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2012.09.03 09:40

결혼과 가정-제14장 실망스런 일을 다루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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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rriage and The Family

결혼과 가정

James W. Knox 지음 / 이우진 옮김

14장  실망스런 일을 다루는 방법

 

1. 우리는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실망스러운 일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실망스런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모든 여자들은 결혼하고 나서 남편에 대해 실망하게 됩니다. 모든 남자들도 결혼하기 전에 상상했던 것과 다른 것을 보고 아내에 대해 실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혼하면 실망할 일들이 생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은 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고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실망스런 일이 생기게 될 것인가가 문제가 아니라 실망스런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문제입니다.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하고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2. 실망스런 일이 생겼을 때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계속 그 문제에 머물러 있고 실망가운데 있으면서 남편이나 아내와 다투거나, 아니면 그 문제를 뛰어넘어 그 문제를 통해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교훈을 배우고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그 일을 통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일에서 교훈을 배워 다음에는 동일한 일이 얼어나면 더욱 성숙하게 처리할 수도 있습니다.

 

3. 빌립보서 3장을 보겠습니다.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이것은 내가 그분의 죽으심과 일치하게 되어 그분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함이요, 어찌하든지 내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도달하려 함이라.( 3:8-11)

 

4. 계속해서 본문을 더 읽기 전에 한 가지 생각해 봅시다. 방금 읽은 빌립보서 3장의 말씀이 남편과 아내 또는 부모와 자녀에 관한 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이 말씀이 우리의 가정 생활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그런데 이 말씀이 우리의 가정생활과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우리의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가정생활을 서로 따로 놓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 세운 원칙과 남편과 아내로서 살아갈 때 세운 원칙이 서로 다르다면 거기에는 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5. 직장과 교회에서는 간증을 세우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지만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세운 삶의 원칙이 가장 먼저 적용되어야 할 곳은 바로 가정입니다. 영적 생활에 있어서 가장 우선 순위에 와야 할 곳이 바로 가정입니다.

 

6.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 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참고 견디며 믿음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런 어려운 일들과 고난이 있어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와 직장에서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다가도 집에만 오면 남편이나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서로 비난하고 다툽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를 용서하고 참아주고 섬겨야 할 가장 근본적인 장소는 가정입니다.

 

7. 계속해서 12절을 보겠습니다. 나는 내가 이미 도달한 것처럼 말하지 아니하며 이미 완전한 것처럼 말하지도 아니하고 다만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를 붙잡아 이루시고자 하신 그것을 붙잡으려고 뒤따라가노라.(12)

 

8. 우리는 교회생활을 하면서 다른 형제 자매들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염두에 두며 서로를 대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목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성숙한 형제라도 부족한 점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이 이미 도달한 것처럼 말하지 아니하고 완전한 것처럼 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시는 것을 붙잡으려고 뒤따라갈 뿐 아직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9.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서는 너무나도 잘 알던 사실인데 집에 오면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집에 와서는 왜 자신의 남편이 완벽하지 않은지, 왜 자신의 아내가 완벽하지 않은지 의아해 합니다. 왜 남편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도달하지 못했는지, 왜 아내가 도달하지 못했는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10. 형제님들, 여러분의 아내는 아직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자매님들, 여러분의 남편은 아직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는 아직 완전함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의 남편과 아내는 아직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게 되지 않았습니다.

 

11. 여러분은 제가 하는 말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왜 남편이나 아내가 잘못을 행하거나 실망스러운 일을 할 때 놀라시는 겁니까? 여러분은 완벽한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도 완벽하지 않고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12.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내가 이미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것들에 도달하려고 나아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13-14)

 

13. 빌립보서 3장은 매우 흥미로운 장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드레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의 줄기에 속한 자요, 베냐민 지파에 속한 자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에 관하여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에 관한 한 교회를 핍박하였고 율법에 있는 의에 대하여는 흠이 없는 자로다.(5-6)

 

14.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울이 13절에서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린다고 한 것은 기억에서 과거를 지워버린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의 과거는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현재가 과거와 달라졌다고 해서 과거도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를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15. 계속해서 7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7-8)

 

16. 바울은 세 번에 걸쳐 여긴다(count)”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계속 붙들고 있지 못할 만한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출생배경과 자신이 받은 훈련과 행한 일들을 계속 붙들고 있지 못할 만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17. 형제님들, 한번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한번 가정하고 이야기하겠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아내가 여러분을 배신한다면, 그 일을 다시 돌려놓을 수는 없습니다. 과거를 돌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과거를 돌려놓을 수는 없지만 그 일을 붙들고 있지 못한 만한 것으로 여길 수는 있습니다. 자매님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일 여러분의 남편이 여러분에게 큰 상처를 주는 일을 한다면 그 일을 여러분의 마음에서 지워버릴 수는 없지만, 그 일을 붙들고 있지 못할 만한 것으로 여길 수는 있습니다.

 

18. 여러분이 과거에 끔찍한 일을 당했다면 계속해서 그 일을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끔찍한 잘못을 저질렀다면 대화를 할 때마다 그 일을 언급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게 정말 끔찍한 일이라면 왜 계속 그 일을 생각합니까? 물론 과거 없는 현재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일로 인해 많은 일이 생기고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계속 붙들고 있지 못할 만한 것으로 여길 수는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결정한 것입니다.

 

19. 그렇다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3절에 그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내가 이미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것들에 도달하려고 나아가(13)

 

20. 바울은 과거에 있었던 일은 놓아버리고 앞에 있는 일을 붙잡기 위해 나아갔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끔찍한 일은 내려 놓아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갈 인생은 주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채워 넣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이 여러분의 인생에 주님께서 주시는 복을 채워 넣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여러분은 반드시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21. 과거에 지나간 일은 다시 되돌리거나 없애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로 남겨 놓을 수는 있습니다.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면 그냥 그대로 놔두면 됩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 하지 말고 그 일은 뒤에 남겨 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과 기쁨과 행복과 승리가 미래에 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힘을 과거의 일에 대해 논쟁하고 정죄하기 보다는 그 일은 뒤에 남겨두고 선한 목표와 선한 표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앞에 있는 그 복된 목표를 향해 밀고 나아가야 합니다.

 

22. 여러분의 인생을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동행하게 된 날로부터,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 날로부터, 여러분은 여러분의 구원자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을 사랑하고 여러분을 위해 피 값을 치르신 분을 실망시켜 드린 일이 있을 겁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지 못한 경우도 많을 겁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을까요?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잘못한 모든 일들은 뒤에 남겨두고 계속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려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과거의 잘못에 계속 매달려 있기보다 오늘 주님 앞으로 나와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 전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과거는 그대로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와 주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양식을 먹으며 주님을 섬기고 주님을 전하고 주님과 교재를 나누기 원하셨습니다.

 

23. “주님 저는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쓸모도 없습니다.” “저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제가 하는 것을 보시면 저를 쫓아내 버리실 겁니다.” 이렇게 말해도 주님께서는 함께 하자고 초청하실 겁니다. 주님께서는 먼 나라에 나가있는 우리가 집으로 돌아와서 안식하기를 원하십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오기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시기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과 기쁨을 주기 원하십니다.

 

24. 여러분이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즉각적으로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을 망치고 멸망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여러분의 죄와 여러분의 육신입니다. 육신과 교재를 나누면 육신은 여러분을 저주할 것이고 성령님과 교재를 나누면 성령님은 여러분을 축복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과거를 붙잡고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 앞에 나아오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어떤 죄를 지었고 어떻게 살았던지 상관없이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씻기시고 깨끗하게 하시고 의로 옷 입혀 주시며 살진 송아지를 잡고 즐겁게 영적인 잔치를 벌이기 원하십니다.

 

25. 집을 나갔던 탕자가 돌아왔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아버지는 이미 충분히 눈물을 흘리셨고 충분히 슬퍼하셨습니다. 방탕한 아들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책망하며 벌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원한 것은 아들의 얼굴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집을 나갔던 그 아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그 아버지는 끔찍한 과거를 상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큰 잔치를 열었던 것입니다.

 

26. 형제 자매님들, 여러분은 과거에 죄에 걸려 넘어진 적이 있으십니까? 그것은 끔찍하고 추한 것이었습니까? 그렇다면 왜 계속해서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까? 그것들은 주님 앞에 내려 놓은 후에 뒤로 하고 이제는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 주님께서 선하고 받으실 만하고 기뻐하실 일들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27. 14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

 

28. 여러분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정직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행복한 가정 생활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항상 다투고 싸우는 가정 생활을 원하십니까? 행복한 가정 생활을 원한다고 하면서 남편이나 아내를 바로 잡으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또 싸울 생각을 하면서 집에 온다면 결코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을 자신의 생각대로 바꾸려고 하면 행복한 가정 생활이 아닌 싸움과 다툼만이 있을 뿐입니다.

 

29. 사도 바울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굶주림과 좋지 못한 일들이 있고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과 세상으로 가버린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일들을 뒤로 하고 앞을 향해 전진해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쫓아가야 할 푯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슬픔과 분노로 자신의 인생을 끝내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배교를 하거나 세상으로 가버린 채로 인생을 마감하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망스러운 모든 과거는 뒤에 남겨두고 주님을 섬기며 미래를 열어가려 했던 것입니다.

 

30. 바울이 왜 주님을 섬기며 살았는지 아십니까? 그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데마는 왜 세상으로 가버린지 아십니까? 그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데메트리오가 왜 교회를 망치는 일을 했는지 아십니까? 그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왜 주님 앞에서 바르게 되기를 원했는지 아십니까? 그가 그것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님을 부인한 채로 인생을 마감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을 부인했던 그 날 밤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을 부인한 사람으로 계속해서 남아있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에게 내 양들을 먹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는 주님의 양들을 먹였던 것입니다( 21:17). 그는 과거는 모두 뒤로 하고 주님과 교재를 나누고 주님을 섬기기 원했고 결국 그러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31. 자매님들, 여러분이 원하면 과거를 뒤에 남겨 둘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형제님들, 여러분이 원하면 죄를 그만 둘 수 있습니다. 죄로부터 돌이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내를 사랑한다면 결혼 생활을 망치는 그 무엇이든 그만둘 수 있습니다.

 

32. 여러분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고 싶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만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먹고 즐기고 세상 친구들을 사귀고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좋은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는 것으로 끝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방향을 바꿔서 하나님의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그러면 넘어져도 바른 길에서 바른 방향으로 넘어지게 됩니다.

 

33. 우리가 주님을 향해 나아가면 넘어지더라도 바른 길 위에서 바른 방향으로 넘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향해 나아가면 잘되든 못되든 우리는 죄의 길 위에 있는 것일 뿐입니다. 문제는 넘어지느냐 넘어지지 않느냐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은 인생의 길에서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문제는 어느 방향의 길을 가다 넘어지느냐 입니다. 이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34. 많은 침례교인들이 은사주의자들처럼 살아갑니다. 남편에게 불순종하고 남편을 가르치려 들고 교회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가정을 돌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현숙한 여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하지만 결코 현숙한 여인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현숙한 여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5.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한다고 하면서 점쟁이를 찾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신의 뜻을 깨닫지 못하게 하실 겁니다. 사람은 입으로 하는 말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하기 마련입니다. 저는 우리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보다 나은 가정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진심으로 원한다면 남편이나 아내와 보다 나은 관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원한다면 자신의 힘과 노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36.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고 싶지만 나오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왜 나오지 못한 것일까요? 대부분 늦잠을 자거나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하지 않는 사람을 강제로 회오리바람으로 데려와서 억지로 교회에 데려다 놓지는 않으십니다.

 

37. 좋은 남편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렇게 되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아내는 아니지만 결국 어떻게든 되겠지요.” 라고 말하는 자매님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주님께서 원하셔도 여러분이 진심으로 원하면서 노력하고 실제적으로 자신의 시간과 힘과 의지를 내어드리기 전에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아내가 될 수 없습니다.

 

38. 이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돈을 원하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돈을 벌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잘 하려고 한다면 그것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보다 나은 가정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39. 남편이나 아내를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원한다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바람을 피웠기 때문에 자신도 바람을 피운다고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바람을 피운 아내를 다시 사랑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지금 만나는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만나는 여자도 바람을 피우는 여자입니다. 자신이 현재 바람을 피우는 여자는 사랑할 수 있으면서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가 바람을 피운 여자는 다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 합니다.

 

40. 바람을 피운 상대방을 용서하지 않는 것은 그렇게 하기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람을 피우는 일이 작은 일이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불륜은 살인보다 더 큰 충격을 주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한 죄를 지은 아내나 남편도 원하기만 하면 용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보다 더 큰 죄도 수백만 번 용서하셨습니다. 따라서 만일 여러분이 주님께 내어드리기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한번더 용서하시는 게 그리 어렵지 않으실 것입니다.

 

41.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는 우리의 모든 죄보다 더 큽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구원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합니다. 실은 용서하기 싫은 것뿐입니다. 만일 자신 안에 계시는 주님께 내어 드린다면 주님께서는 과거에 수천만 번 끔찍한 죄를 용서하신 것처럼 한번 더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42. 우리는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큰 분이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거의 불행에 메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주님께 내어드리면 주님께서는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죄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를 통해 다른 사람을 용서하실 수 있습니다.

 

43.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용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같은 일을 당했을 때에는 용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인용하며 보여준 그 구절을 통해 우리의 삶도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44.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울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모든 나쁜 일들을 뒤로 남겨 두고 앞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주님과 교재하며 받을 축복과 기쁨을 생각하며 앞을 바라봤습니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45.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뒤를 돌아보시는 게 아니라 앞을 향해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히브리서 10장을 보겠습니다. 이것에 대하여는 성령님께서도 우리에게 증인이 되시나니 그분께서 앞서 이르시기를, 그 날들 이후에 내가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내 법들을 그들의 마음속에 두고 그들의 생각 속에 그것들을 기록하리라, 하신 뒤에 또, 내가 그들의 죄들과 불법들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10:15-17)

 

46.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이스라엘이 어떤 죄를 지었든 상관없이 어느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이었든지 간에 다시는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시며 기쁨과 행복 가운데 그들과 함께 미래를 열어가시겠다는 것입니다.

 

47.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린 적이 많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많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어긴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주님께서는 그 모든 죄악들을 끝내고 더 이상 기억하지 않으시며 모두 뒤에 두고 앞을 향해, 새로운 미래를 향해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은 적도 없는 것처럼 그들을 대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실 관계입니다.

 

48. 우리는 영원히 주님과 함께 영광 가운데 거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영원히 찬양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결코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와 주님의 관계가 영원히 좋은 관계가 되도록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과의 관계를 얼마나 망쳐놓는지 와는 상관없이 주님께서는 우리와 주님의 관계가 좋은 관계가 되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49. 그리고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하시고자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과의 관계가 축복된 관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님과 영원히 복된 관계 속에서 교재를 나누게 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아내나 남편과 영원히 복된 관계 속에서 교재를 나눌 수 있다는 것입니다.

 

50. 형제님들, 자매님들, 왜 다시 불행했던 과거로 돌아가려 하십니까? 왜 다시 슬픔과 분노를 일으켰던 그 일을 끄집어 냅니까? 그 일은 그대로 남겨 두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능력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여러분은 남편이나 아내와 좋은 관계 속에서 아름다운 교재를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불행했던 일들을 뒤로 하고 이러한 미래를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51. 여러분, 과거에 잘못했던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면 후회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같은 잘못을 계속 반복하는 사람은 후회하는 게 아닙니다. 잘못했던 일을 정당화 하는 것은 아무런 이득이 없습니다. 잘못했던 일을 그만 두어야 이득이 있습니다. 다시 빌립보서 3:8을 보겠습니다.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52. 여기서 배설물이라고 한 표현을 보십시오. 이것을 좀 낫게 만들어 배설물에서 쓰레기로 만들었다고 합시다. 우리는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생활하는 집에서는 생활쓰레기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쓰레기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을 옷장 속에 보관해 둘 필요는 없습니다. 옷장을 열 때마다 쓰레기를 가리키며 아내나 남편에게 여보 이것 좀 봐요. 당신이 어제 버린 쓰레기가 아직도 여기 있어요.” 라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쓰레기를 계속 옷장 속에 보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쓰레기는 내다 버려야 합니다. “여보, 쓰레기는 이제 밖에다가 버리지.” “아뇨, 난 이 쓰레기를 계속 옷장에 두며 당신이 이 쓰레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어요.”

 

53.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집에서는 생활쓰레기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뇌가 있는 사람이라면 쓰레기를 계속해서 집안에 두지 않고 쓰레기장에 가지고 가서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도 쓰레기를 사진으로 찍어두고 앨범에 붙여놓고 시간 날 때마다 앨범을 보면서 이것은 예전에 버린 쓰레기였지.” 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여보, 우리가 이런 쓰레기를 다시 배출할 수 있을까? 얘들아, 이것 좀 봐라. 이건 우리가 예전에 버린 쓰레기인데 이렇게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는 아직 다시 나오지 않았단다.”

 

54.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쓰레기를 그대로 품고 있습니다. 그 쓰레기를 가지고 무엇을 하실 겁니까? 남편이나 아내와 다툰 적이 있고 논쟁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어리석은 짓을 한 적이 있고 끔찍한 잘못을 저지른 적도 있을 겁니다. 이러한 과거를 계속 품고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들은 이제 쓰레기장에 던져 버려야 합니다. 불행한 사실은 우리들 중에는 쓰레기를 금고에 넣어놓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며 남편이나 아내를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봐요, 당신이 지난 번에 버린 쓰레기예요. 냄새가 보통이 아니죠? 제가 지금까지 보관해 두었어요.”

 

55. 저는 쓰레기라고 불렀지만 성경은 배설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 똥을 계속 보관해 둘 필요가 없습니다. 스위치를 눌러서 내려 보내야 합니다. 정화조에서 다시 똥을 퍼내지 마십시오. 쓰레기장에서 버린 쓰레기를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 주시며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배설물을 내려 보내시고 우리의 쓰레기를 던져 버리실 겁니다. 우리도 남편과 아내의 잘못을 이렇게 용서해 주면 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내어 드리면 우리가 차마 하지 못한 용서를 그분께서 도와주셔서 할 수 있게 해 주실 겁니다.

 

56.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신 일을 우리 가족에게 그대로 해 줍시다. 쓰레기를 다시 끄집어 내지 말고 버립시다. 이미 지나간 일들은 뒤로 남겨두고, 그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해 나아갑시다.

 



[1] 우리말 성경에는 배설물이라고 되어 있지만 영어로는 “dung”, 즉 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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