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11.21 01:54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49(12월 1일-7일)

조회 수 5520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49

12월 1일-7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121

르우벤 1

 

야곱이 열 두 아들의 미래에 대해 말한 예언들은 믿음으로 말하여진 것입니다(2, 이스라엘, 11:21). 이 예언들은 완벽히 정확한 것이었음이 입증되었습니다.

르우벤에 대해서는 다음 세 가지가 예언되었습니다.

1. 르우벤은 장자로서 출생한 것으로 인해 힘과 위엄과 권능의 지위를 갖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특권은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힌 죄로 인해( 35) 요셉의 아들들에게 돌아갔습니다(대상 5:1-2). 신명기 21:7과 에스겔서 47:13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성령님께서는 르우벤은 탁월치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이를 입증해 줍니다. 이 지파로부터는 그 어떤 재판관도, 왕도, 대언자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요단강의 광야 쪽을 택하였는데 이는 아마도 그들의 유일한 갈망이 가축을 기르는 것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32:5). 민수기 16장에 나오는 고라의 반역 사건 때 참여한 다단과 아비람은 르우벤 지파였습니다. 이 지파는 갓 지파와 함께 요단 동쪽에 정착하였고( 32) 그곳에서 그들은 갓 지파보다 열등한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를 대적하여 영웅적 투쟁을 전개할 당시 르우벤 지파는 머뭇거리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5:15-16). 여호수아 시절에 약속의 땅을 분배할 당시 르우벤은 남쪽 끝에 가장 작은 지역을 할당 받았습니다.

3. 이 지파는 물처럼 불안정합니다. 우리가 이 예언과 모세의 예언을 결합하여보면 이것은 이 지파의 수가 안정되지 못하고 증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33:6). 따라서 첫 번째 인구조사에서 46,500( 1:21)이었던 것이 그 다음 번 조사에서는 대부분의 지파들과는 달리 43,730명으로( 26:7) 줄어들었습니다.

이들의 후손은 후일 에발산에서 저주하는 그 중에 속하였고( 27:12-13) 하사엘 전투에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단축시키실 때 큰 공격을 받게 됩니다.

 

 

122

르우벤 2

 

창세기 49:3은 르우벤이 처음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구절에 묘사된 다섯 가지 특징은 다름아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내 맏아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맏아들로 땅의 왕들보다 더 높으십니다( 89:27). 이것은 그분께서 하나님의 상속자이시며( 1:21), 모든 권위가 그분의 손에 집중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를 존경하듯이( 5:23) 아드님을 존경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내 능력 야곱은 르우벤의 출생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부활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그분의 권능의 지극히 크심이 드러난 것으로 이 능력은 믿는 자들이 활용할 수 있습니다( 1:19).

내 힘의 시작이요 야곱은 자신의 힘은 자녀들 즉 가족에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권능은 처음에는 창조에서 볼 수 있으나 특별히 부활에서 입증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로부터 첫째로 나신 분입니다( 1:5). 그분께서 오실 때 그리스도께 속한 우리 또한 부활 때 보이신 하나님의 큰 능력의 대상인 것입니다.

위엄이 뛰어나고그 누구도 우리의 보배로우신 주님보다 고상하지 못합니다. 그분의 순결하심, 은혜로우신 행실, 항상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시는 것 등으로 인해 예수님께서는 위엄이 성육신되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곧 바른 모든 자들을 뛰어넘으시는 분으로 그분의 왕관은 그 어떤 다른 자의 머리 위에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권능이 뛰어나도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이 주 예수님의 손에 놓였습니다. 아무도 그분과 비교할 수 없고 경쟁할 수도 없습니다. 그분의 권능 앞에서는 강퍅한 바다들도, 울부짖는 바람도, 핵폭발도 다 미미한 움직임일 뿐입니다. 르우벤도 이 특징을 일시적으로만 보유했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이 모든 특성을 영원토록 지니실 것입니다.

 

 

123

시므온과 레위

 

성령님께서는 야곱으로 하여금 시므온과 레위를 함께 묶도록 인도하사 이들을 잔인한 도구라고 명명하셨습니다. 덧붙여 이들은 자기 의지가 강하고, 분노하며, 진노가 잔인한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아마도 창세기 34:25에서 디나의 복수를 했을 때 저지른 살인에 대한 언급인 것 같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소년 요셉을 제거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는데 시므온이 앞장선 것을 지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42:24에서 요셉이 시므온을 묶은 것도 이를 암시해준다고 하겠습니다. 이 두 사람의 성품은 구약을 통해 쭉 드러나고 있습니다. 유다는 시므온에게 가나안에서의 자신의 몫을 확보하도록 도움을 요청합니다( 1:3). 이때 유다는 시므온 지파가 그들 조상의 진노를 지녔음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대상 4:42-43). 금송아지 사건 때 레위는 모세의 편에 서서 반역한 형제들 3000명을 죽인 바 있습니다( 32:27-28).

레위에게 놓였던 저주는 후일 제거되었고 이에 음행에 대한 그들의 올바른 입장 덕분에 주님의 축복이 그들에게 임합니다( 26:6-13). 마음이 약한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고 통제하고자 세대를 이어가는 저주를 들먹이는 오늘날의 이단 종파들을 대할 때 이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부모들의 불법을 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회개하고 의의 길로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야곱은 이들이 이스라엘 안에서 나뉘고 흩어질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와 같이 시므온은 땅을 분배할 때 아무 몫을 받지 못하고 유다와 함께 거하며 그들의 도시에 흩어지게 됩니다. 레위는 다른 지파들에게 할당된 지역권역으로 흩어져 48개의 성읍을 몫으로 받았습니다( 19:1-8, 14:4, 21, 35:8).

야곱이 후손들에게 레위로부터 분리할 것을 경고했던 그 레위의 특성들은(잔인하고, 진노하고, 분노하는) 제사장들(레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은밀하게 음모를 꾸며 그들의 분노와 의지대로 이스라엘을 불명예스럽게 만들었던 그 암울했던 사건에서 분명히 엿볼 수 있습니다.

 

 

124

유다 1

 

유다에 대한 야곱의 예언은( 49:8)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고 통치자가 되시고( 9:24), 이에 그의 형제들이 그를 찬양하게 될 때 성취될 것입니다.

원수들의 목을 잡는 것에 관해서는 첫째로 다윗에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왕좌를 차지하실 분께 두 번째로 성취될 것입니다. 사무엘하 5:1-3과 시편 72:10, 그리고 빌립보서 2:10에서 볼 수 있듯이 그분 앞에서 형제들이 절하는 것 역시 유다에 대한 야곱의 발언이라면 이상하게 보일 것입니다. 단지 내 자식들이라고 말하면 되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우리가 이것이 예수님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아버지의 자식들이 그분 발 앞에서 절할 것이라는 약속을 기뻐할 것입니다.

홀이 떠나지 않는다는 예언은 비록 이스라엘의 10지파와 그 남은 자들이 일찍이 멸망하고 흩어져버리긴 했어도 유다 지파는 예수님 때까지 지속되었음을 주목하게 합니다. 실로가 오기까지 법을 주는 자는 유다의 몫입니다. 실제로 요한복음 18:31에서 유대인들이 가야바에 의해 로마의 총독이 손에 재판권을 넘겨주었을 때까지는 법적 권위가 유다를 떠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실로의 예언을 명백히 성취하신 것입니다 이 진리는 시편(60:7, 108:8)과 대언자들( 33:22)에 의해 지지를 받습니다.

예언의 나머지 부분은 포도원들에 관한 것입니다. 약속의 땅에서 유다가 받은 몫은 포도밭이 있는 남쪽 지역이었으며(대하 26:9-10, 15:55) 엔게디 포도원 역시( 1:4) 유다의 땅에 있었습니다( 15:55).

르우벤이 빼앗긴 장자권은 하나님에 의해 세 부분으로 나뉘었는데 레위는 제사장 직분을 받았고 유다는 통치와 관련된 것을 받았으며 요셉은 장자의 두 몫을 받았습니다.

 

 

125

유다 2

 

유다에 관한 축복의 예언은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인 관계로 분명히 메시아적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8절에서 우리는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예언이 전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1) 장엄함 (2) 승리 (3) 지배(통치)로 구분해서 보고자 합니다.

너는 네 형제들이 찬양할 자니라.” 유다라는 단어의 의미가 바로 찬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의 영원한 찬양을 받으실 분십니다. 그분께서 구속하시는 자들은 그분의 형제들이며( 2:12), 그들은 그분의 사랑과 긍휼과 권능과 승리와 구속의 의지와 구속의 대가 등에 대해 영원토록 그분을 찬양할 것입니다. 찬양은 경외심과 감사를 마음으로 표현하는 그것입니다. 찬양이란 찬양 받는 이의 가치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 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가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운동선수를 응원하며, 배우를 자랑하는데 이는 각각의 분야에서 그들이 보인 뛰어남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무덤으로부터 승리하사 일어나신 것을 본 우리들 모두는 그분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고 박수를 보내야 할까요! 그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도다, 하더라.( 5:12) 우리 모두 주님을 영원토록 찬양하는 그 사역을 시작합시다. 그와 같은 올바른 행위는 이르면 이를수록 좋습니다.

네 손이 네 원수들의 목을 잡을 것이요 이것은 그리스도의 원수들을 완전히 패퇴시키고 철저히 굴복시키실 것을 실감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정복자이십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힘도 아니요, 능력도 아닌 하나님의 영으로( 4:6) 승리하셨습니다. 파리를 부셔버린 것이 우리에게 승리로 간주될 수 없듯이 폭력에 의한 승리는 하나님께 승리가 될 수 없습니다. 승리는 사랑과 겸손과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분은 자신을 죽음에 내어주신바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의롭게 되고 구속되게 하심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요구가 그들을 위해 충족되어야만 했습니다. 이제 그분은 하나님의 오른편에 높임을 받아 앉아계시며 그분의 승리가 완성되어 그분의 발 밑에 모든 원수들이 발판이 되는 날을( 10:13)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 아버지의 자식들이 네 앞에서 절하리로다.” 이것은 다윗과 그의 후손들이 왕좌에 오를 때 예표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 예언은 실제적으로 최종적으로 구속 받은 모든 무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할 때 성취될 것입니다. 또한 이 예언은 이 세상에서도 세대를 이어 믿음에 의해 마음 안에서 부분적으로 성취되고 있는 중입니다. 오는 세상에서는 온전히 그리고 영원히 이 일은 지속될 것입니다.

앞선 문장은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엎드리나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의 뜻에 거슬러 행하게 될 것을 말하고 있고 이번 문장은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는 자들이 자발적으로 엎드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네 아버지의 자식들은 구약시대 동안 육체를 따른 이스라엘 민족들에 대한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이것은 구속 받은 교회를 뜻하는 바 교회의 지체들은 모두 그분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식들이 되었습니다( 3:26).

위 세 문장 속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게 됩니다.

1. 지상에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찬양함

2. 세상과 그리스도의 관계

3. 하늘에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경배함

유다(Judah) 라는 이름은 구약성경에 811번 등장하며 신약성경에서는 히브리서 8:8에 한 번 나옵니다.

 

 

126

유다 3

 

유다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결점은 9절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즉 젊고, 사납고 저항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구원자께서는 전능한 힘을 지니셨고 정복하는 권능을 소유하신 분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유다 지파의 사자( 5:5) 라는 묘사를 보게 됩니다. 4복음서의 첫 번째 것은 그 분께서 이 왕권을 지닌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며 사자라는 상징은 오랫동안 마태복음을 대변해 왔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탈취한 것을 떠나서 위로 올라 갔도다.” 여기서 우리는 단지 야곱이 자기 아들 유다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뿐 아니라, 하늘 아버지께서 영원하신 아드님에게 말씀하고 계신바 그분께서 승천하여 영광을 얻으시고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게 될 그날에 대해 말씀하고 계심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계시록 5장에 묘사된 장면으로 그곳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탈취한 것을 떠나 승리 가운데 귀환하였습니다. 그분은 정사들과 권능들을 떨쳐버리고 이들을 십자가로 이기셨으며(2:15), 포로 된 자들을 사로잡아 데려 오셨습니다(4:8).

그가 엎드렸으니 이 구절과 다음 문장은 웅크리고 앉아서 먹이를 포획하려는 사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찬가지로 구원자께서도 종의 형체를 취하고서 사람과 같은 모양을 하시고서(2:7) 하늘에서 굽어 보고 계셨습니다. 그 누구도 그처럼 높은 곳에서 이처럼 낮은 곳을 본 적이 없었지요.

웅크린 것이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신(53:6) 아버지에 의해 그분 위에 놓여진 죄 더미아래 웅크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오 그리스도여 어떤 짐이 당신의 머리를 숙이게 했나요?” 라고 노래 했으니 이는 그 분께서 흙먼지 아래로 죄 짐에 눌려(우리의) 굽히시고 죽음에 까지 끌려가셨으니 그분의 원수들도 이를 모르고 그분의 친구들 조차도 당시에는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죽음에 까지 엎드리신 것은 먹이를 포획하려고 웅크리는 사자의 자세였으니 이 굴복과 웅크림이 영원한 승리의 바로 그 수단이 되었던 것이지요.

늙은 사자 같으니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타락한 아들들의 구속을 성취하신 것은 그분께서 영원한 지혜와 경험을 지니신 영원하신 분으로서( 5:2)하신 것이었습니다. 강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우리를 돕고자 오신 것이요, 땅을 굽어 보신 것이고 죄 짐 아래 웅크리셨다가 먹이를 결국 포획하셨지요.

우리는 창세기 앞 부분에서 어린양이 그리스도의 예표로 등장하는 대신에 이삭을 대신하여 다 자란 숫양이 바쳐지는 사건을 돌아 보게 됩니다(24). 그러니까 구원이 가능했던 것은 예수님의 탄생(아기 예수)이 아니라 다 자란 어른이 자신을 갈보리에서 바쳤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가 그를 깨워 일어나게 하리요?” 그가 일단 탈취물을 포획하려고 몸을 굽히고 있을 때 그 웅크림으로부터 누가 그를 깨워 일으킬 건가요? 그 누구도 그리 할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마귀는 광야에서 여러 번 시도 했습니다(4:1-11). 베드로를 이용하여 이를 시도 했었고( 16:22, 23), 또한 겟세마네에서도 애를 썼지요(26:39). 그러나 마귀는 실패하였습니다. 가장 낮은 죽음에까지 자신을 웅크렸던 그 사자가 탈취물을 향해 직접 달려든 것입니다.

누가 그를 깨워 일어나게 하리요?” 우리는 또한 이 말씀을 주님의 부활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인간의 권능도-개인이든 집단이든-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을 무덤으로부터 일으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굽힘과 웅크림이 그 최저점에 다다랐을 때 그 분은 무덤으로부터 힘차게 솟구쳐 지옥의 군대들을 떨쳐버리고 영원한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할렐루야!

 

 

127

유다 4

 

창세기 49:10에서 우리는 유다에 관한 예언이 세상의 구원자이신 그분 안에서 더 완전히 성취될 것임을 보게 됩니다. 이 구절은 유다 지파가 왕권을 갖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여홀은 통치 권력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의 홀은 기스의 아들 사울 안에서 베냐민 지파에게로 처음 왔었습니다. 사울은 대언자들의 권면을 반대하던 불순종하는 백성에 의해 선택되었습니다. 그는 불순종으로 왕좌를 빼앗겼습니다. 이 왕좌는 유다 지파 소속의 베들레헴의 다윗에게로 넘어갑니다. 이 왕권은 이 민족이 포로로 잡혀가 독립을 상실할 때까지 다윗 집안 안에 있었습니다. 그 후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는 그 어떤 왕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이 예언은 왕권이 다윗 집안에 넘어간 뒤 오는 그 어떤 지파도 왕권을 받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에는 여러 왕조가 바뀌었지만 예루살렘에서는 다윗의 집이 다스렸고 포로기간 중에도 이 왕가의 노선은 그리스도께 이를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 왕권은 유다로부터 탈취된 적이 없습니다. 언젠가 이 왕권은 다윗의 아들이신( 1:3) 주 예수님 위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법을 주는 자가 그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니이 말씀은 앞선 말씀과 짝을 이루는 선언으로 그의 후손들로부터혹은 그의 씨로부터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시드기야와 그리스도의 시대 사이에는 법을 주는 자들의 노선은 이어졌으나 이들은 그 민족이 포로였기에 그 권한을 행사하지는 못했습니다.

유다에 관한 예언에는 그리스도의 두 번 오심이 분명히 제시되어있습니다. 9절에서 우리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리스도를 보게 되며 10절에서는 영광 가운데 오셔서 다윗의 왕좌에서 땅을 통치하실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