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2010.07.23 06:50

큰 흰 왕좌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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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White Throne Judgment

큰 흰 왕좌 심판

James W. Knox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미국 플로리다 주의 딜랜드 시에서 Bible Baptist Church와 부속 신학원에서 목회와 가르치는 사역을 하고 있는 James W. Knox 형제가 설교한 The Great White Throne Judgment의 내용을 요약하고 옮긴 것입니다. 책이 아닌 설교라는 특성 때문에 듣기와 옮기기에 어려움이 있어 내용 전체를 번역 하지 못하고 요약한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비록 요약이지만, 원래 강의를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손상하지 않고자 노력했습니다. 어색하거나 잘못된 부분은 모두 역자의 실력이 부족한 탓이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 바랍니다. 아무쪼록 이 작은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큰 흰 왕좌 심판에 대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역자

 

계시록 20, 마태복음 12, 열왕기상 10장을 보겠습니다. 이 본문들을 통해 성경은 큰 흰 왕좌 심판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심판의 대상으로 큰 흰 왕좌 심판석에 서지 않습니다. 큰 흰 왕좌 심판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불 호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중 어느 누구도 그곳에 보내지 않으실 것입니다.

 

죄에 대한 형벌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왜 고난을 당하셨겠습니까? 만일 구원받을 필요도 없다면 왜 하나님의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셨겠습니까?

 

이제 계시록 20장을 보세요. 11절부터 보겠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땅과 하늘이 그분의 얼굴을 피하여 물러가고 그것들의 자리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만일 여러분이 이 땅 위에 있는 것 중 하나를 믿거나 의지하면서 살아간다면 여러분의 희망은 헛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믿고 그것을 위해 살고 있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것에 희망을 두면서 살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땅 자체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땅이 사라지면 그 위에 있는 것들도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늘에 있는 것 중 하나를 믿거나 의지하면서 살아간다면 여러분의 희망은 헛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도 사라져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끝나는 때가 오면 하늘과 땅을 포함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 중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그 때에는 큰 흰 왕좌와 그곳에 앉아 계신 분만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지고 있어야 할 참되고 유일한 희망은 큰 흰 왕좌 위에 앉아 계신 그분께 있어야 합니다.

 

제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주님께서 만드신 하늘에 있는 것들도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에 소망을 두고 있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모두 헛된 것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이 모두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지고 오직 큰 흰 왕좌에 앉아 계신 분만 남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분을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을 그분께 두고 있습니까?

 

나는 침례교인이다, 감리교인이다, 장로교인이다, 천주교신자다, 개신교인이다, 유대인이다, 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을 그분께 두고 있습니까? 나는 침례를 받았다, 성별된 삶을 산다, 성경공부를 한다, 교회에 다닌다, 주일 성수를 한다, 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분께 신뢰를 두고 있으신가요?

 

계시록 20장에서 말씀하시는 큰 흰 왕좌 앞을 주목해 보세요. 거기서는 모든 교회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모든 교단도 사라졌습니다. 모든 신조도 사라졌고 종교도 사라졌습니다. 그곳에는 교회 프로그램도 없고 신학박사도 없고 심리학자도 없고 묵주도 없습니다. 오직 유일하신 그분만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그분을 믿고 있습니까?

 

12절도 보세요.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이 세상과 하늘과 모든 것이 사라진 때에 오직 하나님과 사람만 남아 있습니다. 성경은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사기꾼 같은 목사 앞에 서 있는데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교회 재정을 훔치는 집사 앞에 서 있는데라고 하지 않아요. 성경은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자신들보다 못한 위선자들 앞에 서 있는데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한다고 핑겨를 대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실수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에게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람과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문제를 해결 해야 하는 상대는 바로 하나님입니다. 큰 흰 왕좌 심판대에서는 여러분과 하나님만이 남아서 결산을 하게 됩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심판받는 것이 유쾌하지 않겠지만 인생을 결산하는 큰 심판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모든 자들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더 이상 회개할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죄를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용서받을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도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는 구원받거나 거듭나거나 회심하거나 할 수 없습니다. 큰 흰 왕좌 앞에서는 이미 일어났던 일들, 되돌릴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심판받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현재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미래가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는 여러분에게 현재가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한채 죄 가운데서 죽게 되면 여러분에게는 현재와 미래가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그저 돌이킬 수 없는 죄악된 과거만 존재할 뿐입니다.

 

심판대 앞은 형벌을 협상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준엄한 심판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 곳에서는 어떠한 합의나 협의도 할 수 없습니다. 그 곳에서는 여러분이 무슨 일을 했는가를 다루게 됩니다. 여러분이 한 일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과 일치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일치한다는 것은 여러분이 산 인생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과 100%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100% 일치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죄인으로 정죄받게 됩니다. 매우 간단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복잡한 문제가 아닙니다. 단 하나라도 죄가 있다면 죄인으로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13절도 보세요.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수입을 올렸는지 누구와 친했는지 얼마나 좋은 집에 살았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심판을 받습니다. 무엇에 따라 심판을 받을까요?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팜을 받습니다.

 

심판대 앞에서는 하나님과 여러분 각자와의 관계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떤 교회를 다녔는지 여러분의 목사가 누구였는지도 상관하지 않으실 겁니다. 여러분은 누구 때문에 교회에 다니지 못했고 누구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고 변명할지 모르지만 그 날,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그 누구에 대해서도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심판대 앞에서는 여러분 각자 하나님과 마주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여러분에 대해 물으실 것입니다.

 

14절부터 보세요. 사망과 지옥도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이것은 둘째 사망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드러나지 않은 자는 불 호수에 던져졌더라.”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지 아세요? 불 호수의 심판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갈보리에서 고난을 당하셨는지 아세요? 불 호수의 신판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땅의 심장으로 내려가셨는지 아세요? 불 호수의 심판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는지 아세요? 불 호수의 심판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왜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셨는지 아세요? 왜 다가올 진노로부터 피하라고 경고하시는지 아세요? 왜 반드시 거듭나야만 한다고 말씀하신지 아세요? 불 호수의 심판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불 호수의 심판으로부터 여러분을 건져 내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그분과 만나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분을 믿지 않고 거절한다면 여러분은 불 호수에 던져져서 영원을 보내야 합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으셨습니까? 여러분은 그분을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그분을 믿고 있습니까?

 

열왕기상 10장을 보세요. 다윗에게는 매우 현명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을 이어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통치했습니다. 열왕기상 10장에 나온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18절부터 보세요.

 

또 왕이 상아로 큰 왕좌를 만들고 가장 좋은 금으로 그것을 입혔더라. 그 왕좌에는 여섯 계단이 있었고 왕좌의 꼭대기는 뒤가 둥글게 되어 있었으며 앉는 자리의 양쪽에는 팔걸이가 있었고 팔걸이들 옆에는 사자 두 마리가 서 있었더라. 또 거기에 사자 열두 마리가 그 여섯 계단의 이쪽과 저쪽에 섰는데 어떤 왕국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솔로몬은 상아로된 큰 왕좌에 앉아 있습니다. 왕좌에는 여섯 계단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섯 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일곱 번째에 왕좌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완벽을 상징하는 수입니다. 왕좌의 꼭대기는 뒤가 둥글게 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을 계시록 4장과 비교해 보면, 계시록 4장에서는 왕좌 둘레에 무지개가 있다고 합니다. 또 솔로몬의 왕좌에 사자 열 두 마리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계시록에서는 스물네 장로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의 왕좌가 주님께서 앉아 계신 큰 흰 왕좌의 모형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제 마태복음 12장을 보시겠습니다. 38절부터 보세요. 그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중에 어떤 자들이 응답하여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선생님으로부터 표적을 보기 원하나이다, 하거늘 사람들은 흥미있는 것을 보기 원합니다. 따분한 설교보다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원해요. 그분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대언자 요나의 표적 외에는 아무 표적도 그 세대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요나가 밤낮으로 사흘 동안 고래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밤낮으로 사흘 동안 땅의 심장부에 있으리라.

 

오늘 여러분에게 표적이나 기적이나 쇼를 보여줄 것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면 그러한 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매우 기본적이고 쉬운 복음의 메시지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한 번 보세요. 41절입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선포로 인해 회개하였기 때문이거니와,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녀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의 맨 끝 지역에서 왔기 때문이거니와,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솔로몬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위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흰 왕좌에 앉아계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여러분의 죄로 인해 죽으신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삼일 후에 부활하셨다는 사실도 믿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문제를 친히 해결해 주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은채 기적과 표적을 보여주시고 여러분이 부자가 되게 해 주시고 여러분의 병이 낫고 이 세상에서 만사형통하게 해 주시기 만을 바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일을 해 주면 그때가서 믿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날 심판대 앞에서는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음을 절감하게 될 겁니다.

 

그날 심판대 앞에서 아마 어떤 사람이 이렇게 불평할 겁니다. “! 나는 복음을 제대로 들을 기회는 없었지만 그래도 좋은 일 한 적도 있고 교회에 다녀본 적도 있고 따지고 보면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닌데요.”

 

그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잠깐만 기다려 보거라.” 그리고 심판의 대상이 아닌 사람들을 보시면서 물으실 겁니다. “여기 혹시 니느웨에서 살던 사람 있느냐?”

 

그러면 한 사람이 손을 들고 대답할 겁니다. “, 주님 제가 니느웨 출신입니다.” “잠깐 이 앞으로 나와 보겠느냐.”

 

그러면 그 사람이 앞으로 나오고 주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물으실 겁니다. “너는 요나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

 

, 그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서 거리에서 설교했습니다.”

그래, 내가 보냈었느니라. 그가 뭐라고 설교했었느냐?”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래? 그는 로마서에 나온 복음을 전했느냐?”

로마서라니요, 그런건 들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럼 그가 신약성경을 인용해서 복음을 증거했느냐?”

신약성경이라니요? 그런건 못들어 봤습니다.”

그럼 그가 거리에서 설교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너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사실도 전했느냐?”

아닙니다. 그런 것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 그렇구나. 그래서 너는 그 설교를 듣고 어떻게 하였느냐?”

당연히 회개했습니다.”

 

주님께서 이제 심판대 앞에 선 사람에게 물으실 겁니다. “너는 근처에 교회도 있었고 매주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설교자도 있었고 성경도 있었고 게다가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됐는데 왜 믿지 않은 것이냐?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믿지 않았다는 말이냐?”

 

그러면 옆에서 듣고 있던 니느웨 사람이 이렇게 물을 겁니다. “? 정말 이 모든 것을 다 전해 들었는데도 믿지 않았다는 건가요?”

 

주님께서는 니느웨 사람에게 이렇게 물으시겠죠. “복음을 여러 번 들었고 원한다면 구원받을 수 있었는데도 복음을 거절한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그러면 니느웨 사람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당연히 지옥에 가야 합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무시했으니 정죄받아 마땅합니다. 복음을 그렇게 듣고도 거절했다면 절대로 구원받아서는 않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니느웨 사람에게 동의하시며 심판대 앞에 있던 사람을 불 호수에 던져 넣으실 것입니다.

 

열왕기상 10장에 나온 세바의 여왕은 낙타를 타고 솔로몬을 찾아왔습니다. 솔로몬이 현명한 사람으로 영적인 진리들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 여왕의 몸으로 낙타를 타고 직접 아프리카 대륙을 건너 시내 광야를 지나 솔로몬을 찾아온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아십니까? 심판때에 그녀가 나와서 사람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근처에 교회가 있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알 수 있고 원하면 언제든지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원을 등한히 하고 복음을 가볍게 여긴 사람들을, 모든 어려움을 무릎쓰고 솔로몬을 찾아갔던 남방 여왕이 정죄할 것입니다. “저는 사람을 만나려고 낙타를 타고 대륙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렇게 쉽게 들을 수 있는 좋은 환경에 있었는데도 그걸 거절했다구요? 당신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겠네요.”

 

흰 왕좌 심판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진리를 거부한 사람들이 정죄를 받는데 그 이유는 살인을 해서도 아니고 거짓말을 해서도 아니고 간음을 해서도 아니고 도둑질을 해서도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비춰주신 빛을 거부했기 때문에 정죄를 받는 것입니다.

 

어쩌면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제가 어떤 사람들을 대적해서 증거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저에게 이렇게 물으실 겁니다. “너는 저들에게 복음을 증거했느냐?” “, 주님.” “분명하고 확실하게 증거했느냐?” “, 주님.” “저들에게 어떻게 구원받는지 말해 주었느냐?” “, 주님.”

 

이것은 지금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아니면 무슨 선행을 했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것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신 구원을 받아들였는가의 문제입니다.

 

요한복음 3:16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17절부터 보세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정죄를 받지 아니하거니와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이미 정죄를 받았느니라.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그것을 피할 수 없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불 호수에서 영원을 보내는 것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영원히 불타는 곳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는 것은 자신들의 악한 행위를 하나님의 방법으로 씻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빛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흰 왕좌 심판대가 어떤 곳인지 아십니까? 그곳은 누가 무엇을 잘했고 잘못했고를 가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거기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이미 정죄받은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합당한 형벌을 실행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정죄가 하나님을 믿지 않음의 결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사람들이 주님께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7:22) 이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저주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이 사람들은 거짓말 하던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대언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이 사람들은 농담이나 하던 사람들도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대언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이 사람들은 마귀를 섬기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팔뚝에 마귀 문신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마귀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귀걸이를 하는 사탄 숭배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마약중독자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마귀들을 쫓아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이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아마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구제 사업도 많이 하던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아마 감옥에도 방문하고 불우이웃도 돕는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실지 아세요? 23절을 보세요.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리라.”

 

주님께서는 이들이 좋은 일을 한 것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어느 정도 선한 삶을 산 것을 부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지옥에 던져지는 것인가요? 그들은 주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님이 아닌 자신들을 믿었던 자들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을 보세요. 그들은 무엇무엇을 우리가 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름으로 한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을 가지고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것을 믿을 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자신이 꽤나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을 것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경고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사는 동네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결코 스스로는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나쁜 사람들만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나쁜 사람이건 선한 사람이건 상관없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욥기 14장을 보세요. 욥기는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욥기는 최후의 심판에 대해 가장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절을 보세요.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리이까?”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일까요?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또다른 시작일 뿐입니다. 죽음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사는 사람이 있고 지옥에 던져지고 나중에는 불 호수에서 영원을 보내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계시록 20장에서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정하신 시간의 모든 날을 내가 기다리되 변화가 내게 이를 때까지 기다리겠나이다.” 성경은 히브리서 9:27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약속을 잡아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죽음과 약속이 잡혀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과 잡혀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심판으로 가는 통로일 뿐입니다.

 

어떤 자들은 죽음 이후에 1000년 동안 지옥에 있다가 최후의 심판대에 서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보다 더 오랜 후에 흰 왕좌 심판대에 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은 적이 없어서 그분을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 예약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계시록 20:6에서는 첫번째 부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활에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년 후에, 주님을 거부해서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죽은 자들, 죽어서 지옥에 있던 자들이 모두 부활해서 큰 왕좌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일어날 일입니다.

 

15절을 보세요. 주께서는 부르시겠고 나는 주께 응답하리니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원하시리이다.” 흰 왕좌 심판대에서 사람들은 각자 개인적으로 주님 앞에 살아온 인생에 대해 회계해야 합니다. 그 자리에서 질문과 답변이 있을 것입니다.

 

! 하나님 저는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이냐? 라디오에서 복음이 나올 때 듣기 싫다고 하면서 꺼버리지 않았느냐?”

 

믿으려고 해도 기독교인들이 다 위선자들이라서 그 사람들 때문에 교회에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이냐? 직장에 함께 근무했던 사람 좋은 동료가 그리스도인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느냐?”

 

심판대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답을 하시며 회계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께 답을 하며 회계하는 것입니다.

 

아마 여기에 계신 분들 중에 하나님께 ?”라는 질문을 했던 분이 있을 겁니다.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셨나요?”, “왜 하필 저인가요?” 이런 질문을 주님께 하지만 주님께서는 대답하지 않으신적 없으신가요? 왜 주님께서 대답하지 않으신지 아세요?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답해야할 의무가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죽는다면 여러분은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왜 믿지 않았는지 물으실 것이고 여러분은 주님께 답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초림하셨을 때 본디오 빌라도의 법정에 서신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빌라도가 주님께 물었으나 주님께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질문에 답하실 의무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 서계셨을 때 빌라도의 아내가 빌라도에게 와서 이상한 꿈 얘기를 했습니다. 아마 이런 내용이었을 겁니다. “여보, 무서운 꿈을 꿨어요. 저 사람이 큰 흰 왕좌 위에 앉아 있고 당신이 죄인의 자리에 서서 저 사람의 심판을 받는 꿈이었어요. 저 사람을 재판하지 말고 그냥 보내세요. 저 사람이 당신에게 질문을 하면 당신은 대답해야만 했어요. 제발 저 사람을 그냥 보내세요.”

 

주께서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원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몸을 입고 있는 인간들이 그 몸으로 무엇을 했는지 알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과 재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고 싶어 하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진화된 존재이고 여러분을 창조한 그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어느 누구 앞에 여러분의 인생에 대해 결과를 보고하며 회계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죽어서 그저 흙으로 돌아갈 뿐이고 여러분이 한 일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회계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여러분을 지적인 존재로 만드시고 여러분이 사는 곳에 태어나게 하시고 재능을 주시고 지능도 주셨다면 여러분이 무엇을 했는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듣고 싶어하실 것이며 그럴 권리가 있으실 것입니다. 진화론이 사실이라면 이 세상은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어느 누구에게도 해명하며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은 자신이 한 모든 일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회계 보고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만드신 인간에게 어떻게 인생을 사용했는지 들을 권리가 있으시고 반드시 들으실 것입니다.

 

16절도 보세요. 이제 주께서 내 걸음을 세시오니 주께서 내 죄를 감시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여러분 중에 구원받은 분들은 처음 성령님께서 마음 속에 구원의 확신을 주신 날을 기억해 보세요. 거듭나기 전에 아무런 꺼리낌없이 짓던 죄들을 거듭나고 나서는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끊게된 적이 있으신가요?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를 멀리하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할 만일 일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관심을 갖고 사람들을 보고 계시며 그 걸음을 세고 계십니다. 17절을 보세요.

 

주께서는 내 범죄를 자루에 담아 봉하시고 내 불법을 꿰매시나이다.” 여러분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습니다. 한 가지 길은 여러분의 모든 죄악을 자루에 담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자녀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또 다른 길은 하나님의 구원방법을 무시하고 계속 자기의 길을 고집하며 자기 방식대로 살다가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서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죄를 담은 자루를 어깨에 매고 흰 왕좌에 앉아 계신 분 앞에 서서 스스로 죄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거기서는 누구도 대신 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여러분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여러분의 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그 곳 뿐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죄의 자루를 가지고 갈보리로 가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내가 무엇 무엇을 했고, 무엇 무엇을 했으며…”하면서 그 위에 앉으신 분께 변명하느라 진땀을 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변명을 해 봤자 어깨에는 여전히 큼지막한 죄의 자루가 걸쳐 있을 것이며 그 죄의 자루가 있는한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흰 왕좌 심판대를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그 날에, 그 심판대 앞에서 너무나도 명백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 중에 자신의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사실을 잊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영원히 해결하셨습니다.

 

사고로 팔이나 다리를 잃고도 계속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팔이 분명히 절단되어 더 이상 없는데도 불구하고 손가락 끝이 아프다고 하면서 고통을 호소한다는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지체에 대한 고통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죄 문제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직도 죄 문제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주님께 맡긴 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주님께서도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18절을 보세요. 산은 무너져 반드시 없어지며 바위도 제자리에서 옮겨지고 물은 돌을 닳게 하나니 땅의 티끌 속에서 자라는 것들을 주께서 휩쓸어 가시며 사람의 소망을 끊으시나이다.”

 

흰 왕좌 심판이 일어나게 되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없어지게 됩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오직 사람만이 남게 됩니다.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선 사람에게는 더 이상 믿고 의지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는 사람들이 신뢰하던 거짓 소망들이 사라지고 맙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소망합니다. “크리스찬 사이언스라는 종교가 그렇게 믿습니다. 그들은 죽음이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환영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도 그것은 실제로 죽은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들이 그가 죽었다고 생각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장례식도 관도 무덤도 다 실제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믿음입니다. 그들도 언젠가는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소망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재물과 과학기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에이즈에 대한 치료책이 나오고 모든 질병을 정복할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할 것이라고 소망합니다. 풍부한 재물과 진보된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들은 에이즈와 암에 대한 해결책이 나올 것을 소망합니다. 인류는 누군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수 세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셨지만 아무도 새겨 듣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믿고 또 그렇게 소망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도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자신들의 소망이 얼마나 거짓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죽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늘나라와 지옥을 믿지 않는 것은 자유지만 그러한 것들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지옥이 없기를 바랄뿐인지 몰라도 그것은 죄를 짓고 감옥이 없기를 바라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죽으면 이러한 거짓 소망은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모두 산산히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들은 불 호수에서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환생하기를 소망하기도 합니다. 저는 도대체 왜 이런 세상에서 두 번 살고 싶어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정말 다시 태어나서 인생을 다시 살고 싶은 것인가요? 저 같으면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지 이 세상에서 다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업적을 이루고 모든 것을 다 소유한다 해도 영원한 생명을 살 수는 없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환생의 거짓된 소망을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모두 제거해 버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을 거라고 소망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거짓된 소망을 가진 자들도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자기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분 앞에서 그분의 질문에 답변해야 합니다.

 

선을 행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선을 행해야 하나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선을 행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고 하나님도 없고 최후의 심판도 없다면 그저 즐기고 마음 가는대로 살면 그만일 것입니다. 기말시험이 없다면 학생들이 왜 공부를 하겠습니까?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암기하고 공부할 필요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는 하나님이 없다는 거짓된 소망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은 없으며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마음을 바꿔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게 하실 것이고 심판을 대충 하신 후에는 모든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초대하실 것이라고 소망합니다. 이런 식으로 설교하는 노만 빈센트 필이나 로버트 슐러 같은 사람의 말을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농담이었어.”라고 하실 걸 알면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려 모진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을진데 이러한 말보다 더 신성모독적인 것은 없습니다. 죄 문제가 중요하지 않고 죄에 대한 대가가 치러질 필요도 없었다면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죽으셔야 했겠습니까? 영원한 형벌은 없을 것이라는 거짓된 소망은 흰 왕좌 심판대에서 모두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20절을 보세요. 주께서 영원히 그를 이기셔서 사라지게 하시며 그의 얼굴빛을 변하게 하시고 내쫓으시오니 주님의 판결은 영원하고 주님의 형벌도 영원합니다. 불 호수에서 자신의 죄값을 치르며 영원한 형벌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곳에서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십니다. 예 분명히 그분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분의 판결은 이미 내려졌습니다. 판결을 번복하고 죄있는 사람을 그냥 풀어주는 판사를 자비롭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자기는 하늘나라에 가기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본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그 곳에 없을 것을 생각하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별로 즐거울 것 같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욥기 14장에서 하늘나라에 가면 그 모든 일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겪었던 이전 일들이 모두 마음 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자들은 하늘나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고 하늘나라에 있는 자들은 지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아들들이 존귀하게 되어도 그가 그것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비천하게 되어도 그가 그들에 대한 그 일을 깨닫지 못하되( 14:21)

 

두 가지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지옥에 가면 자기는 하늘나라에 가서도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사람은 지옥에 가서도 여전히 행복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확실히 보장합니다. 오직 그에게 붙어 있는 살이 아픔을 느끼고 그 속에 있는 그의 혼이 애곡할 뿐이니이다, 하더라.”( 14:22)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활한 몸을 입게 됩니다. 제가 오늘 죽고 내일 휴거가 일어난다면 저의 혼은 다시 이 몸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 몸은 새로운 몸으로 변화받게 됩니다. 죽었던 이 몸이 다시 살아나고 하나님께서는 이 몸을 변화시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처럼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분 중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오늘 죽는다면 몸은 사람들이 땅에 묻고 혼은 지옥으로 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세상에 오셔서 의와 정의로 천년 간을 다스리신 후에 다시 몸을 입고 부활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혼을 지옥으로부터 꺼내시고 여러분의 몸은 무덤으로부터 불러모아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흰 왕좌 심판대 앞에서 최후의 형벌을 집행하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을 듣게 된 후에 몸을 입은채 산채로 불 호수 속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살이 아픔을 느끼고 그 속에 있는 그의 혼이 애곡할 것이라는 성경의 표현에 주목해 보세요.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이 십자가 위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람이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했다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 이유를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왜 죽었고, 왜 부활했는지 그 이유를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대신 종교를 믿는 것입니다.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멸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멸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 3:17)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 16:31)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왜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서서 정죄받고 준엄한 형벌의 말씀을 듣지 않아도 되는지 아십니까? 성경에서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 있( 22:12)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저는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흰 왕좌 심판대 앞에는 영원한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이 서게 될 것인데 저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심판대 앞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저의 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치러졌고 저는 그것을 믿었기 때문에 저는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제가 전하는 흰 왕좌 심판에 대한 메시지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흰 왕좌 심판대 앞에 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 누구도 그 심판대 앞에 서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전적으로 여러분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 위해서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믿을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구원해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영생의 선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순간 그러한 구원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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