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2013.05.27 13:1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6 예수님과 노아의 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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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예수님과 노아의 방주

제임스 낙스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설교 시리즈인 The Person of Our Lord Jesus Christ을 의역한 것입니다.

 

1. 마태복음 24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오직 노아의 날들과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로 들어간 날까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알지 못하였나니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24:36-39)

 

2. 먹는 것은 전혀 잘못이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먹어야지만 살 수 있습니다. 마시는 것도 전혀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마셔야지만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혼인을 금지하기도 하지만 성경은 혼인을 금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혼인을 금지하는 것은 마귀의 교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도 비슷한 본문이 나오는데 거기서는 사고 팔고 세우고 심는 것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3. 이러한 것들은 모두 잘못된 것도 아니고 죄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본문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이들이 미래는 전혀 준비하지 않은 채 그저 일상적인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노아는 방주에 들어가기 전까지 다가오는 홍수를 통해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의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노아는 의의 설교자였지만 아무도 그의 설교로 회심하거나 죄악의 길에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날들과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마지막 때도 그러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이 전하고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고 전도지를 나눠주고 성경을 가르치고 인터넷에 설교를 올리고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여 복음을 선포해도 사람들은 식당으로 가서 술집으로 가고 결혼식장으로 가고 일터로 갑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의에 대해 설교하고 경고해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저 자기가 할 일을 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입니다.

 

5. 우리는 아무리 설교하고 외치고 소리치고 경고하고 간청하고 권면해도 꿈쩍도 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복음의 말씀을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뿐입니다. 노아의 날도 그랬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할 일이 있습니다. 사업을 하느라 바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문을 읽느라 바쁩니다. 급하게 식사를 하고 출근을 해야 하고 회의도 해야 하고 점심도 먹어야 합니다. 퇴근하면 아이들과 시간도 보내야 하고 뉴스도 봐야 하고 드라마도 봐야 합니다. 사람들은 정말 바쁘게 살아갑니다. 사람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대적하거나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장가가고 시집가느라 노아의 방주에 들어갈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6. 오늘날 사람들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을 다 할 시간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식사를 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음료를 마시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사회 활동을 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7. 불행한 사실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전 예배에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이 오후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전 예배와 오후 예배에 다 참석할 만큼 자신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찬송을 몇 곡 더 하는 것 정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 황금 같은 한 시간을 더 사용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가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일주일 중 서너 시간 이상 교회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8. 수요 기도회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직장이 늦게 끝나고 부업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운동도 해야 하고 약속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대로 행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시간을 내기가 아까울 뿐입니다. 성경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으로 인해 인생이 방해 받기는 원하지 않습니다.

 

9. 마태복음 24:39을 다시 보겠습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쓸어버릴 때까지 알지 못하였나니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노아의 때에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주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노아의 설교를 듣고 경고를 받아들였을 겁니다.

 

10. 성경은 분명하게 그들이 알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노아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아가 설교하는 것은 보았지만 그 내용을 귀담아 듣지는 않았습니다. 노아는 방주를 만들면서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일을 멈추고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홍수를 보내어 죄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유일한 구원의 길인 방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전했을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노아의 경고를 귀 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홍수가 나서 그들이 다 멸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1.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들림 받아 공중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는 끔찍한 대환란의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어서 지옥에 갈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큰 흰 왕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물어보실 겁니다. “너는 왜 구원받지 못했느냐? 왜 내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느냐?” 그러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저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너는 이러한 경고를 미리 들었지만 귀 기울이지 않았다. 몇 월 몇 일, 네가 백화점 앞을 지나갈 때 누군가 목소리를 높여 이러한 사실을 미리 경고했고 전도지도 주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는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세우고 심었을 뿐이다.”

 

12. 지옥에 가는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복음을 듣고 믿을 수 있었지만 듣기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길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일 수 있었고 나눠주는 전도지를 읽어볼 수 있었고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찾아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13. 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까요? 하늘나라와 지옥에 있다는 사실을 어째서 알지 못했을까요?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요? 알 수 없었기 때문도 아니고 방법이 없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다른 일을 하느라 바빴기 때문이고 알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쓸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혼을 돌아볼 시간이 아까웠기 대문입니다. 시장에 가서 식재료를 사고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할 시간은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4. 백화점에서 사지 않을 옷을 뒤적이고 입어볼 시간은 있어도 서점에 가서 성경을 사서 읽어볼 시간은 아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큰 흰 왕좌 심판석에서 자신은 이러한 심판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실 겁니다. “네가 백화점에서 쓸 데 없는 물건을 사느라 낭비한 시간 중 한 시간만 떼어서 서점에 가서 성경을 찾아보았다면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네가 쇼핑을 끝내고 맥도날드에 들리지 않고 서점에 들려서 성경을 사서 읽어봤다면 모든 게 달라졌을 것이다.”

 

14.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왜 알지 못했을까요? 왜냐하면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것들을 영원에서의 자신의 혼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15. 계속해서 다음 절도 마저 읽어보겠습니다.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질 것이요, 두 여자가 방앗간에서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인데 하나는 붙잡혀 가고 다른 하나는 남겨지리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시각에 너희 주가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 24:40-42)

 

16. 베드로전서 3장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이 영들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방주 안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가 몇 안 되니 곧 여덟 혼이라.(벧전 3:18-20)

 

17. 노아의 홍수로 인해 멸망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알면서도 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알 수 있었는데 알려고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심판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고 변명하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들과 교회가 있습니다. 알지 못했다면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물어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과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18. 여러분은 왜 거리에서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왜 사람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줘야 하는지 아십니까? 왜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그 사람들을 강제로 믿게 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복음을 들을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입니다.

 

19. 성경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홍수로 쓸어버리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도 지옥에 보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방법을 받아들이고 방주로 들어가기를 바라셨습니다.

 

20. 잠깐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노아는 의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사람들은 노아의 설교를 120년 간이나 들었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120년 간이나 주어졌던 것입니다. 노아는 5년간만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오랜 세월 설교했습니다. 노아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설교했을 겁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고 장성하게 되어도 여전히 설교했지만 회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노아의 설교를 귀 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아이들이 장성한 후에도 수십 년 동안 설교했습니다.

 

21. 사람들은 노아가 설교하는 것을 몇 세대에 걸쳐 들었을 겁니다. 노아가 처음 설교를 할 때 태어난 아이는 이제 결혼을 해서 자식들을 낳았고 그 자식들도 장성하여 다시 결혼을 해서 자식들을 낳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도 더해지지 못했습니다. 누구도 노아를 도와 방주를 만들러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노아가 설교하는 것을 귀 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22. 그라고 또 다른 세대가 지나갔습니다. 결국 노아는 3세대에 걸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다가오는 심판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노아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이보시오. 우리 고조할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자신이 소년이었을 때부터 당신이 여기서 방주를 지으면서 설교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홍수도 오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아직도 계속 방주를 지으실 건가요?” 이렇게 말하면서 비웃고 지나갈 것입니다.

 

23. 노아가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히브리서 11장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한 일들에 대해 하나님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두려움으로 움직여 방주를 예비함으로 자기 집을 구원하였으니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는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11:7)

 

24.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가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었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복음을 전하고 전도지를 나눠주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해 알려줍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삼십 년간 복음을 전하고 전도지를 나눠줬는데 단 여덞 명만 구원받는다면 어떻겠습니까?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까요? ,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오랫동안 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전할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늦게 오셔서 지금으로부터 120년이 지나도 누군가 이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전했으면 합니다.

 

25. 여러분은 아마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실 겁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얼마나 열심히 섬겨왔는지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겁니다. 저는 노아가 주님께 굉장히 큰 칭찬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120년 동안이나 했습니다. 아무런 결과도 없었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믿음으로 120년 간이나 동일한 일을 했습니다.

 

26. 저도 노아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 아이들도 노아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한 가지 목적만 바라보고 아무런 결과가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바로 이러한 사람입니다.

 

27. 노아 시대의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일을 하느라 바빴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염려하거나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아는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28. 사람들이 노아의 설교를 받아들였어야만 하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구속자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무엇을 설교했을까요? 아마 노아는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했을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죄를 지었을 때 주님께서 친히 오셔서 그들의 죄를 덮어주셔서 그들이 죽지 않아도 되게 해 주신 것을 설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구속자를 보내주셔서 인간의 죄를 제거해 주신다는 약속에 대해 설교했을 겁니다. 노아는 구속자와 그분에 대한 약속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겁니다.

 

29.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책 중 하나인 욥기를 보겠습니다. 욥은 홍수 이후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욥은 자신의 구속자가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알거니와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고 또 마지막 날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시리라.( 19:25) 저는 노아도 구속자에 대해 알고 그분에 대해 설교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0. 노아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피를 통한 희생제사라는 사실을 알고 설교했을 것입니다. 노아는 가인과 아벨에 대한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벨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고 가인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가인과 그의 헌물은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아벨과 그가 드린 어린양의 피의 헌물은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31. 노아는 구속자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 구속자에게 나아가는 방법 또한 알고 있었을 겁니다. 노아는 이러한 사실을 설교했을 겁니다. 성경은 지금이 노아의 때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지금 우리가 설교하는 것처럼 구원자와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설교했을 겁니다. 노아는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어린양의 피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32. 자신의 형제를 죽인 가인에게는 표가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그 표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 겁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것에 대해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노아의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홍수가 올 것이라는 경고를 믿지 않더라도 당시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죄를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첫 사람인 아담과 이브를 에덴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는 표를 해 두셨습니다. 따라서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죄를 간과하는 분이 아니심을 알고 있었을 겁니다.

 

33. 아담과 므두셀라는 창조로부터 홍수까지 살았습니다. 므두셀라는 아담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저 구전으로 전해오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므두셀라는 아담이 살아있을 때 태어났고 따라서 아담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담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를 노아에게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창조부터 홍수까지는 므두셀라 한 사람만 거치면 노아에게 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34.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셨고 묻히셨고 부활하셨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오순절에 증언하셨습니다. 그 동일하신 성령님께서는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나오는 걸 보신 동일하신 성령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벌거벗은 몸으로 온 세상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보신 동일하신 성령님께서는 오늘 우리 안에 거하시며 세상을 향해 진리를 증언하고자 하십니다. 노아의 시대와 같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노아처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의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담대히 전하는 사람입니다.

 

35. 창세기 5장을 보겠습니다. 3절에는 아담이 나오고 6절에는 셋이 나옵니다. 9절에는 에노스가 나오고 12절에는 게난이 나옵니다. 15절에는 마할랄레엘이 나오고 18절에는 야렛이 나옵니다. 21절에는 에녹이 나오고 25절에는 므두셀라가 나옵니다. 28절을 보겠습니다. 라멕은 백팔십이 년을 살며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노아라 부르며 이르되, 주께서 저주하신 땅으로 인해 우리가 행하는 일과 우리 손의 수고에 대하여 바로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하리라, 하였더라.( 5:28)

 

36.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에덴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으며 하나님께서 죄에 대한 벌로 땅을 저주하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이러한 사실을 이야기했습니다.

 

37. 오늘날 사람들은 술집에 가고 도박을 하고 다른 사람의 아내를 취하고 다른 사람의 남편을 취합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믿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언젠가 다시 돌아오실 거라고 그리스도인들이 믿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문제는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게 아닙니다. 문제는 복음을 귀 기울여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날에도 그랬고 지금 우리의 날에도 그렇습니다.

 

38. 유다서를 보겠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기 전에 에녹은 설교를 했습니다. 노아는 의의 설교자였습니다. 노아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홍수의 심판에서 피하라고 경고했습니다. 방주로 들어와 구원을 받으라고 설교했을 겁니다. 그러나 노아가 구원의 길을 전파하기 전에 먼저 설교를 한 사람이 바로 에녹이었습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일곱째 사람인 에녹도 이들에 관해 대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자신의 수만 성도와 함께 오시나니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심판을 집행하사 그들 가운데 경건치 아니한 모든 자들이 경건치 아니하게 범한 모든 경건치 아니한 행위와 또 경건치 아니한 죄인들이 그분을 대적하여 말한 모든 거친 발언에 대하여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14-15)

 

39. 홍수가 오기 전에 에녹이 설교한 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는 주님께서 수만 성도들과 함께 오실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노아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는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에녹은 의에 대해서 설교하며 사람들의 경건치 아니함을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균형을 이루는 설교를 했던 것입니다. 에녹은 왜 홍수가 올 수 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설교했고 노아는 홍수가 오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대책을 설교했습니다. 성경은 두 세 사람의 증인으로 확증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대해 설교하다가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채로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40. 에녹은 주님께서 오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산 채로 하나님께로 올라갔습니다. 노아는 홍수가 올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는 방주로 들어가서 산 채로 홍수를 통과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공중으로 들려올라 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환난 성도들은 노아가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다가올 것이라고 선포할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노아가 안전하게 홍수를 통과했던 것처럼 안전하게 대환난을 통과할 것입니다.

 

41. 다시 마태복음 24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24:13) 이것은 누구에 대해 하시는 말씀일까요? 이것은 교회가 아니라 환난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노아가 홍수를 통과했던 것처럼 환난을 통과하게 될 성도들의 육체에 관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날들이 짧아지지 아니하면 어떤 육체도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로되 선택 받은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이 짧아지리라.(22) 노아가 홍수로부터 구원을 받은 게 아니라 홍수를 통과하여 구원을 받은 것처럼 환난 성도들도 환난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환난을 통과하여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42.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방주의 원형이라고 믿습니다.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방주를 통해 구원받은 노아가 교회를 상징하는 게 아니라 홍수 전에 하늘로 들림 받아 올라간 에녹이 교회를 상징합니다. 노아는 환난 성도들을 상징합니다. 에녹은 사람들의 불의함에 대해 설교하다가 어느 날 하늘로 들림 받아 올라갔습니다. 에녹의 장례식이나 관이나 무덤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그의 부고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죽은 게 아니라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43. 우리는 이 마지막 때에 구원자의 약속을 선포해야 합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린양의 피를 통한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심판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선포해야 합니다. 부활의 증인이신 성령님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들림 받아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때까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사실을 선포해야 합니다.

 

44. 베드로후서 2장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천사들을 아끼지 아니하사 지옥에 던지시고 어둠의 사슬에 넘겨주어 심판 때까지 예비해 두셨으며 옛 세상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의 선포자인 여덟째 사람 노아를 구원하시며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고(벧후 2:4-5) 노아는 홍수가 일어나기 직전까지 의를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구원자에 대해 선포해야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선포해야 합니다.

 

45. 오늘날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왜 구원자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이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법을 얼마나 크게 어겼으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기 전에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는 비참한 죄인이라는 사실은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은 반드시 의에 대해 선포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는 것이 잘못되었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눈앞에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 선포해야 합니다.

 

46. 다시 베드로전서 3장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죄들로 인하여 한 번 고난을 받으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육체 안에서 죽임을 당하셨으되 성령으로 말미암아 살아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가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 이 영들은 노아의 날들에 방주를 예비하는 동안 곧 하나님께서 한 번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하던 자들이라. 방주 안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가 몇 안 되니 곧 여덟 혼이라.(벧전 3:18-20)

 

47.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출생을 주신 동일한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제가 구원받은 것은 저의 능력으로 인한 게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48. 창세기 6장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 영이 항상 사람과 다투지는 아니하리니 이는 그도 육체이기 때문이라. 그럼에도 그의 날들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6:3)

 

49.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지옥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사람들이 더 이상 지옥에 가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구원의 길을 알려주려고 한다면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통해 그 일을 하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심는 사람이 있고 물을 주는 사람이 있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증언합니다.

 

50.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 전하면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전한 그 말씀을 가지고 그 사람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이 헛되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와 거기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땅이 열매를 맺게 하고 싹을 내게 하여 씨 뿌리는 자에게 씨를 주고 먹는 자에게 빵을 주게 하는 것 같이 내 입에서 나아가는 내 말도 그러하여 그것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내가 기뻐하는 것을 이루며 내가 그 말을 보내어 이루게 하려는 일에서 형통하리니( 55:10-11)

 

51.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홍수를 통한 심판을 피할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120년이나 노아가 방주를 만들면서 다가오는 심판과 구원의 길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들었을 겁니다. 그러다 어느 날 짐승들이 줄을 지어 방주를 향해 가는 것을 보았을 겁니다. 짐승들이 줄을 맞춰 방주 앞으로 가더니 방주에 올라타는 것도 보았을 겁니다. 날짐승들과 기는 것들도 사방에서부터 나와서 방주로 들어가는 것도 보았을 겁니다. 이것은 정말 엄청난 장면이었을 겁니다. 들짐승들과 날짐승들과 기는 것들이 사방에서 나아와 방주로 들어가는 모습은 엄청난 장면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방주로 들어갈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이러한 모습을 지켜 보고만 있었을 겁니다. 인간의 마음의 완악함의 경지가 놀랍지 않으십니까?

 

52. 성경은 하나님께서 복음 선포의 어리석은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전 1:21).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도 맛보지 못한 채 자신의 죗값을 치르러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은 기적이 아니라 복음 선포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53. 다시 잠깐 창세기 7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노아의 생애에서 육백째 해 둘째 달 곧 그 달 십칠일 바로 그 날에 큰 깊음의 모든 샘들이 터지고 하늘의 창들이 열리며 비가 밤낮으로 사십 일 동안 땅 위에 쏟아졌더라. 바로 그 날에 노아와 노아의 아들들인 셈과 함과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과 함께한 그들의 세 아내가 방주로 들어가되 그들과 모든 짐승이 그것의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것들의 종류대로, 땅에서 기는 모든 것이 그것의 종류대로, 모든 날짐승 곧 모든 종류의 모든 새가 그것의 종류대로 들어가고( 7:11-14)

 

54. 짐승들이 방주로 들어갈 때 노아는 이미 방주 안에 있었습니다. 노아는 방주 안에서 방주로 들어오는 모든 짐승을 받아들였습니다. 짐승을 받아들였다면 사람도 받아들였을 겁니다. 로마서 8장에서는 창조물이 간절히 기대하며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는 것을 기다린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8:19). 성경에 의하면 인간과는 달리 짐승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55. ,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노아도 방주 안에 있고 동물들도 방주 안에 있습니다. 창세기 7장의 본문을 마저 읽겠습니다. 속에 생명의 숨이 있는 모든 육체 중에서 둘씩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가니 들어간 것들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모든 육체의 수컷과 암컷이더라. 그것들이 들어가매 주께서 그를 안에 넣고 닫으시니라.(15-16)

 

56. 다시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상상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들짐승들과 날짐승들과 기는 것들이 사방에서 나아와 방주로 들어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모든 짐승들이 방주로 들어가자 누군가 방주의 문을 닫는 것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불 가운데서 걸을 때 보았던 하나님의 아들 같은 어떤 형상이 방주의 문을 닫는 것을 보았을 겁니다( 3:25).

 

57. , 이 장면을 1절과 비교해 보겠습니다. 주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오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운 것을 내가 보았느니라. 주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로 들어오라(Come)”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방주로 들어가라(Go into)”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방주 안에서 노아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오라고 하신 겁니다. 방주 안에는 8명이 아닌 9명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아홉 번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었을 겁니다.

 

58. 그리고 성경은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주님께서 노아를 안에 넣고 닫으셨다고 증언합니다( 7:16). 사람들은 방주의 문을 닫는 주님을 보았을 겁니다. 홍수를 통한 심판이 임하기 전에 나타난 분은 바로 주님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친히 방주의 문을 닫으셨습니다.

 

59. 성경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오직 노아의 날들과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관해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에 아마게돈 전쟁이 일어날 것이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환난이라는 끔찍한 하나님의 심판을 통과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오시는 것을 바라보는 이 세상에 남아 있던 모든 사람들은 통곡할 것입니다. 과거에 사람들이 노아의 방주가 닫히는 것을 본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 때도 사람들은 구원의 문이 영원히 닫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직 노아의 날들과 같이 사람의 아들이 오는 것도 그러하리라. 방주의 문이 닫히고 지붕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노아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는 사실에 감사했을 것입니다.

 

60. 노아 시대의 사람들의 비극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은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구원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비참한 사람들인지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나면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노아의 때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선포하고 있습니까? 노아와 함께 하셨던 주님께서 여러분과도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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