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
2013.01.14 07:59

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3(1월 15일-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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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와 함께 하는 일년 3

1 15일-21일

 

James W. Knox 지음

영균 옮김

 

1 15일

“강 하나가 에덴에서 나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개의 근원이 되었는데( 2:10)

 

물은 지구상에서 대단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물로부터 나왔습니다( 1:20).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전부 물에 의존해서 생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평화로운 물길이 흐르는 곳에 함께 거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실로 즐거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서 우리는 새로 지음 받은 인간이 천진난만한 무죄의 상태에서 아름다운 에덴의 동산에 거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인간과 인간을 만드신 분 사이는 더 없이 좋았고 강이 동산으로부터 흐르고 있었습니다.

에스겔서 47장에서 우리는 대환란이라는 끔찍한 날이 끝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드디어 권능과 영광가운데 오셔서 땅 위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셨습니다. 전쟁은 끝나고, 반역이 제압되고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왕좌로부터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 강은 에덴으로부터 흘러나오던 강처럼 결국에는 온 땅을 치유(힐링)와 정화로 뒤덮을 것입니다.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된 뒤 우리는 어린양께서 구속 받은 자들과 함께 거하실 생명의 강이 흘러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1).

하나님과 인간이 화평 가운데 강물이 흐르는 곳에서 조화롭게 함께 거하는 것,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주 예수께서 요한복음 7:37-39에서 하신 놀라운 말씀들을 함께 읽어 봅시다. 마지막 날 곧 명절의 그 큰 날에 예수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 기록이 말한 것 같이 그의 배에서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라. (그러나 이것은 그분께서 자기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더라.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아니하셨으므로 아직 성령님께서 주어지지 아니하였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화평가운데 함께 흐르는 강가에 동거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을 통해 죄들을 용서받은 위대한 결과입니다.

 

1:20 바닷물과 인간의 피는 거의 동일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피가 6배 농도가 짙을 뿐입니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라는 노래를 왜 부르는지 알 것 같습니다.-역주)

 

 

1 16일

동산에서의 일

 

창세기 3장에서 인간에게 내려진 저주가 다름아닌 노동의 의무라고들 흔히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만드시자 마자, 죄를 짓기 전에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죄 없는 세상에서, 창조주와 조화로운 관계 아래에서는, 노동()이란 지적이고 강하고 능력 있는 인간이라는 창조물에게는 당연한 과정입니다. 동산을 가꾸고 지키면서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이 정신적, 육체적 노동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게 됩니다.

노동()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설계되어 있던 인생의 한 부분입니다. 어떤 분들은 오는 세상에서는 우리가 더 이상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안식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게으른 존재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계시록 22:3에서 보면 최상의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입니다.

우리는 민수기 3:7-8에서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조건하에서 성막을 지키는 레위인들의 책임에 대해 동일한 사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동산에서나 성막에서나 주님께서 의도하신 바는 인간이 노동을 통해 무언가를 원래의 상태로 보존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유지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지 보수작업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원 창조자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것을 보존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하찮은 일을 시킴으로써 굴욕을 맛보게 하시는 대신에 그와 같은 책임을 부여하심으로써 인간을 존귀하게 여기신 것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일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물 중 최고의 존재(만물의 영장)로 신뢰하고 계심을 보여줍니다. 남자는 바깥에서 그리고 여자는 주어진 환경에서, 그들을 그처럼 놀랍게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보시는 신뢰로서 자신의 일을 여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진리는 인간의 타락에 또 다른 어두운 모습을 덧붙이게 합니다. 동산에서 죄를 지은 인간, 이로써 하나님과의 신뢰의 관계를 깨어버린 인간은 주님의 마음에 큰 슬픔을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

 

 

1 17일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조력자를 만들리라, 하시니라.( 2:18)

 

이 말씀 속에는 인간의 인간됨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다른 인간과 교제하고픈 갈망과 필요를 부여 받았습니다. 무인도에 버려진 외로운 생존자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모든 사람들 속에 두려움이 숨겨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 어떤 인간이든 홀로 갇혀 지내게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인간은 오랜 고립을 겪으면 지속적인 정서 장애를 겪게 됩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처방은 가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필요에 부응하도록 돕는 조력자로 여자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는 말씀과 누구든지 아내를 얻는 자는 좋은 것을 얻고( 18:22)라는 말씀이 얼마나 대조적인지요. 물론 독신을 택하여 고귀하게 살아가는 분들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집중해서 주님만을 섬기고자 혼인의 축복을 스스로 거부하는 분들도 있습니다(고전 7).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린도전서는 성취되지 못한 욕구가 빗나갈 수도 있음을 경고합니다. 노처녀라고 다소 거칠게 부르던, 요청되지 않은 축복이라고 은혜롭게 부르던 간에, 은혜롭게 그리고 활기차게 홀로 살아가려는 여인은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남자를 위해 남자를 만들지 않으셨고, 여자를 위해 여자를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이러한 지혜에 주목해야 합니다. 자신과 같은 성(동성)을 지닌 자와 관계를 맺어 하나님께서 주신 육체적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것은 본성에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남자가 혼자 있으면 자살할 수도 있고 둘이 함께 있으면 살해의 가능성도 있습니다(가인과 아벨). 여자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사회는 실패로 끝납니다.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이슬람의 확장, 십자군전쟁, 점령군, 그리고 골드러쉬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술취함과 폭력이 남성 문화의 전형적인 생활방식임은 입증된바 있습니다. 여자가 제공하는 균형이 없이는 남자는 짐승으로 퇴화해 버립니다.

 

 

1 18일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은 잠에 빠지게 하시니 그가

잠들매 그분께서 그의 갈비뼈 중의 하나를 취하시고 그것 대신

살로 채우시며 주 하나님께서 남자에게서 취한 그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녀를 남자에게로 데려오시니( 2:21-22)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나님께서는 실로 엄청난 일을 우리를 위해 하셨군요!

아담은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와 같이 특별한 수술을 행하신 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아담의 필요를 알고 계셨던 주님께서 그 필요를 먼저 채워주신 것입니다. 아담이 아내를 달라고 기도한 것도 아니고 간청한 것도 아니고 앞으로 등장하게 될 것에 대한 어떤 표적이나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담이 잠들었고 그 동안 하나님께서 일하셨습니다. 남자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가 마음으로 갈망했던 그것이 자기 앞에 서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구하지도 않은 복을 받아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상황과 여건이 변경되어 여러분의 유익이 되었던 경우를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기도하려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것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을 찬양합시다.

얼마나 많은 교통사고와 미끄러짐과 넘어짐, 혹은 악한 자의 공격 등이 하나님의 간섭으로 안 일어났을까요? (물론 우리가 알지도 못한 채로) 얼마나 많은 지키지 못한 약속, 질병, 혹은 일의 지연 등이 우리를 파멸로 이끌지도 모를 무엇으로부터 지켜주었을까요? 얼마나 자주 빛의 권능이 어두움의 세력을 우리가 알지도 못한 채 우리로부터 몰아내었을까요? 어린양께 영광을 돌립니다.

하루를 끝내고 다음과 같이 기도해 오신 적이 있었는지요? “하나님 아버지, 제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그 많은 일을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상함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행한 일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나게 하신 것과 행운이 생긴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1 19일

떠나서 연합하라.

 

창세기 2:24에는 인간의 사화질서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풍성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라는 단어는 왜 결혼이 그처럼 중요하고 영원한 제도인지를 보여줍니다. 여자는 남자로부터( 2:21-23), 그리고 남자를 위해(고전 11:9) 지어졌으며 남자는 여자 없이는 완성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라는 단어는 우리를 연합이라는 사상으로 인도해 줍니다. 남자와 여자는 한 육체입니다. 에베소서 5장에서는 자기 자신의 몸이라는 용어가 쓰입니다. 남자가 자기 몸의 절반을 잘라내고 내장의 절반을 제거한 후에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남자가 아내를 내어버리고 도덕적, 영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인류역사를 통해 사생아의 출생과 이혼을 고무 찬양하는 지구상의 그 어떤 문명도 모두 다 파멸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부모님의 돌보심과 권위는 자녀가 결혼할 때까지는 계속되어야 함을 또한 배우게 됩니다. 집에 가면 엄마가 있다는 사실이 많은 가정의 붕괴를 막았습니다.

연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룻기 1장이 가장 생생한 통찰력을 제공해 줍니다. 14절에 보면 룻이 나오미와 연합(굳게 붙는)하는 장면이 나오고 16, 17절에서는 룻이 나오미가 가는 곳에 자기도 가고 그녀가 머무는 곳에 자기도 머물리라고 약속하면서 나오미의 백성이 자신의 백성이 될 것임을 선언합니다. 이제 룻은 나오미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믿고 나오미와 함께 죽고 묻힐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연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남녀가 결혼으로 연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말씀을 하실 때 의미하셨던 그것입니다.

25절에서 우리는 드디어 그 남자와 그의 아내 라는 표현을 발견하게 됩니다. 더 이상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아닙니다. 이 둘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이 구절은 히브리서 13:4과 맥을 같이 하는 구절입니다.

 

 

1 20일

전체를 푸는 열쇠( 3)

 

만약 우리가 창세기 1장에서 시작하여 창세기를, 3장을 건너뛰고 빨리 읽어 나아간다면 너무도 큰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하게 됩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천진난만함과 완전함과 하나님과의 교제를 목격했던 우리는 4장부터 11장 사이에 질투, 분노, 살인, 거짓말, 사악함, 부패, 반역, 심판 등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쭉 성경을 읽어가더라도 똑 같은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사악함이 땅에서 크고 또 그의 마음에서 생각하여 상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5) 죄와 죄와 죄가 반복되는 역사가 우리 인간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 이 끔찍한 죄가 들어왔다는 말입니까? 성경 전체를 풀어주는 열쇠가 곧 창세기 3장입니다. 이 한 장을 성경에서 빼 버린다면 성경은 당혹스러운 신비로 남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인간의 시험과 타락에 대해 분명한 사실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 장에서 얻게 되는 정보가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도 인간의 세상도 정말 이해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어째서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허락하신 것일까요? 답을 얻으려면 우리는 창세기 1,2장으로 다시 돌아가야만 합니다. 인간은 죄 없는 천진난만한 상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죄(혹은 천진난만함)라는 것은 지고의 선은 될 수 없습니다. 무죄는 의로움보다는 한 단계 낮은 상태입니다. 의로움이란 시험에 직면한 상태에서도 무죄함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천진난만함은 악이 무엇인지 모르는, 시험을 받아보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속한 것입니다. 반면 의로움이란 악대신 선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성숙한 성도에게 속한 것입니다. 성품은 시험이라는 수단을 통해 비로소 형성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의로움과 사랑을 한 쌍으로 여깁니다. 사랑 역시 그냥 선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무조건 순종할 수 밖에 없는 로봇을 만드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은 하나님께 마음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인간을 만드실 때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 있는 능력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순종하거나 반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창조물의 자발적인 사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율법과 명령에 순종할 것을 강조하는 교회들, 그룹들, 교단들, 그리고 개인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외적으로 드러나는 의로움과 의무준수를 강조하고 요구합니다. 반면에 사랑만 있다면 행실문제에 관해서는 아무래도 괜찮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자는 (만약 자신들이 기준에 미친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경우) 남을 미워하거나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할 것이고 (만약 자신들이 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편집증환자나 감상적인 사람이 되어 버릴 것입니다. 반면 후자는 끔찍할 정도로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며 행실이 결코 개선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들의 실패에 관한 그 어떤 설교도 사랑의 결핍이라고 정죄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만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의로움만 강조하는 설교나 가르침은 균형 잡힌 기독교의 모습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 두 가지(의와 사랑)를 모두 갈망하셨습니다.

 

 

1 21일

이제 뱀은 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들의 어떤 짐승보다 더 간교하더라.

그가 여자에게 이르되, 참으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지 말라, 하시더냐? 하니( 3:1)

 

, 바로 여기서부터 시험이라는 교리(the doctrine of temptation)”가 시작됩니다.

첫째, 시험의 원천을 고려해 보십시오. 뱀이 인간의 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등장합니다. 이 인격체가 다름아닌 사탄이라는 사실이 고린도후서 9:14, 계시록 12:9, 20:2 등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는 사탄이 언제 어떻게 타락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사실 그것은 창세기 3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만큼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죄의 창시자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죄는 바깥에서 인간에게 왔다는 사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죄가 온 것이 아니라 악한 제안을 하고 영향력을 행사한 그 어떤 힘이 원인이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셋째, 뱀은 인간으로 하여금 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뱀은 인간에게 하나님께 반역할 것을 제안할 수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문을 제기하고 인간으로 자기 제안을 행동으로 옮기도록 유도했을 뿐입니다. 그녀가 그 나무의 열매를 따서자기 남편에게도 주매…”

넷째,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다룬 것으로 인해 빚어진 직접적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1의 하나님의 명령이 창세기 3:2에서는 마음대로(freely)”가 삭제되었고, 창세기 2:17의 경고는 창세기 3:3에서 반드시 죽으리라죽을까 염려하노라로 약화되어버렸습니다. 성경변개가 아담이 아닌 그의 아내에 의해 저질러졌기에 디모데전서 2:14의 가르침이 주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가 주님의 말씀에 의문을 제기했고(1), 그 진리를 부인했으며(5), 남자와 그의 아내는 이 마귀의 불신에 단지 동의하는 것 이상의 짓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어떤 남자나 여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단어 하나 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핵심 메시지만 이해하면 된다고 할 때 조심하십시오. 이런 잘못된 생각이 에덴에서의 비참한 운명을 가져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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