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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지질학-6 전세계적 먼지 파형(波形)과 선사 지질시대 기후 지표들

by 이우진 posted Oct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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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지질학


Gaines R. Johnson 지음 / 강찬재 옮김


6 전세계적 먼지 파형(波形)과 선사 지질시대 기후 지표들


 


1993 7월 ‘그린란드 빙상 프로젝트2(GISP2)[1]라는 계획을 통해 토대가 되는 기반암을 1.55m 직경으로 얼음을 통과하여 3,053.44m까지 드릴로 구멍을 뚫는 작업을 완성시킨 바 있다. 이 작업을 통해 현재까지 로서는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얼음 중심인 빙핵이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1년이 못되는 시점에 유럽에서는 ‘그린란드 빙핵 프로젝트(GRIP)[2]라는 또 다른 계획을 통해 ‘그린란드 빙상프로젝트2(GISP2)’로 부터 동쪽으로 30km 떨어진 지점에서 3,028.8m의 깊이를 뚫어 다른 중심부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두 군데의 깊은 중심부 사이에서 발견된 비교 데이터로 인해 과학자들은 BP (BP, Before Present는 학계에서 사용하는 기준년도로1950년으로 정의한다) 11만년 전보다 더 오래된 빙핵에서 추론된 선사 지질시대 기후기록을 발전시키게 되었다.


얼음 속에 기록된 지구의 대기 역사에 관한 이와 같은 10만년 + BP년 값 설정은 대리 연대결정 방법들에 적용되어 매우 잘 측정되어 왔다. 그 얼음 속에 포함된 CO2 가스에서 추출된 방사선 탄소와 다른 측정 기법들을 비교해 볼 때, 볼 수 있는 얼음 단층의 일년에 걸쳐 쌓아 올려진 단층 계산은 현재로부터 BP 11.64년은 약 2%정도, BP 17.38년까지는 약 5%, BP 4만년까지는 10%의 연도상 오차 요인이 산출되었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 얼음은 집합적인 측정들이 가리키는 만큼 오래 된 것으로 증명되어 왔다. 이러한 데이터만으로도 지구의 나이가 약 6천년 정도 되었다는 젊은 지구 창조론의 핵심 교리를 무너뜨릴 수 있다.


중심 속 어느 정해진 깊이에서 측정된 얼음의 실제 나이에 더하여, 과학자들은 또한 현재 CO2내 산소(O16 O18) 가스의 동위원소 비율을 측정함으로써 다른 시간과 시기 동안 지구의 과거 기후의 평균 온도를 측정할 수 있다. ‘그린란드 빙상 프로젝트2(GISP2)’와 ‘그린란드 빙핵 프로젝트(GRIP)’의 두 계획들에 좀 더 참고 될 만한 이러한 측정기법과 다른 기법들에 관한 가득한 세부항목들은 선사 지질시대의 기후에 관한 하이라이트 웹사이트인 ‘그린란드 빙상 프로젝트2(GISP2)’의 빙핵 기록에서 전부 읽어 볼 수 있다.   


젊은 지구 창조론을 신봉하는 이러한 세속적인 비평가들은 빙핵층 속에 어떠한 홍수 지표들도 존재하지 않은 이래로 노아 홍수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지구의 나이가 6천년 보다 더 오래 되었다는 절대적인 증거로써,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와 페루의 휴아스카란 위의 빙하들의 빙핵에서 발견된 데이터 뿐만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그린란드 빙하와 선사 지질시대의 환경 기록을 인용한다. 이 지적에 관한 한 그들은 절대적으로 옳다. 그러나 전세계적인 홍수가 아예 없었다는 주장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는다. 틀림없이 고려할 만한 “비간접적인” 증거는 분명히 존재한다.


 


빙핵은 그린란드나 지구 주변의 산 정상 빙하든지 간에 상관없이 “용해하는” 지표들과 관계된다. 이것들은 얼음 표면의 막연한 양이 퇴적물 사이에서 용해되어 왔던 단층들이다. ‘그린란드 빙상 프로젝트2(GISP2)’ 계획에서 단층의 연대 결정에 대한 분석은 약 3.8년이 산출되었다. 그러므로 빙핵 기록 속의 노아 홍수를 결정적으로 증명하거나 증명하지 못하는 1년간 계속된 홍수에 대해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 얼음은 노아 홍수에 의해 고정된 바위가 떠돌아다니거나 바위에 빠르게 고정된 채 남아있으며, 홍수의 물들에 의해 가라앉혀졌든 간에 어떤 차이점도 없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 사실이든 시나리오로 볼 때 정상의 단층들은 퇴적물내 용해된 단층이나 중단이 일어난 결과로 (염분 없는) 담수에 의해 씻졌을 것이다. 비로 인한 전자의 경우와 급속도로 높아진 담수로 범람된 후자의 경우인 두 가지 경우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자. (담수 설명을 위한 노아의 홍수 단면들을 보라). 중요한 것은 그린란드 빙하와 산 정상 빙하가 존재하고, 연대가 같은 단층 지점들이 서로 대조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찾으려는 것과 발생 장소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제 우리는 그런 사실들을 통해 배우게 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소유한 성경책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 사건이 사실이며 성경적 연대에 따라 이런 전세계적 사건이 기원전 약 2,345(대략 BP 4,295)에 발생한 사건이라 말씀하고 있는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리고 만약 ‘그린란드 빙상프로젝트2(GISP2)’와 ‘그린란드 빙핵프로젝트(GRIP)’ 계획에서 밝혀진 데이터가 모두 사실이라면,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현재 그린란드 빙하의 기초를 구성하는 물질의 대부분이 그러한 홍수 후까지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지구가 또한 6일간의 재생성 기간 이전에 홍수 물로 범람했었던 것처럼, 이 두 홍수 후까지 살아남아 있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창세기 1:2 말씀을 보라.)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빙핵에서 얻어진 선사 지질시대 기후 데이터는 우리에게 창세기 1장의 6일간의 창조 시기 이후뿐만 아니라 6일 이전을 포함해서 환경 조건들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 줄 수 있다. 노아의 호수 이후로 빙하에 축적되어 온 것들은 우리들에게 그때로부터 현재까지의 변화된 환경에 대해서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림 5-3에서 위 도표는 선사 지질시대의 대표 데이터로써 현재 이전의 1 8천년 동안에 걸친 전세계의 기온 동향을 보여 주고 있다. 좌측 하단의 검은 선들은 마지막으로 거대한 소멸적 사건이 시간선상 고생물학적 관점에 따라 어느 곳에서 발생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이어지는 다음 부문에서 더 상세히 다루어질 것이다.) 우측 하단의 검정 선들은 성경적인 역사와 사건들이 지구의 선사 지질시대 기후 기록상 어느 지점에 맞아 떨어지는 지를 가리킨다. 그림 아래 도표는 동일한 BP 1 8천년에 걸친 지구 대기의 SO4 이온(산성) 수준 관련 ‘그린란드 빙상 프로젝트2(GISP2)’ 계획에서 밝혀진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이온 농도는 시간선상 일정한 간격으로 발생한 전세계적인 화산 활동의 관련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  


혼성 도표상의 정보는 몇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들을 나타낸다. 아담이 살던 시대부터 노아 홍수 때(충적세 지질시대 최대량)까지의 지구의 평균 온도를 살펴보면, 홍수 이후 시대보다 약 1°C 정도 더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단지 약 1°C의 평균 온도 상승만으로도 지구상 더 높은 위도에서는 몇 도나 더 상승한 기온을 나타낼 것이다. 이것이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지는 지난 2세기 동안 대기 더해진 수백만 톤의 소위 온실가스로 볼 때, 측정한 온실효과는 여태까지 노아  홍수 이전의 약 0.5°C에 약간 못 미치는 온도만큼 증가된 평균 전세계 온도이다. 그러므로 아담에서 노아 시대까지의 세상은 상대적으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비교해 보면 훨씬 더 따뜻했을 것이란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안전하다.


또한 (대략 BP 4,300년 전에 발생했던) 노아의 홍수 시기에 화산 활동이 있었음을 나타내는 도표상 큰 파형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이는 전세계적이며 대규모의 수중 속 구조 변화나 화산 활동에 의해 융기가 이루어졌다는 가설 근거를 제시해 온 젊은 지구 창조론에서 주창한 홍수 모델들이 사실상 선사 지질시대 기후 기록에 있어 어떤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당신이 위 도표의 하단 부분을 자세히 조사해 본다면, BP 4,300년의 SO4 이온 농도가 전체 BP 18,000년에 걸친 시간선에서 측정된 것 중 가장 낮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는 아담 창조와 지구 재창조가 이루어지는 6일 이전 시기 곧 그 기간에 해당하는 플레이토스 지질시대의 경우, 대규모적인 소멸이 이루어진 시기였으며, 지구상 가장 활발했던 화산 활동이 있었던 파형과 매우 대조됨을 볼 수 있다. 활발한 화산 활동을 나타내는 파형 표시인 이러한 수준은 이전 6,000년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기에는 이에 필적하는 것이 없다. 이러한 화산 활동은 분명히 매우 오래 된 어떤 세상의 질서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주요 제공 원인으로 (또는 적어도 구성요소 정도로는) 기여했었을 것이다.


위 그림 도표로 돌아가서, 우리는 약 BP 4,300년경에서 시작해서 지구의 기온이 1.8°C 정도까지 급격하게 하락했음을 보게 된다. 이는 노아의 홍수 사건이 발생한 이후의 시기에 있어 직접적이며 정확하게 시간 구성에 잘 맞아 떨어진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볼 때 갑자기 급격한 기후 변화나 분명히 매년 바뀌는 계절 시즌에 대한 소개와 일치할 것이다. 홍수 직후 발생한 변화에 대해 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암시하고 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뿌리는 때와 거두는 때와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경루와 낮과 밤이 그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22)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산, 페루 후아스카란의 그린란드 빙상, 심지어 오만의 수중 퇴적물 등의 이 모든 것들이 약 BP 4,300년에서 4,000년까지 일치되는 이례적인 지표가 존재한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이것들은 발표된 이론으로 볼 때 두 가지 사례로 이집트의 고대 왕국과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디안 제국과 같이 많은 고대 문명들의 몰락으로 갑자기 떨어뜨린 원인은 급격한 기후 변화 때문임을 제시하는 지표로 해석되어 왔다.


(인터넷 구글 자료에 나온) 역사상 환경적인 극단 상태에 관한 이러한 글들을 보면, 큰 가뭄, 거주의 포기와 포기된 거주의 연기된 재거주의 반복된 형태들로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기후 변화와 아카디언 제국의 몰락 : “심해로부터의 증거”란 제목으로 구글 인터넷 기사에 나온다. 또한 또 다른 제목의 기사인 “해저 바닥에 깔려있는 고체 미립자”에 관한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1. 방사선 탄소 연대 결정 방법에 의해 결정된 시간 구조는 BP 4,170 +/- 150 cal 년이 산출되었다. 이 수치는 (연대결정 방법의 오차 범위 내에서) 노아의 홍수 시기에 들어맞는다.


 


2. 도표상 CACO3의 가파른 파형과 오만의 만에 있는 퇴적물 속 백운암, 그리고 BP 4,194년 상 느닷없이 하락한 파형에 주목하기 바란다. 다시 오차 범위를 고려해 볼 때, 그 수치도 홍수 이후 시기들에 꼭 들어맞음을 볼 수 있다.


 


3. 저자는 오만의 만에 있는 퇴적물의 원인을 근접한 육지에서 불어온 먼지에 기인하고 있음을 주목하기 바란다. 이 같은 결과는 큰 가뭄이 당시에 있었음을 가리키는 증거이다.


 


4. 퇴적물은 거의 약 300년 동안이나 버려진 채 남겨졌다는 관찰 기록을 주목하기 바란다.


 


5. 그 보고서의 저자는 인용된 유기체적 유물에서 측정된 방사능 탄소가 가리킨 그 때에 갑작스럽고 급작스런 기후 변화의 발생과 극심한 가뭄 상태가 시작했으며 그때부터 지구는 생물이 살 수 있는 거주가 불가능해졌음이 그 자료를 통해 올바르게 추론되어 왔다. 저자는 기후 변화의 원인을 식별하거나 그 가뭄이 거주의 포기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증명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그 증거를 바탕으로 후자가 원인이었을 것이란 가정과  명제를 만들어 오게 된 것이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 저자는 결코 극도의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가 노아의 홍수와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다.


당신께 질문한다. “가뭄과 먼지는 어떻게 해서 전 세계적인 홍수와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모든 것!!!


다른 이론에도 그 동일한 자료를 적용해 보았을 때, 필자는 그 뒤에 온 전 세계적인 홍수에 이어서 지구는 홍수 물들이 가라앉자마자 끔찍한 가뭄 상태를 겪게 되었을 것이다. 그 먼지가 예외적으로 그 증거라 볼 수 있다. 아카디언 제국의 거주지가 갑자기 버려진 원인은 그 가뭄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주장될 수도 있다. 그 원인은 땅의 거주민들을 한꺼번에 익사시켰던 노아의 홍수 사건 때문이었다.


토양을 억제시켜 생존한 뿌리 체계를 거의 없애거나 아주 적게 남길 정도로  지구 식물의 대부분이 사라졌으므로 홍수에 이은 그 가뭄 상태는 어느 정도 예측될 수 있을 것이다. 땅의 거주는 노아 가족의 후손들이 번성해서 도처로 흩어지기 시작할 때까지 수십년 동안 포기된 채 남겨졌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그 지역으로 다시 이주했을 것이고, 땅의 상태는 다시 도시 수준을 바탕으로 농경을 유지하는데 알맞게 되었을 때 정착했었을 것이다.   


만약 이러한 시나리오가 사실이라면, 그 당시의 그러한 기후 효과들은 거의 전 세계적인 영향을 미쳤었을 것이고, 역사적으로 동일한 시간 구조에 부합되어 지구 어디에서나 동일한 기후와 먼지의 이상 현상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는 남반구 페루의 안데스 산맥 만큼 높은 곳에 위치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과 대서양을 건너 후아스카란 빙하로부터 추출된 빙핵에서 발견된 증거가 있다.


다음 페이지에는 두 개의 도표가 있다. 위 도표는 후아스카란 빙하에서 추출된 세 가지 데이터 수식을 보여주고 있다. 매우 현저한 먼지 파형(Dust Spike) 그래프와 대략 4.3ka(노아의 홍수) 시기의 시간 구조를 주목하길 바란다. 당신이 도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후아스카란으로부터 수천 마일 떨어졌으며, 오만의 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하나의 대양에서 발견된 그 먼지 흔적과 (먼지) 지표의 공통된 성질, (4천년 이하의) 시간 구조가 동시에 일어난 상관관계보다 더 오차범위 내에서 충분히 가깝게 일치함을 볼 수 있다. 아카디언 제국의 거주(제국화, 붕괴와 재거주)의 연속된 시간선 또한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또 다른 인터넷 기사에서 제시된 자료에 의하면 킬리만자로 산의 빙핵은 또한 동일한 시간 구조 속에 있는 먼지 지표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으며, 기후 사건이 이집트의 옛 왕조를 포함해서 몇몇 고대 문명의 붕괴와 연결되어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더해서 지지하는 또 하나의 증거가 에디오피아 고지인 타나 호수 밑바닥의 퇴적물 표본들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 호수는 나일강에 물을 공급하고 있으며, 거기서 나온 그 표본들은 호수가 약 4,200년 전에 바싹 말라 고갈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다


우연하게도 이집트 옛 왕조의 유물에서 발견된 고고학적/천문학적 증거는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인해 지구의 축이 기울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물리학자들도 전지구적인 홍수가 정말로 축 변화의 원인이었을 것이라 말하며, 그 축의 변화가 기후 형태에 있어 전세계적인 변화들을 일으키는 데 대부분 확실히 기여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창세기와 지질학”에 관한 웹 싸이트에 계시한 성경 자료를 보면, 우리는 그 기사에서 돌에 표시된 기울기에 관해 “2,345년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가리키는 이집트의 카낙 신전에 대한 또 하나의 연결된 만한 참고 사항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관심을 붙잡았다. 왜냐하면 노아 홍수 사건의 때가 또한 기원전 약 2,345년경(BP 4,295년 경)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정말로 이에 대해서 읽어 봐야만 한다


카낙 신전은 분명히 그 홍수로 부터 무너지지 않은 채 남은 건물이었기에 (만약 거기에 있었다면), 이는 우리에게 그 홍수가 대홍수 이전 시대에 살던 사람들을 모두 익사시켰다손 치더라도 대홍수 이전 시대 문명의 유물들은 완전히 파괴시키지는 못할 정도로 상대적으로 바다가 차분했었을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틀림없이 이러한 사실만 가지고 라도 대부분 “창조 과학”을 통해 제안된 그러한 대 격변, hydro-plate sliding, 수중속 화산 폭발, 그랜드캐넌의 지질단층 모델 모두가 오늘날 홍수 모델과 모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지 그런 식으로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답변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유효한 논쟁은 그린란드 빙상과 산 빙하들과 관계된다. 어떻게 그 얼음이 노아의 홍수 사건 이후까지 잔존해 있을 수 있었을까? 어떤 이들은  만약 그러한 홍수가 정말로 있었다면, 빙상과 산 빙하들은 분명히 기반암에서 떨어져 깨지고 물위에 떠 다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련의 빙핵 기록을 조사해 본 결과, 그러한 해체가 없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이들은 얼음이 그 자리에 뾰족한 채 남아, 가라앉았으며, 그 사건을 표시하는 얼음층 속에 홍수 증거를 담고 있을 것이라 주장한다


얼음과 눈으로 덮힌 가장 상층부의 일부는 녹아져 내렸거나 사라져서 어떠한 증거도 남기지 않게 되었지만 축적된 퇴적물속에 일련의 녹아내린 지표나 중단의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노아 홍수 이후 다시 새로워진 퇴적물은 단지 홍수 이후의 날들에 대해서만 가리키게 될 것이다. 이전에 논의된 그 먼지 파형의 퇴적물은 홍수 이후 시기에서 남겨진 것들일 것이다. 그러나 빙상이나 빙하들이 지구상에 단단하게 얼어붙은 채 남아 있고 홍수 물에 휩쓸려 사라져 버릴 수 있었을까


떠 다니는 부유 빙하는 아래의 모든 조건 하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다음과 같은 실험을 시도해 보라. 한 컵 정도의 얼음 조각들을 냉동실에서 꺼내서 가져다가, 금속이나 도자기 그릇 속에 부어라. 그리고 몇 시간 동안 냉동실 안에 그 그릇을 놓아두어라. 몇 시간 후 그 그릇을 치우고 주방 조리대 위에 그것을 놓아 빨리 그 그릇 속 얼음 위에 한 잔 정도의 물을 부어라. 당신은 그 얼음이 그릇 밑바닥에 단단하게 남아 있고, 그 결합력을 녹이기에 충분히 그릇의 표면 온도가 따뜻해질 때까지 물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러한 개념을 산 빙하 규모 정도의 어떤 것으로 바꾸어 생각해 본다면, 기반암이 따뜻해지기 위해 장기간의 시간이 걸리거나 더 확장된 결합력을 해체시키기 위해 물이 서서히 확산하게 됨을 알게 된다.  


대규모의 그린란드 빙상은 약간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노아 홍수로 부터 담수가 확실히 더 무거운 해수보다 훨씬 더 뜨기 쉬었을지라도, 즉 떠다니는 얼음에 덜 압력이 가해졌음을 의미하며, 심지어 만약 빙상의 밑바닥이 대륙에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었다손 치더라도, 얇은 규모의 빙상은 압박된 해체를 피할 수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린란드 빙상 프로젝트2(GISP2)” 계획을 통해 뚫린 구멍의 맨 밑바닥층 온도는 –9° C 였으며, 그 빙상이 기반암에 단단하게 얼어 붙어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빙상 윗부분으로부터 약 2,790m 아래 까지 “그린란드 빙상 프로젝트2(GISP2)”와 “빙핵 프로젝트(GRIP)” 모든 기록이 거의 일치한다. 이렇게 두 구멍이 약 30km 외곽에 위치한 이래로 그 얼음 기록의 구성은 거대한 지역에 걸치거나 그러한 두 구멍들 간에 서로 일치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그 연속 상태는 2,790m 아래에서는 사라지고 만다. 아래 내용은 선사 지질시대에 관한 하이라이트 웹 사이트인 “그린란드 빙상 프로젝트2의 빙핵 기록” 관련 이전에 언급된 자료의 인용 내용이다


지하 2,790m 깊이와 110 kyr 년 되는 “그린란드 빙상 프로젝트2(GISP2)” 빙핵의 가장 깊은 곳에 있어 기후상의 중요성은 상당한 조사와 논쟁의 문제가 있다. 년도에 있어 110 kyr 미만의 얼음에 매우 유사한 동위원소 온도 기록과 “그린란드 빙 상프로젝트2(GISP2)”와 “빙핵 프로젝트(GRIP)“의 전기적인 전도성은 가장 낮은 곳에서는 매우 다르다[Grootes et al., 1993; Taylor et al., 1993a]. 지하 2,790m 깊이의 “그린란드 빙상프로젝트2(GISP2)” 속 얼음은 포개져 있으며, 기울여져 있고, 불일치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Gow et al., 1993].


포개지고 기울여져 있는 층들과 불연속들의 발견은 대규모의 얼음 층이 부서져 왔거나 노아의 때 일어난 전세계적 홍수 또는 창세기 1:2절 말씀에서 발견되고 있는 그 이전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는 홍수에 의해 상승했었을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 자유롭게 떠다닌 후에, 대규모의 그러한 빙상은 지구의 코리오리스 힘(효과)에 의해 유발되어 북쪽으로 향하는 해류들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지된 그러한 사건 동안 같은 북 위도 위치상에서 매우  잘 남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매우 적은 빙상들만이 녹아내렸을 것이다. 홍수 물들이 줄어들었을 그때 빙상은 조용히 뒤와 아래로 놓여 졌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깨지지 않고 가라앉았던 얼음 위로 녹아내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남아있는 밑바닥의 얼음은 여전히 기반암에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더 많은 데이터 수집을 통해 해답을 제공할 수 있을 때까지 열려 진 채 남아 있을 것이다.


 


 




[1] 1993년 4월 1, 5년간의 드릴 작업을 통해 빙상을 1.55m 직경으로 3053.44m 깊이까지 뚫었던 다국적 계획.

[2] 유럽 8개국과 유럽연합(EU)의 후원으로 그린란드 빙상에서 빙핵을 채취하는 다국적 연구 프로젝트. 빙핵의 이산화탄소 함량을 검토하는 연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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