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2009.08.23 22:32

기독교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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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본질

The Essential of Christianity

 

James W. Knox 지음 / 김용묵  옮김

 

이번에 공부하고자 하는 성경 본문은 베드로후서 1:1-4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하나님과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와 더불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얻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과 예수 우리 주를 아는 것을 통해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 우리를 부르사 영광과 덕에 이르게 하신 분을 아는 것을 통해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도다.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너희가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본문에 따르면 뭔가 ‘얻어야 하는 것’이 있음을 주목하자. 이 서신은 ‘하나님과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통해 우리와 더불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얻은 자’를 대상으로 기록되었다. 믿음으로 무엇을 얻었는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하나님의 의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옳으신 것만큼이나 옳으며 하나님이 순수하신 것만큼이나 순수하고,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만큼이나 거룩하며 하나님이 죄와 무관하신 것만큼이나 죄와 거리가 멀다.

 

3절에 따르면 “그분의 신성한 권능이 ...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며, 4절에 따르면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다”고 한다.

 

이제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종교-비종교들과 얼마나 다른지를 대조하여 독자에게 보이고자 한다. 기독교가 아닌 것들은 전부 본질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하나로 묶어서 보는 게 가능하다.

 

성경의 기독교는, 자기 깜냥으로 공덕을 쌓는 방법으로는 그 누구라도 하늘로 갈 수 있을 정도의 선행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종교적인 믿음이 있건 없건 영생은 선행을 통해 얻어진다고 믿는다. 참된 크리스천(사람이 아니라 성경이 내린 정의에 따랐을 때)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명제를 믿는다는 것이다. “적당한 기간 동안 적당히 착하게 살다 보면, 신 앞에서 점수도 딸 것이고 영생이 허락될 것입니다.”

 

필자는 지난 금요일 밤엔 한 술취한 젊은이와 얘기를 나눴으며 수요일 아침엔 독실한 종교인과 얘기를 나눴다. 그들은 서로 완전히 다른 종교관의 소유자였고 신에 대한 견해도 극과 극이었으며 성장 배경과 교육 여건도 천차만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동일한 것을 믿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당장은 자신이 하늘로 갈 자격이 안 된다고 여기지만 궁극적으로 그런 자격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이었던 것이다.

 

‘적당히 착한’ 정도에 대해서는 종교의 성향에 따라 다양한 기준이 존재할 것이다. ‘적당히 오래’가 나타나는 구체적인 기간은 영생을 찾는 구도자가 얼마나 독실하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아무리 많은 종교를 조사해 보더라도 그들의 결론은 동일할 것이다. 적당한 기간 동안 적당히 착하게 살다 보면, 신은 당신에게 합격 판정을 내릴 것이고(낙제 판정의 반대) 당신은 하늘에서 살 곳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이다.

 

성경의 기독교가 말하는 바는 이와 다르다. 당신은 하나님 자신의 그 절대적인 의를 소유해야만 하지, 그렇지 않은 다른 모든 것은 불합격이다. 당신은 하나님 자신의 그 절대적인 거룩함을 지녀야만 하지, 그렇지 않으면 하늘로 들어갈 수 없다. 당신은 하나님 자신의 그 흠 없는 순수함을 지니고 있어야만 하지, 그렇지 않으면 당신에게 영생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성경 본문을 보면 평강이 더욱 많아진 사람들이 있는데(2절) 이는 그들에게 무언가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썩을 것을 피한 사람들이 있는데(4절) 이것도 그들에게 무언가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영생의 약속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데(3절) 이 역시 그들에게 주어진 어떤 것 덕분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성경에 따르면 이 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의(1절)이다.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에게는 하나님 자신의 순수함, 하나님 자신의 완벽함, 하나님 자신의 선함이 주어진 것이다.

 

1절은 그들이 어떻게 해서 이 놀라운 선물을 얻었는지를 알려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얻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종교들은 이렇게 말한다. “네 자신을 믿어라, 그리하면 너는 신에게 다가가게 될 것이다.” 종교에는 각종 의식, 헌물, 돈, 행위들도 있는데 꼭 그렇게 비약되는 건 아니라고 반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다 끝나고 나면 결국 당신에게 믿을 건 도대체 뭐가 남는가? 하나님이 아니라 당신 자신뿐이다!

 

필자는 금요일 밤에 그 젊은 군인에게, 수요일 오후에 중년 신사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해야 하늘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대한 각 사람의 답변은 결국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의 선행에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는 간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이런 일을 했으니 신이 나를 받아 주실 거라 믿습니다. 나는 이런 짓을 하지 않았으니 신이 나를 거절하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결국 결론은 이러하다. 모든 종교와 모든 비종교, 모든 철학, 그리고 모든 형태의 정신 교육과 의식 체계들은 너 자신을 믿으라고 당신을 내버려 둔다. 도덕적인 사람, 종교적인 사람, 독실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내가 당장 죽으면 하늘로 간다고 확고하게 말을 절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이 삼고 있는 의의 표준은 표준이 아니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도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가 자격을 갖췄는지 측정조차도 결코 할 수 없다.

 

오늘 필자가 독자 여러분에게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 당신은 하늘로 간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늘로 갈 것 같아요.”나, “하늘로 갔으면 좋겠네요.”, “하늘로 가고 싶어요.”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이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한 사람이라면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하늘로 가게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라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정상이다.

 

그래서 필자가 “하늘로 갈지 안 갈지 왜 확실히 모르십니까?”라고 되물으면, 돌아오는 대답은 이런 식일 것이다. “그걸 확실히 알기란 누구라도 불가능할 텐데요.”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이유가 따로 있다. 당신은 당신을 믿는 한 절대로 확답을 얻을 수 없다! 당신은 해야 하는 행동을 충분히 못 했을 수 있으며, 충분히 오래 지속을 못 했을 수도 있다. 당신은 요구사항들을 완전히 충족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절대로 확실히 알 수 없는 셈이다.

 

그 반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믿음을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에게 둔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자기 자신의 의를 자랑하지 않으며 예수님의 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자신이 전해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다 희망을 두는 사람을 주님은 의롭다고 인정하신다. 지금부터는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설명하겠다.

 

오늘날 이 시대에 복음 사역을 그토록 어렵게 만드는 방해 요인은 딴 데 있는 게 아니다. 소위 기독교라 불리는 교계부터가 상당수 성경의 가르침과는 대립하면서 복음에 대한 관념을 왜곡하고 있다. TV의 종교 채널을 보면 온통 “당신 자신을 믿으세요”라는 내용이다. 서점의 종교 코너에 진열된 책은 자신을 북돋우는 내용이다. 당신이 교회에 간다면 거기서 사역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얼마나 대단하며 당신이 드디어 있게 됨으로써 하나님이 얼마나 행복해하실까 하고 잔뜩 치켜세우라는 사회적 압박을 받게 된다. 기독교라고 불리는 곳에서조차도 이제 자기 안위, 자기 신뢰를 조장하고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고 더욱 부추긴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하늘로 보내지 않을 수 없을 거라고 말이다. 거짓말도 이런 거짓말이 없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행사할 때 평강과 생명이라는 귀한 약속을 하나님의 선물로써 얻게 된다. 그런데 이런 말을 막상 해 보면, 근본주의 기독교라 자처하던 곳도 그냥 의식주의 기독교인지 아니면 기독교라고 불릴 수도 없는 종교 집단인지 분간이 안 되는 때가 종종 발생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일면 좋은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어떤 예수인가?

 

많은 사람들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의지하여 말구유에 있는 아기 예수를 믿는다. 많은 사람들은 기적을 행한 예수를 믿는다. 또 어떤 사람은 아주 고상한 행적을 남긴 위대한 선생이라는 평가에 고개를 끄덕인다. 일각에서는, 거짓 고소를 당하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십자가에서 참혹하고 끔찍한 피투성이 죽음을 맞이한 예수를 믿는다. 어떤 사람은 좀더 나아가, 예수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 하늘로 영광스럽게 돌아갔다는 사실까지도 믿는다.

 

다들 훌륭하고 좋다. 예수님은 처녀에게서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다. 예수님은 죄를 지은 적이 없으며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언행을 남기고 기적을 행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희생 헌물이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난 부활이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신 생명이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그저 지적인 사실이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올바른 지식을 꼭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수님이 누구이고 그분이 무얼 하셨는지에 대한 지적 이해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믿음과는 완전 별개의 존재이며, 이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인격체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번 생각을 해 보자. 사탄이 만약 이 자리에 있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면, 그 역시 예수 그리스도는 처녀에게서 잉태되어 베들레헴의 한 말구유에서 태어났다고 말할 것이다. 사탄은 이 사실을 안다. 그는 그렇다고 해서 구원 받은 게 아니다. 당신이 사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정말로 항상 진리만을 말했는지, 기적을 행했는지, 물 위를 걸었는지,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렸는지 묻는다면 사탄 역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했지!”라고. 사탄이라고 해서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다. 사탄은 이 사실을 안다! 마귀라는 녀석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는 걸 알며 부활과 생명이라는 타이틀을 얻으셨음을 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바르게 아는 것 자체는 좋은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당신은 구원에 관한 한, 마귀보다도 나은 게 하나도 없다. 당신이 지적인 사실들을 옳게 알고 있다 한들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두지 않는다면, 당신에게 영생이란 있을 수 없다. 필요한 요소의 일부를 갖추고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필요한 의를 갖추지는 못한 것이다.

 

성경은 로마서 3:20-28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당신 스스로 보기에 자기 모습이 친척보다 낫다고 한들 소용없다. 당신의 이웃이 당신을 다른 이웃보다 낫다고 여긴들 소용없다. 감방에서 당신이 교도소 전체에서 가장 모범적인 죄수라고 동료 죄수들이 인정한들 소용없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자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제는 율법 밖에 있는 하나님의 의 곧 율법과 대언자들이 증언한 의가 드러났느니라.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에게 미치고 믿는 모든 자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의니 거기에는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느니라. 그분을 하나님께서 그분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한 화해 헌물로 제시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참으심을 통해 과거의 죄들을 사면하심으로써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려 하심이요, 내가 말하거니와 이때에 자신의 의를 밝히 드러내사 자신이 의롭게 되며 또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드는 이가 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결론을 내리노니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

 

본문을 주의를 아주 기울여 읽어보기 바란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는 100% 의로우시다. 그분은 죄를 전혀 짓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짓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순전히 거룩하고 악의가 없고 순결하시며 죄인들로부터 분리되어 계신다(히브리서 7:26). 그분 외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그분과 정반대이다. 우리는 모두 죄를 지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은 처녀에게서 태어났고(지적 사실), 죄를 짓지 않고 살았으며(지적 사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나셨고(지적 사실), 구주로서 하늘에 앉아 계신다(지적 사실). 자,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이 모든 사실을 믿는다면, 어떤 사람에게든 오로지 그분의 의만이 하늘로 통하는 유일한 길임을 당신은 이해하겠는가? 당신이 그분에게 믿음을 두어 그분을 신뢰한다면, 그분은 당신에게 그분 자신의 의를 주실 것이다.

 

당신이 당신의 믿음을 전적으로 그분께 둔다면 하나님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인정하실 것이다. 로마서 3장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이를 믿는 자를 의로운 자로 인정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믿는 당사자 자신의 의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당신은 하늘로 갑니까?”라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받았기에 영생을 소유하고 있음을 안다. 이것만이 누군가를 하늘로 보내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의이며, 필자가 의지하는 것이다. 필자의 믿음은 내가 행한 일이나 행하지 않은 일, 또는 앞으로 할 일이나 앞으로 하지 않을 일 따위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필자의 믿음이란 하나님의 의로운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위해 일어나셨다는 사실이며, 그분만이 나의 유일한 하늘 소망이다.

 

우리가 회개에 대해 선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은 회개하지 않고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하늘로 향하는 길이 존재하지 않음을 결코 인정하지 못한다. 자신에 대한 신념과 희망, 자기 종교에 대한 맹신을 버리지 않고서는 결코 구원 받을 수 없다. 우리는 세상 종교 교파들과 강경하게 대립하는 악역을 담당 중인데, 왜냐하면 그 많은 무리들은 구주가 아닌 자신의 선행을 믿기 때문이다. 그런 거짓 믿음을 청산하기 전에는, 하늘로 가는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들어올 수 없으며 구원을 가져다주는 참된 믿음도 있을 수 없다.

 

하늘로 가는 방법이 여럿 존재한다는 말은 곧, 사람은 자신을 자기 선행으로 구원할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 말을 하는 사람이 근본주의자이건 정치인이건 유형 교회의 회원이건 누구이던 간에, 그는 사람이 자신의 공로에 의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셈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늘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남의 종교를 제멋대로 정죄하는 혐오형 인물로 간주되어 비난의 대상이 된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정죄를 한몸에 받겠다는 뜻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떠나서는 하늘로 가는 길이 아주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이라고 하면서 자신과 다른 믿음을 지닌 사람도 다 하늘로 간다고 말하는 사람은 실은 자기가 크리스천이 아님을 실토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소위 기독교 단체라는 이름이 붙은 몇몇 곳에 속할 수는 있으나 사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의와 구원을 이해한 자들이 아니다.

 

로마서 10장을 같이 보도록 하자. 지적 정보가 어떻게 참된 믿음으로 연결되어야 하는지를 눈여겨보기 바란다. 다음은 1절과 2절이다.

 

“형제들아, 이스라엘을 위한 내 마음의 소원과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곧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니라. 내가 그들에 대해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으나 ...”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셨음을 믿는다. 그들은 하나님께 희생물을 바치며, 하나님을 위해 자신들이 지은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 그들은 다른 신들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들은 열심이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빠진 것은 무엇인가? 3절을 보자.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여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바로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라. 그분이 하나님의 의이시다! 그분은 완전히 의로우신 유일한 분이다. 그 반면 온 인류를 보라. 그들은 죄를 짓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그들은 의롭지 못하다.

 

그래서 필자가 말을 걸었다. “선생님께서는 죽으면 하늘로 갈 수 있습니까?”

“네. 그걸 희망하고 있습니다.”

“희망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세례를 받았거든요.”

이 사람은 하나님의 의를 따른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의를 자랑하고 있다.

 

“아주머니께서는 죽으면 하늘로 갈 수 있습니까?”

“네, 그걸 희망하고 있습니다.”

“희망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집에서 좋은 어머니, 좋은 아내였고 좋은 사람이었으니까요.”

이 여인도 하나님의 의를 따른 사람이 아니다.

 

“댁은 죽으면 하늘로 갈 확신이 있습니까?”

“네,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저는 이러이러한 곳에 소속되어 있고 이러이러한 종교 행위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예가 자기 신뢰의 모습이며,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는 답변이지 않은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불의하고 죄를 지었으며 하나님이 요구하는 수준의 영광에 이르지 못해 있기 때문에 하늘로 갈 수 없다고 일깨워 주는 것은, 바로 마음속의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다. 자기 공로로는 결코 하늘로 갈 수 없다는 것을 성령님을 통해 인지한 사람이라면, 그가 취할 수 있는 후속 조치는 둘 중 하나이다. 하나, 성경의 진리를 거절하고 자기 자신이나 자기 종교를 계속 믿는다. 둘, 자신의 무가치함을 겸손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의를 따른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공로를 믿으면서 그분께 나아오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사면을 받고 영생을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절대적인 의로 여겨 주시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자기 자신을 믿는 사람은 자기 죄 가운데에 죽고 지옥에서 눈을 뜰 것이다.

 

사람의 혼을 가장 위험에 빠뜨리는 요소가 어떤 악행이나 부도덕함이 아니라 종교에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종교들에 존재하는 가장 마귀적인 요소란, 인본주의적인 자아 사랑을 좋은 가르침에다 그럴싸하게 혼합해 놓는 것이다. 자신의 선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사람을 지옥 정죄를 향해 더욱 떠밀어낸다.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 완전한 의의 부재를 확인시켜 주는 가르침은 사람을 예수님께 가까이 가게 하고 용서와 긍휼을 가져온다.

 

본문인 로마서 10장으로 돌아와 보면 우리는 이런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예수님이 과거에 어떤 분이셨나 하는 지적 이해에서 그치지 말고, 그분이 이제 내게 어떤 분이신가 하는 영적 이해로 탈바꿈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의이며 그분 외에는 하늘로 가는 길이 결단코 없다. 그래서 4절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가 되시기 위하여 율법의 끝마침이 되시느니라.”

 

자기 공로로는 하나님의 기준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날이 바로 구원을 받는 날이다.

 

남에게서 선물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선물은 선물을 주는 사람이 선물에 대한 값을 치르고 남에게 주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위해 영생을 선물로 주셨다. 값은 이미 다 지불된 상태이다!

 

남이 계산을 다 하고 사 준 식사를 했는데도 당신은 동전을 뒤적거리거나 입구에서 한 번만 봐 달라고 통사정을 하거나 설거지를 대신 하려 하겠는가? 결코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처럼 영생도 이미 값이 다 지불되어 있는 선물이다. 그런데 당신은 왜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 하고 물질과 시간을 쏟아 부으면서 영생을 사려고 애쓰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에게 하늘로 들어가기에 충분한 의를 주고 싶어하신다.

 

당신이 겸손하게 당신의 모든 믿음을 예수님께 두기만 한다면 당신은 영생을 받게 된다. 당신이 이 의를 그분으로부터 받지 않는다면 영생은 결코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매스컴과 학교의 세뇌 교육을 비롯해 잘못된 종교들이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 받기를 얼마나 어렵게 만들어 놓았는지 알만도 하다. 스스로 하늘로 갈 수 있을 정도로 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하면, 자아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거 참 부정적인 발언이군요.”이다.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면 “말이 좀 지나치십니다.”로 일축한다. 한 술 더 떠서, 그 어떤 종교로도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죄 가운데 죽게 된다고까지 말하면 자아를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이 정도 반응은 각오해야 한다. “당신은 누군데 감히 남의 종교를 무시하고 적대적으로 대합니까?”

 

그와 동시에 필자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선사하셨다는 것을 알려 준다. 곧,

- 당신의 모든 죄에 대한, 대가 없는 완전한 용서

- 역시 대가 없이 주어진 하나님 자신의 의

-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 보장된 하늘에서의 영생

이다.

 

그런데 이 논리에는 하나님만이 모든 영광을 차지하고 사람이 뭔가 개입하여 뽐낼 게 없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는다. 자기 자신을 믿지 않고 주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면 이것은 숫제 부정적이고 나쁜 가르침으로 간주된다. 영생이 달려 있는 문제인데도 말이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 있겠는가!

 

전능하신 하나님은 당신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한다면 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영생을 주실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세상에 이것만치 더 긍정적이고 기운을 북돋우는 희망적인 좋은 소식이 대체 무엇이 있겠는가! 하지만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 없이 자신이 직접 하늘로 가기에 적합한 존재임을 증명하려 애쓰다 영생을 놓치고 만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의, 즉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유일한 의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공급해 주실 거라고 말씀한다.

 

이 위대한 거래에 대해 기술하는 고린도후서 5:20-21을 눈여겨보기 바란다.

 

“그런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너희에게 간청하시는 것 같이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가 되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

 

한 국가의 대사는 외국에 가서 자기 나라의 입장을 대변하여 말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대사는 타인에게 하나님의 입장을 대변한다. 대사는 자기 생각에서 유래된 말을 결코 하지 않으며 자신이 소속된 국가의 공식 입장만을 전달한다. 그리고 이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전하려는 계시가 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예수 그리스도)을 우리(우리 모두.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런 거래가 어떤가? 예수님은 당신의 죄를 가져가 버리고 대신 하나님의 의를 당신에게 주려고 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거절할 사람은 없으리라.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자. 수 년 전 당신은 시가 5억 원에 달하는 집을 융자까지 받아서 구입했다. 내 능력으로 대금을 상환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만으로 일을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사고를 당해 다쳐서 돈을 벌 수 없게 되고, 그 엄청난 돈은 결코 마련할 수 없게 되었다. 채무를 이행할 수 없어졌고 당신은 길거리로 내몰리기 직전이다.

 

그런데 이때 어떤 사람이 와서 이렇게 말한다고 치자. “제게 5억 원이 있으니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빚을 청산하고 그 집을 완전히 당신 것으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걸 당사자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면 받지 않아도 됩니다. 언젠가는 어떻게든지 내가 대박을 내서 집값을 직접 낼 수 있게 될 거라고, 근거 없는 희망을 붙잡고서 빚을 청산하려고 꾸준히 노력하시면 되겠죠.”

 

이런 상황에서, 5억 원이라는 거금을 쾌척하여 집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이 제안을 마다할 사람이 세상에 과연 누가 있을까? 당신의 빚은 완전히 청산되었고 이제는 집에서 행복하게 잘 사는 것만 남았다. 놀랍지 않은가?

 

죄라는 빚은 사람의 혼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 그래서 전능자 하나님은 이 빚을 청산할 기회를 다 마련해 놓으셨는데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은혜로운 제안을 뿌리치는 것일까? 죄에 재미를 붙여 도무지 멈출 수 없는 지경이 된 사람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 용서의 제안을 일축한다.

 

하나님은 당신의 죄 부채를 모두 거둬 가고, 대신 그분의 의를 주어 당신이 영생을 얻을 수 있게 해 놓으셨다. 그런데 이런 환상적인 제안을 물리치는 사람이 왜 이리도 많은 걸까?

 

당신의 죄를 하나님의 의로 대체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래이다.

 

당신은 예수님께서 처녀에게서 태어났다는 걸 믿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분이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걸 믿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그렇게 처녀에게서 태어나시고 죄 없으신 구주께서 정녕 나 자신을 위해 죽으시고 나 자신을 위해 살아나셨으며, 나를 하늘로 가게 해 주는 유일한 소망임을 믿어야 한다.

 

빌립보서 3:4-9에 기록된 바울의 간증을 읽어보자.

 

“나 역시 육체를 신뢰할 수도 있지만 그리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어떤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것이 자기에게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사람이 자기 공로로 하늘로 가는 게 가능하다면, 바울은 자기야말로 그 대열의 선두에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성장 배경에 대해 계속해서 얘기한다. 하나님의 선민인 히브리 사람으로 태어났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직통으로 유래된 종교의 내부에서 가장 근본주의적인 가르침을 따르며 자랐다. 이 교계에서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탁월했다.

 

하지만 바울은 이에 대해 어떻게 얘기하는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하나님은 당신이 자기 의로는 결코 하늘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길 원하신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수준은 요람에서부터 무덤까지 죄가 전혀 없는 완벽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 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의를 소유하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 해 놓은 것이든 내일 모레에 할 것이든, 행위를 신뢰하는 관행을 중단하라고 촉구하신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에 우리의 모든 신뢰와 확신을 남김없이 올려놓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하고 싶어하신다. 당신을 용서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믿고 기뻐하고 거기에 희망을 두어야 한다. 이 의는, 자신의 신뢰를 그 구원자에게만 100% 두고 자신의 선행은 완전히 0%로 내려놓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값없이 주어진다.

 

믿음이 있다 하는 어떤 두 사람에 대해서 예수님이 내리신 평가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겠다. 누가복음 18:10-14를 보자.

 

“또 그분께서 자기가 의롭다고 스스로 믿고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어떤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다른 하나는 세리더라.”

 

(편의상 바리새인을 갑으로, 세리를 을로 지칭하기로 한다.) 갑과 을은 모두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장소에 있으며, 둘 다 똑같이 기도를 하고 있음을 주목하기 바란다.

 

“바리새인은 서서 자기 홀로 이렇게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들 곧 착취하고 불의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더욱이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고 내 모든 소유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갑의 기도는 자신의 선행을 읊조리는 것이다. 그는 간음을 저지르지 않는다. 아주 좋다. 그는 사람들을 공의로써 대한다. 훌륭하기 그지없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남을 착취하지 않는다. 참으로 경이롭다. 그는 늘 법대로 하나님 앞에 헌물을 바친다. 멋지다.

 

그는 선한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다. 하지만 그가 주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그 자신감은, 자신의 선행으로부터 유래되었음이 명백하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죄인인 내게 긍휼을 베푸소서, 하니라.”

 

이 기도를 섣불리 확대 해석하지 않도록 주의하자. 을에게는 갑이 잔뜩 으스댄 것 같은 그런 선행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이 사람을 부도덕한 인간 말종이라고 매도할 근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여기서 직시하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춘 한 연약한 인간의 모습이다. 이 사람은 자기가 자기 옆에 있는 사람보다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자신은 영광의 주님 앞에서는 내세울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갑은 자기가 실컷 선행을 했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간구한다. 을은 자기가 죄를 지었음을 알기 때문에 긍휼을 간구한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 사람(갑)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람(을)이 의롭게 되어(영어로는 justify. 법적 효력을 나타내는 법률 용어이다.) 자기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자기를 높이는 자는 다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그래서 자신이 의롭지 못함을 아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에 소망을 두고 자신이 하찮은 죄인임을 인정했으며, 그 덕분에 하나님은 그가 자기 행위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칭의를 그에게 내려 주신 것이다. 이 의는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자신이 아닌 그분만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

 

당신도 오늘 구원 받을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기만 한다면.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요한복음 14:6)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그들이 이르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 하며”(사도행전 16:31)

“죄의 삯은 사망이나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얻는 영원한 생명이니라.”(로마서 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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