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2013.11.11 06:05

영적 성장-16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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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장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음

제임스 낙스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설교 시리즈인 The Spiritual Growth를 의역한 것입니다.

 

1. 사무엘하 22장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다윗을 그의 모든 원수들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건지신 날에 그가 이 노래의 말씀들로 주께 아뢰니라.(삼하 22:1)

 

2. 다윗은 주님께 노래로 찬양을 드렸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나옵니다.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너희 자신에게 말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주께 노래하고 선율을 만들며( 5:19) 성경은 이렇게 주님께 노래로 찬양을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큰 소리로 노래해도 되고 작은 소리로 노래해도 됩니다. 회중과 함께 찬양해도 되고 혼자 찬양해도 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 노래로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여러분의 노래를 듣기 싫어하시면 노래하면 안 됩니다. 노래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나 옆에 있는 사람이 여러분의 노래를 듣기 싫어하면 그 사람에게는 노래를 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찬양을 듣고 싶어하시는 주님께 노래하면 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이 노래로 찬양을 드리는 것을 듣기 원하십니다.

 

3. 성경에는 사람들이 받지 못한 많은 약속들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엄청난 축복을 놓치고 있습니다. 신약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받을 축복은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들입니다. 우리는 일시적인 물질적인 축복을 약속 받은 게 아니라 영원한 영적인 축복을 약속 받았습니다.

 

4. 본문의 다윗은 이제 인생을 마치고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인생 전체를 뒤돌아본 다윗은 주님께서 자신을 모든 원수들로부터 건지셨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여러분도 다윗처럼 모든 원수들로부터 건지심을 받고 구출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구출 받아 평안과 안전 가운데 거하게 될 것입니다.

 

5. 하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다윗은 평생 치열한 전쟁터에서 수많은 원수들과 싸웠습니다. 그렇게 거친 삶을 살았던 다윗이 이제 죽을 때가 되어 주님께서 자신을 모든 원수들로부터 구출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6. 지금 현재 여러분의 삶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면 그곳에는 더 이상 그 누구와의 다툼이나 투쟁이나 전쟁이나 싸움이 없을 것입니다. 거기서는 그 누구도 여러분을 반대하거나 대적하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을 미워하는 사람이나 원수도 없을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달라고 기도하거나 구출해달라고 기도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로 인해 주님을 찬양드릴 수 있습니다.

 

7.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이르되,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구출자시요, 내가 신뢰할 나의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로다. 주께서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시나이다.(2-3)

 

8. 이 구절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성경에는 엄청난 진리를 담고 있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여러분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도 알 수 있습니다. 불행한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그분으로부터 받은 축복과 약속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교제를 누리는 기쁨을 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1. 주님은 나의 반석입니다

9. 하나님은 반석이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유일하고 확실하고 든든하고 우리가 그 위에 집을 지을만한 반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자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 위에 집을 짓고 거할 수 있는 유일한 반석이라는 사실이 오랜 세월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확실하고 단단하고 능력 있고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 위에 집을 짓고 거합니다.

 

10. 우리는 성경과 교회사를 보면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유일한 반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반석이 되신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안전한 반석이 되신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성경적인 가정 생활과 영적 생활을 하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11. 주님께서는 반석이 되십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주님이 자신의 반석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제가 오늘 알고 싶은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확실한 반석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반석이신가 하는 점을 알고 싶은 겁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그 위에 집을 짓기에 든든한 반석이신가를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여러분이 예수님 위에 집을 짓고 살고 있는지 알고 싶은 겁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인생의 폭풍이 몰아칠 때 피할 수 있는 거처가 되시는지 알고 싶은 게 아니라 여러분이 그 안에 거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은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있습니까?

 

12. 하나님께서 반석이 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반석이 되셨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저는 알지 못하는 신을 믿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반석이실 뿐만 아니라 저의 반석이십니다. 예수님은 기초이실 뿐만 아니라 저의 기초이십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2. 주님은 나의 요새입니다

13. 다윗은 주님께서 자신의 반석이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요새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원수가 없다면 요새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 자신을 대적하는 게 없다면 요새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평안하게 지낸다면 요새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잘 되어 가고 있다면 요새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14. 다윗은 사람들에게 요새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원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과 마귀와 육신이 있습니다. 저의 정욕과 취향과 욕망과 하나님과 진리를 대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피할 수 있는 요새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공격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요새가 있습니다. 위험한 순간에 안전하게 숨을 수 있는 요새가 있습니다. 원수가 대적하러 올 때 피할 수 있는 요새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 요새이십니다.

 

15. 저에게는 요새가 필요합니다. 만일 제가 요새를 찍은 사진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저에게 실제적인 유익을 주지 못할 겁니다. 제가 요새에 대한 책을 읽고 요새가 무엇인지 공부한다 해도 그것이 저에게 실제적인 유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요새에 대해 특집 기사를 다룬 것을 아무리 열심히 읽는다 해도 그것이 저에게 실제적인 유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요새 안에 실제로 거해야 실제로 안전해 질 수 있습니다. 요새 안으로 들어가 숨어야 안전해질 수 있습니다.

 

14. 주님께서는 요새가 되십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주님께서 자신의 요새가 되신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에게 가십니까? 절망스런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로 가십니까? 사람들이 여러분을 대적할 때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십니까? 마귀가 여러분을 유혹할 때 누구에게도 가십니까? 여러분의 육신이 여러분을 제어하려고 할 때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십니까? 여러분이 알고 있는 요새 말고 여러분 개인의 요새는 누구입니까?

 

15. 전화기는 여러분의 요새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여러분의 요새가 될 수 없습니다. 술도 요새가 될 수 없습니다. 요새는 여러분을 원수로부터 지켜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새는 원수의 공격을 모두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새는 원수가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없어야 합니다. 요새는 어떠한 공격도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안전한 요새가 되실 수 있습니다.

 

16. 만일 마귀가 구원받은 사람을 그리스도 밖으로 뽑아내서 지옥에 던져버릴 수 있다면 마귀는 벌써 그렇게 했을 겁니다. 마귀는 저를 극도로 미워하며 할 수만 있다면 지옥으로 던져 버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의 요새는 저의 원수보다 월등하게 강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저의 육신과 정욕과 욕망이 저를 그리스도 밖으로 끌고 가서 구원을 잃어버리게 하려고 해도 저는 전혀 걱정하지 않습니다.

 

17. 만일 죄를 지으면 구원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저는 예전에 구원을 잃어버렸을 겁니다. 저는 저의 육체의 나약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육신도 얼마나 악하고 쓸모 없는 것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육신대로 살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하면 저는 벌써 구원을 잃어버렸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요새는 저의 육신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18.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저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능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앞으로 있을 그 무엇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저를 끊어놓을 수 없습니다. 비록 저에게는 원수들과 대적자들이 있고 저의 혼을 대적해서 영적 전쟁을 하는 무리들이 있지만 그 중 누구도 저의 요새보다 더 강한 자가 없다는 사실로 인해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3. 주님의 나의 구출자입니다

19. 저는 이 세상 그 무엇의 공격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요새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요새가 저의 요새라는 사실이 기쁩니다. 다윗은 주님이 자신의 요새라고 말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윗은 주님이 자신의 구출자라고 고백했습니다.

 

20. 주님은 저의 구출자입니다. 여러분은 구출 받아야 할 입장에 처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든 상관없이 여러분을 구출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인가에 메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구출하실 수 있으십니다. 여러분은 무엇인가에 중독되어 원하지 않는 일을 습관적으로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것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해줄 수 있으십니다.

 

21. 잘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은 구출자가 되십니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속박으로부터 구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기드온을 통해 미디안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출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바빌론의 포로가 된 상태에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무덤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새로운 몸을 주시어 그들이 다시 돌아오게 하실 있는 분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둠에 속한 자들을 빛으로 데려오실 수 있는 분입니다. 주님께서는 죽음에 속한 자들을 생명으로 데려오실 수 있는 분입니다. 절망에서 기쁨으로 데려오실 수 있는 분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누구도, 그 어떤 상황에서도 구출하실 수 있는 위대한 구출자가 되십니다.

 

22. 이러한 사실은 성경을 읽으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이러한 사실을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누구나 이러한 사실을 설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위대한 구출자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을 개인적인 구출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23. 예수님은 저의 구출자이십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다면 여러분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이 기쁩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그것보다 더 기쁜 것은 제가 어둠에서 빛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사도 바울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을 때 바울은 동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자신이 저주를 받는 게 낫다고 고백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면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24.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는 사실보다 제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더 기쁩니다.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가게 되는 것보다 제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는 게 훨씬 더 흥분됩니다. 아마 제가 영적으로 성장하면 바울과 같이 자신의 구원보다 다른 사람의 구원을 훨씬 더 기뻐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말씀 드리면 지금 현재의 상태로는 다른 누가 구원받았다는 사실보다 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고 감사할 뿐입니다.

 

25. 주님께서는 저의 구출자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께서 어떻게 사람들을 구출하셨는지 나와 있습니다. 사람들이 쓴 간증집을 봐도 주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세상과 마귀와 육신과 지옥과 정욕으로부터 구출하셨는지 나와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어떤 죄와 습관과 문제로부터 주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구출하셨는지 간증하는 것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간증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구출하셨는지를 듣는 것은 매우 기분 좋은 일입니다.

 

26. 그러나 이러한 간증을 아무리 많이 듣는다 할지라도 제가 죽어서 지옥에 간다면 그것은 저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지옥에서 불길 가운데 고통 당하면서 예전에 들었던 예수님의 구출에 대한 간증을 기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저의 구출자가 되신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제가 빠졌던 구덩이에서 저를 건져 올리신 사실에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때 범법과 죄들 가운데 죽어있었고 마귀의 자식이었고 진노의 자녀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저의 구출자가 되심에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27.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을 제한합니다. 누군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일을 해 주셨는지를 간증하는 걸 들으면 주님께서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저 사람에게는 그런 일을 해 주셨지만 자신에게도 그렇게 해 주실 수 있는지는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그 사람에게는 충분하지만 자신에게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28.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능력이나 힘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구출자가 아닙니다. 구출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요새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새입니다. 여러분은 반석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반석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기초가 반석이신 하나님이 되게 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요새가 되게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구출자가 되게 하십시오.

 

29. 구원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동일한 죄를 짓고 동일한 잘못을 범하며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이 예수님을 개인적인 구원자로 믿고 구원받기는 했지만 하나님과 개인적인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자리까지는 나아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개인의 구출자로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에 빠졌을 때 예수님께 구출을 요청하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구출자가 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능력이 아닌 자신의 능력으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했고 자신의 능력으로 담배를 끊고 술을 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30. 여러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었던 것처럼 스스로 의롭게 살 수 없습니다. 스스로 죄를 이길 수도 없습니다. 구출자는 여러분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기 전에도 그랬고 구원받고 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바로 이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구출자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바로 주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31. 잘 들어보십시오. 구원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제가 정말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자신의 능력을 완전히 벗어나버렸다고 생각하면 그때서야 주님을 찾고 의지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그리 크지 않고 심각하지 않으면 주님께 나아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문제를 처리하고자 합니다.

 

32.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울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골리앗은 거인이었고 전사였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블레셋 사람들의 챔피언(투사)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에서는 그 누구도 골리앗을 상대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이에 다윗이 그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방패를 가지고 내게 오거니와 나는 네가 도전한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곧 만군의 주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이 날 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겨주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게서 네 머리를 취하고 또 이 날 블레셋 사람들 군대의 사체를 공중의 날짐승들과 땅의 들짐승들에게 주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온 땅이 알게 하겠고 또 주께서 칼이나 창으로 구원하지 아니하심을 이 모인 온 무리가 알게 하리라. 전쟁은 주께 속한 것인즉 그분께서 너희를 우리 손에 넘겨주시리라, 하니라.(삼상 17:45-47)

 

33. 다윗이 주님과 동행할 때에는 아무도 이길 수 없던 거인을 쉽게 쓰러뜨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주님과 동행하지 않을 때에는 작은 여인(밧세바)을 향한 정욕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34. 여러분의 삶에는 너무나도 크고 어려운 문제여서 즉시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들도 있을 겁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거기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크고 어려운 문제는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오지만 작고 하찮은 문제는 스스로의 힘과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재앙이 되고 맙니다. 문제는 하나님 없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작고 쉬운 문제는 예수님 없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35. 다윗이 인생을 마칠 때가 되어 무엇을 깨달았는지 아십니까? 그는 자신에게 구출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숱한 전쟁에서 살아남은 것은 자신의 힘과 능력이 아닌 자신의 구출자의 힘과 능력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의 힘을 신뢰했을 때에는 죄의 종이 되어 속박되어 있었지만 주님을 구출자로 신뢰했을 때에는 모든 문제와 원수로부터 구출되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36. 다윗은 주님이 자신의 구출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신 것을 여러분이 믿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빌론의 포로에서 구출하신 것을 여러분이 믿고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키신 사실을 여러분이 믿고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자들을 눈 깜짝하는 순간에 모두 일으키실 것을 여러분이 믿고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37. 제가 궁금한 것은 여러분이 알고 있는 그 하나님, 그 구출자께서 여러분의 하나님과 여러분의 구출자가 되시냐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구출해 주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고자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담배와 술의 중독으로부터 구출해 주시도록 하려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것으로부터 구출해 주시도록 하려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복음을 전하기 두려워함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끄러워함으로부터 구출해주시도록 하려는지 알고 싶습니다. 주님은 구출자이십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주님께서 여러분을 여러분의 문제로부터 구출해 주시도록, 여러분이 주님께 자신을 내어드릴 뜻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구출자이십니까?

 

38. 다윗은 주님께서 자신의 구출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압살롬은 왔다 갔습니다. 시므온도 왔다 갔습니다. 사울도 왔다 갔습니다. 다윗을 대적했던 모든 사람들이 왔다 갔습니다. 다윗은 더 이상 도망다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다윗은 더 이상 작은 무리를 인도하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모든 원수들을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그가 승리한 이유는 자신의 능력이나 힘을 의지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의 구출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은 나의 반석입니다

39. 성경은 3절에서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라고 합니다. 2절에서는 주님은 나의 반석이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윗의 반석이시고 하나님께서도 다윗의 반석이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존재하십니다. 성경은 이 세 분이 하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 5:7)

 

40. 저는 이중으로 된 반석 위에 서 있습니다. 제가 서 있는 곳은 두 배로 튼튼합니다. 두 배로 확실합니다. 저는 반석이신 아들 하나님 위에 서 있고 동시에 반석이신 아버지 하나님 위에 서 있습니다.

 

5. 하나님은 나의 방패입니다

41. 다윗은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패라고 고백합니다. 에베소서 6:16에서는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취하여 그것으로 너희가 능히 그 사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끄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2.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중에는 믿음의 방패가 있습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사람들은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방황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들에서도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43. 잘 들어 보십시오. 사악한 자가 불화살을 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구원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종이로 만든 종이 방패를 들고 불화살을 막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만든 종이 방패로는 사악한 자의 불화살을 막을 수 없습니다. 불화살은 여러분이 만든 엉터리 방패를 뚫고 들어와 여러분의 가슴에 박힐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을 원망하면서 이렇게 부르짖을 겁니다.

주님, 왜 저를 도와주지 않으시는 겁니까?”

 

44. 다윗이 한 말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주님, 제가 만든 방패를 좀 보십시오.”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방패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방패는 하나님이었습니다. 사악한 자가 다윗에게 불화살을 쏠 때 다윗은 자신의 방패로 그것을 막은 게 아니라 하나님 뒤로 숨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방패셨기 때문입니다.

 

45.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전신갑주에는 믿음의 방패가 있습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면서 갈라디아서 2:20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46. 우리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있어야 마귀의 불화살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방패라고 할 때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우리의 믿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믿음의 방패는 우리의 믿음으로 만든 방패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만든 방패가 되어야 합니다.

 

47.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16:21-23). 그래야만 모든 사람들의 죗값을 치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붙잡고 주님을 꾸짖었습니다. 베드로는 감히 하나님을 붙들고 꾸짖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그렇게 하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48.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야,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49.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신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베드로와 마귀 사이에 넣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마귀와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마귀를 분리하여 마귀를 자신의 뒤로 가라고 하심으로 자신이 마귀와 베드로 사이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믿음으로는 마귀의 불화살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막아준 것은 베드로의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50. 제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의 믿음으로는 마귀와 싸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셔야만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으로는 마귀의 불화살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마귀의 불화살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실 수 있는 우리의 유일한 믿음의 방패가 되실 수 있습니다.

 

51.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원수는 세상과 마귀와 우리 자신의 육신입니다. 만일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의 원수와 싸운다면 어떻게 우리의 믿음으로 우리의 육신을 이기겠습니까? 우리는 세상과 마귀와 우리의 육신을 이길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능히 이기실 수 있습니다. 저의 정욕과 욕망과 육신과 약함과 마귀가 주는 모든 유혹은 오직 예수님만이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것들을 처리하지 못합니다. 제가 이러한 것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제가 처리하지 못하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처리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래서 저의 몸을 예수님께 내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52.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의 믿음의 방패를 들고 마귀와 싸운다면 여러분은 패배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여러분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의 참된 방패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마귀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막아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자신의 믿음을 방패로 사용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 두십시오. 그러면 그분께서 여러분의 방패가 되어 주실 겁니다. 마귀는 저의 믿음을 파괴한 적은 많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단 한번도 파괴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저의 믿음으로 방패를 삼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방패를 삼을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패로 저의 몸을 막을 것입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방패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53. 우리는 단단한 반석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반석 위에서 우리는 견고한 요새를 건축합니다. 그 요새 안에는 우리의 구원의 대장이시며 구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손에 크고 단단한 방패를 가지고 계십니다. 여기서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는 계속 그 반석 위에 서 있는 요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방패 뒤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해 주신 모든 일로 인해 기뻐하며 즐거워할 것입니다. 제가 그 곳에 있는 한 저는 언제나 안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방패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6. 하나님은 나의 구원의 뿔입니다

54. 3절에서 다윗은 또 어던 고백을 하고 있습니까?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의 뿔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은 것은 구원 그 이상의 것입니다. 뿔은 승리의 선포와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단순히 구원만 받은 게 아닙니다. 저는 승리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저는 단순히 다시 태어나기만 한 게 아닙니다. 저는 영원히 확실하게 승리하며 다시 태어났습니다.

 

55. 저에게는 사람들에게 뿔 나팔을 크게 불어 알려야 할 소식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선포해야 할 소식이 있습니다. 저는 크게 숨을 쉬고 최대한 크게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제가 뭐라고 선포해야 할까요? “나는 선한 사람이다.” 아닙니다. “나는 끝까지 견딜 것이다.” 역시 아닙니다. “나는 이룰 것이다.” 이것도 아닙니다.

 

56. 제가 뭐라고 선포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죗값을 치르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나를 씻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담당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속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받아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57. 제가 선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예수님을 위해 한 일을 선포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를 위해 해 주신 일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선포해야 합니다. 제가 세상에 선포해야 할 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58. 예수님은 구원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구속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분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가 알고 싶은 것은 이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뿔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구원의 뿔입니까? 다윗이 고백한 게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입으로 주님이 자신의 구원의 뿔이라고 고백했습니다.

 

7. 하나님은 나의 높은 망대입니다

59.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높은 망대라고 고백했습니다. 요새에는 높은 망대가 있습니다. 그 망대는 관측하기 위한 것입니다. 망대 위에서는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망대 위는 아래보다 더 안전합니다. 왜냐하면 망대는 요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사람들에 가려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시각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잘못되었고 나빠 보이고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60. 그러나 주님께서 여러분의 높은 망대라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여러분은 망대이신 주님께로 올라가야 합니다. 높은 망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사야서 6장을 보면 스랍들은 하나님의 왕좌 주변에 있었습니다. 스랍들이 이 세상을 보고 뭐라고 외쳤는지 아십니까?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6:3) 그들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봤기 때문에 이 세상에 임할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던 겁니다.

 

61.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높은 망대가 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자리에 함께 앉히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죽었던 우리를 단지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6).

 

62. 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망대에 앉아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무엇을 보는지 아십니까? 저는 교회가 들림 받아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을 만나서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을 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높은 망대에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신실한 성도들에게 왕관과 보석을 주시는 것을 봅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높은 망대에서 주님께서 흰 말을 타고 이 세상으로 오셔서 모든 원수들을 멸하시고 왕국을 세우시며 천년 간 통치하시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높은 망대에 올라가 이러한 것들을 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63. 주님께서는 저의 높은 망대이십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통해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석유가 고갈되면 종말이 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이 아닌 성경을 통해 이 세상의 끝이 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보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높은 망대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64.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어떤 것으로 인해 걱정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주님께는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일의 결말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서 일의 전체 끝을 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높은 망대에 올라가야 주님의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개인적인 망대가 있습니까?

 

8.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입니다

65.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라고 고백했습니다. 피난처(refuge)라는 것은 도망가서 숨을 수 있는 곳을 말합니다. 율법 시대에는 도피성읍(city of refuge)이 있었습니다. 제가 만일 숨어서 기다리다가 고의로 누군가를 쳐서 죽였다면 저도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제가 실수로 누군가를 죽였다면 사정은 달라집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면 사형을 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죽은 사람의 가족은 그것이 실수든 고의든 상관하지 않고 저에게 똑같이 보복하고자 할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죽은 사람의 가족은 저를 추적해서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66. 하지만 제가 도피성읍으로 도망가면 살 수 있습니다. 제가 도피성읍으로 도망가서 대제사장에게 저의 사건을 설명하면 저는 목숨을 건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고의로 살인을 한 것이 아니라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도피성읍에서 평생 안전하게 살 수 있습니다.

 

67. 저는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고의로 죄를 지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저의 죄로 말미암아 저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온 세상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23:34)

 

68.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무엇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의 살인죄를 과실치사죄로 감경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고의범을 과실범으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만일 제가 고의로 한 것이 아니라 알지 못하고 한 것이라면 저는 도피성읍으로 도망갈 수 있습니다. 제가 고의로 살인을 했다면 저는 죽어야 마땅하지만 제가 알지 못하고 한 것이라면 저는 도피성읍으로 피해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피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도피성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을 열어 주세요. 저는 살고 싶습니다. 죽기 싫습니다.” 그러자 문이 크게 열렸습니다. 저는 그 문으로 들어갔고 문은 다시 닫혔습니다. 저를 뒤쫓던 죄의 삭인 사망은 문 앞에서 멈춰 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망을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사람의 피난처이니 너는 이 사람에게 손을 댈 수 없다.”

 

69.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피난처도 되시는지 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로 도망간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분께로 피난한 적이 있습니까? 그분은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죄인들의 피난처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개인의 피난처가 되십니까?

 

9.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70.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자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3절을 다시 한번 보세요.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의 뿔이라고 앞에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자신의 구원자라고 다시 고백하고 있습니다.

 

71. 언젠가 미래에 어느 날이 되면 예수님께서는 저의 구원자가 되실 거라는 이 사실을 여러분에게 말씀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그 날이 되면 예수님께서는 저의 죄에 대한 영원한 형벌로부터 저를 완전히 구원해 주실 겁니다. 그날에 저는 죄의 삯과 죄의 임재와 죄의 형벌로부터 완전히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저는 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72.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구원자께서 지금 저와 동행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 구원자께서 저와 함께 거하십니다. 그 구원자께서 제 안에 거하십니다. 제가 구원받은 순간부터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저는 많은 것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합니다. 저는 처음 구원받았을 때에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한 어떤 설교자가 인용한 구절이 아니었으면 제 인생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조차도 알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제가 짓는 죄들이 제 인생을 얼마나 망쳐놓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지옥에서만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죄로부터도 구원하셨습니다. 죄로부터만 구원하셨을 뿐 아니라 이것 저것 많은 것들로부터 구원하셨습니다.

 

73. 다윗은 주님께서 자신의 구원자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저를 지옥으로부터 구원하셨고 죄로부터 구원하셨으며 다른 수많은 것들로부터 구원하셨고 구원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계속 구원해 주실 겁니다. 저의 구출자는 계속해서 저를 구출해 주고 계십니다. 저를 도와주시는 분은 계속해서 저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저를 인도해 주시는 분은 계속해서 저를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저의 방패께서는 계속해서 저를 보호해주십니다.

 

74.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였다면 여러분은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원받았다고 해서 다시는 구원자가 필요하지 않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순간마다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항상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75. 다윗은 주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구출자시요, 내가 신뢰할 나의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로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는 반석이시며 요새시고 구출자이시며 방패시고 구원의 뿔이시며 높은 망대시고 피난처이시며 구원자이십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러한 사실을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반석이시고, 여러분의 요새시고, 여러분의 구출자시고, 여러분의 방패시고, 여러분의 구원의 뿔이시고, 여러분의 높은 망대시고, 여러분의 피난처시고, 여러분의 구원자가 되셔야 합니다.

 

76. 이것은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나는 나의 사랑하시는 이의 것이요. 나의 사랑하시는 이는 내 것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6:3). 여러분은 그분께서 나를 잔칫집으로 데려가셨으며 내 위에 나부끼는 그분의 깃발은 사랑이었노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2:4).

 

77. 여러분은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게 크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작은 인간을 생각하신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분입니다. 그리고 인격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그분이 여러분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에 이런 종교를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여러분이 개인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78. 여러분은 하나님이 나의 반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이 나의 요새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렇게 공개적으로 간증할 수 있습니까? 주님이 나의 구출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을 수백 번 이상 구출해 주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이 나의 방패시고 나의 구원의 뿔이시며 나의 높은 망대시고 나의 피난처시며 나의 구원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79. 불행한 사실은 여러분 중에는 구원받았으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서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바랍니다. 그 동안 하나님으로부터 동떨어진 삶을 살았던 분들은 이제 다시 주님께로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다른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여러분 개인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만이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아가고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셔서 여러분이 그분과 항상 동행하고 그분과 개인적인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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