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2012.08.26 21:41

결혼과 가정-제13장 열정과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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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rriage and The Family

결혼과 가정

James W. Knox 지음 / 이우진 옮김

13장 열정과  애정

 

1. 우리는 결혼과 가정에 대해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설교할 때면 종종 두세 명의 자매님들이 와서 내용의 80이상이 자매들에 대한 것이라고 항의합니다. 어떤 때에는 두세 명의 형제님들이 와서 왜 항상 형제들에 대한 설교만 하느냐고 저에게 항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죄에 대해 설교하면 왜 자기를 겨냥해서 설교하냐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설교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2. 오늘 우리는 열정(passion)과 애정(affection)의 차이에 대해 성경을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결혼하게 되지만 바로 그 열정으로 인해 이혼하게 되기도 합니다. 반면에 애정은 혼인 관계를 평생 유지시켜 줍니다. 열정과 애정은 모두 성경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열정은 외부의 인상이나 영향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열정은 시각과 청각과 촉각의 영향을 받습니다. 열정은 육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육신의 외부 자극에 주로 영향을 받습니다.

 

3. 여자의 외모를 보고 반하는 것은 열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남자의 경제력이나 경력이나 학벌이나 소유한 자동차 등을 보고 반하는 것도 열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렇듯 열정은 내면이 아닌 외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은 생각이나 욕망이나 두려움이나 기쁨이나 희망이나 사랑이나 미움 등으로 드러납니다.

 

4. 사도행전 1장을 보겠습니다. 그분께서 수난(passion)을 받으신 뒤에 또한 자신이 살아 계심을 절대 확실한 많은 증거들로 그들에게 보여 주시고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의 왕국에 관한 것들을 말씀하시고( 1:3) 여기서 수난(passion)”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분의 육체로 당하신 고난과 고통과 신음 등을 의미합니다.[1]

 

5. 성경은 열정적인 사람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 동시에 오직 열정 가운데서만 사는 삶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고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과 야고보서 5장에 예가 나와 있습니다. 먼저 사도행전 14장을 보겠습니다. 거기서 복음을 선포하니라. 루스드라에 발이 허약한 어떤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자기 어머니 태에서부터 불구가 되어 결코 걸은 적이 없더라. 바로 그 사람이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바울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병 고침을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음을 알고는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똑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고 걸으니라. 사람들이 바울이 행한 일을 보고 목소리를 높여 루가오니아 말로 이르되, 신들이 사람들의 모양으로 우리에게 내려왔다, 하며 바나바는 주피터라 하고 바울은 주로 말하는 사람이므로 머큐리라 하더라. 이에 그들의 도시 앞에 있던 주피터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들을 가지고 성문들에 이르러 사람들과 함께 희생물을 드리려 하니 사도들 곧 바나바와 바울이 이 말을 듣고 자기들의 옷을 찢으며 사람들 가운데로 달려 들어가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들아, 어찌하여 너희가 이런 일들을 행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똑같은 성정(passions)을 가진 사람들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너희가 이런 헛된 일들을 버리고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 곧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 함이라.( 14:7-15)

 

6. 본문에 나온 청중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그들은 걷지 못하는 사람이 고침을 받는 놀라운 기적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것에 완전히 사로 잡혔고 곧바로 열정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열정을 갖게 된 이유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들의 열정은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을 책망합니다. 하나의 기적이 이방인들을 완전히 잘못된 종교적 행위로 인도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눈으로 보는 것 이상의 것들과 손으로 만지는 것 이상의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설교한 것입니다.

 

7.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자신과 바나바가 그들과 똑 같은 성정(passion)”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구원받은 사람인 바울도 육신에 있어서는 그들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일몰을 보거나 시원한 바람을 쐬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몰매를 맞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수갑을 차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화가 나신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8. 구원받은 사람이든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우리는 모두 열정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이 느끼는 것을 근거로 결론을 내립니다. 교회에 문제가 있으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감정으로 판단합니다. 직장을 잃게 되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화가 나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단지 보기에 그렇고 느낌이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열정의 지배를 받고 살아갑니다.

 

9. 구원받은 사람이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든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만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면 잘못된 결혼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고 성령님의 통제를 받지 못하면 항상 열정의 지배를 받게 되고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모든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좋은 사람과 결혼한 것은 복된 일이지만 열정만으로는 바람직한 혼인 생활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10. 모든 사람은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오직 열정의 지배만 받고 사는 게 문제입니다. 야고보서 5장을 보겠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이 동일한 성정(passions)의 지배를 받은 사람이로되 비가 오지 않기를 그가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이나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였고( 5:17)

 

11. 저는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바알의 거짓 대언자들을 제거하신 일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좀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거짓 대언자들에게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들을 조롱했던 것을 생각해 봅시다. 이것이 바로 엘리야의 열정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엘리야가 바알의 대언자들을 조롱한 일이 잘못된 것이라든지 혹은 바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그들을 조롱하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완전히 주관하실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가 조롱한 것은 그의 열정으로부터 나온 일이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아무런 응답이 없는 자신의 신을, 자해하면서까지 부르는 바알의 대언자들을 보고 흥분과 분노와 열심과 담대함을 가지고 그들을 조롱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잘못된 행동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가 우리와 같은 성정(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12. 엘리야는 주님을 위해 담대하게 행하고 큰 승리를 거두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신을 죽이겠다는 내용을 담은 이세벨로부터 온 이메일을 확인하고는 큰 충격을 받고 바로 도망가서 동굴에 숨어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울부짖으면서 차라리 자신을 죽여달라고 간구합니다. 이세벨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여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한 간구입니다. 훌륭한 대언자였고 하나님의 사람이었으며 담대하게 적들을 무리친 전사였던 엘리야가 열정의 지배를 받으니 겁쟁이처럼 비겁하게 벌벌 떨게 되었던 것입니다.

 

13. 여러분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으면 열정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이 그의 마음과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우리와 같은 성정의 사람이었지만 기도로 엄청난 일을 이뤘습니다( 5:17-18). 많은 사람들이 열정의 지배를 받으면서 살아 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열정 이상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으로 인해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 이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보는 것으로 인해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이 진정한 기쁨을 주는 게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열정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았다면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일보다 더 본질적인 것이 있습니다.

 

14.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시대가 타락한 시대라고 합니다. 저도 이 세상은 엉망진창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은 지금 이 세상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천 년 전에, 특히 구약성경은 그 보다 더 오래 전에 기록되었습니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도 자신들의 시대가 타락했다는 사실에 동의했습니다. 디모데후서에 기록된 인간의 타락상은 지금 이 시대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디모데후서가 기록될 당시에도 해당됩니다.

 

15. 솔로몬의 시대는 어땠을까요? 우리 시대와 완전히 같았습니다. 같은 죄를 짓고 같은 악을 행합니다. 죄를 짓는 방법만 달라졌을 뿐입니다. 그때는 말을 타고 죄를 지으러 갔다면 지금은 차를 타고 죄를 지으러 가는 것뿐입니다. 잠언 7장을 보겠습니다. 내가 내 집의 창문에서 창틀을 통해 내다보며 단순한 자들 가운데서 살피다가 젊은이들 가운데 명철이 없는 한 젊은이를 분간해 내었노라. 그가 그녀의 길모퉁이에 가까이 있는 거리를 지나 그녀의 집을 향한 길로 갔는데 그때는 황혼이 지고 저녁이 되어 어둡고 캄캄한 밤이었노라. 그런데, 보라, 창녀의 차림을 하고 마음이 간교한 여자가 거기서 그를 맞았는데( 7:6-10) 잠언 7장의 말씀은 데이토나 해변에 대한 말씀입니다. 올란도 거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도시가 세워진 이래로 모든 거리의 일몰후의 풍경입니다.

 

16.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그 여자는 시끄럽고 고집이 세며 발을 자기 집에 머물지 못하게 하여( 7:11) 이 여자는 디도서 2장에서 말씀하시는 여자와 정 반대의 여자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온유하고 조용한 영으로 장식한 여자와도 정 반대입니다(벧전 3:4). 하나님을 신뢰한 거룩한 여자와 정 반대입니다. 디도서 2장에서 말씀하시는 가정을 돌보는 여자와 정 반대입니다. 잠언 7장의 여자는 보기에 좋은(예쁜) 여자일 것입니다. 단지 그것뿐입니다. 그게 이 여자가 가진 전부입니다. 그녀는 회칠한 돌 무덤과 같습니다. 겉은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속에는 부패한 시체가 있습니다.

 

17.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지금 밖에 나와 있는 자며 지금 거리에서 모든 모퉁이에서 숨어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이에 그녀가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을 맞추며 뻔뻔스러운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내게 화평 헌물들이 있으며 이 날 내가 내 서원을 갚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부지런히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노라.”(12-15) 마치 TV광고처럼 그녀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예전에 인간을 속였던 바로 그 방법으로 지금도 인간을 속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동일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 가기 때문입니다.

 

18.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수놓은 융단 덮개와 조각품과 이집트의 고운 아마포로 내 침상을 장식하고 몰약과 알로에와 육계로 내 침상에서 향내가 나게 하였노라.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우리의 사랑을 나누며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위안하자.”(16-18) 21절을 보겠습니다. 자기의 많은 좋은 말로 그를 굴복시키며 자기 입술의 아첨하는 말로 그를 강제로 이끌므로 그가 마치 소가 도살장으로 가는 것 같이 혹은 어리석은 자가 교정을 받으려고 차꼬를 차러 가는 것 같이 즉시 그녀를 따라가는도다.(21-22)

 

19. 젊은 사람이 거리를 걸어갑니다. 그러다 그의 열정을 잡아 끌 무언가를 보게 됩니다. 그의 열정을 잡아 끌 무언가를 듣게 됩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아무런 영적 지각도 없이 열정의 지배를 받아 죄에게로 끌려간다는 것입니다.

 

20. 아직 결혼하지 않은 형제님들, 또 결혼하신 형제님들, 죄로 끌어들이려는 여자의 유혹을 원하는 마음이 구원받은 사람에게도 여전히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열정의 지배를 받기만 한다면 짐승조차 꺼리는 일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의 안에는 동물적인 본능과 열정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21. 욥기 31장을 보겠습니다. 내가 내 눈과 언약을 맺었거늘 어찌하여 처녀를 생각하랴?( 31:1) 욥이 무엇을 했는지 보십시오. 그는 집에서 나오면 젊은 여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전혀 교제를 나누지 않고 영적인 것을 전혀 추구하지 않는 여자들이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욥은 자신도 그러한 여자들의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과 동일한 성정을 지니고 동일한 열정을 소유한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내면에 있는 마음속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눈이 무엇을 보거나 귀가 무엇을 듣거나 몸이 무엇을 느끼게 되면 그것을 즉시 하나님 앞으로 가져오고 다시는 생각하지도 않기로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재에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자신이 본 것이나 들은 것이나 느낀 것을,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다시는 생각하지도 않기로 한 것입니다.

 

22. 어떤 여자가 유혹할 때 한 사람은 그 유혹에 넘어가고 다른 한 사람은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열정만을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그 이상의 것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오직 열정만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은 열정 이외에 영적인 성품 또한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23. 이제 애정(affection)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애정이란 마음이 특정한 것을 향한 상태입니다. 열정이 특정한 대상에 대한 흥미를 느끼는 현재의 일시적인 관심이라면, 애정은 현재 그 대상이 보이지 않아도 그것을 향해 갖는 영구적인 관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애정을 갖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열정을 따르는 게 아니라 애정을 따르기 원하십니다. 애정은 여러분의 혼의 닻이며 여러분의 존재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짐승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구원받았지만 육신적인 사람은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24. 사도 바울은 애정으로 인해 여러 도시에 있던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몸으로는 멀리 떨어져있었지만 마치 함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애정은 여러분이 아내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여전히 함께 있는 것처럼 아내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애정은 아무런 형상도 없고 우상도 없고 성상도 없고 성화가 없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애정은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거나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어떤 외부의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25. 무엇인가를 제시할 때 항상 부정적인 것부터 하는 게 좋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이 타락한 존재라는 사실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로마서 1장과 디모데후서 3장을 보겠습니다. 먼저 로마서 1장을 보겠습니다. 자신들의 지식 속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 인간이 어떤 상태가 되는지 보십시오. 지각이 없는 자요, 언약을 어기는 자요, 본성의 애정이 없는 자요, 화해하기 어려운 자요, 긍휼이 없는 자라.( 1:31)

 

26.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본성의 애정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디모데후서 3:3도 보겠습니다. 본성의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 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

 

27. 우리는 본성적으로 삶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육신을 미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감옥에 가느니 죽는 편이 낫다고 하지만 실제로 감옥에 가면 그 어느 때보다 살고자 합니다. 누구나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또 누구나 본성적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가족이 좀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도 사랑합니다. 이것은 본성에 속한 감정입니다. 본성에 속한 또 다른 감정은 이성을 보면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는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본성을 지니고 태어났습니다. 남자가 남자와 사랑을 나누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타락한 열정에 따른 것일 뿐입니다.

 

28 로마서 3장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가 없다고 한 것은( 3:11)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1장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있음에도 그분을 영화롭게 하지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아니한다는( 1:21) 말씀 또한 사실입니다. 인간은 처음 태어날 때에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자라면서 그 하나님을 찾지 않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들은 주로 열정에 속한 것들, 즉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에 관한 논의를 하려고 합니다.

 

29. 구원받은 사람 안에는 애정이 있습니다. 그 애정을 자신의 인생을 주관하는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애정이 아닌 열정에 의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불행한 사실은 대부분의 구원받은 사람들이 열정의 지배를 받으며 산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느 교회에 가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금식을 하며 간절히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더 편하게 다니고 자신들을 대우해주고 섬겨줄 교회를 찾습니다.

 

30. 구원받은 사람들은 애정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애정을 마음속에 두고 진리의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역대기상 29장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그 거룩한 집을 위하여 예비한 모든 것 외에도 내가 내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였으므로(affection) 내 소유의 재물 곧 금과 은 중에서 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드렸노니(대상 29:3)[2] 하나님의 영이 안에 거하시면 합당한 애정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해, 그리고 그분의 교회를 향해 합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 외적인 요소 때문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 자체로 교회에 가게 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집을 향한 애정을 세워야 하는 일입니다(set affection to the house of God). 교회야 말로 도움을 받고 용기를 얻고 도전을 받고 혼을 위한 교육을 받는 유일한 장소라는 사실을 깨닫고 교회를 향해 애정을 가져야 합니다.

 

31. 불행한 사실은 오늘날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향한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누구와도 가까이 지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장을 보겠습니다. 그는 너희가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기를 받아들인 것 즉 너희 모두의 순종을 기억하고 자기의 내적 애정(inward affection)을 너희에게 더욱 넘치도록 기울이느니라.(고후 7:15)

 

32. 사도 바울은 자신의 내적 애정이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더욱 넘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끔찍한 죄를 지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입니다. 그들은 교회 안팎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죄를 짓고 타락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순종하지 않고 아무런 선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을 통해 그들이 영적인 가족이며 형제이고 자매이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향해 애정을 갖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3. 골로새서 3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켜졌거든 위에 있는 그것들을 추구하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에 있는 것들에 너희의 애착(affection)을 두고 땅에 있는 것들에 두지 말라.”( 3:1)

 

34. 여러분이 이 세상에 있는 집 안에 사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그 집에 애정(애착)을 두지는 마십시오. 자동차나 옷이나 땅이나 어떤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그것들에 애정을 두지는 마십시오. 여러분은 애정을 예수 그리스도께 두어야 합니다.

 

35. 사람들이 구원받기도 하고 구원받지 못하기도 하고, 교회가 성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고, 기도가 응답 받기도 하고 응답 받지 못하기도 하고, 건강할 때도 있고 병약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든지 예수 그리스도께 애정을 두십시오. 여러분이 애정을 예수 그리스도께 두면 여러분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고 주님의 길을 걷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골목에서 여자가 유혹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이 세상이 죄로 유혹할 때 어떻게 뿌리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왕좌를 향해 고정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소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마귀에게 끌려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애정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고정되어 있다면 여러분은 짐승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36. 계속해서 골로새서 3:5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땅에 있는 너희 지체들을 죽이라. 그것들은 음행과 부정함과 무절제한 애정과 악한 욕정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 무절제한 애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애정을 가져야 하지만 무절제한 애정은 버려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되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합니다. 단순히 어떤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는 게 중요합니다.

 

37. 빌립보서 2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 2:12) 빌립보교회의 성도들 안에는 밖으로 드러날만한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안에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들 안에는 성령님께서 계시고 주님께서 주신 합당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8. 형제님들이 열정이 아닌 애정을 따라 산다면 아내가 눈에 보이건 보이지 않건 아내를 동일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자매님들이 열정이 아닌 애정을 따라 산다면 남편에게 하는 모든 말과 남편에 대한 모든 말은 사랑으로 하는 사랑을 담은 말이 될 것입니다. 열정으로 사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지만 애정으로 사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동일한 반응과 태도를 보입니다. 애정의 윈칙으로 사는 사람은 항상 신실한 남편이고 아내이며 아버지이고 어머니이며 성도이고 교회 회원입니다. 왜냐하면 애정은 주님께 받아 사람의 속에 있으며 따라서 내면에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위의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습니다.

 

39. 외면을 지배하는 것은 내면입니다. 여러분은 애정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아 훗날 상속 재산으로 받게 될 곳으로 나가면서 순종하였고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채 나갔으며( 11:8) 아브라함의 순종은 우상숭배 하는 땅에서 살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아무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곳에서 주님께 순종했습니다.

 

40. 계속해서 9절을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낯선 나라에 머무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머물렀고 자기와 함께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가 된 이삭과 야곱과 함께 장막들에 거하였으니 아브라함이 순종했을 때에는 아직 약속을 받기 전이었습니다.

 

41. 계속해서 10절을 보겠습니다. 이는 그가 기초들이 있는 한 도시를 바랐기 때문이라. 그것의 건축자와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아브라함의 삶을 지배했던 것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가 살던 곳에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본적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삶을 지배한 것은 그가 보는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을 지배하는 것들은 그가 느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의 삶을 지배했던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한 도시에서 거하는 것에 대한 애착이었습니다.

 

42. 13절을 보겠습니다. 이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끌어안았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으니 그런 것들을 말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내느니라. 참으로 그들이 자기가 떠나온 본향을 깊이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그들에게 있었으려니와 이제는 그들이 더 좋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의 본향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분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예비하셨느니라.”(13-16)

 

43. 히브리서 11장에 나온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하늘나라와 그곳에 계신 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을 기준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애정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친구였으며 옳은 일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열정을 가지고 살았을 때에는 자신의 길로 갔으며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었습니다.[3] 그가 애정이 아닌 열정으로 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습니다. 그가 애정으로 살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바른 일을 행했습니다.

 

44. 베드로전서 1장을 보겠습니다. 비록 지금은 필요가 있어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해 잠시 근심하고 있지만 그 구원을 크게 기뻐하나니 이것은 너희 믿음의 단련이 불로 단련해도 없어지는 금을 단련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드러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지금도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나 믿으며 이루 말할 수 없고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기뻐하나니(벧전 1:6-8)

 

45.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게 바로 애정입니다. 시험과 단련은 보고 느끼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내면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고 그분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된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애정입니다. 이러한 애정이 있기에 주님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고 믿고 기쁨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애정이 열정을 완전히 지배할 때 가능합니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애정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열정으로 인해 결혼할 수는 있겠지만 결혼을 지속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애정입니다.

 

46. 어떤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침례도 받고 몇 주간 성경공부나 예배에도 참여하지만 이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들은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애정으로 사는 사람들만이 지속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열정으로 살기 때문에 교회를 옮기고 종교를 바꾸고 애인을 바꾸면서 살아갑니다. 여러분은 누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나쁜 일이 있을 때나 꾸준히 교회에 와서 주님을 섬기는지 아십니까? 구원받고 나서 자신들 안에 내주해 계신 성령님께서 지도하시는 대로 애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47. 교회에 오고 싶을 때도 있고 빨리 교회를 떠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애정이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을 향해 있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1] 영어 단어 “passion”열정이라는 의미와 수난이라는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둘 다 기본적으로 육신과 관련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주로 성정이라고 번역되었습니다( 14:15).-역주

[2] 내가 내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였으므로가 영어 킹제임스성경에는 “because I have set my affection to the house of my God”이라고 되어 있습니다.-역주

[3] 이것에 대한 가장 큰 예가 바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일과 아비멜렉 앞에서 사라를 자신의 아내가 아닌 누이라고 속인 일일 것입니다.-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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