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2013.12.08 18:40

성경의 구원-4 놋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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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놋 뱀

제임스 낙스 지음 / 이우진 옮김

이 글은 제임스 낙스 목사님의 설교 시리즈인 Salvation Sermon Series를 의역한 것입니다.

 

1. 사탄은 실제 뱀은 아니지만 간교하게 속이는 자입니다

1. 우리가 놋 뱀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잠시 성경에서 가장 먼저 이슈가 된 나무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그 나무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그 나무 앞에서 마귀는 이브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이 뱀(serpent)으로 이브 앞에 나타났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사탄이 일반적인 뱀(snake)이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2. 뱀은 사탄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탄을 옛 뱀이요, 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뱀은 사탄을 상징할 뿐이지 뱀 자체가 사탄은 아닙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것만을 사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항상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 안에 머무는 게 가장 안전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얻기 원하는 정보를 성경이 제공하지 않으면 거기서 멈춰야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지 않는 것을 추측하거나 만들어내서 교리로 삼을 필요는 없습니다.

 

3. 우리는 성경을 통해 사탄이 교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의하면 사탄은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였습니다. 그러나 뱀이 자기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 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부패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고후 11:3)

 

4. 성경은 계시록에서 이 사탄이 용이라고 말씀하고 있고, 욥기41장과 이사야서 27장에서는 리워야단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일반적인 뱀이 마귀나 사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5. 민수기 21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정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할 때 어린양의 피를 통해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의 순결한 피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어린양의 피를 문기둥에 뿌림으로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한밤중에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향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6. 민수기 21을 보겠습니다. 남쪽에 거하던 가나안 족속 아랏 왕이 이스라엘이 정탐꾼들의 길로 왔다는 말을 듣고 이스라엘과 싸워 그들 중에서 몇 사람을 죄수로 사로잡으니라. 이스라엘이 주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그들의 도시들을 진멸하리이다, 하매 주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족속을 넘겨주시니 그들이 저들과 저들의 도시들을 진멸하니라. 그가 그곳의 이름을 호르마라 하니라. 그들이 호르 산에서 이동하여 홍해 길로 에돔 땅을 돌아가려 하였으나 그 길로 인해 백성의 혼이 심히 낙담하여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대적하며 말하되, 어찌하여 당신들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와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거기에는 빵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혼이 이 푸석푸석한 빵을 싫어하노라, 하매 주께서 불 뱀들을 백성 가운데로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이 죽으니라.( 21:1-6)

 

6.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고 거부하는 옛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옛 본성은 우리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우리가 옛 사람과 육신을 부인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변화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시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자랑하거나 그것으로 인해 행복해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으로 인해 복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듣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되도록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2. 심판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7. 불 뱀이 사람들을 물고 죽였던 이 사건을 다루기 전에 먼저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때에 홍수를 보내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 불을 보내셔서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불에 타 죽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던 그 밤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집트를 두루 돌아다니시며 문기둥에 피를 뿌리지 않은 모든 집의 장자를 죽이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일을 하신 동일한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불 뱀을 보내셔서 사람들이 광야에서 물려 죽게 하셨습니다.

 

3. 민수기는 신약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8. 여러분이 민수기를 마지막으로 읽으신 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점은 민수기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민수기에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회중이 나오고 그 회중을 이끄는 한 사람이 나옵니다. 민수기에는 회중과 회중의 영적 지도자, 그리고 그 영적 지도자와 회중과 하나님의 관계가 나옵니다. 민수기는 영적으로 오늘날 지역교회들에 많은 교훈을 줍니다. 민수기에는 성경의 그 어느 책보다 지역교회의 실행과 관련된 많은 교훈이 나옵니다.

 

9. 민수기는 어린양의 피를 통해 구원받은 회중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지도자와 함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그림을 실제적으로 보여줍니다. 여러분이 민수기를 자세하게 읽어보면 거기에는 오늘날 우리도 영적인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건이 나옴을 알 수 있습니다. 간음, 음행, 우상숭배 등 오늘날 교회에서 실제적으로, 또 영적으로 일어나는 범죄들이 등장합니다.

 

10. 여러분이 민수기에 나오는 사람들의 특성을 보면 완악하고 불평을 잘하고 수군거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에 대해 불만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보다 신약성경의 지역교회를 더 잘 보여주는 그림은 없을 겁니다. 사람들은 목사의 설교에 대해 불평하고 찬송에 대해 불평합니다. 심지어 그가 목사라는 이유로 모든 불평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모세가 당했던 일이고 하나님께서 들으셨던 사람들의 불평이었습니다. 민수기를 통해 주신 이러한 예표는 불평하고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 불만으로 가득 찬 신약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은 잘 보여줍니다.

 

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 뱀으로 심판하신 이유는 그들이 주님께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11. 하나님께서 이 회중에게 불 뱀을 보내신 이유는 그들이 금송아지 앞에서 옷을 벗고 춤추며 우상숭배를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이 성적으로 문란하게 행동했기 때문도 아니고 다른 거짓 신을 섬겼기 때문도 아닙니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불 뱀을 보내신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대해 불만으로 가득 차서 불평했기 때문입니다.

 

12.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살인을 한 적이 없고, 간음을 한 적이 없고 도둑질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죄의 기준보다 현저하게 낮은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이나 간음이나 도둑질뿐만 아니라 불평하는 것도 죽을만한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 영광의 왕좌에 앉아계신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피를 통해 구원받아, 그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킹제임스성경을 믿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바른 지역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에게서 듣고 싶어하시는 게 과연 무엇일까요? 아마도 음식에 대한 불평이나 앉는 자리에 대한 불평이나 다른 사람의 기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나 다른 형제 자매에 대한 불평이나 험담은 아닐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셨듯이 오늘날 우리를 다루신다면 우리 교회에는 수 많은 불 뱀이 득실댈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 뱀에 물려 죽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14. 이 세상에서 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유일한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여러분과 저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받은 영적인 복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아무리 많은 돈과 멋진 옷과 좋은 집과 차와 직장과 민주주의 국가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과거에 이 세상에 살았던 그 어떤 사람보다 더 많은 물질과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15. 게다가 우리는 하늘나라의 축복과 죄의 완전한 용서와 단 하나의 오류도 없는 성경과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시고 떠나지도 않으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우리처럼 큰 축복을 받았던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우리는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사람들보다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그리스도인보다 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살았던 그 누구보다 더 큰 불만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제라는 것들은 이전에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문제도 아니던 것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에어컨이 잘 작동하지 않아서 덥다거나 히터가 잘 작동하지 않아 춥다고 불평하지만 지난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러한 것이 아예 있지도 않았습니다.

 

16. 우리가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과거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우리가 지금 불평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면 그들은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붕에서 물이 센다고 불평할지 모르지만 과거에 살았던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아예 지붕 자체가 없는 집에 살았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지붕에서 물이 세서 하나님께 불평했었다고 하면 그들은 우리가 지붕이 있는 집에 살았었다는 사실에 놀라워할 것입니다.

 

17.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진정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우리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우리가 받지 않은 것, 지금까지 살았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도 받은 적이 없는 것들을 가지고 불평을 하고 있는 우리는 무엇인가를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는 그러한 착각이 모두 완전히 깨질 것입니다.

 

18.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5절을 보세요.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대적하며 말하되, 어찌하여 당신들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와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거기에는 빵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혼이 이 푸석푸석한 빵을 싫어하노라, 하매

 

19. 오늘날 신약교회의 성도들도 이것과 완전히 동일한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왜 저에게 그것을 주지 않으십니까? 왜 이것밖에 주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것을 보세요. 도대체 이게 뭡니까? 왜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주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오늘날 구원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보다 이러한 불평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20.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지 않으신 것으로 인해 불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대해 우리가 하나씩 감사를 드린다면 우리는 영원히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으신 것처럼 불평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의 불평은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주지 않으신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게 마음에 들지 않음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게 마음에 들지 않고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평하는 것입니다.

 

2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 중 단 한 사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못한 사람은 없습니다.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았다면 우리는 무엇을 받았을까요? 우리는 벌을 받았을 겁니다. 아마 흑암에 던져져서 울며 이를 갈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 마땅한 것은 우리의 죄에 따라 지옥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하게 대해주셨습니다.

 

2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빵을 매일 아침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가족이 모두 충분히 먹을 정도로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지만 모두 먹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받지 않은 것으로 인해 불평하는 게 아니라 받은 것으로 인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2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것보다 훨씬 더 우리를 선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구원받기 전이나 이후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고 구원받고 나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구원받고 나서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구원받기 전에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였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우리를 향해 오래 참으셨는지 모릅니다.

 

24. 이스라엘 백성들은 천사들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고작 이집트의 음식을 그리워했습니다. 우리는 민수기를 읽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어리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도 우리를 보면 동일한 생각을 할 것입니다. 천사들의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 세상의 음식을 그리워하며 불평하는 사람들과 천상의 모든 복을 받고도 이 세상의 복을 그리워하며 불평하는 사람들을 진지하게 비교해 본다면 누가 더 어리석은 사람으로 드러날지는 자명합니다.

 

5.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현명하고 사랑이 많은 아버지입니다

25.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과 처해있는 상황은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하고 현명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불평은 모두 사려져 버릴 것입니다.

 

26. 제 아이가 저에게 와서 빵을 달라고 하는데 제가 돌을 주겠습니까? 제 아이가 저에게 와서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제가 전갈을 주겠습니까? 여러분 중에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악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누가 자기 아들이 빵을 구하면 그에게 돌을 주겠느냐? 혹은 그가 생선을 구하면 그에게 뱀을 주겠느냐? 그런즉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들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7:9-11) 라고 하셨습니다.

 

27.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으실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여러분보다 훨씬 더 현명하시고 훨씬 더 사랑이 많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실 뿐만 아니라 항상 가장 좋은 것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았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과 비교하면 우리는 사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하고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좋은 것들을 주시려고 하십니다.

 

28.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좋지 않고 우리가 당한 일들이 옳지 않다고 불평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허락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과 부모들이 아이에게 해 주는 것은 일치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밥 대신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원하지만 그런 것을 밥 대신 먹을 수는 없습니다. 부모는 아이가 원하지 않아도 야채와 고기를 먹게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아이는 단지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이고 옳은 것인지를 모를 뿐입니다.

 

29.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와서 하나님, 저는 아이스크림을 원합니다. 과자를 주세요.” 라고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오는 만나보다 뛰어난 영적인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적인 복을 받고 나서 하나님께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주시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지 않으시고 돌봐주지도 않으시는군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각입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으시거나 여러분을 돌보지 않으시거나 여러분에게 무관심하신 것이 아닙니다.

 

30.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불평하고 불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이신 것처럼 우리의 인생에서도 주인이시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가장 좋은 것인지를 아십니다. 무엇이 가장 옳은 것인지도 아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겁니다.

 

6. 사람은 죄인이기 때문에 죽습니다

31. 이제 다시 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6절을 보세요. 주께서 불 뱀들을 백성 가운데로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이 죽으니라.”(6)

 

32.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6:23).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죽는 이유는 죄인이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7.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33. 계속해서 7절을 보겠습니다.그러므로 백성이 모세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와 당신을 대적하여 말함으로 죄를 지었사오니(7a)

 

34. 우리가죄를 지었사오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죄를 지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삶의 문제에 부딪혔을 때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하기 전에 자신들이 죄를 지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기 위해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의 가져야 할 바른 자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라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해야 합니다.

 

35. 우리가 주와 당신을 대적하여 말함으로 죄를 지었사오니 성경에 의하면, 성령님의 거룩하신 말씀에 의하면, 주님을 대적하여 말하는 것은 죄입니다. 모든 죄의 근본은 하나님을 대적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을 대적하여 말하는 것도 죄입니다. 이것은 제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에 의하면 여러분의 형제를 대적하여 말하는 것은 죄입니다.

 

36. 로마 천주교는 큰 죄나 보다 나쁜 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단 하나의 죄라도 지으면 그것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한 조목이라도 어기면 모든 것에서 유죄가 되나니( 2:10)

 

37. 하나님께서는 작은 죄는 괜찮다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죄에 순위를 매겨서 큰 죄는 처벌하시지만 작은 죄는 그냥 넘어가겠다고 하신 적도 없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다른 형제를 대적하여 말하는 것도 죄입니다.

 

8.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38. 계속해서 8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를 위해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 하시니라.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이 어떤 사람을 물었을 때 그가 그 놋 뱀을 쳐다보면 살더라.(8-9)

 

39. 이것은 마법이 아닙니다. 불 뱀에 물렸던 사람들을 살렸던 것, 즉 그 사람들의 생명을 건졌던 것은 놋 뱀이 가진 마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놋 뱀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린 것입니다. 모세는 사람들에게 놋 뱀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놋 뱀을 보면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사람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40. 불 뱀에 물린 사람들 사이에서 장대에 놋으로 만든 뱀을 달고 그것을 처다 보라고 외치는 사람을 상상해 보십시오. 모든 사람이 모세의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는 않았습니다. 이성적으로 보면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아서 자신들의 죄 가운데 죽었습니다.

 

41. 아마 먼저 놋 뱀을 보고 죽음을 면한 사람이 간증을 했을 겁니다. “그러지 말고 저 놋 뱀을 한번 처다 보세요. 저도 처음에는 믿지 않았는데 생각을 바꿔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저 놋 뱀을 처다 보니 살게 되었습니다.” “그건 당신의 생각이지. 나는 당신처럼 나약하지 않아. 차라리 그냥 놋 뱀을 보지 않고 죽을래.”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다른 사람의 간증도 듣지 않아 결국 자신의 죄 가운데 죽은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42. 모세가 한 사람 앞으로 가서 놋 뱀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이 놋 뱀을 보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것을 보면 살 수 있다고 하셨소.” “, 저도 제 종교가 있습니다. 제발 당신의 종교를 강요하지 마세요. 놋 뱀은 당신이나 실컷 보세요. 저에게 당신의 종교를 강요하지는 마세요. 저는 제가 만든 놋 뱀이나 볼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사람도 자신의 죄 가운데 죽었을 겁니다.

 

43. 당시에 사람들이 놋 뱀을 두고 어떤 논쟁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놋 뱀을 보지 않겠다고 어떤 핑계를 댔는지도 모릅니다. 장대에 달린 놋 뱀을 보지 않겠다는 이유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사실은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말씀에 순종해서 장대에 달린 놋 뱀을 보지 않은 사람은 모두 자신의 죄 가운데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장대에 달린 놋 뱀을 쳐다본 사람은 모두 살았습니다.

 

9. 구원은 단순한 것입니다

44. 구원은 이렇게 단순한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구원이 왜 그렇게 단순해야 하는지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구원이 단순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규칙을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위원회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위원회를 소집해서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실 겁니다. “좋소. 위원들 중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이다라는 의견에 찬성하는 분은 손을 들어보시오. ‘구원은 행위로 받는 것이다라는 의견에 찬성하는 분은 손을 들어보시오.”

 

45.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구원받는 방법을 투표로 정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행위가 아닌 은혜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행위로 받는 것이라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딤전 2:4) 은혜가 아니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통해 사람이 구원받도록 하셨습니다.

 

4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 중 누구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놋 뱀을 보면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놋 뱀을 보지 않으면 그대로 죄 가운데 죽게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놋 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느냐 그렇지 않으냐 입니다. 구원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47. 병원이나 구급차에 보면 장대에 달린 놋 뱀의 표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의사들이나 구급대원들은 왜 병원이나 구급차에 그런 표시가 있는지 모를 겁니다. 병원이나 구급차에 생명을 살리는 표시로 장대에 달린 놋 뱀이 그려진 이유는, 사람들이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은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합니다.

 

10.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왜곡합니다

48. 여기서 잠시 열왕기하 18장에 나온 흥미로운 사건을 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었던 히스기야가 나옵니다. 히스기야가 자기 조상 다윗이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니라. 그가 산당들을 제거하고 형상들을 깨뜨리며 작은 숲들을 베어 내고 모세가 만든 놋 뱀을 산산조각 내니 이는 그때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그 뱀에게 분향하였기 때문이더라. 그가 이 뱀을 느후스탄이라 하였더라.(왕하 18:3-4)

 

49. 히스기야의 시대는 모세가 놋 뱀을 만든 지 적어도 수백 년이 지난 이후였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보세요.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경배하는 대신 형상을 경배합니다. 이것은 정말 이상한 광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동네에 있는 성당에 가서 누가 형상에 입을 맞추고 절을 하는지 보시면 됩니다.

 

50. 사람을 구원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지 예수님의 형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이시며 흠이 없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시지 인형이나 조각상을 통해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하지만 두 개의 나무 기둥으로 만든 나무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위에 달려 죽으시지 않으셨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51. 저를 구원한 것은 나무로 된 십자가가 아니라 그 위에 달려 저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피를 흘리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이 매달려 있게 하기 위해 나무 십자가를 사용하셨을 뿐입니다. 우리가 경배해야 할 대상은 십자가가 아니라 그 위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경배해야 할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상하며 새긴 조각상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금은 십자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52. 사람들은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볼 수 있는 종교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종교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그러한 것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해야 합니다( 4:24). 여러분의 영은 거듭나야 하고 혼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53. 히스기야 시대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놋 뱀이 조상들을 구원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히스기야는 그 놋 뱀을 느후스탄이라고 부르며 산산조각 냈습니다. 느후스탄이라는 것은 놋 뱀의 또 다른 명칭입니다. 그래서 번역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삭이 웃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번역하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느후스탄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느후스탄은 놋 조각이라는 뜻입니다. 히스기야는 있는 그대로 부른 것입니다. 사람들이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던 것을 히스기야는 놋 조각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54. 집에 마리아의 조각상이나 침례인 요한의 조각상이나 성 프란시스나 성 버나드의 조각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든 상관없이 그것은 돌이나 나무나 흙 조각에 불과하며 거기에는 인간을 구원하는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불렀습니다. 우리도 성경을 믿는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11. 구원받는 비결과 영적으로 성장하는 비결은 동일합니다

55.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놋 뱀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놋 뱀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사람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불 뱀에 물려 죽게 된 사람들이 살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56. 만일 여러분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았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하신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는 비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구원받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주님께 여러분 자신을 내어 드린 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있습니다. 

 

12.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습니다

57. 이제 요한복음 3장을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니고데모에게 놋 뱀 이야기를 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사람의 아들도 반드시 들려야 하리니( 3:14) 같이 라는 표현을 보십시오. 원리가 같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무엇을 했습니까? 그는 놋 뱀을 단 장대를 들어올렸습니다. 예수님께는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분은 나무에 매 달린 채 들렸습니다. 계속해서 15절을 보겠습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58. 먼저 이것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누가 모든 거짓말의 아비입니까? 누가 이 세상으로 죄를 가져 왔습니다. 바로 옛 뱀인 사탄입니다.

 

59. 저도 예수님의 대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죄가 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죄 자체가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셨을 때 그분은 온 세상에 죄를 가져온 죄의 원흉인 뱀과 같아지신 것입니다.

 

60. 예수님께서는 시편 22편에서 자신에 대해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오니 사람들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멸시거리이니이다.( 22:6) 온 세상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 위에 올려졌을 때, 겸손하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한층 더 겸손히 낮추시어 인간 아래의 존재가 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실 때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벌레요 뱀이 되신 것입니다. 저는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시고, 벌레가 되시고, 뱀이 되시고, 죄가 되신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분을 통해 저의 모든 죗값이 치러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13.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61. 광야에서 불 뱀에게 물렸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장대에 달린 놋 뱀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다른 핑게나 이유나 변명은 상관없었습니다.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지 않은 사람은 모두 자신의 죄 가운데 죽었습니다.

 

62.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그 놋 뱀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만일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원한다면, 예수님을 믿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생각대로 하면 죄 가운데 죽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의견대로 하면 여러분은 죄 가운데 죽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놋 뱀을 바라보지 않은 모든 사람이 죽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의 죄 가운데 죽을 것입니다.

 

63. 성경은 이렇게 단순합니다. 제가 이러한 사실을 믿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의 의견이나 생각을 믿지 않습니다. 저는 온 세상보다 소중한 여러분의 혼을 제 의견이나 생각에 맡기라고 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혼을 인간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64.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3:15절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have)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예수님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즉시 얻는다(have)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나중에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영생을 얻는다고 하지 않습니다.

 

65. 저는 예수님을 믿었고 그 순간 즉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무엇을 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구원받기 위해 장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봤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그러자 제 안에 있던 죽음의 독이 모두 해독되었습니다. 사망의 쏘는 것이 완전히 힘을 잃게 된 것입니다. 치유되었고 해독되었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이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통해 저에게 해 주신 일입니다. 여러분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여러분에게도 동일한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66. 어떤 구원받은 사람과 종교인이 논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종교인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죽으면 지옥에 가지 않고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구원받은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하늘나라의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나라의 놀라움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나라의 기쁨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결코 저를 떠나거나 버리지 않는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만일 제가 지옥에 가게 되면 하늘나라의 영광과 놀라움과 기쁨도 모두 예수님과 함께 지옥에 가게 됩니다. 그러면 지옥은 더 이상 지옥이 아닌 하늘나라가 되고, 반대로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은 하늘나라는 더 이상 하늘나라가 아닌 지옥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를 하늘나라로 만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67. 저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하늘나라의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에 관해 논쟁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사실 하늘나라가 어디에 있건 그것은 저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저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어디에 계시든 저는 영원히 그분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68. 제가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거란 사실을 어떻게 확신하는지 아십니까? 장대에 달린 놋 뱀을 바라본 사람들이 살게 된 것처럼, 제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마음으로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저는 불평하고 불만으로 가득 찬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와 제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하나님과 사람들을 대적하여 죄를 지었다는 사실과 저의 죄로 인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과 주님께서 저를 고쳐주시고 씻어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성경에 약속하신 것처럼 저를 고쳐주시고 씻어주시고 구원해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을 어디에서 누구에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69.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것은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다른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방법을 통해 구원해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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