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2013.08.05 20:30

영적 성장-4 양심

조회 수 415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4장 양심

제임스 낙스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설교 시리즈인 The Spiritual Growth를 의역한 것입니다.

 

1. 오늘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양심의 열 두 가지 상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은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빛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은 요한복음 1장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참 빛, 즉 자신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은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을 주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권능과 거룩하심과 언젠가 우리가 하나님께 회계보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거나 성경을 배우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창조자 하나님을 알고 있고 언젠가 자신들이 그분 앞에서 회계보고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은 양심 깊은 곳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3.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면 양심이라고는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가의 지도자에서부터 시작하여 양심이 완전히 실종되었습니다. 권력이 있는 자로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각자 자신의 능력껏 죄를 짓고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삽니다. 입술로는 정의를 말하지만 마음과 생활은 그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낙태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낙태가 합법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태아의 몸을 기계로 잘게 부셔서 빼내는 것은 합법이건 불법이건 동일하게 이루어집니다.

 

4. 비단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양심을 저버리는 경우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국가와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비양심적인 일에 대해 교회가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목사가 그러한 일에 관여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교회에 오고 열심히 설교를 듣고 테이프와 CD를 사서 몇 번 이고 다시 들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교회나 목사가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은 바로 국가와 사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제 멋대로 살아가는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5. 저는 예전에 어떤 목사님이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목사라고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목사님이 가르치는 성도들의 생활이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것만을 가지고 그 목사를 비난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을 믿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고 설교를 해도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웬만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교회에 와서 설교도 듣고 찬송도 부르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일주일 동안 마귀처럼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이 무엇인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6. 여러분은 구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설교를 들으면 그게 다 자기 얘기 같았던 적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감정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죄인의 자리가 아니라 성령님의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이 가장 큰 죄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내가 싫어하는 그 사람이 가장 큰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변한 것일까요? 양심에 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7.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자신의 실상을 더욱 분명하게 깨달은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을 만나 구원받은 사람들은 모두 주님 앞에 쓰러져 엎드렸습니다. 이사야는 주님을 만났을 때 자신이 더러운 자이며 불결한 입술을 가진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감이 넘치던 베드로도 주님을 만나자 자신이 얼마나 더럽고 죄악으로 가득 찬 인간인지 깨달았습니다. 모세도 불타는 가시덤불 사이에서 주님을 만나자 자신이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고백했습니다.

 

8.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죄로 더러워진 자신의 모습과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지 못한 사람은 아직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양심이 살아 움직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1. 죄로 악해진 양심

9. 이제 히브리서 10장을 보겠습니다. 우리 마음이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났고 우리 몸은 순수한 물로 씻겼으니 우리가 믿음의 충만한 확신 속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10:22)

 

10. 먼저 우리가 살펴볼 것은 죄로 악해진 악한 양심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짓는 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을 보여주며 하나님께서는 술을 마시는 것을 죄로 정죄하신다고 하면 성경을 정죄합니다. 성경을 보여주며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는 것을 죄로 정죄하신다고 하면 성경이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보여주며 하나님께서는 순결하지 못한 것을 죄로 정죄하신다고 하면 성경이 순결하지 못하고 오류가 있다고 합니다.

 

11. 사람이 죄를 용납하고 죄를 짓기 시작하면 양심은 악해지기 시작합니다. 죄를 용납하고 허용하기 시작하면 양심은 죄를 정당화하기 시작합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 안에 들어오셔서 여러분의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시기 전에 여러분은 어땠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성경과 복음과 예수님을 거부하고 전도지를 찢어버리고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웃으면서도 마음에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죄로 인해 양심이 악해졌기 때문입니다. 죄가 습관이 되자 양심은 완전히 악해진 것입니다.

 

12. 구원받지 못한 남자에게 귀고리를 하고 여자처럼 화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은 당신이 더 이상하다.”고 할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사람이 짓는 죄로 인해 그 사람의 양심은 악해졌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굶주리고 있는데 돈이 생기면 술만 마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가족이 음식을 사먹을 돈으로 술을 마시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사람은 당신 일이나 신경 쓰라.”고 할 것입니다. 습관이 되어버린 죄로 인해 그 사람의 양심이 악해졌기 때문입니다.

 

13. 성령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의 마음에 오셔서 죄로 악해진 양심을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지은 죄들이 이제는 양심에 걸리고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죄를 허용하고 그로 인해 죄가 습관이 되어버려 양심이 악해졌지만 구원받은 이후에 성령님께서 들어오셔서 양심을 깨끗이 씻어주시면 이제는 전에 습관적으로 짓던 죄들이 양심과 분리가 되기 때문에 그러한 죄들이 문제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불신으로 더러워진 양심

14. 디도서 1장을 보겠습니다. 순수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순수하나 더럽혀지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순수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의 생각과 양심마저도 더럽혀져 있느니라.( 1:15)

 

15. 양심은 죄를 용납하므로 악해지기 시작해서 불신으로 인해 완전히 더러워지게 됩니다. 진리를 믿지 않으면 거짓을 믿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마귀를 믿게 됩니다. 바른 것을 믿지 않으면 틀린 것을 믿게 됩니다. 자신의 양심을 죄에게 내어주어 결국 양심이 완전히 더럽혀진 사람이 있습니다. 더럽혀진 양심은 뒤틀리고 왜곡되어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16. 죄로 더러워진 양심은 더욱 심한 더러움으로 나아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번 죄를 용납한 양심은 또 다시 죄를 용납하게 되고 그러면 양심은 더러워지게 되며 더 강하고 자극적인 죄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강한 자극을 찾는 것의 배경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양심이 죄에 한번 굴복하고 나서 반복해서 죄에 굴복하게 되면 일상적인 죄로는 더 이상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더 더럽고 왜곡되고 변태적인 죄를 추구하게 됩니다.

 

17.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렇게 더러운 죄로 나아가는 것을 막을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죄를 막는 양심은 이미 더러워져서 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히려 부추기기만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하고 오히려 진리를 거짓말이라고 했기 때문에 더욱 큰 죄로 빠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자신을 정죄하는 하나님을 이미 정죄했기 때문에 죄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18. 성경은 로마서 1장에서 불의 안에서 진리를 붙잡아 두는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8). 그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이 선한 것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림받은 생각에 내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8). 그 결과 그들은 온갖 가증한 죄를 짓고 하나님과 본성에 거슬려 끔찍한 범죄를 행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양심이 죄로 더러워진 것입니다.

 

19. 오늘날 독립침례교회에서도 많은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토요일 밤에 간음을 하고 일요일 오전에는 태연하게 찬송가를 부르기도 합니다.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의 양심도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의 양심이 더러워진 이유는 옳고 그름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들의 생각이 기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3. 뜨거운 인두로 지진 양심

20. 디모데전서 4장을 보겠습니다. 이들은 위선으로 거짓말을 하며 자기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진 자들이라.(딤전 4:2)

 

21. 인간의 신체 중 가장 예민한 곳 중 하나는 혀입니다. 혀는 단것과 쓴 것을 구분할 수 있고, 차가운 것과 뜨거운 것을 구분할 수 있고, 짠 것과 신 것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뜨거운 음료를 마시다가 혀가 데면 더 이상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게 됩니다. 혀가 감각을 잃으면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22. 양심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심이 죄와 놀아나게 되면 더 이상 죄를 구분하거나 경고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더욱 깊고 왜곡된 죄로 빠져들게 됩니다. 계속 그렇게 나아가면 결국 양심은 뜨거운 인두로 지진 것과 같아지며 완전히 그 기능을 상실하게 됩니다.

 

23. 대량학살을 한 사람이 회개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엄청난 죄를 지어놓고도 회개하기는커녕 자신의 부모나 사회를 원망하고 책임을 돌리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고 온갖 악한 짓을 다 해 놓고도 술집에 가서 태연하게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습니다. 양심이 뜨거운 인두로 지져졌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양심이 뜨거운 인두로 지져진 사람은 그런 일을 해도 더 이상 아무런 느낌이나 감정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돌아와서 성령님께서 양심을 새롭게 하시기 전에는 아무런 소망이 없습니다.

 

4. 가책을 받은 양심

24. 양심은 죄로 인해 악해지고 불신으로 인해 더러워지며 그것이 지속되면 뜨거운 인두로 지져지게 됩니다. 이제 뉴스에서는 더 이상 일반적인 죄는 보도되지도 않습니다. 일반적인 죄는 더 이상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자극적이고 변태적인 죄들만이 기사화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양심이 죄로 더러워져서 어지간한 뉴스로는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5 사람들의 양심이 더러워지고 인두로 지진 것같이 되자 그들의 도덕적 기준도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잡지에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나와도 그것이 자극적이라거나 부도덕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양심이 인두로 지져서 마비되고 나면 도덕적 기준이 사라지게 되고 언어의 질도 낮아지게 됩니다.

 

26. 우리는 앞에서 양심의 부정적인 면을 살펴봤습니다. 이제는 긍정적인 면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겠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앞에 두고 예수님께서는 땅에 무엇인가를 기록하셨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듣고는 양심에 가책을 받아 나이가 가장 많은 자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하나씩 하나씩 빠져나가매 오직 예수님만 남았고 그 여자는 한가운데 서 있더라.( 8:9)

 

27.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양심에 찔림을 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저는 성령님께서 어느 날 저에게 오셔서 유죄를 선언하신 것에 감사 드립니다. 성령님께서 저의 마음에 오셔서 저는 유죄이며 더러우며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지적해 주신 일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구원받은 날은 하나님께서 저의 양심에 가책을 주신 날입니다. 양심에 찔림을 받는 것에서 구원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28. 요한복음 8장에서 긍정적인 장면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받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부정적인 장면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받고 나서 하나 둘씩 떠나버린 것입니다.

 

29. 사람들이 왜 교회에 나오는지 아십니까? 성령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양심의 가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찾아오셔서 너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성령님의 책망을 듣고 바르게 되려고 하지 않고 예수님으로부터 떠나 계속해서 죄를 즐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결코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을 들으면, 그 책망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찔림을 받고도 그것을 무시하고 떠나 버리면 결코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얻게 되는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누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5. 약한 양심

30. 예수님께서는 양심에 찔림을 주십니다. 고린도전서 8장을 보겠습니다. 지식이 있는 네가 우상의 전에서 음식 앞에 앉은 것을 어떤 사람이 보면 약한 그 사람의 양심이 담대하게 되어 우상들에게 바친 그것들을 먹게 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 약한 형제가 멸망하리니 그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와 같이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그들의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면 그리스도께 죄를 짓느니라.(고전 8:10-12)

 

31. 온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성령님께서 어떤 사람의 마음에 오셔서 그를 책망하시고 정죄하십니다. 그런데 자기 보다 신앙이 좋아 보이는 사람이 같은 죄를 범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육신적인 것이나 영적인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 사람의 양심은 약해져서 성령님께서 하신 책망을 그저 일시적인 감정이나 목사님의 생각쯤으로 여기게 됩니다. 다른 그리스도인도 그것을 하는 것을 보니 그것이 잘못된 일은 아닐 것이며,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하신 성령님의 책망이나 목사님의 설교도 사실은 그저 자신의 감정의 동요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32.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들어도 그것을 그저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면 그것을 보는 약한 양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자신에게 주신 성령님의 책망과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이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 바로 간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성경대로 행하지 않으면 그것을 본 양심이 약한 형제는 그 영향을 받아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성경대로 행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약한 양심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 성령님께서 책망하신 것을 말끔히 지워버린 것과 같습니다. 즉 여러분이 약한 지체들 앞에서 잘못된 간증을 보이면 여러분은 성령님께서 그 약한 지체 안에서 일하시는 것을 방해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33. 목사가 하는 설교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게 하고 싶거든 집에서 설교와 반대대로 행동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기를 바라면 여러분이 집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대로 살면 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교회에 와서 목사에게 웃으면서 인사를 해도 그가 설교하는 것은 듣지 않게 될 것입니다.

 

6. 깨끗해진 양심

34. 하나님께서 양심에 가책을 주심으로 찔림을 주시고 성경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설교를 통해 그러한 찔림이 강화됩니다. 그러나 그뿐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9장을 보겠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얼마나 더 많이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 9:14)

 

35.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더러워진 양심을 깨끗하게 합니다. 복음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이라고 불렀던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그분의 피가 그 사람의 양심을 깨끗하게 해 줍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의 양심이 새로운 것으로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날 여러분 삶의 모든 게 변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행동도 완전히 변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히 변한 게 있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그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양심을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 완전히 깨끗하게 해 주셨습니다.

 

36. 여러분이 구원받고 나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이었는데 이제는 극도의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죄책감을 느끼고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의 양심이 다시 깨끗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에게 하나님 앞에서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 것입니다.

 

37. 여러분이 다시 태어나고 구원받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저는 구원받은 사람이 하는 모든 행동이 다 옳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깨끗해진 양심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에 민감해지게 되고 지날 세월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던 일들을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됩니다.

 

38. 저는 구원받자 마자 구원의 확신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구원받고 나서 죄를 짓고 처음으로 주님께 나아와 회개하며 부르짖을 때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전에는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없이 하던 일들이 이제는 도저히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양심에 어떤 일이 생긴 것입니다.

 

39. 왜 아무리 열심히 설교를 해도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다른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지 아세요? 아마 그들의 양심이 아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과 내면을 모두 깨끗하게 씻어주실 수 있음에 감사 드립니다.

 

7. 완전한 양심

40. 히브리서 9장을 보겠습니다. 이 성막은 현재 곧 이때까지의 모형이므로 그 안에서 예물과 희생물을 드렸어도 그것들이 양심에 관한 한 섬긴 자를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며( 9:9) 10 2절도 보겠습니다. 여기서도 구약성경의 희생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라면 경배하는 자들이 한 번에 깨끗하게 되어 더 이상 죄들을 의식하지 아니하였을 터이므로 그것들을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41. 지금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처음에 만드실 때 의도하신 대로 기능하는 양심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양심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자신이 어떠한 소망도 없는 죄인일 뿐이라는 사실에 완전히 동의하는 양심입니다. 양심을 완전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즉 양심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유일한 것은 율법을 지키거나, 십계명을 지키거나, 절기를 지키고 희생물을 바치는 것이나,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명령하신 그 어떤 것을 행하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그 속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42. 만일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을 받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집사나 장로나 감독이나 목사이면서 동시에 더럽고 추한 죄를 지으면서 살면서도 양심에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침례나 세례나 유아세례나 물 뿌림을 받거나 헌신하거나 재헌신하거나 서원을 하거나 방언을 하거나 신유의 체험을 하거나 천사를 직접 만났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을 받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그러한 체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잘못된 것을 바른 것이라고 부르고 선을 악이라고 부르다 죽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무엇을 한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받지 않으면 여러분의 양심을 결코 깨끗해 지거나 완전해 질 수 없습니다.

 

43.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거 같아.” “나는 내 행동을 바꾸지는 않을 거야.” 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교회에 나오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종교적인 행동은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구원자로 받아들인 적이 없고 따라서 양심이 깨끗하게 씻기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여러분을 씻기면 여러분은 살아있는 깨끗한 양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 종종 잘못된 것을 행할 때도 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8. 완전한 양심은 하나님께 순종한다

44. 양심은 악해지고 더럽혀지고 뜨거운 인두로 지져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양심에 가책을 주시고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완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제는 깨끗한 양심이 하는 다섯 가지 일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45. 우리는 지금 여러분의 인생이나 저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양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완전한 양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완전한 삶을 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완전한 양심은 여러분이 완전한 삶을 사는데 방해가 되는 게 무엇인지 알려줄 뿐입니다. 완전한 양심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이러한 양심이 없다면 절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큰 낭패를 낭하게 됩니다.

 

46. 오늘 아침에 어떤 형제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는 슬프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낙스 형제님, 저에게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이 너무 싫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고 싶지만 실상은 정 반대입니다. 제 자신이 너무 밉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형제님, 그 마음을 잃지 마십시오. 형제님이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47. 우리가 주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망각할 때 우리는 큰 문제에 빠지게 됩니다. 완전한 양심은 우리가 주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를 항상 기억하게 해줍니다.

 

48. 베드로전서 2장을 보겠습니다. 사람이 부당한 일을 당하고도 하나님을 의식함으로(conscience toward God) 고통을 견디면 이것은 감사할 일이나(벧전 2:19)

 

49. 완전한 양심은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완전한 양심은 고난과 반대와 어려움과 부당함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완전한 양심은 매를 맞고 욕을 먹고 침뱉음을 당해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부당하게 대한 사람에게 악으로 갚지 않습니다. 완전한 양심은 온갖 박해와 비판과 억울한 일을 당할 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주님, 제가 잘못된 반응을 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라고 간구합니다. 완전한 양심은 여러분이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줍니다. 완전한 양심은 여러분에게 부당하게 대한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여러분의 행위가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이것이 바로 완전한 양심이 하는 일입니다.

 

50. 저는 예수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저는 주님과 같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만일 제가 예수님을 따른다면, 저는 유다 같은 사람을 만나 배반을 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저를 배반하고 팔아먹는 사람을 저는 친구라고 불러야 합니다. 만일 제가 예수님을 따르면, 저는 저를 알지 못한다고 저주하면서 부인할 베드로 같은 사람도 만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가 회복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만일 제가 예수님을 따른다면, 제가 열 명의 환자를 고쳐주면 그 중 아홉 명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가버릴 것입니다. 만일 제가 예수님을 따른다면, 환호하며 저를 위해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서 그 위로 밟고 가라고 하다가도 저를 죽이라고 소리칠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저는 그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51. 나의 양심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완전하다면 나에게 부당하게 대한 다른 사람의 행동이 아닌 나 자신의 행동과 그것으로 주님께 어떻게 영광을 돌릴 수 있을지를 생각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9. 완전한 양심은 하나님을 향하여 실족하지 않게 한다

52. 사도행전 24장을 보겠습니다. 이 소망 속에서 나는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하여 항상 양심에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힘쓰나이다.( 24:16)

 

53.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하여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면 완전한 양심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맞습니다. 주님께서 옳으시고 저는 틀렸습니다. 잘못된 것을 저의 인생에서 제거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완전한 양심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실족하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54.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깨끗한 양심을 주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께서 주신 양심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하여 실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양심을 속이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실족하게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아침마다 성경을 얼마나 열심히 읽건, 날마다 인터넷으로 설교를 얼마나 많이 듣건, 밤마다 골방에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건, 교회에 얼마나 열심히 나오건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양심을 통해 무엇인가를 지적하시면 그것을 무시함으로 하나님을 향하게 실족하게 하지 마십시오. 양심을 통한 하나님의 지적을 무시하지 말고 다루십시오. 그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말고 해결하십시오. 그래서 양심이 깨끗한 상태로 있도록 힘쓰십시오.

 

10. 완전한 양심은 선한 양심이다

55. 사도행전 23장을 보겠습니다. 바울이 공회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이르되, 사람들아 형제들아, 내가 이 날까지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았노라, 하거늘( 23:1)

 

56. 완전한 양심은 선한 양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선한 양심이란 무엇입니까? 잘못을 한번도 한 적이 없는 것입니까? 육신적인 죄를 한번도 지은 적이 없는 것입니까? 실패를 한번도 한 적이 없는 것입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 다른 속도로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서로 다른 성장 속도에 맞춰 서로 다르게 대하고 계십니다. 선한 양심이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을 최선을 다해서 하려고 노력하는 양심입니다.

 

57.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 같은 방식으로 다루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개인적으로 서로 다른 속도로 하나님과 걷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개인의 기준을 가지고 다른 지체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는 것을 똑같이 하지 않기 때문에 저 사람은 잘못되었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것이 있다면 그것을 행하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보여주셨는지, 혹은 아직 무엇을 보여주지 않으셨는지는 상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것을 아직 그 사람에게는 보여주지 않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어떻게 인도하실지 여러분은 알 수 없고 그것은 여러분의 일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인도하실지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만일 그들이 구원받았다면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때에 그들을 합당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겁니다.

 

58. 긴 머리를 하고 찢어진 바지를 입고 다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구원받고 나서 교회에 나왔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찢어지지 않은 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머리도 단정하게 잘랐습니다. 그 형제는 지금 먼 지역에 가서 선교사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그 사람에게 맞는 방법대로 그 사람을 다루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59.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언젠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될 것입니다. 거기서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오늘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된다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양심에 지적해 주신 그것을 여러분이 어떻게 처리했는지 물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에 여러분의 양심이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각자 자신에 관해 하나님께 회계보고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치러야 할 시험에 대해 공부해야지 다른 사람의 시험을 대신 공부하는 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11. 완전한 양심은 순수한 양심이다

60. 디모데후서 1장을 보겠습니다. 내가 밤낮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끊임없이 너를 기억하므로 내 선조들 때부터 내가 순수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딤후 1:3)

 

61. 완전한 양심은 순수한 양심입니다. 순수한 양심은 주일에만 하나님을 따르고 나머지 육일 동안은 세상을 따르지 않습니다. 순수한 양심은 세상의 철학이나 심리학과 혼합되지 않은 양심입니다. 순수한 양심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그것을 실천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양심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되는 것은 거부하는 게 순수한 양심입니다.

 

62.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지어내서 성경에 추가한 규칙들을 따르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목사는 반드시 흰색 셔츠만 입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목사가 색깔이 있는 셔츠를 입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렇게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에서 그러한 것을 아직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없는 것으로 저를 괴롭게 할 생각은 마시기 바랍니다.

 

63. 여러분은 순수한 양심을 지키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한 분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한 분 주님만을 섬기십시오. 그리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철학이나 사상이나 규칙이나 명령과 같은 다른 불순물을 섞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간구하십시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지 아닌지 여러분의 집까지 따라가서 감시하지 않습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집까지 따라가서 여러분을 지켜 보실 것입니다.

 

64. 여러분이 구원받은 사람인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양심을 통해 지적하실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여러분의 양심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을 지적하실 때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그것을 더 이상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양심을 순수하게 지킨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양심을 더럽힌 것입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참견할 수 없는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12. 완전한 양심은 증언하는 양심입니다

65. 고린도후서 1장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생활할 때에 단순함과 하나님께 속한 진실함으로 하였고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하였으며 또 너희를 향하여는 더욱더 그리하였노니 이것이 우리의 기쁨이요 또 우리의 양심이 증언하는 바라.(고후 1:12)

 

66. 완전한 양심은 증언하는 양심입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자신들의 삶이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양심이 지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양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전하려는 복음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양심이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67. 만일 여러분이 항상 성령님께 순종하는 삶을 산다면 여러분의 양심은 여러분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 복음을 전해도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의 간증을 항상 지켜왔다는 것을 여러분의 양심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를 이렇게 증언해 준다면 얼마나 복된 인생일까요? 우리의 삶이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고 예수님에 대해 들어보고 싶다고 한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68. 살아있는 깨끗하고 순수한 양심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양심에 반응하십시오. 양심을 깨끗하게 유지하십시오. 양심을 건강하게 유지하십시오. 양심이 바르게 일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잘못되었다고 지적하시면 받아들이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양심은 완전한 기능을 하게 될 것이며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31 양육 인생에서 꼭 필요한 것 김수광 07.24 109
530 양육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김수광 07.17 77
529 강해 알고 계십니까? 김수광 07.10 55
528 교리 예수라는 이름(the name of Jesus) 김수광 07.10 126
527 교리 주의 만찬이 지닌 의미 김수광 07.10 51
526 교리 영적성장 7단계 김수광 06.19 112
525 양육 주님의 책망 김수광 06.12 53
524 양육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 김수광 06.12 94
523 양육 지역교회 각 지체들을 위한 지침 김수광 06.12 71
522 양육 지역교회의 문제들 김수광 06.12 160
521 양육 주님이 갈망하셨던 교회 김수광 06.05 106
520 교리 교회들을 향한 주님의 계시 김수광 06.05 82
519 양육 대조적인 두 교회 김수광 05.01 99
518 양육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 김수광 04.30 158
517 교리 일곱 부활 김수광 04.27 125
516 교리 우리(신약지역교회)는 왜 모이는가? 김수광 04.14 54
515 교리 교회, 하나님의 집 김수광 03.27 94
514 교리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의 의미 김수광 03.20 209
513 교리 하나님께서는 언제 화를 내시는가 김수광 03.13 64
512 교리 세상과 성도와의 관계 김수광 03.06 89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30 Next
/ 30

me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