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11.09 05:02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47(11월 17일-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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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47

11월 17일-23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1117

기근 속에서의 풀과 가축

 

앞서 우리는 가축, 돼지, 그리고 양을 기르는 사람들이 이집트 사람들에게는 가증스러운 것으로 간주되었음을 살펴본 바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그 땅에 7년간의 기근이 닥쳐왔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요셉이 곡물을 저장해 둔 것을 지시한 바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기근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필요한 양식을 구하기 위해 요셉에게로 왔습니다.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본다면 기근이 발생한 지역에서 어떻게 이삭의 자녀들이 양들을 칠 수 있는 푸르고 기름진 초장이 있을 수 있는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신지요? 이것은 하나님의 손길이 풀과 초장은 상하지 않은 채로 내버려두는 대신 곡물을 다 말라 죽게 하신 것을 암시하는바 이집트가 격은 재앙이 일반적인 가뭄이었다기 보다는 초자연적인 것이었음을 시사해준다고 하겠습니다.

파라오는 가축을 소유하고 있는 반면 백성은 굶어 죽고 있다면 이집트 사람들은 짐승들에게 어처구니없는 높은 지위를 부여하여 그것들을 죽이거나 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일련의 사람들이 짐승들을 인도적으로 대하고,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동물을 먹거나 쫓아내는 것마저 금지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고 방식이 보편화된 이교국가가 있지요. 인도를 보십시오. 마년 수 천명이 굶어 죽는 가운데서도 가축들과 기타 식용이 가능한 것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지 않습니까?

암소는 이시스로 알려진 이교신의 상징입니다. 사자의 서(죽은 자들의 책)로 알려진 이집트의 고문서에는 오시리스 신이 일곱 암소를 거느린 황소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파라오의 꿈에서 그 민족의 신들이 미침으로 인해 야기된 기근 가운데서도 이집트 백성들은 여전히 그들의 어리석음에 매달리고 있군요.

한 분 하나님께서 계시며 그분께서 인간에게 최상의 지위를 주셨고 그 외 움직이는 모든 것은 인간의 섬김과 용도를 위한 것이라는 진리를 거부한 민족은 결국 짐승을 숭배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1:18-24). 아마 이집트가 그 지경에 이르렀던 것 같습니다. 7년 재앙은 바로 이 비정상적인 애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자신의 생명을 가까지 않고 어린 바다 표범이나 딱따구리를 구출하려는 여자들이 자신들의 뱃속의 아이는 낙태시킬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자녀를 낳은 즉시 도우미나 할머니에게 맡겨 놓고 매일 아침 출근해서 유기견과 고양이들을 위해 따뜻한 사랑을 베푸는 여자들도 있습니다. 부모들과 남편들 및, 학교 선생님들의 권리를 빼앗으려고 온갖 시도를 다하는 자들이 바다 암소, 거북이, 어치 등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사회는 완전히 왜곡된 사회입니다.

창조주보다 창조물을 숭배하고 고등생명 보다 하등한 형태의 생명을 숭배하는 사회가 오늘날 가장 전진된 선진국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현상은 이집트를 두 번에 걸쳐 파탄에 빠뜨린 이교도의 부활에 불과할 뿐입니다.

 

 

1118

야곱이 파라오를 만남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데려가 파라오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파라오를 축복하매( 47:7)

이 구절과 다음 세 절에서 우리는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왕에게 소개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파라오는 그의 나이를 물었고 야곱은 130세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가 덧붙인 말은 그의 인생의 요약이라고 하기보다는 그가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 야곱의 선언은 야곱과 그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의 성품이 얼마나 대조적인지를 또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삶의 햇수의 날이 얼마 안 되고 험악하였으며…” 물론 야곱의 인생을 돌이켜보면 많은 불행한 사건들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에어와의 충돌,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이별, 라반의 속임수, 요셉과 그 후 사랑하는 라헬을 잃어버림 등. 그러나 그에게는 장자권과 축복이라는 좋은 일도 있었고 라헬과의 사랑, 하나님과 씨름하여 얻은 약속, 그리고 드디어 요셉과 재회하게 됨 같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인생의 좋은 날들은 재껴 놓고 자신이 겪은 쓰라린 경험만을 증언하고 있군요. 반면 요셉은 어떤가요? 요셉 역시 야곱 못지 않게 어렵고 힘든 시험을 많이 겪었고 이를 탄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주님께 눈을 두고 힘든 날에도 내일의 좋은 날들을 소망하는 가운데 이겨냈습니다.

모든 인간사에는 햇빛과 비, 기쁨과 슬픔이 있게 마련입니다.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인생을 이야기해 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러분에게는 어떤 순간들이 떠오를 것 같으신지요? 어려움을 시 하나님께 불평이 나올까요? 아니면 너무도 많은 좋은 순간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실까요? 인생의 문제들 앞에서 한숨을 쉬고 징징대십니까, 아니면 살만한 가치가 있도록 내 인생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나요? 입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느니라.”( 12:34)

 

 

1119

프랭클린 딜라노 요셉

(플랭클린 딜라노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미국을 구제한 것을 빗대어 지은 이름임.-역주)

 

이집트 땅은 급속히 절망의 상태에 빠졌습니다. 개인의 가정과 농장은 전례가 없는 시련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국 매일 먹을 양식을 정부에 구걸하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요셉에게서 곡식을 샀으나 이제는 돈도 소용없게 됩니다. 이집트국민과 더 낳은 삶을 위해 이집트로 온 외국인들 모두 생존만할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다 정부에 바쳐버립니다( 47:14).

돈이 떨어진 사람들에게(15), 요셉은 짐승들을 받고 먹을 것을 내어줍니다. 당장 먹고 살 수가 없었기에 그들은 기꺼이 자신들의 수입의 원천들을 다 포기합니다. 그러나 기근은 더 심해지고 결국 요셉은 이들에게서 땅을 사고 먹을 것을 내어줍니다. 그들이 각각 자기 땅을 팔았더라. 이와 같이 땅이 파라오의 소유가 되니라.”(20)

사람들은 농장과 농촌에서 도시 지역으로 이주하게 됩니다(21). 결국 길게 줄을 서 급식소에서 먹을 것을 해결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준비도 없이 일자리를 구할 퍼지가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굶어 죽는 것보다는 나았던 것이지요. 이때 파라오는 그 당과 씨를 빌려주고 소작료를 받게 됩니다(23, 24). 이렇게 해서 이집트 땅에는 중앙정부에 의해 백성의 통제가 확립되었습니다(26).

백성은 감사한 마음으로 외칩니다. 주께서 우리의 생명을 구원하셨사오니(25) 프랭클린 딜라노 요셉은 보라 이날 내가 너희를 샀노라.”고 선언합니다(23). 드디어 기근은 그치고 정부는 재산과 땅과 백성을 모두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1120

야곱이 믿음 안에서 죽음

 

히브리서 11장의 믿음의 영웅들의 명단에는 야곱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으나 그의 생애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야곱이 믿음을 행사한 순간은 다름아닌 죽는 순간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11:21) 창세기 47장의 기록은 히브리서의 진술과 완전한 조화를 이룹니다. 야곱은 이집트에 도착한 후 17년째 되던 해에 죽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성령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다시 한번 바꾸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죽어야 할 때가 가까이 이르매(29) 이리하여 야곱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 가운데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는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자신에게 하신 계시의 말씀, 즉 가나안 땅을 소유하게 되리라는 약속에 대해 자신의 믿음을 표시하고 이에 대해 요셉이 엄숙한 약속을 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는 자기 아들에게 자신을 은혜와 친절과 진실로 대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집트에 묻지 말아달라는 부탁입니다. “나를 이집트에서 메어다가 내 조상들 옆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에 내 뼈를 묻어다오.” 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요청 속에는 몇 가지 믿음의 요소가 들어있습니다. 첫째, 그는 이 요청 속에서 히브리 백성은 이집트에서 죽어 없어지거나 그 민족과 문화에 동화되지 아니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살아서 분리된 민족이 될 것입니다.

둘째, 그는 이 요청 속에서 언젠가 하나님께서 그 민족을 이집트에서 인도하사 자신이 약속하신 그 곳으로 이끄실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셋째, 그는 이 요청 속에서 오는 세대들이 언약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언약에서의 야곱의 역할도 기억하여 결국 그를 약속의 땅으로 데려다 줄 것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나그네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으니”( 11:13) 라는 진술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 사람들과 관련 지어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고 하겠습니다. 오히려 이 진술에 뒤이어 나오는 장에서 사람들은 집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를 믿고 죽었습니다.

 

 

1121

창세기 47장 묵상

 

1: 고센 땅은 한때 미국인들이 놀라움을 표시할 때 사용하던 감탄사였습니다. 성경 속에서 유래하는 비슷한 표현으로는 이사야서 6:1-4거룩한 연기와 재림과 관련 지어 나오는 위대한 날”, “위대한 그날 아침등의 표현이 있으며 시편에서 비롯된 주의 선하심으로 인하여또는 주의 긍휼로 인하여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 미국의 문화가 타락해감에 따라 이런 성경적 용어들이 세속적인 표현으로 대체되어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22: 제사장들은 한 몫을 가졌고그들은 자기들의 땅을 팔지 아니하였더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지파들이 약속의 땅을 유업에 따라 분배했을 때도 제사장들은 따로 분리해서 배려를 받았습니다. 이 진리는 신약성경에서도 지속되고 있는바 고린도전서 9:14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살 것을 정하셨느니라.” 당신에게 사역하는 자들에게 당신의 능력껏 최선을 다해 필요를 공급하고 계십니까? 여러분도 이집트 사람들만큼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25: 이 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또 다른 놀라운 예표입니다. 즉 섬기기 전에 은혜가 먼저 와야 합니다.

27: 아브람은 언약을 떠나 이집트로 내려 감으로 인해 온갖 종류의 문제에 봉착했습니다(12:10-15).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삭 역시 이집트로 가는 것을 금하셨지요(26:2).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이집트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한 것일까요? 그 대답은 창세기 38장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 장은 요셉이 이집트로 끌려가기 전에 삽입되어 있는 장임을 주목하십시오. 이 장은 가나안인들의 도덕적 상태가 극도로 부패해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바 이들의 악한 영향력이 아브라함의 씨에게 미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야곱의 아들들이 가나안 땅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더라면 그들 역시 가나안인들처럼 부패해버렸을 것이고 이로 인해 하나님과의 언약은 종식되어 버렸을 겁니다. 가나안인들의 오염시키는 영향력에 대한 증거는 34장에서도 더 찾아볼 수 있습니다.

 

 

1122

요셉이 아들들을 축복함

 

아버지가 아프시다는 소식을 들은 요셉은 두 아이를 데리고 야곱에게로 갑니다. 이는 야곱이 에서로부터 취한 축복을 아이들에게 주고자 함입니다(1). 야곱은 침대에서 내려오지는 못했으나 침상에 앉을 수는 있었습니다(2). 야곱은 분명 자기가 형을 어떻게 대했으며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주실 축복을 형으로부터 훔쳤는지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를 따라 자기에게 축복하셨던 그 날을 떠올렸습니다. 그때야말로 그가 손자들을 축복할 더 좋은 근거가 되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약속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어진 것과 동일하였습니다(4).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면 중동지방이 누구에게 속하는지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치 않을 것입니다. 이 땅은 히브리 조상들의 자손들에게 영원한 소유인 것입니다.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대해 야곱의 나머지 열한 명의 자녀들과 동일한 유업을 줄 것임을 말합니다. 이처럼 요셉에게 두 배의 몫을 준 것은 그가 여전히 아버지의 총애 받는 아들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는 요셉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라헬 때문이었습니다(7). 그녀는 아직도 야곱의 인생에 있어 빛과 사랑입니다. 그는 그녀에게 태어난 아들과 이 아들에게 태어난 손자들에게 보상할 것입니다. 이는 순전히 라헬 때문입니다.

이 구절의 표현이 너무도 강력하고 호소력이 있는지라 이보다 더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 그 어떤 러브 스토리나 연애소설은 없을 것 같습니다.

라헬이 내 곁에서 죽었는데 라헬은 늙었고 나약했습니다. 그녀의 육체적 아름다움은 가난한 목동의 힘든 유목 생활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여전히 그녀 곁에 있습니다. 그는 최대한 할 수 있는 대로 그녀에게 가까이 있으려 합니다. 그의 마음은 그가 처음 그녀에게 눈을 맞추었을 때 이래로 여전히 그녀에게 밀착해 있습니다.

그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야곱은 아마도 라헬에게 여보, 힘 좀 내 봐, 거의 다 왔다구. 조금만 더할 수 있다구…” 라고 간청했을까요? 그녀의 생명이 꺼져 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그는 그녀가 그와 함께 머물기를 간청합니다. 그녀의 생명이 빠져 나감에 따라 그의 마음은 그녀와 함께 떠나고 있습니다.

거기서 내가 그녀를 길에 묻었는데 더는 이 것이 문자적으로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야곱과 함께 여행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다들 물러갔습니다. 이제 야곱은 자기의 유일한 사랑하는 자의 시신 곁에 앉아 울고 있습니다. 그는 그녀의 차가운 손을 잡고 그가 얼마나 항상 그녀를 사랑했는지 또 말하고 또 말하고 있군요. 그리고 나서 그는 딱딱하고 바위투성이인 땅을 파기 시작하여 자신의 어여쁜 자를 위해 누울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슬픔과 함께 그는 그녀의 몸을 무덤 속에 누입니다. 시체를 덮을 삽도 없었으니 그는 손으로 한 웅쿰씩 한 웅쿰씩 흙을 모아 그녀의 시신에 조금이라도 해가 가지 않도록 부드럽게 덮습니다. 어찌 이 고통을 지고갈 수 있으리요만 그는 라헬을 위해서 오 라헬을 위해 그 고통을 견뎌냅니다. 오 라헬이여 그대는 모든 여인의 사모하는 그런 사랑을 받은 여인입니다.

약속의 땅을 방문했을 당시 나의 아내와 나는 (어떤 위험이 우리에게 닥칠지도 모른 채로) 우리 팀에서 이탈하여 또 다른 부부와 함께 몇 마일을 걸어서 라헬의 무덤을 보존하고 있는 한 건물로 간 적이 있었습니다. 이 곳은 이스라엘인들에게는 다윗의 무덤과 더불어 가장 거룩한 장소라고 합니다. 무장군인들에게 우리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사랑을 말하고 간청한 끝에 금지된그곳에 가볼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벽안에는 아름다운 자색 카펫아래로 라헬이 누워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가 보였습니다. 매우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창세기 48장으로부터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그의 신부에게 보여준 존귀한 대접을 여전히 그녀에게 하고 있는 것이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 한 여인이 (처녀였는데) 베들레헴 에브라다라 불리는 이 작은 마을로 와서 아이를 낳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 했습니다.

야곱의 자녀들이 이 말구유에서 태어난 분을 그들의 조상이 라헬을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게 될 때 이 땅은 1000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1123

요셉이 아들들을 축복함 2

 

요셉의 아들들은 야곱에게 인도되었고 늙은 할아버지는 그들을 축복하기로 합니다(8-9). 야곱은 눈이 어두워 외모로는 그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는 그들을 알지 못했고 이에 그들의 성품이나 행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주시는 대로 결정해야 합니다. 내가 네 얼굴을 보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하였는데 보라 하나님께서 내게 네 씨도 보여주셨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대를 넘어 늘 넘치는 복으로 자신의 백성을 놀라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 이상으로 심히 넘치도록 행하실 분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큰 아들 므낫세가 야곱의 오른 손으로, 그리고 작은 아들 에브라임은 왼손으로 축복을 받도록 자녀들을 야곱 앞에 배치시켰습니다(13). 그러나 이리 되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손을 의도적으로 어긋나게 하여 첫째가 왼손으로 축복을 받도록 합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고 의도적 결정입니다(14). 드디어 요셉과 두 아들은 야곱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 축복의 말씀은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 축복에서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3중 증언이 들어있음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l  조상들의 하나님, 즉 사람에게 자신의 말씀을 주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시며

l  일생에 걸쳐 필요를 공급하신 하나님이시고

l  구속자이십니다.

 

물론 여기서 신약의 삼위일체 교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3중으로 하나님을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습니다. 구약성경은 이외에도 하나님에 대해 이와 같이 3중의 언급을 자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6:24-26, 6,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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