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2
1월 8일-14일
James W. Knox 지음
1월 8일
“그 저녁과 아침이 다섯째 날이더라.”(창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날들이 문자적으로 24시간인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아마도 어떤 분들은 창세기의 날들은 측정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지질학적 시대일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이런 견해는 진화론을 포기하지 않은 채 창조를 받아들이려는 분들에 의해 제기되었습니다.
날(day, 또는 낮)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3가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첫째, 낮은 24시간의 일부로 더 큰 광명(태양, 창
둘째, 이 단어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따로 떼어 놓은 날을 의미하는 바, 예를 들면, “속죄일(the day of atonement, 레
셋째, 특정한 목적이 달성되는 기간으로 (길건 짧건 간에), 예를 들면, “주의 날(the day of the Lord)”과 같은 경우 입니다.
이 구절들을 보면 인간에게 노동할 것을 요구하신 6일간과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이루신 6일이 나란히 제시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이 24시간의 휴식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주님께서 직접 선택하신 그 날이 다름아닌 24시간 임을 부인하려고들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6개의 지질학적 시대 동안 일하고 나서 빙하기에는 안식하고 그리고 나서 다시 일을 시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야 말로 창세기 1장의 날들을 문자적으로 그대로 해석해야 할 가장 강력한 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날(낮, day)”이라는 단어는 창세기에서 75번 쓰였습니다. “날들(days)”은 63번 쓰였습니다.
신약성경 중 빌레몬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제외하고는 모든 책들이 창세기에서 인용하거나 창세기와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창세기 50장 중 43장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1월 9일
창조의 순서
창세기 1장에 따른 창조의 순서를 주의 깊게 주목해 주십시오.
1. 하늘들
2. 땅
3. 물
4. 빛
5. 궁창
6. 풀
7. 채소
8. 나무
9. 천체의 나타남
10. 물고기
11. 움직이는 것들
12. 날짐승들
13. 가축
14. 기는 것
15. 땅의 짐승
16. 인간
그런데 이 순서는 과학자들이 인정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것은 결코 추측일 수 없습니다. 만약 5가지 종류의 순서를 정하려면 120가지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9종류의 순서를 정하려면 362,800가지가 추측 가능합니다. 문제는 15가지를 추측하려면 1,307,674,367,900분의 1의 확률로 정확한 순서를 맞출 수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1월 10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창
이 말씀에서 형상이란 키나 몸무게나 피부색에 관한 언급이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볼 수 없는 분이니까요(딤전
형상이란 하나님의 삼위일체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말씀, 그리고 성령으로 영원히 존재하시며 이 셋은 하나입니다(요일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셨습니다(골
비록 죄가 모든 것을 망가뜨렸지만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고전
그러나 그 모양(likeness)을 회복하려면 성령님께서 믿는 자 안에서 지속적으로 사역하셔야만 합니다.
토셉타(Tosephta)는 산헤드린 8장 7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왜 인간은 마지막으로 창조되었을까? 이는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하실 때 동료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 다시 말해 인간이 하나님의 우주 창조에 자기도 관여했다고 주장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인간을 마지막으로 창조하셨다는 말 입니다.
1월 11일
“지배하게”(창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세계의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인간은 단지 천사들보다 약간 낮을 뿐 모든 짐승들, 날짐승들, 물고기들보다 더 높은 존재였습니다(히
그런데 이 통치권이 동산에서 자발적으로 사탄에게 넘겨지고 말았습니다. 이후로 루시퍼가 이 세상의 신(고후
비록 인간에게 자연을 다스릴 약속의 권능이 남아 있긴 하지만(창
비록 인간이 죄를 짓기 전의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통해 일부 회복할지 모르지만(욥
1월 12일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더라.”(창
창조물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별들 안에서 혹은 하늘들을 뒤짐으로써 하나님을 발견 할 수는 없습니다. 흙을 파고 바위를 뚫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숲을 탐험하고 바다 속을 뒤진다고 해도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창조물은 모두 다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두려우신 힘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창조주께서 손으로 행하신 일들을 통해 다섯 가지의 신적 속성이 계시되고 있습니다.
1. 그분의 영광(시 19장)
별이 빛나는 하늘이나 태양의 찬란한 비춤 속에서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의 장엄함은 그와 같은 경이로움을 만드신 분의 손길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2. 그분의 권능과 신격( 1:18-21)
모든 인간은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인간은 주변을 돌아보고 자기가 모든 것들의 총합이 될 수 없음을 알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총합보다 더 크신 분께서 그의 울부짖음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3. 보잘것없는 인간을 향한 그분의 사랑(시 8:3-9)
경이로움 중의 경이로움은 저 은하계 넘어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이 아니고, 그 하나님께서 인간의 형체를 입고 돌아다니고 있는 먼지 덩어리 같은 인간에게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4. 그분의 섭리적 돌보심(사 40:12 이하)
그분께서는 우리의 행실을 보실 뿐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우리가 불평하거나 항의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을 강요라도 할 수 있나요? 그러나 그분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돌보시는 것입니다.
5. 그분의 지혜와 권능(욥 38-39장, 28:23-28, 잠 3:19)
그분의 놀라운 길들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어 존재합니다.
1월 13일
“주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명의 숨을 그의 콧구멍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혼이 되니라.”(창
인간을 높이고 인간에게 영광을 돌리는 자들은 그 잘못에서 돌이키기 전에는 결코 성경을 읽을 수가 없을 겁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화강암이 아니라 먼지에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은 약하고 나약해서 은신처와 필수품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성경은 사자, 곰, 용들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 중 최고인 자를 목자 없이(마
성경에는 튼튼한 나무와 삼림이 나오고 있지만 가장 강한 인간은 소멸할 수 밖에 없는 시드는 풀로 묘사합니다(사 40:7-8, 약
성경은 오래 존재하는 언덕들과 산들을 보여주면서도 우리의 人生을 즉시 지나가버리는 수증기(약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독립적인 존재로 만드시지 않고 창조주에 의존하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스스로 충분한 존재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넉넉함을 얻도록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스스로 보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성령님의 돌보심으로 보존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나약함 때문에 절망하며 이 나약함이 우리를 비천하게 만듭니다. 이 모든 것은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세우신 위대한 계획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기 위해 권능과 긍휼을 보이시는 유일하신 그분에게로 돌이킬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구조를 아시며 우리가 먼지임을 기억하시는도다.”(시 103:14)
수사학에는 반복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떠한 사실을 먼저 진술해 놓고 이를 더 자세히 설명할 목적으로 다시 반복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인간은 모든 창조물 중 하나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는 창조주와의 관계에서 인간이 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1월 14일
창조를 거부한다는 것
제2차 세계대전의 원인을 설명하는 가운데 작크 마틴 바준(Jacques Martin Barzun) 박사(콜롬비아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치는 서양 문명의 전체에 걸쳐 어느 정도 수용되고 있는 한 사상을 논리적인 한계까지 이끌고 갔을 뿐이다. 그것은 진화와 발전이란 생명을 보존하고자 죽기까지 싸우는 가운데 적자생존의 결과로 얻은 것이라는 환상적인 사상이다.”
바준 박사의 책에 대해 타임지는 다음과 같은 평을 했다고 합니다.
“바준 박사는 이 모든 문제를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1859년으로 되돌린다. 이때는 마르크스가 경제학 비평을 그리고 리챠드 와그너(독일의 작곡가요 시인)가 프리스탄과(Tristan)과 이솔데(Isolde)를 완성할 때였다. 이들 세 사람은 레닌과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지적 선구자였다. 오만하고 현대적인 이교주의가 지난 천년 간 보다 더 많은 유럽을 재 정복해 버린 것이다.”
적어도 한 사람의 지성인이 1914-1952년까지의 전쟁으로 빚어진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종교적인 성격을 지녔음을 직시하였던 것입니다. 무신론이라는 종교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해 전쟁을 한 것입니다. 자본주의자들은 진화를 가르치고 공산주의자들과 나치, 그리고 파시스트는 진화론을 실천합니다. 전자는 더 위선적이고 후자는 더 공격적입니다. 모두가 자신들이 부인하는 하나님의 손에서 합당한 보응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