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06.27 22:11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28(7월 7일-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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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28

7월 7일-13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7 7

부모간의 갈등

이삭이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할 때에”( 27:1)

이삭이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라.”( 27:5)

 

이삭의 시각은 둔해졌으나 리브가의 청각은 예민했습니다. 그녀는 이삭이 에서에게 부탁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삭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야곱을 뛰어난 아들로서 확정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그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 가정 안에는 명백한 분열이 있었으며 이는 본문의 단어들을 잘 읽어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야곱에 대해 리브가의 아들이라고 하시는 반면(6), 에서에 대해서는 이삭의 아들(5)이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그들의 사랑과 정성을 자녀들에게 균등하게 보여 줄 때 건강하고 강건한 자녀들이 집안 전체의 공동 선을 위해 함께 일하는 부부에 희애 양육되는 법입니다.

부모 중 한 쪽은 한 아이에게 특별한 사랑을 보이고 또 다른 쪽은 다른 아이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게 되면 이와 같은 편애는 결국 분열과 불화를 초래합니다. 그렇게 되면 자녀들 간의 간격이 벌어짐은 물론 남편과 아내 사이도 균열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여자나 남자나 각각 자기가 편애하는 자들에게만 잘해 주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돌아보고 둘이 한 육체가 되어 자녀들을 공평하고 균등하게 사랑하고 돌보는 것입니다.

엄마가 사랑하는 아이라든가 아버지가 좋아하는 자녀라는 말은 결코 나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자녀들에 대해 그들의 행위에 기초해 다르게 보상하시지만 그들 모두를 동일하게 사랑하고 복 주십니다. 그분의 모든 약속과 은혜는 모든 자녀를 위한 것으로 아바 아버지로부터 더 사랑을 받았다든가 덜 사랑을 받았다는 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또한 우리 아버지와 같은 모습이 되어야만 합니다.

 

 

7 8

사냥한 고기(혹은 사슴 고기, 27:7)

 

사슴은 율법에 따르면 먹을 수는 있으나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는 동물입니다( 14:5).

이 사실은 이삭과 그의 가족의 영적 수준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생활 방식은 합법적이기는 했으나 희생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은 안락하고 순전한 방식으로 존경 받을 만한 삶을 영위하였으나 영적인 문제는 분명히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보건대 가족 각 구성원의 모습이 이해가 갑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부모의 편애가 있을 수 있고 에서가 세상으로 떠내려가 육신적 죄를 지을 가능성은 충분했습니다. 야곱과 그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속인 행위 역시 이해가 갑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징계의 손길을 내미시고 이로써 야곱의 스토리는 이와 더불어 전개될 것입니다.

가족의 생활 기준에 있어서는 부정한 것은 전혀 없었음을 주목하십시오. 사실 에서의 죄는 부모 모두에게 슬픔거리였습니다( 26:35, 27:46). 그러나 여기에는 희생적 삶이라곤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헌신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from) 분리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unto) 분리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이중 분리야말로 참된 성화입니다.

기독교가 너무도 낮은 수준으로 내려와 버려 사람들은 교회 가는 것 정도면 섬김과 헌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봅니다. 괜찮은 교회의 성도들도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는 일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토요일 밤에 영화보고 일요일 아침에 주일학교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잘 어울리는 풍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런 희생이나 분리를 요구하지 않는 그런 소위 기독교라고 불리는 것을 조심하십시오.

 

 

7 9

내가 아버지께 속이는 자로 보일터이니( 27:12)

 

야곱은 실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보다는 자기가 어떻게 보이느냐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보인다(seem) 라는 단어는 매우 중요한 단어입니다. 여기 자신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가보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뭐라고 생각할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위선은 너무도 흔한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외적으로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 것인지에 너무 신경을 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온갖 수간을 동원해서 우정, 신뢰 혹은 기타 여러 관계들을 유지해 보려고 합니다. 그들의 행동에는 실체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꾸민 것입니다. 자신의 성품을 개발하여 올바른 대접을 받으려 하지 않고 얄팍한 수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호의나 인정을 얻어 보려고 합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는 것이 더 쉽습니다. 영적인 여인이 되기보다 영적인 여인처럼 보이는 것이 더 쉽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운 길을 택하는바 이는 다음 두 가지 사항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비밀을 그냥 놔두지 않는다는 것과 하나님께서는 잘못을 들추어 내시는데 익숙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 순전함, 그리고 존중 받을 만한 자질이 없는 사람들은 조만간 미끄러집니다. 자신들이 속이려 들었던 사람들이 결국은 그들의 가면 벗은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지요.

교회를 목회함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들 중 하나는 그들의 도덕성과 섬김 혹은 자녀 양육 기술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지체들 중 얼마는 동시에 가장 분열적이고, 가십을 전하고 교회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런 사람들을 드러낼 수 없는 것은 그들의 감언이설이 너무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사람에게 약간의 경고의 언질만 주어도 모든 사람이 당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한 사람씩 상처를 입고, 속임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며, 거짓 비방을 받게 되는바 소위 그토록 영적인 모습을 하고 있던 분들에 의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당신이 그들을 경고할 때 막았던 사람들이 왜 그것을 알리지 않았냐고 말할 것입니다. 이 상황은 처리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내버려 두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돌보시도록 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7 10

내가 그것을 알지 못하였도다.”(28:16)

 

제가 사역을 시작 후 두 번째로 했던 설교의 본문이 바로 이 구절이었습니다. 아마 매우 엉성했겠지만,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교했습니다. 이 본문 말씀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1. 만약 야곱이 그곳에서 주님을 만날 것을 알았더라면 그는 감히 그곳으로 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거의 죄가 기억나면 하나님 만나는 것이 두려우니까요.

하나님과 만나게 될 까봐 두려워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곳에 가기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교회, 기독교 방송, 복음을 전하는 친구나 친척 등을 피하는 바 이는 그들이 자신들이 대적해서 죄를 지은 그 하나님을 만날 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2.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뭔가 바칠 것을 준비해야만 한다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죄인을 있는 모습 그대로 만나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은 결코 해 본적이 없으며 자신이 하나님을 만나기에 적합하도록 해 줄 그 어떤 임무도 자신은 수행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 뭔가 보여 드려야, 혹은 어떤 대가라도 치러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있습니다. 믿음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그 뒤에야 희생이 뒤따른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 채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식으로 많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끈 소위 사역자, 목사, 신부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3. 이 본문 말씀은 자신을 찾아 오셔서 자기가 생각지도 않았던 그런 경험을 묘사해 줍니다. 얼마나 자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장소와 환경과 상황 및 관계 속에서 임재 해 오셨는지요!  때로는 양지에서, 때로는 음지에 숨어 계셨지만 늘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7 11

야곱의 환상( 28:10-22)

 

야곱은 에서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그의 형은 그가 축복을 훔쳐 갔기 때문에 그를 죽이려 합니다.

13- 14: 언약을 반복함.

15:  이 언약에 근거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음 사항을 하시고자 합니다.

l  너와 함께 있겠다. 교제

l  너를 지켜 주겠다. 보호

l  너를 데리고 오겠다. 인도

16: 이 말씀은 얼마나 자주 사실로 드러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 안에 모든 것 되시는 분이십니다.

12: 예수님은 사다리이십니다( 1:15, 1:14).

17: 예수님은 문(gate)이십니다( 10:7). 예수님은 집이시며 건축자이십니다(3:3 -4, 딤후 2:20, 벧전 4: 17).

18: 예수님은 돌이십니다( 2:34, 12:10, 20:18).

19: 예수님은 하나님이의 집, 즉 주께서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시는 그 장소이십니다(눈으로 볼 수 있게 알리시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22: 예수님은 하나님의 집이 그 위에 세워진 기초 석입니다( 16:18).

22: 우리는 율법이전에도 십 분의 일(십일조)이 존재 했음을 다시 한 번 보게 됩니다.

 

 

7 12

헤브론에서의 야곱(28)

 

이 장에서 우리는 오늘날의 이스라엘의 모습(전 세계에 흩어진 민족으로서)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야곱은 현재 이방인들 가운데로 흩어져 있는 유대인처럼 축복의 장소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26:3).

2. 그는 제단 바깥에 있습니다( 3:4-5). 유대인들은 오늘날 하나님께서 정하신 희생제단에서 끊어져 버렸기에 율법에 따른 경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3. 그는 불신 가운데 저지른 행위로 인해 악한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31:1, 2:17-24). 유대인들을 현재 전 세계에 걸쳐 저주 받은 백성입니다.

4.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언약의 보살핌 하에 있습니다( 28:13, 11:1, 25:30). 마찬가지로 이스라엘도 불신가운데 내쫓겼으나 여호와에 의해 여전히 보존되고 있는 중입니다.

5. 그는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 그 기초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주인이 되시려면 그 권리를 댓가를 주고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8:20-21, 9:31-32).

6. 그는 결국 되돌아 왔습니다(31:3, 35:1-4, 37:21-23).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또한 회복될 것이며 하나님의 호의를 다시 얻게 되는 동시에 그분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그 땅도 다시 얻게 될 것입니다.

 

 

7 13

(28)

 

창세기 28:12에서 야곱은 사다리 꿈을 꾸었는데 그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고 그 위에서는 하나님의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브엘세바에서 떠나와 헤브론 남쪽으로 12마일쯤 왔는데, 그곳은 나중에 벧엘이라고 알려진 곳으로 예루살렘에서 세시간 거리에 있는 에브라임 산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곳은 팔레스타인 땅의 중심부에 있는 삭막한 황무지였습니다. 길은 가파른 계곡을 통해 굽이쳐있었고 돌무덤 같은 큰 바위들로 덮여 있었습니다. 이 바위들은 이곳 저곳에 드루이드족의 돌멘(기념석)처럼 서 있었습니다. 여기서 야곱은 휴식을 취하려고 누웠는데 하나님께서 이 꿈으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다리는 먼저 야곱으로 하여금 자신의 혼과 하나님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상기시켜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는 술책을 써서 형의 장자권은 획득하였으며 거짓말과 속임수로 축복을 가로챘는데 이곳에서 자신의 혼과 하나님 사이에는 큰 분리가 있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다리는 또한 자신의 죄에도 불구하고 그의 혼은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사다리가 땅에서 하늘에 이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온전히 제공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 사다리는 그의 가장 깊은 필요를 채우고자 내려와 있는 동시에 하나님의 임재까지 곧바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다리가 이 땅에 세워졌으며 하늘에 이르게 되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구원이나 회복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어 하나님께 이르게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신비에 대한 해결책은 요한복음 1:51에서 발견됩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바로 자신이 그 사다리이심을 보이고 계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선행이나 종교적 행위가 아닌 그분 위에 “놓여” 하늘로 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이 땅으로 오셨습니다. 창세기 28장의 꿈에서 하늘이 보이기는 하나 열려 있지는 않음을 주목 하십시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는 하늘이 열려 있습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라는 히브리어가 바로 이 뜻입니다.–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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