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02.23 09:38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8(2월 19일-25일)

조회 수 4105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8

2월 19일-25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219일

“…하나님께서 바람을 땅 위로 지나가게 하시니…”( 8:1)

 

홍수 이후에 관해서는 상당히 여러 가지 흥미로운 점들이 있습니다. 1절에 나오는 모든 생물이라는 단어는 방주 밖에 있던 모든 존재의 완벽한 멸망을 돌아보게 합니다.

2절의 깊음이라는 단어는 땅 위에 있는 궁창에 관한 말씀이지 땅 아래에 있는 물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다음 두 가지 사실이 이를 입증합니다. 첫째, 둥근 지구 속에 바깥을 뒤덮어 산꼭대기를 덮을 만큼의 물을 저장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둘째, 8 3절 말씀에 보면 물들이 계속해서 땅을 떠나 되돌아가고 라는 말씀이 있으므로 물들은 지구 바깥에서 왔음이 확실합니다.

여기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늘들과 땅을 뒤덮은 홍수(벧후 3:5), 즉 창조 후(벧후 3:4, 1:1) 발생한 물의 넘침(벧후 3:6)이 있은 후에 하나님의 영께서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셨다는 사실입니다( 1:2).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날들에 땅을 뒤덮은 홍수 후에 땅 위로 바람이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영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을 맺으시려 하시나 그것은 노아를 통해 이루어지는 간접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성령이 아니라 바람이 불게 하신 것과 간접적인 방식으로 언약을 맺으신 것-역주) 모두 하나님께서 인간으로부터 물러나셔서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계심을 시사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분은 인류를 심판하셨습니다. 다행히 노아는 은혜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인류를 파멸로 이끌었던 마음 상태( 6:5)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8:21).

 

물들이 줄어든 것( 8:1)과 물들이 물러나는 것에 관해서는 저자의 책 <어휘의 정의(By Definition)>을 참고 하십시오.

 

 

2 20일

까마귀와 비둘기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살아남은 동물들에 앞서 두 마리 새가 먼저 방주를 떠났습니다.

먼저 까마귀가 나갔고( 8:3) 이어서 비둘기가 나갔습니다( 8:8). 땅은 아직 질척거렸고, 어지럽혀 있었으며 썩은 시체들이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비둘기는 방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까마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까마귀는 깨끗하지 않은 새이며( 11:15, 14:14) 물이 줄어든 후 남겨진 썩은 고기들을 먹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비둘기는 그처럼 지저분한 땅에는 결코 발을 딛지 않습니다. 이것은 실제 역사적 사실입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영적 진리는 이보다는 더 복잡합니다. 핵심은 7절에 나오는 짧은 표현인 여기 저기 라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사탄이 하나님께 자신에 대해 보고할 때 스스로 사용한 표현입니다( 1:7, 2:2). 이것은 거짓 교리에 영향을 입은 사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4:14). 이것은 또한 한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겼을 때 보이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8:12).

반면 비둘기에 대한 기록을 보면 누구든 당연히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 그분 위에 비둘기 같이 내려오신 성령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3:16, 1:10, 3:22, 1:32).

이와 같이 어두운 그림자가 홍수 후의 역사를 뒤덮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악이 먼저 선수를 치고 땅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선은 뒤이어 나갔으나 자리를 정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기록에는 예언적인 적용도 가능합니다. 환란 동안 사탄과 그의 어둠의 군대가 풀려나게 될 것이나 주의 영께서 두 증인, 144,000명 그리고 이들의 회심자들을 통해 증언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 증인은 거부당할 것이고 결국 증언은 그치게 될 것입니다. 올리브나뭇잎이 새롭게 움틀 때가 되어야( 8:11, 11) 땅이 비로서 사람이 다시 살게 될 장소로 적당하게 될 것입니다.

 

 

2 21일

노아가 주께 제단을 쌓고…”( 8:20)

 

우리는 희생과 헌물의 성격에 대해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경배하고자 나아간 처음 두 번의 경우는 향후 뒤이은 모든 경배행위에 관한 교리적 진리를 확립시켜줍니다. 성경의 처음 8장에 나타난 희생과 헌물의 기본원칙을 이해하는데 실패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거짓종교와 거짓 교리들의 기틀을 마련하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갈 권리를 획득하려면 하나님께 헌물을 바쳐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것은 경배나 헌물이 아니라 오히려 뇌물이나 상업적 계약, 혹은 구매 행위일 뿐입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희생이 받아들여지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로운 호의나 축복에 대해 인간이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노아는 주의 눈에서 은혜를 찾았습니다( 6:8).

2. 하나님께서 노아를 구출하십니다(7).

3. 노아는 이에 감사의 표시로 헌물을 드립니다( 8:20-21).

 

이 순서는 창세기 4장에서도 동일합니다.

주님께서 1. 아벨과 2. 그의 헌물에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이에 대한 히브리서 11장의 해석을 보십시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욱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의롭다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에 대하여 증언하시느니라…”

 

이 근본적인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율법 아래에서 인간은 레위기에서 명령하고 있는 희생물을 바침으로써 구원받는다는 주장을 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진리와는 정반대의 교리입니다. 노아는 홍수에서 구출되고 나서야 희생물을 바쳤고 이스라엘 역시 이집트의 속박에서 벗어나 구속된 후에야 비로서 희생물을 바쳤습니다.

출애굽기를 잘 읽어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어린양의 피를 적용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출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속박으로부터 피신하기까지는 주님께 헌물을 바친 적이 없습니다.

또한 노아가 바친 헌물은 번제 헌물이었음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다시 말해 노아는 하나님만을 위해 온전히 바쳐진 자발적인 헌물을 바친 것입니다. 그러나 레위기 1:4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를 위해 속죄가 이루어지도록 내가 그를 대신해서 그것을 받으리라.” 즉 번제 헌물이 바치는 자를 대신해서 속죄를 이룬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구원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받은 후에 이 희생물을 바치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구원하시는 은혜를 받기 전에 희생물을 드리는 종교는(개신교든 천주교든 이방종교든) 다 잘못입니다.

우리는 축복받을 자격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은 호의에 감사하고자 하나님께 헌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노아가 희생을 바치는 이 말씀들로부터 우리는 정결함과 부정함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정결 혹은 부정이란 말은 건강이나 음식과 관련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희생을 받으시는가 아닌가에 관한 언급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소가 깨끗하니 소를 그분께 바치라고 요구하시면, 그 소는 깨끗하므로 바치는 자는 하나님께서 거룩하시므로 거룩한 것만을 받으시는 분이심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분께서 박쥐는 부정하다 하시고 그것을 헌물로 바치지 말라고 하시면 그것은 부정한 것이요 이에 그 사람은 그 어떤 부정한 것도 하나님께는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2 22일

노아와의 언약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와 함께한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나 곧 내가 내 언약을 세우되 너희와 너희 뒤를 이을 너희 씨와( 9:8-9)

 

우선 언약의 주체가 먼저 등장합니다(9). 그분은 다름아닌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계약은 당연히 두 당사자가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간과 하나님과의 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에 관한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보라, 나 곧 내가

11절을 보십시오. 내가세우리니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맺는

17절을 보십시오. 내가 세운

 

이것은 이 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만 나올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인간이 그에 합당한 아무런 한 일이 없는데도 주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로 주어집니다.

이 언약의 핵심 주제는 숨을 쉬는 그 어떤 생물도 다시는 전세계적인 홍수로 인해 익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구름들 속에 무지개를 두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자 함을 위함입니다.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노니 그것이 나와 땅 사이에 맺은 언약의 증표가 되리라.”(13)

무지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시켜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과거와 미래의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약속을 이행하실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나의 언약나의 무지개라는 표현에서 나의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음에 주목하십시오( 6:18을 보십시오). 또한 언약의 표적이 인간의 기억이 아닌 하나님의 기억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홍수를 부인하고, 성경을 버리고, 소위 거짓되이 과학이라고 불리는 것을 붙들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다시 예전의 폭력과 악한 길로 되돌아 갈지도 모릅니다. 사정이 점점 악화되어 결국 인간은 노아의 날들을 연상케 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될 것이나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을 잊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가 기억하리니…”(15) 내가 그것을 보고 내가 기억하리니…”(16)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 할 수 없느니라.”(딤후 2:13)

 

노아와의 언약은 노아의 홍수가 전세계적인 홍수가 아니라 국지적인 홍수에 불과하다는 이론들을 정면으로 완벽히 반박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보십시오. “…또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는 있지 아니하니라.”(11)

만약 창세기 7장의 홍수가 중동지역 지중해 연안에 한정된 것이거나 지구의 어떤 특정지역에만 한정된 홍수였더라면 그때 이후로 지구상에 발생한 모든 국지적인 홍수들은 전부 이 언약을 위반한 것이 될 것이고 하나님은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만약 창세기의 홍수가 국지적인 것이었다면 미시시피강이 범람하여 미주리 마을이 잠긴 사건은 하나님께서 신실하지 못하심을 입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노아의 홍수가 온 세상을 다 덮었던 세계적 홍수였다면, 그 어떤 몬순도, 허리케인도, 태풍도 그리고 그와 유사한 폭풍우도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하신 말씀의 순전함에 전혀 손상을 입히지 않은 채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23일

창세기 9장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창세기 9:1 1853년 러시아의 한 농부가(이름은 키릴로프, Kirilow) 두 번 결혼했다는 이유로 여왕 앞에 출두 했다고 합니다. 그의 첫 부인은 그에게 57명의 자녀를 낳아 주었습니다. (네 쌍둥이 4, 세 쌍둥이 7, 그리고 쌍둥이 2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둘째 부인은 15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두 쌍둥이 6번 세 쌍둥이 한번) 당시 총 72명이 다 살아 있었다고 합니다.

 

창세기 9:2 도시 사람들은 동물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야생동물들을 무서워합니다. 물론 날카로운 이, , 송곳니 같은 것들을 지닌 동물이라면 사람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경우에는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 동물 각각 안에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놓아 두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야수를 겁주거나 새끼가 위험하다고 믿게끔 하거나 일부러 화를 돋구거나 하며 결국 본성의 일부인 인간에 대한 두려움을 잃고 자기가 공격을 받고 있다고 생각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짐승들은 가능한 한 인간과의 접촉을 피하려고 합니다.

 

창세기 9:5,6 사형제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 목적은 사회를 개선 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살인자를 벌 주려는 것입니다. 논지의 핵심은 사형과 같은 극형이 무슨 유익을 가져오는가가 아니고 살인자가 살아야 할 자격이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의 답변은 살 자격이 없다입니다. 사람을 죽인 이유로 처형된 인간은 더 이상 그 누구도 죽이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9:13 현재의 사회주의 자들이 무지개를 인종통합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지개는 실상 밝은 분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 부분으로 분리된 색깔이 혼합된 것입니다. 색들이 진정으로 통합되면 각각의 색깔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창세기 9:23 성경은 뒤를 향한다(backward)는 말을 인간이 타락한 원래의 위치나 상태로 돌아갈 때 사용합니다. 뒷걸음을 친다는 뜻으로는 성경에 유일하게 이곳에서 쓰였습니다.

 

창세기 9:23 우리가 과거의 죄들을 다룰 때는 앞을 바라봐야 합니다.

 

 

2 24일

노아와 아담

 

아담과 노아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1. 두 사람 다 큰 홍수 후에 있는 새로운 시작을 담당했습니다(1:1-3, 벧후 3:5-6).

2. 둘 다 하나님께서 창조세계를 다스릴 통치자로 임명하였습니다(1:28, 9:2).

3. 둘 다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채우라는 명을 받았습니다(1:28, 9:1).

4. 홍수 후 각각 동산지기로 일했습니다(2:15, 9:20).

5. 둘 다 동산에서 생산된 무엇인가를 먹고 타락했습니다(3, 9).

6. 둘 다 타락의 결과 벌거벗은 채 발견되었습니다(3:7, 9:21).

7. 둘 다 그 누군가 다른 생명체에 의해 벌거벗음을 가리웠습니다(3:21, 9:23).

8. 이들의 죄는 후손에게 저주를 가져왔습니다(5:12, 9:24-25).

9. 둘 다 세 자녀를 두었습니다.

10. 세 자녀 중 하나가 약속의 씨를 낳았습니다.

11. 두 사람의 타락에 이어 이 세상의 미래에 관한 예언이 뒤따랐습니다(3:15, 9:21-27).

 

 

2 25일

두 홍수(1)

지구의 연대

 

지구의 나이에 관한 다섯 가지 가능한 이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1. 지구는 매우 오래되었고 인류도 매우 오래되었으며 하나님은 없다.

2. 지구는 매우 오래되었고 인류도 매우 오래되었으며 먼 과거 언젠가 이 모든 것 뒤에 하나님이 계신다.

3. 지구는 매우 젊고 인류도 매우 젊으며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

4. 지구는 매우 오래 되었고 인류는 상대적으로 젊다(과학적 주장).

5. 지구는 매우 오래 되었으나 인류는 매우 젊고 이 모두는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지구와 인류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에 대해서는 성경이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지으시고 즉시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셀 수 없이 긴 세월 동안 아무 일도 않고 그저 계시다가 갑자기 6000여 년 전에 뭔가를 하시기 시작하셨다는 논리는 지지 받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였습니다(1:1-5). 그리고 창조하신 것들에 적극적으로 간섭하셨습니다(1:17). 그 분께서는 보이지 않는 원소들로부터 모든 보이는 것들 것 만드신바(벧후 3:10-12) 이는 자신의 생각 속에 세워두신 계획과 목적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139: 16).

창세기 처음 세 구절은 하늘(소문자 heaven)과 땅(소문자 earth) 그리고 빛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 세가지는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들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입니다.

하늘              공간

                물질

                에너지 - 전자기 스펙트럼

 

보이지 나는 원소들로부터 만들어진 단단한 공간이 하늘(대문자 Heaven)이라고 불리며 마른 땅이 인간과 짐승을 위한 거처로 형성되어 땅 (대문자 Earth)이라고 불이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따라서 하늘(heaven)과 땅(earth)을 하늘(Heaven)과 땅(Earth)과 결코 혼돈해서는 안됩니다.

순서는 정확합니다. 공간, 물질 그리고 에너지가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Day), (Night), 저녁, 아침 그리고 첫째 날은 창세기 1:5에 가서야 비로소 나타납니다. 우리가 창세기 1:1 1:2 사이에 간극(gap)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다음 사실은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l      원 창조는 물로 뒤덮혀 있었음(1:2).

l      모든 것이 어둠으로 덮혀 있었음(1:2).

l      하나님께서는 이 물을 단단한 공간으로 형성하셨음(1:6).

l      하나님께서는 이 단단한 공간을 일종의 틀을 만들고자 나누셨음(1:7-9).

l      이 단단한 물의 경계 안에서 하나님께서 땅(Earth, 1:10)과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셨고(1:14-19) (Earth)의 거주자들도 만드셨음(1:20 이하).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3 강해 추천합니다. 담임목사 01.13 5974
62 강해 신약성경개요-01 복음서 서론 2 이우진 07.22 8028
61 강해 로마서 8:28 강해 -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 이우진 10.19 15178
60 강해 제2회 성경강연회-로마서 총정리 이우진 06.08 4460
59 강해 마가복음 12:28-31 강해 - 가장 큰 명령 이우진 05.11 6359
58 강해 로마서 12:1-2 강해 - 합당한 섬김 이우진 07.10 5576
57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1월1일-7일) 이우진 12.28 5213
56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2(1월8일-14일) 이우진 01.05 6682
55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3(1월 15일-21일) 이우진 01.14 4255
54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4(1월 22일-28일) 이우진 01.26 4685
53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5(1월 29일-2월4일) 이우진 01.26 4856
52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6(2월 5일-11일) 이우진 02.08 5755
51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7(2월 12일-18일) 이우진 02.08 4629
»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8(2월 19일-25일) 이우진 02.23 4105
49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9(2월 26일-3월 3일) 이우진 02.23 4433
48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0(3월 4일-10일) 이우진 02.23 4156
47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1(3월 11일-17일) 이우진 03.11 5198
46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2(3월 18일-24일) 이우진 03.11 4302
45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3(3월 25일-31일) 이우진 03.28 3793
44 강해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4(4월 1일-7일) 이우진 03.28 355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 4 Next
/ 4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