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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적, 이적, 그리고 기적

2장 고린도전서에 나온 방언

 

이 과의 내용은 James W. Knox 형제의 Signs, Wonders And Miracles의 Chapter2: The Corinthian Use of Tongues의 내용을 요약 및 정리 것입니다.

 

1. 성경에 의하면 악을 행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ungodly)”“sinner(죄인)”입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들”은 부유하고 능력있고 사회적인 위치가 있는 자들로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반대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 악한 세상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사람들을 미혹하며 지옥으로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이에 반해 “죄인들”은 보다 단순한 사람들로 삶에 대해 복잡한 계산없이 그저 다수가 가는 대로 따르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특별히 하나님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따라 사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불신자들은 다수의 죄인들과 소수의 경건치 아니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 비해서 죄인들이 가지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 비해서 보다 쉽게 주님께 인도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인도하는 것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인도하는 것보다 수월합니다. 반면에 경건치 아니한 자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현명하다고 생각하며 절대자에게 의지하는 어리석은 그리스도인들보다 훨씬 강하고 고귀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합니다.

3. 교회 시대의 마지막 시대인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의 교회와 고린도 교회간에는 유사점이 매우 많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모습을 통해 라오디게아 시대 교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4. 신약성경 구원의 교리가 계시된 로마서를 따라 고린도전서가 등장합니다.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서의 교리에 맞춰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행전에 나온 일들을 흉내낸 자신들의 경험에 의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5. 고린도전서 1:12에는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너희가 각각 이르기를,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다, 하는도다.” 이 교회는 분열의 영으로 가득한 교회였습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음행이 있었고 세상 법정에 형제를 고소하는 일이 있었으며 우상을 섬기고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주의 만찬에 술취한 채로 나타났으며 여자들은 세상적이었고 이혼이 실행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6. 고린도 교회 내에는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권위가 없었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문제가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제대로된 교제가 있을 수 없었고 혼동 그 자체였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 교회 내에서는 하나님의 권위가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7. 우리가 온전하고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권위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니다. “형제들아, 이제 나는 영적 선물들에 관하여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는 이방인들로서 이끌림을 받는 대로 이 말 못하는 우상들에게로 끌려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깨닫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말하는 자는 아무도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이제 선물은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무는 다르나 주는 같으며 활동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같으시되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을 주신 것은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1-7) 이 말씀 안에 드러난 삼위일체를 주목해서 보십시오. 4절에서 같은 성령, 5절에서 같은 주님, 6절에서 같은 하나님. 여기서는 은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믿음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통하여 병 고치는 선물들을, 다른 사람에게는 기적들 행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대언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여러 종류의 타언어들을, 다른 사람에게는 타언어들 통역함을 주셨으나 이 모든 것은 같은 그 한 성령께서 행하사 자신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 12:8-11) 모든 사람이 지혜의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지식의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성령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모두 동일한 은사를 주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방언(언어)의 은사도 모두 동일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9. “몸은 하나이며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그 한 몸의 모든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나 모두 한 성령에 의해 침례를 받아 한 몸 안으로 들어왔으며 모두가 마시게 되어 한 성령 안으로 들어왔느니라.”(고전 12:12-13) 이 말씀에 의하면 다음의 사실이 명백합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님의 수술(작용)으로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2)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은 인간의 몸의 지체들이 그러함과 같이 서로 다른 기능과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성령님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으로 침례를 받고 들어가게 되면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4)    이러한 드러남은 각자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사람과 사람마다 서로 다릅니다.

(5)    어떤 사람이 방언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고 말하거나 성령님이 그 사람 안에 내주하지 않으신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 교리입니다.

 

10. “그러나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어떤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분의 사람이 아니니라.”(롬 8:9) “그분 안에는 하나님의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하고”(골 2:9)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님도 영접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 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요일 5:7) 삼위일체 하나님은 세 인격이 하나인 하나님이며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접했지만 성령님은 영접하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11. 고린도전서 12:14-27에서는 한 몸의 지체로서의 연합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몇을 세우셨는데 첫째는 사도들이요, 둘째는 대언자들이요, 셋째는 교사들이요, 그 다음은 기적들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선물들과 돕는 것들과 다스리는 것들과 여러 가지 타언어들이니라.”(고전 12:28) 이것은 교회 내의 다양한 은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사들은 연대기적으로 나열된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는 방언(언어)이 가장 나중에 나왔지만 오순절에서 가장 먼저 발휘된 은사는 방언이였습니다. 여기에 나온 은사는 신약교회의 설립과 관련하여 그 중요성의 순서대로 나열된 것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은사에는 중요성, 즉 일종의 등급이 있습니다. “오직 가장 좋은 선물들을 간절히 사모하라.”(31절) 하나님의 목적에 의하면 모든 은사가 다 같은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더 나은 은사(선물)가 존재합니다.

 

12. 은사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것과 같은 방언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합니다.

(1)    방언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구원받지 않았다, 혹은…

(2)    그들은 구원은 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성령님(Holy Ghost)이 없다.

(3)    그들은 구원 받고 성령님(Holy Spirit)은 소유하고 있을지 몰라고 성령님(Holy Ghost)은 없다.

(4)  그들은 구원 받고 성령님을 소유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전혀 능력이 없다.

(5)    그들은 구원 받고 성령님(Holy Ghost)을 소유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방언을 하지 못하면 성령님(Holy Ghost)을 잃어버릴 수도 있거나 자신들의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 같은 주장 중 그 어느 것도 성경적인 것은 아닙니다.

 

13. “내가 사람들의 언어들과 천사들의 언어들로 말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징과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대언하는 선물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이해하며 또 모든 믿음이 있어 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모든 재산을 바쳐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이 내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느니라.”(고전 13:1-3) 은사주의자들은 본문에서 말하는 천사들의 언어가 바로 자신들이 하는 방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전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늘에서 대화를 나눌 때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 종종 등장하며 그것은 명백히 히브리어입니다.

 

14. 또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천사들의 언어들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문맥을 보면 이것은 어떤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가정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산을 옮긴 적도 없고(2절),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 적도 없습니다(3절). 따라서 1절에서 “천사들의 언어들로 말할지라도”라고 한 것은 바울이 실제로 천사들의 언어로 말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정입니다.

 

15.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엄청난 일들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라는 동기로 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유익도, 가치도 없다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동기로 하지 않은 일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불타 없어질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은사 중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이나 소망보다 뛰어난 것입니다(13절). 그것은 다른 영적인 은사들 보다 뛰어난 것입니다(8절). 사랑은 우리의 지식보다 뛰어납니다(9-12절).

 

16.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며 우쭐대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동하지 아니하며 자기 것을 추구하지 아니하며 쉽게 성내지 아니하며 악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법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하며”(고전 13:4-6) 이 말씀들에 따르면 우리가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도록 하는 교리와 실행, 또 우리가 받은 은사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 보다 우리 자신이 영적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모든 것들은 사랑으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교리는 아무런 유익도 주지 못하는 무익한 교리입니다.

 

1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되 대언은 있다 해도 없어질 것이요, 타언어들도 있다 해도 그칠 것이며 지식도 있다 해도 사라지리라.”(고전 13:7-8)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방언(타언어)이 언제 사라지는지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8.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대언하나 완전한 것이 오면 그때에는 부분적인 것이 없어지리라.”(고전 13:9-10) 이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이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부분을 기록할 때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다. 따라서 부분적으로 알고 대언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러나 신약성경이 완성되고 나서는 “완전한 것”(신구약 성경 전체)이 있기 때문에 표적과 은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이것은 어떤 면에 있어서는 건전한 해석입니다. 근본주의 진영에서는 이 입장을 고수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19. 고린도전서 13:11은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이는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인간이지만 성인으로 성장해야만 합니다. 성장해서 성인의 모습을 갖추는 것을 성경에서는 “온전함”이라고 표현합니다. 성경에서는 “온전함”을 “죄없음”의 의미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12절은 우리의 이해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을 때 이미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은혜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받은 영생은 부족한 점이 하나도 없는 온전한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도 전혀 부족한 점이 없는 온전하고 완벽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음 구원받은 순간 이러한 점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하여 성경을 알고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비로서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지 온전히 알게 됩니다.

 

20.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과 교회에 있어서 영적인 은사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은사는 목적이 아닌 수단입니다. 영적인 은사들이 있지만 여전히 영적으로는 어린 아이일 수 있습니다. 육신적인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영적인 은사들을 받았습니다(고전 12장). 그러나 그들은 사랑이 없으므로 이기적인 방법으로 은사를 사용해 버렸습니다.

 

21. “사랑을 따르고 영적 선물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너희는 대언하는 것을 사모하라.”(고전 14:1) 이 말씀에 의하면 어떤 한 은사보다 다른 은사를 더 사모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말하나니 아무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나 그가 영 안에서 신비들을 말하느니라.”(2절) 이것은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방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언어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육신적인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은사를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단 한번도 이런식으로 방언의 은사가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그 은사를 발휘해서 유익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지금 고린도 교회의 성도는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방언의 은사를 발휘함으로 아무런 유익을 끼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께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재잘거림과 같은 은사주의자들의 방언이 결코 아닙니다. 특히 “영 안에서”라는 표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영은 성령님이 아니라 인간의 영을 의미합니다.

 

22. “그러나 대언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그들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나니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자기를 세우나 대언하는 자는 교회를 세우느니라.”(고전 14:3-4) 은사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을 세워 주기 위함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유익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세우기 위해서 은사를 발휘한다면 그것은 은사의 바른 사용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은 은사를 사용해서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세우고 파벌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23. “나는 너희가 다 타언어들로 말하기를 원하되 차라리 대언하기를 원하노니 타언어들로 말하는 자가 통역하여 교회가 세움을 받게 하지 아니하면 대언하는 자가 그보다 더 나으니라.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타언어들로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대언이나 교리로 너희에게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슨 유익을 끼치리요?”(고전 14:5-6)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방언(타언어)을 하기를 원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방언을 금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성령의 은사를 육신적인 방법이나 자기 자신을 세우는 일에 사용하지 말고 원래의 목적대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사용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24. “피리나 하프같이 생명 없는 것들이 소리를 낼 때에 음의 구분을 주지 아니하면 피리나 하프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어찌 알리요?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준비하리요?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가 혀로 알아듣기 쉬운 말들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한 것을 어찌 알리요? 너희가 허공에다 말하리라.”(고전 14:7-9)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언어로 하신다면 그것이 누구에게 유익을 주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는 아무런 유익도 없고 소용도 없다는 것입니다.

 

25. 고린도전서 14:2에서 육신적인 고리도 교회 성도가 자신은 하나님께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 그는 허공에 말하고 있는 것임을 보십시오. 이것은 은사를 바르게 사용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허공이 어떤 존재와 관련이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엡 2:2).

 

26.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소리가 있다 할지라도 그 중에 의미 없는 소리는 하나도 없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말하는 자에게 야만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인이 되리라.”(고전 14:10-1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야만인이 되기를 원하실까요? 이것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방식이 아님이 명백합니다.

 

27. “이와 같이 너희도 영적 선물들에 열심이 있은즉 교회를 세우는 일에 너희가 뛰어날 것을 구하라.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는 자는 통역할 수 있도록 기도할지니”(고전 14:12-13)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방언을 반드시 통역해야 합니다. 결국 이것은 방언이 명백하게 언어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방언이 교회에 유익을 주는 유일한 방법은 통역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28. 사실이 이렇다면 오늘날 기독교가 얼마나 심각한 오류에 빠져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지 얼마 되지 않아 성경을 잘 모르는 어린 그리스도인에게 은사주의자들이 하는 것과 같은 방언을 해야지만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면 결국 자신의 체험에만 의지하는, 성장이 원천 봉쇄된 영적 아기들만 만들어내게 됩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모두 교회의 유익은 구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세워줄 은사를 구한다면 그 교회와 그 교회의 구성원들은 결코 영적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29.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이해하는 것은 열매를 맺지 못하느니라.”(고전 14:14) 다시 2절과 비교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의 정의에 의하면 이것은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오히려 인간 자신의 영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기도하면”이라고 하는 것도 자신이 실제로 그렇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논쟁을 위한 가정을 하는 것입니다. 그는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자신이 기도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만일 자신이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닌 자기 자신의 영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30. 또한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기도하면 영은 기도하는 것이지만 이해는 못하여 열매는 맺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알지못하는 방언은 말하는 사람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기에 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은사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하는 방언이 자신들의 기분을 좋게 하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약도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지만 결국 그 사람을 파멸시키고 맙니다. 음행도 기분은 좋지만 혼을 파괴시킵니다. 술도 기분은 좋지만 몸을 완전히 망쳐 버립니다. 기분이 좋다고 해서 그것이 바른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31. 우리가 앞의 과에서는 성경에 나온 방언을 하는 모든 장면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경우에 사도들의 사역과 관련이 있었으며, 신약성경 복음의 진리가 이전에는 한번도 전해지지 않은 곳에서 말씀의 진리를 확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고린도 교회에 와서는 성도들이 야만인처럼 말하거나, 공중에다 대고 말하거나, 성령이 아닌 자신들의 영 안에서 말하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32. “그러면 어찌하리요? 내가 영과 함께 기도하고 또 이해하면서 기도하며 내가 영과 함께 노래하고 또 이해하면서 노래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배우지 못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므로 어찌 네가 드리는 감사에, 아멘, 하리요? 너는 진실로 감사를 잘하되 다른 사람은 세워지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너희 모두보다 타언어들을 더 많이 말하므로 내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만 마디 말을 하느니 차라리 이해하면서 다섯 마디 말을 하여 내 목소리로 다른 사람들도 가르치리라.”(고전 14:15-19) 알지못하는 언어로 만 마디의 말을 하는 것보다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다섯 마다가 더 낫다는 것이 방언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33. 사랑은 스스로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가득한 사람은 교회의 유익을 구할 것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현대 은사주의 운동이 가르치는 것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므로 성경적인 것이 아닙니다. “형제들아, 이해하는 일에는 아이가 되지 말라. 너희가 오직 악한 일에는 아이가 될지라도 이해하는 일에는 어른이 될지니라.”(고전 14:20) 성령님께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면 영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화를 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성령님께서는 미리 어른이 되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34. “율법에 기록된바, 내가 다른 언어들과 다른 입술들을 가진 사람들을 써서 이 백성에게 말하리라.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하였으니”(고전 14:21) 율법은 누구에게 주신 것입니까?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들의 민족이 주님 앞에서 번성하고 안전하게 거할 수 있었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외에 다른 민족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35. “그러므로 타언어들은 믿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 아니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로되 대언은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요,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니라.”(고전 14:22) 그러므로 마가복음 16장~사도행전2장, 사도행전 10장~19장, 고린도전서 12장~14장까지의 성경적 정의에 의하면 표적은 유대인 사도들에게 자신들이 증거하는 말씀을 확증하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방언을 하는 장면을 살펴보면 모두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한 표적으로 주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 한번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지역교회에서 표적으로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36. “그러므로 온 교회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여 모두 타언어들로 말하면 배우지 못한 자나 믿지 않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가 미쳤다고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모두가 대언을 하면 믿지 않는 자나 배우지 못한 자가 들어와서 모든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를 깨달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자기 마음의 은밀한 것들이 이렇게 드러나게 되므로 그가 얼굴을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또 진실로 하나님께서 너희 안에 계신다고 전하리라. 형제들아, 그런즉 어찌하리요? 너희가 다 같이 모일 때에 너희 각 사람에게 찬송시도 있고 교리도 있으며 타언어도 있고 계시도 있으며 통역도 있나니 모든 것을 남을 세우기 위하여 할지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알지 못하는 언어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많아야 세 사람이 순서대로 하고 한 사람은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그는 교회 안에서 잠잠하고 자기와 하나님께 말할 것이니라. 대언자들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말하고 다른 사람은 판단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이 계시되면 먼저 하던 사람은 잠잠할지니 모든 사람이 배우고 위로 받게 하기 위하여 너희가 다 한 사람씩 대언해야 하느니라.”(고전 14:23-31) 고린도 성도들이 방언으로 말했을 때 아무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고 아무도 어떤 위로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해야 배우고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방언보다 대언(예언)이 더 나은 은사인 이유입니다.

 

37.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처럼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요, 화평의 창시자시니라.”(고전 14:33) 오늘날은 건전한 성경 교리를 견디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자기 의로 가득찬 사람들은 귀를 간지럽혀줄 그럴듯한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38. “너희의 여자들은 교회 안에서 잠잠할지니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되지 아니하였고 또 율법도 말하는 바와 같이 그들은 순종하도록 명령을 받았느니라. 만일 여자들이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니라.”(고전 14:34-35) 성경문제, 방언문제 다음으로 기독교계에서 민감한 주제가 등장합니다. 바로 교회에서의 자매들(여자들)의 역할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에서 여자들이 잠잠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39. “도대체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나왔느냐? 혹은 그것이 너희에게만 임하였느냐?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를 대언자나 영적인 자로 생각하거든 그는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들이 주의 명령인 줄 인정할지니라.”(고전 14:36-37) 성경의 저자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입니다(살전 2:13). 자신이 영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성령에 의해 인도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말씀은 권고나 추천 사항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는 다음의 사항들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1)     만일 어떤 사람이 방언을 한다고 하면서 아무런 의미없는 재잘거림만 반복한다면 그것은 성령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이나 더러운 영에 의한 것입니다. 성경에 나온 방언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뚜렷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 세상 어딘 가에서 사용되고 있는 언어였습니다.

(2)     만일 통역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방언을 하는 사람이 알려지지 않은 방언을 한다면 그것은 성령님이 아닌 자기 자신의 영이나 더러운 영에 의해서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성경을 어기는 죄는 결코 범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3)   만일 같은 시각에 한 명 이상의 사람이 방언을 하거나, 혹은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방언을 한다면 그들은 성령님이 아닌 자기 자신의 영이나 더러운 영의 영향력 아래 있는 것입니다.

(4)     만일 여자가 교회에서 방언을 한다면 그것은 성령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영이나 더러운 영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는 방언(언어)을 금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망치려는 사탄의 계략과 관련해서 우리는 어리석거나 무지하지도 않습니다.

 

40. 이제 우리가 결론을 내리기 전에 그동안 배운 것을 정리하겠습니다.

(1)  방언(언어)은 성령님의 은사입니다.

(2)  방언은 표적을 구하는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위한 표적입니다.

(3)    방언의 표적은 항상 사도들의 사역과 관련이 있습니다.

(4)    방언은 명백한 언어입니다. 방언은 그것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의미없는 재잘거림이 결코 아닙니다.

(5)    방언은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증거하는 사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내용이 참되다는 것을 방언의 표적을 통해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6)    방언은 다른 성령의 은사와 마찬가지로 그 은사를 받은 사람이 연습할 수 있는 것입니다.

(7)  만일 집회에서 방언의 은사를 사용하려거든 절대로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방언을 해서는 안됩니다.

(8)    만일 집회에서 방언의 은사를 사용하려거든 반드시 통역해야 합니다.

(9)    만일 집회에서 방언의 은사를 사용하려거든 여자를 통해서 하면 안됩니다.

 

41. 이 과를 마치기 전에 에베소서에서 몇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께서 머리로 계신 교회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는 사도행전과 같이 전환기적인 기간을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닙니다. 교회와 관련해서는 더 이상 표적, 이적, 기적 등이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서 계시된 그리스도의 몸과 관련있습니다. 에베소서에는 고린도전서에 묘사된 사람들의 상태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엡 4:8-16 참조).

 

42. 에베소서 4:8-16을 다 살펴보려면 많은 얘기를 해야겠지만 여기서는 주제와 관련된 것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에베소서의 본문에는 영적 은사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이 영적 은사들의 목적은 성도들을 세워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대해서 살펴본 것을 기억하십니까?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씀하시는 “온전함”은 성도들 하나 하나가 은혜 안에서 성장하여 장성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에 열거된 은사들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이것들 중 어느 것도 표적이 아닙니다. 병고침이나 통역이나 방언이나 기적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43. 표적은 사도들에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확증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지역교회가 세워지면 필요한 것은 “온전하게 되는 것”, 즉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에베소서에 열거된 은사의 목적입니다. 에베소서에 표적으로서의 은사가 기록되지 않은 이유는 그것들이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44. 영적으로 어린 그리스도인은 항상 교리의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리고 거짓 교리에 쉽게 미혹됩니다. 방언의 은사는 거짓 교리와 미혹으로부터 아무것도 지켜주지 못합니다. 방언을 한다고 해서 미혹으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미혹이 충만한 이 시대에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진리에 대한 사랑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해서 그리스도의 몸에 유익을 끼치려고 한다면 결코 거짓 교리에 미혹되어서는 않됩니다.

 

45. 이번 과를 끝내기 전에 은사주의자들이 하는 방언인 재잘거림에 대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롬 8:26-27) 은사주의자들은 이것은 해석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하는지 알지 못할 때 아무런 의미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직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과 같이 헛된 말을 되풀이하지 말라.”(마 6:7) 성령님의 중보는 재잘거림이 아니라 오히려 말이 없는 기도요 신음입니다.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46.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취하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그 일에 깨어 있고(엡 6:17-18) 만일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들이 하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라면 성령 안에서 걷는 것은 방언으로 걷는 것입니까?(갈 5:16)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에 예수님도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자신의 육신이 원하는대로 기도하지 말고 성령님께서 동의할 수 있는 대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다음 과에서는 비야드 운동과 관련이 있는 “영 안에서의 죽음”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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