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2009.03.18 07:19

왜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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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How I Know The King James Bible is the Word of God

James L. Melton 지음 / 이우진 옮김

 

Part 2/2

 

7.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정직하게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을 비평하는 사람들은 번역자들이 사용한 이탤릭체[1]에 대해서 공격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전반적으로 불필요하고 불공평합니다.

 

킹제임스성경에서 사용된 이탤릭체야말로 번역자들이 정직하게 번역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숙어가 변화하며, 따라서 독자들로 하여금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게 하기 위해서 특정한 단어를 첨가하는 일이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특정한 단어를 첨가해야만 하는 경우 그것을 이탤릭체로 표시하여 독자들이 어떤 단어가 첨가된 것인지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현대 역본들은 이탤릭체를 사용하지 않아서 어떤 단어가 번역자들에 의해 임의로 첨가된 것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게다가 어느 누구도 “최초의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이탤릭체 단어들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입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이탤릭체로 된 단어들을 첨가하도록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좋은 예를 사무엘하 21:19에서 볼 수 있습니다. 번역자들이 히브리어 원문에서 이 구절을 보게되었을 때 엘하난이 죽인 것은 골리앗이 아니라 골리앗의 형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역대기상 20:5에서 그러한 사실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사무엘하 21:19에 “~의 동생(the brother of)”이라는 단어를 첨가하고 그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이탤릭체로 표시한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그들이 그렇게 번역하도록 인도해주지 않으셨다면 사무엘하 21:19과 역대기상 20:5은 서로 모순을 일으키게 됩니다(신세계역본[2]에서는 이 부분에서 모순을 일으키고 있음).

 

이탤릭체의 정당성에 대한 다른 예는 요한일서 2:23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없되 아들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이 구절에서 뒷부분(“아들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3])은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될 당시 필사본들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이 부분을 구절에 첨가하고 이탤릭체로 처리하였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성경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4] 이후에 이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필사본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결국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이 부분을 이탤릭체로 처리하여 본문에 넣음으로서 바르게 번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을 인도해 주셨다는 또 다른 증거는 시편 16:8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주를 항상 내 앞에 모셨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는 “그분께서” 부분이 이탤릭체로 되어 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에 의하면 이 부분은 삭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에 의하면 이 부분이 삭제되어서는 안됩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2:25에서 시편 16:8을 인용하며 이탤릭체로 된 단어도 함께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그분에 관하여 말하되, 내가 항상 내 얼굴 앞에 계신 주를 미리 보았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는 “그분께서”가 이탤릭체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인도해 주지 않으셨다면 번역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킹제임스성경에 있는 이탤릭체는 정직한 번역이라는 증표입니다. 이탤릭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더하는 것도 아닙니다. 독자는 어디서 번역자가 단어를 첨가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번역자들은 독자의 이해를 위해서 단어를 첨가했고 그것을 이탤릭체로 표시함으로 우리가 그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직함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현대 성서들의 번역자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직하기 때문에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8. 모든 새로운 번역본들은 킹제임스성경과 스스로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성서들은 서로를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한 권의 책, 킹제임스성경과만 비교합니다.[5] 이러한 것은 킹제임스성경이 매우 특별하고 독특한 책이라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왜 모든 현대의 성서들이 킹제임스성경만을 대적해서 대열을 갖추는 것일까요? 왜 다른 성서들을 공격하지는 않는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탄은 자신의 왕국이 분열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만일 사탄을 내쫓으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왕국이 서겠느냐?”(마 12:26)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합니다. 그래서 그는 오직 한 권의 책, 하나님의 책, 킹제임스성경만을 공격하는 것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을 공격하는 자들은 스스로의 주장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최종권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최종권위를 가지고 있는 우리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안정적이지 못하고, 안전하지 못하며, 정직하지 못하고, 확고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한 권의 책 킹제임스성경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가 그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공격할 것입니다.

 

다른 모든 성서들이 비교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9. 킹제임스성경의 번역 시기가 적당했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변개된 성서들과 같이 배교하고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기 전의 마지막 교회 시대입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 2~3장에 계시된 일곱 교회 중 마지막 시대를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 3:14-22을 현대의 배교한 교회와 비교해 본다면 라오디케아 교회야 말로 오늘날의 교회 시대를 보여주는 거울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지근한 교회 시대는 1800년대 말에 시작하여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새로운 성서들은 미지근한 성서들이기 때문에 미지근한 교회에 딱 드러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킹제임스성경은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가 시작되기 수백년 전에 번역되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교회사 중 가장 빛나는 시기였던 필라델피아 교회 시대에 번역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가 말씀을 지켰다고 칭찬하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 있는데, 보라, 내가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을 지켰은즉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시간을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시간이라.”(계3:8-10)

 

1611년에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이 완성되었을 때는 아직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의 불신앙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었습니다. 1611년에는 번역자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과학적인” 무리들이 없었습니다. 번역자들의 작품에 영향을 끼칠 “시민혁명”도 없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여자들이 “남녀평등”을 외치기 전이었으며 인본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이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이었습니다. 자유주의와 현대주의로 무장한 설교자들이 아직 그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공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사상이 설교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전이었습니다. 말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나이롱” 신자들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세상과 타협해 버린 미지근한 설교자들은 20세기가 되기까지는 몰려오지 않았습니다.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선교사역은 1700년대와 1900년대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렇게 위대한 선교사역을 위해서 성경을 예비하셨다고 믿는 것은 온전히 타당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킹제임스성경을 주심으로 실제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불행하게도 변개된 성서들은 이 시기가 지난 후에 역사의 무대에 등장함으로 위대한 선교사역에는 동참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번역된 역사적 시기가 적절했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10. 어느 누구도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죄가 입증되기 전에는 무죄로 추정됩니다.[6] 킹제임스성경도 그 안에 오류가 있다고 증명되기 전에는 무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증명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아무 것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소위 “킹제임스성경의 오류”라는 것은 기도와 성경연구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반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공격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진리에는 관심이 없는듯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떠한 오류도 입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난 4백년 동안 어느 누구도 오류가 있다고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11. 필사본들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성경과 다른 번역본들이 동일하다고 믿는 것은 미혹된 것입니다. 현존하는 필사본들 중 95%의 필사본들은 킹제임스성경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번역본들을 지지하는 필사본들은 5%에 불과합니다.

 

“바티칸사본(Vaticanus)”과 “시내사본(Siniaticus)”으로 알려진 4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부패한 두 개의 필사본들이 새로운 성서들을 지지하는 대표 주자입니다. 이 두개의 필사본은 로마 카톨릭의 교리를 지지하기 위해서 본문에 수정을 가한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가복음 24:44[7]에서 제외하신 외경을 담고 있습니다. 모든 새로운 성서들은 이들 부패한 사본들의 본문을 담고 있습니다. 5%의 필사본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새로운 성서들이 95%의 필사본들의 지지를 받는 킹제임스성경을 공격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의 원문인 공인본문(Textus Receptus, Received Text)은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으며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일년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던 시리아의 안디옥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행 11:26). 다른 성서들은 안디옥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 있는 킹제임스성경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서들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이탈리아의 로마에 그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유래한 필사본으로부터 나온 성서는 필요없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이집트는 세상의 유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불러내셨고(출 3~14장), 자신의 아들을 이집트에서부터 불러내셨습니다(호 11:1, 마 2:13-14). 창세기 46:34에서는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모든 목자가 가증하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0장에서 목자라고 불리십니다. 사도행전 28:11에 의하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는 미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장에서는 이집트 출신의 사람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교리적으로 바로잡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6:9에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사람이 스데반과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나온 필사본으로 만든 성서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8]

 

“서방 원문”에 속하는 원문 중에는 로마로부터 온 원문들이 있습니다. 로마 병사들이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그곳으로부터 온 원문이 필요할까요?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온 음녀는 중세에 천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한 로마 카톨릭에 대한 묘사가 분명합니다. 사도행전 18:2에서도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A.D. 70년에 로마인들은 예루살렘을 아예 멸망시켜 버립니다. 로마는 다니엘 7장에 묘사된 두렵고 무서운 짐승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재림하실 때 “부활한 로마 제국”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단 2:7, 계13장). 로마는 자신들의 부패한 종교 시스템을 거부한 2억명의 사람들을 죽인 핏값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로부터 온 “성서”는 그리스도인들과 아무런 관련을 맺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필사본 계열은 단 하나만 존재합니다.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유래한 “비잔틴 원문(Byzantine)”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디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증언하고 있는 반면 로마와 이집트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해서는 최고의 것을 취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 현명합니다. 대부분의 필사본들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12. 킹제임스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5:39).

 

참된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분의 신성, 처녀탄생, 피를 통한 속죄, 육체적 부활, 영광스러운 재림이나 그밖에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교리를 공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성서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근본적인 교리들을 이곳 저곳에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근본적인 교리를 다루고 있는 성경의 많은 중요한 구절들을 변개시킴으로서 새로운 성서들은 우리의 사랑하는 구주를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조금도 지나친 표현이 아닙니다. 주님의 처녀탄생에 대한 교리가 이사야 7:14, 누가복음 1:34, 2:33 등에서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피에 대한 교리가 골로새서 1:14, 사도행전 20:28, 에베소서 1:7, 그리고 요한계시록 1:5에서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육체적인 부활에 대한 교리는 사도행전 1:3, 누가복음 24장, 그리고 마가복음의 마지막 12구절에서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신성에 대한 교리가 사도행전 10:28, 요한복음 9:35, 그리고 디모데전서 3:16에서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변개된 새로운 성서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교리를 요한계시록 11:15, 디도서 2:13에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록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성서들은 킹제임스성경과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 돌리는 영광을 증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독자 중에 이러한 저의 말을 믿지 못하는 분이 있다면, 저는 다음과 같이 제안합니다. 어느 종류의 성서건 간에 그것을 킹제임스성경과 위에서 제시한 구절들을 비교해 보십시오. 만일 저것으로도 충분하지 않다면 출판사로 연락을 주시면 비교해 볼 수 있는 더 많은 구절 목록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성서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책들은 주님께서 요한복음 5:39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님을 증거하지 않기에 감히 성경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변개된 성서들은 오히려 주님을 대적하여 거짓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단 한 군데에서도 우리 주님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책보다도 종교개혁 성경인 킹제임스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킹제임스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일 만한 다른 이유가 없다 할지라도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확신을 주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있기 때문에 저는 킹제임스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1] 이탤릭체는 기울어진 글꼴을 의미합니다.-역자주

[2] 신세계역본(New World Translation)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입증하기 위해서 번역한 성경입니다.-역자주

[3] 영어 킹제임스성경의 경우 이 부분이 이탤릭체로 되어 있습니다.-역자주

[4]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번역을 위해서 원어로된 원문들만 참고한 것이 아니라 구라틴성경(Old Latin Bible)과 같은 다른 언어로 번역된 성경도 참고하였습니다. 따라서 오랜 동안 사용된 여러 언어의 성경들이 이 부분을 본문으로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당시 그리스어 필사본에는 이부분이 없었을지라도 이 부분이 성경의 일부(요일 2:23)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역자주

[5] 대부분의 영어성서들은 서문에서 킹제임스성경의 “부족한” 점을 보완한 성경임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즉 새로운 성서가 번역되어 나오면 항상 서문을 통해서 스스로를 킹제임스성경과 비교하는 것입니다.-역자주

[6] 이것을 “무죄추정원칙(혹은 무죄추정주의)”라고 합니다. 무죄추정원칙이라는 것은 유죄판결을 받을 때까지는 무죄로 취급해야 하는 형법상의 원칙입니다.-역자주

[7] 누가복음 24:44에서 주님은 당시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받아들인 구약성경의 분류법을 그대로 인정하셨습니다. 즉 구약성경을 율법서(창세기부터 에스더까지), 시가서(욥기부터 솔로몬의 아가까지), 그리고 대언서(이사야서부터 말라기서까지)로 나누신 것입니다.-역자주

[8] 킹제임스성경의 원문은 안디옥 계열의 사본이며 흔히 “비잔틴 계열 원문”이라고 부릅니다. 그에 반해 킹제임스성경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서들의 원문은 이집트의 수도 알렉산드리아에 기원을 둔 “알렉산드리아 계열 원문”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이 됩니다. 성경은 구원에 대해서만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 필사본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기준이 됩니다. 저자는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필사본을 평가하고 있는 것입니다.-역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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