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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ed vs. Christian

셋째 출생

나는 구원받은 사람인가, 그리스도인인가?

James W. Knox 원저 / 이우진 편역

 

그를 만나매 안디옥으로 그를 데려오니라. 그들이 만 일 년 동안 그 교회와 함께 모이며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는데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니라.( 11:26) 본문에 의하면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린 게 아니라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마가복음 9장과 갈라디아서 4장과 빌립보서 3장을 통해 그저 구원만 받은 사람과 그리스도인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누시는 하나님입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양과 염소를 나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과 기준으로 사람을 나누십니다. 남자와 여자를 나누시고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나누십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나누십니다. 단순히 구원만 받은 사람과 구원받은 후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으로 나누십니다. 여러분은 구원만 받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입니까? 오늘 제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보시고 자신이 단순하게 구원만 받은 사람인지 아니면 그리스도인인지 스스로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1. 나는 구원받은 사람인가, 그리스도인인가?

먼저 마가복음 9장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함께 달려오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영을 꾸짖어 그에게 이르시되, 너 말 못하고 귀먹은 영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그를 심하게 찢고 그에게서 나가니 그가 죽은 자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가 죽었다, 하나( 9:25-26)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마귀는 물러가고 마귀에게 사로잡혔던 사람은 놓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을 때 일어난 일을 영적으로 보여줍니다. 저는 마가복음 9장이 교리적으로 거듭난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이 말씀을 통해 구원받은 사람들이 귀중한 진리를 배울 수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오늘 마가복음을 교리적으로 적용하는 게 아니라 영적으로 적용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사람은 마귀로부터 놓임을 받았고 살아있는 사람이었지만 마치 죽은 사람과 같았습니다. 불행한 사실은 오늘날 대부분이 구원받은 사람들이 참된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지만 마치 죽은 사람과 같아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구원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하늘나라와 지옥의 관점으로 보자면 구원은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구원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한 사람은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고 다른 사람은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똑같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구원받았다는 것은 죽으면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값없이 선물로 받지만 구원받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거나 혹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구원받은 사람이지만 모든 구원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무엘하 7:14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막대기로 징계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구원만 받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징계하는 하나님의 막대기로 사용됩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자신을 괴롭게 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인간 막대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가면 그것이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그 사람이 막대기가 아니라 자신이 막대기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죽으면 지옥에 가지 않고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11:26에서는 제자들을 보고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성경은 구원받은 사람들을 모두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고 말씀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이 분명하게 제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는 비결이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누가복음 14장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아니하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14:27)

먼저 우리는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모든 고난이 십자가는 아닙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도 고난 당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이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십자가란 의식적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주님을 위해 선택하는 것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면 손해가 나고 고통을 당하게 될 게 뻔한데 주님을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선택하지 않아도 되지만 하나님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선택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고난을 당하지 않으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해가 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또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고난을 선택하면 그것이 바로 십자가를 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지고 어떻게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까? 누가복음 9장을 보세요. 그분께서 그들 모두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지니라.( 9:23)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을 싫어하는데 주님을 위해 그 고통을 선택하는 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부인이 필요합니다.

또 성경은 자기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십자가가 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의식적으로 고난을 선택하는 게 십자가라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지만 삶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다 다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성경은 날마다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주님의 제자입니다. 어제 십자가를 졌어도 오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오늘은 주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오늘날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구원받으면 그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우리를 구원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은 그것보다 훨씬 크고 위대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해 주시고 하늘나라로 데려가신다면 여러분은 하늘나라에 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언제나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구원하신 목적은 여러분을 하늘나라로 데려가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늘 저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 여러분에게 알려 드리겠습니다.

다시 26절을 보십시오. 그가 죽은 자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그가 죽었다, 하나 이 사람은 마귀 들렸다가 놓임을 받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람을 구속하셨고 구출해 주셨습니다. 마귀가 다시 이 사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는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죽은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물론 이 사람은 죽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마귀의 소유물도 아닙니다. 다만 이 사람은 죽은 사람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람을 자세히 살펴보니 죽은 것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마귀에게 놓인 이 사람에게서 생명의 흔적을 볼 수 없었습니다.

소위 교회에 다니고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전혀 차이가 없이 살아갑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귀로부터 놓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받았고 참된 생명을 받았지만 그 생명이 전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은 받았지만 전혀 변하지 못했습니다. 구원받기 전과 같은 장소에 가고, 같은 방식으로 얘기하고, 같은 옷은 입고, 같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죄를 짓고, 같은 방식으로 살고, 같은 신을 섬기며 삽니다. 그래서 분명히 구원받기는 했지만 죽은 자처럼 보이고 사람들은 그에게서 생명의 흔적을 전혀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구원받은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처럼 살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통제되는 삶을 살지 않는 것입니다. 지옥에 가는 것은 원하지 않고 하늘나라에 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 나아와 구원받고 하늘나라에 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저 기다리기만 할 뿐 구원받은 이후부터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와도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있는지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 건전한 교회는 복음을 전합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을 복음과 관련지어서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게 다입니다. 교회에서 항상 복음 설교만 하니까 복음 외에는 아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교회에 나오고 십일조만 내면 되는 것으로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예수 그리스도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 사람들이 여러분을 생각할까요?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분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따라 사는 예수님 같은 사람이라고 평가할까요? 여러분의 친척들은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마 여러분이 항상 성경 얘기를 하고 예수님 얘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예수님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요? 여러분이 예수님을 닮았다고 생각할까요?

여러분은 왜 믿는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때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대부분 관심을 갖지 않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지 아십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과 자신들 사이에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고 일요일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모두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9:27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의 손을 잡아 그를 일으키신즉 그가 일어서니라. 오늘 본문을 보면 사람이 마귀로부터 놓임을 받는 것과 일으켜 세워지는 것은 서로 별개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 단순히 구원받는 것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24절을 보면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즉시 그 아이의 아버지가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모두 구원받은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모두 과거에 예수님을 믿은 적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지는 못하는 것일까요? 다시 24절 뒷부분을 보십시오. 나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소서

우리는 성경이 구원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은 믿습니다. 우리는 구원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구원에 관한 말씀은 믿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처럼 사는 것은 믿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사는 것에 대해서는 믿고자 하지만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믿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성경에서 믿고 싶은 부분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2. 셋째 출생

갈라디아서 4장을 보겠습니다. 제가 읽은 대부분의 주석서들에는 갈라디아서가 행위로 구원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바로잡기 위해 기록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갈라디아서의 주제가 아닙니다. 갈라디아서는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키거나 선행을 통해서는 구원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이것은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원받고 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율법을 지키고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점입니다. 갈라디아서는 그들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가 말씀하고 있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밖에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 즉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오직 복음 설교만 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구원받는지 알고 모두 구원받았지만 어떻게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른다면 절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율법주의적인 설교만 합니다. 그런 설교만 들은 사람들도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하는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을 보겠습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되실 때까지 내가 다시 너희를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겪노라.( 4:19) 바울은 갈라디아서의 수신자들을 어린 자녀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들은 거듭났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들을 위해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분명히 구원받았고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지만 해산의 수고를 겪을 만큼 무엇인가 새로운 출발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어있던 영이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죽었던 영이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우리 안에서 엄청나게 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둘째 출생, 즉 다시 태어남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태를 통해 육신적으로 태어난 것이 첫째 출생이고 죽었던 영이 다시 태어난 것이 바로 둘째 출생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미 거듭나서 둘째 출생을 경험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겪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둘째 은혜라고 부르든 셋째 출생이라고 부르든 이단적인 가르침이라고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성령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구원받고 둘째 출생을 경험한 사람들이 다시 해산해야 하는 것과 같은 수고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분명히 둘째 출생을 했는데 다시 해산을 한 번 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받기 위한 출생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교리적으로 셋째 출생이라는 것이 있다고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저는 한 번 거듭난 사람이 다시 거듭나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은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은 엄청난 일을 겪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형성되실 때까지 하는 해산의 수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을 완전히 주관하실 때까지 하는 해산의 수고 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형성되어야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하셔야 합니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 둘째 출생이 엄청난 일인 것처럼 나를 주관하는 주체가 바뀌는 일도 엄청난 일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내 안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는 일입니다. 거듭나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해산하는 수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일이라는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내 안에서 나를 주관하던 것은 내 자아였습니다. 그런데 그 주권을 성령님께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정권교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강제로, 무력으로 내 안의 왕좌를 차지하실 수도 있지만 우리가 평화적으로 주님께 왕좌를 내어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왕좌를 주님께 내어 드리고 나서 다시 왕좌에 앉으면 우리는 불법적인 쿠데타를 일으킨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고 거듭났으면 여러분의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십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통제하고 주관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손과 발을 주관하기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눈과 혀를 주관하기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귀와 마음을 주관하기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기 원하십니다. 우리 교회에는 몸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내어 드려 주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주관하게 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갈라디아서로 돌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6, 7, 8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빌립보서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구원받고 하늘나라에 가는 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받은 우리들 안에서 자신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 밖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믿음

빌립보서 3장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절망적인 사람들이며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지를 보여주십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을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선을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선을 행하면 할수록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기는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더 열심을 내서 선을 행하지만 그럴수록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은 더욱 멀어지기만 합니다. 그래서 결국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주님 앞에 나아와 구원해 달라고 요청하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 사람을 구원해 주십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한동안 즐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기간이 일주일가량 되고, 어떤 사람들은 한 달가량 되고, 어떤 사람들은 일 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다시 역사하십니다. 설교를 들을 때나 성경을 읽을 때 마음속에 다시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위해 살지 못했다는 자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 더 열심히 다니고 성경도 더 열심히 읽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을 내고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더 비참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마음속으로는 갈등을 하고 있는데 교회에 오니 목사는 더 열심히 교회에 나와야 한다거나 헌금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설교만 합니다. 그러나 그런 얘기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합니다.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께서 여러분에게 둘째 출생을 주실 때 일어난 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다시 여러분을 특별한 축복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주님 앞으로 나아와서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스스로 구원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의 힘으로는 그리스도인처럼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직 주님의 능력만으로 저를 구원해 주신 것처럼 이제 저를 주관하시어 그리스도인처럼 살게 해 주십시오.”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자신들의 인생에 왜 이리 어려움이 많은지 의아하게 여깁니다. 자신들이 어떤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서 화가 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여러분에게 어려움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기 위해 쓰러지도록 놔두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해 절망을 주셨던 것처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기 위해 다시 절망을 주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렵고 이상한 일들을 당하는 것은 여러분이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서 그리스도를 형성하시기 위해 작업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단순히 여러분을 하늘나라로 데려가시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여러분 안에서 그리스도를 형성하시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이것은 내가 그분의 죽으심과 일치하게 되어 그분과 그분의 부활의 권능과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알고자 함이요( 3:7-10)

8절에 보시면 바울은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the knowledge of Christ Jesus)이 뛰어나기 때문이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평범한 구원받은 사람들이 구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입니다. 매주 교회에 나가서 설교와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늘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실들을 배웁니다. 설교를 듣고 책을 읽고 세미나에 다니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늘려갑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도 바울은 단순히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the knowledge of Christ Jesus)”을 갖기 원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지식그리스도 예수의 지식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지고 계신 그 지식을 얻기 원한 것입니다. 주님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같아지기를 원한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과 자신의 마음이 같아지기를 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것과 자신이 행하는 것이 같아지기를 원한 것입니다. 주님의 동기와 자신의 동기가 같아지기를 원한 것입니다.

단순히 주님께서 하신 일을 알고자 하는 게 아니라 주님께서 어떻게 하셨는지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셨던 곳이 어디였는지 알고자 하는 게 아니라 주님처럼 걷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게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 둘의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구원받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얻기 원합니다. 그리고 지식을 얻으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히브리서 5:8에서 그분께서 아들이실지라도 친히 고난 받으신 일들로 말미암아 순종하기를 배우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고난 받으신 일들을 통해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하늘에 앉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죽음이 무엇인지 아셨습니다. 죽음에 관해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의 느낌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죽음의 고통을 당하실 때 이것을 배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친구에게 배반당하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셨습니다. 거짓말을 당하고, 마음이 깨지고, 굶주리고, 목마르고, 육체의 고난을 당하는 게 무엇인지 배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배우신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지식을 갖기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을 통해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식과 물질을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원한다고 하다가도 고난을 당하게 되면 도망가 버립니다.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기는 원하지만 어떤 것도 포기하고자 하지는 않습니다. 구원받기는 원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기는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기는 했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없이 영광만을 원합니다. 우리는 죽음 없는 부활을 원합니다. 우리는 상급을 원하지만 자신의 십자가를 지기는 싫어합니다.

바울이 고백한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은 자신에게 이득이던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해 손실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이득인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해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이득과 그리스도 중 하나를 택해야 할 때 지체 없이 그리스도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택하면 고난과 죽음까지도 각오해야 했지만 지체 없이 그리스도를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서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는 것 이상이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형성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었던 것처럼 이것도 행위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율법주의를 통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형성되시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율법이나 선행이나 규율 같은 것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 바울을 통해 빌립보서를 기록하신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행위로 구원받으려는 헛된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알고 나서 그런 생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구원받고 나서 다시 헛된 생각에 빠져버렸습니다. 만일 우리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었다면 우리의 힘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 가기를 원하실까요?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을 선포하기를 원하실까요?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섬기기를 원하실까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왜 그러한 것들을 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주관하시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주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나 기분이 내키지 않을 때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예수님이 아닌 여러분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예수님이 아닌 여러분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를 할지 말지를 예수님이 아닌 여러분의 육신이 결정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구원받기는 했지만 그리스도인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 구원받을 때와 동일하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구원할 수 없음을 깨닫고 주님 앞에 나아와서 주님을 신뢰했듯이 스스로 바르게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주님 앞에 나아와서 주님을 신뢰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히 바른 삶을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시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으십니다. 여러분의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시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으십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을 때 예수님을 믿고 모든 구원의 문제를 그분께 맡긴 것처럼 다시 그분께 여러분의 인생을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시면 이상한 얘기가 나옵니다. 어찌하든지 내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도달하려 함이라.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바울은 아직 자신이 죽은 자들의 부활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달하려 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삶입니다. 부활 이전의 삶과 부활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나중에 죽었다가 부활한 이후라야 부활 이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활하기 전에 미리 부활한 이후의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얼굴을 바라보며 영원히 하나님과 살기 전에 이 세상에서 주님처럼 살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휴거가 일어날 때 변할 것입니다. 그러나 몸 안에 있는 우리는 휴거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주님처럼 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아십니까? 만일 오늘밤 휴거가 일어난다면 우리의 몸 이외에는 바뀌는 것이 없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께 완전히 내어 드리는 삶을 살면 우리는 휴거 때 몸밖에 변할 게 없을 것입니다.

12절을 보세요. 나는 내가 이미 도달한 것처럼 말하지 아니하며 이미 완전한 것처럼 말하지도 아니하고 다만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를 붙잡아 이루시고자 하신 그것을 붙잡으려고 뒤따라가노라.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계속해서 13절을 보세요. 형제들아, 나는 내가 이미 붙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그것들에 도달하려고 나아가 앞에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계속해서 14절을 보세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높은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푯대를 향해 밀고 나아가노라.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이 자신은 목사가 되도록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선교사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말도 성경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런 게 아닙니다.

성경에는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부르시는 가장 고귀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을 보십시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부르실 때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부르십니다.

계속해서 29절을 보겠습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경에 의하면 누구도 구원받기 전에 예정된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하늘나라로 가기로 예정되었다든지 혹은 지옥으로 가기로 예정되었다든지 하는 것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정에 대한 말씀이 네 번에 걸쳐 나오는데 모두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구원받으면 모두 예정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예정은 하늘나라로 가는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천년왕국이나 새예루살렘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의 예정과 관련이 없습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관련이 있는 예정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여러분은 가장 고귀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 부르심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죽으면 하늘나라에 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목적은 새예루살렘에서 사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 상관없이 새예루살렘에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시는 예정입니다.

빌립보서 3장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하고 무엇을 향해 달려야 하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말과 행위를 지배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주관하시면 우리는 온전히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죄를 지으실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주관하시면 우리도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시는 게 어려운 일일까요?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주관하시면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주관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만 이 한 가지 일을 행하나니 곧 뒤에 있는 그것들은 잊어버리고(1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온전히 배우셨습니다. 여러분은 오직 한 가지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과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십시오. 그런 일들과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만드시기 위해 허락하신 일이고 사람일 뿐입니다. 나를 배반한 사람들은 모두 잊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예수 그리스도처럼 만드시기 위해 허락하신 도구일 뿐입니다. 나에게 악하게 대한 사람은 모두 잊으십시오. 밤에 눈물로 베개를 적시게 한 일과 사람도 모두 잊으십시오. 하나님께서 모두 나를 위해 허락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우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게 하시기 위해 이 모든 일들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모든 것은 잊어버리고 한 가지에만 집중하십시오. 과거에 있었던 일은 모두 잊어버리십시오. 그것들은 모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후에 겪은 모든 일과 모든 사람은, 우리를 그리스도처럼 만드시려는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들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주권을 내어드리게 하기 위해 허락하신 일입니다.

과거의 일들은 모두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에 도달해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의 인생에서 일어난 일들은 잊어버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실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순간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온전히 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은 채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려고 했다가는 오직 실패만 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배우고 알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왜 죄를 짓는지 아십니까? 성경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왜 가정을 망치고 교회를 망치고 자신의 간증을 망쳐버리는지 아십니까? 제가 그 이유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구원받았고 성경을 알지만 그리스도와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교회를 망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망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가정을 망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가정을 망치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도 주님을 슬프게 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상처를 받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구원받았다는 게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일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밀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일들을 바로잡으려고 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여러분이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었던 것처럼 행위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힘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주님께 고백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해서 구원받은 것처럼 자신의 힘으로는 그리스도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주님께 고백하고 주님의 도움을 구해야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구원해 주셔야 구원받을 수 있는 것처럼 오직 그리스도께서 인생을 주관하셔야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

저는 구원받고 나서 두 번에 걸쳐 크게 절망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를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부분의 구원받은 사람들이 평생 나눠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전도지를 하루 만에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저는 하루에 네 시간만 잤지만 게으르다고 하나님께 책망 받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하신 게 낭비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다른 어떤 사람보다 열심히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구원받은 걸 즐기지 못했고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과 저 자신에게 화가 난 비참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밤, 저는 너무나도 큰 죄책감이 들어서 울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더 열심히 섬기지 못하고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하지 못한 것을 주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자살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며 살던 어느 날, 저는 제가 잘못된 방식으로 살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스스로 구원할 수 없어서 예수님께 나아갔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웨슬리주의라고 부르면서 이것은 감리교회의 교리이지 침례교회의 교리가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있어 가장 놀라운 날은 과거에 제가 십자가 앞으로 나아간 날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놀라운 날은 다시 그 십자가 앞으로 돌아간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십자가 앞으로 나아갔을 때 주님께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주님, 저는 과거에도 그랬듯이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비참한 사람입니다. 저는 구원받았고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는 사실도 압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저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앞으로 제가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제 인생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결승점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온전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 수 있게 하는 능력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가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함으로 구원받은 것처럼 우리가 주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때에도 믿음이 필요했던 것처럼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도 믿음이 필요합니다.

구원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사로잡혀 마귀에게 종노릇하며 살아갑니다. 불행한 일은 구원받은 많은 사람들이 마귀로부터 놓임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마귀에게 종노릇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귀로부터 해방시켜주시고 죽은 사람처럼 쓰러져 있던 여러분을 일으켜주신 예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주관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구원받았으며 죽어서 하늘나라에 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밤 휴거가 일어난다면 하나님께서는 저의 내면을 그리스도처럼 변화시키기 위해 많은 작업을 하셔야 할 것입니다.

형제님들, 여러분의 아내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단순히 구원받은 남편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아내에게 필요한 사람은 단순히 구원받은 남편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자신을 사랑해 주는 그리스도인 남편입니다. 자매님들, 여러분의 남편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단순히 구원받은 아내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남편에게 필요한 사람은 단순히 구원받고 교회에 다니면서 잔소리나 하는 구원받은 아내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랑해 주시는 것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아내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단순히 교회에 다니는 구원받은 부모가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사랑해 주는 그리스도인 부모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십니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나 다니고 성경이나 인용하는 구원받은 사람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자신들을 사랑해서 복음을 전해주고 그리스도처럼 복이 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필요로 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처럼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세상 사람들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소망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고, 오직 그리스도께서만이 구원받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것처럼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맡김으로 구원받은 것처럼 여러분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맡김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구원받았다는 데만 만족하지 말고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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