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2011.08.29 17:36

교회론-제18장 교회와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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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교회와 간증

Doctrine of the Church

James W. Knox 지음 / 우진 옮김

 

이 과의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Doctrine of the Church 시리즈를 요약 및 정리 것입니다.

 

1. 우리는 교회와 관련해서 실행적인 교리들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헌금과 찬양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간증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간증은 하나님의 선하심이나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주신 교훈이나 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함으로 그들이 세움을 받고 교훈을 얻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2. 성경은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을 일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는 것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모든 일이 그렇듯이 간증도 바른 방법대로 바른 때에 바른 장소에서 하는 게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온 것이라고 해서 모두 아무 때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3. 성경의 문맥을 무시하면 전혀 엉뚱한 것도 교리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씀도 있습니다(고전 7:1). 물론 이것은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유다가 그 은들을 성전에 내던지고 떠나가서 스스로 목을 매니라.”( 27:5)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 10:37)는 말씀도 있습니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13:27)는 말씀도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적용한다면 비 성경적인 이상한 교리가 나올 수 있습니다.

 

4.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간증은 마음의 동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진리를 전한다 할지라도 교만한 마음으로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답게 찬양을 한다 할지라도 찬양하는 사람의 재능을 과시하려는 것이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간증은 항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어야 하며 결코 간증하는 사람 자신을 높이거나 드러내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5. 사도행전 4장을 보겠습니다. 여기에는 간증의 좋은 예가 나옵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하고 있을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의 대장과 사두개인들이 그들에게 이르러서는 그들이 백성을 가르친 것과 또 예수님을 통해 죽은 자들로부터의 부활을 선포한 것으로 인해 근심하여 그들에게 손을 대었으나 이제 날이 저물었으므로 그들을 다음 날까지 가두었더라이제 저들이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을 보고 그들이 학문 없는 무식한 사람들인 줄로 알았으므로 이상히 여기며 또 그들이 전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줄도 알게 되고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므로 그것을 반박할 말을 전혀 하지 못하더라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이루어진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므로 그들이 백성으로 인해 그들을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한 채 그들을 더 위협하고 가게 하니 이는 이 병 고침의 기적이 나타난 사람이 마흔 살이 넘었기 때문이더라.”( 4:1-3, 13-14, 21-22)

 

6. 한 사람이 병 고침을 받았고 병 고침의 기적을 행한 사람들은 체포되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23절을 보겠습니다. 사도들이 풀려나매 자기 동료들에게 가서 수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자기들에게 말한 것을 다 전하니 그들이 그것을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여 이르되, 주여, 주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것들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시요,”(23-24)

 

7. 23절에서는 하나님께서 교회의 회원들 중 특정한 사람들을 통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그들이 간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회중이 그 간증을 듣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알게 되었고 세움을 받았으며 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계속해서 믿음 안에 굳게 거할 수 있었습니다.

 

8. 간증은 우리가 모였을 때 해야 할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주말에 다른 사람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어서 모인 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알고 그것으로 인해 위로를 받고 세움을 받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는 알고 우리의 마음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복을 받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9. 복음을 전한 것을 간증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령했는지 자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따라서 모든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가야 합니다. 혼을 구원하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입니다. 간증은 자신을 높이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셨는지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 함으로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높이는 간증만이 우리의 마음에 복을 주며 도전을 주고 바르게 세워 줍니다.

 

10.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간증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역사 하신 것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나누고 함께 즐거워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간증을 듣고 서로를 위해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11. 사도행전 11장에는 간증의 또 다른 예가 나옵니다. 10장에서 고넬료의 집을 방문했던 베드로는 주님께서 이방인들의 혼을 구원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10:44-45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아직 이 말들을 할 때에 성령님께서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 위에 임하시매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로서 믿는 자들 곧 베드로와 함께 온 자들이 이방인들 위에도 성령님을 선물로 부어 주시는 것으로 인해 다 심히 놀라니

 

12. 베드로가 간증하는 장면을 보겠습니다. 유대에 있던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것을 들었더라.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에 속한 자들이 그와 다투며 이르되, 네가 할례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들어가 그들과 함께 먹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처음부터 되풀이해서 말하고 차근차근 풀어 설명하여 이르되그들이 이것들을 듣고는 잠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에 이르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11:1-4, 18)

 

13. 우리는 사도행전 11장에 나오는 교회의 인도자들이 아직 영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인들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당시의 교회는 아직 유아기를 거치는 중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당시 교회의 회원들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는 것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해 하시려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이 유대와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기 원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통해서 역사하시고 베드로가 그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함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14. 당시의 교회는 베드로가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한 게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베드로를 비판했고 베드로는 성령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그들에게 간증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자랑을 하거나 자신이 얼마나 복음을 잘 전했는지 혹은 자기의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를 이야기 한 게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베드로의 간증을 들은 교회는 베드로가 얼마나 똑똑한지 칭찬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감탄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나온 간증입니다.

 

15. 사도행전 14장을 보겠습니다. 어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움에서 거기로 와서 사람들을 설득하고 돌로 바울을 친 뒤 그가 죽은 줄로 생각하고는 도시 밖으로 그를 끌어내니라. 그러나 제자들이 그를 둘러섰을 때에 그가 일어나 도시로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떠나 그 도시에 복음을 선포하여 많은 사람을 가르치고 다시 루스드라와 이고니움과 안디옥으로 돌아가 제자들의 혼을 굳건하게 하며 그들을 권면하여 믿음 안에 거하게 하고 또 우리가 반드시 많은 환난을 거쳐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야 하리라 하더라. 그들이 각 교회에서 그들을 위해 장로들을 임명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자기들이 믿는 주께 그들을 맡기며 비시디아를 두루 지나 밤빌리아에 이르러 말씀을 버가에서 선포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을 향해 떠나니라. 이곳은 그들이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에 맡겼던 곳이더라.”( 14:19-26)

 

16. 이들은 무엇을 했습니까? 이들은 선교 여행을 했습니다.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이들은 무엇을 했습니다. 27절부터 보겠습니다. 그들이 도착하여 교회를 함께 모아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또 그분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되풀이하여 말하고 거기서 제자들과 함께 오랫동안 머무니라.”(27-28)

 

17. 선교사들이 와서 교회에 자신들의 사역에 대해 보고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삶 가운데 어떤 일을 해 주셨으며, 어떻게 사역을 인도해 주셨고 사역지를 어떻게 변화시켜 주셨는지 이야기하면 그것을 들은 우리의 마음은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18. 27절에서 바울이 간증한 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행하신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분께서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열어 주신 것을 믿음의 문을 연 것은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저 하나님과 함께 일했을 뿐입니다. 이방인들을 구령한 것은 바울과 실라가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모든 교회가 모여서 들은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가 입니다. 교회가 모이는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셨는지 간증을 하고 듣기 위함입니다.

 

19. 요한삼서를 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가 형제들에게나 낯선 자들에게나 무엇을 행하든지 신실하게 행하니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네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속한 방법대로 그들의 여행을 후원하면 잘하리라. 그들은 그분의 이름을 위해 나가면서 이방인들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하였느니라.”(요삼 5-7)

 

20. 이것도 전형적인 성경적 간증 중 하나입니다. 만일 간증하는 사람의 마음의 동기가 바르다면 회중 앞에서 특정한 사람을 거론하면서 그는 선한 형제이며 주님의 신실한 일꾼이라고 증언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회중 앞에서 특정한 사람이나 가족을 거론하면서 그들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증언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21. 이것은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 청년들은 교회에서 어떤 청년들을 본받아야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정은 어떤 가정을 본 받아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젊은 사역자들은 누가 바른 동기와 영으로 주님을 섬기는 사역자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누가 성경과 교리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누가 제대로 일을 하고 있고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는지 말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게 아닙니다.

 

22. 누가 주님을 제대로 섬기고 있는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랑하거나 사람을 높이려는 데 있습니다. 만일 주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잘하였도다. 선하고 신실한 종아( 25:21)라고 말씀하신다면 누군가 일을 잘 하는 사람에게 잘 한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 아닌 게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신실하다고 하신다면 우리도 어떤 사람을 신실하다고 하는 게 잘못은 아닐 것입니다. 주님께서 존경할 자에게 존경을 주라( 13:7)고 하셨다면 존경을 받아 마땅한 자를 우리가 존경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23. 40년 간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본 받을 만큼 훌륭한 가정 생활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복음을 전하며 사역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존경을 받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성경을 기준으로 살며 성경대로 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바른 그리스도인인지 교회 앞에서 증언해야 합니다. 누가 바른 본인지 회중들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라 바른 일입니다.

 

24.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을 인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게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위선자들만 있는 게 아닙니다. 오랫동안 주님과 교제를 나누며 영적으로 바르게 성장한 훌륭한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진리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의 사랑하고 성경을 믿는 신실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25. 어떤 사람들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위선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위선자가 아닌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 어떤 일을 해 주셨는지 사람들 앞에서 간증하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26. 시편 111편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내가 곧바른 자들의 집회와 회중 가운데서 내 온 마음으로 주를 찬양하리로다.”( 111:1) 여기에는 집회로 모인 회중이 있습니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해 주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습니다. 간증도 마찬가지입니다.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해 주셨는지 회중들에게 알릴 수 있습니다.

 

27. 시편 116편도 보겠습니다. 그분의 온 백성 앞에서 이제 나의 서원들을 주께 이행하리로다이제 내가 나의 서원들을 주께 이행하되 그분의 온 백성 앞에서와 주의 집의 뜰에서와, 오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서 하리로다.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116:14, 18-19) 주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게 간증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에게 특별한 일을 해 주셨다면 혼자만 간직하고 있지 말고 회중 가운데 알리고 주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해 주신 놀라운 일을 혼자만 기뻐하고 혼자만 감사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지체들에게 알리고 함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28. 이제 좀 실제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젊은 사역자가 처음 사역을 시작하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네다섯 몇이 생겼다고 합시다. 그러면 향후 이삼 년간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네다섯 명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릴 때 간증 시간을 갖기도 할 것입니다. 교회로 모인 회중의 수가 이렇게 작을 경우 목사는 회중 개개인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간증 시간에도 누군가 이상한 간증을 하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복을 주셔서 성도들이 400명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다고 합시다. 성도들의 수가 많아지면 개개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슬슬 이상한간증을 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누군가 간증을 한다고 하면 주의해야 합니다.

 

29.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증을 하겠다고 해서 회중 앞에서 간증을 하게 했더니 그는 간증을 하는 중에 잘못된 교리를 이야기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해주셨다고 할 때가 있습니다.[1] 만일 제가 목사로서 그 사람이 말한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면 그는 회중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되고 어쩌면 다시는 교회에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게 됩니다. 반대로 목사가 그 사람의 비 성경적인 간증을 바로잡지 않으면 영적으로 어린 일부 성도들은 그 사람의 비 성경적인 이야기가 하나님의 역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30.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간증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셔서 너무 감사 드립니다. 이제 주님께서 성령의 불을 보내셔서 저에게 불 침례를 주시기 원합니다.” 저는 이와 비슷한 간증을 라디오에서 종종 듣습니다. 이런 얘기를 한 사람은 비록 성경을 잘 모르기는 하는 사람이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류의 간증을 바로잡지 않고 넘어가면 영적으로 어린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간증한 사람의 오류에 동참해서 불 침례를 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있고 그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는 간증한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을 지적해 줍니다. “형제님, 지금 성경을 잘 모르셔서 잘못된 것을 구하고 계시는군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은 사람은 이미 성령님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불 침례를 구할 필요도 없고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형제님에게 불 침례를 주지도 않으실 겁니다.”

 

31. 고린도전서 14장을 보겠습니다.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처럼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시니라.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잠할지니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또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느니라.”(고전 14:33-34) 이 구절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명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지 않는 자들만이 이 구절이 말씀하시는 것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32.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거부함으로 인류는 파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가 다스리게 하셨고 여자는 남자를 돕게 하셨습니다. 그 반대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구원받고 교회에 오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자를 통해 배울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실행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과 실행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법칙을 배워서 자신과 가정을 바로 세우게 됩니다.

 

33. 성경은 남자가 마귀에게 속은 게 아니라 여자가 속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자가 더 약한 그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순종하고자 하는 속성을 주셨습니다. 문제는 자신의 구원자에게 순종하는 게 아니라 마귀에게 순종함으로 일을 망쳐버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가 마귀에게 속았기 때문에 여자를 머리로 삼지 않으시고 남자를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열등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여자의 속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34. 디모데전서 2장을 보겠습니다. 또한 이런 식으로 여자들도 단정한 옷으로 자기를 꾸미되 얌전하게 맑은 정신으로 하고 장식한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하지 말며 오직 (하나님의 성품을 고백하는 여자들에게 합당한) 선한 행위로 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9-10)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외모 보다는 영적인 것에 훨씬 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35. 성경은 여자가 외모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말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것보다 훨씬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그리스도인 자매는 화장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성경적인 게 아닙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삼십 분 동안 화장을 하면서 오분 간 기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도행전 5장에서 삽비라가 아나니야보다 세시간이나 늦게 교회에 온 것은 화장을 하느라 그랬다고 합니다( 5:1-11).[2]

 

36. 계속해서 11절을 보겠습니다. 여자는 전적으로 복종하며 조용히 배울지니라.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어지고 그 뒤에 이브가 지어졌으며 또한 아담이 속지 아니하고 여자가 속아 범죄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라.”(11-14)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기회를 주지 않게 하시기 위해 이러한 질서를 규정하셨습니다.

 

37. 오늘날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리더쉽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불행하게도 지난 십 년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리더쉽이 더욱 확대되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나라를 망쳐버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거나 남자가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까지 거기에 동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세상이 다 한쪽으로 몰려가도 끝까지 남아서 하나님의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언제나 옳고 언제나 최선의 것입니다.

 

38. 오늘날 모계중심 사회는 모두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는 길을 걷고 있습니다. 남미와 아프리카와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하나님을 최종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성모 마리아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39. 성경은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보다 열등하신 분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아버지께 순종하셨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하는 것은 열등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40. 다시 고린도전서 14장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교회에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자매가 간증하는 게 옳은지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자매가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의 문맥은 가르치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형제들은 제가 너무 멀리 나갔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자매가 간증은 할 수 있게 하되 가르치지는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좋습니다. 저는 그렇게 실행하는 교회나 목사를 정죄할 생각은 없습니다.

 

41. 그러나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과 간증의 경계가 모호해 질 때가 있습니다. 단순히 간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가르치려고 하는 내용이 조금이라도 들어갈 때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매가 간증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형제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말을 하려고 할 때 바로 중지 시킨다면 회중 앞에서 자매에게 창피를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잘못 실행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예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42. 고린도전서 14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대언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그들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나니그러나 모두가 대언을 하면 믿지 않는 자나 배우지 못한 자가 들어와서 모든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달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자기 마음의 은밀한 것들이 이렇게 드러나게 되므로 그가 얼굴을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또 진실로 하나님께서 너희 안에 계신다고 전하리라.”(고전 14:3, 24-25)

 

43. 고린도전서 14장을 히브리서 4장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권능이 있으며 양날 달린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둘로 나누기까지 하고 또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이시니 그분의 눈앞에서 드러나지 아니하는 창조물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우리와 상관하시는 그분의 눈에 벌거벗은 채 드러나 있느니라.”( 4:12-13)

 

44.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개인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만일 믿지 않는 사람이 교회에 와서 믿는 자들이 자신들에 대해 자랑하는 것을 보면 아무도 죄를 깨닫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14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45. 우리는 찬양을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간증을 할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찬양이나 간증을 하는 사람은 자신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좋은 설교는 설교자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는 설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면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올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간증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덕을 세우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을 받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확신을 갖게 될 것입니다.

 

46. 간증은 어디서나 할 수 있습니다. 회중 전체가 모인 가운데 할 수도 있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간증은 반드시 회중 전체를 앞에 두고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한 사람이 저에게 개인적으로 해준 간증을 듣고 감동을 받아 큰 변화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47. 여러분은 오늘 왜 교회에 오셨습니까? 의무감에서 오셨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오셨습니까? 잘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 주 동안 해주신 일을 다른 지체들과 나누려고 오셨습니까? 지난 한 주 동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해 주신 일이 있습니까? 지난 한 주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해 주신 일 중에 주님께 영광을 돌릴 만한 일이 있습니까? 그러한 일을 다른 지체들과 나누고 싶지 않으십니까?

 

48. 우리의 대화가 이 세상의 쓸데없는 일에 대한 게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 해 주신 위대한 일에 대한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해 주신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주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것이 바로 간증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어떠한 선한 일을 해 주셨는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십시오. 물론 우리가 교회에서 간증을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바른 일을 바른 방법으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1]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방언을 주셨다고 간증하거나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누구와 결혼하라고 하셨다는 등 비 성경적인 이야기를 하며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응답인양 간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역주

[2]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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