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2013.08.19 08:07

영적 성장-6 겸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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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겸손하라

제임스 낙스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설교 시리즈인 The Spiritual Growth를 의역한 것입니다.

 

1. 구원받은 사람이 성경을 대하는 대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읽는 말씀이 다른 사람들의 어떤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지를 중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어떤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지를 중점으로 보는 것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성경을 공부했는데 성경이 나의 어떤 잘못을 지적하고 있는지를 중점으로 봤을 때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2. 저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저는 성경이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 지에 대해서 보다는 성경이 저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불교신자가 아닙니다. 물론 성경이 불교신자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러나 저에게 필요한 것은 불교신자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제가 주님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 제가 주님과 어떻게 동행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저에게 유익을 줍니다.

 

3. 오늘 우리는 겸손에 대해 살펴 볼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하지 않고 교만하다면 공산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아는 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을 줄 수 있겠습니까? 마귀가 타락하게 된 것이 어떤 죄 때문이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왕좌 위로 올라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4. 저는 성경에 겸손에 대한 말씀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우리는 겸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해야 함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5. 겸손이라는 말의 의미는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 비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기준으로 비교해서 자신에 대해 평가하는 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성경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면 자신이 합당하지 않고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발견한 상태가 바로 겸손한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실체를 파악하고 주님께 은혜를 구하는 것이 바로 겸손한 상태입니다.

 

6. 우리는 목사 개인의 견해나, 우리 교회만의 교리나, 침례교의 교리를 가르치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진리를 가르치고자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계속 겸손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계속 거하는 것입니다. 계속 겸손할 수 있는 방법은 성경을 읽을 때 이것이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는 거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옆집에 사는 사람이나 다른 형제 자매에 대해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읽는 것입니다.

 

1. 겸손은 명령입니다

7. 먼저 베드로전서 5장을 보겠습니다. 너희 젊은 사람들아, 이와 같이 장로에게 복종하고 참으로 너희가 다 서로에게 복종하며 겸손으로 옷 입으라.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라. 그리하면 정하신 때에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벧전 5:5-7)

 

8. 우리가 오늘 살펴보는 겸손은 영적 성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저는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겸손하지 못하게 되도록 방해를 합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쟁은 겸손과 매우 큰 관계가 있습니다.

 

9. 6절에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구원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의 미래를 자신이 어떻게 정하셨는지에 대해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제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것을 완성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작업은 저를 자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겸손해야 합니다

10. 빌립보서 2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2:8)

 

11.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영원히 살게 되기 전에 예수님처럼 먼저 겸손해 져야만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예수님처럼 만드시기 위해 우리를 겸손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는 우리가 겸손해지는 것이 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서 자신의 계획대로 겸손하게 만들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실 겁니다

12.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실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주님께서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셨다면 어떻겠습니까? 다시 베드로전서 5:6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하라. 저는 이 구절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선택권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원하기만 한다면 스스로 겸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제 스스로 겸손해 질 수도 있고 하나님의 강한 손 밑에서 겸손해 질 수도 있습니다. 저는 결과적으로 겸손해 질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해지는 과정에 있어서는 제 스스로 겸손하게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강한 손에 의해 겸손해질 수도 있습니다.

 

13.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죄는 속임수로 가득하며 육신은 악하고 인간의 마음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겸손해지던지 하나님의 강한 손에 의해 겸손해 지던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불행한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 겸손해지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강한 손에 의해 겸손해 지는 길을 택한다는 점입니다.

14. 7절도 다시 보겠습니다. 너희의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느니라. 이 말씀은 놀라운 위로의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 말씀이 겸손에 대한 문맥에서 나왔을까요? 겸손과 염려와 주님의 돌봄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15. 교만이라고 하면 우리는 자기 자랑을 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자신이 얼마나 돈이 많은지, 얼마나 잘 생겼는지, 잘났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구령했는지, 얼마나 큰 교회를 인도하는지 등을 자랑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것이 교만인 것은 사실입니다. 자기 자랑이 교만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좀 더 인간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교만까지도 훑어보십니다.

 

16. 주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에 대해 염려를 한다면, 그것이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그 염려를 주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자신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지 않는다면, 스스로 그 염려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제가 스스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의 힘과 능력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저는 교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17. 우리는 교만이라고 하면 자기 자랑을 생각합니다. 물론 그러한 것은 교만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교만은 아닙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교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스스로 겸손하고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8.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자신을 낮춰야 할까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만큼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성경적 기준에 의하면 만일 제가 주님 없이 제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교만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이 생각하는 교만의 기준보다 훨씬 더 높고 고귀한 것입니다.

 

4. 스스로 겸손하면 높여 주실 것입니다

19. 야고보서 4장을 보겠습니다. 주의 눈앞에서 스스로 겸손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4:10) 여러분은 아담과 이브가 어떻게 해서 타락하게 되었는지 잘 아실 겁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높아지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모양과 크기와 종류와 나타나는 형태만 다를 뿐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언젠가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20. 하지만 우리가 높아지기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겸손해 져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겸손해지면 주님께서는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겸손해져야 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고 우리를 높이는 것은 우리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입니다.

 

21.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것처럼 보이는 데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겸손을 칭찬합니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사람들의 칭찬을 즐기며 자신의 겸손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골로새서 2장에서는 그러한 겸손을 꾸며낸 겸손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거짓 겸손에 대한 예는 셀 수 없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설교자들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초청되어 설교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설교할 수 있도록 초청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 저는 대단한 설교자가 아닙니다. 제가 제대로 설교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이런 말을 하면서 상대방이 아니에요. 목사님은 훌륭한 설교자입니다.” 라고 말해주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달라고 부탁 받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되지 자신에 대해 장황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22. 주님께서는 우리가 겸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것은 겸손한척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겸손하다고 생각하도록 하면서도 여전히 겸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겸손한 것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것은 다릅니다.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전혀 겸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은 주의 눈앞에서 스스로 겸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5.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23. 마태복음 18장을 보겠습니다. 바로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이르되, 하늘의 왕국에서는 누가 가장 크니이까? 하매( 18:1) 여기를 보시면 제자들의 교만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왕국에서 누가 가장 큰지를 놓고 논쟁했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누가 가장 큰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24.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회심하여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하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자 곧 그가 하늘의 왕국에서 가장 큰 자니라.( 18:2-4)

 

25. 우리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났고 더 대접받아야 하고 더 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를 망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만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보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그들을 무시합니다.

 

26.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순수합니다. 믿음에 있어서는 어린아이들처럼 단순하게 믿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린아이들처럼 자신을 낮추기를 원하십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의 밑 바탕에는 야망과 욕망과 이 세상에서의 목표와 경쟁 등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삶에 이러한 것들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27.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얘기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미친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하고, 다른 사람보다 잘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최고가 되어야 하고, 일등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저는 언젠가 셋째 하늘에 올라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전 우주를 바라볼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일등과 최고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저는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이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28. <주의 검(Sword of the LORD)>이라는 기독교 주간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 목사들의 설교와 글을 실으면서 항상 이런 식으로 목사를 소개합니다. “그는 가장 많이 알려진 목사이다” “가장 신실한 설교자이다” “가장 훌륭한 사역자이다그러나 이런 식으로 목사를 소개하는 것은 육신을 높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이름을 높여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평가에 민감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높임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고 우리의 본분에 충실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적당한 때에 우리를 높여주실 것입니다.

 

6.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질 것입니다

29. 마태복음 23장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사람들에게 아버지, ‘랍비,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책망하시고 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 가운데 가장 큰 자는 너희 종이 될지니라. (주님께서 친히 그렇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23:11-12)

 

30. 성경은 여러분이 주님 앞에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자신을 낮추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이 확실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자신을 높이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낮추실 것도 확실한 일입니다.

 

31.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만들어 주실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그리스도를 형성하실 겁니다. 그러나 자아가 튀어나올 때마다, 교만이 튀어나올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지려는 마음이 튀어나올 때마다, 여러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형성하시는 하나님의 작업은 중단될 수밖에 없습니다.

 

7. 다툼은 교만에 의해서 옵니다

32. 바울이 자신이 어리석은 자처럼 잠깐 말하겠다고 한 것처럼 저도 어리석은 자처럼 잠시 말하겠습니다. 저는 교회가 갈라지고 조각나고 찢어진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다시는 그러한 것을 보는 경험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러한 일을 통해 확실하게 배운 교훈이 있습니다. 성경은 오직 교만에 의해서 다툼이 생기나 좋은 충고를 받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13:10)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이룬 것이나 행한 것이나 자신의 영향력을 자랑하게 되면 교만이 오고 결국 다툼이 생깁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다툼의 원인 중 하나는 교만입니다.

 

33.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곳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높이려고 하면 분열과 다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마귀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나서 이러한 사역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크고 놀라운 일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자신을 높이려는 의도로 한 것이라면 주님께는 아무런 영광도 돌아가지 않고 아무런 의미도 소용도 없는 것입니다.

 

34. 우리가 스스로 높이면 우리는 반드시 낮아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전에 아돌프 히틀러라는 사람이 유럽에 등장해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는 권총으로 자살하고 짐승처럼 죽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높아져 교만하면 오늘이나 내일이나 내일 모래에도 괜찮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낮추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이 진리인 것처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리라는 말씀도 진리입니다.

 

35. 우리는 하나님의 강하신 손 밑에서 스스로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강하신 손이 우리를 겸손하게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신다고 하셨고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교만한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또 없습니다.

 

36. 예수님께서 지상사역을 하실 때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면서 나귀를 타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겉옷을 길에 펴고 나뭇가지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그런데 나귀가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자신을 환영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우스운 일일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어리석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신 일을 가지고 우리가 교만해 진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일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주님을 모시고 있을 뿐이지 우리가 주님은 아닙니다. 따라서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아가야 하고 우리가 자신을 자랑할만한 것은 전혀 없습니다.

 

37. 교만은 굉장히 간교합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전하거나 성경을 많이 읽거나 기도를 열심히 하고 나면 자신이 그래도 좀 괜찮은 그리스도인인 것 같다고 생각할 때가 혹시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여러분 마음에 이러한 생각이 생긴 적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주신 게 아니라 마귀가 준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그 모든 일들을 행한 뒤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니이다. 우리는 해야 할 우리의 의무를 하였나이다, 하라, 하시니라( 17:10)

 

38. “그래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는 낫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게 하는, 육신과 자아에 자부심을 주는 것은 마귀입니다. “우리가 바른 진리를 알고 바른 성경을 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닌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낫지 않은가?” 라는 생각은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무리 진리를 열심히 찾고 신실하다 해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진리를 주시고 인도해주시는 은혜를 베풀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고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39.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겁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기도를 기억하십니까? 그는 세리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이 그 세리보다는 좀 더 낫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여, 내가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8:11) 라고 해던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었습니다.

 

40. 저는 형제 자매님들의 간증을 들으면 두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죄를 지었었고, 저런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사악한 죄인이었고 온갖 종류의 끔찍한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주님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고, 저는 전도지를 나눠주고, 저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고, 저는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41.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모든 죄(SIN)의 중심에는 내(I)가 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높이는 것을 통해서는 주님을 높일 수 없습니다.

 

8.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신을 낮추는 일입니다

42. 역대기하 7장을 보겠습니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들에서 떠나면 그때에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대하 7:14)

 

43. 이것은 놀라운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만일 백성들이 킹제임스성경을 믿으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만일 백성들이 세대주의와 전천년주의를 바르게 알고 가톨릭과 이단들의 오류를 알면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고 자기들의 악한 길들에서 떠나면 그때에 내가 하늘에서부터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4. 이 구절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 의하면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기 전에, 우리가 악한 길에서 떠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들으시고 용서하시고 고치시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먼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45. 왜 자신을 낮추는 겸손이 가장 먼저 와야 할까요? 그 이유는 교만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는 가장 근본적인 장애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교만이 우리와 하나님의 들으심 사이를 막는다며, 우리와 그분의 용서 사이를 막는다면, 우리와 그분의 기도 응답 사이를 막는다면, 우리와 그분의 얼굴을 구하심 사이를 막는다면, 우리와 기도 사이를 막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와 염려를 솔직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가져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주님의 얼굴을 구하기 전에, 주님께로부터 무엇인가를 받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보다 겸손이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입니다.

 

9. 겸손해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46. 여러분이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역대기하는 정말 위대한 책입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섬긴다 할지라도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역대기하 12장을 보겠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의 통치자들과 왕이 스스로 겸손히 행하며 이르되, 주는 의로우시도다, 하매(대하 12:6)

 

47. 이 말씀의 앞에서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원수들을 보내셔서 그들을 포위하게 하시고 그들을 멸망시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러한 소식을 듣자 스스로 겸손히 행하면서 자신들을 원수의 손에 던져버리시는 주님은 의롭다고 인정한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결코 이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겸손해 지자, 주님께서 보시는 대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누가 범하든 간에 죄는 죄이며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벌을 받는 것이 자신일지라도 주님께서 벌을 주신다면 주님은 의로운 분이시며 주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정당하다고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이 비록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었지만 이것이 주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면 선하고 의로운 일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결코 이러한 것을 할 수 없습니다.

 

48. 계속해서 7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그들이 스스로 겸손히 행하는 것을 보셨으므로 주의 말씀이 스마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그들이 스스로 겸손히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을 멸하지 아니하고 어느 정도 구출하여 내 진노를 시삭의 손으로 예루살렘에 쏟아 붓지 아니하리라.

 

49. 멸망이 선포되었는데 사람들은 스스로 겸손해졌고 주님의 의를 인정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내리기로 하신 벌을 취소하셨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좋은 일이 아닙니까? 우리도 이렇게 구원받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의 머리 위에 있을 때 우리가 겸손히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의 의를 인정하고 주님의 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자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내리기로 하신 진노를 취소하시고 오히려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50.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심판하려고 하실 때, 교만은 그것과 맞서 싸우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스스로 겸손히 행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의를 인정하고 주님께서 보시는 대로 보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여러분이 그렇게 하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벌하지 않고 용서하시며 고쳐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을 심판하시거나 어려운 일을 주시거나 고난을 주실 때, 여러분이 주님께 따지거나 논쟁을 벌이는 것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제가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했는데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저보다 나쁜 사람도 많은데 왜 하필 저에게 이러십니까? 저기 저 형제는 교회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복음도 전하지 않는데 차라리 저런 사람을 벌하시고 고난을 주시는 게 옳지 않습니까? 주님, 천주교와 이단들을 보세요. 그들이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고난을 주셔야지 왜 저에게 주십니까?”

 

51.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고난을 주실 때 여러분은 주님과 논쟁하지 마십시오. 고난이나 어려움이나 주님께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될 때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행하며 엎드려서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주님은 의로우십니다. 주님께서 만일 저를 멸하신다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여전히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저에게 벌을 주신다 해도 저는 아무런 불평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의로우시며 저에게 고난과 어려움과 고통과 벌을 주실 때에도 여전히 의로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52. 여러분,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회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교만을 회개해야 합니다. 구원받았든 구원받지 못했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두 교만과 자기 의를 버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버리지 못하실 거라는 생각을 고쳐먹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 무신론자들이나 자유주의자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바른 성경과 바른 교리를 믿는다고 하는 독립침례교회 성도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겁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매우 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면 바로 그런 생각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멸하실 것입니다.

 

53. 여러분에게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여러분이 왜 이러한 고난을 당해서는 안 되는지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말이나 듣자고 여러분에게 고난과 어려움을 주신 게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그러한 일이 생겼을 때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행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모두 옳으며 주님께서는 나에게 좋은 것을 주실 때만큼이나 나쁜 것을 주실 때도 여전히 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십시오.

 

54.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아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모든 벌을 받기에 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일 제가 행한 대로 일이 일어나야 한다면 저는 진작에 지옥에 가 있어야 할 사람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제가 행한 대로 갚아주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저는 다른 사람을 죽인 적도 없고 은행을 턴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제가 행한 대로 저를 심판하셨다면 저는 진작에 지옥에 갔어야 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죄를 범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도 저 자신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교만한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55. 저는 지옥에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어떻게 이 사실을 확신하는지 아십니까? 저는 주님께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주님께서 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저의 죄를 인정하고 겸손하게 주님의 의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저를 멸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56.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과 주님께서는 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의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멸하지 않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무리 일주일에 삼 일을 교회에 나오고 종교적인 활동을 한다 할지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57. 여러분에게 중요한 사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며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것 외에 다른 희망을 있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10. 악한 사람도 겸손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58. 계속해서 역대기하 34장을 보겠습니다. 그녀가 그들에게 응답하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를 내게로 보낸 사람에게 너희는 고하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곳과 이곳의 거주민들에게 재앙을 가져오되 곧 유다 왕 앞에서 그들이 읽은 책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저주를 가져오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들 손의 모든 일로 내 분노를 일으켰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내 진노가 이곳에 쏟아져서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또 너희를 보내어 주에게 여쭙게 한 유다 왕에 관하여는 너희가 그에게 이같이 말하되, 네가 들은 말들에 관하여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이곳과 이곳의 거주민들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말들을 네가 들을 때에 네 마음이 연하여 네가 하나님 앞에서 네 자신을 낮추고 내 앞에서 네 자신을 낮추며 네 옷을 찢고 내 앞에서 울었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너를 네 조상들에게로 거두리니 네가 평안히 거두어져서 네 무덤으로 들어갈 것이요, 또 내가 이곳과 바로 이곳의 거주민들에게 내릴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매 이에 그들이 왕에게 말을 다시 전하니라.(대하 34:23-28)

 

59. 여기서 나오는 이스라엘 왕은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겸손히 자신을 낮추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이미 지은 죄를 없애거나 주님의 심판을 피하거나 취소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행할 수 는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겁니다.

 

60. 이번에는 역대기하 33장을 보겠습니다. 여기에는 성경에서 가장 악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의 이름은 므낫세입니다. 성경은 13번에 걸쳐 므낫세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가 전체가 13번이나 죄를 짓게 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사악한 사람이겠습니까? 므낫세가 통치하기 시작할 때에 나이가 십이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 동안 통치하였으나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 즉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교도들의 가증한 일들과 같은 것을 행하였더라. 그가 자기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건축하고 바알들을 위해 제단들을 세우며 작은 숲들을 만들고 하늘의 온 군대에게 경배하며 그것들을 섬겼더라. 또 그가 주의 집에 제단들을 쌓았는데 이 집은 전에 주께서 이르시기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이 영원토록 있으리라, 하신 곳이더라. 또 그가 주의 집의 두 뜰에 하늘의 온 군대를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대하 33:1-5) 므낫세는 성전에서 마귀를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61.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또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자기 아이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때를 살피고 요술을 쓰고 마술을 쓰며 부리는 영과 마술사들과 관계를 맺고 주의 눈앞에서 악을 많이 행하여 그분의 분노를 일으켰더라. 또 그가 조각한 형상 곧 자기가 만든 우상을 하나님의 집에 세웠는데 이 집은 전에 하나님께서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앞에서 택한 이 집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두리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의 발을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정해 준 땅에서 옮기지 아니하리라. 그런즉 모세의 손으로 준 온 율법과 법규와 규례에 따라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모든 것에 그들이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신 곳이더라. 이와 같이 므낫세가 유다와 예루살렘 거주민들로 하여금 잘못하게 하고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이교도들보다 더 나쁘게 행하도록 하였더라. 주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이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아니하니라.(6-10)

 

62. 성경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면 므낫세가 얼마나 악한 사람이었겠습니까? 그런데 다음 절부터 중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계속해서 11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아시리아 왕의 군대 대장들을 그들에게 보내시매 이들이 므낫세를 붙잡아 가시들 가운데 넣고 족쇄로 결박하여 바빌론으로 끌고 가니 그가 고통 중에 있을 때에 주 자기 하나님께 간청하고 자기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크게 자기를 낮추어 그분께 기도하였으므로 그분께서 그의 간청하는 말을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사 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그의 왕국으로 데려오시매 그때에 므낫세가 주 그분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11-13)

 

63. 만일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악한 므낫세를 받아주셨다면, 여러분 중 누구를 받아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만일 여러분이 자신을 낮추어 스스로 겸손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받아 주실 겁니다. 저는 여러분 중에는 므낫세보다 더 악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므낫세가 자신을 낮추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기쁘게 받아주셨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더 기쁘게 받아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을 부르시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지 여러분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64. 출애굽기 10장을 보겠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파라오에게 들어가 그에게 이르되, 주 히브리 사람들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서 네 자신을 낮추기를 거부하려느냐? 내 백성을 가게 하여 그들이 나를 섬기게 하라.( 10:3)

 

65. 므낫세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파라오는 끝까지 자신을 낮추지 않았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둘 다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인정했고 다른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도 온전해 지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온전해 집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행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큰 유익을 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강하신 손 밑에서 겸손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을 높이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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