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05.27 13:08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22(5월 27일-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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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22

5월 27일-6월 1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527

이삭을 바침3

 

삼일 째 되는 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lifted up his eyes)” 바라보았을 때, 결간의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눈을 들어라는 표현은 창세기에서 늘 의미 있는 순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13:10, 14, 18:2, 24:63). 아브라함은 어느 한 장소를 보았습니다.

오직 이삭만이 함께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중대한 결정이 내려져야 할 가장 신성한 순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청년들에게 나귀와 함께 머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와 이삭만 저기에 가서 경배하고 다시 올 것입니다.”(5) 여기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자신과 아들이 둘 다 돌아오겠다고 하니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시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이 희생제사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경배라는 단어가 사용된 경우이니 실로 경외스럽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6절의 장면을 마음 속으로 그려보십시오. 두 사람이 횃불이 펄럭이는 가운데 비춰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노인으로 허리가 굽었고 또 한 사람은 젊은이로 등에 무거운 나무를 짊어지고 따라가고 있습니다. 노인의 손에 든 칼이 불빛에 번쩍일 때 우리 역시 이삭처럼 칼과 불과 나무는 있는데 희생으로 바칠 짐승은 어디 있는지 의아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제껏 이런 희생을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린양도 비둘기도 없다니! 이 노인이 자기 아들을 제단 위에 바치려 하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제물이 없으니 그 외에 다른 결론을 어떻게 내릴 수 있다는 말입니까?

, 이제 우리는 골고다라고 불리는 언덕으로 가 보십시다. 여기에 자기 등에 나무보다 훨씬 더 무거운 이 세상의 죄 짐을 지고 나무 십자가와 함께 그 언덕을 오르고 있는 한 분이 계십니다. 하늘의 거룩한 비둘기요 이 세상의 점 없는 어린양 되신 분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려 놓으시고자 그 외로운 언덕을 오르고 계십니다. 모든 희생과 모든 헌물을 종결 짓는 그 희생이요 헌물이 드디어 바쳐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Himself) 어린양으로 제공하셨습니다. 할렐루야!

 

 

5 28

이삭의 희생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예표적 교훈( 22)

 

14절에 따르면 이번 장에서 발생한 그 사건들을, 오늘날 우리가 믿음으로 주의 산을 바라본다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갈보리 산에서 일어난 바로 그 사건에 대한 다섯 가지 아름다운 그림을 보게 됩니다.

 

1. 그리스도의 예표인 이삭

이삭은 성전이 세워진 산(대하 3:1)에서 헌물로 바쳐졌습니다. 십자가와 왕관은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아들은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2:5-8) 아버지의 뜻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대적하지 않으셨습니다.

 

2. 하나님 아버지의 예표인 아브라함

그는 멀리서 그곳을 보았습니다(4, 13:8). 그 계획은 예수께서 오시기 오래 전부터 예언을 통해 약속되어 있었고 성취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셨고 우리 모두를 위해 넘겨주셨습니다( 3:16, 8:32). 아버지는 전혀 머뭇거리지도, 지체하지도 아니하셨습니다( 2:23).

칼과 불은 아버지의 손에 놓여있었습니다( 53:4-10).

 

3. 우리의 대속물이된 숫양( 10:5-10)

우리는 한 청년이 묶여 죽임을 당하고 이어 불에 태워질 순간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죽음을 멈추게 하시더니 그 청년 대신에 한 헌물이 제공되었습니다.

그 숫양은 구덩이에 빠진 것도 아니었고 덧에 걸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뿔이 덤불에 걸려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양을 끌어냈을 때는 그 양의머리 주위는 가시덩굴이 덮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머리 위에 놓여졌던 가시관을 보여줍니다( 15:17).

 

4. 돌아온 일은 부활을 예표합니다( 11:17-19).

아브라함은 자신과 그 아이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미 한번 사망으로부터(자신의 몸과 사라의 태) 데리고 나왔는데 아직은 아이를 통해 이루겠다고 하신 그분의 약속이 성취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비록 자기 아들이 죽어 불태워진다 하더라도 자기와 그 아이는 둘 다 그 산을 걸어내려 올 것이라고 확신하였는데 이는 그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 역시 찔리시고( 19:34-37) 불태워졌으나( 2:31, 혼이 지옥에 가신 것을 말함-역주) 죽은 자들로부터 돌아오셔서 자신의 아버지와 교제를 회복하셨습니다.

 

5. 나귀는 죄인의 예표입니다.

나귀는 산 밑까지 나무를 지고 갔으나 산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우리 또한 갈보리 산 아래까지는 죄를 가지고 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그 아드님께서 이 죄들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우리의 죄들을 멀리 가져가셔야 합니다.

 

킹제임스성경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보석 같은 진리가 있으니 이는 성경 기록이 놀랍도록 정확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누가복음 23:26에서 시몬은 빌라도의 법정에서 예수님께서 나오시자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도록 강요당했습니다. 그분은 넘어지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힘에 겨울 때까지만 십자가를 메고 가셨고 뒤이어 구레네 사람 시몬이 도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7:32-33과 마가복음 15:21-22에 보면 시몬은 골고다에 이르기까지만(UNTO) 십자가를 지고 왔고 반면 요한복음 19:16-17에는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안으로(INTO)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철자 하나차이(U I)가 진리를 제시함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이로써 킹제임스성경은 창세기 22장의 예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했습니다.

시몬은 나귀처럼 산에 이르기까지만 나무를 지고 갔고 그때 예수님은 이삭처럼 그 나무를 지고 언덕 위로 오르신 것입니다.

이삭은 산에서 헌물로 드려졌고, 살아서 돌아왔으며 아버지와 함께 떠났습니다. 그리고 24장에서 신부가 그에게 인도되기까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놀라운 예표를 통해 얼마나 심오한 진리가 계시되고 있는지요. 할렐루야!

 

 

5 29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보라, 자기 뒤에 있으므로( 22:13)

 

사실 그 양은 계속해서 아브라함의 뒤에 있었습니다. 다만 그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는 죄인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구원자께서 죄인을 위해 이미 구속을 이루어 놓으셨건만 성령께서 눈을 열어 보여주시기까지는 이 사실을 보지도, 알지도 못합니다.

만약 숫양이 아브라함의 뒤에 있었다면 그는 그것을 보기 위해 돌아서야만 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인들 회개함으로 하나님을 향해 돌아서야만 믿음의 눈으로 구원자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사실 회심이란 구원자를 보는 것입니다.

숫양 한 마리 이번에는 이삭을 대신하게 된 이 숫양이 그리스도의 예표가 됩니다. 숫양은 다 자란 어린양입니다. 따라서 구유 안에 있는 아기 예수는 구원할 수 없습니다. 남자(어른)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죄로 인해 바쳐지실 것입니다.

덤불에 걸린 마찬가지로 구원자께서도 인간의 죄에 걸려 그 죄로 인해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몰린 것입니다. 이분은 그 위대한 구속의 목적 안으로 걸려 드신 겁니다. 그는 자신의 일이 완수되기까지 몹시 당당하셨습니다( 12:50). 그분은 겟세마네에서 그 십자가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완전히 파악하셨습니다( 26:39, 42).

뿔이(by his horns)” 구원자께서는 자신의 사랑의 힘으로 십자가에 묶이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대신하여 한 사람이 죽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다른 것이 그의 죽음을 대신하였습니다. 내가 죽어야 했고 내가 고통을 당해야 마땅했으며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어 그분의 진노를 받아 끔찍한 어둠에 처해졌어야 마땅했거늘, 이 모든 것이 나의 불쌍한 혼을 떠나 하나님의 아들 위에 놓여진 것입니다.

 

 

5 30

희생을 드린 장소

 

창세기 21:33에 보면 작은 숲(grove)을 세운 사건이 첫 번째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후일 이런 행동은 이스라엘에서 죄악 된 실행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잘 살펴보면 작은 숲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그 숲을 어디에 세웠는지 그 장소가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네가 너를 위해 만들 주 네 하나님의 제단 가까이에 너는 어떤 나무로든 너를 위해 작은 숲을 심지 말며 너를 위해 어떤 형상도 세우지 말라. 주 네 하나님께서 그것을 미워하시느니라.(16:21-22) 이 말씀에 따르면 숲 자체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단 가까이라는 위치가 문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사심 없이 심은 그 숲은 율법이 주어지기 아주 오래 전에 세워졌는데 헌물을 바치는 장소(22장 이삭을 바칠 모리야 땅)로부터 조심스럽게 멀리 떨어지게 심겼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숲은 제단으로부터 적어도 삼일 길이나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모리아 땅에 있는 그 산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또 다른 유일한 성경 구절은 역대기하 3:1입니다. 이곳은 성전이 세워졌던 그 장소였습니다.

그때에 솔로몬이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에 주의 집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은 전에 주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족속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예비한 곳이더라.(역대기하 3:1)

우리는 이 장면을 지켜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너무도 아름답게 예표 된 바로 그 장소가 다름아닌 그분께서 왕이 되셔서 앉아 다스리실 영광의 왕좌가 놓이게 될 장소이니까요. 이처럼 놀라운 책을 보신적이 있습니까? 이처럼 놀라우신 분은 또 어떻습니까?

마지막으로, 그날 그 산에서 벌어진 사건은 그 누구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주목 하고자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그를 죽이려 했을 때 그 두 인간 사이에 주고 받은 말의 깊은 감정은 아무에게도 공개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갈보리 언덕 위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자 아드님과 주고 받은 그 말 할 수 없는 심정 역시 어두움에 가려져 아무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너무도 신성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 인간들에게는 숨겨져야 마땅한 것 같습니다.

 

 

5 31

사라는 아브라함에 순종했음1

주의 말씀은 옳으며( 33:4)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순수하여( 30:5)

모든 성경은 유익하여(딤후 3:16)

 

오늘날 패역한 현대 사회가 여자들에게 참다운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뿐이라고 가르치고 설득하고 있지만 실상은 이는 사탄이 첫 번째 여성에게 했던 거짓 말입니다. 위에 인용한 세 말씀은 성경적 구원에 있어서만 사실이 아니고 우리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모든 상황에서 적용됩니다.

믿음의 영웅의 명단이 나오는 히브리서 11장에는 하나님께서 선정하신 두 명의 여인이(구약) 등장합니다. 하나는 싱글(미혼)여성인 라합이고 또 하나는 결혼한 여인인 사라입니다. 이로써 아브라함의 아내는 믿음으로 살아가려 하는 모든 결혼한 여인들의 본으로 제시됩니다.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한 모든 여자들의 본으로서 베드로전서 3:1-6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사용하시는 단어들의 뜻을 주의 깊게 조사해 봅시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것은 누가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여도 그들 또한 말 없이 아내의 행실을 통해 얻고자 함이니오직 마음의 감추어진 사람으로 하되 썩지 아니하는 것 즉 온유하고 조용한 영의 장식으로 할지니 그것은 하나님의 눈앞에서 지극히 값진 것이니라. 옛적에 하나님을 신뢰한 거룩한 여자들도 이런 방식으로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여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며 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너희가 잘 행하고 어떤 놀라운 일에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면 그녀의 딸들이 되느니라.(벧전 3:1, 4-6)

온유함(meek)이란 성질이 온순하고 쉽게 화를 내거나 짜증내지 아니하며 상처를 입거나 화를 돋구어도 잘 참으며 부드럽고 순종을 잘하며 특히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잘못된 일을 당해도 크게 타격을 입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 갈 줄 아는 은혜로운 능력을 말합니다.

당신은 온유합니까?

조용하다(quiet)는 것은 안식하고 있는 상태, 동요하지 않는, 흔들리지 않는, 흥분해서 무질서 하게 굴지 않는, 부드러운, 만족해 하는 이란 뜻입니다.

당신은 조용한 성령의 통제하에 다른 사람의 행실과 잘못에도 불구하고 조용한 영을 유지하고 계시는지요?

복종(subjection)이란 통제하에 놓이는 것, 즉 다스림과 지배하에 있는 것, 인생, 자유 및 소유에 있어 순복 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순종(obey)이란 귀를 기울이고 명령을 이행하고 순복하고 명령에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사라는 복종했고 순종했습니다. 그녀는 결혼한 여인들의 본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여인입니다. 배우자의 많은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주님을 매우 기쁘게 하는 영적 장식들로 단장했습니다. 앞으로 창세기 공부에서도 보겠지만 사라는 아브라함을 불신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으나 이로 인해 하나님을 불신하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녀가 부족한 남편 때문에 견뎌야만 했던 온갖 일에도 불구하고 (사실 상당히 많은 일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신뢰했고 이로써 배우자와도 올바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이와 같은 축복을 위한 가르침은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을 뿐입니다.

 

 

6 1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순종했음2

 

베드로전서 3:1-6에 나오는 남편은 불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절에 나오는 이와 같이(likewise)”라는 말은 베드로전서 2:18-25을 언급하는 것인바, 그리스도께서는 악한 자들의 손에 악한 대접을 받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본으로 제시되어 종이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복종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라가 어떤 여건하에서 남편에게 순복 함으로써 하나님께 순종 하였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창세기 12: 아브라함이 가족을 떠나 모든 인연을 끊고 고향 우르를 떠났습니다. 이때 사라는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13: 아브라함이 이집트로 내려갔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는 사라를 파라오의 손에 넘겨준바 이것은 명백한 잘못입니다. 그러나 사라는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14: 아브라함이 멀리 전쟁에 나갔습니다. 장기간 집을 비웠습니다. 혼자서 집안을 돌보고 권속을 책임져야 했으나 사라는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15: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경배하러 떠납니다. 그는 제단을 세우느라 바쁩니다. 그는 밤새 교회 예배에 착석했습니다. 사라는 홀로 집에 남아 있었으나 사라는 여전히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17: 아브라함이 아들을 약속 받았습니다. 사라는 90세였고 젊은 여인이라도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일은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라는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18: 주님과 두 천사가 찾아 왔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저녁준비를 시켰습니다. 그녀는 교제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그분들과 대화 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라는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20: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옛날에 했던 그 거짓말을 또 했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만 생각했습니다. 사라는 다시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래도 사라는 순종했습니다.

창세기 21: 아브라함은 자기 외아들을 죽이려고 모리아 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래도 사라는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유부녀들의 본으로 사라를 택하실 때 주님은 위대한 여인을 택하신 것뿐 아니라 오늘날의 여성들이 보기에 이상적인 결혼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을 전혀 누리지 못한 여인을 택하셨음을 주목하십시오. 이제까지 보았듯이 아브라함은 전형적인 남정네들의 특징을 다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라가 전형적인 여인네들의 특징을 전혀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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