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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과 성경 연구를 위한 21가지 열쇠

 

James W. Knox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과의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How to study and teach the Bible Part 3의 내용을 요약 및 정리 것입니다.

 

1. 성경 연구 방법 셋째 시간입니다. 모든 성경 연구와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의 열쇠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절대적인 열쇠입니다. 만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다면, 성경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으면서 읽지 않는다면 성경의 저자이신 하나님께서 진리로 인도해 주시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결코 진리를 알지 못할 것입니다. 성경을 그냥 교양 서적을 읽듯이 일어서는 결코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교과서 읽듯이 읽거나 과학서적 읽듯이 읽거나 역사책 읽듯이 읽는다면 아무런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유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떻게 믿는 자들을 진리로 인도해 주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11:25을 보겠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응답하여 이르시되,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셨사오니 감사하나이다.” 사람이 진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 진리를 계시해 주셔야만 인간은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 큰 복이 아닙니까? 같은 장 27절도 보겠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넘겨주셨사오니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하고 아들과 또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낼 자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하나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드러낸다는 말씀을 주목해 보세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진리를 계시해 주시고 아들 하나님께서 진리를 계시해 주십니다.

 

3. 고린도전서 2:9-10을 보세요. 그러나 이것은 기록된바,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것들은 눈이 보지 못하였고 귀가 듣지 못하였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지도 못하였도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으로 우리에게 그것들을 계시하셨으니 성령께서는 참으로 모든 것 즉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살피시느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진리를 계시해 주시고 아들 하나님께서 진리를 계시해 주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진리를 계시해 주십니다.

 

4. 삼위일체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는 여러분은 결코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결코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머리가 좋건 얼마나 많은 교육을 받았건 간에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 진리를 계시해 주시지 않으면 결코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계시해 주시기 기뻐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진리를 계시해 주시겠다고 성경에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의 진리는 감추어진 비밀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면 주님께서는 주님의 진리를 알려주십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무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계시해 주고 싶어 하신다해도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결코 진리를 계시해 주실 수 없습니다.

 

5.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성경을 가르치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까요? 요한복음 14:25-26을 보세요.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으며 이것들을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그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여러분은 성경을 연구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여러분이 기도를 하면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이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해주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압니까? 이것이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해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의 뜻을 추측하거나 느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여러분이 공부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6. 여러분이 기도할 때 마음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없다면 여러분은 결국 하나님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 것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여러분이 성경을 연구하지만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머리에는 하나님이 있으되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는 바리새인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연구할 때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이 배운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와 성경 연구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이유이며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7. 요한복음 15:26-27을 보세요. 그러나 내가 아버지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에 대해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리라. 성경 연구는 기도와만 짝을 이루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 더해져야 할 것이 바로 말씀 증거입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시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면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이 배운 성경을 기억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증거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마음으로 느끼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성경을 알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바른 것을 구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을 증거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이 모든 것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8. 예전에 누군가 저에게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하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 저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제님이 매일 기도를 하고 매일 성경을 연구하고 매일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섬기고 매일 주님의 말씀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증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하룻동안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꾸준하게 이런 생활을 한다면 우리가 사는 지역은 변화될 것입니다.

 

9. 요한복음 16:13-14을 보세요.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분은 스스로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들을 것만을 말씀하시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너희에게 보이시리라. 그분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서 받아 그것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이기 때문이라. 어떤 사람이 성령 충만한지 아닌지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항상 성령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성령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항상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성령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10.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는 표현에 주목해 보세요. 잘 보세요.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을 그저 진리 가운데로 밀어 넣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을 진리 가운데로 강제로 집어 넣는 분도 아니세요. 만일 여러분이 진리를 알기 원하시면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원하지 않는데 성령님께서 강제로 여러분을 진리 가운데로 밀어넣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게끔 강제하시는 분이 아니라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11. 병거를 타고 가던 이디오피아 내시를 생각해보세요. 사도행전 8:30-31을 보세요. 빌립이 거기로 내시에게로 달려가 그가 대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이르되, 그대가 읽는 것을 깨닫느냐? 하매 내시가 이르되, 누가 나를 지도해 주지 않으면 어찌 내가 깨달을 수 있으리요? 하고 빌립이 올라와 자기와 같이 앉을 것을 청하니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런데 내시는 왜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었을까요? 그것은 내시 안에 성령님이 계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빌립은 어떻게 내시를 진리를 인도할 수 있었을까요? 진리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을 진리로 인도할 수 없어요. 그런데 빌립은 어떻게 이디오피아 내시를 진리를 인도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빌립의 안에는 성령님께서 내주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빌립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내시를 진리를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12. 빌립이 성령님의 인도로 내시를 진리로 인도할 때, 빌립은 성령님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빌립은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도 않았어요. 자기가 얼마나 능력이 많고 은사가 많고 성령충만한 사람인지 자랑하지도 않았습니다. 빌립은 입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빌립은 성령으로 충만했고 성령님께서는 빌립을 진리로 인도하셨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은 빌립은 내시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었고 내시는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13.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령님의 인도 없이는 결코 성경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을 진리로 인도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원하지 않는다면 결코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고 여러분이 원해야만 성령님께서는 인도해 주실 겁니다. 성령님이 여러분을 어디까지 인도하시는지 아세요?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을 진리로 인도해 주시고 결국에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인도해 주실 겁니다. 빌립을 보세요. 성령님은 빌립을 진리로 인도하셨고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내시에게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14. 성경을 연구하는 열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는 21가지 열쇠입니다. 첫째, 읽은 것을 믿고 아무것도 의심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읽은 것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15. 둘째,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찰 때까지 읽고 읽고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제와 관련된 구절들이 생각나고 서로 연결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님께서 자신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는다면 결코 그것을 생각하고 떠올릴 수 없습니다. 처음이나 두번째 성경을 읽을때에는 잘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여러분이 성경에 익숙해 질수록 관련 구절이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읽은 성경 구절을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시고 관련 구절들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그래서 아무것도 생각할 것도 없고 기억할 것도 없다면 성령님께서 진리를 인도해 주실 수 없습니다.

 

16. 셋째,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씀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제가 성경을 알게 된 것도 이 방법을 통해서 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은 여러분이 성경의 어떤 부분을 연구해야 하는지 깨닫게 해 줍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던진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을 때 그 질문을 기억하면서 성경을 읽으면 결국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여러분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는 부분에서 질문을 해 올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혼을 구원하려는 사람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일 경우가 많습니다.

 

17. 제가 구원받은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영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인이었을 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두 가지 복을 주셨습니다. 구원받은지 오래 되지 않아 저는 대학생이 되었는데 교회 건물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교와 교회는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저는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보다 한 시간 먼저 학교로 가서 근처에 있던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시간 동안 주님께 찬양을 드리고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수업에 들어갔고 수업이 끝나고 나서 저녁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다른 형제와 함께 복음을 증거하고 나서 함께 집에 돌아와 복음 증거를 할 때 답하지 못한 질문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도 답을 알지 못할때에는 그 부분에 대해서 성경을 연구했습니다. 한 번은 답하지 못할수도 있지만 다시 동일한 질문을 누가 한다면 그때는 답할 수 있기 위해서 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던진 질문은 성경 연구의 좋은 동기가 되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러 나갈 수 없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복음을 전하러 나가면 그 자체로 훈련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성경은 두꺼운 책이라서 어디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밖에 나가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보세요. 그러면 어디서부터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지 알게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막힌 질문이야 말로 성경 연구의 좋은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18. 넷째, 결코 추측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이라면 함부로 추측하지 말고 모든 관련 구절을 찾아보세요. 모든 관련 구절을 찾아보기 전까지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대부분의 경우 여러분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것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들은 얘기를 근거로 함부로 추측하지 마세요.

 

19. 다섯째, 여러분 스스로 먼저 연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책들과 주석들과 자료들을 찾아보세요. 어떤 사람은 자신은 성경 외에 다른 책은 전혀 보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른 책은 전혀 볼 필요가 없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감옥에 있을 때 책들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에서 가보에게 맡겨 놓은 겉옷을 가져오고 또 책들을 가져오되 특별히 양피지들을 가져오라.”(딤후 4:13) 사도 바울도 성겨 외에 다른 책들을 읽었습니다. 성경 외에 다른 책들은 읽을 필요가 없다면 교회에서 설교는 왜 듣는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말씀을 선포하라(preach the word)”고 말씀하셨습니다(딤후 4:2). 그리고 서로를 세워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를 세우라.”(살전 5:11) 설교를 그대로 글로 기록하면 책이 된는 것이지요. 설교를 통해서 말씀을 선포하고 다른 지체를 세워 줄 수 있는 것처럼 책을 통해서도 말씀을 선포하고 세워줄 수 있습니다.

 

20. 여섯째, 단 한 시간도 그리스어나 히브리어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저는 1976 12 17일에 구원받은 이후로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기 위해서 단 하나의 히브리어 단어나 그리스어 단어를 공부할 필요를 못느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리스어를 알았으면 성경을 더 잘 알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 그리스어를 배워야 하는 것인가하는 생각을 했던 적은 있었습니다. 어떤 여호와의 증인이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가지고 와서 저와 논쟁할 때였습니다. 그 여호와의 증인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펼쳐가며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성경을 거꾸로 펼쳐놓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어 성경을 가지고 다니던 그 자신도 그리스어 자체를 하나도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때 이후로 저는 그리스어나 히브리어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21. 하나님께서 우리의 언어로 완벽한 성경을 주셨다면(여기서 저자는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말하고 있음-역주) 우리에게는 그리스어나 히브리어 같은 원어 성경이 필요없습니다. 완벽한 성경이 있다면 왜 다시 원어를 확인해야 합니까? 원어를 확인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언어로 완벽한 성경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에게 완벽한 성경이 있다면 그것을 믿으면 됩니다.

 

22. 이제 우리는 성경의 문맥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앉아서 성경의 일정한 부분을 읽을 때 여러분은 다음의 질문을 스스로 해 봐야 합니다. 일곱째, 읽고 있는 부분이 신약이나 구약 중 어디에 속하는가하는 점입니다. 이것은 꽤나 기본적인 질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읽고 있는 부분이 위치적으로 구약이나 신약에 속했는지만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문맥 자체가 신약에 위치해 있더라도 구약에 속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특정한 본문을 읽을 때 지금 읽고 있는 부분이 구약의 진리인지 신약의 진리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디에 속하는지는 교리에 있어서 매우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23. 구약의 경우 율법이나 예언에 속하는 경우가 많고 신약의 경우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이나 신약 교회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약 성경의 경우도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유형, 그림자, 모형, 그림, 예언, 약속 등의 형태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실체가 아닌 그림자에 속하는 것들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오셨으며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일어나셨으며 승천하여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시며 지금은 교회의 머리로 계십니다. 그러므로 문맥이 구약에 속하였느냐 신약에 속하였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24. 여덟째, 읽고 있는 책의 문맥은 어떠한가 하는 점입니다. 이 책은 누구를 향해서 기록되었는가 하는 문제는 중요합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서로 다른 독자를 대상으로 해서 기록되었습니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기록되었고 누가복음은 이방인들을 향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에베소서는 역대기와 매우 다릅니다. 역대기는 기본적으로 이스라엘 왕들의 행적을 담은 역사서인 반면에 에베소서는 신약 교회에 보내시는 성령님의 편지입니다. 각자 다른 목적과 독자를 향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25. 문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도서는 거듭해서 해 아래서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전도서는 이 세상에서 사람의 관점으로 인생을 평가한 책입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골로새서는 너희는 죽었고 너희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느니라.”( 3:3) 이미 구원받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사람의 관점과 해 아래에 있는 사람의 관점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특정한 책에 속한 문맥을 익을 때 이 책은 누구를 향해 기록되었으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무엇이고, 이 책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확인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과 신약 시대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 같은 것을 말씀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26. 성경에서는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의 있습니다( 16:2, 19:20).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 말씀은 저에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짐승의 표를 받게 되면 어떻게 해야하나 하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천막을 치고 7일을 거하면서 주님의 명절을 지키라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말씀은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이 말씀을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의 각 책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연구할 때 이러한 부분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27. 아홉째, 읽고 있는 본문의 문맥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성경의 한 장에서 특정한 구절을 뽑아서 앞 뒤 구절과 상관없는 해석을 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의 구절들은 앞 뒤 구절과 연결되어 있고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성경에는 유다가스스로 목을 매니라.”( 27:5)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 10:37)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리고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13:27)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기뻐하니라.”( 13:17)는 말씀도 있습니다. 서로 전혀 상관없는 이 네 구절을 한 데 모으면 어떠한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네 구절은 각각의 문맥에 상관없이 떼어 내서 한 데 모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절을 인용할 때 문맥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28. 열째, 읽고 있는 본문의 장과 절의 문맥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지금 읽고 있는 것은 신약인지 구약인지, 또 어떤 책인지, 책의 어느 부분인지, 어느 장인지, 어느 구절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을 왜곡하는 모든 이단들은 성경을 인용하며 거짓을 진리인양 포장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인용하기는 하지만 구절의 절반만 인용하던지 혹은 한 절을 인용하는 경우에도 문맥과는 전혀 상관없는 의미로 인용합니다. 우리는 치유가 보혈의 능력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치유(회복)도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죽을 때 모든 질병으로부터 놓임받는 사실도 믿습니다.

 

29. 은사주의자들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53:5)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자신들의 거짓 신유가 성경적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입니다. 그렇다면 왜 스데반은 죽어야만 했습니까? 돌팔매질을 당해도 고침을 받으면 살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만일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모두 고침을 받을 수 있다면 아무도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살전 4:16)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는 말씀을 그리스도인의 육신에 적용시킨다면 사도 바울은 왜 그렇게 병약한 채로 사역을 해야만 했습니까? 은사주의자들이 자신들의 거짓 은사를 증명하기 위해 인용하시는 구절은 절반만을 가져온 것이거나 문맥과는 상관없는 구절을 가져온 것에 불과 합니다.

 

30.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연구할 때 문맥을 살펴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시더라.”( 11:35) 이것은 명백하게 성경에 기록된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주님께서 울고 계시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영이 강하게 되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2:40)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을 때 인간으로서 어린시절을 보내셨고 성장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지금도 성장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목밖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사람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성경을 연구할 때 문맥을 봐야 합니다.

 

31. 열한번째, 말하는 자가 누구인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성경은 사탄의 말도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만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정반대인 사탄의 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참으로 사람이 자기의 생명을 얻기 위해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리이다.”( 2:4)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 말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진리는 아닙니다. 과거 어느 시점에 누군가가 이 말을 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 말은 진리는 아닌 것입니다. 이 말은 마귀가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선한 사람을 위해 감히 죽고자 하는 자가 혹 있거니와( 5: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과 교회사에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욥기 2:4이 하나님의 말씀에 포함된 것은 사실이고 마귀가 실제로 이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 말의 내용이 진리는 아닌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혹은 자신이 믿는 진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린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연구할 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32. 열두번째, 말하는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살펴봐야 합니다. 저는 성경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십 일 동안 누워있으라는 말씀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채우거든 다시 네 오른쪽 옆구리로 누워 사십 일 동안 유다의 집의 불법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각 날을 일 년으로 정하였느니라.”( 4:6) 이것은 분명히 성경에 기록되 것이고 또한 말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삼년 동안 벗은 몸과 맨발로 지낼 것을 명령하는 구절도 찾을 수 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 종 이사야가 삼 년 동안 벗은 몸과 맨발로 다니며 이집트와 이디오피아에 대하여 표적과 이적이 되었느니라.”( 20:3) 여기서도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말씀의 대상은 주님의 종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에 순종할 마음이 전혀 없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저를 책망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33. 또 성경에는 창녀를 아내로 삼으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호세아로 말미암은 주의 말씀의 시작이라. 주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가서 행음하는 아내를 취하고 행음으로 인한 자식들을 취하라. 그 땅이 주를 떠나 크게 행음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2) 이 말씀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고 이 말씀의 대상도 주님의 종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모든 종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님이 명백합니다. 성경에는 주님의 명령이 많이 나오지만 주님께서 하신 명령이 모든 명령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되 개개의 모든 말씀이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항상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성을 재건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명령을 주신 사람들은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를 살펴보고 그 말을 듣는 이가 누구인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34. 열세번째, 말하여진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성경 구절을 가지고 논쟁을 하는데 상대방이 제 생각에는 그 구절이 의미하는게 이런거 같은데요.”라고 하면서 엉뚱한 주장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구절의 의미를 알기 전에 먼저 그 구절이 말한 그대로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매우 일부이기는 하지만 성경에는 말하는 그대로를 의미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35. 성경은 사람이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3). 이것은 단순히 마음을 바꾸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생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시 태어나야 하는 목적물(육이 아닌 영)이 다를뿐 말씀하신 그대로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연구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하니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36. 열네번째, 왜 그러한 말씀을 하셨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왜 그런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왜 그 말씀이 중요한 말씀인가요? 왜 내가 그 말씀을 알아야 할까요? 솔직히 얘기해서 성경은 매우 이상한 책입니다. 역대기상 앞의 9장은 왜 성경에 기록된 것일까요? 이것은 한번쯤 떠올려볼 수 있는 의문이 아닐까요? 아마도 하나님께서는 신학적인 어떤 내용보다 사람들을 더 생각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름을 그렇게 기록하신 것이 아닐까합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저도 그 부분을 쉽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저는 거기에 기록된 사람들과 상관도 없고 그들의 이름을 읽는 것에 흥미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관계를 맺고 계시고 그들의 이름을 일일이 기록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의 이름을 읽을 때 지겨워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저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적은 사람들만이 관심을 가져 줄 지 모릅니다. 어쩌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관심을 갖고 지켜보십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37. 우리는 성경에 왜 그러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 그렇고 또 특정한 숫자들의 언급이 그렇습니다. 153( 21:11)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3:7)고 말씀하셨을까요? 주님께서는 왜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창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 16:15)고 말씀하셨을까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19:19)고 말씀하셨을까요?

 

38. 말씀을 하신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3:7)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는지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람들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4:19) 어떻게 하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수 있는지 찾아 봐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 왜 했는지, 6하원칙을 떠올려야 합니다. 보시는 봐와 같이 이것은 읽기의 기본입니다.

 

39. 열다섯번째, 말씀에 특정한 기한이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예를 들면, 율법과 대언자들은 요한의 때까지요( 16:16)라는 말씀이 있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기 때문이라.”( 1:17)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넘어서신 분이십니다. 예를들면, 제사와 성전에 대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들이지만 기한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실 때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고 이것은 주님께서 성전 제사 시스템을 끝내버리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0:11-18 참조 -역주). 주님께서 하신 말씀과 명령에는 기한이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연구할때에는 그러한 기한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40. 성경을 연구할 때 그 말씀을 누가하는 것인지, 누구에게 하는 것인지 뿐만 아니라 이 말씀이 기한이 있는 것인지와 언제부터 이 말씀이 적용되는 것인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주님게서는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3:7)라고 말씀하셨지만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까지 이 말씀은 실행될 수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시대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교회가 들림받고 나면 이 말씀의 기한은 끝나게 됩니다. 그때에는 아무도 거듭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특정한 말씀에는 기한이 설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41. 열여섯번째, 성경을 연구할 때에는 각각의 단어를 정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봐야 합니다.칭의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화목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구속”, “거룩”, “성화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것들은 매우 중요한 단어들입니다. “바리새”, “미혹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희생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금식은 무엇입니까? 성경에는 이렇게 중요한 단어들이 많이 나오며 이 단어들은 모두 하나씩 연구해야 합니다.

 

42. 열일곱번째, 비슷한 진리가 성경 다른 곳에서도 발견되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방금 읽은 곳에서 발견한 진리를 입증할 그것과 비슷한 진리를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내가 읽은 진리를 입증할 다른 구절이 성경에 또 있는가를 찾는 것입니다.

 

43.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성경 해석의 전통적인 규칙입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이러한 방법으로 진리를 배우고 가르쳤습니다. 이제 우리는 휼륭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주님을 위해 훌륭히 일하는 길로 인도하는 성경 연구 방법에 대해서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43. 열여덟번째, 성경을 연구할 때에는 이것은 나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용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기름이 있어도 그 기름을 자동차에 적용해서 주입하지 않는다면 차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아무리 많이 배운다 할지라도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이 문맥에서 하시는 말씀 중에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나의 매일의 삶에 적용시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44. 열아홉번째, 이 말씀은 나의 가족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내가 섬기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전임 사역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다른 누군가를 섬기고 있고 섬겨야만 합니다. 자신은 목사나 집사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섬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경적인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나의 국가에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점도 알아야 합니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모여서 살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 말씀이 나의 국가와 이 세상에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45. 스무번째,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한데, 예수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장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24:27을 보세요. 모세와(이것은 창세기부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이것은 말라기까지 입니다)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어떤 성경에 기록된 것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습니까? 모든 성경 기록들입니다. 모든 성경 기록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6. 요한복음 5:39도 보세요.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이 바로 나에 대하여 증언하느니라.”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존재했던 성경은 무엇이었습니까? 구약 성경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신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신약 성경 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도 주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7. 계시록 19:10도 보세요. 내가 그의 발 앞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려 하매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네 동료 종이요 예수님의 증언을 가진 네 형제들 가운데 속한 자니 너는 주의하여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님의 증언은 대언의 영이니라, 하더라.” 예수님의 증언은 대언의 영이니라라고 하신 부분을 주목해 보세요. 여러분의 성경에 있는 모든 예언에 대한 말씀들은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모든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모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48. 성경을 연구할 때 스물한번째로 살펴봐야 하는 원칙은, 내가 내린 결론에 반하는 말씀이 있는가 하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제를 나누면서 형제님, 제가 어제 성경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부분인데 좀 보세요.”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얘기를 나누면서 교제를 하는게 자동차나 쇼핑이나 운동경기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익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관한 것보다 주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찌들었던 우리가 교회로 모여서 주님에 대해 교제를 나누며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49. 우리는 교제를 나누면서 자기가 새롭게 알게 된 것이나 성경을 연구한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영적으로 유익한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때 자신이 미쳐 깨닫지 못하거나 간과한 점을 다른 지체가 지적해 주면 그것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보고 연구한 것이 모든 것인양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래 새심하게 공부해도 전부다 살펴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내가 보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타이타닉의 선원이 봤던 빙산이 수면에 올라온 것이 전부였다면 타이타닉은 지금 박물관에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수면에 올라온 것이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인 것처럼 우리가 연구한 부분이 지극히 일부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본 것이 전부인양 주장한다면 온전한 진리가 아닌 오류로 빠질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50. 저는 이 성경 안에는 제가 보고 깨달은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이 있다고 믿습니다. 성경에는 여러분이 본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의 진리의 일부를 보게 되었을 때, 다른 지체가 아직 우리가 충분히 살펴본 것이 아니라고 하며 우리가 생각한 것과 반대되는 구절을 보여주었을 때에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기본적인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자신이 내린 결론에 반하는 것을 누군가가 지적한다면 그것을 숙고해보고 다시 전체적으로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51. 저는 성경을 연구하면서 창세기 1장에 천사의 창조에 대한 언급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6일간의 창조 사역 중에 천사를 만들지 않으셨음이 분명합니다. 제가 이런 주장을 하니 누군가는 제가 진화론자라고 공격을 했습니다. 물론 저는 진화론자가 아닙니다. 저는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6일간의 창조 사역 전, 어느 시점에 천사들을 창조하셨음이 분명합니다. 누군가는 이런 주장을 못견딥니다. 그러나 어떤 단체의 주장과 다른 것을 믿는다고 해서 진화론자라느니 하고 정죄하는 것은 옳지 못한 일입니다.

 

52. 성경 해석의 원칙에 대해서 좀 더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의 특정한 부분을 읽을 때 그것이 문자적으로 기록된 것인지, 아니면 상징적으로 기록된 것인지 살펴보고 확인해 봐야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 말씀을 받은 당사자들이 그 말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신을 차리자(be sober)”(살전 5:6)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을 많은 미국인들은 술취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합니다. 성경에서는 여러분의 정신이나 감정이나 육체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분노건, 절망이건, 불신이건 간에 여러분을 사로잡고 있다면 여러분은 정신을 차리지 않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그러한 상태는 제정신이 아닌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be sober”라고 말할 때 그것은 술취하지 말라는 말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의미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정신을 차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53. 문맥이 문자적으로 기록되었는지 상징적으로 기록되었는지 알 수 있는 둘째 방법은 그 문맥(혹은 구절이나 장)의 전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3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나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이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 이제 이것을 로마서 3:23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지금 제가 비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제가 찾은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한 곳에서는 그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고 있고 다른 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두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문맥을 살펴보면 됩니다. 어떤 불신자는 문맥을 살펴보지도 않을채 이러한 구절들을 보고 성경의 모순들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54. 먼저 요한복음 9장의 문맥을 살펴보겠습니다. 1-2절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보시매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누가 죄를 지었기에 그가 눈먼 자로 태어났나이까? 이 사람이니이까, 그의 부모이니이까? 하니 문맥이 무엇을 보여줍니까? 문맥이 말하고 있는 것은 눈먼 채로 태어난 것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구의 죄로 인해서 눈이 먼 채로 태어났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주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나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며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문맥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와 그의 부모가 죄를 짓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그들이 눈 먼 채로 태어날 만한 죄를 짓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55.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나 죄를 짓지 아니하였으며 다만 이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을 나타내고자 함이니라.” 계속해서 9장을 읽어보면 눈 먼 채로 태어났던 사람은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주님을 받아들였습니다. 그의 부모도 마찬가지로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거부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이었지만 주님을 거부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태어났고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죄는 눈 먼 채로 태어나게 원인을 제공한 죄에 대한 이야기였고 주님께서는 그나 그의 부모나 그런 죄를 지은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문맥을 살펴봄으로 본문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56.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왕이신가요? 주님께서 다윗의 왕좌에 앉아서 통치하실 분이신가요? 주님의 정부가 끝도 없이 증가하게 될 것인가요? 주님께서 이 땅에서 천년동안 통치하실 것인가요? 주님께서 왕들의 왕이시며 주들의 주이신가요? 요한복음 18:36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니라.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하였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겨주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나 지금은 내 왕국이 여기에서 나지 아니하느니라, 하시니라.”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지금은이라는 단어입니다.

 

57. 이제 누가복음 23:2-3을 보세요. 그분을 고소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우리가 보니 이자가 민족을 그릇되게 하고 카이사르에게 공세 내는 것을 금하며 스스로 그리스도 곧 왕이라 하더이다, 하매 빌라도가 그분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들의 왕이냐?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그렇게 말하는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과 누가복음의 구절을 비교해 보면 주님께서는 한 쪽에서는 자신의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고 다른 쪽에서는 이 세상에 속한 유대인들의 왕이 바로 자신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두 말씀 다 문맥을 살펴본다면 서로 모순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58. 네가 유대인들의 왕이냐?” 절대적으로 그렇습니다. 주님은 유대인들의 왕이십니다. 그런데 만일 빌라도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대답은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너의 왕국을 이 세상에 세울 것이냐?” 여기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지금은 아니니라.”일 것입니다. 이것은 문맥을 살펴본다면 전혀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항상 문맥은 특정한 상황을 설명해 줍니다.

 

59. 몇 가지 예를 더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33을 보세요. 곧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내가 내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유익을 구하면서 모든 일에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같이 하라.”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같이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것을 갈라디아서 1:10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리라.” , 어느 말씀을 따라야 합니까? 한쪽에서는 모든 사람들을 기쁘게 하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문맥을 살펴보면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0.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말하는 내용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태도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그들의 음행에 대해서 경고했을 때 그들이 모두 기뻐했으리라고 생각하세요? 회중 가운데 퍼진 음행의 죄를 경고하는게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이었을까요? 형제를 고소하지 말라는 말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말이었을까요?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이 여자들을 기쁘게 하는 말이었을까요? 머리 모양에 대해서 지적한 것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을까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지체들에게 한 말은 그들을 기쁘게 하는 말은 아니었음이 분명합니다.

 

61. 계속해서 문맥을 살펴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0:24입니다. 아무도 자기 것을 구하지 말고 각각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구하라.” 27-33도 보겠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 중에서 누가 너희를 잔치에 초대하여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해 묻지 말고 먹으라. 그러나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이르되, 이것은 우상들에게 희생물로 바친 것이라, 하거든 그것을 알게 한 사람과 양심을 위해 먹지 말라. 땅과 거기의 충만한 것이 주의 것이니라. 내가 말하는 양심은 네 양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이니라. 어찌하여 내 자유가 다른 사람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은혜로 참여할진대 어찌하여 내가 감사드리는 것으로 인해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들에게나 이방인들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어떤 실족거리도 주지 말되 곧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도록 내가 내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유익을 구하면서 모든 일에서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 같이 하라.

 

62. 문맥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자신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유대인들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인들 앞에서 돼지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얻기 위해서 그들을 기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제가 만일 선교사로 다른 대륙에 있는 먼 지역으로 가게된다면 저는 미국 사람이 아닌 그 지역 사람처럼 행동할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죄를 지으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건전한 교리를 버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진리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고린도전서의 문맥은 여러분의 태도로 인해서 사람들이 여러분이 전하는 것을 듣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태도는 듣는 사람에게 적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타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많은 미국의 침례교회들이 이것에 실패했습니다.

 

63. 갈라디아서 1장의 문맥을 보겠습니다. 6절을 보세요.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것은 또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는 어떤 자들이 있어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도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한 것 같이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너희가 받아들인 복음 외에 어떤 다른 복음을 너희에게 선포하면 그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내가 지금 사람들을 설득하느냐, 하나님을 설득하느냐? 혹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느냐? 내가 아직도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결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리라.”

 

64. 갈라디아서 1장의 문맥은 이렇습니다. 제가 만일 여러분의 동네에 갔는데 거기서는 신발을 신지 않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면 저도 신발을 벗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하는 동안 신발을 신지 않으므로 제가 여러분의 문화를 존중함을 보일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것을 금지하고 있지 않으므로 저는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가 그렇게 함으로 저는 여러분에게 받아들여질 것이고 여러분은 저의 말에 경청할 것이며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진리를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신발을 벗은채로 여러분과 식사를 하고 있는 중에 여러분의 목사가 저에게 우리 동네 주민들은 모두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라고 한다면 저는 그 목사가 저를 좋아하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그는 갈라디아서 1장에 의해서 저주를 받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상대방이 명백하게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반해서 죄를 짓는다면 저는 상대방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진리를 전하는 우리의 태도는 듣는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하지만 우리가 전하는 내용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고린도전서 10장과 갈라디아서 1장은 서로 모순이 아닙니다.

 

65. 한 가지 예를 더 들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6:26-28을 보세요.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집으사 축복하시고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집으사 감사를 드리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는 다 그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린 나의 피 곧 새 상속 언약의 피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포도주와 주님의 피에 대해서 어떻게 이해하는지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본문 어디에 포도주라는 단어가 있는지 찾아보세요. 본문을 보면 포도주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으셨습니다.

 

66. 왜 주님께서 잔 안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신줄 아세요? 그것에 대해 논쟁할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음료가 무엇인든 간에 그것은 주님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잔에 든 음료가 아닌 주님의 피가 죄들의 사면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하시고 나서야 잔에 든 음료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언급하십니다. 29을 보세요.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왕국에서 너희와 함께 새롭게 마시는 그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67. 문맥을 보시면 피에 대한 언급이 먼저고 그 다음에 잔에 실제로 든 음료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잔에 든 것이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잔에 든 것이 주님의 피로 변했다고 말씀하지 않고 그대로 포도나무 열매에서 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주목해 보세요. 주님께서는 잔이 상징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지 잔 안에 있는 음료가 무슨 특별한 효력을 가지고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을 자신의 피로 상징해서 보여주셨을 뿐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바로 다음 절에서 잔 안에 있던 것이 주님의 피가 아닌 포도나무의 열매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68.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잔에 있는 것을 다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다 그것을 마시라(Drink ye all of it)”( 26:27) (영어 성경을 보면 너희는 그것을 다 마시라가 바른 우리말 번역임을 알 수 있음) 제자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잔 안에 든 음료를 다 마셨습니다. 만일 잔 안에 든 것이 주님의 피라면, 제자들이 주님의 피를 다 마셔버렸기 때문에 주님께는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흘리실 피가 더 이상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연구할 때 문맥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문맥을 살펴본다면 성경에는 결코 모순이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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