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11.18 05:06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48(11월 24일-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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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48

11월 24일-30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1124

요셉이 아들들을 축복함 3

 

하나님은 자녀들(요셉의 아들들)을 복 주시라는 요청을 받으셨는데 영적인 복과 물질적인 복, 두 가지를 주시게 될 것입니다(16). 우선 아이들은 이스라엘의 가족 안으로 포함되어 집니다. 동시에 그들은 땅의 한 가운데서 자라나 한 무리가 될 것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관한 이 예언들이 어떻게 정확하게 성취되었는지는 성경 기록의 역사들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장자에 대한 상식에 입각해서 자기 아버지가 오른 손을 자은 아들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올려 놓자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자 보이지 않아 실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그 손을 옮겨 므낫세의 머리로 가져가려 시도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하시며 그대로 축복하려 하십니다. 아마도 요셉은 놀랐을 것입니다. 물론 므낫세도 큰 자가 될 것이지만 작은 아들이 더 큰 자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장자를 제쳐 놓는 이 원칙은 창세기의 가장 기이한특징 중의 하나로 결코 놓쳐서는 아 됩니다. 가인대신 셋이 선택되고 야벳이 아니라 셈, 하란이 아니고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이 아닐 이삭이, 에서가 아니고 야곱이, 그리고 지금 므낫세가 아니라 에브라임이 하나님의 택한 자들임을 주목하십시오.

이로써 하나님께서는 출생에 따른 특권에 대해 그분의 축복도 따라 간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셨고 심지어는 멸시 받는 자들을 택하셔서 강한 자들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드셨습니다.

먼저 온 율법이 은혜의 복음을 위해 제치게 될 때, 즉 구약이 아니라 신약이 이를 대신하게 될 때, 사람들은 역시 이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계시며 모든 진리는 결구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줄 뿐입니다.

 

 

1125

창세기 48장 묵상

 

이 날까지 나의 전 생애 동안 나를 먹이신 하나님(15)이라는 간증은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됩니다. 실로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신 분이십니다. 이는 우리가 그분을 알기 전부터 우리가 지녔던 모든 것이 다 그분의 은혜로운 손길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사(16) 여기서 성령님께서는 창세기 32장에서 사람과 씨름을 하신 분이 다름아닌 주님 자신이었음을 야곱을 통해 우리에게 알리시고 계십니다. 그 구절에서 야곱이 대적한 것이 한 사람이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기록에서 천사의 등장과 주님께서 성육신 이전에 인간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나타나셨던 사건들에 대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의 천사가 성경에 등장하는 것은 59번인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들 중 거의 전부 심지어는 전부 다 주 예수 그리스도이셨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어도 다음 두 가지 경우는 그럴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출생시와 부활 때에 등장하는 천사는 적어도 예수님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 주님과 천사일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관련해서 그가 견지한 인생을 바라보는 두 방식을 대조해보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는 파라오 앞에서(47:9) 자신의 날들을 얼마 안 되고 험악하였다고 했으나 요셉 앞에서는(48:16) “모든 악에서 자신을 구속하신분에 대해 간증했습니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야곱이 지닌 두 가지 삶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첫 번째 경우 그의 인생에서 자신이 모든 것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니셨습니다(nothing). 예외라면 인생은 순례자라고 간증한 것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후자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되시고(everything)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파라오 앞에 섰을 때 매우 우울한 상태로 인생을 바라보았고 이로써 하나님을 증언할 귀한 기회를 놓쳐 버린 셈입니다.

요셉과 그의 아들들 앞에서의 훨씬 더 만족스러운 증언은 주님께서 언약을 체결하시고 지키셨으며, 자신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구속해 주심에 대해 주님께 영공을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이 보다 더 하나님을 잘 묘사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시고 그처럼 놀라운 약속들을 주신(3, 4) 바로 그 기념비적인 벧엘에서의 밤으로부터 자신의 인생을 회상해가며 그는 진정 감사가 넘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시련과 역경을 통과해 갈 때는 하나님의 손길을 본다는 것이 항상 쉬운 일이 아님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고 우리의 인생 여정을 회상해 보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인도해오셨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야곱은 한 인간 안에 존재하는 두 본성을 분명히 깨닫게 해 줍니다. 파라오 앞에서 바라보는 인생과 요셉 앞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을 대조해보십시오. 자기의 마음 상태에 따라 인생은 비참한 동시에 영광스럽기도 한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이 야곱의 임종이 성경의 교리 전개에 어떤 의미를 갖는 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죽게 되 때 우리 뒤에 남게 될 자들에게 주님과 개인적 교제를 당부하는 반면 아브라함의 상속자들은 땅에 대한 그들의 권리에만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알게 되었는지를 알고자 하나 이들은 한 민족이 그들의 몫으로 땅을 차지할 것인지에 집중합니다. 그러니까 구약은 영적 진리에 관해서는 민족적으로 접근하고 개개인에게 적용을 하는 반면 신약은 양적 진리에 있어 개인적을 접근하고 민족들에게 적용합니다.

유대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 그처럼 어려운 이유는 창세기에 나와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육적 출생을 통해 하나님과 자동적으로 영원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유대 민족과 그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주장에 그처럼 당혹해 했다는 사실은 창세기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이스라엘과 교회, 그리고 구약과 신약을 구분치 못하는 모든 교단이 자유주의자들이요, 거짓 복음을 전파하는 이유는 이들은 하나님과 개인간의 간계가 국적이나 자신들이 소속된 교단에 기초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1126

나는 죽으나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교훈들 보다 야곱과 요셉의 이야기에서 더 두드러진 교훈은 창세기 전체를 토해서도 그러하듯이 나는 죽으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48:21)나는 죽으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라.” 일 것입니다. 영원토록 남게 되는 그 한가지 이름은 다름아닌 그 어떤 이름과도 비교될 수 없는 영원하신 하나님이라는 이름입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은 와다가 가버립니다. 이삭, 야곱, 그리고 요셉도 자신들의 인생을 살고 가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아 계십니다. 모든 시대에 걸쳐 그분만이 유일하고 확실한 그분의 백성들의 거처이십니다. 그분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꾼들을 묻으시고 자신의 일을 계속해 가십니다. 이 단순하지만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 진리를 우리가 깨닫는 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의 모든 부침과 변화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는 거하시고, 다스리시고, 존재하십니다. 그분의 왕국은 세워질 것이고, 그분의 목적은 시현될 것이며, 그분의 교회는 승리할 것이고, 그분의 뜻은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도들은 떠났고 교회는 남았습니다.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땅에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이루시고 계신 그 일은 계속 이어져 가고 있습니다.

누이 모두 하나님의 종들이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가버린 뒤의 일들을 주목합시다. 우리의 짧은 현세의 인생에만 관심을 집중하지 말고 먼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을 지니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을 사용하시지만 사람들이 실패한다 해도 그분은 실패하지 아니하시며 사람들이 더 이상 그 일에 동참하지 못하게 될 때에도 그분의 일은 멈추지 않습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께서는하시리라.” 이 땅의 모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마음이 평안하고, 안식하고 신뢰하고, 소망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의 실패함이 없는 임재와 무너짐이 없는 목적 달성에 대한 우리의 확신 때문입니다. 너희는 영원토록 주를 신뢰하라. 주 여호와 안에 영존하는 능력이 있도다.”( 26:4)

 

 

1127

야곱의 믿음의 발전 단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하신 야곱에 관한 기록에 근거해서 야곱은 실패와 신실치 못한 측면들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야곱의 인생을 통해 느리고 때로는 감지하기 어렵지만, 하나님에 대한 야곱의 믿음이 점진적으로 성장해 왔다는 사실이며 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흔히 발견되는 바 바로 그것입니다. 인생이 마무리 되어갈 무렵 야곱은 세 번의 특정한 경우에 믿음을 내보인바 있습니다.

1. 그는 파라오를 축복했습니다(47:7, 10).

2. 그는 요셉에게 자기를 이집트에 묻지 않을 것을 맹세시켰습니다(47:27-31). 이 믿음에 관해 더 확실히 알아보려면 다음 구절들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2:7, 13:15, 15:18, 17:8, 22:17(마지막 문장), 26:3-4, 28:13, 35:12. 야곱은 약속의 땅이 반드시 그의 후손에게 넘겨질 것이고 그래서 그는 비록 죽은 후 일지라도 그 유업에 동참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 후 48장에서 요셉과의 마지막 만남이 나옵니다. 3-4절에서 야곱은 언약으로 주어진 약속을 확고히 붙들고 있습니다. 그의 믿음은 자신의 구속을 바라보며 회상을 하는 반면(15-16a) 자신의 자녀들이 바다의 모래와 하늘의 별들처럼 많아질 미래를 또한 바라봅니다. 차에기 28:15-20에 나오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해 보시지요. 이 엄청난 미래의 선언에 대해 그의 반응은 약하고 불안했습니다. 그는 그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IF)”이라고 말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데 대한 반응이 이정도 였다니! ! 그러나 우리 인생 역시 이런 의심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았는지요? 우리는 약속은 가지고 있으나 그 약속 위에 서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야곱은 훨씬 믿음이 좋아졌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죽으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48:21) “하면(IF)”에서 하시리라(WILL)”로 바뀌었으니 이 얼마나 장족의 발전을 이룩한 것입니까?

그러니 여전히 머뭇거리고, 넘어지는 형제들에게 인내하십시오. 그들은 다시 일어나 앞을 향해 갈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믿음이 자라니까요. 많은 믿음 좋던 자들이 비참하게 끝나는 가 하면 야곱처럼 안 좋게 시작했으나 끝맺음이 좋은 사람도 있습니다. -

 

 

1128

야곱의 생애를 돌아봄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루신 분명한 3단계가 있었습니다.

1. 자아의 시기( 25-32)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자아가 마음껏 발현되도록 내버려두셨습니다. 이 시기는 자주 추하고 당혹스럽습니다. 그는 육신의 욕망과 두려움에 따라 행동합니다. 야곱을 칭찬할만한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가 브니엘에서 주님께서 자아를 내리치셨습니다. 이때 야곱은 자아의 생명은 무기력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자아가 지배하던 시기에는 야곱에겐 믿음이라고는 없었습니다.

 

2. 징계의 시기( 33-45)

이 기간에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고난의 용광로 속을 통과토록 하십니다.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혼돈스럽고 긴장의 연속입니다. 이 모두가 죄와 불신의 결과를 그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이 시련으로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들을 묵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3. 믿음의 시기( 45-49)

하나님의 징계의 손길과 요셉을 야곱 앞에 다시 회복시키신 큰 은총의 결과 야곱이 믿음은 일취월장합니다. 그는 약속을 붙들게 되고 미래의 상속자들에게 확신 있게 말하고 주님께 철저한 확신을 두도록 손자들을 확신시킵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기 전에 있었던 두 번의 단계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은 현재 어느 단계에 계신가요? 전부는 아닐지라도 하나님의 거의 대부분의 자녀들은 처음 두 단계를 거치게 마련입니다. 우리 또한 이 두 과정을 빨리지나 즐거운 3단계로 넘어가도록 합시다.

 

 

1129

마지막 날들 1

 

야곱이 자기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함께 모이라. 마지막 날들에 너희에게 임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49:1)

마지막 날들(last days)이라는 표현은 성경에 23번이 나오는바 이를 검토해보면 이것은 주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다루시는 그 일이 결말지어지는 완전한 묘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이 표현이 사용되는 문맥을 보면 마지막 날들이 야곱의 열두 아들의 미래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의 진리들은 마지막 날들이라는 용어와 더불어 계시되고 있습니다.

l  이스라엘은 주님으로부터 돌아설 때 저지른 일들 때문에 재앙을 겪게 될 것입니다( 31:29).

l  마지막 날들은 느브갓네살이 이방인의 때에 대해 꾼 꿈의 종결에 해당됩니다( 2:28).

l  주님의 분노가 타오를 것이고 격렬한 회오리 바람이 사악한 자들 위에 덮칠 것입니다( 23:18-20).

l  곡이 북쪽으로부터 와서 이스라엘을 대적할 것입니다( 38:16).

l  이와 같은 일들이 유대인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10:14).

l  환난 때 이스라엘은 주님께로 돌아서게 됩니다( 4:30).

l  예수님께서 원수들을 굴복시키러 오십니다( 24:14).

l  모압의 포로들이 돌아옵니다( 48:47).

l  엘람의 포로들이 돌아옵니다( 49:39).

l  이스라엘이 참된 지도자와 경배 없이 보내던 날들이 주님의 선하심으로 주어지게 됨으로 종결됩니다( 3:4-5).

l  주의 집의 산이 모든 산들 위에 세워지고 모든 민족들이 그 곳으로 몰려듭니다( 2:2, 4:1).

l  눈이 먼 이스라엘은 마지막 날들(the latter days)까지 이런 것들을 깊이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30:24).

 

 

1130

마지막 날들 2

 

구약성경에서 사용되는 마지막 날들(last days, 혹은 latter days)이라는 표현은 대환난의 끝 무렵과 천년왕국의 시작 때의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다루심이 종결되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비록 이 표현이 교회에 대한 시범적인 훈계를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역시 유대인과의 관련성은 그대로 유지됩니다.

성도들에게는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이르리라.”(딤후 3:1)는 경고가 주어져있습니다. 또한 조롱하는 자들과 비웃는 자들(벧후 3:3, 18)이 와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문자적 재림을 믿고 있는 자들을 비웃을 겁니다. 또한 잔인한 부자들이 노동자계급을 억압하게 될 것입니다( 5:3). 동시에 적그리스도가 권좌에 오를 것입니다(요일 2:18).

마지막 날들에는 모세에 의해 기록된 것들과 대언자들이 제시한 것들보다 아들의 말씀들이 더 위용을 떨칠 것입니다( 1:2).

악한 상황 가운데서 들려오는 좋은 소식은 다름아닌 어린양께서 나타나실 것이고(벧전 1:5) 하나님의 구원이 드러날 것입니다(벧전 1:20). 성령님께서는 베드로를 인도하셔서 요엘 2:8의 예언이 바로 이 때를 언급하는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2:17).

마지막 날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런 사실을 말하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고 듣는 자들 무리를 흥분시킬지도 모르지만 이 용어를 교회와 관련된 그 어떤 사건과(세속적이든 종교적이든 간에) 연관시키는 것은 다소 부주의한 일이 될 것입니다. 어떤 날들이 마지막이 되기 위해서는 끝이 있는 하나님의 여사의 일부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루심은 그와 같은 종결이 있습니다( 9:24-27).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를 다루시는 것은 끝이 없습니다(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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