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2013.07.08 10:2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12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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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

제임스 낙스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설교 시리즈인 The Person of Our Lord Jesus Christ을 의역한 것입니다.

 

1. 오늘 우리가 살펴볼 부분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을 보겠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믿기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셨느니라.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에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시는데 이들은 위선으로 거짓말을 하며 자기 양심을 뜨거운 인두로 지진 자들이라. 이들이 혼인을 금하고 음식물을 삼가라고 명령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사 진리를 믿고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선하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거부할 것이 하나도 없나니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히 구별되었느니라.(딤전 3:16-4:5)

 

2. 본문을 4장까지 읽은 이유는 마지막 때에 있을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와 양심의 마비에 대해서도 다루기 위해서 입니다. 성경은 디모데전서 4:1에서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항에 가기 전에는 공항을 떠날 수 없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가기 전에는 버스 정류장을 떠날 수 없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거하기 전에는 믿음을 떠날 수 없습니다.

 

3.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은 마지막 때에 더러운 영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만 미혹하는 게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도 미혹하며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은 마지막 때에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는 사람들만 마귀의 교리를 배우는 게 아니라 구원받고 하늘나라로 가는 사람들도 마귀의 교리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위선으로 거짓말을 하고 양심을 저버리고 믿음을 배반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나와 교회로 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되자 수 많은 교회 중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회를 찾기가 어려워 졌습니다.

 

4. 우리는 매우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사를 공부해보면 참된 부흥은 19세기를 끝으로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는 장로교회나 감리교회나 침례교회나 회중교회를 막론하고 모든 교회에서 사람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복음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가르치는 교회도 흔치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있는지 가르치는 교회는 매우 희귀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매우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5. 우리는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과 구원받은 사람의 목소리가 구분이 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목사가 가르치는 것과 대학교에서 구원받지 못한 교수가 가르치는 것이 거의 비슷합니다. 둘 다 심리학적 기법을 동원해서 학생과 청중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과 교회에서 성경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가르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6. 디모데전서 3:16을 보기 전에 이러한 사실을 살펴보는 것이 왜 중요할까요? 성경적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적 기독교와 이 세상의 모든 종교를 구분해 주는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같습니다. 모두 궁극적으로 같은 것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는 인간이 선한 행위를 통해 절대자에게 다다를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적 기독교만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인간을 구원하신다고 가르칩니다. 오직 성경적 기독교만이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셨다고 가르칩니다.

 

7. 마귀는 영리합니다. 500년 전에 독일에서 루터의 주도하에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이 있고 난 후 채 백 년이 지나기도 전에 독일에서는 세속적인 인문주의(휴머니즘)을 가져온 이성주의적 사고방식이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이 강하게 일어난 지역, 이를 테면 영국이나 스코틀랜드에서도 역시 강한 세속적 인문주의가 등장하게 됩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과 성경으로 돌아가게 되자 마귀는 인문주의를 통해 다시 그들을 하나님과 성경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입니다.

 

8. 19세기 중반에 현대주의(모더니즘, 진화론적 사고방식에 근거한 무신론-역주) 운동이 신학교를 휩쓸기 시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신학교가 현대주의에 영향을 받자 30-40년이 채 되지 않아 교회도 영향을 받게 되었고 결국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인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교리도 공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처녀 탄생에 관한 교리를 제거하면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교리도 자동으로 제거될 수밖에 없습니다.

 

9.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이 제거되면 남는 것은 결국 또 하나의 선한 행위를 통해 구원받는 종교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님은 석가모니나 마호멧이나 공자나 점쟁이와 같아 집니다. 예수님에게서 신성이 제거되면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그저 어떤 좋은 생각이나 제안하는 인류의 위대한 스승에 지나지 않게 됩니다.

 

10. 루터교회, 감리교회, 장로교회와 같은 개신교의 주요 교회들이 어떻게 무너져서 세속 종교와 같아졌는지를 뒤돌아보면 그 붕괴는 항상 각 교단의 신학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교수들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목사들을 길러낸 장본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러한 목사들에게 양육된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는 청중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음은 자명한 일입니다.

 

11. 1870년부터 1910년 사이에 신학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처녀 탄생은 더 이상 기독교의 핵심 교리가 아니라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1910년부터 1950년 사이의 목사들은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교회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고 마침내 오늘날에 와서는 일반적인 교회에 다니는 평범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교리를 핵심적인 교리로 여기지 않게 된 것입니다.

 

12. 제 말이 믿기지 않는 분들은 주위에 있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입증할 수 있는 구절을 하나라도 보여달라고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성경적 증거를 보여달라고 요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런 구절을 보여주지 못할 겁니다. 그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기독교라고 믿는 것에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핵심적인 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3. 우리가 킹제임스성경은 하나님의 온전한 말씀이고 다른 현대 역본들은 그렇지 않다고 믿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킹제임스성경은 누가복음 2:33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을 말씀하고 있지만 ASV(미국표준역본)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성경은 요한일서 5:7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NIV(새국제역본)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킹제임스성경과 다른 현대 역본들의 이러한 차이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14. 문제는 오늘날 일반적인 교회에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차이를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다니는 교회의 회원들 대부분이 예수님의 처녀 탄생에 관한 교리를 별로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자신들이 사용하는 성경에 이것이 어떻게 되어 있건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해 변개된 성경을 사용하면서 전혀 개의치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교리 자체가 그들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5. 문제는 새로운 역본들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교리를 변개시킨 현대 역본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탄은 오래 전부터 수고해왔습니다. 지난 백 년 동안 기독교인들의 마음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피와 처녀 탄생에 관한 교리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그러한 것들이 사라진 현대 역본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선호하는 성경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기준은 성경적 교리와 믿음이 아니라 세속적 인문주의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16. 세속적 인문주의가 교회를 장악하자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교리와 믿음과 목사와 찬송과 활동과 기준과 성경을 스스로 선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교회와 자신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쫓아내고, 예수님도 쫓아내고, 성경도 쫓아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생각에 일치하거나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만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경을 받아들였습니다.

 

17. 성경은 이러한 일들을 미리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유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교리들에 주의를 기울이리라 하시는데(딤전 4:1)

 

18. 오늘 본문인 디모데전서 3:16을 여호와의 증인들의 성경과 NIV NASV(새미국표준역본)과 기타 다른 현대 역본들의 원문이 된 웨스트코트와 홀트의 그리스어 원문에서 인용해 보겠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그는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믿기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셨느니라.

 

19. 한 단어만 바뀌었지만 모든 게 바뀌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변개된 현대 역본에서는 가 육체 안에서 나타났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는 교리를 가르치는 구절을 단어 하나만 바꿈으로 완전히 없애버린 것입니다. “가 육체 안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누구나육체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환난 때에는 사탄도 육체 안에서 나타날 것입니다.

 

20. “가 육체 안에서 나타난 것은 신비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육체 안에서 나타나셨으며 이것이 바로 신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굶주리시거나 식사를 하실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께서 낮잠을 주무셨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께서 뺨을 맞으실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보이지 않고 영원하시고 전능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얼굴에 어떻게 침을 뱉을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가 이러한 것들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21. 유혹하는 영들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마귀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성경에서 삭제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 있는 교회들이 사용하는 변개된 성경의 기원은 독일 이성주의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한 변개된 성경들의 열매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말씀들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변개된 성경들에는 오직 본성에 속한 사람들(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구절들만 남아버렸습니다.

 

22. 성경은 육체 안에서 나타나신 분이 예수님이나 그리스도나 주님이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 중 누구도 이러한 진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나타나셨다는 진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라 이성으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로 나타나셨다는 진리를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23. 우리가 여호와의 증인들과 대화를 나누면 우리는 믿음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은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합의에 도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녀 탄생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도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육체적 부활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진리들은 이해하는 게 아니라 믿는 것입니다.

 

24.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나타나셨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위대한 신비입니다. 신약성경에는 많은 신비들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에 다 살펴보지는 않겠지만 신약성경에는 21가지 신비가 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나타나신 게 위대한 신비라고 합니다. 이것은 실로 가장 위대한 신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제한적인 인간이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위대한 신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육체 안에서 나타나셨는지는 반드시 믿음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25. , 이제 어떻게 이러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누가복음 1장을 보겠습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에 의해 나사렛이라 하는 갈릴리의 도시로 보내어져서 다윗의 집에 속한 요셉이라는 이름의 남자와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렀는데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더라. 그 천사가 들어가 그녀에게 이르러 말하되, 크게 호의를 입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니 네가 여자들 가운데(among women) 복이 있도다, 하매( 1:26-28)

 

26. 성경은 마리아가 다른 여자들보다 더 복을 받았다고 하지 않고 여자들 가운데 복이 있다고 합니다. 마리아가 다른 여자들보다 더 복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로마 가톨릭에서 지어낸 이야기일 뿐입니다. 성경은 다른 여자 보다 더 복을 받은 여자는 헤벨의 아내인 야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24).

 

27.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그녀가 그를 보고 그가 하는 말에 불안해하며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인사인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니 천사가 그녀에게 이르되, 마리아야,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호의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네 태에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리라.(29-31) 수태가 일어나는 곳은 태가 아니라 나팔관입니다. 즉 이것은 예수님께서 보통의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잉태되신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남자 없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태를 하게 된 것입니다.

 

28.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크게 되고 가장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에게 주시리니 그가 영원토록 야곱의 집을 통치하며 그의 왕국이 무궁하리라, 하니라. 이에 마리아가 천사에게 이르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매 천사가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님께서 네게 임하시고 가장 높으신 이의 권능이 너를 덮으시리니 그런즉 또한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32-35) 여기에 매우 중요한 표현이 나옵니다. 성경은 마리아의 속에 잉태된 것을 거룩한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9. 주석가들과 신학자들과 현대 역본을 만든 사람들은 여기서 한 번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그들은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한 것이라고 부른다고 생각했고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이나 하나님을 거룩한 것이라고 부르는 게 아닙니다. 마리아의 태 속에서 하나님이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마리아의 태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만들어진 것도 아닙니다. 마리아의 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태 속에서 만들어진 그 몸 안에 거하러 오신 것이었습니다.

 

30.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 마리아의 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몸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신비입니다. 마리아의 태 속에 있던 거룩한 것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육신의 집이었습니다. 인간이 몸 안에 거하는 것은 전혀 신비가 아닙니다. 살아있는 모든 사람이 몸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오신 다는 것은 신비입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태평양의 모든 물을 물방울 하나처럼 여기시는 분께서, 그런 하나님께서 어떻게 작은 여인의 태 안에서 만들어진 몸 안에 거하실 수 있는지 누구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에 성경은 이것을 신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31. 여러분은 영원에서도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이해해야 하는 게 아니라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죄 가운데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태 속에 형성된 그 몸 안으로 들어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32. 히브리서 10장을 보겠습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가 죄들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니라. 그러므로 그분께서 세상에 들어오실 때에 이르시되, 희생물과 헌물은 주께서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 10:4-5)

 

33. 성경이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성경은 그분께서 세상에 들어오실 때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존재하셨다는 뜻입니다. “친구가 방으로 들어올 때라고 하기 위해서는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친구가 존재해야만 합니다. 친구가 방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존재하게 된 게 아닙니다. 미리 존재해야지만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34. 계속해서 중요한 표현을 보겠습니다. “…희생물과 헌물은 주께서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5) 몸이 예비되기 전에도 예수님은 존재하고 계셨습니다. 이미 존재하고 계셨던 예수님께서 예비된 그 몸 안으로 들어가신 겁니다.

 

35. 요한복음 1장을 보겠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Word)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1:1)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말씀은 영어로는 대문자 “W”로 시작합니다. 이것은 항상 성경이 아닌 하나님의 의미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the word of God)인 성경을 의미할 때는 항상 소문자 “w”로 표시합니다.

 

36.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바로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더라. 그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2-5)

 

37.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자입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며 창조자이시며 생명이시고 빛이십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4) 하나님께서 존재하십니다. 그러나 누구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나타나셨고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38. 잠깐 다시 디모데전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장을 보겠습니다. 이제 영원하신 왕 곧 죽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홀로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딤전 1:17)

 

39. 영원하신 왕 누가복음 1:33은 예수님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가 영원토록 야곱의 집을 통치하며 그의 왕국이 무궁하리라. 예수님은 영원하신 왕입니다.

 

40. 죽지 아니하시고 영원하신 왕은 죽지 아니하시는 왕입니다. 아니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해야 하는 존재는 반드시 인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을 대신해서 죗값을 치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죽을 수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몸을 가지기 전까지는 결코 죽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처녀탄생과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신 것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오직 누군가 인간의 죗값을 치러주어야지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하나님께서는 죽을 몸을 가지고 계시지 않기 때문에 죽으실 수가 없었습니다.

 

41. 보이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죽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보이지도 아니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육체 안에 나타나셨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이나 인본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본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본을 보여줘도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없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바른 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죽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지 못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길을 걷고 그분을 따른다 해도 죗값을 치르지 못하면 죽어서 지옥에 가게 됩니다.

 

42. 갈라디아서 4장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충만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made of a woman) 율법 아래 있게 하셨나니( 4:4) 성경은 예수님께서 여자에게서 나셨다(made of a woman)”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에게서 나옵니다(made of a man and a woman). 그러나 예수님은 여자에게서 나셨습니다. 이 세상에 예수님과 같은 방식으로 태어난 아기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남자의 협력 없이 오직 여자에게서 나셨습니다.

 

43.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선한 삶을 살도록 본을 보이게 하려 하심이라.성경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구속하시고 또 우리가 아들로 입양되게 하려 하심이라.(5)

 

44. 하나님께서는 왜 육체로 나타나셨습니까?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육체로 나타나셔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45. 창세기 3장을 보겠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일을 행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평생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그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3:14-15)

 

46. 성경은 여자에게 씨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이상한 말입니다. 인간은 오직 남자만 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씨가 마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명백하게 처녀 탄생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것은 아담의 씨가 아닌, 인간 아버지의 씨가 아닌 오직 여자에게서만 태어난 사람에 대한 말씀입니다.

 

47. 이사야서 7:14을 보겠습니다. 먼저 이것을 웨스트코트와 홀트 계열의 변개된 성경에 나와 있는 것처럼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젊은 여자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만일 성경이 정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면 오늘날 우리는 수 많은 표적을 볼 수 있습니다. 젊은 여자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은 표적이 아닙니다. 이런 일은 흔하게 일어납니다.

물론 여자가 아들을 낳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표적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처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7:14)

 

48. 여러분은 임마누엘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1:23). 아담의 씨를 통해 출생한 사람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남자의 씨를 통해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여자에게 임하셔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씨를 여자의 태에 주셔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49. 이사야서 9장을 보겠습니다. 이는 한 아이가 우리에게 태어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권이 놓이고 그의 이름(name)은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라 할 것이기 때문이라.( 9:6)

 

50. 성경은 그의 이름들”(복수)이라고 하지 않고 그의 이름(단수)이라고 합니다. 처녀 탄생을 할 아이가 여러 명이 아니라 단 한 아이이기 때문입니다. 놀라우신 이, 조언자, 강하신 하나님, 영존하는 아버지, 평화의 통치자 라는 이름이 모두 한 아이에 대한 묘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강하신 하나님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구유에 누워있던 바로 그 아이였습니다. 영존하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베들레헴에서 한 아이로 태어나신 바로 그분입니다.

 

51. 우리에게 한 아이가 태어났고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는 아니었습니다. 강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존하는 아버지이신 분께서 마리아의 태에 예비된 육체 안으로 들어오셨을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아무도 할 수 없었던 것을 하실 수 있었고 여러분과 저의 죗값을 치르실 수 있었습니다.

 

52. 고린도전서 15장과 갈라디아서 3장과 사도행전 2장을 보겠습니다. 먼저 갈라디아서 3장을 보겠습니다. 이제 그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의 씨에게 하신 것인데 그분께서 여럿을 가리키며, 씨들에게, 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를 가리키며, 네 씨에게, 하시나니 이 씨는 그리스도시니라.(3:16)

 

53.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하신 예언의 약속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고 성취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한 씨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반드시 육체를 입으시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이루실 것임을 의미합니다.

 

54. 고린도전서 15장을 보겠습니다. 또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을 너희에게 밝히 알리노니 너희 역시 그 복음을 받았으며 또 그 가운데 서 있느니라.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것을 기억하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또한 그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고전 15:1-4)

 

55. 복음의 핵심 진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해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삶도 위대한 것이었지만 그것은 복음의 핵심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들로 인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묻히신 것이나 부활하신 게 우리의 죄들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죽으신 게 우리의 죄들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물로 묻히심과 다시 일어나심도 복음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죗값을 치른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56. 계속해서 고린도전서 15장을 보겠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사망이 사람을 통해 임한 것 같이 죽은 자들의 부활도 사람을 통해 임하였나니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되리라.(고전 15:21-22)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지 않으셨다면 인간에게는 어떠한 희망도 없었을 겁니다. 죽음이 인간을 통해 이 세상에 왔기 때문에 승리도 인간을 통해 와야만 했습니다.

 

57. 계속해서 3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어떻게 죽은 자들이 일으켜지느냐? 그들이 어떤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너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것이 죽지 아니하면 살아나지 못하고 또 네가 뿌리는 것으로 말하건대 네가 앞으로 있을 그 몸을 뿌리지 아니하고 밀이든 어떤 다른 곡식이든 다만 맨 알갱이를 뿌리되 하나님께서 친히 기뻐하시는 대로 그것에게 몸을 주시며 또 모든 씨에게 그것 자체의 몸을 주시느니라.(고전 15:35-38)

 

58. 모든 씨에게 그것 자체의 몸을 주시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자의 씨로 오셨고 그 자신의 몸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으로부터 일어나시기 위해 몸을 입으셔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일어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죽으셔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나타나셨다는 진리는 복음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처녀 탄생과 그리스도의 신성과 죽으심과 묻히심과 부활하심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진리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단순히 선한 인간이었다면 결코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그저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라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분은 반드시 처녀 탄생을 통해 오신 창조자 하나님이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복음이 없는 것입니다.

 

59. 계속해서 39절을 보겠습니다. 모든 육체가 같은 육체는 아니니 한 종류는 사람의 육체요, 다른 것은 짐승의 육체요, 다른 것은 물고기의 육체요, 다른 것은 새의 육체라. 또한 하늘에 있는 몸들도 있고 땅에 있는 몸들도 있으나 하늘에 있는 것들의 영광이 이러하고 땅에 있는 것들의 영광이 저러하니라. 해의 영광이 이러하고 달의 영광이 저러하며 별들의 영광이 또 다르니 이 별과 저 별이 영광 면에서 다르도다.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라. 그것은 썩는 것 가운데 뿌려지고 썩지 않는 것 가운데 일으켜지며 수치 가운데 뿌려지고 영광 가운데 일으켜지며 연약함 가운데 뿌려지고 권능 가운데 일으켜지며 본성에 속한 몸으로 뿌려지고 영에 속한 몸으로 일으켜지나니 본성에 속한 몸이 있고 영에 속한 몸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더라,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느니라. 그러나 영에 속한 것이 첫째가 아니요, 본성에 속한 것이 첫째며 그 뒤에 영에 속한 것이니라.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나서 땅에 속하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로부터 나신 주시니라. 땅에 속한 자들은 또한 땅에 속한 그 사람과 같고 하늘에 속한 자들은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과 같으니 우리가 땅에 속한 그 사람의 형상을 지닌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하신 그분의 형상을 지니게 되리라. 형제들아,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살과 피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을 수 없으며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상속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보이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39-53)

 

60. 휴거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죽으면 여러분의 몸은 썩게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몸은 이미 썩었습니다. 그들은 썩지 않고 죽지 않는 몸을 입어야 합니다. 저는 살아 있지만 죽을 몸을 입고 있습니다. 제가 죽으면 사람들은 저를 땅을 묻을 것이고 저의 몸은 썩기 시작할 것입니다. 54절을 보세요. 그리하여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기록된바,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졌도다,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61. 썩을 것은 죽은 몸을 의미합니다. 썩지 아니함은 부활을 의미합니다. 죽을 것은 우리의 현재 몸을 의미합니다. 죽지 아니함은 휴거를 의미합니다. 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졌도다, 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오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55) 아직 사망은 저에게 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사망이 저의 몸을 쏠 것이며 저는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힘은 율법이니라.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56-57)

 

62. 제가 어떻게 죽음에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을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야만 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썩음에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썩음을 입으셔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승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63. 사도행전 2장을 보겠습니다.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들을 들으라. 너희 자신도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님을 통하여 기적들과 이적들과 표적들을 너희 한가운데서 행하사 그분을 너희 가운데서 하나님의 인정받은 사람으로 삼으셨느니라. 그분께서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미리 아심을 통하여 넘겨지매 너희가 그분을 붙잡아 사악한 손으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일으키셨으니 이는 사망이 그분을 붙들 수 없었기 때문이라. 다윗이 그분에 관하여 말하되, 내가 항상 내 얼굴 앞에 계신 주를 미리 보았나니 그분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더욱이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안식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 혼을 지옥에 남겨 두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가 썩음을 보지 아니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들을 내게 알려 주셨으니 주의 얼굴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이다, 하느니라. 사람들아 형제들아, 내가 족장 다윗에 대하여 거리낌 없이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의 돌무덤은 이 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도다. 그런즉 그는 대언자이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자기에게 서약으로 맹세하사 육체에 따라 자기 허리의 열매에서 그리스도를 일으켜서 자기 왕좌에 앉히실 것을 알았고 또 이것을 미리 보았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혼이 지옥에 남겨지지 아니하였고 그의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느니라.( 2:22-31)

 

64.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혼은 지옥에 있었고 예수님의 몸은 썩지 않고 부활했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죽어 썩음을 향해 나아갔으나 삼일 밤낮이 지난 후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그 몸 안으로 들어오셨으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 몸을 일으켜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죄를 이기셨고 무덤에서 죽음을 이기셨으며 땅의 심장에서 지옥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셨을 때 죄와 죽음과 지옥은 패배 당했습니다.

 

65.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원인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나타나신 것은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66. 누가복음 24장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이같이 말할 때에 예수님께서 친히 그들의 한가운데 서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라. 그러나 그들이 무서워하고 놀라며 자기들이 영을 본 줄로 생각하매( 24:36-37)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은 죽었던 몸으로 생명이 다시 돌아오는 것입니다.

 

67.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불안해하며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염려하느냐?(38) 제가 복음서를 좋아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아십니다. 사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속을 아시는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아시지만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하나님께 말하기를 원하십니다.

 

68.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니라.(39)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베들레헴으로 오셨고 육체를 입고 거리를 다니셨고 육체를 입고 삼 년 반 동안 설교하셨고 육체를 입고 죽으셨고 육체를 입고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69. 계속해서 50절을 보겠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시더라. 그분께서 그들을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위로 올려져서 하늘로 들어가시니라. 그들이 그분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계속해서 성전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송하니라. 아멘.(50-53) NASV(새미국표준역본)에는 그들을 떠나 위로 올려져서 하늘로 들어가시니라.”는 부분이 삭제되어 있습니다.

 

70. 저희 교회 성도님들 덕에 지난 번에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특히 3곳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이 장소들이 실제 역사적인 장소인지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첫째 장소는 예수님께서 설교하셨던 작은 회당입니다. 둘째 장소는 동산 무덤이었습니다. 그리고 셋째 장소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셨던 장소였습니다. 저는 그 곳에 서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곳을 밟으시면 그곳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것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71.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태에 있던 몸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몸을 입으시고 걸으셨고 설교를 하셨으며 죽으셨고 다시 일어났으며 셋째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72. 다시 디모데전서로 돌아가겠습니다. 2장을 보겠습니다.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 2:5)

 

73. 지금 여러분과 저를 위해 중보하시려고 아버지 하나님 오른편에 누가 앉아 계신지 아십니까? 인간의 육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앉아 계십니다. 그분은 인간이시기 때문에 우리와 통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과 통할 수 있습니다.

 

74. 제가 어떻게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길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부활할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활할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늘나라에 갈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갈 수 있습니다. 제가 어떻게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승리할 수 있습니다.

 

75. 스가랴 13장을 보겠습니다. 또 사람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두 손에 있는 이 상처들은 무엇이냐?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들은 내가 내 친구들의 집에서 입은 상처들이라, 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오 칼아, 깨어서 내 목자 곧 내 동료인 그 남자를 치라. 목자를 치라. 그리하면 양들이 흩어지리니 내가 내 손을 돌이켜 작은 자들 위에 두리라.( 13:6-7)

 

76. 이것은 아마 주님의 부활 이후에 누군가 주님을 본 것에 대한 묘사일 것입니다. 성경은 흉터가 아니라 상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하셨을 때도 여전히 손에는 구멍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도마에게 그 구멍으로 손가락을 넣어보라고 하셨던 겁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옆구리에도 여전히 구멍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도마에게 그 구멍으로 손을 넣어보라고 하셨습니다.

 

77. 스가랴는 주의 날에 대한 예언의 책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에 대해 묘사하면서 주님께서 여전히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12장을 보세요. 또 그 날에 내가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모든 민족들을 멸하려 하리라.”(9) 이것은 아마겟돈에 대한 설명입니다. 계속해서 다음 절을 보겠습니다.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주민들 위에 은혜의 영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나 곧 자기들이 찌른 나를 바라보고 사람이 자기 외아들을 위하여 애곡하듯 그를 위하여 애곡하며 사람이 자기의 처음 난 자를 위하여 쓰라리게 슬퍼하듯 그를 위하여 쓰라리게 슬퍼하리로다.(10)

 

78. , 이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요? 마리아의 태에 예비되었던 그 몸이 십자가에 매달렸었고 셋째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 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79. 마지막으로 고린도후서 5장과 사도행전 1장을 보겠습니다. 먼저 고린도후서 5장을 보겠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이 장막 집이 해체되면 하나님의 건물 곧 손으로 지은 집이 아니요, 하늘들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의 집으로 옷 입기를 간절히 원하노니 우리가 옷 입고 있으면 벌거벗은 채 드러나지 아니하리라.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을 진 채 신음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입고자 함이니 이것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우리를 다듬으시고 또한 우리에게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확신에 차서 우리가 몸 안에서 집에 거하는 동안에는 주로부터 떨어져 있는 줄을 아노니 (우리는 믿음으로 걷고 보는 것으로 걷지 아니하노라.) 내가 말하노니 우리가 확신에 차서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 5:1-8)

 

80. 1절에서 말하는 장막 집은 우리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거하고 있는 곳, 즉 우리 몸을 의미합니다. 장막은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장막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집인 저의 몸은 죽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나타나셨을 때, 그 육체가 하나님은 아니었습니다. 그 육체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집이었습니다.

 

81.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면 죽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죽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82. , 제 말을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으십니다. 영원히 사십니다. 여러분도 죽지 않습니다. 영원히 삽니다. 다만 영원히 사는 곳이 하늘나라냐 지옥이냐가 문제일 것입니다. 육체의 죽음은 썩음입니다. 육체는 썩게 됩니다. 죽으면 혼은 몸을 떠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몸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몸은 썩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죽으실 수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죽을 몸 안에 들어오시면 하나님의 몸도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83. 만일 제가 이 자리에서 죽으면 여러분은 저의 호흡과 박동을 확인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확인하고 있는 것은 저의 몸입니다. 저는 살아있을 때는 그 몸 안에 있지만 죽으면 더 이상 그 몸 안에 있지 않습니다. 제가 죽으면 저의 몸은 이곳에 남아있어도 저는 여기에 없습니다. 다른 곳으로 가고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저의 몸을 무덤에 묻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저의 죽은 몸을 일으키시면 저는 다시 이 몸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저의 몸은 죽지만 저는 죽지 않습니다.

 

84. 하나님께서 입고오신 육체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혼은 죽지 않았습니다. 지옥에 가서 우리의 죄를 모두 처리하고 열쇠로 문을 열고 나와서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선포하시고 낙원에서 구원받은 강도와 만나 교제를 나누셨고 낙원에 있던 모든 혼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85. 몸은 우리가 거하는 집입니다. 저도 몸 안에 거하고 있고 여러분도 몸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저도 육체 안에서 나타났고 여러분도 육체 안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신비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육체 안에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서 나타나신 이유는 여러분과 저를 대신해서 죽기 위해서였습니다.

 

86. 마지막으로 사도행전 1장을 보겠습니다. 이것들을 말씀하신 뒤에 그분께서 그들이 보는 동안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분을 받아들여 그들이 보지 못하게 하더라. 그분께서 올라가실 때에 그들이 똑바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보라, 흰옷 입은 두 남자가 그들 곁에 서며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1:9-11)

 

87. 예수님께서는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올라가셨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 육체를 입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아마겟돈에서 예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은 예수님을 죽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미 죽으셨다가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승리하실 것이고 우리도 그분을 통해 승리할 것입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믿기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셨느니라.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여러분의 신앙의 기준이 여러분 자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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