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2011.10.04 01:25

교회론-제23장 세 부류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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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장 세 부류의 사람

Doctrine of the Church

James W. Knox 지음 / 우진 옮김

 

이 과의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Doctrine of the Church 시리즈를 요약 및 정리 것입니다.

 

1. 성경은 인류를 세 부류로 나눕니다. 그것은 바로 유대인과 이방인과 교회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두 성품을 소유하게 됩니다. 겉 사람과 속사람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옛사람과 새사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2. 고린도후서 4장을 보겠습니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썩어 없어져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도다.”(고후 4:16) 겉 사람은 아담의 자손으로 자연적인 방법으로 태어난 육신의 몸을 말합니다. 속사람은 성령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사람으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겉 사람은 점점 쇠약해 지고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고 있습니다. 속사람이 날마다 새로워 지기 때문에 거듭난 게 엊그제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 속사람은 결국 더 이상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영원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겉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고통과 슬픔과 질병입니다.

 

3. 갈라디아서 2장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2:20)

 

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이것은 옛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이것은 새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죽음과 관련이 있고 다른 하나는 생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몸 안에 살고 있습니다. 이 육신 안에서 우리는 육신에 복종하여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성령님께 순종하여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5. 이제 로마서 7장을 보겠습니다. 내가 속사람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들 안에서 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는도다.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이와 같이 내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7:22-25)

 

6. 여기서 지체라고 하는 것은 몸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구원받은 사람 안에는 두 성품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이 두 성품이 서로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싸움을 벌이는 두 성품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갈등을 겪고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성령님으로부터 태어난 속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을 하기 원합니다. 반면에 아담으로부터 태어나 구원받지 못한 육신은 거듭나기 전에 살았던 그대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7. 내 속에 있는 두 성품이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한 쪽은 죄를 짓기 원하지 않고 다른 한 쪽은 죄를 즐기려고 합니다. 한 쪽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하고 다른 한 쪽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이 없고 마치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한 쪽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살려고 하고 다른 한 쪽은 육신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이것은 싸움이며 전쟁입니다. 로마서 7장의 말씀은 구원받은 사도 바울이 성령님의 영감으로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8. 우리가 방금 읽은 본문의 앞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인정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내가 미워하는 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그런즉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내가 행하면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율법에 동의하노니 그런즉 이제 그것을 행하는 자는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할는지는 내가 찾지 못하노라. 이는 내가 원하는 선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원치 아니하는 악을 곧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이제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내가 행하면 그것을 행하는 자가 더 이상 내가 아니요 내 안에 거하는 죄니라. 그런즉 내가 한 법을 발견하였나니 곧 내가 선을 행하기 원할 때에 악이 나와 함께 있는 것이로다.”( 7:15-21)

 

9.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이 기록한 내용입니다. 그는 무엇이 바른 것인지 알고 있었고 그 바른 것을 행하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바른 것을 행하려고 할 때마다 반대 세력이 나타나서 그를 막았습니다. 그 반대 세력은 마귀도 아니고 세상도 아니었습니다. 헐리우드도 아니고 술도 아니고 마약도 아니었습니다. 그 반대자는 바로 육신이었습니다.

 

10. 여러분의 원수는 바로 여러분의 육신입니다. 이 원수는 24시간 여러분과 함께 있습니다. 여러분이 거울을 볼 때 이 원수를 볼 수 있습니다. 거울에 보이는 그 자가 바로 원수입니다.

 

11. 속사람은 주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옛사람, 겉 사람, 육신은 육신에 속한 것을 따르기 원합니다. 이 둘 사이에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12. 요한일서 3장을 보겠습니다. 죄를 범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죄를 짓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목적은 이것이니 곧 그분께서 마귀의 일들을 멸하시려는 것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분의 씨가 그 속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 그는 하나님에게서 났으므로 죄를 지을 수 없느니라.”(요일 3:8-9)

 

13.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마귀로부터 나지 않았습니다. 육신으로 난 것은 육신일 뿐입니다. 구원받고 나서도 육신은 여전히 육신입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육신이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육신 안에서 사는 동안에 이 육신은 죄악의 씨를 가진 아담의 혈통을 따른 육신일 뿐입니다. 그러나 영은 다릅니다. 육신인 옛 사람 안에는 썩지 않고 영원히 있는 씨인 하나님의 말씀에서 난 새로운 사람이 있습니다.

 

14.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겉 사람과 결코 죄를 지을 수 없는 속사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이 두 사람은 결코 서로 친하게 지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결국 이 둘 중에 하나의 손을 들어줘야 합니다. 이 둘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옛 사람을 따라가면 육신을 기쁘게 할 것이고 새 사람을 따라가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15.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월요일에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다가 화요일에는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죄에 빠졌다가 수요일에는 다시 주님 앞에 돌아왔다가 목요일에는 다시 모든 것을 망쳐버리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새 사람은 결코 죽을 수 없고 옛 사람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16. 만일 여러분이 새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 준다면 여러분은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바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옛 사람에게 자신을 내어주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한번도 지어 본 적이 없는 끔찍한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17. 어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는 선을 행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어떠한 상황에 있더라도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 안에는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새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자신은 결코 앞으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 안에 있는 옛 사람이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누구에게 자신을 내어주느냐에 따라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있고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18.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구원받았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혼은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육신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로마서 8장을 보겠습니다. 이는 창조물 자신도 썩음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런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 8:21)

 

19. 이것은 육신에 대한 말씀이며 미래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은사주의자들은 이 말씀을 보면 실망하고 말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구원은 지금 당장 육신의 몸을 고쳐주는 게 아닙니다. 이 육신에서 빠져 나오기 전에는 결코 육신으로부터 탈출할 수 없습니다.

 

20. 계속해서 22절을 보겠습니다. 또 전체 창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 중에 산고를 치르는 줄을 우리가 아나니 그들뿐 아니라 우리 자신 곧 성령의 첫 열매를 소유한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삼으심 즉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림은(22-23)

 

21. 성경은 분명하게 구원받은 사람도 신음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자 마자 바로 몸이 구원받고 모든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놓임을 받는 것이라면 왜 구원받은 사람이 신음하겠습니까? 신음하는 이유는 몸이 아직 구속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2. 저는 1976년 12월 17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안경을 끼고 있습니다. 앞머리가 빠져서 대머리가 되고 있습니다. 제가 구원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저의 몸이 구속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3. 여러분은 구원받지 못한 몸 안에 살고 있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거듭났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살고 있는 몸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복종하여 죄를 지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육신과 싸워야 하고 여러분에게 복종시켜야 합니다.

 

24. 이 세상에는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두 부류의 사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만일 구원받은 사람은 모두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면 교회에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또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는 본성에 속한 사람(natural man)”이고, 둘째는 육신적인 사람(carnal man)”이고, 셋째는 영적인 사람(spiritual man)”입니다. 이들 세 부류의 사람들은 분명하게 식별됩니다. 어떤 사람이 본성에 속한 사람이고 육신적인 사람이고 영적인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25. 성경은 자연적으로 태어난 그대로의 사람을 본성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본성과 죄악 된 본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에베소서 2장을 보겠습니다. 지나간 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래(and were by nature)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2:3)

 

26. 에베소서 2:3에 의하면 본성에 속한 사람은 전적으로 육신의 욕망의 통제에 따르는 사람입니다. 본성에 속한 사람은 오직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삽니다. 자신은 영적인 것을 추구한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오로지 육신의 욕망만을 따라 삽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그대로 행합니다.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 갑니다.

 

27. 본성에 속한 사람을 통제하는 방법은 무력을 동원한 강제력밖에 없습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통제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좋은 말로는 전혀 통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은 강제로 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은 떠들고 싶을 때 떠들고 뛰고 싶을 때 뜁니다. 옆에 있는 다른 아이를 때리고 싶으면 때립니다. 아이들은 본성에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안에는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나 어머니나 교사가 아이들을 통제하고 제어해야 합니다.

 

28.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속도제한이 있다고 그것을 따르는 게 아니며 규칙이 있다고 따르는 것도 아닙니다. 경찰과 감옥과 법이 없다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고 맙니다. 자연재해로 국가의 권력이 일시적으로 통제력을 일었을 때 혼돈과 약탈이 자행됐던 것을 우리는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29. 본성에 속한 사람은 통제되지 않습니다. 오로지 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야만 통제할 수 있을 뿐입니다. 신약성경은 단순히 무엇을 하라(let)”고 말씀하시는 반면 구약성경은 반드시 할지니라(must)”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구약 성도들은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에 강력한 법을 주셔서 통제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도들은 거듭나서 그 안에 성령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30. 유다서 19절을 보겠습니다. 이들은 자기를 분리시키는 자들이며 육체적 감각대로 살고 성령이 없는 자들이니라.”

 

31. 여기서는 본성에 속한 사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본성에 속한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니고 성령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각대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항상 자신이 느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그들은 항상 좋은 느낌을 찾아갑니다. 본성에 속한 사람도 종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종교에는 웅장한 건물과 성상과 특정한 복식과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야 종교라는 느낌이 있기 때문입니다.

 

32. 오프라 윈프리가 백만장자가 된 것도 사람들의 감정을 어떻게 자극하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기독교 방송도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데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방송에서는 성경적인 설교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사랑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든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고 다 받아주신다는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듣기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감정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본성에 속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33. 고린도전서 2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본성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니라. 또 그가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것들은 영적으로 분별되느니라.”(고전 2:14)

 

34. 어떤 사람이 자신은 창조론을 믿지 않고 진화론을 믿는다고 하면 이 세상의 뉴스 미디어는 그 사람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떠들어 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하면 그 사람을 비과학적이며 어리석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하나님의 영의 것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어리석게 보기 때문입니다. 본성에 속한 사람에게는 성경이 어리석은 것으로 보이고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이 세상이 어리석은 것으로 보입니다.

 

35.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하심에 대한 복음 이외의 것을 전하는 것은 큰 소득이 없습니다. 그들은 성경이 사회나 도덕이나 정치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도덕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혹은 정치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설명하려고 해도 그들은 그것을 어리석게 여길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의 진리를 설명할 수도 없고 그들이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36. 성경이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말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얘기하면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가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한 물 간 기준을 아직도 믿냐고 할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성경의 진리가 그저 어리석은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듭나지 않았고 성령님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성경의 진리들이 모두 어리석은 것으로 보일 뿐입니다.

 

37. 이제 좀 슬픈 사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원받으면 자동으로 변하는 것은 영원한 종착점 밖에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갑니다. 그러나 구원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생각과 행동과 삶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둘째 부류의 사람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육신적인 사람입니다.

 

38. 육신적인 사람은 구원은 받았지만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육신적인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지만 구원받지 않은 사람처럼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구원받지 않은 사람처럼 사는 구원받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육신적인 사람은 구원받았지만 구원받지 않은 사람처럼 생각합니다.

 

39. 육신적인 사람은 분명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삶을 보면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구원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달라지는 것은 죽어서 가는 목적지 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구원받았으면서도 이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사람을 육신적인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40. 로마서 8장을 보겠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거니와 성령을 따르는 자들은 성령의 일들을 생각하나니( 8:5)

 

41. 여기서는 육신적인 사람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육신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구원받지 않은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구원받고 나서 누구를 따르느냐입니다. 무엇을 원하냐는 입니다. 결정의 근거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42. 계속해서 다음 6절을 보겠습니다.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 말씀에 대한 해설이 바로 7절입니다.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참으로 그리할 수도 없으므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그런즉 이와 같이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느니라.”(7-8)

 

43.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이면 거듭 나게 됩니다. 문제는 이렇게 구원받은 사람도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44.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값없이 받습니다. 아무런 행위가 없어도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그 말씀에 따르지 않는다면 육신적인 사람입니다. 어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1]은 아예 교회에 다니지도 않습니다. 교회에는 다니지만 성경을 가르치지 않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들의 육신을 즐겁게 해 주는 교회를 찾는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육신적인 사람의 특징은 여러 가지로 드러나지만 그 정의는 단순합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육신적인 사람입니다.

 

45. 대형 교회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으면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제 멋대로, 육신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면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늘어날 것입니다. 각자 자신이 느끼는 대로 살게 하고 성경을 마음대로 해석하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올 것입니다.

 

46.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느낌을 의지합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육신적인 사람도 자신의 느낌에 따라 삽니다. 그러나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삽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지에 관심이 있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육신적인 사람은 자신의 의견에 따라 살고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삽니다.

 

47. 고린도전서 3장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영에 속한 자에게 말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갓난아이들에게 말하는 것 같이 하였노라.”(고전 3:1)

 

48. 우리는 어떤 사람이 육신적인 사람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음식으로 하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지금까지 너희가 그것을 능히 감당하지 못하였으며 지금도 못하기 때문이라.”(고전 3:2) 하나님의 말씀의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고 젖을 먹는 사람이 육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단단한 음식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천년왕국, 휴거, 구약 성도들의 구원, 세대주의 등이 단단한 음식일까요? 이러한 것을 알면 단단한 음식을 먹는 것이고 영적인 사람인 것일까요? 이것은 흥미 있는 주장일 수는 있지만 영적인 주장은 아닙니다.

 

49. 말씀의 젖을 먹는 사람은 성경의 일부에만 복종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고 좋아하는 말씀에만 순종합니다. 자신이 순종하길 원하지 않는 말씀은 순종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말씀에만 순종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육신적인 사람입니다.

 

50.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하였도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과 분열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들처럼 걷지 아니하느냐?”(3)

 

51. 지금 여기서는 구원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기와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이 바로 육신적인 사람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있어도 시기와 다툼과 분열을 일으키면 그 사람이 바로 육신적인 사람입니다.

 

52. 어떤 사람이 육신적인 사람이냐, 아니면 영적인 사람이냐 하는 문제는 본질적으로 성경 지식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성경을 알아야 하지만 성경 지식만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시기와 다툼과 분열을 일으킨다면 성경 지식이 많다 할지라도 육신적인 사람입니다. 아무리 많은 성경지식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시기와 다툼과 분열을 일으킨다면 영적으로 어린 아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53.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와 자비와 친절을 베풀고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없다면 결코 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과 다르면 조금도 참아주지 못하고 함께 지내지 못한다면 육신적인 사람이며 영적인 아기일 뿐입니다. 자신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 하고만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육신적인 사람이며 영적인 아기입니다.

 

54. 성경의 어려운 교리들을 안다고 해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난해구절을 많이 알고 신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하고만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세리들과 같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본성에 속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은 구원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또한 이것은 육신적인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의견에 100% 동의하는 사람하고만 잘 지낼 수 있다면 육신적인 사람일 뿐입니다. 저는 지금 누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55. 진정한 영성(spirituality)은 성경 구절을 몇 구절이나 인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영성을 예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56.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과 만나서 사귀고 노는 게 즐거운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과 만나서 교제를 나누는 것보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과 있는 게 더 즐거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육신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57. 육신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설교하고 찬양하고 주목 받는 것을 시기합니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주고 자신의 눈에 가치가 있는 사람과만 교제를 나눕니다. 항상 자신들의 이미지를 생각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교회를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때에만 일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자녀가 교회에서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합니다.

 

58. 육신적인 사람은 교회에서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그는 형제들 가운데 분열을 조장합니다. 육신적인 사람은 자신을 망치고 교회를 망치는 사람입니다. 육신적인 사람은 전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육신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성령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을 뿐입니다. 육신적인 사람은 다른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이기적이며 자아 중심적이고 교회에 분열을 가져옵니다. 자신은 너무 영적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는 교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59. 갈라디아서 6장을 보겠습니다. 속지 말라. 하나님은 조롱당하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 육신에게 심는 자는 육신으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되 성령에게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존하는 생명을 거두리라.”( 6:7-8)

 

60. 육신적인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현재를 넘어선 미래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는 일이 한 달 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올해 하는 일이 십 년 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멍청해서도 아니고 지능이 낮아서도 아닙니다. 영원을 생각하지 않고 현재만을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61.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살면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계획을 세우시는 분입니다.[2]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한 구원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자신의 왕국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성막과 성전을 향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십자가 구속을 통한 계획을 세우셨고 교회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믿음이 있다는 이유로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은 결코 성경적인 것도 아니고 믿음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62. 남자가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아내를 사랑하지 않으면 가정은 분열됩니다. 여자가 구원을 받아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가정은 붕괴됩니다. 사랑과 순종은 영적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곳은 분열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지체를 사랑하지 않고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분열되며 이것은 육신의 일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63. 고린도후서 10장을 보겠습니다. 비록 우리가 육신 안에서 걸으나 육신을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전쟁 무기는 육신에 속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통해 강력하여 요새들도 무너뜨리느니라.) 우리는 상상하는 것과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대적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높은 것을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하며(고후 10:3-5)

 

64. 육신 안에 있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육신을 따르는 것은 잘못입니다. 육신적인 사람의 특징은 혈과 육에 대항해서 싸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2에서는 우리는 살과 피와 맞붙어 싸우지 아니하고 정사들과 권능들과 이 세상 어둠의 치리자들과 높은 처소들에 있는 영적 사악함과 맞붙어 싸우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특정한 사람과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의 적은 영적 세력들입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을 하는 것이지 육신적이거나 물리적인 전쟁을 하는 게 아닙니다.

 

65. 육신적인 사람들은 낙태반대 운동이나 폭력추방 운동은 하지만 직장동료에게 어떻게 하면 거듭나고 구원받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육신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증식시켜 주고 이 세상에서 안락한 삶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뽑자고 정치적인 운동을 하지만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해 오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육신적인 사람은 자신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웃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습니다. 육신적인 사람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이나 설교자들과 다투고 그들을 비난하지만 마귀를 대적해서 싸우지는 않습니다. 육신적인 그리스도인도 교회 일에 관심을 갖기는 하지만 오로지 교회가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고 자신이 교회에서 주목 받는 데만 관심을 갖습니다.

 

66. 우리의 원수는 테러단체가 아닙니다. 우리의 원수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공교육 제도가 우리의 원수도 아닙니다. 민주주의도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유엔이나 나토도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환경 파괴범들도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들도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이 세상을 파괴하거나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우리의 원수가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육신적인 싸움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온 세상을 속이고 있는 마귀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사람들을 지옥으로 보내고 있는 거짓 종교입니다.

 

67. 이제 마지막으로 영적인 사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만일 자신이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 아닌 게 확실합니다. 만일 자신이 영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영적인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그 사람은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68. 다시 고린도전서 2장을 보겠습니다. 사람의 것들을 사람의 속에 있는 사람의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것들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이제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영을 받았으니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함이라.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가 가르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말로 하나니 곧 영적인 것들은 영적인 것으로 비교하느니라오직 영에 속한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나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 2:11-13,15)

 

69. 구원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영적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영적인 사람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70.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이 직장에 다녀야 하는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내가 저 사람과 사귀어야 하는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내가 저런 옷을 입어도 되는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내가 저 교회에 다녀도 되는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나는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배우자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71. 영적인 사람은 모든 판단과 관계와 행위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고 인생의 모든 문제의 정답을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5)

 

72.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자 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자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합니다.

 

73. 갈라디아서 6장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만일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거든 영적인 너희는 온유의 영으로 그러한 자를 회복시키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라. 너희는 서로 남의 짐들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6:1-2)

 

74. 여기서는 영적인 사람의 또 다른 특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많이 알면 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전한 교리를 믿으면 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영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교회를 위해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이는 장소를 청소하거나 정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치우지 않으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치워야 합니다. 내가 치우면 다른 사람의 짐을 지는 것입니다. 엄청난 일을 해야만 영적인 사람인 게 아닙니다. 교회 내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며 섬기는 것이 바로 영적인 것입니다.

 

75. 자신이 어지럽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치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이 망가뜨리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고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지는 게 영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적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각자 자신의 일만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 중 누구도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짐을 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사람의 특징입니다.

 

76. 영적인 것은 단순합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은 새로운 생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어려움에 처한 형제를 보고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타락한 형제를 비판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온유의 영으로 돕고 일으켜주고 세워주고 회복시켜 주려고 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낙담한 형제들을 비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낙심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77. 영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성숙함입니다. 갓난 아기는 스스로 기저귀를 갈지 못합니다. 어린 아이들도 잘 하지 못합니다. 성장한 사람이 갈아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배려하고 친절을 베풀고 도와주는 사람이 영적인 사람입니다. 만일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육신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며 염려하고 도와주려는 사람이 있다면 성령님께서 그 사람 안에서, 그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78. 로마서 8장을 보겠습니다.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요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6) 이 말씀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죄는 죽음을 가져옵니다. 육신적으로 살면 죽음이 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살면 생명과 평안이 옵니다.

 

79.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을 누려야 하고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눠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다른 형제 자매들과 교제를 나누고 평화롭게 지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은 영원한 집으로 가는 길을 걷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이 길을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평화롭게 함께 걸으며 여행을 즐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을 줍니다. 기도는 마음을 평온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를 아는 사람에게는 무엇인가를 억지로 하도록 강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길 것입니다.

 

80. 구원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원을 받고 그 구원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걸으면 자연스럽게 그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5:22-23)

 

81.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으로 대하고 부드러움과 선함으로 대해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다른 사람들을 온유와 절제로 대해 보십시오. 당신이 이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육신적인 사람은 이러한 마음 조차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영적인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어떤 식으로 여러분을 대해도 여러분의 반응은 항상 영적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육신적인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일이 벌어질 때 육신적인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82. 성경에는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가고 있는 본성에 속한 사람이 있고 구원은 받았지만 구원받기 전처럼 육신을 따라 사는 육신적인 사람이 있고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영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본성에 속한 사람인지, 육신적인 사람인지, 영적인 사람인지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한 본성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구원해 주실 수 있습니다. 육신적인 사람도 영적인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 주시기 원합니다.

 


[1]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즉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의미합니다( 11:26). 따라서 원칙적으로 육신적인 그리스도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는 표현만 그렇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역주

[2] 성경의 하나님은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시는 하나님입니다( 7:30, 2:23, 4:28, 20:27, 1:11, 6:17 참고)-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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