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06.20 01:18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27(6월 30일-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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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27

6월 30일-7월 6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6 30

조약3, 죄악에 찬 인간의 소경 됨

 

우리가 네게 손을 대지 아니하고 사실 아비멜렉의 종들은 지난번 이삭이 발견한 물을 두 번이나 빼앗은 적이 있었기에 이 말은 전혀 현실에 맞지 않습니다. 인간은 자기 죄들은 쉽게 잊어버립니다. (반면 남의 죄는 잘, 길게 기억하지요.) 사람의 모든 길이 그의 눈에는 옳게 보여도 주께서는 마음을 살피시느니라.”

선한 일만 네게 행하며 이 진술은 훨씬 더 이상합니다. 그들은 아브라함이 판 우물을 막아버렸고 이삭이 그 자리에 다시 판 것들은 빼앗으려고 했었으니까요. 그들은 또한 시기와 증오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비멜렉의 진술은 죄의 속임수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example)”인 것입니다. 아비멜렉과 그의 백성은 이삭에게 못되게 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가 그를 속여 그를 잘 대해준 것으로 믿게끔 만든 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심각하게 어기며 살면서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대할 때 우리는 결코 충격을 받거나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 그들은 어둠 가운데 걷는 도다.” 라고 잘 말씀하셨습니다.

너를 평안히 내보낸 것 같이이야말로 어불성설이군요. 그는 이삭을 질시가운데 보냈습니다(16, 27). 아비멜렉은 이것들을 실제로 믿은 것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삭을 설득시켜 실제로 일어난 것과 정반대의 것을 믿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이 도둑질 한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도둑들이 잇지 않은 가요? 어떤 간음을 저지른 자는 자기가 아무런 잘못을 한 것이 없다고 맹세하기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으시지요? 어떤 사람은 너무도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새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하지요? 이것이 인간입니다. 성령님께서 빛을 비추지 않으시면 인간은 장님입니다.

 

 

7 1

조약4

 

이제 너는 주께 복을 받은 자니라.”(29) 그는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으나 그는 이에 대해 시기심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너무도 많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이 자도 진정한 회개와 믿음이라는 필수 조건을 갖추지 않은 채 축복만 나누어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매(30) 이것은 이삭의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삭은 자신이 경배하는 하나님처럼 행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이득을 제공하나 고마워하지 않는 자들에게도 친절하십니다( 6:35). 하나님과 참된 언약관계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여는 자들에게는 인생이 결국 잔치가 됩니다(3:20). 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의 모든 남녀를 얼마나 축복하시기 원하시는지!

그들이 먹고 마시고(30) 비록 그들이 외적으로 음식을 먹는 일에 동참하였으나 그들의 마음이 변화 받았다는 것을 시사할만한 기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일찍 일어나(31) (우리말 흠정역 성경에서 일찍이라고 번역한 “betimes”이윽고라는 뜻도 있음-역주) 이윽고라는 뜻은 협상이 길고 지루했음을 암시합니다. “betimes”란 자주 혹은 계산이나 숫자와 상관없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처럼 세상은 믿는 사람과 계속해서 협상하여 이런 저런 부분을 얻어내려고 합니다.

서로 맹세한 뒤에(31) 그들은 엄숙한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아비멜렉의 동기는 두려움과 착각인 것 같습니다. 그는 이삭의 축복이 자신에게는 위험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삭의 하나님도 모르고 그분의 축복은 모두를 포괄하고 있음도 몰랐습니다. 우리의 축복은 죄인의 저주를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유익과 이익이 됩니다. 이삭의 동기는 블레셋인들이 자신의 축복을 나누어 갖고 참되신 하나님을 알기에 이르기를 진정으로 갈망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7 2

조약5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31) 그들은 서로 떨어져 평화롭게 살기로 합의했습니다. 블레셋인들은 떠돌이 이삭의 친구가 될 마음이 없었고 이삭 역시 이교도와 함께 정착하기 위해 순례자의 장막을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이것을 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빛 가운데 걷지 않는 사람들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반면(고전 6:17), 모든 사람들과 화평하게 지내도록 애써야 합니다.

그들이 그를 떠나 평안히 갔더라.”(31) 그들은 비록 깊은 인상을 받았으나 보시다시피 회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들에 의해 도전을 받습니다. 만약 그들이 계속해서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거부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목격하지 못했을 경우에 겪게 될 일보다 더 위험해 질 지도 모릅니다. 물론 수십 수백 명이 깊은 인상을 받는 것보다 한 사람이 회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 후로부터 이들은 이삭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고 이에 그들을 반대하기를 두려워합니다. 결국 그와 화평한 관계를 원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 정도의 태도를 취하면 자신들도 영적 축복에 참여할 자격을 갖추게 될 것처럼 잘못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날(32) 우물의 발견이 당일 날 있은 것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물을 찾았나이다.”(32) 죄인과 세상 사람들에 대해 관용으로 대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복을 받을 마음이 열리게 된 셈입니다. 물을 대는 자는 자기도 물을 받으리라.”( 11:25) 이삭은 자신의 하나님을 모르며 자기를 해친 자들에게 친절과 은혜를 베풀었으니 이들로부터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복을 받은 것이니 이는 그가 하나님 때문에 그들을 선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상속 유업의 보상을 주에게서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3:24)

 

 

7 3

그리고 에서

 

우리는 창세기 26:34로 그랄에서의 이삭의 삶을 떠나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에서와 그의 아내들과 그의 혼인으로 인해 부모님들의 경우 근심 등에 대해 언급한 후 축복의 탈취, 에서의 적개심, 그리고 야곱의 탈출 등이 이어지게 됩니다.

사십세에이삭이 리브가와 혼인했던 나이와 같습니다( 25:30). 홍수 이전 시대의 조상들의 나이에 비해( 10) 이들의 나이는 훨씬 적었지만 그래도 오늘날의 수명보다는 두 배 가량됩니다. 아브라함이 175, 이삭이 180( 25:7, 35:28), 그리고 야곱이 147( 47:28)까지 살았으니 에서의 40세 나이는 오늘날로 치면 25세쯤 되는 것 같습니다.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 헷 족속은 아브라함이 혼인을 시키고 싶지 않았던 바로 그 백성들 가운데 사는 가나안의 거주민이었습니다( 24:3). 에서는 장자권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헷 여인과 혼인함으로써 자신들이 부름 받은 바로 그 순례자의 삶을 포기하고 세상적 삶을 살기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혼인은 오랫동안 헷 족속과 가까이 지내온 결과인 것으로 보입니다. 브에리가 자기 딸을 타국인에게 주었을 리 만무하니까요. 자신들과 전혀 다른 생각과 생활을 하는 자들에게 딸을 주지 않으려 했을 겁니다. 이 혼인은 결구 에서가 속된 사람 즉, 세속적 사고방식을 지난 자였음을 입증해 주는 셈입니다( 12:16).

 

 

7 4

본래 진노의 자녀들

 

그리고 바스밧을 아내로 취하였는데 에서는 홍수 이전시대의 라멕처럼(4:19) 일부다처주의 자였습니다. 그는 여자를 거부할 수 없는 자였으며 히브리서에 따르면 이전처럼 혼인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를 음행 하는 자(12:16)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의 생각은 세상과 육신에 놓여있었습니다. 영적인 것들은 그의 마음을 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의 마음 안에서 역사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가 경건한 부모의 자식이요 택함 받은 민족 가운데 태어났으나 그는 그가 태어난(51:5, 58:3) 그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의 특징과 성향을 다 드러내 보이고 있었습니다.

경건한 부모가 자연적 출생을 통해 경건함을 전수해 줄 수는 없습니다. 이들 역시 아담의 후손일 뿐입니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이들의 중생을 위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길뿐입니다. 죄 가운데 타락한 채로 태어난 자들은 영적 생명을 얻으려면 하나님의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이 은혜는 당사자가 합당한 때에 믿음으로 받아야만 합니다. 침례인 요한의 경우는 예외입니다(1:15, 44). 그러나 요한은 아담의 후손들 가운데 가장 큰 자요(11:11). 어린아이 때로부터 성령으로 충만했던 것이 그의 위대함의 원인이었을 것입니다. 요한의 경우는 예외이며 에서의 경우가 일반적인 것입니다.

26:35 아들의 잘못된 아내 선택으로 상처 받은 부모의 케이스는 사사기 14:3입니다. 오늘날은 너무도 흔한 현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7 5

야곱의 등장

 

야곱이라는 이 놀라운 사람에게 있어 우리 모두를 당혹하게 하는 것은 그의 생애가 너무도 대조적인 두 종류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모세, 다윗, 이사야 및 바울, 요한 등을 보면 이들 역시 잘못과 죄가 없지 않았으나 그래도 그들의 성품의 영광스러운 모습이나 하나님께 바친 헌신의 모습에서는 그 죄들은 다 잊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와는 다릅니다.

한편으로는 탁월한 차분함과 부드러움이라는 기질이 눈에 띄는가 하면 또 한편으로는 가족의 우두머리가 되고자 하는 강렬한 야망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진정한 경건과 자신의 조상들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확신이 있는 반면에 또 한편으로는 이 목표를 좌절시킬 수도 있는 강력한 이기적인 성향도 보인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처음에는 어머니, 아내, 그리고 자녀들에게 사랑을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 조심성, 머뭇거림 의심하는 태도 등도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고상한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과 더불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치사하고 경멸스러운 수단도 기꺼이 사용하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야곱은 실로 두 본성이 극도의 대조를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모세, 다윗, 바울)중에서 20장이나 할애 받고 있는 사람인 야곱은 별로 회자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별로 말씀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 야곱이야말로 우리 자신을 너무도 쏙 빼 닮았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인생사를 주의 깊게 숙고해 볼 것이며 성령께서 이를 통해 가르치시고자 하는 교훈을 배우고자 합니다.

 

 

7 6

야곱의 인생의 단계들

 

야곱의 생애는 일곱 단계로 구성되어있는바 매 단계별로 훈련과 징계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1. 강력한 사고와 의지를 지닌 어머니의 영향하에서 집에서 보내었던 시기.

2. 하나님과 개인적인 만남을(어쩌면 생애 최초로) 갖게 된 벧엘에서의 위기.

3. 라반을 섬기던 시절. 이 시기는 강력하고도 장기적인 징계의 기간으로 후일 나머지 인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됨

4. 브니엘은 그의 생애에 있어 또 다른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음.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 집(벧엘)뿐 아니라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엘벧엘)에 대해서도 인식하게 되며 자신의 삶의 통제권을 여호와께 넘겨드림.

5. 그럼에도 세켐에서의 타락의 시기가 닥치게 됨. 이 시기에 자신과 가족 모두가 시련과 슬픔을 겪게 됨.

6. 얼마 후 벧엘로 돌아와 다시 하나님의 호의와 교제를 회복하게 됨. 또한 영적 도약을 이루게 되며 다시는 후퇴하지 않을 만큼 확고한 입지를 굳힘.

7. 이집트에서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차분하고 조용하며 열매를 풍성히 맺는 인생을 행복하게 살다가 평안히 죽음.

 

우리는 야곱의 인생 전부를 한꺼번에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주시고자 하는 결정적인 인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사람, 야곱은,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자신의 인생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깨달음 대로 행동했을 때마다 죄와, 혼동과 절망이 다가왔습니다.

큰 압력(스트레스)이 가해져 어쩔 수 없게 될 때 만 하나님께 자신을 내어 드렸고 따라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고 있던 순간마저도 기쁨이 없었으니 이는 자발적인 순복이 아니라 필요에 의한 복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인생사에는 슬픔과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는 비참한 인생을 살았으나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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