을 통틀어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4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천사들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는 말이 나온다. 5절에서는 예수님이 그 하나님의 아들이며, 천사들과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진술된다. 그리고 6절에서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바로 그 아들을 경배하고 있다.
그리고 7절은 천사들의 창조에 대한 언급이다.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이르시기를, 그분께서는 자신의 천사들을 만들어 영들로 삼으시고 자신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시되.” 8절에서는 하나님의 왕좌와 그분의 왕국이 거론된다. 10절에서는 땅을 받치고 있는 기초와 하늘이 언급된다. “또, 주여, 주께서 처음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들도 주의 손이 이루신 작품이니이다.” 이것을 욥기 38:4-7과 대조해 보라.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끝으로 11과 12절은 “지금 있는” 하늘들과 땅에 대한 언급인 동시에 이들의 최후까지 다룬다. “그것들은 멸망하려니와” 베드로후서
우리는 히브리서 1장에서 모든 시대들에 대한 전체 윤곽을 보게 된다. 하나님 자신이 1절에서 등장한다. 그분은 여러 다른 사람들에게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신다. 그러다가 2절에서는 ‘우리’라고 불리는 어느 누구에게나 자신의 말씀을 전하신다. 4-7절에서는 천사들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오고 7절에서는 그들의 창조에 대해서도 다루어진다.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 대해서는 8절에 나온다. 하늘들과 땅의 창조에 대해서도 10절에 언급됐다. 그리고 11-12절은 현존하는 하늘들과 땅에 대한 언급이며 또 이것들의 훗날 운명에 대한 예고이다.
물론 이 장의 전체 주제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이다. 모든 시대, 혹은 세상들을 통틀어도 “주는 여전히 계시겠고…주는 동일하시고 주의 연대는 끊어지지 아니하리이다.”(11-12절)
반론 6. 간극 이론이란 성경을 화석과 같은 과학적 발견과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 의도부터가 불순하다. |
필자는 본서를 저술하면서 어디에서도 과학적 발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으며 진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화석 기록을 제시한 적이 없다. 그 대신 필자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꾸준하고도 일관성 있게 성경 구절만을 보였을 뿐이다. 사실 ‘간극’이라는 단어가 성경이 말하는 상태를 잘 묘사하기는 하지만 그 단어 자체도 본서에서는 쓴 적이 없다. 그저 성경만을 읽고 그대로 믿기 바란다.
반론 7. 예레미야서 4장을 보면 새와 사람들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6일 창조에 대한 진술을 보면 넷째 날 이전에는 새가 등장하지 않으며 여섯째 날 이전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
요한계시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