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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예수님의 죽음부터 부활까지의 활동들

제임스 낙스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설교 시리즈인 The Person of Our Lord Jesus Christ을 의역한 것입니다.

 

1.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음부터 부활까지 하신 활동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저는 이 주제를 다뤄달라는 요청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부터 부활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많은 성경 구절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2. 먼저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가장 위에는 하나님의 왕좌가 있는 셋째 하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는 태양과 달과 별들이 있는 둘째 하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는 새들이 날아다니는 첫째 하늘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는 땅(지구)이 있습니다. 땅 아래는 지옥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중심에는 낙원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를 간단하게 묘사한 것입니다.

 

3. 이제 요한복음 19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식초를 받으신 뒤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신 뒤 숨을 거두시니라.( 19:30)

 

4. 처음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1:26-27)

 

5.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키나 몸무게나 머리 색이나 피부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단수)께서 우리(복수)의 형상으로 우리(복수)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복수로 표현하셨습니다. 성경은 요한일서 5장에서 이것에 대해 명백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 5:7)

 

6. 하나님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 분입니다. 세 분 즉,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께서 한 분 하나님을 이루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을 때 영과 혼과 몸으로 만드셨습니다. 평강의 바로 그 하나님께서 너희를 온전하게 거룩히 구별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보존해 주시기를 구하노라.(살전 5:23)

 

7.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고 이 세상으로 오셨을 때에 대해 성경은 그분의 머리 색이나 피부나 키나 몸무게에 대해서는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핵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셨을 때 예수님은 영과 혼과 몸을 가진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과 같은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영과 혼과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못박히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영으로만 오셨다는 그분은 인간이 되신 게 아니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만일 혼으로만 오셨다면 그분은 인간이 되신 게 아니었을 겁니다. 그분은 영이나 혼이나 혹은 영혼이 없는 몸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인간이 되신 게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인간의 형상(image, 이것은 외적인(outward) 면을 의미하는 것임)과 모양(likeness, 이것은 내적인(inward) 면을 의미하는 것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과 혼과 몸으로 오심으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모두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9. 이제 성경에서 세 군데를 찾아보겠습니다. 이사야서 53장과 로마서 6장과 베드로전서 2장입니다. 먼저 이사야서 53장을 보겠습니다. 참으로 그는 우리의 고통을 짊어지고 우리의 슬픔을 담당하였거늘 우리는 그가 매를 맞고 하나님께 맞아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하였노라.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and the LORD hath laid on him the iniquity of us all).( 53:4-6)

 

10.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우리의 죄가 그분의 위(on)에 놓여졌다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로마서 6장도 보겠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 6:23) 만일 우리의 죄가 예수님의 위에 놓여졌다면 그분은 그 죄의 삯으로 인해 죽게 됩니다.

 

11. 그렇다면 우리의 죄가 그분의 위에 놓여졌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베드로전서 2장도 보겠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in his own body)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벧전 2:24) 우리의 죄가 그분의 위에 놓여졌다는 말씀은 그분의 영이나 혼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성경은 베드로전서 2:24에서 의미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자신의 몸으로(in his body) 담당하셨습니다.

 

12. 여러분과 저의 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 부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의 육체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겁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몸에 여러분과 저의 죄가 부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몸 안에 우리의 죄가 담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 안에 우리의 죄를 담고 그 결과 돌아가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13. 마가복음 15장을 보겠습니다. 그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이제 저녁이 되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요셉이 와서 담대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님의 몸을 간절히 구하니라. 그는 존경받는 공회원이요, 역시 하나님의 왕국을 기다리는 자더라.( 15:42-43)

 

14. 성령님께서 얼마나 정확하게 표현하시는 보시시오. 성경은 요셉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간절히 구했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몸을 구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빌라도는 그분께서 벌써 죽으셨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그분께서 죽은 지 오래되었느냐고 그에게 묻고 백부장에게 그것을 알아본 뒤에 몸을 요셉에게 주매 그가 고운 아마포를 사서 그분을 내려다가 아마포로 싸고 바위 속에 판 돌무덤 속에 그분을 두고 돌을 굴려 돌무덤 입구에 놓으니라.(44-46)

 

15. 빌라도는 요셉에게 예수님이 아닌 예수님의 몸을 주었습니다. 이 지상에 있는 무덤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몸이 뉘여 있었습니다. 성경이 매우 주의하여 세심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십시오. 우리의 죄가 예수님에게(on) 놓여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몸은 죽었고 요셉은 예수님의 몸을 빌라도에게 요구하여 그 죽은 몸을 돌무덤 안에 눕혔습니다. 돌무덤 안에 놓인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이었습니다.

 

16. 누가복음 23장과 전도서 3장을 보겠습니다. 먼저 누가복음 23장을 보겠습니다. 그 때는 여섯 시쯤이며 어둠이 아홉 시까지 온 땅을 덮었더라. 또 해가 어두워지고 성전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니라.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치시고는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into thy hands I commend my spirit),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뒤에 숨을 거두시니라.( 23:44-46) 전도서 3장도 보겠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누가 알리요?( 3:21)

 

17. 사람이 죽은 후에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영을 스스로 아버지의 손에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셨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되시기 전에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을 때도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전도서 8장을 보겠습니다. 영을 다스리는 권능이 있어 영을 머무르게 할 사람이 없고 죽는 날에 권능을 가진 사람도 없으며 그 전쟁에서는 면제받는 것도 없나니 사악함도 자기에게 넘겨진 자들을 건져 내지 못하리로다.( 8:8)

 

18. 저는 내 영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into thy hands I commend my spirit).”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스스로 영을 머무르게 할 수도 없습니다. 죽음이 찾아오면 제 영을 그대로 내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영을 다스리거나 머무르게 할 권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동시에 육신을 입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자신의 권능으로 자신의 영을 다스려서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나 로마인들이나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인 게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죽인 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영을 내어놓으셨습니다.

 

19.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죄는 예수님의 몸 위에(upon) 놓였습니다. 그래서 죄는 예수님 위에(on) 있었습니다. 죄는 예수님 안에(in) 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영이 죄로 인해 더러워졌다면 우리는 모두 멸망했을 겁니다. 히브리서 10장이 말씀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물로 드리셨습니다.

 

20. 히브리서 9장을 보겠습니다. 그런즉 진실로 첫 언약에도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규례들과 세상에 속한 성소가 있었느니라.( 9:1) 히브리서 9장에서는 성막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6절을 보겠습니다. 이제 주께서 이것들을 이와 같이 제정하시매 제사장들이 항상 첫째 성막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수행하였거니와 둘째 성막에는 대제사장이 홀로 해마다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잘못으로 인해 자기가 드리는 피 없이는 들어가지 아니하였으니 이로써 성령님께서 표적으로 보여 주신 것은 첫째 성막이 아직 서 있는 동안에는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아직 드러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라. 이 성막은 현재 곧 이때까지의 모형이므로 그 안에서 예물과 희생물을 드렸어도 그것들이 양심에 관한 한 섬긴 자를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며 이 성막은 단지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육신에 속한 규례들로만 유지되어 개혁의 때까지 그들에게 부과되었느니라.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다가올 좋은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오시되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성막 곧 이 건물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더 완전한 성막을 통해 오셔서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6-12) 11절에서 말하는 이 건물은 예수님의 몸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어떤 실제적인 건물을 만드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21.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부활하신 날 아침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라가셔서 피를 아버지께 바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히브리서 9장에서 말하는 성전은 지상에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혼은 십자가 위에서 내려와 피를 가지고 성전으로 들어가셔서 휘장을 찢으시고 마땅히 피를 드려야 할 곳에 피를 드리시고 단 한 번에 영원히 희생제사를 끝내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제사장이 더 이상 들어갈 필요가 없고 더 이상 다른 제사도 드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모든 제사를 끝내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상에서 제사를 모두 끝내시고 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실 수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22. , 지금까지의 얘기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무덤에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영은 아버지께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혼은 어디에 계셨을까요? 시편 16편과 사도행전 2장과 시편 139편을 보겠습니다. 먼저 시편 16편을 보겠습니다.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16:10)

 

23. 썩음은 예수님의 몸과 관련이 있는 말이고 지옥은 예수님의 혼과 관련이 있는 말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다른 모든 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은 무덤에 들어가서 썩고 혼은 지옥으로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편 2:16이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라는 것은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분명해 집니다.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들을 들으라. 너희 자신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을 통하여 기적들과 이적들과 표적들을 너희 한가운데서 행하사 그분을 너희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정받은 사람으로 삼으셨느니라. 그분께서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미리 아심을 통하여 넘겨지매 너희가 그분을 붙잡아 사악한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일으키셨으니 이는 사망이 그분을 붙들 수 없었기 때문이라. 다윗이 그분에 관하여 말하되, 내가 항상 내 얼굴 앞에 계신 주를 미리 보았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더욱이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그런즉 그는 대언자이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자기에게 서약으로 맹세하사 육체에 따라 자기 허리의 열매에서 그리스도를 일으켜서 자기 왕좌에 앉히실 것을 알았고 또 이것을 미리 보았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혼이 지옥에 남겨지지 아니하였고 그의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느니라.( 2:22-27, 30-31)

 

24. 성경이 기록된 그대로를 의미한다면 예수님의 영이 아버지께로 떠나가셨을 때 예수님의 혼은 지옥으로 가셨습니다. 시편 139편도 보겠습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리이까? 혹은 내가 주의 앞을 떠나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주께서 거기 계시오며 내가 지옥에 내 침상을 펼지라도, 보소서, 주께서 거기 계시나이다.( 139:7-8)

 

25. 여러분은 이 우주 어디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떠나 숨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의 죗값을 치르셨을 뿐만 아니라 저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저의 죗값을 치르셨을 뿐만 아니라 저의 죄를 지옥불로 완전히 제거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삼일 밤낮으로 지하세계에 계실 때 계속 지옥에만 머무셨던 것은 아닙니다. 죄를 지옥불로 제거하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26.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셔서 무슨 일을 하셨을까요? 지옥에 간 사람은 누구도 그곳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어떤 죄인도 지옥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지셨다는 게 왜 중요한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를 지셨기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몸 안에 있는 동안에는 죄인으로서 벌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혼이 몸을 떠났을 때, 예수님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승리한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27. 만일 죄가 예수님의 혼 안에 있었다면 예수님께서 지옥에 가셨을 때 그곳으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죄는 예수님의 몸 안에 있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때 자신의 몸을 희생물로 하나님께 드린 것이며 자신의 피로 죗값을 치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과 피가 우리를 대속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 자신의 혼이 우리를 대속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주의 만찬을 하며 빵과 잔을 나눌 때 그것은 우리의 죗값을 치르신 예수님을 상징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28.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과 피로 죗값을 치르셨고 혼으로 지옥에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혼이 지옥에 가셨을 때 마귀는 자신이 예수님을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계시록 1장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분을 볼 때에 죽은 자같이 그분의 발 앞에 쓰러지니 그분께서 오른손을 내 위에 얹으시며 내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 1:17-18)

 

29. 예수님께서는 혼으로 지옥에 가셔서 죄를 그곳에 버리시고 지옥의 열쇠로 지옥의 문을 열고 나오셨습니다. 히브리서 2장도 보겠습니다. 그런즉 자녀들은 살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므로 그분도 마찬가지로 같은 것의 일부를 취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죽음의 권능을 가진 자 곧 마귀를 멸하시고 또 죽음을 두려워하여 평생토록 속박에 얽매인 자들을 건져 내려 하심이라.( 2:14-15)

 

30. 저는 죄인이기 때문에 죽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죽은 후에 지옥에 가게 됩니다. 저는 죽음의 속박에 매여 있기 때문에 결코 지옥으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저의 죗값을 치러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용서받았을 뿐만 아니라 마귀의 속박과 감옥으로 인해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되었습니다.

 

31. 예수님께서는 지옥에 가서 죄를 모두 그곳에서 처리하시고 열쇠로 문을 열고 지옥에서 나오셨습니다. 그 후에 어디로 가셨을까요? 사람들은 요나가 지옥에 갔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그렇다고 말씀하시면 그렇다고 믿어야 합니다. 요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요나는 죽고 묻히고(고래 뱃속에) 부활했습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16:18) 지옥에는 문이 있습니다.

 

32. 요나서 2장도 보겠습니다. 이르되, 내가 내 고난으로 인하여 주께 부르짖었더니 그분께서 내 말을 들으셨고 내가 지옥의 배 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목소리를 들으셨나이다.( 2:2) 요나는 고래뱃속에서 울부짖는 게 아닙니다. 그의 몸은 고래뱃속에 있지는 그의 혼은 지옥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6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산들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으며 땅이 자기 빗장들과 함께 영원히 내 곁에 있었사오나, 오 주 내 하나님이여, 주께서 내 생명을 썩음에서 끌어올리셨나이다.

 

33. 요나는 자신이 산들의 밑바닥에 있었다고 증언합니다. 자신이 땅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옥에 있었습니다. 지옥에는 문들만 있는 게 아니라 빗장들도 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감옥에 있던 죄수였습니다. 그가 있던 감옥은 빗장으로 잠겨있었습니다.

 

34.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아십니까? 지옥에 가셔서 죄를 모두 처리하신 후에 열쇠로 문을 열고 나오셨습니다.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천사는 감옥을 모두 통과해서 들어왔지만 베드로를 꺼내주기 위해서는 감옥의 문을 열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지옥의 문을 여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지옥에 들어가신 후에 지옥의 문이 잠겼지만 예수님은 열쇠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지옥으로부터 나오실 수 있었습니다.

 

35. 예수님은 지옥에 그리 오래 계시지 않았을 겁니다. 예수님은 오후 3시경에 돌아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의 하루는 오후 6시에 끝이 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오후 3시에 돌아가셨고 오후 6시에 하루가 끝난다고 보면 예수님께서 지옥에 계신 시간은 3시간이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6. 누가복음 23장을 보겠습니다. 매달린 범죄자 중의 하나는 그분을 욕하며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이거든 네 자신과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다른 하나는 되받아서 그를 꾸짖으며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합당한 보응을 받으니 참으로 공정하게 정죄를 받거니와 이 사람은 아무 잘못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고 예수님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주의 왕국으로 들어오실 때에 나를 기억하옵소서, 하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23:39-43)

 

37. 어떤 변개된 성경들에는 쉼표가 오늘뒤에 있습니다. 쉼표가 어디에 있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만일 쉼표가 오늘뒤에 있게 된다면 강도는 언제 낙원으로 가게 될 지 알 수 없습니다. “연옥에서 수십 만년을 지내다가 가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쉼표는 오늘앞에 있습니다. 따라서 강도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날, 바로 그날 낙원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38.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처리하시러 지옥으로 가셨다가 채 3시간이 되지 않아서 그곳에서 문을 열고 나오셔서 낙원으로 가셨습니다. 놀라운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달렸던 강도들은 반드시 그날 죽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음 날이 명절의 큰 날이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그들을 십자가 위에 달아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군인들은 그 강도의 다리를 꺾어 확실히 죽였습니다. 결국 군인들의 그러한 행동은 예수님의 약속을 성취시키는 일을 한 것입니다. 만일 그 강도들을 그대로 두었으면 12시간이상 살아있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바로 그날(오늘)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은 성취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회개한 강도는 반드시 그날 죽어야만 했습니다.

 

39. 하나님께서는 전 우주를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 하나라도 깨지지 않을 것입니다. 군인들은 강도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미안하지만 자네들의 다리를 꺾어야겠네.” “다리를 꺾다니요. 보통 12시간 이상 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럽게 죽게 하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지휘관이 자네들의 다리를 꺾으라고 명령했어. 지옥에서 보세.” 그러자 한 강도가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군인 나으리, 저 친구는 지옥에서 보시겠지만 저는 보지 못할 겁니다.” 강도들의 다리가 꺽인 후에 회개한 강도의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갔고 몸은 십자가 위에 그대로 매달려 있었지만 그의 혼은 낙원으로 갔습니다.

 

40. 예수님께서는 활짝 웃으시면서 회개한 그 강도를 맞아 주셨을 겁니다. 침례를 받아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기쁘지 않습니까? 변화된 삶을 살아야지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기쁘지 않습니까? 어떤 특별한 일을 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기쁘지 않습니까? 단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지 않습니까? 회개한 강도는 낙원에서 기쁨으로 주님을 만났을 겁니다.

 

41. 십자가 위에서 회개한 강도가 구원받은 이야기는 모든 거짓 종교의 입을 다물게 만듭니다. 모든 거짓 종교들은 이 강도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었는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 강도는 구원받기 위해 어떤 행위도 한 것이 없습니다. 그는 그저 주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요청했을 뿐입니다. 구원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주님께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는 구원해 주실 겁니다. 할렐루야!

 

42.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음부터 부활까지 하신 일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성경은 놀라운 책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겠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지내더라. 또 나사로라 하는 어떤 거지가 있었는데 그는 헌데 투성이로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하더라. 또한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더라.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 의해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겨지고 그 부자도 죽어 묻히게 되었더라.( 16:19-22)

 

43.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가난하게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도 이 세상에서의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부자는 죄인이었지만 부유하게 살았고 부유하게 죽었습니다. 나사로는 구원받은 사람이었지만 가난하게 살았고 가난하게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난한 사람이든 부유한 사람이든 우리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44.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내게 긍휼을 베푸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가 그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도록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나이다, 하거늘(23-24)

 

45. 이 구절들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부자는 선택 받은 민족(유대인)이었지만 지옥에 갔습니다. 선택 받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바른 종교에 속해 있어서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아들아, 너는 네 생전에 너의 좋은 것들을 받았고 그와 같이 나사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러나 이제 그는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느니라.(25)

 

46. 부자는 아브라함의 아들(자손)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이었지만 구원받지는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목사건 선교사가 복음전도자건 상관없습니다. 평생 교회를 다녔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그러한 모든 것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무엇을 했건 어디에 속했건 상관없이 지옥에 가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참된 위로를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받는 위로만이 참된 위로입니다.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이 모든 것 외에도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하는 자들이 갈 수 없고 거기서 오려 하는 자들도 우리에게 건너올 수 없느니라, 하니(26)

 

47. 지구 안에는 지하 세계가 있습니다. 그 지하 세계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습니다. 큰 구렁텅이 바깥 쪽으로는 불이 있는 지옥이 있고 그 안쪽에는 아름다운 낙원이 있습니다. 지옥을 지나 구렁텅이를 지나면 낙원이 있는 것입니다.

 

48.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부자는 지옥에 있고 나사로는 낙원에 있습니다. 큰 구렁텅이가 그들 사이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에게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쇠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지옥을 통과해서 낙원으로 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옥과 낙원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을 보겠습니다. 이제 저녁이 되매 그분의 제자들이 바다로 내려가서 배에 올라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제 날이 어두웠고 예수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오지 아니하셨더라. 큰 바람이 불어 바다가 출렁이더라. 이에 그들이 노를 저어 이십오 내지 삼십 스타디온쯤 가다가 예수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라.(6:16-20)

 

49. 낙원과 지옥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큰 구렁텅이를 건너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건너가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옥으로 가셔서 죄를 모두 그곳에 던지시고 문을 열고 지옥을 나오셔서 바다 위를 걸으시듯 구렁텅이 위를 지나서 낙원으로 가셨습니다. 그 동안 구원받고 낙원에서 안식하던 사람들은 모두 주님과 큰 기쁨가운데 연합했을 겁니다.

 

50. 베드로전서 3장을 보겠습니다. 그래함 스크로기라는 훌륭한 성경 교사는 우리가 지금 찾아보려고 하는 본문이 성경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이 부분에서 대부분의 성경 교사들이 의견 충돌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이 영들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방주 안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가 몇 안 되니 곧 여덟 혼이라.(벧전 3:18-20)

 

51. 지옥에는 감옥이 있고 문들이 있고 빗장들이 있고 자물쇠들이 있습니다. 감옥 안에는 영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혼이 아니라 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여 거인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에 있던 홍수로 이들을 쓸어버리셨습니다. 성경 어디에서도 이 감옥에 있는 영들이 혼이나 육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지는 않습니다. 이 영들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은 지하 세계에 있는 감옥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셔서 선포하셨습니다. 무엇을 선포하셨을까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노아가 전한 것을 선포하셨을 겁니다. 그들의 불경건과 죄 가운데서 죽음과 하나님의 심판을 지적했을 겁니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 지하세계에 계시는 동안 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선포하셨다는 사실은 확실합니다.

 

52. 예수님께서는 삼일 밤낮을 지하세계에 계시면서 구원받은 혼들과 연합을 이루셨습니다. 이제는 그곳에서 나오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에스겔서 28장과 마태복음 27장과 요한복음 20장을 보겠습니다. 먼저 에스겔서 28장을 보겠습니다. 너는 기름 부음 받은 덮는 그룹이라. 내가 너를 그렇게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거룩한 산 위에 있었고 불타는 돌들 한가운데서 오르내리며 다녔도다. 네가 창조된 날부터 네가 네 길들에서 완전하였는데 마침내 네 안에서 불법이 발견되었도다.( 28:14-15)

 

53. 마귀를 비롯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러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욥기 1-2장에 나온 것처럼 이 세상을 두루 다니다가 하나님께서 계신 곳까지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옥에까지 갔다가 올 수 있습니다. 지하 세계에는 길이 있어서 이러한 영적인 존재들이 그 길로 다녔을 겁니다. 마태복음 27장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숨을 거두시니라. 이에,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들이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니 잠든 성도들의 많은 몸이 일어나 그분의 부활 뒤에 무덤 밖으로 나와서 거룩한 도시로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27:50-53)

 

54. 예수님의 죽음 후에 많은 구약성도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의 몸은 무덤 속에 있었고 혼은 낙원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그들의 몸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 그들의 혼이 낙원으로부터 돌아와서 몸 속으로 들어가서 다시 몸과 연합했습니다. 혼이 돌아와서 죽은 몸과 연합하는 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첫열매들이라고 부릅니다.

 

55. 요한복음 20장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마리아야, 하시거늘 그녀가 돌이켜 그분께, 랍보니여, 하니 이것은, 선생님이여, 라는 말이라.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내게 손을 대지 말라. 내가 아직 내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다만 내 형제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20: 16-17)

 

56. 예수님의 혼이 지하 세계에서 나오셔서 돌무덤 속에 있던 자신의 몸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분의 영이 다시 돌아오셔서 몸 속으로 들어가셨으며 의인들의 영들도 다시 돌아와서 부활한 자신들의 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부활한 구약성도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했을 것입니다. 그 부활한 구약성도 중 하나가 헛된 논쟁을 일삼는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나는 예레미야다. 내가 미리 경고하지 않았더냐?” 그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가다가 모퉁이에서 또 다른 부활한 구약성도를 만납니다. “나는 이사야다. 내가 너희에게 미리 얘기하지 않았느냐?” 성경은 부활한 구약성도들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기록된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57. 그리고 나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사도행전 1장과 에베소서 4장을 보겠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1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함께 왔을 때에 그분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주께서 이때에 그 왕국을 이스라엘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시나이까? 하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 때나 그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것들을 말씀하신 뒤에 그분께서 그들이 보는 동안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분을 받아들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더라.( 1:6-9)

 

58. 영과 혼이 몸 속으로 다시 들어가면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예수님의 영과 혼과 몸이 모두 셋째 하늘에 계십니다. 이제 에베소서 4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그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로 잡힌 자들을 포로로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도다, 하시느니라. (이제 그분께서 올라가셨은즉 그것은 곧 그분께서 또한 먼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신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려가신 그분께서 또한 모든 하늘들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신 바로 그분이시니 이것은 그분께서 모든 것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4:8-10)

 

59. 예수님께서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신 이유는 지옥에 가서 죄를 처리하고 낙원에서 가서 구원받은 혼들을 데려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낙원에 있던 혼들은 비록 안전하게 거하면서 안식하고 있었지만 그곳으로부터 나올 수는 없었습니다. 구약 성경은 그들을 소망 중에 갇힌 포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옥에서 고통 중에 있거나 구원받지 못한 채 버린진 것은 아니지만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죽으면 몸을 떠나 주님과 있게 되지만 구약성도들은 아브라함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60.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그들도 부활했습니다. 누가 다시 땅 속에 있던 낙원으로 돌아가고 싶어하겠습니까? 다시 이 천년 간 그곳에 있으라고 하면 누가 더 있고 싶어하겠습니까? 이것은 제 추측이기는 하지만 부활한 구약성도들은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까지 아마 주님의 부활을 선포했을 겁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복음이 모든 창조물들에게 이미 전파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믿는 것입니다.

 

61. 구약성도들이 언제 하늘로 올라갔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요한복음 20장에서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갔다 내려오셨을 때 구약성도들이 함께 올라갔다고 보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함께 하늘로 올라갔다고 보는 것입니다. 두 경우 모두 주님께서는 무덤과 낙원과 이 세상(지구)에 속박되어 포로로 사로 잡혀있던 그들을 자유롭게 해 주신 것입니다.

 

62. 이것이 왜 중요한 것일까요? 저는 영과 혼과 몸으로 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저의 몸은 땅 속에 묻힐 것이고 저의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저의 혼은 몸과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들리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들의 영이 돌아와 다시 영과 혼과 몸을 가진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게 될 것이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63. 사도행전 1장을 보세요. 그분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똑바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보라, 흰옷 입은 두 남자가 그들 곁에 서며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1:10-11)

 

64. 이제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한 가지만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우리는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저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도 믿으십니까? 저는 그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사람들과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변화하여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만을 기다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65. 8절을 보세요. 오직 성령님께서 너희에게 임하신 뒤에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땅의 맨 끝 지역까지 이르러 나를 위한 증인이 되리라 우리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의 맨 끝 지역에서 주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해야 합니다. 이제 죄와 죽음과 마귀는 더 이상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로 가기로 정해진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건 간에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주님을 만날 좋은 날만이 남았습니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 열심히 주님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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