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2.12.28 18:10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1월1일-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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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1

1 1일-7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1 1일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1:1)

 

성경은 하나님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으로 끝이 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단 한번도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살펴보시면 성경에는 창조 혹은 창조주를 증명하기 위한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음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받아 들이라고 호소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은 인간이 믿어야 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진술할 뿐입니다. 성경의 가장 위대한 주제는 인간의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은 부차적인 사항입니다. 성경의 핵심 목적은 주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전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그분은 처음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권능과 지혜로 모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지으셨습니다( 1:16-17). 이 모든 것을 자신의 말씀으로 이루셨으며( 11:3) 자신의 기쁨을 위해 이루셨습니다( 4:11).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그분의 권능과 그분의 창조에 대해 깨달을 수 있으며( 1:18-20), 그분께로 나아가는데( 11:6) 충분한 빛과( 1:1-5), 믿음( 12:3)을 받고 태어났습니다.

사람이 선한삶을 살고, 모범적인 시민이 되고 율법과 규례들(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모두)를 지킬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한 가지를 행하는데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11:6)

 

나는 곧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THAT I AM)” 라는 이름은 창조주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알리신 그 이름입니다( 3:14). 한 분이신 참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는 과거의 존재도 없고 미래의 존재도 없으십니다. 그분은 영원한 왕이십니다(딤전 1:17). 그분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 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들에다 거대한 시간 지킴이들을 놓아두실 때( 1:14) 영광 가운데 계셨으며 이것들이 사라져버릴 때에도 영광가운데 계실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1:1-5, 14).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계신 이(I AM)이심을 선언하셨습니다( 8:5-8). 그분은 너희 모두는 내게로 오라.”( 11:28)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6:37)고 외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에 관해 알고자 하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려고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분에 대해 알기를 원하시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고자 쓰여진 것입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만족할만한 답변이 항상 있을 수는 없지만 성경에 주어진 내용은 우리 주 즉 우리를 만드신 분께서 우리의 영원한 기쁨과 이 땅에서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고 정하신 것들입니다.

만약 사람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관심을 기울이고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 것에 대해서는 덜 시간을 들인 다면 그는 자신이 찾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답을 곧 얻게 될 것입니다.

 

영어의 경우 구약성경은 23,214절이고, 590,439 단어이며 이 단어들 중 “and(그리고)”라는 단어가 35,543번이 나옵니다. 구약성경은 929장이고 2,728,100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1 2일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어둠에서 빛을 나누시고( 1:2-4)

 

창세기의 첫 네 절은 나중에 성경에 더 구체적으로 계시 될 위대한 구원계획에 대한 최초의 계시를 담고 있습니다.

1절은 하늘과 땅의 창조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아무런 자세한 내용이 없습니다. 과학자들이 창조에 관해 더욱 많이 무엇인가를 발견해 낼지도 모르지만 결코 어떻게창조가 이루어졌는지는 배우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문제로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개개인의 기원에 대해서 말해줍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100). 그러나 자궁 안에서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놀랍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서 성경은 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일을 비밀로 남겨 두시기로 정해놓았습니다( 139:13-16).

2절에서 우리는 죄가 창조 세계에 들어오므로 인해 빚어질 비극적 결과를 목격하게 됩니다. 이사야서 14장과 에스겔서 28장 및 욥기에 어떻게, 그리고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나오기는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저 그 결과를 보여줄 뿐입니다.

어둠 가운데 형체가 있는 텅 비어있는 모습은 전능하신 분의 작품을 묘사하고 있다고 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 아담의 자녀들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타락한 때와 장소와 이유에 대해 성경공부시간에 탐구해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방에서 우리가 보는 것이라고는 그저 타락의 무서운 결과들뿐입니다. 궤도에서 벗어난 인생들, 일시적이든 비천한 것이든 그저 어떡하든 만족을 얻고자 울부짖는 공허한 메아리들, 인간의 생각과 종교들과 역사를 뒤덮고 있는 그 (!) 어두움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 아닙니까? 아담이래로 인간의 이야기란 잃어버린 동전을 찾아나선 소경의 이야기와 거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 그러나 2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께서 움직이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형체 없는 공허함은 스스로를 채울 수 없습니다. 어둠이 스스로 빛을 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드님 곁에서 성령께서 일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공허함도 어두움도 성령께서 극복하지 못할 만큼 거대할 수는 없습니다.

타락한 죄인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할 수 있습니다. 죄인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죄인은 스스로 인생을 바꿀 수없습니다. 개혁된 어둠도 어두움에 불과합니다. 개선된 공허도 공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파멸 안으로 성령님의 움직임이 들어 옵니다. 여러분이 뭐라 말하든지 간에 성경은 이에 대해 분명합니다. 성령님께서 찔림을 주시고, 확신을 주셔서 권능으로 이끌지 아니하시면 그 어떤 혼도 아담의 타락의 파멸로부터 구출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하나님의 영이 움직이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어둠 안으로 빛을 가져 오셨습니다.

죄인의 구원에 있어 주님께서 역사하심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분께서 우리를 어둠의 권능에서 건져내사…”( 1:13)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함께 역사하여 죄의 침입으로 인해 망가진 인생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어서 우리는 분리를 목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빛을 어둠으로부터 나누셨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처럼, 진정으로 중생한 사람들의 인생에도 동일한 일이 일어납니다. 성령께서는 육신의 욕심들이라는 형체 없는 공허로부터 구원받은 혼을 이끌어 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의 자녀가 그분께서 빛 가운데서 있듯이 빛 안에서 걷도록 능력을 제공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빛을 보시니 좋았더라.”

 

구약성경의 가운데 구절은 역대기하 2:17이고, 구약성경의 가운데 장은 욥기 29장이며, 구약성경에서 가장 짧은 절은 역대기상 1:25입니다.

 

 

 

1 3일

풀과 채소와 과일나무…”( 1:11)

 

셋째 날에는 세 종류의 식물이 등장합니다. 이들 셋은 인간의 종류와 관련해 많은 진리를 제공해 줍니다.

첫째 식물은 풀인데 이 단어는 주님께서 본성에 속한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하셨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40:6-8) 풀은 약하고 생이 짧고 아무리 멋진 것일지라도 빨리 시들어 버립니다. 신약성경은 인간의 영광이 바로 그 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모든 고상한 행위와 업적 그리고 본능을 뛰어넘는 고귀한 품성도 금방 사라져 가 버립니다(벧전 1:24). 결국 온 인류는 지푸라기가 되어 그들이 비웃던 그 왕에 의해 다 타버리게 됩니다( 4:1).

둘째 식물은 씨를 맺는 채소입니다. 이것은 먹을 수 있는바( 1:29),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됩니다. 비록 과일나무처럼 과일을 맺지는 못하나 풀과 달리 씨는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에 해당됩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육신적이지만 형제들의 돌봄과 양육 하에( 6:7) 씨를 생산 해 낼 수 있습니다. 이 씨 맺음은 복음의 기쁜 소식을 뿌리는 것을 말합니다( 4, 13, 8). 채소는 그 안에 씨를 갖고 창조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도 그 안에 썩지 않는 씨를 갖고 있습니다(벧전 1:23).

비록 채소가 작고 약하긴 해도 다른 사람들을 양육하고 세워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치유할 수도 있고 힘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몸 안에 약한 지체들도 전체의 활력을 위해 필요합니다(고전 12:13 이하).

셋째 식물은 열매 맺는 과일나무입니다. 많은 설교와 가르침과는 달리 성경은 복음증거와 구령을 열매 맺음과 결코 혼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육신적이고 약한 채소는 씨를 뿌려 다른 사람들을 거듭나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열매란,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에 의해 성숙한 성도가 맺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령의 열매는( 5:22-25) 믿는 자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속성이 재생산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창세기 1:11에서 열매가 종류대로 맺음을 보게 됩니다. 포도나무( 15:2,6)의 뿌리( 53:2)는 그 생명을 가지에게 보내어( 15:1-6) 사랑과 기쁨과 화평 등을 생산해 냅니다.

하나님의 성숙한 자녀는 환경에 의해 움직이지 않으며( 1:3), 홍수와 가뭄 속에서도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17:8). 여건과 환경은 열매 맺음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만 창세기의 6일이 문자적인 6일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든 존재의 뒤에는 그것을 움직이시는 원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지만 창세기의 각 날은 알 수 없는 영겁의 시간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성경 기록의 위대한 단순성이 이 사상에 대해 치명상을 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식물의 생명은 셋째 날에 등장하는데, 이 식물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빛인 태양은 넷째 날에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날들이 긴 영겁의 세월이라면 식물은 살아남아 태양빛의 도래를 환영할 수 없었을 겁니다.

 

 

 

1 4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하늘의 궁창에 광체들이 있어서 밤에서 낮을 나누고( 1:14)

 

이 구절과 더불어 넷째 날을 맞이합니다. 우리가 6일을 3일씩 묶어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면 이 두 부분 사이에는 상응하는 점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두 분분의 각각은 다음사항을 다루고 있습니다.

1.

2.

3. 마른 땅

 

이 때문에 어떤 주석가들은 넷째 날과 더불어 우리는 다시 3절이 시작되는 그곳으로 되돌아가 또 다른 관점에서 더 자세히 동일한 내용을 다루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같은 견해가 올바르지 못한 것은 창조의 날들이 실제적인 하루의 기간이라는 해석을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구절들은 2절에서 비어있고 형체가 없다고 묘사된 그것이 회복되고 있는 모습을 다루고 있습니다. 처음 삼일 간은 하늘과 땅이 형체를 받는 모습을 다루고 있는 반면 다음 삼일 간은 그 비어있음을 채우는 것을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 개요가 이를 분명히 보여줄 것입니다.

첫째 날:      넷째 날: 빛들

둘째 날: 공기   다섯째 날: 새들

셋째 날:      여섯째 날: 동물들, 사람

 

이처럼 첫째와 넷째 날이 상응하고 둘째와 다섯째 날이 상응하며 셋째와 여섯째 날이 상응합니다. 먼저 형체가 생기고 그 후에 채움이 옵니다.

이를 설명할 수 있는 열쇠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주어진 탁월하심에 있습니다. 각 사이클은 하늘에서 주님과 시작하여 아래를 향해 땅으로 역사합니다(1:17).

4절에서 우리는 왕좌로부터 빛을 보는바 8절에서는 이 빛이 첫 번째 대홍수의 물들을(벧후 3:4-6) 나눕니다. 7-13절 에서는 이 전날들의 사역으로 땅에서의 생명이 살 수 있게 됩니다. 다시 15절에서 우리는 하늘에 있는 빛들을 보게 되며 20절에서는 날고 기는 생물들이 물에서 기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땅의 먼지로부터 만드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실로 창조세계의 왕관이지만 그러나 이는 다만 창조주께서 인간을 그 위치에 두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창세기 1:9, 땅은 6.6x 1020 톤의 무게를 갖고 있으며 이 숫자는 물 한 방울 안에 있는 원자의 숫자와 동일합니다.

창세기는 신약성경에서 60번에 걸쳐 인용 혹은 언급되어 있습니다. 다른 율법서처럼 창세기 또한 모세가 기록했습니다(12:26, 2:22, 7:23, 13:39, 15:5, 28:23, 고전 9:9, 그리고 히 10:28)

 

 

 

1 5일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1:27)

 

창세기의 처음 부분을 픽션이나 흥미 있는 구전 또는 모세의 묵상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들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27에 대한 구원자이신 분의 주석이 마태복음 19:3-6에 나와 있습니다. 이때 바리새인들은 이혼 문제에 관해 주님과 논쟁 중이었습니다.

그분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창세기 1장의 말씀과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필사본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확신하셨습니다. 사실 이 필사본은 원본이 만들어 진지 수천 년이 지난 뒤에 존재하던 것입니다.

처음에 그들을 만드신 분께서…” 이 말씀은 주님께서 창세기 1장의 선언과 완전히 일치된 견해를 갖고 계심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최초의 인간은 아메바나 가스나 먼지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완전한 성인 남녀였던 것입니다.

말씀하시기를, 이런 까닭에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말씀대로 최초의 인간은 유인원이나 원숭이가 아니고 가정과 사회를 세울 수 있고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창세기 1장의 말씀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제시하고 계시기에, 창세기 기록을 거부하면서 자신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모세에게 최초의 인간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씀해 주신 분은 다름아닌 주님이 아니겠습니까? 창조를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말씀만 하시면 되었지만 구속을 위해서는 고난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1 6일

창조하시니라(1:21, 27)

 

창조하시니라(created)” 라는 단어는 창세기 1장에서 3번이 쓰였습니다. 1장에서는 이 단어가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의 창조자이심을 보여 줍니다.

나머지 두 경우에서 이 단어는 전에 있던 것들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하나님께서 새롭게 일하심을 암시해줍니다. 21절을 보면 동물의 생명은 그보다 앞선 식물의 생명과는 아무런 유사속성이 없는 분리 된 창조물이었습니다.

세 번째 즉 마지막으로 이 단어가 이 장에서 쓰인 곳은 27절입니다. 이 단어는 인간의 기원과 관련해서 사용된바 이로써 인간은 이전의 그 어떤 존재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분리된 존재인 것입니다.

창조 라는 단어의 의미상 창세기 1 1절의 하늘과 땅은 그전에 존재했던 그 어떤 물질로부터 진화될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동시에 21절 역시 창조란 단어가 쓰임으로 고래들이 그 이전에 존재했던 동물이나 식물로부터 진화될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경우도 새들이나 물고기나 짐승들로부터 변이되어 등장했을 가능성은 완전히 배제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찰스 다윈은 그의 책 <종의 기원> 에서 우리는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표현을 800번 이상 이나 사용했습니다. 소위 거짓되이 과학자로 불리는 자들의 추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의 확실함”(created)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창세기는 1,533절과 38,267단어(영어의 경우)로 되어 있으며 그 중 “and(그리고)” 3,678번 나옵니다.

 

 

 

1 7일

하나님(1:22)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신 책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성경의 첫 장에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32번씩이나 사용되고 있음을 주목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니라.”(4)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주시요, 알파요, 시작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라.”(8) 이는 만물이 하나님의 권능의 말씀에 의해 유지되고 통치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니라(7)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우주를 돌아보시고 보살피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니라.”(3)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이 특별한 관심과 함께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니라.” 이는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두시니라.” 우주의 운행에 있어 질서와 계획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니라.” 이는 그분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은혜, 긍휼 그리고 친절함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께서 나누시니라.” 이는 그분의 성품이 이원적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 선과 악, 생명과 사망 등-역주)

 

성경은 인간의 책도 아니요, 민족들의 역사도 아니고, 교리 모음도 아니며, 계명의 책도 아닙니다. 종교논문도 아니고 삶을 위한 지침서도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사용하시는 수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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