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03.28 19:16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4(4월 1일-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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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4

4월 1일-7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4월 1일

멜기세덱( 14)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천년왕국에서 하나님의 칭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의 소유주로서 등장하시는 것은 천년왕국 때 입니다. 이들 용어들은 의미가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아직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여전히 많은 민족들의 조상이며 유대인들만의 조상이 아닌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제 의견에 동의할 분이 별로 없으시겠지만 제 생각에는 이 장면에서 그리스도의 예표는 멜기세덱이 아닌 아브라함인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1. 민족들을 정복하였는데, 그리스도께서도 그리하실 것입니다(15).

2. 자신의 친족들을 구출하였는데, 그리스도께서도 그리하실 것입니다(16).

3. 평화를 수립하였는데, 그리스도께서도 그리하실 것입니다(18).

4. 살아남은 왕들을 자신 앞으로 데려 와서 그들이 지켜야 할 일을 정해 주셨는데, 그리스도께서도 그리하실 것입니다(17, 21).

5. 민족들로부터 취한 선물들을 자기 종들에게 주었는데, 그리스도께서도 그리하실 것입니다(23-24, 25).

6. 제사장과 함께 왕국음식을 먹었는데,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의 제사장들과 함께 그리하실 것입니다(18, 14:25, 1:5).

 

이와 같은 문맥에서 할례 받지 않은 아브라함을 통해 계시된 천년왕국 때의 칭호와 진리들은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만의 주님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주님이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멜기세덱이란 이름대로 의가 먼저 오고 나서 화평이 옵니다.

 

 

4월 2일

창세기 14장에 대한 묵상

 

13절에서 우리는 성경에서 처음으로 히브리라는 단어가 쓰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왕의 골짜기(17) 이곳은 압살롬이 자신의 기둥을 세운 곳입니다(삼하 18:18). 이 읾은 이 구절이 다윗 시대로부터만 유래한 것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것은 가나안의 왕과 연관된 매우 오래된 이름이었을지 모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20) “bless” 라는 말이 사람에 대해 쓰이면 번영을 이루도록 해 주는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이 단어는 찬양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bless는 사람에는 복을 준다, 하나님께는 찬송 한다로 번역되었습니다.-역주) 아마 이 의미들 속에는 기쁨을 준다는 사상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때 행복해지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마음을 다해 찬양하고, 존중하고 친근감을 보일 때 행복해 집니다( 8:31).

18-20절에 나오는 제사장의 축복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의 역사에 느닷없이 등장한 이 인물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그는 한 분 참 하나님께 순결한 충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던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 시대에 살았던 셈과 연관된 인물로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다 떠나 버리던 시절 주님의 임재하심의 실재를 사람들에게 증언하였던 사람이 그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호칭 또한 주목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 호칭은 우리 눈 앞에 놓여있는 구절에서는 네 번이나 언급되고 있기는 하나, 구약성경 속에서는 매우 드물게 나옵니다. 이 호칭이 담고 있는 의미는 모든 지역 신들 위에 계신 지고의 존재로서 하나님입니다. 신약성경에 이에 대칭되는 칭호가 나오는데 그것은 “the highest(가장 높으신 이, 1:32, 35)”“the most high God(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16:17)” 입니다. 멜기세덱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제사장직분의 핵심사항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5:1).

 

 

4월 3일

믿는 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들

 

롯과 아브라함 사이에서 우리는 얼마나 큰 대조를 목격하는지요! 베드로후서 2:7-8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 롯은 하나님에 대해 전혀 믿음이 없는 자로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분명, 베드로가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제공하신 내적인 의이며 인간이 목격할 수 있는 외적인 의가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롯이 의로운 자라고 선언하고 계시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의 이익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면서(믿음이 아닌) 보는 것으로 살고 있습니다. “세상적이야말로 롯의 두드러진 성품인 것입니다. 그는 오직 소돔을 향해 펼쳐진 물이 잘 대어진 평야에 대해서만 생각했습니다. 그는 완전히 헌신되지 않은 하나님의 자녀의 예표로 세상과 하늘나라 둘 다를 다 최상으로 누리고자 애쓰는 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처럼 롯은 자신의 세상적 이익을 최대한 차지하고자 애쓰는 동시에 하나님과도 잘 지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이처럼 두 마음을 품고 두 길을 가게 되면 한쪽은 반드시 희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롯에게 그대로 일이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후속 사건들을 보시면 그가 어떻게 간증과 도덕과 가족과 아내를 잃게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브라함의 경우와 비교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넓은 마음을 소유한 자로, 하나님의 약속을 단순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걷는 자로서, 용기 있게 경배의 제단에 자신의 믿음을 증언하는 자로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헌신된 신자의 예표이며 당장은 자신에게 해가 될 것 같을지라도 모든 일에 있어 하나님을 첫 번째로 놓는 사람입니다.

롯과 아브라함에 관한 기록들은 눈 앞에 두고도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아닌 롯의 파괴적 코스를 계속해서 택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들간의 이와 같은 차이는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너무도 충격적이고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그리스도의 교회들간에는 있어서는 안 됩니다.

 

 

4월 4일

아브라함과 두 왕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살렘 왕과 소돔 왕에 대한 아브라함의 태도를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살렘 왕에 대해서는 아브라함은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반면 소돔 왕에 대해서는 그와 별개로 독립해 있음을 확실히 합니다.

살렘 왕에 대해서는 자신이 더 열등하다는 것을 수용합니다. 반면 소돔 왕에 대해서는 그와 동등하다는 태도를 견지합니다.

아브라함은 살렘 왕은 겸손히 대하는 반면 소돔 왕에게는 위엄을 갖추고 대합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친절과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14:21 참으로 놀라운 제안이 아닌가요? 이것은 사탄이 사람들의 혼과 맞바꾸자며 예수님께 왕국을 제안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얻을 기회를 갖기 위해 좋은 교회를 떠나기도 하고 사역을 포기하기도 하며 성경적 원칙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이 라오디게아 시대는 부가 곧 영성으로 간주되고 물질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혼동되는 시대이기에 사람들은 점점 더 순전히 물질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선택하여 이득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딤전 6:5)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가운데 주님께서 부를 베푸시면 우리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부를 얻고자 주님을 검기는 그 길을 떠나는 것은 스스로 속는 일입니다.

 

 

4월 5일

훈련, 위기를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음( 14:14)

 

젊음의 열정과 자신감이 노년의 지혜와 절제와 충돌할 때 그 갈등은 매우 크다고 하겠습니다.

열정으로 가득한 청년은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정복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갈망으로만 무장한 청년은 자신과 뜻을 함께 할 열정이 없는 듯이 보이는 나이든 사람이 자신에게는 위협이 되고 억압이 된다고 느낍니다. 이에 곧이어 뒤로 물러서는것에 대해 쓴 뿌리가 생기고 수군거림이 있게 됩니다.

전쟁에서 부서지고 지친 나이든 사람이 한때 얻고자 강력하게 싸웠던 그 승리에 대한 갈망이 더 이상 없는 것을 보면 청년의 불평은 늘 정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청년의 열정은 노인에게는 책망이요 한때 그가 살았던 인생에 대해 불편한 회상이기도 합니다.

다음의 경우 청년은 바람직한 터전을 갖게 됩니다.

1. 청년들이 훈련과 준비의 필요성을 인식할 때

2. 이들의 준비된 마음에 필요한 균형을 제공하는 겸손한 영이 있을 때

3. 전쟁의 상흔을 잊고 매우 신중한 노인들이 청년들이 가고자 갈망하는 그곳에 이미 가본적이 있다는 사실에 존경심과 찬사를 보낼 때

 

이번에는 노인들이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1. 청년을 가르치는 것을 단지 의무가 아니라 기쁨에 찬 명예로 여길 것

2. 과거의 성공에 대해 찬사를 받을 생각 대신에 그와 같은 성공을 계속하기 위해 그 모든 수단을 제공해 줄 것

 

아브라함은 청년들을 훈련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습니다. 이들 아브라함의 부하들은 많은 고생을 견뎠습니다. 전쟁할 때가 됐을 때 그들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 준비됨이 그들로 승리할 수 있게 해 준 것입니다.

 

 

4월 6일

신성한 계시( 15: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홉 번에 걸쳐 계속해서 나타나시는데 그 중 이번이 다섯 번째로 딱 중간에 해당됩니다.

주의 말씀이 임하여 라는 표현은 매우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이 표현은 여기서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이후에는 구약성경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9:20, 삼상 3:1 참조).

이번 계시는 꿈이 아니라 환상의 형태로 주어진 것처럼 보입니다(5). 이번 계시는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는 말씀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아브라함은 두려워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영웅들의 부족한 점을 보여주심으로 자신의 자녀들에게 자주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으로 쭉 살아가던 사람들이 믿음에서 떨어지고 떠나가버리는 순간들이 성경에는 자주 목격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만큼 믿음이 좋았던 사람들이었으나 폭풍이 불던 때는 믿음이 없다고 꾸짖음을 받았습니다( 4).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의 대언자들을 담대히 멸하였으며, 다윗은 그 거인을 죽였고, 모세는 파라오를 패퇴시키고 이스라엘을 속박으로부터 이끌어 내었으나, 이들 모두는 후일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한때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절망했습니다(고후 1:8).

이러한 교훈들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에 대해 신뢰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주고 있지 않은지요? 이 교훈들은 우리 역시 그들과 동일한 성정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 중에서도 이들 교훈들은 비록 우리가 믿지 않을지라도 그분을 여전히 신실하신 분이심을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고 있지 않은가요? 하나님께 영광을! 그분은 자신을 부인하실 수 없습니다.

15:19-20 이곳에 보니 열 민족이 한 왕국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지막 때에 있게 될 것을 미리 보여주는 것입니다( 17:12 참조-역주).

 

 

4월 7일

두려움의 원인

 

승리 후에 우울증을 겪는 것은 자연스러운 인지상정입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기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들이 있습니다. 정신적 육체적 긴장이 풀어져 생기는 결과인 것은 확실합니다. 물질적인 세력과 대적하는 가운데 우리가 싸우는 영적 세력이 그들의 신체적 동맹이 다 정복된 한참 후까지 계속해서 공격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러한 현상들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여기에는 양심 역시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우리의 명분이 옳기 때문에 혹은 적을 멸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며 전투에 임합니다. 우리의 대적이 악하고 척결되어야 마땅한 자들이기에 우리는 그들을 쳐서 정복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확신으로 우리는 대적해도 무방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뚫고 앞으로 전진해 갑니다.

그리고 드디어 싸움이 끝이 납니다. 부상자는 보살핌을 받고 죽은 자는 묻히고 우리 양심 깊은 곳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의로운 자는 없으며 죄의 삯은 우리들 각자에 기인한 것임을 느끼게 됩니다. 곧이어 통렬한 두려움이 밀려와 나 역시 그런 패배를 당해야 마땅한 자요 그 언젠가는 나도 피정복자들에 속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게 됩니다. 전투 전에 두려워하는 것은 비겁한 자의 특징이나 전투 후의 두려움을 건전함의 표식입니다.

창세기 15:1두려워 말라 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등장하는 곳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지치고 피곤한 자신의 종들에게 자주 전달하는 메시지로 성경에서 발견됩니다. 두려워 하지 말라 혹은 무서워 하지 말라는 표현이 성경에는 무려 84번이나 나옵니다. 말라기 이후에 4세기간 지속되어 오던 침묵은 누가복음 1:13에서 두려워 하지 말라는 음성에 의해 끝이 나고 성육신의 선포 역시 같은 말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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