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536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GENESIS 1:1-3

A COMMENTARY ON THE FIRST THREE VERSES IN THE BIBLE

(The Gap Theory)

창세기 1:1-3 강해(간극이론)

Jeffrey A. Tibbetts 지음 용묵 옮김

 

7장 하나님의 아들들

 

창세기 1:1-3을 이해하는 것을 도와 줄 제 2의 단서는, 바로 이사야서 45:18 속에 숨겨진 질문에 대한 해답에 있다.

“이는 하늘들을 창조하신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친히 땅을 조성하고 만들고 견고하게 하였으되 땅을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고 거주하게끔 조성하였느니라. 나는 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하나님은 천지를 누가 살든 살 수 있게끔 거주가 가능하게 조성하셨다. 그런데 누가 거기 거주했다는 말인가? 에스겔서의 내용을 믿는 사람이라면, 기름부음 받은 덮는 그룹인 루시퍼가 타락하기 전 시절에 두로라는 영적 도시가 있었으며 루시퍼가 바로 그 도시를 다스렸다는 사실을 안다. 이 도시에는 딸들( 26:6), 사람들( 26:11), ( 26:12), 악기( 26:13), 바다의 통치자( 26:16), 배 타는 사람들( 26:17), 지혜로운 자들( 27:8), 선장( 27:8), 노인( 27:9), 군인( 27:10), 상인( 27:13) 등이 다 거주하고 있었다. 특히 에스겔서 27:13을 보면 야반, 두발, 메섹이라는 이름까지 거론되어 있으며, 이들은 사람과 놋 그릇을 거래한 상인이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아담 이전에 지구상에 살았던 피조물에 대한 언급을 성경에서 확인했다. 그럼, 이에 대한 또 다른 증거를 역시 성경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창세기 3:4-5를 보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께서 아시느니라, 하니

이로부터 우리는 인류의 타락 이전에 신(소문자 god)들이라 불리는 존재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이브 역시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뱀이 그들에 대해 언급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들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그저 무생물인 새긴 형상 따위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마귀가 신들을 거론하며 이브를 유혹한 것은 이브 역시 신들의 존재에 대해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브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까? 그 상황을 각색해 본다. “이브야, 저길 봐. 저 신들을 보라구. 아주 지혜도 많고 능력도 많아. 게다가 저들은 선과 악을 모두 알고 있어. 너도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니? 너는 무지하고 한계가 있어. 왜냐하면 오로지 선밖에는 모르거든. 하나님은 너에게서 뭔가를 감추고 있단 말야. 그게 뭔지 알고 싶지 않니?” 그래서 이브는 속았고 죄로 인해 타락했다.

그런데 또 궁금증이 생긴다. 이미 창세기 두 장 전에서 멸망 당한 존재들을 이브는 어떻게 볼 수 있었을까? 정답은, 이들이 모두 사라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일부는 파멸했으나 일부는 여전히 살아 남았다. 우리는 그 잔당들에 대해 예수님, 다니엘, 그리고 사도 바울이 무어라 증언하는지를 나중에 살펴볼 것이다. 그 전에 우리는 시편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이 피조물들과 땅의 심판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시편 82:1이다. 하나님께서 강한 자들의 회중 안에 서시며 신들 가운데서 심판하시는도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강한 자들의 회중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을신들이라 부른다. 이로부터 우리는 세 가지 정보를 얻는다. 첫째, 신들이라 불리는 존재 그 자체이다. 둘째, 이들은 회중이라 불릴 정도로 다수라는 점이다. 셋째, 그들은 강력하다는 것이다.

다음 2절을 보자. 너희가 부당하게 재판하며 사악한 자들의 외모(persons)를 존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셀라.” 우리는 그들이 person이라고 불리며, 또 사악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신약 성경에서는 사악한 자가 단순히 관형적인 표현이 아니라 마귀 그 자체를 일컫는 데 한 번 쓰였다.

“그 뒤에 저 사악한 자가 드러나리니 께서 자신의 입의 영으로 그를 소멸하시고 친히 오실 때의 그 광채로 그를 멸하시리라.”(살후 2:8)

그러니, 사악한 자들의 외모라 함은그 자체인 인격체 마귀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존재에 대한 언급임을 알 수 있다. 2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부당함을 항변하고 있다. 사악한 자들의 person을 하나님께서 존중하시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잠시 유보하고 계신 것일 뿐이다.

그럼, 5절로 가기로 한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달으려 하지도 아니하여.” 그들은 일종의 무지에 빠져 있다. 그들은어둠 속에 다니니.”

‘어둠’이라는 단어는 창세기 1:2에 등장하는 바와 같이 문맥상으로 가장 암시적인 단어이다. 이 단어가 땅에 펼쳐진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을 나타낸다는 건 너무나 명백하다. 단어의 원뜻으로나 비유적 의미로나, 1611년판 킹제임스성경에서 일관적으로 나타난 용법으로나 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이 당연한 성경 교리를 고의로 부정하려는 신성모독적인 무리가 있다. 미국 창조론 연구회에서 펴낸 신앙 서적 <찬양의 날들>(Days of Praise)의 저자도 그런사악한 자들중 하나이다. 1996년 9월 30 devotional에서 HMM(사람 이름. 헨리 모리스)는 이렇게 기록했다.

창세기 1:2에서 최초로 창조된 원시 지구를 감싸고 있던 어둠은 사탄의 타락으로 인해 야기된 심판이 전혀 아니다. (중략) 어둠이 악과 관련이 있다는 비유적 의미는 나중에 등장한 개념이다. 바로, 악인이나 마귀들이 자신의 속임수를 어둠 속에서 더 잘 숨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이다.”[1] 그뿐만 아니라 달라스 신학교의 찰스 라이리는 이렇게 덧붙였다. “어둠은 빛과 마찬가지로 창조의 선한 섭리에 따라 창조된 것이다.”[2]

독자 여러분, 이 사람들의 견해가 맞다면, 하나님은 이사야서 45:7에서 어둠을 악에다가 대응시키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 구절에서 빛은 평안과도 대응한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만들고 재앙도 창조하나니 나 가 이 모든 일을 행하느니라.”( 45:7)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어둠의 창조를 예레미야서 4장의 맹렬한 진노와 연관지어 언급하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또 고린도후서 4:6을 보라. 악이 선과 화평과 반대되는 것처럼, 어둠은 빛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평이하게 진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기 때문이니라.”

여기서 빛은 우리가 거듭날 때 마음 속에서 얻은 지식을 상징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구절의 앞부분은 창세기 1:3의 사건에 대한 언급이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을 대조해 보라. 6일 창조의 첫째 날의 사건은 바로, 우리가 거듭날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타락하고 죄 많고어두워진마음에다 비쳐 주시는 빛을 예표하는 셈이다. 빛은 좋은 것이고 어둠은 나쁜 것이다. 성경의 논리는 이토록 간단하다.

다시 시편 82:5로 돌아오기로 한다.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달으려 하지도 아니하여 어둠 속에 다니니 땅의 모든 기초가 궤도를 벗어났도다.”

우리는 땅의 기초에 대해서 욥기 38:4를 통해 알게 된다.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그리고 7절에도 다시 언급된다.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땅의 모든 기초궤도를 벗어나게 만든 존재는 바로 루시퍼와 신들이었다. 그리고 땅의 티끌을 벗겨 내어 바위의 꼭대기같이 되게끔( 26:4) 하나님을 격동시킨 존재 역시 루시퍼와 신들이었다. 그리고 바다의 바닥들이 나타나고 세상의 기초들이 드러나게 만든 존재 역시 루시퍼와 신들이었다(삼하 22:15-16).

그럼, 시편 82편으로 되돌아와 6절을 보자.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너희는 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들이라, 하였으나

신들은 그 구체적인 정체가 무엇이든지 간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 혹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창조 행위를 나타낸다.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렸고, 예수 그리스도는 둘째 아담으로 단순한 독자 외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독생자(begotten)라고 불렸다.

따라서 시편 82편의 문맥은 어둠의 창조, 땅에 대한 심판,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죽는 날이다.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세워서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기뻐 소리지르던( 38:7) 세상(시대)의 얘기이다.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놓으실 때 그들은 곁에 있었다. 또한 훗날 땅의 모든 기초들이 궤도를 벗어나게 된 것도 그들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시편 82:7으로 가면,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들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너희는 사람들같이 죽을 것이요, 통치자들 중의 하나같이 넘어지리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직유법이란같이처럼을 이용한 비교를 말한다. 서로 다른 두 개체를 비교하는데, 여기서는 모두 인격체가 등장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들사람처럼죽게 될 것이라는 진술이다. 다시 말해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사람과 일치하는 면모를 갖는다는 뜻이다.

심판만 없었다면 이들은 계속해서 영원히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죽는 것처럼 사람이 아닌 너희들도 죽으리라.”

다음은 시편 82:8을 보자. 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땅을 심판하소서.” 이 구절과 창세기 1:2를 대조해 보라.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또 명백한 심판 문맥인 예레미야서 4:23과도 대조해 보라. 내가 땅을 본즉, 보라,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하늘들을 본즉 거기에는 빛이 없고.” 그럼 시편 82:8이 새롭게 다가오지 않는가? 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땅을 심판하소서.”

시편 82편의 가르침에 대한 증거는 성경 다른 곳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요한복음 10:34-36에서도 관련된 언급을 찾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되, 너희 율법에 기록된바,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자들을 신들이라 하셨으며 또 성경 기록은 폐하지 못할진대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히 구별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한 것을 가지고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모독한다 하느냐?”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을 고소하는 유대인들에게 반문하고 계신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은 것에 대해 신성모독이라고 그분을 고소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 또는 신들이라는 명칭은 하나님 자신도 쓰신 명칭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가당착에 빠진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성경 구절은 시편 82편이다.

시편 86:8을 보면 다윗은 신들의 존재를 알고 그들과 하나님을 비교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있다. , 신들 가운데 주와 같은 이가 없사오며 주께서 행하신 일들과 같은 일들도 없나이다.” 신들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언급이 없지만 그들의 존재 자체를 증언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들보다 더 높음을 찬양한 것이다.

시편 97:7, 9도 같은 경우이다. 여기서 시편 기자는 신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명령까지 한다. 또한 주님에 대해서는 모든 신들보다 훨씬 더 높임 받으실 분이라고 언급된다.

“새긴 형상들을 섬기는 자들과 우상들을 자랑하는 자들은 다 당황하리니 모든 신들아, 너희는 그분께 경배할지어다이는, , 주께서 온 땅보다 높으시므로 모든 신들보다 훨씬 더 높임을 받으셨음이니이다.”

끝으로, 사도 바울 또한 신들의 존재에 대해 알았다. 고린도전서 8:4-5를 보자. “그러므로 우상들에게 바친 희생물을 먹는 것에 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는 줄 아노라. 이는 비록 하늘이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들이 있어 (신도 많고 주도 많으나)”

성경은 하나님(God) 외에 다른 존재가 없다고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신들(gods)도 많고 주들도 많다고 말한다.

이들의 정체를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예수님이 그들을 신들이라고 부르셨고, 바울이 신들이라고 불렀으며, 다윗과 기타 시편 기자가 신들이라고 불렀다. 더구나 시편 82편에서는 그들이 신들이라는 명칭뿐만 아니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라고도 불렸으며 창세기 6장과 욥기 1장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도 불리지 않았는가.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는 성경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성경이 말하는 이들의 다른 속성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욥기 21:22하나님께서는 높이 있는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이다. 높이 있는 자란 분명 높은 곳에 있는 어떤 영적 존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필자가 생각하건대 구약 성경에서산당”(높은 곳; high place)이 마귀 숭배와 그에 따른 하나님의 심판과 연관되어 언급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높이 있는 자라는 표현을 에베소서 6:12과 대조해 보라. 여기에는 신약 성도의 영적 전투에 등장하는 적군을 나열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하는 것이기 때문이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을 대적한다고 했다. 욥기의 높이 있는 자들을 심판하시나니와 대조해 보라. 그뿐만 아니라 에베소서에서도 어둠은 어김없이 부정적인 뜻이라는 것을 주목하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

시편 96:4-5를 보면 신들은 우상이라고 불린다. 또한 이 모든 신들은 하늘들을 창조하지 못했으나 주님은 창조하셨음이 부각된다.

“이는 주께서 위대하시므로 크게 찬양할 것임이라. 그분은 모든 신들보다 두려워할 분이시니 이는 민족들의 모든 신들은 우상이나 주는 하늘들을 만드셨음이로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새 왕이 산당(대하 14:3)들의 작은 숲과 제단들을 헐었다는 이야기를 볼 때마다, 이것은 전부 신들(또는 하나님의 아들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에 대한 경배를 단호히 청산했음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들을 숭배하는 버릇을 지독히도 버리지 못했다.

역대기하 11:15를 보면 그산당들은 마귀 숭배와도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된다. “또 여로보암이 산당들과 마귀들과 자기가 만든 송아지들을 위하여 스스로 제사장들을 세웠음이라.”

그러니 배도한 이스라엘 민족이 산당에서 숭배한 가나안의 우상들이란, 역대기하 11:15에서 마귀들이라고 불린 실질적이고 영적 존재인 셈이다.

신명기 32:17에서는 우상과 신들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된다. 다른 곳에서는 우상이 곧 마귀라고 불리는데, 이 구절에서는 마귀들이 신들이라고 불린다.

“그들이 하나님께 희생물을 드리지 아니하고 마귀들에게 드렸으니 곧 자기들이 알지 못하던 신들, 너희 조상들이 두려워하지 아니하던 신들, 새로이 일어난 새로운 신들에게 드렸노라.” (시편 106:37-38, 레위기 17:7도 참고하라.)

이 존재들에 대해 마땅히 다루어야 할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그들의 거주지이다. 그들은 어디에서 사는가? 이 물음에 답하는데 도움을 줄 성경 구절이 세 군데 있다. 먼저 다니엘서 2:11이다.

“왕이 요구하시는 것은 드문 일이니이다.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여 줄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신들은 육체를 가진 생명체들이 사는 지표면에서 살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들의 서식처가아닌곳이 어디인지는 하나 알게 됐다. 그럼, 다음으로 역대기상 17:8-9를 보자.

“네가 어디에서 걷든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으며 땅 속에(in) 있는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었노라. 또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한 처소를 정하여 그들을 심고 그들로 하여금 자기 처소에 거하여 다시는 움직이지 아니하게 하며 또 사악한 자손들로 하여금 다시는 처음과 같이 그들을 피폐하게 하지 못하게 하리니.”

지표면이 아니라 지구 안, 즉 지하에 사는위대한 자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들은 지하에서 거주한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최소한 일부는 그렇게 산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 이제 신명기 13:7을 보기로 한다. 여기서는 신들이네 주위에 에워싸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지구 밖에 있는 신들에 대한 언급이다. 어떤 신들은 지구 대기권의 밖에서 살기도 한다는 뜻이다.

“곧 네게서 가깝든지 네게서 멀든지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네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섬기자, 할지라도 (‘주위는 백성을 받는 게 아니라 신을 받는다)

이들은 최초의 지구에서 살다가 마귀 슬하에서 자신의 길을 부패시킨 존재들이다. 물론 이런 영적 존재들 가운데에는 마귀와 함께 죄로 타락하지 않은 존재도 있었으며, 루시퍼를 제외한 나머지 네 그룹, 스랍, 그리고 천사들이 그 예이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1:1) 하나님의 아들들과 새벽별들은 창세기의 이 시점에서 이미 존재했다( 38:1-8). 루시퍼는 두로 시( 26-27)라고 불린 최초의 지구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다스렸다. 이때에 하나님은 자신의 인격인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기도 한, 참되고 영원한 문자적인 빛으로 땅과 두 하늘들을 직접 비추셨다(요일 1:5, 1).

그 후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루시퍼)은 교만해져 하나님의 왕좌를 찬탈할 음모를 꾸몄다( 14, 28). 하나님은 그를 리워야단( 41, 27)으로 형체를 바꾸고 하늘에서 쫓아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구를 홍수로 파멸하시고( 4:23-28, 26-28, 9:11), 주변을 온통 어둠으로 감싸 버리셨다. 감촉으로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둠이었을 것이다( 4:25). 이것이 심판의 결과이며 창세기 1:2 직전의 천지의 상태인 것이다.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 운행하셨느니라.”( 1:2)

지구는 황량한 폐허가 되었다. 비어 있고, 그 안에 사는 존재들도 없다. 땅의 기초가 드러나고 궤도에서 어긋났으며, 깜깜한 어둠에 휩싸였다. 어둠을 모르던 세상은 끝장이 났고 하나님의 빛은 이제 있지 않다. 이 상태는 구원받기 전의 우리의 잃어버린 상태와도 같다.

성경은 하나님은 빛이시요,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나니 라고 말한다. 우리는 과거에 잃어버린 자였고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이 지냈다. 우리는 삶에 목적도 소망도 없으며, 왜 사는지 특별한 이유도 없던 무의미한 존재였다. 하지만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창세기 1:3에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와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셨다. 이는 죄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창세기 1:1에서 하늘들과 땅을 비추던 하나님 자신의 빛을 거두셨다. 마귀는 가증스럽고 최악의 신성모독적인 반역을 저지른 후에도 필생을 걸고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사칭하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애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완전히 끝을 내지는 아니할 것이며그리고서는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시고 말씀하셨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빛을 만드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아멘, 아멘!

3절의 빛은 일시적이며 영원하지 못한 빛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빛이기는 하나 하나님 그 자신이신 참된 빛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성경은 시편 74:16에서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니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라고 증언한다. 아멘.

하나님께서 이제 세상에 직접적인 빛을 주시지는 않고 있으나, 하나님은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의 빛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패턴은 남겨 주셨다. 우리는 그분의 완전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하게 하는 유일무이한 피를 믿음으로써 우리는 그분의 진노로부터 건짐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 1:2)이 있다. 그 빛은 우리의 어두워진 마음을 비추고, 우리로 하여금 참 하나님과 영생을 알게 한다. 구원받은 우리는 언젠가 지옥의 정죄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참된 빛이 거룩한 도시인 새 예루살렘에 드러난 것을 볼 것이다. 하지만, 그 빛이 없는 사람은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바깥 어둠, “불 호수에 던져질 것이다.

 

 

8장 반론에 답하여

 

다음은 창세기 1:1-3이 말하는 교리적 진리를 둘러싼 반론에 대한 답변이다.

 

반론 1. 요한복음 8:44처음부터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미래의 일을 미리 아신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이 시점은 원창조 이전에 일어난 사탄의 실질적인 타락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요한복음 8장에서 사탄의 특성에 대해 말씀하실 때, 특정한 시제 구분이 없는 영원을 기준으로 뒀다는 암시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 본문을 보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

하나님은 바리새인들을 상대로, 과거에 일어난 일을 분명하게 과거 시제로 말씀하고 계신다. 또한 마귀가 현재 가지고 있는 성품에 대해서는 현재 시제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시간이 있기도 전부터 계셨지만, 마귀는 그런 영원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라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고린도전서 2장이 제시하는 성경 공부 방법을 따라서 영적인 말씀을 성령님이 가르치시는 영적 말씀으로 대조해 보고 그 결과를 정직하게 따르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성경이 스스로 정의하는처음이라는 시기가 바로 사탄이 살인자이기 시작한 때임을 즉시 수긍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당신 자신과 하나님에 대해서 정직하지 못하며, 이 구절에 드러난 성경의 간단한 진리조차도 믿지 못하는 상태이다.

 

반론 2. 창세기 1:2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다는 상태(was)일 뿐이지, “형태가 없고 비게 되었다는 변화(became)가 아니다. 해당 원어가 다른 곳에서는변화라는 의미로 번역되기도 하더라도 말이다.

필자는 창세기 1:2되었다’(became)라는 의미라고 말한 적이 결코 없다. 이 구절이 어떤 사건의 발생을 의미하는 내용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반대자들의 요지이다. 성경의 이곳에서 최초로 등장하는있었다’(was)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이미 있는 어떤 상태만을 나타낼 뿐 사건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 이 구절은 어떤 사건의 발생도 다루지 않는다는 건 맞다. 모든 사건들은 2절보다 전에 이미 일어나 버렸기 때문이다. 2절은 단지 심판 후의 상태만을 평이하게 묘사한 것일 뿐이지 심판 그 자체를 기록한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서 4:23도 이 점에서는 일치한다. 문맥은 심판임이 분명하지만 서술은 심판 후를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그 구절 역시있었다되었다를 의미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뿐만 아니라 반대자도 역시 시인한 것처럼, 창세기 1:2에서있었다에 해당하는 원어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되었다라는 의미로 번역되기도 했으며 이것은 그 단어 자체가되었다를 의미하기도 함을 나타낸다.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이 제임스 1세 시대의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면서 결코 실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킹제임스성경은 완벽하다. 당신이 성경을 믿는다면 성경이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임을 역시 알 것이다. 그런데도 원어 운운하면서이런 의미가 아니다, 가끔은 이렇게 번역되기도 했을지라도…”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당신이 하나님의 영감 받은 말씀에 대한 믿음이 아직 부족함을 보이는 것일 뿐이다. 또한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반론 3. ‘형태를 뜻하는 히브리어는 단순히형태 없음그 자체일 뿐이지, 특별히 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창세기 1:1-3에 담긴 교리적 진리가형태를 뜻하는 히브리어가 무엇이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형태가 없고라는 영어 표현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서 드러나는 그분 성품과는 상반된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품위 있고 질서 있게 행할지니라.” 라고 명령한다. 무엇의 형태(form)라 함은 그 사물의 모양, 구조, 의미, 존재 따위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 형태가 없다는 것은 품위 있는 상태도 아니며 질서 있는 상태도 아니다. 필자는 그 단어가 히브리어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나, 킹제임스성경의 언어인 영어로는 분명히 안다.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나 땅이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만이 그 주변을 감싸고 또깊음의 표면 위에있게 된 것이다.

 

반론 4. 창세기 1:31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여전히 보기 좋았다. 따라서 사탄은 그때까지 아직 타락하지 않았다.

창세기 1:31이 진술하는자신이 만든 모든 것이라는 요약은 1장에서 언급된 엿새 동안의 창조 활동으로 범위가 한정된다.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재창조이다. 필자가 앞서 밝혔듯이, 6일 창조의 첫째 날은 3절 이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성경이 다른 곳에서 창조에 대해 언급할 때 보편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6일 창조인 것과 마찬가지로, 31절 역시 가리키는 대상은 3절부터 시작하는 6일 창조이다.

그 반면 1-2절은 우리가 알다시피이 있기 전에, ‘이라는 단어가 정의조차 되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어둠이란 단어를 예를 들어 보자. 우리는 어둠이란 좋지 않은 것임을 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느니라.” 2절은 어둠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지만, 어둠의 창조에 대해서는 창세기 1장에 나오지 않는다. 그에 대해서는 이사야서 45:7과 예레미야서 4장에 나온다.

이로부터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창세기 1:31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범위에 어둠이란 포함되어 있지 않음이 틀림없다. 어둠은 성경에서 결코 좋은 뜻으로 쓰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창세기 1:3부터 1:31에 등장하는 모든 것은 매우 보기 좋았으나, 1-2절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반론 5. 로마서 5:12에 따르면, 이 땅에서 최초로 죽음을 선고 받은 사람은 아담이다. 따라서 아담 이전에는 죽음이나 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로마서 5:12를 직접 펴서 성경 말씀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성경에 따르면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그런데 필자가 묻고 싶은 게 있다. 이 세상이란 어느 세상을 말하는가? 히브리서 11:3을 보면,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는다고 한다. 여러 세상이 존재하기 때문에세상이 복수형이다. 이런 표현은 히브리서 1:2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그렇다. 아담은 지금이 세상에 죄를 가져다 온 최초의 인물인 건 맞다. 그러나 그는 어느 세상에다가도 전부 죄를 가져다 온 인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 세상은 창세기 1:3 이전에는 시작하지 않았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본서에서 필자가 논의하는 모든 일들은 창세기 1:3보다 앞서 일어난 것들이다. 히브리서 11:3을 다시 보자.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

‘세상’이 단수가 아닌 복수임을 주목하라. 이때의세상이란 지구라는 행성이나 지구에 사는 거주민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일정한 기간, 혹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조성된 시간의 기간들을 뜻한다.

이는 히브리서 11장의 문맥을 보면 명확해진다. 11장은바라는 것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시작하는데(1), 이 구절은 시간-공간-물질의 연속체의 창조에 대해 언급하는 3절과도 관련이 있다.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 그렇게 시작한 히브리서 11장은 여러 다른 기간들에 살았던 성경의 인물들을 연대기 순으로 나열하고서 이렇게 결론을 짓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마련하사.” 이 마지막 구절이 언급하는 것은 영원한 미래로, 바로 필자와 같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맞이할 영원한 미래이다.

, 여기까지 오면서 영원의 세계에 대해 언급된 표현이 무엇이 있나 보자. 1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고, 3절에는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니라.”가 있다. 5절에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아니하고 옮겨졌으니 10절에는 이는 그가 하나님께서 건축하고 만드신 도시 곧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음이라.” 16절에는 그들이 이제는 더 좋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속한 것이라이는 그분께서 친히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예비하셨음이라.” 27절을 보자. 이는 그가 보이지 아니하시는 이를 보는 것같이 하여 견디어 냈기 때문이며 그리고 끝으로 40절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마련하사.”이다.

그러니 히브리서 11:1과 히브리서 11:3 사이에는 또 다른 시대가 있었으며 그것은 바로 창세기 1:1-2 사이의 까마득한 과거이다. 그리고 나서 창조가 있었다. (혹은 재창조. 영어 성경에 등장하는 replenish라는 단어에 쓰인 re 접두사 역시, 성경에서와 같은 용법이다. 창세기 1:3-31과 대조해 볼 것.) 3절로 가면 우리는 이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경륜들을 맞이하게 되고, 40절에 가서야 다음 시대에 대한 언급을 본다.

이제 다시 3절로 돌아간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이 부분은 모든 시대들을 일컫는 말이다. 3절 후반부의보이는 것이 바로 현 시대에 대한 시작을 가리킨다.) “…보이는 것들은(보이는 것이란 이 시대에 존재하는 일시적인 것들을 말한다.)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진(창세기 1:3에서 시작하는 그 창조이다.) 것이 아니니라.” 3절의 후반부는 필자가 앞서 말했던 대로, 이 시대의 전에 있었던 것들의 상태를 어렴풋이 일컫는다. 그 시대에 이 땅에 최초로 살았던 존재들은 천사들, 신들, 스랍과 그룹들임을 기억하기 바란다.

다음으로는 상호 참조 구절인 히브리서 1:2를 보자.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2)에 대한 언급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만든 것은세상들이다. , 복수이다. 11장을 보면 바로 이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어졌다.

히브리서 1장을 살펴보면 먼저 첫 세상, 혹은 첫 시대에 대한 설명을 접한다. 2절에서는 모든 세상들을 통틀어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4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이 천사들보다 훨씬 더 우월하다는 말이 나온다. 5절에서는 예수님이 그 하나님의 아들이며, 천사들과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진술된다. 그리고 6절에서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바로 그 아들을 경배하고 있다.

그리고 7절은 천사들의 창조에 대한 언급이다. 또 천사들에 관하여는 이르시기를, 그분께서는 자신의 천사들을 만들어 영들로 삼으시고 자신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 하시되.” 8절에서는 하나님의 왕좌와 그분의 왕국이 거론된다. 10절에서는 땅을 받치고 있는 기초와 하늘이 언급된다. , , 주께서 처음에 땅의 기초를 놓으셨사오며 하늘들도 주의 손이 이루신 작품이니이다.” 이것을 욥기 38:4-7과 대조해 보라.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끝으로 11 12절은 지금 있는하늘들과 땅에 대한 언급인 동시에 이들의 최후까지 다룬다. 그것들은 멸망하려니와 베드로후서 3:10-12와 같다. 그것들은 뜨거운 열에 녹으리라.”

우리는 히브리서 1장에서 모든 시대들에 대한 전체 윤곽을 보게 된다. 하나님 자신이 1절에서 등장한다. 그분은 여러 다른 사람들에게 제각기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신다. 그러다가 2절에서는우리라고 불리는 어느 누구에게나 자신의 말씀을 전하신다. 4-7절에서는 천사들에 대한 언급이 여러 번 나오고 7절에서는 그들의 창조에 대해서도 다루어진다.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 대해서는 8절에 나온다. 하늘들과 땅의 창조에 대해서도 10절에 언급됐다. 그리고 11-12절은 현존하는 하늘들과 땅에 대한 언급이며 또 이것들의 훗날 운명에 대한 예고이다.

물론 이 장의 전체 주제는 하나님의 영원성과 불변성이다. 모든 시대, 혹은 세상들을 통틀어도 주는 여전히 계시겠고주는 동일하시고 주의 연대는 끊어지지 아니하리이다.”(11-12)

 

반론 6. 간극 이론이란 성경을 화석과 같은 과학적 발견과 조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 의도부터가 불순하다.

필자는 본서를 저술하면서 어디에서도 과학적 발견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으며 진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화석 기록을 제시한 적이 없다. 그 대신 필자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꾸준하고도 일관성 있게 성경 구절만을 보였을 뿐이다. 사실간극이라는 단어가 성경이 말하는 상태를 잘 묘사하기는 하지만 그 단어 자체도 본서에서는 쓴 적이 없다. 그저 성경만을 읽고 그대로 믿기 바란다.

 

반론 7. 예레미야서 4장을 보면 새와 사람들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하지만 6일 창조에 대한 진술을 보면 넷째 날 이전에는 새가 등장하지 않으며 여섯째 날 이전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18:2를 살펴보면란 마귀를 뜻하는 단어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마귀들의 거처가 되고 온갖 더러운 영의 요새가 되고 온갖 부정하고 가증한 새들의 집이 되었도다.” 따라서 예레미야서 4장에 언급된 새들 역시 사실은 마귀들을 의미하는 경우이며, 이들은 넷째 날보다 전에 창조되었다. ‘사람이란 용어에 대해서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창세기 18장이나 요한계시록 21:17 등에서 사람은, 사람보다 먼저 창조된 천사를 가리킨다.

 



[1]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Days of Praise, September 30, 1996. HMM, “The Creator of Darkness”

[2] Ryrie, Charles. Basic Theology. Colorado Springs. CO: Chariot Victor Publishing, 1996. (184)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91 교리 "택함받음(예정)"에 관한 교리 이우진 05.11 4746
590 교리 '그러므로' 김수광 12.01 42
589 양육 '참 자아'를 발견한 사람들 김수광 04.26 112
588 읽어보세요 '참 하나님'을 경배해야 하는 이유 김수광 08.05 250
587 복음 (한영)하나님의 구원 계획 이우진 03.28 6500
586 컬럼 2011년 문서사역 후원회 보고 이우진 01.03 3928
585 컬럼 2011년 여름수양회 이우진 08.01 3996
584 컬럼 2012년 문서사역 후원회 보고 이우진 01.06 4123
583 컬럼 2013년 목요 원서 강독(In Awe of Thy Word,... 이우진 12.28 7681
582 컬럼 Faith Mission-하나님만 바라보는 사역 이우진 06.06 5262
581 교리 The 명절 김수광 09.19 101
580 양육 Well-dying(웰 다잉) “잘 죽어보세” 김수광 02.12 15
579 교리 ‘로마서’에 계시된 부활  김수광 04.09 68
578 양육 “Let us …” (우리 … 합시다) 김수광 02.26 48
577 양육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 김수광 01.26 131
576 교리 “다 이루었다” 김수광 12.25 92
575 교리 “주기도문” 김수광 03.05 140
574 양육 가장 위대한 유언 (죽음을 앞두고 인생을 돌... 김수광 01.15 163
573 교리 간극이론1-서문, 제1장 창세기 1장 1절, 제2... 이우진 11.19 5934
572 교리 간극이론2-제3장 하나님은 빛이시다, 제4장 ... 이우진 11.19 436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0 Next
/ 30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