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2013.05.08 12:0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2 합당하신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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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합당하신 분

제임스 낙스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설교 시리즈인 The Person of Our Lord Jesus Christ을 의역한 것입니다.

 

1.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충만한 때가 이르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처녀의 태에 준비된 몸을 입으시고 베들레헴에 있는 말 구유에서 태어나심으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온전히 죄 없는 삶을 사시고 삼 년 반 동안 공개적으로 사역하시고 갈보리 십자가에서 온 세상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자원해서 죽으셨으며 삼일 밤낮 후에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고 사십 일 후에 하늘로 올라가셔서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이제는 어느 때라도 다시 오실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제가 방금 말씀 드린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단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충분히 있는데도 누군가는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 큰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복음은 단순한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이해하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복음을 몰라서, 혹은 듣고도 거부해서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3. 성경은 복음을 하나님의 지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가장 큰 증거는 바로 복음이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은 어느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습니다. 만일 선한 사람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게 복음이라면 그러한 복음을 듣기 전에 평생 악한 일을 하며 살았던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게 됩니다. 그러한 게 복음이라면 이미 나쁜 일을 많이 한 사람이나 선한 일을 거의 하지 못하고 산 사람은 복음을 들어도 아무런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것이 복음이라면 이미 인생의 대부분을 사용한 사람에게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나쁜 소식일 뿐입니다.

 

4. 만일 복음이 돈이나 선행이나 어디에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 그 복음을 듣고 구원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해도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있게 될 것입니다. 만일 복음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믿는 믿음과 관련이 없다면 누군가 복음을 듣고 구원받고 싶어도 구원받을 길이 없을 수 있습니다.

 

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지혜로 구원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인간의 몸을 입고 와서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스스로 벌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할 수 없는 것, 즉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는 것을 대신 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므로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복음을 듣고 단순히 믿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6.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생각해내기에는 너무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구원을 얻는데 있어 어떤 형태로든지 간에 인간의 협력을 필요로 합니다. 어떠한 종교도 단순히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생각은 자기 의로 가득 찬 인간들의 머리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복음이 어리석은 것이며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하신 일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내지 못합니다.

 

7. 구약성경 아모스에서는 네 하나님 만날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성경은 사람의 아들이 언제 올지 우리가 알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주님을 만나야 하며 그 때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집에 다음주 월요일에 중요한 손님이 온다고 하면 여러분은 미리 손님 맞을 준비를 해 둘 것입니다. 이것은 부유한지 가난한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8. 여러분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낙태나 음란물이나 청소년범죄나 여타 다른 범죄들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다심 오심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으로 오셔서 이름을 부르시는 것이든 죽어 그분께로 가는 것이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날 준비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9.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여러분이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10. 성경에 의하면 우리는 언제든 예수님을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중에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고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일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성경공부를 마치기도 전에 주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셔서 우리가 주님을 만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주일 오전 예배가 끝나기 전에 주님께서 공중으로 오셔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실 수도 있습니다. 저는 괜히 불안감을 조성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실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는 언젠가는 죽게 되고 그러면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오게 될 날을 준비하는 것은 현명한 일입니다.

 

11. 오늘은 이 세상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이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계시록 5장에 있는 놀라운 말씀을 보겠습니다. 11절부터 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고 왕좌와 짐승들과 장로들을 둘러싼 많은 천사들의 음성을 들었는데 그들의 수는 만만이요 천천이더라. 그들이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시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창조물과 바다에 있는 것들과 그것들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이르되, 왕좌에 앉으신 분과 어린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토록 있으리로다, 하더라.( 5:11-13)

 

12.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따분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지루한 찬송가나 부르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구도 울부짖지 않습니다. 누구도 이를 갈지 않습니다. 누구도 슬퍼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지겨워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할지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이 세상의 죄를 제거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가운데 자신의 왕좌에 앉아계시며 모든 사람들은 기쁨과 즐거움과 흥분가운데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13. 성경을 보면 하늘나라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슬퍼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매우 기뻐하고 즐길 겁니다. 누구도 예수님이 아닌 다른 분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누구도 예수님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행복 가운데 있을 겁니다.

 

14. 저는 그러한 경험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매우 큰 행복을 느꼈던 예배였지만 다른 누군가는 불만으로 가득 찬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모든 참석자가 행복하고 진심으로 기쁨을 얻었던 예배에 참석해 본 적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했던 교제에 참석했던 적도 없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직장을 본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엄청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15. 우리가 읽은 구절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권능과 부와 지혜와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것들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하늘에 있는 무리들과 이 세상 사람들의 예수님에 대한 태도를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시간이 끝나면 여러분은 이러한 것들과 관련해서 예수님께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여러분이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는지 아니면 하늘나라에 있는 무리들과 어울리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16. 먼저 요한복음 19장을 보겠습니다. 하늘에 있는 무리들은 예수님에 대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을까요? 4절부터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빌라도가 다시 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그를 데리고 너희에게로 나오나니 이것은 내가 그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함을 너희가 알게 하려 함이라, 하더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가시나무로 엮은 관을 쓰고 자주색 긴 옷을 걸치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을 보라! 하니라. 그러므로 수제사장들과 직무 수행자들이 그분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하노라, 하거늘 유대인들이 그에게 응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거니와 우리 법에 따라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하리니 이는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었기 때문이니이다, 하니라.( 19:4-7)

 

17.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 아니라 죽임을 당하기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다는 이유로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기에 합당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들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이었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이 판단의 척도였습니다. 자신들의 생각과 맞지 않으면 거부해버렸습니다. 인간의 생각을 넘어서는 분이 죄 없는 삶과 하나님의 말씀과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시자 그분을 거부해 버렸던 것입니다.

 

18.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의를 기준으로 삼았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하며 그분이 죽임을 당하기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증언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질문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여기십니까? 하늘에 있는 무리들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 세상 사람들과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까?

 

19. 마태복음 12장을 보겠습니다. 하늘에 있는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은 권능, 능력, 권력을 추구합니다. 사람들은 정치적인 권능, 사회적인 권능, 경제적인 권능을 추구합니다. 이것은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동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 크고 작은 내전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 권력을 잡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권력을 위해 투쟁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다툽니다. 심지어 교회에서도 권력을 잡으려고 서로 싸우기도 합니다.

 

20. 이 세상 어디에서건 사람들은 권력을 잡으려고 투쟁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영광이 가득한 하늘나라에서는 어떨까요? 거기서는 모든 사람들이 한 마음과 한 목소리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권능과 권세와 권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거기서는 모든 사람들 예수님, 주님께서 모든 권력을 가져가십시오. 모든 것을 통치하십시오. 저희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거기서는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사실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며 불만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도 예수님으로부터 권력을 쟁취하려고 투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경배하며 왕들의 왕이시며 주들의 주이신 예수님,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해주십시오.” 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예수님께서 모든 권력과 권능을 받으신다는 사실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21. 성경은 마태복음 12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2절부터 보겠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마귀 들려 눈멀고 말 못하는 자를 그분께 데려오매 그분께서 그를 고쳐 주시니 눈멀고 말 못하는 자가 말도 하고 보게 되니라. 모든 사람들이 놀라서 이르되, 이분은 다윗의 자손이 아니시냐? 하나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듣고 이르되, 이자가 마귀들의 통치자 바알세붑을 힘입지 않고서는 마귀들을 내쫓지 못하느니라, 하거늘( 12:22-24)

 

22. 바알세붑은 더러움과 부도덕으로 가득 찬 마귀들의 왕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눈먼 자를 보게 하시고 손이 마른 자를 고쳐주시고 죽은 자를 살려주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장 사악한 마귀들의 왕인 바알세붑을 힘입어 그러한 일을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왜 그들은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그런 식으로 부른 것일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권능이 자신들의 권능을 무너뜨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권위가 자신들의 권위를 무너뜨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밉고 싫기 때문에 예수님을 무시하기 위해, 그분의 권능을 무시하기 위해 예수님이 바알세붑의 힘으로 기적을 행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23. 여러분에게 다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내가 들어가서 하나님의 권능으로 너를 통치하게 하라.”고 하실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구원받은 사람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권능을 가지고 여러분을 통치하시려고 하면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아니면 거부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있던 무리들처럼 예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 세상에 있던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권능을 무시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있는 무리와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 중 어느 쪽과 같은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24. 하늘나라에 있던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모든 부를 소유하시기에 합당한 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을 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께서 부요하셨으나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자신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25. 계시록 5장의 모습은 예수님께서 영광 가운데 자신의 왕좌에 앉아 계신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천사들과 그룹들과 스랍들이 둘러서 있고 모든 것들이 무릎을 꿇고 예수님 앞에서 엎드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때에라도 원하시는 일은 무엇이라도 하실 수 있는 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예수님의 미래의 모습만을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과거에도 이러한 영광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영광을 떠나 이 세상으로 오셔서 베들레헴의 작은 구유에서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습니다. 하늘의 모든 영광을 떠나 머리 둘 곳도 없는 이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묻힐 곳도 없어서 남의 무덤에 묻혀야만 했던 이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26. 예수님께서 왜 이런 고난을 자초하신 것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살게 하시기 위해서 이러한 일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부를 뛰어넘는 영적인 부를 주시기 위해 이러한 모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과 우리가 하는 일을 비교해 보세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고난을 당하셨는데 우리를 우리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부를 늘리기 위해 모든 힘을 쏟고 있습니다.

 

27. 이 세상에서는 자신의 영광과 부를 위해 수고합니다. 사람들은 모든 영광과 부와 재물이 자신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부가 예수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하늘나라는 온갖 보석과 황금 길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러한 것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바라보며 모든 부와 재물이 그분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가 아무리 엄청난 곳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늘나라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그곳에 있는 보석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든 부와 재물이 예수님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28. 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받게 되는 상급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왕관과 보석을 상급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신실하게 주님을 섬겼던 사람들은 왕관과 보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왕관을 받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왕관을 다시 주님께 던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왕관을 던지면서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주님께서 모든 것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고 고 백합니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 4:11)

 

29. 고린도전서 1장을 보겠습니다. 하늘에 있는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지혜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고 고백했습니다. 18절부터 보겠습니다. 십자가를 선포함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고전 1:18a) 멸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이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그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조롱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다음 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구원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권능이니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를 무너뜨리고 분별 있는 자들의 명철을 쓸모없게 만들리라, 하였으니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셨도다.(고전 1:18b-21)

 

30. 과거에 성경을 무시하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자들은 지금 대부분 사라져버렸습니다. 지금 성경을 무시하고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자들도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언젠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혜를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을 꿇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과 그분을 믿는 사람들이 어리석게 보일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도 어리석게 보일 겁니다.

 

31. 그러나 마지막 숨을 내쉬고 영원에 들어가게 되면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복음을 단순하게 만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는 방법은 매우 쉽습니다. 거듭나는 방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하늘나라에 가는 방법은 매우 간단합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려 복음을 그렇게 쉽게 만들어 놓으신 하나님의 지혜를 찬양할 것입니다. 저의 죄가 제거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지혜로 인한 것입니다.

 

32. 지금 이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지혜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의 방법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는 방법을 모르고 있을 때 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믿기만 하면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해 주시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에 나오는 하늘에 있는 무리들이 주님께서 모든 지혜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33. 하늘에 있는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힘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시 고린도후서를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13장을 보겠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그분께서 약하심을 통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히려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살아 계시며 우리도 그분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후 13:4)

 

34. 일반적인 영화에서는 예수님이 곱고 예쁘장한 여자 같은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은 30년간 목수로 사셨습니다. 목수는 거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30년간 거친 일을 하시면 강한 체력을 갖게 되셨을 겁니다. 예수님은 남자다운 분이셨을 겁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장사꾼들을 다 몰아내실 정도로 강한 남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쫓아내실 정도 강한 남자였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연약한 여자 같은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배반한 유다가 군인들을 데리고 왔을 때에도 예수님은 당당히 나아가 그들을 맞으셨습니다.

 

35.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원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연약한 사람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자원해서 연약한 사람이 되어 온 세상의 죗값을 치르려 죽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인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자원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연약하게 되셨습니다.

 

36. 예수님은 스스로 연약하게 되심으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지만 자신의 힘으로 부활하셨고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다시 힘과 능력과 권능을 가지고 이 세상으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 셋째 하늘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오직 이 사람,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 만이 자신의 힘으로 셋째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다시 자신의 힘으로 셋째 하늘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오실 것입니다.

 

37.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그저 힘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분이었을지는 몰라도 힘이 없는 인간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도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치 예수님께서 아무런 능력도 힘도 없는 분인 것처럼 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무리들은 예수님께 모든 힘이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힘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만일 우리도 그러한 고백을 한다면 우리의 인생을 모든 능력과 힘을 소유하신 예수님께 내어 드려야 합니다.

 

38.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왜 전쟁을 막지 못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무리들은 모든 힘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 역사의 종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끝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능력과 힘이 있으신 분이시며 주님께서 모든 능력과 힘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39. 요한복음 8장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마귀 들리지 아니하였노라. 오히려 내가 내 아버지를 공경하거늘 너희가 나를 모욕하는도다.( 8:49)

 

40.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무리들은 예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려드렸습니다. 주님께서 존귀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태도로 대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대하는 것이 예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는 것입니다. 하늘에서는 누구도 예수님을 모욕하지 않습니다. 누구도 예수님과 관련된 욕을 하지도 않고 농담을 하지도 않습니다. 하늘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예수님께 존귀를 돌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님의 영광을 봤기 때문입니다.

 

41.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모욕하는 것을 듣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지막 숨을 쉬고 나서 눈을 뜨게 될 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모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높이며 존귀하게 대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을 합당하게 대할 것입니다.

 

42. 계속해서 50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영광을 구하고 심판하는 이가 계시느니라.(50)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스스로 구하실 수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원하기만 하면 수 많은 천사들을 불러서 자신을 모독하던 사람들을 벌 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모독 하던 사람들을 벌 주시기 위해 천사들을 부르실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사람들을 벌 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모든 원수들을 단숨에 멸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43.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빛과 어둠이 무엇이 다른지 보여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와 불의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어떻게 다른지 보여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누가 하늘나라에 가게 되고 누가 지옥에 가게 되는지 보여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44. 예수님께서는 강제로 사람들이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 영광을 돌릴지 말지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 경배를 드릴지 말지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높일지 말지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릴지 말지는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이 억지로 그렇게 하도록 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45. 예수님은 무례한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강제로 하도록 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예수님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존귀를 돌릴 것입니다.

 

46. 하늘에 있는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찬송(blessing)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고 고백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리는 모든 자는 저주 받았느니라, 하였느니라.( 3:13)

 

47. 누군가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거든 십자가에 달린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는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죄 없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단 한번도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본 적이 없고 단 한번도 잘못된 행위를 한 적이 없고 단 한번도 잘못된 말을 한 적이 없고 단 한번도 잘못된 생각을 하거나 마음을 품은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번도 잘못을 범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을 쓰시고 손과 발에 못이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피를 흘리시면서 온갖 조롱과 모욕과 침 뱉음과 비웃음을 당하고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예수님에 대한 생각한 것이고 예수님을 대한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세상은 예수님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48. 하늘에 있는 무리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찬송을 예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천사들과 스랍들과 그룹들은 예수님께서 얼마나 복된 분이신지 알고 있기에 그분께 찬송(blessing)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49. 우리가 하늘나라에 빨리 가고자 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 있을 겁니다.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합당하지 않게 대하는 것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50. 우리는 이번 성경 공부를 통해 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살펴봤습니다. 또 하늘에 있는 무리들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대하는지도 봤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합당하게 대하기 바랍니다. 하늘에 있는 무리들처럼 예수님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51.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권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라고 믿습니다. 만일 여러분 중에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분이 있다면 이토록 놀랍고 아름답고 위대한 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모르는 여러분이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과 만나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교제를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만남의 날이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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